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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제24회 전주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토리와 로키타>(2022)를 들고 다르덴 형제가 처음 한국을 찾았다. 철저하게 현실 세계를 뒤쫓는 그들의 카메라를 보면서, 세계의 근원에 관해 질문을 던진다. 비단 <로제타>(1999)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자본주의에 고통받는 정신의 탐구에 관한 그들의 태도는 신성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어쩌면 훗날 그들의 이름은 로베르토 로셀리니와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 안드레이 타르콥스키와 같은 영화적 성자들 사이에 놓일지도 모른다. 인간 정신의 본질을 탐구하는 이들 형제의 영화들을 살펴보며 그 영화적 표상이 지닌 신성한 의미를 기억하고자 한다.
다르덴 형제는 촬영과 편집을 맡은 형 장 피에르 다르덴과 사운드를 맡은 동생 뤽 다르덴으로 구성된 2인조 감독이다. 젊은 시절에 장 피에르가 극작가 아르망 가티에게 비디오 워크숍을 배우던 시절, 뤽은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있었다. 당시 스승이었던 가티는 무대와 관객을 분리
[기획] 다르덴 형제 작가론, 얼굴의 소멸로부터 시작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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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영화제 75주년 특별기념상을 수상한 <토리와 로키타>는 함께 사는 사회를 향한 다르덴 형제의 따뜻한 시선을 확인할 수 있는 영화다. 시의성 있는 이야기와 무게감 있는 연출, 유럽 사회의 모순을 꿰뚫는 날카로운 시선이 돋보이는 이번 영화를 들고 다르덴 형제가 직접 한국을 방문했다. <토리와 로키타>를 중심으로 이 시대의 거장 다르덴 형제의 연출 세계를 살펴보았다. 전주국제영화제(이하 전주영화제)에서 직접 만난 다르덴 형제의 생생한 이야기도 함께 전한다. 영화는 어떻게 사회와 함께 생명을 얻는가. 여기 간단하지만 묵직한 진실의 조각을 마주한다.
*이어지는 기사에서 <토리와 로키타> 기획이 계속됩니다.
[기획] ‘토리와 로키타’, 영화와 세상은 어떻게 연결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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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회 칸영화제에서 클레르 드니의 <스타즈 앳 눈>과 공동으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한 루카스 돈트의 <클로즈>가 개봉한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의 국제장편영화상 후보에도 오르면서, 샹탈 아커만과 다르덴 형제 등으로 대표되던 벨기에영화계에 새로운 기대를 안기기도 했다. 루카스 돈트는 이미 5년 전, 데뷔작 <걸>로 칸영화제 황금카메라상과 퀴어종려상을 거머쥐며 열렬히 환대받은 젊은 연출자다. 전작에서 발레리나를 꿈꾸는 트랜스젠더 소녀의 이야기를 다뤘던 그가 이번에 동행한 이들은 13살 소년들. 영화는 매일 붙어다니고, 머리를 맞대고, 같은 침대에 눕는 게 자연스럽던 두 친구의 사춘기로 접속한다.
어두운 아지트에서 두 소년이 바깥을 살핀다. “소리 내지 마.” 무엇 때문에 이들은 속닥거리는 걸까? 대화를 듣고 있자니 80명쯤 되는 군대가 돌진해오고 있는 것 같다. 지붕을 에워싸는 병사들을 피하기 위해 두 소년이 택한 방법은 셋을 센 뒤 힘껏 달리기. 물
[기획] ‘클로즈’와 벨기에영화의 신성 루카스 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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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윤은 폴 슈레이더의 <퍼스트 리폼드>, 아리 애스터의 <유전>, 셀린 송의 <전생> 등의 영화에서 프로덕션 디자인을 맡아왔다. 그는 에이미가 처한 상황과 내면의 모양을 상상했다. 호화로운 취향과 근사한 성공 이면에 자리한 실존적 공포감을 에이미의 집을 통해 전달하고자 했다. 콘크리트 벽과 나무 칸막이를 활용한 건물은 모던한 스타일을 뽐내지만 한편으로는 높고 차가운 벽의 감옥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레이스 윤은 “어떤 식으로든 꿈에 갇힌 것 같은 느낌, 또는 자신이 만든 삶에 갇힌 것 같은 느낌”을 주고자 했다. 실제 에이미의 집 내부와 외부에 존재하는 뚜렷하고 묵직한 수직선은 무겁고 갇힌 느낌을 가중시키는데, 그레이스 윤은 나중에 대니의 사촌 이삭이 수감된 감옥 공간과 시각적으로 연결성 있게 디자인했다. 에이미의 집에서 곡선은 남편 조지의 도자기가 유일하다. 이는 에이미의 삶과 스타일에 연결되지도 어울리지도 않는 조지와의 관계를 드러낸다.
