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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구경이>는 배우 조현철에게 오랜 기간 익숙한 작품이었다. “성초이 작가들이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서 같이 공부한 친구들이라 몇년 전부터 열심히 작품을 준비하고 있는 걸 알고 있었다. 어느 날 ‘네가 잘할 수 있는 역할’이라며 오경수를 소개했다. 대구 출신에 맨박스의 틀을 깨고 나오는 캐릭터라고, 드라마 <마인드헌터>의 FBI 요원 홀든처럼 연기하면 된다고 했다. 홀든 이야기가 미끼였다는 건 나중에야 알았다. (웃음)” 조현철이 연기한 오경수는 NT생명 조사B팀에 속한 지극히 평범한 인물이다. 그는 스스로 똑똑하고 잘났다고 여기며 나제희 팀장(곽선영)을 무시하고 B팀에서 실적을 쌓아 A팀으로 이적할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구경이(이영애), 산타(백성철)와 함께 팀을 꾸린 뒤로 B팀에 잔류하기로 결심한다. “초반에는 아직 맨박스에 갇힌 설정이라 여성인 나제희와 구경이에게 경계심을 드러낸다. 하지만 그 틀이 깨지며 오히려 두 사람을 신뢰하게 된다. 그런 변
'구경이' 조현철, 가장 보통의 특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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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통틀어도 나보다 선배 편인 사람 없을걸.” 분노와 서운함이 가득한 목소리로 구경이(이영애)에게 토로하는 나제희를 보며 생각했다. 대체 상대를 얼마나 믿고 지지해야 저런 말을 할 수 있는 걸까. <구경이>의 나제희는 NT생명의 조사B팀 팀장으로, 경찰 시절 같이 일한 선배 구경이에게 함께 보험 사기로 의심되는 사건들을 조사할 것을 제안하는 인물이다. “성초이 작가가 전한 두 페이지 분량의 제희의 전사가 캐릭터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나제희는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도 모르고 두루뭉술하게 살아왔다. 그러다 경찰 시절 뭐든 명확한 구경이 선배를 만나면서 그를 동경하고 전적으로 지지하게 된 것이다. 제희의 분노도 구경이를 정말 아끼기 때문에 나온 것이다.” 혼자 아이를 키우고 나이 든 아버지를 부양하는 게 버거워 구경이를 배신하고 용 국장(김해숙)의 편에 서기도 하지만, 그는 곧 다시 돌아와 구경이의 든든한 조력자가 된다.
곽선영은 나제희의 텍스트를 면밀히 분석해
'구경이' 곽선영, 딱 좋은 거리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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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특정 순간은 배우의 얼굴로 기억되곤 한다. 익숙한 배우가 전에 없던 새로운 에너지를 내비칠 때, 혹은 잘 모르던 배우의 빛나는 눈빛을 발견할 때 더욱 그렇다. 2021년은 유독 시선을 사로잡는 배우들이 많은 해였다. <씨네21>은 2021년 하반기 화제에 오른 드라마 <구경이>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 <지옥> 중 6명의 신스틸러를 만나 대화를 나눴다. 맡은 캐릭터에 관해, 그리고 각자의 연기 철학에 관해 깊은 이야기를 들려준 <구경이>의 곽선영과 조현철,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의 배해선, 백현진, <지옥>의 김도윤, 김신록의 인터뷰를 전한다.
Scene Stealer. 마음을 훔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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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을 이해하고 상대와 소통하는 것이 모든 작업의 기본이다.” 콘텐츠 생태계 구축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한 질문에 올해 7월 경기콘텐츠진흥원(이하 경기콘진원) 10대 원장으로 취임한 민세희 원장은 간결하고 담백하게 핵심을 짚었다. 시대가 바뀌고 환경이 변해도 성패는 결국 소통에 달렸다. 사람과 사람을 어떻게 잇고, 새로운 환경을 조성할지에 대한 변하지 않는 정답. 그런 의미에서 민세희 원장은 전문가라고 자부한다. 그는 뉴욕 프랫 인스티튜트에서 인터랙티브 미디어로 석사 수료 후 MIT 센서블 시티랩 연구원, 한국인 최초 TED 펠로를 거쳐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 랜덤웍스 대표로 활동 했다. 2001년에 설립된 경기콘진원은 게임, 영상, 음악 산업은 물론 VR/AR, MCN 등 4차 산업혁명에 따른 융복합 콘텐츠 분야까지 육성하고, 창업을 지원해왔다. 행정 분야의 수장에 과감히 현장 출신 전문가를 영입한 것만 봐도 변화를 향한 경기콘진원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2021년 끝자락에
민세희 경기콘텐츠진흥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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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5일 한국영상자료원(이하 자료원)의 새 원장으로 취임한 주진숙 원장은 전임 원장의 불명예 사퇴 이후 어수선한 조직의 분위기를 쇄신해야 하는 과제를 떠안고 업무를 시작했다. 영상자료의 수집, 보존, 전시 등 자료원 본연의 업무도 강화해야 했으며,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에 대응해 디지털 정보자원 창출도 고민해야 했다. 중앙대학교 영화학과 교수, 여성영화인모임 이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등을 지내고 3년 임기로 자료원을 이끌어온 주진숙 원장은 일복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일을 너무 많이 벌여 후임 원장에게 죄송하다”면서도 “좋은 분이 후임으로 와서 계속해서 전진하는 자료원을 만들어줬으면 좋겠다”고 당부의 말을 전한 주진숙 원장을 퇴임을 얼마 앞두고 만났다.
마지막 출근일은 언제인가.
공식적으로는 12월4일이다. 현재 후임 원장 인선이 늦어지고 있어 상황을 보고 있다.
