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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출생, 1951년 인민군 31사 정찰대원 소속으로 철원지구 정찰도중 유엔군에 체포, 1952년 15년형 확정, 1953년간첩죄가 추가되어 사형선고, 1954년 무기감형, 1995년 석방, 2000년 북송.’ 김선명의 삶은 이렇게 요약된다. <선택>은 이중51년에서 95년까지 김선명씨의 수감생활만을 그린다. 홍기선은 “핵심은 감옥 안을 얼마나 잘 그려내는가에 있다”고 말한다. 폐쇄된 공간에서맺는 특별한 인간관계들이 극영화로서 <선택>이 갖는 매력이다. 기본적으로 강압과 인권유린을 일삼는 사회와 그에 맞서는 사람들의 대립관계를그리지만 단순한 선악대결은 아니다. 그는 피해자나 가해자 모두 시대의 희생양이 된 현실에 주목하며 성자도, 현자도, 투철한 공산주의자도아닌 동지에 대한 의리를 지키고 강압에 저항하는 다분히 평범한 인간 김선명에 주목한다. 물리적 폭력에 좀처럼 반발하지 못하는 지식인들과달리 화가 나면 완력을 쓰는 일도 서슴지 않는 김선명은 교도소의
<선택>은 어떤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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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에서 10년, 차기작 <선택>으로 재기 꿈꾸는 홍기선 감독 벌써 10년이 되어간다. 데뷔작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를 찍은 92년에서 돌이킬 수 없이 멀어져간 시간이다. 불운일까? 영화가엔터테인먼트상품으로, 벤처산업의 유망주로 각광받게 된 그 세월 동안 홍기선 감독은 결코 두 번째 영화를 찍지 못했다. 외도를 하지도 않았다.94년 동학 100주년 기념 미니시리즈 <새야 새야 파랑새야> 각본을 쓴 일은 있지만 새 영화에 대한 아이디어가 머리를 떠난 적은 없었다.지금 그가 붙잡고 있는 시나리오는 세계 최장기수로 알려진 김선명씨의 삶을 다룬 <선택>이라는 영화다. 97년 부산국제영화제 PPP에 처음내놓은 <선택>은 지난해 영화진흥위원회 극영화제작지원작에 선정되면서 홍기선 감독을 설레게 했다. 10년 만에 얻은 기회라면 누군들 흥분하지않겠는가. 그러나 유니코리아에서 제작을 맡기로
홍기선의 7전 8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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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빌리 엘리어트>는 가난한 광부의 아들이 발레리노로 성공하는 이야기이다.성장하는 이야기이다. 이 영화에서는 남성 발레의 힘찬 아름다움을 듬뿍 감상할 수 있다. ‘발레’라는 말만 보고 자기 취향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남자들이 있을 것 같다. 그런 편견을 고집한다면 아까운 영화 한편을 놓치게 된다. 이 영화는 다른 사람들의 편견을 극복한 사람의 성공담이기도하다. 이 영화에는 비굴한 사람이 단 한명도 나오지 않는다.2. 그 탄광촌의 학부모들은 과외로 남자아이들에게는 권투를 여자아이들에게는발레를 배우게 한다. 내가 어렸을 적, 서민 가정에서 흔히 남자아이들을 태권도 도장에 여자아이들을 한국무용 학원에 보냈듯이. 빌리는 열한살,아버지와 형과 치매에 걸린 할머니와 살고 있다. 빌리의 아버지와 형은 광부이다. 현재 파업중으로 마을에서는 극렬한 시위가 끊이지 않는다.그래서 가뜩이나 넉넉지 않은 살림이 더욱 어렵다. 크리스마스에 땔감이 없어서 빌리 어머니의 유품인 낡은 피아노를 부숴 장
시인 황인숙이 빌리와 주변 사람들을 보며 떠올린 8가지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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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엘리어트>를 보고 주관적인 감상문을 써보라는 요청을받았다. 그날 나는 신이 났었다. “필(feel)이 팍 꽂히네요”라며 큰소리를 치고는 영화를 재미나게 본 뒤 컴퓨터 앞에 앉았다. (….무거운 침묵중.) 할말은 무지하게 많은데 마치 취객의 걸음걸이가 꼬이는 것처럼 머리 속과 손가락이 꼬였다. 쉬 마려운 강아지마냥 오락가락하며커피를 마시기도 하고, 아프다고 투덜거리기도 하다가, 한자리에 가만히 앉아 오래도록 창 밖을 쳐다보았다. 하늘 위에서 홀연히 생각 하나가둥실 떠올랐다. “길들여져 있었구나….” 나는 ‘비평가’로서 글을 쓰기 위해, 길들여질 만큼 오래도록 애써왔던 것이다. 그것은 영화를 보는환경, 자세, 준비물(나는 작은 수첩과 형광불빛이 나오는 볼펜을 휴대한다), 태도와 보는 각도 등을 일정한 패턴에 따라 자동으로 ‘스탠바이’시킨다.여기서 꼬리를 문 생각이 영화 <빌리 엘리어트> 속으로 흘러들어갔다.영화의 첫머리에서 LP레코드가 올려지고 난 뒤, 열한
