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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분히 실험적인 작품부터 웃음을 머금게 하는 따뜻한 우화까지 총 19편의 작품을 선보이는 한국단편영화 프로그램은 작지만 알찬 영화들로관객의 배를 든든하게 채운다. 뉴스프로그램이라는 형식을 도입한 <뉴스데스크>는김필호라는 탈옥수가 인질극을 벌이고 있다는 사건뉴스에서 시작하여 불곰을 닮은 개의 출현, 청소년의 편의점 습격사건, 오늘의 날씨까지 이어지는개개의 뉴스거리가 사실 서로 연결된 하나의 큰 이야기였음을 보여준다. 그 이야기를 쫓다보면 한 가족의 비극적인 종말을 목격하게 된다. 햇빛쏟아지는 종로거리, <오후>의 카메라는 한 여자를 따른다. 사진사인이 여자에게 다가서는 한 청년은 자신이 누군지 알아보겠냐고 묻는다. 여자는 그 청년이 5년 전 자신이 찍어 출품한 사진 ‘얼굴에 상처 있는아이’의 모델이었음을 깨닫는다. 인간적으로 문을 열었던 소년과 그를 피사체로만 생각했던 사진사의 만남은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삼류 마술사와아빠를 너무나 사랑하는 아들의 이야기 <
전주영화제 - 한국단편영화와 한국영화 회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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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녀에 대해 알고 있는 두세 가지 것들 Deuxou Trois Choses Que Je Sais d'Elle장 뤽 고다르| 프랑스| 1966| 90분영화가 시작되면 고다르의 지극히 낮은 목소리는 브레히트를 인용하는 배우 마리나 블라디|그녀가 연기하는 캐릭터 줄리에트 장송을소개한다. 영화는 그녀와 함께 시작해 주로 그녀를 따라간다. 하지만 그녀 줄리에트가 이 영화가 지칭하는 유일한 ‘그녀’는 아니다. 은밀히 속삭이는듯 까다로운 사색의 편린들을 토해내는 고다르는 그녀의 발걸음 사이사이에다가 현대사회에 대한 다양한 소묘들을 끼워넣었다. 그렇게 해서 고다르는‘그녀’란 다름 아닌 변모해 가는 파리임을, 잔혹한 자본주의임을, 아둔한 소비주의임을, 결코 멀지만은 않은 베트남임을, 인식론적 패러다임으로서의구조주의 등등임을 알려준다. 그 모든 것에 대한 성찰의 영화인 <내가 그녀에 대해 알고 있는 두세 가지 것들>은 정치에 본격적으로경도되기 전 시기의 고다르 영화들 가운데 가장 지적
전주영화제 - post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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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이 물러가고, 어둠이 지배하는 시간이 오면, 스멀스멀 기어온 영화들이 귓가에 속삭인다. ‘잠들지 마라….’ 심야영화의 매력은 바로이것. 남미풍 공포와 저항의 음유시인 밥 딜런, 그리고 프랑스 애니메이션까지 대륙과 장르를 초월한 영화들이 ‘황혼에서 새벽까지’ 전주의잠 못 드는 밤을 책임진다.첫 쨋 날 , 영 화 의 꼬 뮌 <꼬뮌>(La Commune 피터 왓킨스, 프랑스, 1999년,345분) 한편으로 꼬박 하룻밤이 채워진다. 1871년 마르크스주의의 세례를 받은 파리 코뮌은 어땠을까? 상상으로만 그려내던 당시 민중의상황이 스크린에 재현된다. 피터 왓킨스 감독은 역사 다큐멘터리 형식을 빌리고, 아마추어 배우들에게 그 시대 의상을 입혀 카메라 앞에 세워그들의 증언을 듣는다. 기아와 내전이 촉발시킨 민중 혁명이 세운 공산정부인 코뮌은 몇주 유지되지 못하고 진압 당했다. 정부는 강제로 코뮌을굴복시켰고, 수많은 민중이 처형됐다. 왓킨스는 인터뷰어의 입을 통해 당신 민중의 생활
전주영화제 - 미드나잇 스페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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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는 지겹다”는 편견에 사로잡힌 이들에게 다큐메이션은 일종의 ‘항생제’다. 다큐메이션은 말 그대로 다큐멘터리와 애니메이션의 만남. ‘오늘의 다큐멘터리’나 ‘비디오 액티비즘의 현장’에 곧바로 뛰어들기 두렵다면, 7편의 다큐메이션 작품들부터 먼저 챙겨보는 것도 좋을 일이다.가장 먼저 눈길을 잡아채는 작품은 중국 출신의 애니메이터 왕쉬보가 만든 <천안문 광장의 태양>. <나무를 심는 사람>으로 잘 알려진 프레데릭 벡에게서 사사받은 그는 다큐와 애니메이션 기법을 단순히 뒤섞는 방식을 뛰어넘는다. 담담한 내레이션과 정적인 자료사진 등이 19살에 중국공산당원이었던 감독이 애니메이터로 변신하기까지의 개인사와 문화혁명부터 천안문사태까지 중국 현대사를 나란히 ‘제시’하는 것이라면, 상징적이고 비판적인 애니메이션 장면들은 이에 대한 일종의 ‘논평’이다. 애니메이션으로 처리한 장면들이 생생한 인터뷰보다 더 강렬한 증언으로 남는다는 점에서 감독의 재능을 엿볼 수 있다.북유럽
