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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만다 사이프리드의 화려한 얼굴을 좋아한다. 날카롭고 신비한 푸른빛의 큰 눈을. 역시나 그는 오랫동안 금발의 사랑스러운 미녀 이미지에 갇혀 있었다. 배우로서의 욕심과 용기에도 한 가지 이미지에 갇혀 있었던 셈. “사람들은 잡지 표지만 보고도 날 안다고 생각하죠.” <맹크>에 등장하는 이 대사는, 20세기 초 미국 신문업계의 제왕이었던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의 여인이자 영화배우였던 매리언(아만다 사이프리드)이 시나리오작가 허먼 맹키위츠(게리 올드먼)에게 하는 말이다.
이 말이 아만다 사이프리드의 속마음처럼 여겨지는 것은 그 역시 매리언처럼 10대 때부터 연기를 했고 숱하게 잡지 표지를 장식했으며 그 과정에서 오해와 평가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영화 데뷔작 <퀸카로 살아남는 법>을 시작으로 <맘마미아!> <클로이> <디어 존> <레터스 투 줄리엣> <레드 라이딩 후드> <인 타임> <
[2020년의 얼굴들] 이주현 기자의 PICK <맹크> 아만다 사이프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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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순수한 웃음기가 얼굴에서 싹 사라졌다. 냉소와 피로가 겹겹이 쌓인 주름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사프디 형제가 연출한 영화 <언컷 젬스>에서 애덤 샌들러가 연기한 보석상 하워드는 대책 없이 일을 벌여놓고 제대로 수습하지 못해 이리저리 치인다. 뉴욕 출신의 유대계 미국인인 애덤 샌들러가 보석 시장을 운영하는 중년 남성을 연기한 건 여러모로 의미심장하다, 보석상은 전통적으로 유대인들이 많이 종사하는 업종이거니와 대출에 전전긍긍하는 그의 모습이 영락없이 ‘보석상 대출 완화’ 정책을 펼치며 거품 경제 논란을 빚었던 트럼프 시대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불안감이 얼굴 위로 드리워진 애덤 샌들러의 얼굴은 21세기 자본주의에 종속된 미국인을 표상하고 있다. 이것은 로맨틱 코미디 속 ‘사랑꾼’ (<웨딩 싱어> <첫키스만 50번째>) 또는 ‘짐 캐리의 라이벌’이라 불릴 만큼 20, 30대 미국 청년의 코믹한 모습(<워터 보이> <
[2020년의 얼굴들] 김성훈 기자의 PICK <언컷 젬스> 애덤 샌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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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도 한달이 채 남지 않았다. 연말이면 으레 찾아오는 결산의 영역을 이번엔 ‘배우’에 집중해보았다. 누가 들어도 고개를 끄덕일 만한 올해의 배우를 언급하기에 앞서 <씨네21> 기자들이 개인적으로 올 한해 감탄했던 배우들, 꾸준히 지지와 응원을 보내고 싶은 배우들을 꼽았다. 그렇게 탄생한 <씨네21> 기자들의 ‘사심’ 배우 리스트엔 애덤 샌들러, 아만다 사이프리드, 김민희, 주동우, 엘리자베스 모스, 파울라 베어, 로버트 패틴슨, 헤일리 베넷이 이름을 올렸다. 참고로 <베이비티스>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 <작은 아씨들>의 엘리자 스캔런, <보건교사 안은영>의 남주혁을 놓고 막판까지 고민한 기자도 있었다.
더불어 올해가 가기 전에 꼭 언급해야 할 배우들도 소개한다. <퀸스 갬빗>의 애니아 테일러조이, <런> <래치드>의 사라 폴슨,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의 아델 에
[2020년의 얼굴들] '씨네21' 기자들이 사심으로 꼽은 최고의 배우들과 올해 최고의 활약을 보인 배우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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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후드>는 올해 내가 본 영화 중 가장 슬픈 이야기다. 동시에 가장 흥겨운 이야기이기도 하다. 아마 리한나의 <Diamonds>에 맞춰 춤을 추는 여자아이들의 모습 때문일 것이다. 자유로운 시선과 몸짓, 그리고 웃음소리는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신이 난다. 덕분에 나는 십대 시절의 어떤 기억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 별일도 아닌 일에 큰 소리로 웃었던 일, 격한 감정을 추스르지 못했던 일,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시간을 보내고 또 보냈던 일. 물론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이미 지나온 시간이고, 무엇보다 그런 격렬한 감정 상태를 경험하는 건 인생에서 한번으로 충분하다.