[기획] '성난 사람들', 대니의 집은 작은 실패들의 콜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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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에서 비롯한 보편적이면서도 구체적인 이야기
모든 것은 흰색 SUV에서 시작됐다. 대니와 에이미의 강렬한 첫 만남은 <성난 사람들>의 제작자, 쇼러너, 총괄 프로듀서인 이성진의 실제 경험에서 비롯됐다. 마트 주차장이 아닌 로스앤젤레스 중심가의 한 교차로에서였다. 신호등이 녹색으로 바뀌자마자 뒤에 있던 BMW 차량이 경적을 울리며 욕설을 퍼붓고 지나갔고 이성진은 충동적으로 그 차를 뒤쫓아 달리다 집으로 돌아왔다. 이 불쾌한 경험이 시리즈의 아이디어를 촉발했다.
스티븐 연과 앨리 웡은 이성진이 작가로 참여했던 애니메이션 시트콤 <투카 앤 버티>에서 합을 맞춘 적이 있다. 이성진은 친구처럼 지내던 스티븐 연과 난폭운전 아이디어에 관해 1년 동안 이야기를 나누며 이야기를 구상했다. “앨리 웡의 스탠드업 코미디를 보면서 그녀가 삶의 어두운 진실을 솔직하고 재미있게 말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그게 이 작품에 매우 필요했다”는 이성진은 앨리 웡에게 전화를
[기획] ‘성난 사람들’, 그들이 화가 난 진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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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일은 묻어둬라. 참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살면서 한번쯤 들어봄직한 익숙한 조언이지만 <성난 사람들>의 두 주인공 대니(스티븐 연)와 에이미(앨리 웡)는 참지 않는다. 대형마트 주차장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차가 경적을 연신 울려대며 화를 돋울 때, 정말로 참지 않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지나간 분노를 향해 끝까지 응징에 나서면 어떻게 될까? <성난 사람들>의 작가 이성진은 이런 상상을 계속 이어나갔다. 로튼토마토 신선도 98%를 달성한 넷플릭스 드라마 <성난 사람들>은 4월6일 공개 직후부터 20여일이 지난 지금까지 넷플릭스 글로벌 톱10 TV시리즈 3위 내 순위를 유지하고 있다. A24가 제작한 이 미국 드라마는 아시아계 크리에이터가 배우 및 제작진으로 대거 참여하고 아시아계 이민자를 주인공으로 한다. 총괄 프로듀서(Executive Producers)로 함께 이름을 올린 이성진과 배우 스티븐 연, 앨리 웡은 구체적이고도 사실적인 동양계 이민
[기획] 이성진, 스티븐 연, 앨리 웡⋯ 아시아계 크리에이터들이 만든 ‘성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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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평소 팬은 아니지만 너무 잘 보고 있었습니다!” 축구 선수 홍대(박서준)와의 첫 만남에서 소민(아이유)이 살갑게 인사를 건넨다. 솔직하게, 딱 필요한 만큼의 친근함을 내보이는 그를 보며 쌓인 내공을 짐작해봤다. 연기할 때는 물론 무대 위아래에서 아이유가 카메라 뒤에 서본 적이 몇번이나 될까. 그런 그가 <드림>에서 다큐멘터리 PD 소민으로 분한다. 드라마를 위해 실력보다 사연으로 홈리스 축구단의 멤버를 뽑고, 그들의 매 순간을 카메라로 기록한다. ‘열정리스(less) 직장인’이었던 소민은 어느새 누구보다 큰 목소리로 팀을 응원하는 이로 변모한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 영화 <브로커>에서 보여준 차분한 모습과 또 다른 에너지를 펼쳐 보이는 순간이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촬영을 바쁘게 소화하는 와중에도 아이유는 <씨네21>의 서면 인터뷰 제안에 흔쾌히 응해주었다.
