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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벨만스>를 보고 가장 먼저 복기하고 싶었던 필모그래피는 스티븐 스필버그가 젊었을 때 만든 저예산 장르영화, 엔터테이닝 그 자체에 집중한 오락영화들이었다. 어린 스필버그를 대변하는 캐릭터 새미(마테오 조리안)가 태어나서 처음 본 극장영화는 세실 B. 드밀의 <지상 최대의 쇼>였고, 그는 기차가 충돌하는 이미지에 사로잡힌다. 새미가 자각한 대로 영화 이미지가 관객의 감정을 변화시킬 수 있다면, 영화 만들기는 인간의 감정을 의도대로 통제할 수 있다. 새미는 자신의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아버지 버트(폴 다노)가 사준 라이오넬 전기 기차를 이용해 자신이 봤던 스펙터클을 재현하려고 한다. 더 나아가 어머니 미치(미셸 윌리엄스)의 말대로 이를 영상으로 찍어서 편집하면 실제 장난감은 부서지지 않으면서 원하는 그림을 반복해 볼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마치 진짜처럼 보이는 이미지를 잘 연출하면 즐거움, 흥분, 공포, 슬픔과 같은 감정을 촉발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새미
[기획] 스티븐 스필버그의 삶과 필모그래피의 연장선에서 신작 ‘파벨만스’를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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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벨만스>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35번째 장편영화이자 2020년대에 한번 더 탄생한 그의 마스터피스다. 스필버그는 부모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야 자신의 10대 시절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 결심을 할 수 있었다. <파벨만스>는 인간의 감정을 통제하는 영화의 힘에 매혹됐던 소년이 연출이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에 좌절하고, 유대인 차별에 맞서기 위해 영화를 다시 선택하기까지의 성장사를 다룬다. 그리고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스필버그의 영화들을 하나씩 다시 되짚어보게 만든다. <파벨만스>와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사를 총괄하는 특집을 마련했다. <파벨만스>에 담긴 영화 매체 및 예술에 대한 스필버그의 평생에 걸친 사유를 짚은 후, 영화에 대한 무조건적 애정이 아닌 죄책감을 읽어낸 이보라 평론가의 비평을 소개한다. 조성희 감독은 <파벨만스>를 계기로 스필버그 감독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고백하는 에세이를 보내왔다.
존 포드가 스
[기획] 35번째 장편영화 ‘파벨만스’를 계기로 돌아보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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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필름 마트가 열리기 하루 전날 밤, 홍콩고금박물관에서 제16회 아시안 필름 어워즈가 열렸다. 한국영화 <헤어질 결심>은 작품상, 각본상, 미술상, 남녀주연상 등 10개 부문에서 후보로 지명되었다. 그 중에서 각본상(정서경·박찬욱)과 여우주연상(탕웨이) 그리고 미술상(류성희)을 받으며 3관왕에 올랐다. 시상식이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박해일 배우에게 짧은 만남을 청했다. 이번 시상식 풍경과 <헤어질 결심>의 여정에서 그가 보고 느낀 것에 대해 물었다.
탕웨이 배우가 만약 상을 받게 된다면 트로피를 대신 받기로 미리 약속을 했나?
'헤결팀'이 10개 부문 후보에 올랐는데 변수를 생각해 봐야 않겠냐는 이야기가 시상식으로 가기 직전 즉석에서 나왔다. 박찬욱 감독님도 안 계시고 탕웨이씨도 몸이 안 좋아 없으니 백지선 모호필름 대표만 계속 시상대에 오르는 게 모양새가 이상해 참석자들이 분야별로 나눠서 시상대에 오르자는 이야기를 나눴다. 조영욱 음악감독님은
“홍콩은 아시아 영화의 역사를 보여주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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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독설변호사> 개봉하기 전까지 따뜻한 가족 코미디가 역대 홍콩영화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던 적 있다. 2022년 9월에 개봉한 천진훙 감독의 <6인용 식탁>이 그 주인공이다. <독설변호사>가 그 기록을 가져가면서 역대 홍콩영화 박스오피스 2위로 내려갔지만, 천진훙 감독은 홍콩 관객들이 다시 홍콩영화에 관심을 가지는 분위기에 감사하다고 말한다. <6인용 식탁>은 <독설변호사>에서 주인공 변호사를 연기한 황자화 배우를 맏이로 하여, 삼형제 간에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이로써 황자화 주연 영화 두 편이 역대 홍콩영화 박스오피스 1, 2위를 나란히 차지한 것이다. 만들어지기는 <6인용 식탁>이 먼저 만들어졌고 2021년 개봉을 준비하던 중 코로나 팬데믹으로 2022년에 공개되었다. 따뜻한 가족 드라마 <6인용 식탁>의 각본과 연출을 책임진 천진훙 감독을 홍콩 현지에서 만났다.