어쨌든 리한나의 음악과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기묘한 향수를 불러일으켰고, 그래서인지 그들에게 조금 더 감정이입할 수 있었다. 나는 노래가 끝나갈수록 불안해졌다. 음악이 멈추는 시간은, 마음껏 웃고 떠들던 작은 호텔방을 떠날 시간이 가까워졌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셀린 시아마 감독의 성장영화
[강화길의 영화-다른 이야기] 그래도 길은 빛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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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발의 청춘> 제작 극동흥업주식회사 / 감독 김기덕 / 상영시간 117분 / 제작연도 1964년
청춘영화는 1960년대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장르였다. 1963년 <가정교사>(감독 김기덕)와 <청춘교실>(감독 김수용)의 흥행으로 촉발된 청춘영화는 1964년 <맨발의 청춘>의 폭발적인 관객 동원을 계기로 주류 장르로 등극한 후 1967년까지 장르의 생명력을 유지했다. 이러한 청춘영화의 유행이 일본 대중문화의 영향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은 흥미로운 사실이다.
특히 이시자카 요지로의 소설을 주목해야 한다. <햇빛 쏟아지는 언덕길>은 <가정교사>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1962년 내내 부동의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고, <그 녀석과 나>는 <청춘교실>로 번역되어 1963년 베스트셀러 순위를 계속 유지했다. 1963년 한국에서 영화 <가정교사>와 <청춘교실>이 만들어진 결정적 배경이다
[정종화의 충무로 클래식] 일본의 이야기를 빌려 한국 젊은이들과 만나다 '맨발의 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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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쓰냐. 왜 하냐. 왜 사냐. 자주 되뇌는 질문이지만 사실 대부분 이유는 없다. 그럼에도 굳이 원인을 고르고 답을 찾으려는 건 그저 강박일까. <맹크>를 보다 마지막 한 장면에 위로받았다. 자기를 크레딧에 올려달라는 맹크의 말에 분노한 오슨 웰스가 박스를 집어던져 부수자 맹크는 영감을 받은 듯 메모한다. “수잔이 케인을 떠날 때 그걸 넣어야겠군. 충동적인 폭력.” 내내 그것만 생각하게 되는 것. 뭔가를 ‘한다’는 건 그런 게 아닐까.
가지 않은 길로 덮어쓰기
<힐빌리의 노래>와 <맹크>를 연달아 보며 문득 이란성쌍둥이 같다고 느꼈다. 비슷한 시기에 탄생한 영화는 필연적으로 비교당하는 운명을 타고난다. 론 하워드와 데이비드 핀처의 스타일을 논하자면 백만 광년 정도 차이가 있으니 사실 두 영화가 닮았다고 말하는 건 어리석은 발언이다. 하지만 영화를 둘러싼 조건, 관객과 만나는 방식, 무엇보다 영화의 뼈대를 이루는 형식이 두 영화를 자꾸만 겹쳐 보이
'힐빌리의 노래'와 '맹크', 플래시백의 쓸모와 가능성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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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 스페셜 관객과의 대화(GV)에서 이동진 평론가는 아니시 차간티 감독이 전작인 <서치>, 그리고 앨프리드 히치콕과 싸운 것 같다고 평했다. <런>이 구축하는 서스펜스를 고려해보면 스릴러 장르의 권위자인 히치콕을 떠올리는 것은 당연지사다. 여기서 시간을 좀더 앞당겨서 하나의 영화를 추가하여 말하고 싶다. 그 영화는 90년대 클래식인 <미져리>(1990)다. <미져리>는 이미 <런> 안에 작게나마 이스터 에그로 각인되어 있다. 감독은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서치>보다 <미져리>와 싸워야 한다는 것을….
<런>은 <미져리>의 21세기 리메이크작이라고 거칠게 말해도 무리가 없다. 왜 감독은 알면서도 위험을 무릅썼을까? 그 이유를 히치콕에게서 찾아보고자 한다. 다큐멘터리영화 <히치콕 트뤼포>를 보면 히치콕은 자신에 대한 비판에 대해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의
아니시 차간티 감독의 정공법 '런'의 중요한 세번의 클로즈업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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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언니전지현과 나(박윤진 감독)
1992년생 여성, 영화과 졸업작품으로 <내언니전지현과 나>를 연출.