영화평론가 김소희가 돌아본 성장기의 ‘빌리’적 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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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감독! 대설경보와 함께 보낸 겨울의 끝자락에서 안부를 묻습니다. 1년이 넘은 뉴욕 생활은 견딜 만합니까. 두 아들 녀석에게는 자주 연락하는지도 궁금하네요. 오늘이 하길종 감독 기일이기에 나도 김지하 시인이 유학생 하길종에게 보낸 ‘반역의 열광’ 같은 문구의 격문을 띄우고 싶지만, 이번엔 우리가 잊고 살았던 아버지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영국영화 <빌리 엘리어트>를 보았거든요. 마르쿠제의 “아버지가 죽었다”는 선언이라도 따르려는 걸까요. 요즘 영화에서는 아버지의 존재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습니다. <아버지의 이름으로>에서 옥에 갇힌 피트 포슬스웨이트의 강인한 표정, <인생은 아름다워>의 로베르토 베니니가 가스실로 끌려가면서 아들에게 남긴 씩씩한 걸음걸이, <아름다운 시절>에서 붉은 페인트를 뒤집어쓴 안성기가 기억에 남을 뿐입니다. 김승호 선생이 타계한 뒤 우리 영화에는 ‘한국인의 아버지’로 부를 만한 얼굴이 보이질 않는군요.
<빌리
영화평론가 박평식이 이명세 감독에게 보내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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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평식, 김소희, 황인숙이 <빌리 엘리어트>에 띄운 연서한아버지가 있었다. 광부로 평생을 살았으나 탄광촌도 그의 삶도 이제 마른 석탄조각처럼 부서져갈 것이다. 아버지의 눈을 피해 소년은 발레리나를꿈꾼다. 꿈꾸지만 번번이 가로막힌다. 태어나긴 했지만, 세상은 이들에게 불친절을 거둔 적이 없다. 희망이 있을까. <빌리 엘리어트>는 상처를쓰다듬으며 삶을 껴안는 영화다. 상처없이 삶을 포옹하는 길은 없다고 아프게 말하는 영화다. 결국 희망을 말하지만 그래서 슬픈 영화다.같은배급사의 폭탄 같은 오락영화 <한니발>의 개봉 일정이 밀린 덕에 힘겹게 극장 한켠을 지키고 있지만, <빌리 엘리어트>는 진심어린 위안이다.영화는 결국 두 시간짜리 오락일 테지만, 어떤 오락은 많은 시간이 지나도 오랜 이명을 남긴다. 유난히 눈이 많이 내린 올 겨울 끝자락에찾아와, 조용히 그러나 깊숙이 마음의 문을 두드린 이 착한 영화에, 두 평론가와 한 시인이 따뜻한 편지 세통
<빌리 엘리어트>에 바치는 세 가지 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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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1월27일, 코펜하겐의 외곽, Avedøre에서 라스 폰 트리에가 덴마크의 영화인들에게 쓴 편지는 이렇게 시작한다. ‘영화제작은늘 미스터리의 베일에 싸여 있다. 스튜디오, 아티스트 그리고 제작 환경들은 항상 외부인들의 접근을 불가능하게 하기 위한 모든 노력들을 기울여왔다.그것은 움직이는 이미지가 마술과 동일시되던 시대의 유물임이 틀림없다. 모두가 알듯이, 마술가들의 비밀은 항상 숨겨져야 한다. 그러나 사실은마술의 트릭들은 아주 고전적인 것들이다. 실질적으로는 결코 진보하지 않는 그리고 사회적 관점으로 볼 때 현저히 무의미한 것들이다….’라스는 ‘필름은 그렇지 않다’라고 다시 한번 선언했다. 영화는 너무나 중요하게도 고전적으로 불가능했던 개인의 표현형식과 광범위한 소통을다루고 있으므로 색다른 자각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영화, TV, 이미지, 사운드 등 이 모든 메시지들의 발달은 문명화의 진전과 동격인것이므로 이것들이 몇몇 선택된 이들의 손에 의해 먼지 쌓인 방에 갇혀 이
