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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대 단역배우와 초로의 영사기사에게 들은 영화 옆의 삶, 영화 뒤의 흔적들영화라는 매체가 태어난 이래, 그리고 앞으로도 변함없이 최고의 순간은 여전히, 단독자로서의 관객과 스크린에투사되는 이미지와의 은밀한 만남일 것이다. 이 짧은 만남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생을 소비한다. 그중의 몇몇은, 아니 너무 극소수만이,스타로 거장으로 혹은 장인으로 역사에 이름을 새긴다. 그리고 대다수는 기억되지 못한 채 육신의 생을 마감한다.여기 두 노인이 있다. 아마도 100년 뒤의 한국영화는 이들의 이름을 기억해내지 못할 것이다. 변하지 않는 사실 하나는, 그들 앞에 섰던많은 사람들처럼, 그들의 생도 온통 영화로 채워져 있다는 것이다. 한 사람은 스크린 위에 잠시 머물다 사라지는 단역으로, 다른 한 사람은먼지 입자까지 눈에 박혀오는 좁은 영사실에서 평생을 살았다. 무례가 아니라면, 이들도 시네마 천국의 아이들이다. 말하지 못한 상처와 아픈회한이 왜 없으랴마는, 이들은 영화와의 생활을 행복했다고
시네마천국의 황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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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8일 한국영화계에 작은 ‘기록’ 하나가 수립됐다. 구스닥이라는 인터넷 업체가 네티즌을 대상으로 실시한 <엽기적인 그녀>의 1억원짜리투자 공모가 6시간40분 만에 마감된 것. <엽기적인…>은 이틀만에 1억원을 모은 <리베라 메>의 ‘기록’을 갱신했지만, 심마니 엔터펀드가실시하는 12일의 <친구> 투자 공모에 9일 현재 공모액 1억원 중 이미 6천만원이 대기 중이어서 그 영광을 오래 누리지는 못할 전망이다.네티즌들의 돈을 모아 영화에 투자하는 네티즌 펀드가 최근 들어 폭발적인 관심을 모으고 있다. 1999년 11월 인츠닷컴이 <반칙왕>에 대해1억원을 공모한 것으로 시작된 네티즌 펀드는 엔터펀드, 엔터스닥(옛 무비스탁), 구스닥, 한스글로벌, 문화거래소 등이 속속 참여하며 점차그 폭을 넓혀가고 있다. 특히 <반칙왕> <공동경비구역 JSA> <자카르타> 등이 높은 수익률을 올려 투자자에게 고액을
충무로에 부는 네티즌 펀드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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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티즌 펀드의 선발주자로서 최근의 열기를 어떻게 보나.한마디로 과열됐다고 본다. 도저히 될 것 같지 않은 영화들에 대해서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 이는 네티즌에게 피해를 입히는 행위에 불과하다.네티즌 펀드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오프라인에서 진행하는 마케팅도 중요하지만 인터넷 환경이 급속하게 발전하면서 온라인 마케팅이 갈수록 중요한 것으로 떠올랐다. 네티즌 펀드투자자들은 한마디로 걸어다니는 홍보맨이다. 얼마 안 되는 돈이지만 수익을 올리기 위해서는 인터넷 공간에서 열성적으로 영화의 장점을 알리려고노력한다. 우리는 네티즌 펀드의 주요한 기능이 투자자에게 수익을 가져다주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영화에 대한 관심을불러일으키고, 투자자들이 영화에 좀더 가까워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 우리는 투자자로부터 어떠한 수수료도 받지 않는다.결국 투자자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투자이익 아닌가.물론이다. 하지만 우리는 거액을 투자해 엄청난 이익을 노리는 투자자를 원치