역대 홍콩영화 박
‘첨밀밀’처럼 따뜻한 홍콩영화의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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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홍콩영화 박스오피스 1위 영화가 탄생했다. 올해 춘절 연휴의 시작인 1월21일 개봉한 오위륜 감독의 데뷔작 <독설변호사>는 홍콩영화 최초로 수익 1억 홍콩달러를 돌파했다. 중국 본토에서도 개봉해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독설변호사>는 한 여인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서 분투하는 변호사 에드리안(황자화)의 이야기를 담은 법정영화다. 영토가 좁은 홍콩의 국가기관들은 일반적인 빌딩에 자리하고 있는데, 에드리안은 홍콩의 높은 빌딩과 빌딩을 잇는 회랑을 뛰어다니며 법정으로 출근하는 변호사다. 1975년생인 오위륜 감독은 <독설변호사>를 연출하기 전까지 20년간 시나리오 작가로 일했다. 국내에도 개봉한 적 있는 <화룡대결>(2010) <격전>(2013) <마경>(2014) 등 주로 액션 영화 시나리오를 써왔다. 2021년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인 <매염방>의 시나리오를 쓰면서 드라마 장르를 익혔고, 덕분에 속도
‘인과응보’ 법정영화로 역대 홍콩영화 박스오피스 1위 차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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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에 많은 영화인들이 홍콩행 티켓을 끊었다. 아시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영화, 영상 마켓인 홍콩필름마트(The Hong Kong International Film and TV Market, 주최 홍콩무역발전국(HKTDC))가 4년 만에 다시 열린다는 소식을 들려왔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지난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온라인으로 행사를 축소했던 홍콩필름마트가 올해는 3월13일부터 16일까지 나흘간 홍콩 컨벤션&엑시비션 센터에서 열렸다. 다시 오프라인으로 나온 홍콩필름마트의 열기를 체감하기 위해 <씨네21>도 홍콩필름마트를 찾았다. 나흘 동안 가까이서 지켜본 올해 홍콩필름마트 취재기와 함께 역대 홍콩영화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른 <독설변호사>의 오위륜 감독과 2위의 <6인용 식탁> 천진훙 감독을 처음으로 한국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인터뷰를 전한다. 두 영화인의 인터뷰가 홍콩영화계의 현재를 가늠해볼 수 있는 역할을 할 것이다. 때마침 비
젊고, 새로운 홍콩영화의 변화를 목격한 홍콩필름마트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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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니셰린의 밴시>에 이르기까지 마틴 맥도나는 영화에서 시대를 특정한 적이 없다. 오히려 시기를 적시하길 피해가며 표현의 가능성을 확장해온 편이다. 그렇기에 <이니셰린의 밴시>에서 배경을 1923년이라 언급한 건 특기할 만하다. 아일랜드 국적의 감독이 아일랜드 내전이란 역사적 사건을 명확히 가리킨 것이기 때문이다. 작품의 장소는 본국과 거리를 둔 이니셰린이라는 가상의 섬이다. 지척의 대포 소리가 바다를 가로지르는 가운데 파우릭과 콜름은 이니셰린에서 둘만의 광기 어린 전쟁을 벌인다.