마님은돌쇠만쌀줘 길드 마스터, 일명 ‘길마’다. 유년기부터 지금까지 <일랜시아>라는 가능성의 세계에서 행복을 얻었다. 노력한 만큼 보상받을 수 있다는 점이 자연스럽게 ‘그럼 다음엔 이걸 해볼까?’라는 식으로 무언가 계획하게 만들었고, 이런 게임적 사고가 현실에 영향을 미쳤다. 다큐멘터리를 만든 이유 또한 버려진 <일랜시아>에 관해 한탄만 하기보다 직접 움직여서 변화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에서였다.
레렐
1992년생 여성, 공시를 준비하며 마트에서 캐셔로 근무 중.
중학교 1학년 때 <일랜시아>를 시작했다. 일과 공부를 병행하는 요즘엔 ‘퇴근하면 공부나 해야지 게임은 무슨’이라는 생각으로 접속을 안 하다가 다큐멘터리 개봉 소식을 듣고 간만에 들어가서 며칠간 공부를 때려치우고 즐겼다. 학창 시절, 시험지 빈칸에 ‘레렐의 미니스커트’라고
영화 '내언니전지현과 나' <일랜시아>, 왜 하세요? 다섯 유저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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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속이 끊겼습니다.” 박윤진 감독에게 소개받은 길드원들과 인터뷰를 앞둔 어느 주말, <일랜시아>를 내려받아 캐릭터 설정에 돌입한 지 10분도 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일랜시아>에 대한 추억을 갖고 있는 또 다른 90년대생 이길보라 감독(<기억의 전쟁> <반짝이는 박수소리>)이 넌지시 건넨 추천에 따라 상인, 모험가, 전사의 성향 중 상인을 선택하고 막 캐릭터를 결정한 순간에 나는 화면 밖으로 맥없이 튕겨져나갔다. 오류 없이 게임을 계속하려면 배경음악을 꺼야 한다는 오랜 유저의 무용담이 그제야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상황을 자세히 알아보니 <일랜시아>는 현재 윈도 XP 이상에선 정상적으로 구동되지 않고 맥에서는 실행조차 불가능하며, 게임 내 기본 배경음악은 자꾸만 충돌을 일으켜 능숙한 유저는 알아서 개조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실정이란다. 사실상 대부분의 유저가 이용하는 편의적인 매크로는 물론, 다른 유저의 게임을 종료시키
영화 <내언니전지현과 나> ‘나’에서 시작해 세계의 생존을 도모하는 이상하고 뭉클한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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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언니가 전지현이었으면 좋겠다. 하교 후 우울한 마음으로 컴퓨터를 켠 초등학생 박윤진은 게임 속 캐릭터의 이름에 자기 바람을 곧이곧대로 적어넣었다. 그와 또래인 나라면 ‘내언니유진바다슈’쯤으로 지었겠지만 때는 2001년. <엽기적인 그녀>로 대중을 압도한 전지현이 위용을 떨칠 시기였다. 박윤진 감독은 그렇게 게임 회사 넥슨이 1999년 론칭한 MMORPG(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 <일랜시아>에 ‘내언니전지현’이라는 사랑스러운 이름으로 뿌리내렸다. 이후 그의 <일랜시아> 업력은 줄기차게 계속되어, 대학생이었던 2013년 무렵엔 ‘마님은 돌쇠만쌀줘’라는 길드(중세 유럽의 조합 개념으로 게임 내 커뮤니티를 일컫는데 흔히 쓰인다.-편집자)를 열었다.
영화 <내언니전지현과 나>는 그곳 <일랜시아>에 남은 감독 자신과 주변인들을 엿보는 다큐멘터리다. 2000년대 초반 반짝 전성기를 누린 후, 화려한 신작들에 밀려 2008년부터 업데이트도
영화 '내언니전지현과 나' 버려진 추억의 게임 <일랜시아>에 남은 90년대생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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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의 겨울과 여름, 그 안의 죽음과 삶이 두개의 단편으로 탄생해 하나의 영화로 묶였다. 무주산골영화제가 제작한 <달이 지는 밤>은 “각자 자기 세계가 있는 감독들이되 그 세계가 맞닿을 수 있는 지점을 가진”(조지훈 무주산골영화제 프로그래머) 김종관·장건재 감독이 함께한 2부 구성의 장편영화다. 서로 다른 계절과 화법을 택하되 무주 안에서 생명의 피고 짐을 그린 이들의 영화는 지금 독립영화 팬들이 가장 주목하는 영화제 프로젝트이자 아티스트 컬래버레이션이다.