전주영화제 - 다큐메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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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에는 다큐멘터리가 없다.” 지난해 이맘때 전주를 찾았지만 비슷한 푸념을 던졌던 이들에게 올해 첫선을 보이는 ‘다큐멘터리 비엔날레’는배로 반가울 터이다. 다큐멘터리의 새로운 형식을 발굴하는 ‘오늘의 다큐멘터리’, <상계동 올림픽> 이후 한국의 독립다큐멘터리가일궈낸 성과들을 확인하는 ‘한국 독립 다큐멘터리 15년’, 대안 미디어에 민중의 목소리를 담아낸 ‘비디오 액티비즘의 최전선’, 애니메이션과다큐멘터리의 행복한 조우를 예감케 하는 ‘다큐메이션’ 등 총 4개 섹션에 펼쳐진 44편이 전주에서 관객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시 련 다 음 은 희 망, 그 대 꺾 이 지 말 라이중 메인 섹션이라 할 ‘오늘의 다큐멘터리’를 여는 작품은 라 요한슨 감독의 <죽음과 희망의 계절>.90년대 말 세르비아계와 알바니아계의 대립으로 화염에 휩싸였던 코소보를 다룬 이 작품은 “우리 집을 그들이 어떻게 한 거죠”라는 한 알바니아계아이의 질문에 답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학교가 불타버
전주영화제 - 다큐멘터리 비엔날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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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와 오가와 신스케, 올 전주영화제가 특별히 ‘회고’하는 이 두명의 거장 감독들은 일견 서로 맞물리는 지점이라곤 전혀없는 듯 보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 그렇지만은 않다. 일단 이 둘은 패전의 악몽을 떨치며 놀랍게도 눈부신 ‘경제 기적’을 이룬 국가, 그사회의 이면을 들여다보았다는 점에서 상통하는 데가 있다. 게다가 이들은 영화를 자신들의 삶 속에 끌어들이려 고투했고 삶을 영화와 융화하려했다는 것도 꽤 닮았다. 비록 그러기 위해 두 사람이 이용한 방법론은 상이하긴 했지만. 어쨌든 이번 전주영화제가 마련하는 ‘오마주’ 섹션은카메라가 어떻게 삶을 껴안으면서 역사와 관계하는지를 사고케 할 만한 자리가 될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파 스 빈 더 - 뉴 저 먼 시 네 마 의 심 장먼저 파스빈더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모두가 너무나 잘 알다시피 그는 뉴저먼시네마의 심장이었고 또 뉴저먼시네마 그 자체였다. 15년 활동기간 동안 40여편 이상의 영화를 토해냈다는, 아무나
전주영화제 - 오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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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거장을 회고하는 방식에는 오마주만 있는 것이 아니다. 페미니스트 감독 바버라 해머의 <헌정>은 오가와 신스케에 대한 비판적 조사의 결과다. 오가와 신스케가 이끌었던 오가와 프로덕션은 1970년대 일본 농촌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며 다큐멘터리를 만든 영화제작집단이다. <헌정>은 이 집단 내에 있던 전체주의적 요소, 남녀차별 실상, 그리고 종교적이라고까지 여겨지는 내부자들의 오가와 신스케에 대한 ‘헌신’을 풍부한 증언과 자료필름을 동원하여 꼼꼼히 밝혀낸다. 야마가타영화제 참석기간 중 오가와 프로덕션이 머물렀던 마을을 방문한 바버라 해머는 호기심에서 이 작품을 시작했다고 한다. 로자 폰 프라운하임의 <내겐 오직 파스빈더뿐>은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에 대한 흥미로운 기록이다. 이름 헤르만, 한나 시굴라, 잉그리드 카벤 등 파스빈더의 영화에 출연했던 여자배우들이 한명씩 나와 파스빈더에 대한 기억과 그들이 파스빈더와 가졌던 사적인 관계들에 대해 깊이있는 증