김정영 인츠닷컴 영상사업부장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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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주·조선희·최보은·안판석 - 세 아줌마와 한 아저씨, <아줌마>를 논하다과거지사. 최보은씨는 축시(丑時) 즈음 술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민가를 찾아 떠나는 일을 종종 벌였는데, 어느 날 일산 정성주 작가의 집도레이더망에 걸려들었다. 새벽녘 일어나서 글을 쓴다는 작가와 잠을 거르고 달려온 옛 <씨네21> 기자 최씨는 저번에 보고 두 번째네요, 라고믿기지 않는 말을 나누고는, 정담으로 아침해를 맞았다. 야간 의기투합 얼마 뒤, 단지 밤잠없다는 이유로 끌려갔던 구 기자는 정성주 작가의집을 다시 찾는다. 정성주 작가는 <추억>이라는 드라마를 집필하고 있었고, 명목은 작가 인터뷰였다. 인터뷰 기사를 작성해 넘겼는데 어중이떠중이구 기자가 쓸 리 없는 아름다운 글이 되어 나왔다. 거기에는 비밀이 있었으니, 당시 데스크이자 당대의 명문장가 조선희씨가 보기 드물게 감동받은드라마 <추억>에 ‘의욕’을 보인 결과였다. <씨네21> 새로운 영
아줌마들의 저녁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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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렉>의 주요 시퀀스 시사를 마친 2월15일 늦은 오후, 소강의실 크기쯤 되는 PDI 스튜디오 영상실에서는 투어의 마지막 순서로 제프리카첸버그와의 인터뷰가 진행됐다. “교실도 아니고, 형식적일 필요가 없지 않냐”고 입을 연 카첸버그는, 10명 좀 넘는 취재진에게 “난 물지도않고, 오늘 샤워도 했으니 가까이 와도 된다”며 편하게 둘러앉자고 장난스레 말을 건넸다. 카첸버그는 <인어공주>에서 <라이온킹>까지, 쇠락했던디즈니의 장편애니메이션에 활기를 불어넣으며 애니메이션 왕국 디즈니의 새 중흥기를 이끈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파라마운트영화사의 중역으로재직중이던 84년 월트 디즈니의 사장으로 스카우트된 뒤, <귀여운 여인>(프리티 우먼) 등 실사영화와 89년 <인어공주>를 필두로 한 일련의애니메이션 흥행작들을 제작했다. 94년 마이클 아이스너 회장과의 불화로 디즈니를 떠나기 전까지, <알라딘> <라이온킹> 등으로
“디즈니는 디즈니, 우리는 우리만의 길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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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DI 스튜디오에서 만난 드림웍스 신작 애니메이션 <쉬렉>지난 2월15일 미국 샌 호세의 PDI 스튜디오에서 드림웍스의 신작 애니메이션 <쉬렉>(Shrek)이 일부 공개됐다. 반도체, 컴퓨터 등첨단산업 관련업체가 모여있는 실리콘 밸리 부근 PDI스튜디오에서 5년에 걸쳐 제작된 <쉬렉>은 <개미><이집트 왕자><엘 도라도>, 그리고아드만 스튜디오의 완제품이지만 드림웍스가 공동제작한 <치킨 런>에 이어 다섯 번째로 선보이는 드림웍스표 애니메이션. 드림웍스와 영화, CF등에서 컴퓨터그래픽 특수효과 회사로 명성을 쌓아오다가 <개미>로 애니메이션 제작에 나선 PDI가 두 번째로 의기투합해 만든 100% 3D컴퓨터그래픽 애니메이션이다. 현재 90% 이상 제작이 진행된 <쉬렉>의 완성을 앞두고, 드림웍스와 PDI는 세계 각국의 기자들을 모아 제작과정및 작품 일부를 공개하는 투어를 가졌다. 프랑스,
드림웍스 6년, 미리보는 <쉬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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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를 만들 무렵을 지금 돌아본다면. 매우 행운이었다. 요즘은 데뷔작 만들기가 더 쉬울지 모르지만 그것을 배급하고 상영하기는 더 어렵다. 인디영화에서 지금 상황은 스튜디오 영화찍기와 다르지 않게 살벌하다. 나는 타이밍이나 산업적 환경에서 매우 운이 좋았다. 오늘날 시장이라면 <섹스, 거짓말…>은 그런 반향을 일으키지못했을 것이다.작품 세계의 일관된 테마가 있다면.탐욕, 욕망이다. 나는 그것을 자주 경험하긴 하지만 이해하지는 못한다. 미국사회에는, 특히 영화계에는 자기 사전에 ‘충분한’이라는 단어가아예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충분하다는 것 무엇인가? 탐욕이란 무엇인가? 내 시간을 어디 쓸 것인가? 이것은 내게 중요한 물음들이다.감독으로서 언론 앞에 잘 나서지 않고 낮은 자세를 유지하고 있는데.나는 일찍이 영화에 직결되지 않는 대언론 노출은 피하기로 결심했다. 사람들은 조지와 제니퍼 때문에 <조지 클루니의 표적>을