김종관 감독이 연출한 1부는 무주 시외버스 터미널에 내린 중년 여성(김금순)이 딸(안소희)의 흔적을 따라가는 여정을, 장건재 감독이 연출한 2부는 무주군청에서 일하는 커플(강진아, 곽민규)에게 일어난 기이한 만남들을 담았다.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공개한 후 제46회 서울독립영화제에서 한번 더 <달이 지는 밤>으로 관객을 초대한 두 사람을 만나 이들이 경험한 무주의 시간을 더듬어봤다.
감독
[서울독립영화제 인터뷰④] '달이 지는 밤' 김종관·장건재 감독 - 죽음을 통해 삶을 바라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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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에서 이미지를, 그리고 이야기를 떠올렸다.” ‘전주시네마프로젝트2020’ 선정작인 <정말 먼 곳>은 화천에 자리 잡은 한 유사 가족의 삶을 응시한다. 서울에서 겪은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에 지친 진우(강길우)는 딸 설이(김시하)와 함께 화천으로 이주한다. 양떼 목장에서 일하는 진우의 삶이 안정될 즈음 그의 연인 현민(홍경)이 화천에서 시 강의를 시작하고, 행방이 묘연했던 진우의 동생 은영(이상희)이 갑작스레 찾아오면서 진우의 일상에 큰 파장이 인다. 박근영 감독은 이번 작품의 모티브가 된 화천을 “여러모로 아이러니한 공간”으로 정의한다. “지인 방문차 자주 들렀는데 서울이랑 굉장히 가까운데도 외국처럼 낯설게 느껴지더라.”
박근영 감독은 화천의 풍경 사진들을 보며 강길우 배우와 대화를 나눴고 이를 토대로 <정말 먼 곳>의 인물들을 구상했다. “강길우 배우는 바위처럼 단단하고 과묵한 진우에게 어떤 외형이 가장 어울릴지, 머리도 밀고 수염도 길러보며 긴 시간을
[서울독립영화제 인터뷰③] '정말 먼 곳' 박근영 감독 - 이미지로 쓴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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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때보다 당혹스럽게 시작된 2020년. 그 마지막 달이 당도했음에도 팬데믹의 혼란이 가시지 않았기 때문일까. 올해 제46회 서울독립영화제 개막작 <기적>의 제목은 거창하거나 간지럽게 들리기보다 극진하고 간절하게 스며온다. 1998년 데뷔작 <벌이 날다>로 토리노국제영화제 대상을 수상한 후 <터치> <사랑이 이긴다> <황제>로 ‘생명에 관한 3부작’을 마무리한 민병훈 감독 또한 기도하는 마음으로 ‘약속 3부작’의 시작인 <기적>을 만들었다.
그 기도의 중심에는 영화가 완성되기 전 폐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난, <기적>의 각본가이자 민병훈 감독의 아내인 안은미 작가가 있다. “아내가 이 시나리오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둘이 같이 기적을 바라는 마음으로 영화를 만들어나갔다.” 안은미 작가가 쓴 이야기에는 한 사람을 찾는 두 남녀가 등장한다. 파산 선고를 받은 장원(서장원)과 병을 앓는 지연
[서울독립영화제 인터뷰②] '기적' 민병훈 감독 "아내와의 마지막 추억을 담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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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만나자마자 호칭부터 정리했다. <울렁울렁 울렁대는 가슴안고>(이하 <울렁울렁>)로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이어 제46회 서울독립영화제에 초청된 안재홍 감독 겸 배우는 대중에게 연기자로 더 익숙하지만 이미 단편 <좋은연기> <열아홉, 연주> <검은돼지> 등을 만든 어엿한 연출 경력자다.
그가 올해 6월 울릉도에서 촬영한 단편 <울렁울렁>은 울릉도에 사는 철수(안재홍)에게 이별을 고하기 위해 바다를 건너간 영희(이솜)의 마음을 따라간다. 풍랑주의보에 발이 묶인 영희가 철수와 게스트하우스에 들어가면서, 어쩌면 둘이 함께하는 마지막 밤일지 모를 시간이 펼쳐진다. 영화는 두 사람을 묵묵하고 담담하게 좇으며 만든 이의 담백한 섬세함을 재확인하게 한다. 배우로서 관객을 만날 때보다 연출자로서 관객을 만날 때 한층 “폭넓은 민망함”이 동반된다는 그를 기어이 ‘감독님’이라 부르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검은돼지>
[서울독립영화제 인터뷰①] 안재홍 감독 "마음의 울렁거림을 간직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