- <브로커>가 먼저 개봉했으나
[인터뷰] ‘드림’ 배우 아이유, 있는 그대로의 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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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헌 감독은 8년 전 <드림>의 기획을 처음 시작했다. TV프로그램을 통해 홈리스 월드컵의 존재를 알게 된 그는 홈리스 월드컵의 한국 공식 주관사인 빅이슈코리아를 통해 홈리스들을 취재하고 2015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홈리스 월드컵에 동행하는 등 긴 사전 조사 기간을 거쳐 <드림>의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실화 자체가 이병헌 감독 같은 이야기꾼에게는 욕심날 만한 소재였다.
- 개봉 전주 인스타그램에 “<드림>의 핸디캡은 나 자신”이라는 글을 올렸다. 전작 <극한직업>과 계속 비교가 되다 보니 함께한 이들에게 미안하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본인은 기분이 좋은 상태라고 밝혔지만 공교롭게도 <씨네21> 별점이 나간 직후에 올라온 글이라 사람들이 감독의 의도를 다르게 받아들인 것 같기도 하고.
= 강아지 두 마리를 산책시킨 후 정말로 기분이 좋았을 때였다. 원래 <씨네21> 20자평은 네이버로 확인하기 때문에
[인터뷰] '드림' 이병헌 감독, 스포츠보다 홈리스 팀원들의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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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승의 가능성은 희박할지라도, 기어코 꿈을 향해 도전하는 이들에겐 언제나 아낌없이 박수를 보내게 된다. <극한직업> 이후 이병헌 감독이 4년 만에 내놓은 신작 <드림>은 2010년 홈리스 월드컵에 한국 국가대표팀이 처음 출전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물의를 일으켜 축구 선수로서의 활동이 어려워진 홍대가 자구책으로 홈리스 축구단의 감독직을 맡는다. 홍대가 들른 축구장엔 홈리스 선수들 외에도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 위해 모든 과정을 기록 중인 PD 소민이 있다. 홍대와 티격태격하면서도 소민은 축구단이 무사히 월드컵 경기에 참가할 수 있도록 돕는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개봉이 다소 늦어졌으나, 마침내 스크린을 통해 관객과 만나게 될 <드림>에 관해 이병헌 감독, 아이유 배우가 자의 깊은 애정을 들려주었다.
*이어지는 기사에서 이병헌 감독, 아이유 배우와의 인터뷰가 계속됩니다.
[기획] '드림'의 이병헌 감독, 배우 아이유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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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영화비평은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가. 오랫동안 제기되어온 ‘영화비평의 위기’에 관해 동시대 영화평론가들은 어떤 시선을 견지하고 있을까. <씨네21>은 당사의 영화평론 공모전을 통해 당선된 김병규, 김철홍, 김예솔비 영화평론가에게 대화를 청했다. 1~5년 이상 활동해온 이들에게 영화비평과 비평가의 역할, <씨네21> 지면의 의미와 한계, 외면적으로 어떤 자리와 변화를 필요로 하는지 듣는 시간을 마련했다.
김철홍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각자 하는 일이 궁금하다. 영화비평가로서 혹은 다른 정체성으로서 어떤 활동들을 하고 있는가.
김예솔비 현재 대학원에서 영화를 전공하는 중인데, 과 특성상 영화만 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전시, 퍼포먼스, 연극 등 미술과 관련한 기획을 하는 친구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가끔 전시 서문을 쓰거나 기획을 돕고, 때로는 기록 촬영을 하기도 한다.
김철홍 그게 김예솔비라는 정체성의 얼마만큼을 차지하고 있나.
김예솔비 구
[기획] 김병규, 김철홍, 김예솔비 평론가의 비평적 과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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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막만 한 글씨가 빼곡하게 적힌 수첩을 들고 왔다. 영화관에서도 그렇게 메모하나.
= 영화를 볼 때는 일부러 메모에 신경 쓰지 않는다. 놓치는 장면들이 생기기도 하고 영화를 보는 도중에 드는 생각은 오히려 부차적인 것이 많기 때문이다. 짧으면 30분, 보통은 하루 정도 지나서 드는 생각들을 글로 가져온다. 시간을 거쳐 얼마간 여과된, 내 안에서 정리된 말들이 글 쓰는 과정에서 경합을 벌인다.
- 지난해 출간한 민음사 탐구 시리즈 <뭔가 배 속에서 부글거리는 기분>에서 영화뿐 아니라 만화, 문학, 음악, SNS 인플루언서로서의 자기 분석에 이르기까지 동시대 K문화 전반을 비평의 주제로 삼았다.
