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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대본에서 영상화된 드라마까지, <작은 아씨들>의 텍스트가 비주얼화된 과정이 궁금하다. 특히 박재상(엄기준)과 상아의 집에 숨겨진 난실은 초현실적인 설정 때문에 미술감독에게 상당히 도전적인 과제가 아니었을까.
김희원 정서경 작가님의 드라마나 영화는 봤지만 대본을 본 건 <작은 아씨들>이 처음이었다. 어떤 순간에는 작가님과 깊은 대화를 나눠야 비로소 해석되는, 내가 가닿지 못한 구간도 있었다. 그럴 땐 나도 선택을 해야 한다. 모든 경우에 대해 작가님과 세세한 대화를 나누는 것도 좋지만 때로는 그게 감독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그런데 류성희 미술감독님은 정서경 작가님의 의도를 더 빨리 캐치하니까, 마치 통역사처럼 작가님의 언어를 해석해줬다. 그래서 번거로움을 줄일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류성희 그런데 내가 작가의 의중을 파악할 수 있게 만들어준 것도 김희원 감독님이다. 언급하신 것처럼 난실을 만들 때 너무 고민됐다. 내가 만든 공간을 감독님이 받아
[기획] ‘작은 아씨들’ 대담③ 화영 역에 추자현 배우가 확신이 들었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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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세분이 함께한 계기는 무엇이었나.
정서경 헉! 뭐라고 대답할지 생각이 안 난다. 이런 질문이 들어올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류성희 이건 너무 예상 질문이지.
김희원 이건 ‘집합’ 챕터에 있을 기출 문제인데.
정서경 예쁜 그림의 이야기는 아니라서 그렇다. (웃음) 예전에 <작은 아씨들>로 드라마를 써볼까 생각했던 일이 떠올라서 1부 대본을 썼다. 제작사에 보여줬더니 반응이 좋았다. 그렇게 계속 대본을 쓰다 보니 불안해졌다. 이렇게 비현실적 요소와 현실적 요소가 섞여 있는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믿게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그래서 류성희 미술감독님이 꼭 필요했다. 오랜 시간에 걸쳐 만날 때마다 <작은 아씨들> 얘기를 꺼내며 천천히 감독님을 옭아매갔다. (웃음) 우리가 <아가씨> 때 시나리오 얘기를 나누지 않은 건 아니지만 <헤어질 결심> 때 정말 많이 나눴다.
류성희 에피소드 위주로 된 트리트먼트에 박찬욱 감독님의 노
[기획] ‘작은 아씨들’ 대담② 서로 다른 취향을 가진 전문가들이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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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아씨들>의 여성들은 어딘가 이상하다. 그들은 종종 사회 윤리 이전에 개인적 안위가 중요하고 돈을 향한 욕망을 애써 부정하지 않으며 불리한 일을 자처한다. 루이자 메이 올컷의 동명 소설에 기반하지만 인주(김고은), 인경(남지현), 인혜(박지후) 자매가 가난에 맞서 생존하는 방식은 각기 조금씩 뒤틀려 있고, 인주의 직장 동료 화영(추자현)은 원령그룹의 비자금 700억원을 빼돌렸으며, 원령학교의 설립자 원기선 장군의 딸 원상아(엄지원)는 이 무대의 기획자로서 살인도 불사한다. 그리고 정서경 작가는 흠결 있는 여성들을 통해 남성 중심으로 기록됐던 한국 근현대사를 다시 조망한다. 여기에 한국 사회는 그 자체로 호러 장르가 될 수밖에 없다는 걸 완벽히 이해하는 김희원 감독의 통솔력, 작품의 지향점을 정확히 이해하고 시각화한 류성희 미술감독의 감각이 만나면서 <작은 아씨들>은 올해 가장 유려하고 담대한 비전을 보여주는 창작물이 됐다. 영화계는 물론 드라마계에서도 흔치
[기획] ‘작은 아씨들’ 대담① 정서경 작가, 김희원 감독, 류성희 미술감독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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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서 극장가의 위기를 말하지만 역설적으로 극장에서 만날 수 있는, 만나야 하는 영화들은 점점 빛이 난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해외영화의 라인업은 꾸준히 든든했고 올해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마구치 류스케 신드롬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영화가 큰 사랑을 받았다는 걸 감안해도 같은 해 개봉한 한 감독의 다른 작품이 나란히 1, 2위를 차지한 건 이례적이다. 폴 버호벤 감독의 <베네데타>는 평자들의 고른 지지를 바탕으로 3위에 올랐다. 개봉 당시의 화제성은 다소 아쉬웠던 데 반해 금기를 깨는 감독의 고집과 용기가 점차 중요해지는 시기라는 점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4위를 차지한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하반기에 주목받은 화제성을 반영하듯 기발한 상상력과 과감한 표현력,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까지 고른 부분에서 칭찬이 이어졌다. 5위는 믿고 보는 감독 폴 토머스 앤더슨의 <리코리쉬 피자>에 돌아갔다.