스티븐 소더버그에 관해 알고 싶은 7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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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Sex, Lies, and Videotape)
1991년 <카프카>(Kafka)
1993년 <리틀 킹>(King of the Hill)
1995년 <언더니쓰>(Underneath)
1996년 <그레이스 아나토미>(Gray’s Anatomy)
1996년 <스키조폴리스>(Schizopolis)
1998년 <조지 클루니의 표적>(Out of Sight)
1999년 <라이미>(Limey)
2000년 <에린 브로코비치>(Erin Brockovich) <트래픽>(Traffic)
2001년 <오션스 일레븐>(Ocean’s Eleven)
스티븐 소더버그 필모그래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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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에서 <트래픽>까지, 스티븐 소더버그의 작품세계“그 녀석은 칸의 자식이 아니죠. 우리 아이라구요.” 이런 얘길 하고 싶었던 것일까. 뉴욕비평가협회, LA비평가협회, 전미비평가협회가일제히 <트래픽>에 감독상을 바치며 원더 키드 스티븐 소더버그의 귀환을 환영했다. 오스카도 그를 향해 미소짓는다. 2000년 나란히 선보인<에린 브로코비치>와 <트래픽> 2편이 동시에 올해 아카데미 감독상 후보에 올랐다. 눈부신 성공이지만 소더버그에겐 처음 있는 일도 아니다.빔 벤더스가 심사위원장을 맡은 1989년 칸영화제는 미국에서 온 26살의 영화신동에게 황금종려가지를 던졌다. 그는 칸 역사상 최연소 챔피언이었다.“이제 내리막만 남았어요.” 소더버그는 그렇게 말했고, 현실은 그의 예언대로 흘러갔다. 칸 그랑프리 수상경력이 그의 명함에 새긴 ‘인디영화의마스코트’라는 금박글씨는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에서 가장 운좋
스티븐 소더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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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많이 다닌 친구와의 대화는 즐겁다. 그가 돌아온 길이 길고 다채로울수록 더욱. 이 땅의 영화 마니아 1세대들이 ‘색다른’ 영화에목말랐던 시절, <도시의 앨리스> <베를린 천사의 시>처럼 세련된 그림에 존재의 망설임을 담은 영화로 화답해왔던 벤더스는 쉰여섯이 된 신세기벽두에 카메라 뒤에 철저히 자신을 감춘 음악 다큐멘터리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으로 서울의 극장가로 돌아왔다. 정식 개봉된 영화는 몇편없지만 왠지 언제나 곁에 있었던 것만 같은 기묘한 감독 빔 벤더스. 그에게 이 메일을 띄우면서 우리는 마치 펜팔에게 보내는 편지를 우체통에넣는 듯한 감정을 느꼈다. 한국 관객과의 친밀한 대화를 보물로 간직하고 있다는 ‘독일인 친구’에게서 날아온 답장을 공개한다.우리는 언제나 당신에게 이 질문을 하고 싶었습니다. 지구상의 도시 가운데 당신이 진정 살고 싶은 곳은 어디죠.솔직히 말하면, 오랫동안 가지 못한 모든 도시죠. 나는 베를린, 파리, 샌프란시스코
“파리로, 뉴욕으로, 나는 영원한 유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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빔 벤더스는 나에게 ‘영화 체험의 감성적 동반자’로서 먼저 떠오른다. 이것은 문화적으로 황폐한 시기였던 70년대에 외국 문화원 시사실에서영화를 보며 성장한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공통되는 감정일 것으로 생각한다. 록음악으로 대표되는 미국문화에 대한 양가적 감정, 16mm 카메라를통한 개인영화의 가능성, 사회학적 텍스트로서의 영화의 의미 등을 당시에 어렴풋이 깨우쳐가기 시작했는데 늘 그 중심에 있던 인물이 벤더스가아니었나 한다. 지금은 퍽 소박하게 들리는 이슈들이지만, 비디오의 존재를 몰랐고 서점에서 영화서적이라곤 두세권밖에 볼 수 없었던 당시로서는대단한 문제들이었다. 물론 이 모든 이슈들은 뒤에 고다르의 영화들을 공부하면서 더 깊이 인식하게 되었다. 그러나 연구서를 읽으면서 거리를두고 사고하기 이전에, 함께 체험하고 성장한다는 어떤 동료의식을 가질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그를 ‘감성적 동반자’로 부르고 싶은 것이다.더욱이 벤더스는 그 당시 내가 알던 외국감독 가운데 이 땅을 찾아온, 그래