= 포스트 시네마 시대를 살면서 매체, 플랫폼, 그것에 접속하는 다양한 디지털 기기 등에 의해 매우 다양한 선택지에 놓이지 않나. 그건 부정할 수 없이 내가 자라면서 경험한 어떤 객관적인 환경이고, 그로부터 체화한 현실 감각을 따랐다.
- 만화 장르에 대한 애호와
[인터뷰] 윤아랑 평론가, 그럼에도 더 많이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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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평론가로 등단한 건 ‘2022년 영화의전당 영화평론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하면서다. 등단 이전의 이력을 살펴보니 거쳐온 분야가 다양하다. 예술고등학교에서 문예창작을 공부했으나 학부에선 철학과 독어독문학을 전공했고, 대학원 전공은 문화인류학이다. 로펌에서도 잠시 일했고 현재는 외주 제작사 방송 PD로 재직 중이다. 이 폭넓은 관심이 어떤 과정을 거쳐 영화비평으로 좁혀졌나.
= 사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웃음) 영화, 음악, 문학, 철학, 인문학 등 여러 분야에 관심이 있었고 근 20년간 개인 블로그에 관련 작품들의 리뷰를 계속 써왔다. 그러다 어느 순간 커리어를 더 좁힐 필요를 느꼈다. 지금까지 해온 것들을 종합해보니 흥미를 잃지 않고 오랫동안 할 수 있는 게 영화평론이란 결론에 이르렀다. 그래서 지난해부터 영화비평에 집중하기 시작했고, 그 일환으로 공모전에 글을 냈다.
- 등단 전에도, 후에도 비평을 쓴다는 것엔 변함이 없는데 그럼에도 평론가라는 직함을 필요로 하게 된
[인터뷰] 박예지 평론가, 기존의 매체를 벗어나, 나만의 방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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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말 김어준>의 ‘56년생 완전 영화인 김홍준, 92년생 조금 영화인 강덕구’, <중앙일보>가 2030 필자들을 내세운 정치 칼럼 ‘나는 고발한다’ 시리즈 등에 참여했다. 책 <밀레니얼의 마음: 2010년대, 그리고 MZ의 탄생>(이하 <밀레니얼의 마음>)까지 나오면서 유독 1990년대생, MZ 평론가라는 프레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는데.
= 비슷한 나이대 평론가들이라면 어디를 가도 대체로 비슷할 거다. 비평이라는 행위에서 자의식은 매우 중요하지 않나. 내 자의식을 이용하고 젊음 역시 이용하고 싶을 때가 있었다. 그런데 그런 작업은 이제 내 첫 책이자 연대기인 <밀레니얼의 마음>으로 완전히 종결지었다. 이 인터뷰에서도 내가 어떻게 표현될지 약간은 걱정스럽다. 매체들이 이제는 개별 평론가의 정체성에 잘 접근해줬으면 하는 마음이다.
-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영상이론을 전공하고 <오큘로>를 거쳐 블로그를 중심으로
[인터뷰] 강덕구 평론가, 연출하고 도발하는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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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오몽은 멀지 않은 과거에 “비평가는 지성, 섬세함, 그리고 의식을 요구하는 매우 까다로운 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라고 <씨네21>에 썼는데, 나는 여기에 지금 신진 비평가들에겐 “적나라한 감정과 솔직함, 자전적 서사, 그리고 전략” 역시 있다고 덧붙이고 싶다. 그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는가. 기회가 주어진다면 기성 언론에 칼럼을 싣거나 연재를 하고 단행본을 쓰긴 하지만, 정기적인 지면이나 소속의 문제는 그들의 주요 관심사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때때로 불편한 제안일 수 있다. 영화를 붙들고 글쓰거나 말하려는 사람들은 동의하는 주제, 필요한 장소, 환기하는 만남이 있다면 그곳으로 걸어들어갔다 다시 빠져나온다. 영화평론가들은 더이상 영화만을 말하지 않고 미술, 만화, 힙합, 하위문화를 함께 거론한다. 네이버 블로그나 브런치의 주인, 개인 SNS 계정으로 우리에게 먼저 당도하는 사람들. 왓챠의 네임드, 노션 링크 속 발화자, 나아가 보다 심미적으로 꾸려져 있는 웹사이
[기획] 우리 시대의 비평가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