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브릭+스필버그1-<E.T.>
지상의 어둠을 서서히 지우며 떠오는 둥근 빛. 실루엣으로 그 빛을 가르며 나르는 소년과 외계인의 자전거. 영화사가 기억할 <E.T.> 의 가장 아름다운 장면을 <A.I.>는 어둡게 인용한다. 저건 달일까, 아니 우리를 잡으러온 인간의 비행선일까. 스필버그는 변함없이 아름다운 달의 이미지에 공포와 환희의 이중적 의미를 새기며 빛과 어둠을 함께 응시한다. 스필버그적인 것과 큐브릭적인 것의 기적적인 조우를 자축하는 명장면.
큐브릭+스필버그2-<시계태엽장치 오렌지>
큐브릭의 <시계태엽장치 오렌지>는 악마적인 인간 묘사와 함께 외설적이고도 정련된 프로덕션 디자인으로 이름높다. <A.I.>의 두 주인공이 닥터 노를 찾아간 루즈 시티는 화려하면서도 그로테스크한 디자인에서부터 <시계태엽장치 오렌지>를 연상케 한다. 이런 색감의 무대를 스필버그의 전작에서 찾기는 불가능하다. 이 타락의 환락가에선 <시계태엽장치 오렌지>의 아이스크림 가게와 ‘스트레인지러브’라는 네온사인도 발견할 수 있다.
큐브릭+스필버그3-
스필버그는 자신과 큐브릭의 전작들을 곳곳에 인용하며, <A.I.>가 두 영화세상의 전면적 합주임을 은연중에 과시하고 있다. 모니카의 아들 마틴이 냉동보존된 연구실의 프로덕션 디자인은 큐브릭의 를 본떴다. 금속성 질감에 푸른색과 흰색의 교합이 화사하면서도 냉랭한 기운을 풍기는 큐브릭 특유의 디자인 감각을 도입함으로써, 스필버그는 자신이 애호해온 동화적 톤의 경계를 넘는다.
큐브릭+스필버그4-<미지와의 조우>
손을 내미는 외계인의 아름다움을 묘사하는 데 스필버그를 따를 사람은 없다. 낯선 타자와의 동화적 화해라는 스필버그의 소망은 <미지와의 조우>에서 절정의 이미지를 빚어낸다. <미지와의 조우>의 외계인과 흡사한 이 존재는 <A.I.>에선 로봇이며, 이들은 인간의 역사 채록을 위해 데이빗을 회생시킨다. 이들 역시 우호적인 타자이지만, 스필버그는 중간자인 데이빗을 인간의 길로 이끈다. 결국 스필버그는 자신에게 돌아간다.
▶ 스티븐 스필버그와 <A.I.>
▶ 큐브릭+스필버그
▶ 영화 속 인공지능에 대한 5문5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