황무지에 핀 감성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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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비 뮐러짐 자무시, 빔 벤더스, 라스 폰 트리에 감독과 팀을 이루어온 명촬영감독. 별다른 액세서리가 붙지 않은 기본 장비를 선호하면서도 영화마다전혀 다른 그림을 뽑아내는 재능으로 유명하다. <고스트 독> <데드 맨> <브레이킹 더 웨이브> <댄서 인 더 다크> <탱고 레슨> 등이그의 작품이다. 예산 부족으로 공항 가는 택시와 베를린행 비행기 안에서도 내내 촬영을 했던 첫 장편영화 <도시의 여름>부터 벤더스의 카메라를잡고 전신주, 철로, 거리를 찍어온 로비 뮐러는 <페널티킥을 맞이하는 골키퍼의 불안> <도시의 앨리스> <길의 왕> <미국인 친구> <파리,텍사스> <구름 저편에> 등 독창적인 시각적 스타일의 영화들을 통해 파트너십을, 벤더스와 그의 이름을 불가분의 짝으로 묶었다. “아마 내가그의 꿈을 (이미지로) 잘 번역하고 트래블링 숏을 잘 찍기 때문에
벤더스의 동행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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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 <무대>(Schauplatze)1968 <클라펜필름>(Klappenfilm)1969 <실버 시티>(Silver City) <앨라배마:2000 광년>(Alabama:2000 Light Years)1970 <도시의 여름>(Summer in the City)1971 <페널티킥을 맞은 골키퍼의 불안>(Die Angst der Tormannes beim Elfmeter)1972 <주홍글씨>(Der Scharlachrote Buchstabe)1974 <도시의 알리스>(Alice in den Stadten) <잘못된 움직임>(Falsche Bewegung)1976 <시간의 흐름 속에서>(Im Lauf der Zeit)1977 <미국인 친구>(Der Amerikanische Freund)1980 <물 위의 번개>(Lightning Over Water)1982 &
빔 벤더스 주요 연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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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흐름 속에서>(1976)의 후반부에서 로베르트는 기차역 근처에서 한 어린 소년을 만난다. 그 소년은 자기 눈에 보이는 것은 무엇이건노트에 적고 있다. 철로, 하늘, 구름, 가방을 든 남자, 검은 눈, 주먹, 돌 던지기…. 영화 속에서는 아주 잠깐 등장하는 이 장면은별 의미가 없는 것 같아 보이지만 사실 꽤 중요한 측면을 보여준다. 그 소년의 사소한 행위란 바로 빔 벤더스 감독 자신이 영화를 구축하는방식, 영화에 대한 견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즉 벤더스의 영화란 마치 어린아이가 무언가 난생 처음 보는 어떤 것을 접해서 기뻐하고그것을 자기 기억 속에, 그리고 마음속에 간직하려고 애쓰는 행위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린아이의 그런 ‘순수한’ 시선을 가지려고하는 것. 벤더스가 정의한 영화의 속성이란 일차적으로 바로 그런 것이었다.영화는 움직인다, 고로 존재한다벤더스는 기본적으로 영화란 (물질) 세계를 ‘발견’하고 또 ‘탐구’하게 할 능력을 갖고 있다
빔 벤더스를 맞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