[기획] 2022년 해외영화 BEST 6~10위, 그리고 올해의 해외영화 총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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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미국영화를 말할 때 제일 앞자리는 당연히 폴 토머스 앤더슨의 몫이다. 생각해보면 5년 전에도, 아니 10년 전에도 그랬다. 2017년 <팬텀 스레드> 이후 5년 만에 돌아온 앤더슨 감독은 <데어 윌 비 블러드>(2008), <마스터>(2012)에서 시도했던 역사의 뿌리를 더듬어가는 거대한 서사 작업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고 초창기의 활달함과 가벼움으로 돌아갔다.
1970년대 캘리포니아를 배경으로 청춘의 설렘과 떨림을 따라가는 듯한 영화는 “무모한 꿈과 천진한 사랑으로 싱그럽게 요동친다”(박정원). 하지만 <리코리쉬 피자>는 어디까지나 앤더슨의 영화이고 “앤더슨은 무엇을 찍든 앤더슨”(홍수정)이다. <리코리쉬 피자>는 펑키한 러브 스토리를 풀어놓을 때도 시대의 초상을 반영한다. 1970년대, 미국의 자유가 폭발했던 시기의 낭만적 에너지는 마치 최후의 불꽃을 태우듯 치열하고 촘촘하게 스크린을 장식한다. 앤더슨 감독이 끝내 장면
[기획] 2022년 해외영화 BEST 5위, ‘리코리쉬 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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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반기 최대의 화제작이자 마블이 해내지 못한 것을 해낸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가 4위에 올랐다. 중국계 미국 이민자 에블린(양자경)과 대학생 딸 조이(스테파니 수)의 갈등에서 출발하는 이 기발한 영화는 다중우주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모범답안을 제시한다.
“코미디와 감동을 크로스 오버하고, 홍콩 액션과 미국 팝문화를 결합해 가족 드라마로 마무리하는”(허남웅) 이 영화는 “눈알과 베이글, 우주 최악과 우주 최강 등 삶의 희로애락을 단순하게 은유하면서 의미를 반전시키며 확장해나간”(김수영) 끝에 웃음과 눈물과 감동 그 이상의 영화적인 희열로 가득 차 있다.
그 상태야말로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최대 미덕이자 본질인데, “뚱하고 재미있고 아름다운 것들이 지나치게 빽빽하게 들어가 터질 것만 같다”(듀나). 그리고 그 팽창된 우주가 더없이 매력적이고 흥미롭다. 평자들은 이 영화가 블록버스터를 압도하는 B급의 미덕으로 무장했다는 점
[기획] 2022년 해외영화 BEST 4위,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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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비할 정도로 압도적이다.”(정지혜)
폴 버호벤 감독의 <베네데타>는 17세기에 실존한 한 수녀의 삶을 그리며 역사학자 주디스 C. 브라운의 책 <수녀원 스캔들: 르네상스 이탈리아의 한 레즈비언 수녀의 삶>을 바탕으로 한다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부터 논쟁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하지만 폴 버호벤은 단지 자극적인 소재에 탐닉하는 종류의 연출자와는 거리가 멀다. 문제적 인물을 중심에 세워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는 폴 버호벤의 도발은 이번에도 여전하다. 평자들의 지지는 감독의 꼿꼿한 고집과 논쟁적인 소재 한가운데에 가득한 영화적 활력과 모종의 에너지에 쏠렸다.