전주영화제 - 회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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깁스 GIPS감독 아키히코 시오타| 일본| 2000년| 83분| 베타캠카츠코와 타마키, 스물두살 두 여자는 깁스 때문에 묘한 인연을 맺는다. 재미있는 일이 생길 것 같다며 다리에 가짜 깁스를하고 다니는 타마키는 육교 위에서 만난 카츠코에게 아무런 설명없이 집 열쇠를 건넨다. 타마키의 열쇠는 카츠코의 일상의 빗장을 열고, 그녀는비로소 파트타임으로 컴퓨터 속기 일을 하는 받아쓰기 같은 삶으로부터 일탈한다. 아픈 척하는, 혹은 보이지 않는 병을 보이게 하는 장치로서의가짜 깁스. 보이지 않는 외로움이 드러날 때 맺어지는 아련한 사람 사이를 매우 간결한 드라마에 담아 강렬하게 그려낸 작품이다.젠더너츠 Gendernauts감독 모니카 트로이트| 독일| 1999년| 87분| 35mm암컷이 수컷의 형질을 지닌 하이에나에 관한 언급이 인트로를 대신하는 이 작품은, 샌프란시스코 아레아만의 트랜스젠더 예술가들에 대한 다큐멘터리다.샌프란시스코에 있을 때만이 “내가 내 자신”이라고 말하는 이들은 마치 새의
전주영화제 - N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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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괴물”. 일본 평단이 구로사와 기요시에게 붙인 이러한 별명은 그의 이력을 설명하기에 적절하다. 1983년 <간다천음란전쟁>이라는로망포르노물로 데뷔한 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은 전투적인 영화창작을 계속했다. 초기작인 <도레미파 소녀의 피가 끓는다>는 명백하게 장 뤽 고다르 감독의 영화에 바치는 헌사였으며 이후 <지옥의 경비원> 등에선 할리우드 장르영화의 관습을 ‘해체’하고 소멸시키는 과감함을 보였다. 그리고 1990년대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대표작이라고 할 만한 <큐어>는 옴진리교 사건의 충격파에 일본영화계가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지를 보여준 작품이자 공포 스릴러물의 걸작이라고 평할 만하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은 언제나 비판적인 태도로 기존 장르에 접근하는 감독이자 중단없이 카메라를 돌리는 영화괴물이다. 이번 구로사와 기요시 특별전에선 모두 네편이 상영된다. <지옥의 경비원>(1992년, 97분)은 구로사와 영화
전주영화제 - 구로사와 기요시 특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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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지예 Roji-E감독 아오야마 신지| 일본| 2000년| 64분1992년 소설가 나카가미 겐지의 죽음은 일본 열도를 추모열기로 메웠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의 죽음을 “일본문학에 있어가장 안타까운 일”이라고 애도했고, 평론가 가라타니 고진은 “나카가미와 더불어 일본근대문학은 끝났다”고 탄식했다. <로지예>는 나카가미가죽은 지 7년 뒤, 잃어버린 장소를 찾는 한 영화감독의 여정 속에서 이 소설가가 기억으로 살아나는 모습을 그린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조감독을지냈으며 <유레카>로 지난해 칸영화제에 경쟁부문에 초청된 아오야마 신지는 한 시간 남짓의 <로지예>에서 젊은 ‘거장’다운면모를 보인다. <로지예>는 한편의 다큐멘터리처럼 주인공인 영화감독의 내레이션에 실어 일본의 한적한 시골 풍경을 스케치한다. 우리는마치 그 감독의 시선인 듯 카메라를 따라가게 되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사실 그것은 죽은 이의 시선, 즉 나카야마 겐지에 관한 ‘기억’을
전주영화제 - 아시아 인디영화 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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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키키 브라더스>감독 임순례 한국| 2001년| 105분<세 친구>의 임순례 감독이 5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으로, 전주국제영화제의 개막작. <와이키키 브라더스>는나이트클럽에서 연주하는 밴드의 여정을 따라가는 음악영화다.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리드 싱어 성우, 드러머 강수, 오르간 주자 정석, 색소폰주자 현구 4명으로 구성된 밴드. 불경기로 유흥업소에도 불황이 닥치자 칠순 잔치 등 출장밴드로 전전하다가 성우의 고향 부근인 수안보에 일자리를얻는다. 하지만 30대 중반에 별 볼일없는 모습으로 귀향한 성우의 마음은 편치 않다. 약사, 공무원, 환경운동가로 변신한 고교 동창들을 만나보지만제각각 삶에 찌든 이들에게는 소통의 여지가 별로 없다. 그나마 첫사랑 인희와의 재회가 미묘한 위안을 안겨준다. 멤버간의 불화, 건강 악화 등으로밴드마저 몇번씩 와해의 위기를 거치지만, 그래도 삶은 계속되고, 음악도 계속된다. 미래에 대한 별 희망없이 밤을 지샌 ‘세 친구’