서부극의 특성을 즐겨 차용하는 마틴 맥도나의 특성은 그의 신작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킬러들의 도시>에서 벨기에의 브뤼주, <쓰리 빌보드>가 미주리주의 에빙 지역으로 장소를 한정했던 것처럼 <이니셰린의 밴시>의 배경지도 이니셰린을 벗어나지 않는다. 섬에 머무르는 두 인물은 거듭해 갈등을 겪는다. <킬러들의 도시>
[기획] '이니셰린의 밴시' 속 갈등이 남긴 질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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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2시, 파우릭(콜린 패럴)이 콜름(브렌던 글리슨)의 집에 방문하면 둘은 나란히 술집으로 향한다. 습관처럼 굳어진 일상은 “더이상 너와 시간 낭비를 하지 않겠다”는 콜름의 선언으로 무너지고, ‘오후 2시’는 일방적인 무시와 끈질긴 방문의 시간으로 변모한다. “계속 찾아온다면 양털 깎는 가위로 내 손가락을 자르겠다”는 콜름의 연이은 선언에도 파우릭은 우정을 갈구하길 멈추지 않는다. 첫 장편 <킬러들의 도시>에서 콜린 패럴, 브렌던 글리슨과 호흡을 맞췄던 마틴 맥도나 감독은 “두 배우의 조합에 어울릴 만한 스토리를 수년간 고민”했고 10여년 후 <이니셰린의 밴시> 시나리오를 완성하며 재회의 장을 마련한다. 마틴 맥도나는 ‘두 남자의 절교’라는 서사에 비극과 블랙코미디를 녹여내며 자신의 연출적 강점을 드러낸 동시에 “삶에 대해 질문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타임스>) 접근법을 구사한다. <이니셰린의 밴시>는 제80회 골든글로브 시상식 3관왕,
[기획] 어느 날 내 친구가 절교를 선언했다: 마틴 맥도나 감독의 ‘이니셰린의 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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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 포용성으로 더 넓게 연대한다
- 든든은 성폭력 문제와 더불어 영화계 내 불균등한 기회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포용성 지표를 개발하고 ‘2022 한국영화 다양성 주간’(이하 다양성 주간) 행사를 열어 여성뿐 아니라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영화인들을 위한 자리를 넓혀가고 있다. 행사 이후 어떤 피드백을 받았나.
김선아 영진위가 변하고 있다. 깜짝 놀랐다. (웃음) 다양성 주간에 박기용 영진위 위원장님이 “다양성과 포용성은 영진위의 핵심 정책”이라고 인사말도 해주셨잖나. 이후 9인 위원회(상임위원장과 비상임위원장 8인으로 구성된 심의, 의결기구)에서도 이런 얘기가 나왔다. 영진위도 장애인 관람 환경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그보다 지원이 더 확대돼야 한다는 거다. 즉 장애인을 단순히 영화를 향유하는 관객으로만 볼 게 아니라 이들도 창작자로 나설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다양성 주간에서 든든이 주장한 얘기잖나! 다양성 주간은 영화산업 내 담
[대담]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 5주년, "여성뿐 아니라 더 많은 소수자에 대한 관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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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간 든든의 운영위원이 새로 합류했고, 4기를 맞은 예방교육 강사양성과정을 통해 강사를 새로 위촉했다. 연을 맺은 시기는 각각 다르지만, 든든 활동에 대한 소회를 들려달라.
심재명 임순례 감독과 공동센터장으로 시작했는데 벌써 5년째 센터장을 맡고 있다. 오랫동안 현장에 있던 여성 영화인으로서 젊은 영화인들에게 경험과 노하우를 나누면서 일하고 있다. 여성영화인모임의 대표가 바뀌면서 젊은 피가 수혈됐고 든든의 운영위원 역시 세대적으로 확장한 것도 의미 있는 변화다.
조혜영 든든 5주년은 미투 운동 5주년이라고도 이야기할 수 있다. 당시 영진위나 문화체육관광부가 미투 운동에 의지가 있었다 하더라도 든든은 영화인이 자발적이고 실천적으로 만든 조직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 여성영화인모임과 감독조합 등 현장 영화인들이 단단하게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든든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 운영위원으로 합류한 지 3년차로 든든과 함께 담론을 만들고 정책을 고민해나가고 있다. 이전에도 미투 운동과
[대담]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 5주년, "우리나라 대기업도 든든의 교육을 이용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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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1일 개소한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이하 든든)이 개소 5주년을 맞이했다. 든든은 2016년 문화예술계 내 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을 계기로 사단법인 여성영화인모임과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합심해 신설됐다. 든든은 5년간 영화계 성희롱·성폭력 피해자 지원에 앞장섰고 지난해에는 다양성과 포용성을 화두로 한 ‘2022 한국영화 다양성 주간’을 개최하여 영화계 내 의미 있는 담론을 확장하기도 했다. 영화인들의 든든한 동료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힘써온 든든에 <씨네21>이 대화를 청했다. 센터장을 맡고 있는 심재명 명필름 대표, 여성영화인모임 대표인 김선아 운영위원, 영화평론가인 조혜영 운영위원, 촬영 스탭이자 예방교육을 진행하는 박예솜 강사, <69세>를 연출한 임선애 감독이 한자리에 모여 든든 5주년의 성과와 의미를 되짚어보았다.