“84살의 감독은 종교의 성스러움과 성적인 욕망 사이에 갇힌 인간의 고뇌를 탐구하는 데 있어 그 어떤 멈칫거림과 두려움 없이 직선으로 달린다. <베네데타>는 연륜과 경험이 꺼지지 않는 창작의 에너지와 만났을 때 나올 수 있는 획기적인 결과물”(허남웅)이다. 동시에 “불성을 신성의 필요조건으로 삼는
[기획] 2022년 해외영화 BEST 3위, ‘베네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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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과 상상>이 소박한 가운데 특유의 호흡으로 하마구치 류스케의 본질에 가닿았다면 <드라이브 마이 카>는 훨씬 세련되고 정제된 아름다움에 도달한다.
2014년 국내에서 출간된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소설집 <여자 없는 남자들>에 수록된 동명의 단편소설을 각색한 이 영화는 74회 칸영화제 각본상에 이어 9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국제장편영화상을 수상하며 “하마구치 류스케 본인뿐만이 아니라 일본영화 전체를 재평가하게”(김철홍) 만들었다.
그야말로 “하마구치 류스케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선언한 작품”(이주현)으로 꼽기에 손색없는 결과물인 셈이다. 동시에 적지 않은 평자들이 “작정한 걸작과 여유로운 소품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근사했다”(이보라)며 둘 중 한 작품의 손을 들어주는 데 난색을 표하기도 했다. 우열의 문제라기보다는 취향과 시기에 따라 갈라질 수밖에 없는 평가 앞에서 <드라이브 마이 카>는 고유의 리듬을 통해 우리를 매혹한다.
“
[기획] 2022년 해외영화 BEST 2위, ‘드라이브 마이 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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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면 하마구치 류스케 신드롬이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다.
올해 칸영화제와 베를린국제영화제를 석권한 하마구치 류스케의 영화가 나란히 베스트5에 안착했다. <우연과 상상>과 <드라이브 마이 카> 중 어떤 영화에 좀더 끌리는지에 따라 취향을 가늠할 수 있는 잣대가 된다고 해도 좋겠다. 미세하게나마 평자들의 지지가 쏠린 건 <우연과 상상>쪽이었다.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한 <우연과 상상>은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창작의 결정적 순간을 포착한 마법 같은 작품이다. <마법(보다 더 불확실한 것)> <문은 열어둔 채로> <다시 한번>으로 이어지는 3편의 단편을 묶은 옴니버스인 이 작품은 “예상치 못한 정념을 끌어올리는 마법 같은 화술”(김수영)을 선보인다. “헤어지거나 어긋나는 인물을 영화적 상상으로 강제해 중지시키려는 안간힘을 지지하고픈”(김성찬) <우연과 상상>은 범상한 일상에
[기획] 2022년 해외영화 BEST 1위, ‘우연과 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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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평론가들이 선정한 2022년 해외영화 10선
※ 필자별 올해의 해외영화 베스트 5
*이어지는 기사에 씨네21 선정 2022 BEST 해외영화 기사가 계속됩니다.
[기획] 2022 올해의 해외영화, 하마구치 류스케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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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재덕 사나이픽처스 대표는 코로나19 팬데믹의 여름 시장을 과감히 공략하며 “<헌트>와 이정재의 비상을 이끈 제작자”(김수영)다. 올해의 제작자로 선정됐다는 소식에 한재덕 대표는 “영광이다”라며 운을 띄웠다. “<헌트>의 배우들에게 너무 감사하다. 이정재 감독이 연출을 맡도록 부추긴 감이 있는데, 내 눈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입증해준 것에 대한 감사함이 크다.”
8월10일 개봉한 이래 <헌트>는 총 435만 관객의 선택을 받았다. “일반적인 첩보영화와 다르게 두명의 안타고니스트가 같은 목적을 갖고 질주한다는 점, 액션도 나쁘지 않았고 배우 정우성과 이정재가 오랜만에 한 작품에서 합을 맞췄다는 점을 좋게 봐주신 듯하다. 무엇보다 이정재 배우가 ‘언제 이렇게 연출을 했나?’라며 흥미롭게 지켜본 관객이 많았다. 이정재, 정우성 배우가 마케팅 측면에서 정말 애를 많이 썼다. 두 사람 덕분에 100만명은 더 들지 않았을까. 가히 둘의 승리라고 말하고 싶다.