전주영화제 - 시네마스케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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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회 전주국제영화제 4월27일 <와이키키 브라더스>로 개막올해도 전주의 봄은 색색의 영화와 함께 무르익는다. 오는 4월27일부터 5월3일까지 세계 30여개국에서 180여편의 영화가모여드는 두 번째 영화잔치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7일 밤낮에 걸친 ‘전주국제영화제 2001’의 영화 탐사는, 임순례 감독의 신작 <와이키키브라더스>를 출발지 삼아 아시아 독립영화의 가능성을 찾아가는 경쟁부문 아시아 인디영화 포럼의 수상작에 이르기까지 계속된다.지난해 봄 대안영화와 디지털영화, 아시아 독립영화의 현재와 가능성을 기치로 내걸고 닻을 올린 전주국제영화제는 2회를 맞아 ‘급진영화’라는하나의 화두를 더했다. 영화의 현재를 끊임없이 반문하며 나아가는 최전선의 영화들을, 올해 특별히 마련된 ‘포스트 68’ 프로그램에서 만날수 있다.1968년 프랑스와 세계 각지를 달군 68혁명의 급진성이 영화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를 되짚어보기 위해 장 뤽 고다르의 <중국 여인>과
제2회 전주국제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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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도, 예술도, 기존의 정형화된 삶에서 벗어나는, 어쩌면 ‘미쳤어’라고 할 수도있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사유하고 제안한다. 광기라고 불리는 것이 이성의 빛에 의해 그늘진 달의 뒷면을 뜻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반대로 광기를통해서 그 그늘을, 지금의 이성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지 않을까?이진경 | 사회학자·<철학과 굴뚝청소부>김부용 옮김/ 인간사랑 펴냄/ 7500원감옥과 정신병원, 어디가 더 나은, 아니 덜 나쁜 곳일까? 감옥은 가두어두고 처벌하는 ‘기계’라면, 정신병원은 ‘병원’인 만큼 치료하는 기계니,후자가 더 나을 것이란 생각을 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럽다. 그래서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의 맥 머피나, <시계태엽장치오렌지>의 알렉스는 정신병원을 선택하는 세간의 ‘지혜’에 따른다. 결과는? 머피는 죽음에 잇닿은 중환자가 되고, 알렉스는 훌륭한 치료덕에모든 반항기와 폭력성을 거세당한 채 ‘퇴원’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학대받다 불구가 되
미셸 푸코의 <광기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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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과연 누가 인간 생명의 미래를 결정할 것인지를 깨닫게 해준다.흔히 짐작하듯이 생식유전학을 끌고 나가는 것은 괴짜 과학자의 무모한 시도나 기술의 자체 논리가 아니다. 이 책은 오히려 자본의 힘과 자녀에대한 사랑이라고 말한다. 그 결과는 디스토피아일 수도 유토피아일 수도 있다.조홍섭 | 한겨레신문 환경전문기자하영미·이동희 옮김/ 한승 펴냄/ 1만원지난 97년 첫 체세포 복제동물 ‘돌리’가 탄생했을 때 주간지의 표지를 떼지어 돌아다니는 히틀러가 장식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 마돈나, 마이클조던 같은 이름이 새로운 복제목록에 오르면서 공포는 묘한 호기심으로 바뀌었다. 신기술은 종종 공포와 함께 다가온다. 그러다가 두려움이 사그라든자리엔 맹목적인 낙관이 들어서곤 했다. 처음 자동차가 발명됐을 때 사람들이 가장 걱정했던 것은, 너무 빠른(시속 20km 정도였지만) 속도가건강을 해칠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원자력발전소가 처음 나왔을 땐 전깃값이 너무 싸져 계량기가 불필요해질 것이라고 속
리 실버의 <리메이킹 에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