오픈 필름 타운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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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규동 감독이 만난 라스 폰 트리에, 그리고 ‘왕국’ 젠트로파 스튜디오어떤 이에게는 같은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사람이 있다. 김태용 감독과 함께 <여고괴담그 두번째 이야기>를 만든 민규동 감독에겐 라스 폰 트리에가 그런 사람이다. 지난해 6월30일부터 파리에 머무르고 있는 민 감독은 지난해연말 코펜하겐의 젠트로파 스튜디오를 방문해 그를 만나는 행운을 얻었다. 올해 1월 셋째주에는 일주일 동안 스튜디오에 머물면서 폰 트리에의차기작 <독빌> 테스트 촬영을 구경할 수도 있었다. <씨네21>은 민 감독에게 이 두번의 방문에 관한 글을 부탁했고, 민 감독은 부탁한분량의 2배가 좀 넘는, 그리고 다소 예상 밖의 글을 보내왔다. 그 글은 감독의 눈이 아니라면 발견하기 힘든 예민한 통찰이 담긴 작가론이었다.동시에 “세트 주변 아무 데서나 지퍼를 내리고 오줌을 누”는 것조차 정겨운 “진심으로 새로운 시대의 위대한 인물”에게, 새로운 영화에의긴 여정에
라스 폰 트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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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 이전에 세계 5대 도시 가운데 하나로 번성했던 베를린은 전쟁 기간에 연합군의 방침에 따라 “평지가 될 때까지 때려부수어졌다”. 몇년 뒤 베를린은 부서지다 만 채 침침한 표정으로 남아 있는 시계탑 주변에 극장을 짓고 국제영화제를 시작했다. 50년째 되는 지난해, 성수기 손님을 잃어 울상이 된 중국식당 ‘양자강’의 주인아저씨를 뒤로 남기고 영화제의 주무대는 포츠담 광장쪽으로 이전했다.통일 이전 동서독을 나누었던 경계선(어처구니없을 만큼 보잘것없는 그 하얀 선) 위로 포츠담광장 지하철역이 들어섰고 서쪽에 바로 잇대어서 웅장한 영화제 센터가 자리를 잡았다. 동쪽으로는 사무용 및 아파트 건물들이 독일 특유의 육중하고 질서정연한 느낌으로 속속 건축되고 있는 중이다. 영화제 센터 한가운데의 자그마한 공간을 마를레네 디트리히 광장이라고 이름붙였으니, 정치와 영화의 결합이라는 메타포는 통일 이후 베를리날레의 공간에도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셈이다.메인 상영관을 등지고 서면 고급 호텔과 쇼핑몰
`칸` 부럽지 않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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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작 이랬어야 했는데!”밸런타인 데이 해질녘에 멀티플렉스 극장 씨네맥스에서 비경쟁 특별상영된 쿠스투리차의 세미 다큐멘터리 <슈퍼 8 스토리>를 보는 동안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그와 비슷한 것이었다. 1986년 쿠스투리차가 기타리스트로 합류한 밴드 ‘노 스모킹’ 의 공연 실황과 감독의 홈비디오 그리고 무대 뒤의 사연들을 흥겹게 엮은 이 영화는 언제나 한판의 굿, 한바탕 퍼포먼스 같았던 쿠스투리차 영화의 ‘정령’처럼 보였다. 1980년대 초 결성된 ‘노 스모킹’은 보통의 록밴드 편성에 세르비아 트럼펫, 집시 음악 등 모든 발칸 음악의 얼굴을 뭉뚱그린 음악- 쿠스투리차가 ‘운짜운짜 음악’이라고 부르는- 을 마을 결혼식장부터 파리 콘서트장까지 연주하고 다니는 밴드. <검은 고양이, 흰 고양이>의 음악도 맡았던 이 밴드에 대해 쿠스투리차는 “발칸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가슴으로 느끼게 하는 음악을 한다”고 소개했다. 공연 실황과 함께 사춘기 소년 같은 유치한
“발칸은 지금, 쿵짝 쿵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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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으로 이주한 북아프리카인 공동체를 가리키는 제목의 <리틀 세네갈>(Little Senegal)은 알렉스 헤일리가 쓴 <뿌리>의 정반대 방향에서 노예제의 역사와 그 여진을 그려낸 영화다. 올해 베를린 경쟁부문에서 인종갈등이나 서구사회의 소수민족이 느끼는 현기증을 소재로 삼은 영화는 스파이크 리의 <뱀부즐드>와 필리포스 치토스의 <마이 스위트 홈>이 있었으나, <리틀 세네갈>의 어법은 나머지 두편의 영화에 비해 나직하면서도 한결 신선했다.알제리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라시드 부샤레브(48) 감독은, 노예 박물관에서 은퇴한 60대 세네갈 남성 알론이 노예로 팔려간 조상의 흔적을 찾아 떠나는 미국 여행을 통해, 역사의 흉터와 그것을 아물리는 가족애, 그리고 아프리카인과 아프로-아메리칸 사이에 엄연히 존재하는 차별의식을 포착했다.이런 스토리를 왜 다큐멘터리로 찍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은 알론이 탄 배가 캘리포니아에 다다르면서 서서