대담 참여자 소개
| 심재명 | 명필름 대표
| 김선아 | 여성영화인모임 대표
| 조혜영 |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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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 개소 5주년 기념 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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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민수 PD, <풀하우스> <그들이 사는 세상> 연출
드라마 <풀하우스>로 만났을 때 놀랐다. 그렇게 연기를 잘할 줄 몰랐다. 원로 배우들과 연기 이야기를 하면 “코미디 연기가 제일 어렵다”는 말씀을 많이 하신다. 정극 같은 경우 부모님이 돌아가셨다고 하면 눈물이 나는 게 당연하지만, 사람마다 취향도 웃는 포인트도 다르다 보니 코미디 연기는 대중을 설득하기가 굉장히 어렵다. 감정을 강요하더라도 어느 정도 너그럽게 이해하는 정극보다 시청자의 태도도 더욱 단호하다. 더군다나 미술이나 촬영으로 만들기도 어렵고 무조건 배우 본인이 해줘야 하는 측면이 있다. <풀하우스> 초반부터 송혜교씨는 전반적인 코미디 수위를 맞추는 역할을 해줬다. 자칫 보는 사람에게 웃음을 강요하는 것처럼 비치지 않게 자연스럽게 연기하며 극을 이끌었다.
덕분에 초반부터 이 드라마가 어떤 질감과 호흡을 갖고 있는지 정리가 됐고, 2~3회 이후 상대 남자배우도 코미디 연기를
[기획] 함께 작업했던 동료들이 말하는 ‘배우 송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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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TV에서 보았던 송혜교의 모습 가운데 유독 잔상이 남는 이미지들이 있다. 가장 보편적으로 기억할 <순풍산부인과>의 오혜교, 핑클 멤버들과의 친분, 여배우들의 외모를 분석하던 어떤 방송에서 그의 얼굴형과 이목구비 위치가 완벽한 황금 비율을 자랑한다며 최고의 미녀 1위로 꼽았던 풍경, 그리고 <이홍렬쇼> ‘쿠킹 토크 참참참’에 출연했을 때다. 사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몰랐는데 “바이킹은 줄을 서서 기다려서라도 무조건 맨 뒷좌석에 타야 한다”, “올라갔다 내려올 때 그냥 앉아 있지 말고 엉덩이를 한번 들어줘야 더 스릴 있다”고 당차게 말하는 모습이 너무 공감 가 집에서 박수까지 치면서 봤다. 과학적(?)으로 따져도 한국에서 가장 예쁘다는 배우가 의외로 소탈한 매력이 있었다니!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스무살 송혜교는 <가을동화>의 주연으로 발탁됐고, 출연작이 연달아 성공한 후 <올인> 같은 대작에 꼭 필요한 배우로 성장했다. TV는
[기획] 송혜교 배우론: 멜로드라마의 마스터, 높이 도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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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한 목소리에 자분자분한 발걸음. <더 글로리>의 스튜어디스 혜정이와 전혀 다른 분위기의 차주영은 배우란 참 신기한 직업이라는 걸 새삼 깨닫게 했다. 어디 있다가 이제 나타났나 싶지만 사실 그는 2016년 드라마 <치즈인더트랩>으로 데뷔해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 <키마이라> <어게인 마이 라이프> 등 10편 이상의 작품에 출연한 알토란 같은 배우다. 차기작인 KBS2 50부작 드라마 <진짜가 나타났다!>를 한창 촬영 중인 차주영은 “자기 능력을 테스트”하며 그다음 영광을 기다리고 있다.
- 캐릭터 조형은 어디서부터 시작했나.
= 레퍼런스를 찾고자 노력했다. 그런데 실패했다.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촬영 직전까지도 혜정은 내게 너무 모호한 인물이어서 혼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머릿속이 너무 복잡해지니까 오히려 단순하게 접근하자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더라. 대사 다 외웠고, 나는 매일 혜정 생각뿐이고, 감독님
[인터뷰] ‘더 글로리’ 차주영, “매일 혜정이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