[기획] 2022 올해의 한국영화 제작자, ‘헌트’ 사나이픽처스 한재덕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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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의 지독함은 감정을 극단의 지점까지 밀어붙였다는 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배우의 밑바닥을 긁어내는 무시무시한 장악력은 근본적으로 “불필요한 대사와 행동을 삭제한 절제미와 주제를 응축시키는 구심력”(이현경)으로부터 반동을 키웠다. 모녀 관계의 병적인 풍속도를 직시한 김세인은 “신인의 예각과 기성의 절제력을 동시에 갖춰 차기 한국영화계를 이끌 것이라 확신시키는 예민하고도 아린 감성”(홍수정)의 소유자, “양말복 배우와 함께 선정되어 특별히 기쁘다”는 김세인 감독은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의 초기 제작 단계에서 “수경이 사이코패스가 아니냐, 란 말을 들을 정도로 두 여자를 비난하거나 이상하게 보는 시선과 싸워”왔다.
그는 “자기 자신을 더 많이 사랑하는 중년 여성들, 주체성을 찾아가려는 여성들이 너무 강하거나 혹은 너무 약하다는 이유로 쉽게 손가락질당하는 현실의 세태”에 오기를 다졌다.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
[기획] 2022 올해의 한국영화 신인감독,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 김세인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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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시내가 사라졌다>에서 가수 윤시내의 이미테이션 가수인 ‘운시내’는 배우 노재원의 학교 근처 노래방에서 탄생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처음 오디션을 볼 때 노래방에서 강산애의 <라구요>를 녹음해 보냈는데 다행히 김진화 감독이 그걸 좋게 봐줬다. 그 뒤로 여러 노래를 불러봤는데 내게 가장 잘 맞는 노래가 윤시내의 <열애>더라. 이미테이션 가수긴 하지만, 어떻게 나로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거의 하루에 한번은 코인 노래방에 들러 <열애>를 불렀다.”
첫 장편이자 첫 개봉작인 <윤시내가 사라졌다>에 대한 노재원의 애정은 남다르다. “준옥과 비슷한 점이 많다. 나 역시 입시나 캐스팅 과정에서 실패를 많이 겪어봤고, 그래서 준옥에게 많이 동요됐다. 얼마 전 부산 해운대에서 앉은 자리에서 1시간10분 동안 버스킹 공연을 봤다. 너무 추웠고, 그의 공연이 완벽하지 않았는데도 진심을 담아 노래하는 게 꼭 준옥 같았다. 그때 김
[기획] 2022 올해의 한국영화 신인 남자배우, ‘윤시내가 사라졌다’ 노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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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말복 배우는 “올해의 신인 여자배우로 선정됐다니, 새로 태어난 느낌”이라며 밝은 목소리로 기분을 전했다. “모자란 부분이 있지만 그럼에도 지금까지 해오던 일을 계속 해도 괜찮겠다는 믿음이 생겼다.”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에서 “표독스럽게 몰아붙이다가도 우울하고 지친 기색이 스치는 양말복의 얼굴은 올해 스크린에서 만난 얼굴 중 가장 강렬했다”(배동미).
숱한 연극과 단편 영화, 장편 영화의 조·단역으로 출연했지만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에서 딸 이정(임지호)과의 애증 관계를 노련하게 그려내 주목받았다는 점에서, 베테랑 배우임에도 “‘발견’이라는 의미에 딱 부합한다”(정지혜). 연기를 그만두려던 힘든 시기에 “손 내밀어준 김세인 감독 덕에” 작품에 참여하게 됐고 그렇게 만난 수경이란 캐릭터에 자신의 삶을 많이 대입시켰다. “수경과 이정은 분명 내 삶의 나이테에서도 존재했던 관계다. 때문에 수경을 연기하며 나의 삶과 배우라는 직업을 정리해볼 수 있
[기획] 2022 올해의 한국영화 신인 여자배우,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 양말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