“팔려간 선조들의 발자국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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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뉴스에서 중국 특파원이 호출받을 때면 그뒤를 어김없이 가로질러가는 자전거 대열. 페기 차오가 제작하는 ‘중국 3부작’의 한편인 왕샤오슈아이의 <베이징 자전거>는 바로 그 자전거를 타고 현대 베이징 젊은이들의 힘겨운 청춘 속으로 들어간다. 지나치게 명백한 상징의 선택이긴 하지만 맑고 투명한 촬영과 많지도 적지도 않은 대사로 앳된 주인공들이 맞닥뜨린 생존과 자존의 고민을 한 매듭씩 더듬어가는 감독의 화술은 충분히 설득력 있다.장위안의 시나리오 작가 출신으로 <나날들> <극도한냉> <머나먼 낙원> 등으로 알려진 왕샤오슈아이 감독은 <베이징 자전거>에서도 운명과 가장 묵묵한 방식으로 싸우는 사람들을 보여준다. 희망은 아주 모호한 말줄임표로만 암시될 뿐이다. 시골에서 상경해 자전거 택배 서비스회사 배달원이 된 구에이. 그의 그을린 얼굴은 너무 무감동해서 한 가닥 설렘도 욕망도 읽어내기 어렵다. 그는 요지경 같은 도시의 골목을 누비며
“운명과 싸울 땐 묵묵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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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기의 역사, 사회적 이슈를 화폭으로 삼은 영화가 많다는 전통 외에도 올해 베를린영화제 경쟁부문 초반부의 두드러진 경향은 유머의 득세였다. 코미디 <무지한 요정>부터 사회드라마 <트래픽>, 심지어 암환자의 죽음을 주시한 <위트>까지 웃음기 없는 영화는 찾기 어려웠다. 그중 베를리날레 손님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한 것은 <초급자를 위한 이태리어>. 17년의 영화경력을 지닌 로네 셔픽이 각본을 쓰고 감독한 이 영화는 코펜하겐 교외 마을 보통 사람들의 일상 위로 순진한 욕망과 지방색, 진한 우정과 가족애, 머뭇거리는 사랑을 샴페인 거품처럼 피어올린다. 게다가 이것이 비장한 도그마 인증서를 이마에 붙인 영화라니! 달콤함에 취한 기자와 평론가들은 “대체 이 동화가 도그마영화로 만들어질 필연적 이유가 뭔가?”라는 딱딱한 질문을 생각해내기 위해 입가의 미소를 부랴부랴 걷어내야만 했다.새로 부임한 아내를 여읜 목사, 그를 사랑하는 서툰 빵집 점원과 그녀의
“동화,도그마 인증서를 걷어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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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픽>의 기자회견에는 배우가 아무도 참석하지 않았다. 커크 더글러스가 평생공로상을 받으러 오는 차에 아들 마이클이나 며느리 캐서린이 오지 않을까 했지만 회견장 벽보에는 감독 소더버그와 제작자의 이름만 덜렁 나붙었다. 그래도 회견장은 막 시사가 끝난 영화에 제대로 박수칠 틈도 없이 달려온 기자들로 빽빽했다. 무수한 카메라 플래시가 소더버그의 뿔테 안경 위에 작렬했다. 그는 감전될 것만 같았다. 1989년 입봉작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로 칸에서 황금종려잎을 딴 뒤 “이제부터 내리막”이라고 말했던 ‘신동’은, 또 한번 세상의 지붕 위에 있었다.미국으로 유입되는 마약의 흐름과 그것으로부터 피를 빨고 피를 빨리는 사람들의 궤적을 뒤쫓은 <트래픽>은 결론을 내리지도, 감정을 짜내지도 않는다. 다만 관객의 지성을 믿고 그 신뢰에 기초해 대단한 재미를 길어올린다. “댁에게 명령하는 놈도 마약 카르텔과 연관돼 있을지 몰라. 당신 인생 전체가 헛수고야
“하얀 유혹,붉은 피 그리고 은빛 플래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