지난 3년은 스스로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나.
영화 전공자가 아니었던 전임 원장이 불명예
퇴임 앞둔 한국영상자료원 주진숙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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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탄>의 줄리아 뒤쿠르노 감독은 올해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역대 두 번째 여성감독으로 칸의 역사를 새로 썼다. 채식주의자 집안에서 억압받으며 살던 소녀가 수의대학 입학 후 식인에 눈을 뜨는 (반)성장담을 그린 <로우>(2016)가 영화제 관객의 실신 소동까지 일으킨 데 이어 <티탄> 역시 양극단에서 최고의 찬사와 혹평이 쏟아지며 또 한번 페스티벌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여성을 눈요기 내지 상품으로 대하는 남성들이 가득한 모터쇼에서 춤을 추며 살아가는 알렉시아(아가트 루셀)는 인간 남자는 물론 인간 여자에게도 아무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연쇄살인범이다. 그를 유일하게 흥분시키는 존재는, 금속이다. 자동차와 성적인 관계를 맺고 임신을 한 알렉시아는 죽은 아들을 그리워하며 강박적으로 주사를 맞는 소방관 뱅상(뱅상 랭동)을 만나면서 새로운 감정에 눈을 뜬다. 언제나 금기에 도전하고 관습을 도발하는 작품을 만드는 줄리아 뒤쿠르노 감독을 화상으로 만났다
'티탄' 줄리아 뒤쿠르노 감독 "몸은 그냥 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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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의 눈에 비친 런던 소호는 어떤 모습일까. 현재 극장에서 상영 중인 영화 <라스트 나잇 인 소호>에서 정정훈 촬영감독의 카메라는 화려함과 어두운 이면을 동시에 간직한 1960년대 소호와 무질서의 매력을 갖춘 현재의 소호를 현란하게 오가며 엘리(토마신 맥켄지)와 샌디(애니아 테일러조이) 두 여성의 사연을 신들린 듯 펼쳐낸다. 이 영화는 필름이 사라진 디지털 시대에서 35mm 필름으로 작업했다는 점에서 흔치 않은 아날로그 작업이다. 정정훈 촬영감독이 필름으로 작업한 것은 한국영화로는 <부당거래>(감독 류승완, 2010), 할리우드영화로는 <스토커>(감독 박찬욱, 2013) 이후 처음이다. 디즈니+의 새 <스타워즈> 시리즈인 <오비완 케노비>(감독 데보라 차우) 촬영을 마치자마자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프리퀄인 영화 <웡카>(감독 폴 킹)의 런던 촬영장에 합류한 정정훈 촬영감독을 줌으로 만나 <라스트
'라스트 나잇 인 소호' 정정훈 촬영감독 "필름으로 하는 촬영을 몸이 다 기억하고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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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참 경관 발레리(알렉시스 라우더)는 특수폭행 신고를 받고 달려간 현장에서 자신을 제발 잡아가달라는 테디(프랭크 그릴로)를 체포한다. 마침 경찰서에서는 악취를 풍기는 신원미상자 밥(제라드 버틀러)이 잡혀 유치장에 구속된다. 알고 보니 이들은 무시무시한 권력과 연루된 범죄자들. 경찰들이 총으로 장난을 치는 사이 이들은 위험한 계획을 꾸미고, 생일선물 배달원을 위장한 사이코패스 앤서니(토비 허스)가 제 발로 경찰서를 찾아와 난장판을 벌인다. 여기에 경찰 휴버(라이언 오넌)는 동료들을 피하며 수상쩍은 행동을 보이기 시작한다. 발레리는 이 아슬아슬한 순간들을 홀로 헤쳐나가야 한다.
<캅샵: 미친놈들의 전쟁>은 <더 그레이> <스모킹 에이스>를 연출한 조 카너핸 감독의 신작이다. 줄곧 액션에 관심을 가져온 그는 이번 영화에서 액션의 무대를 경찰서라는 한정된 공간으로 옮겼다. 각자 유치장 철창을 마주하고 대화를 나누는 인물들이 자아내는 긴장감, 예기치 못한
[리뷰] 경찰서라는 한정된 공간에서의 액션 '캅샵: 미친놈들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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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장편 연출작 <스웨덴 러브 스토리>로 제20회 베를린국제영화제 황금곰상을, <2층에서 들려오는 노래>로 제53회 칸국제영화제 심사위원상을, <비둘기, 가지에 앉아 존재를 성찰하다>로 제71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로이 안데르손 감독. 1970년 데뷔 후 세계 3대 영화제를 석권한 그의 작품은 전주국제영화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등에서 소개되었다.
로이 안데르손 감독의 첫 국내 정식 개봉작 <끝없음에 관하여>는 한마디로 정중동의 영화다. 내러티브보다는 이미지와 사운드가, 사진보다는 회화에 가까운 숏들이, 대화보다는 일방적인 외침이 스크린을 채운다. 1신 1컷의 연출도 눈에 띈다. 이때 관객은 처음부터 끝까지 여성 내레이터의 지시에 따라 프레임 속 인간 군상의 향연을 통과하게 된다. 마르크 샤갈, 에드워드 호퍼, 오토 딕스의 인물들을 연상시키는 그들은 가족을 떠나보냈거나 몸을 다쳤고, 만남을 기다리거나 외면하고 있으며
[리뷰] '끝없음에 관하여' 예술은 절망에 저항하기 위한 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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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시리아 청년 샘(야흐야 마하이니)은 억압을 피해 레바논으로 도망친다. 궁핍한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중, 한 갤러리에 음식을 훔쳐 먹으러 들어간 샘은 그곳에서 세계적인 예술가 제프리(코엔 드 보우)를 만난다. 샘의 사연을 알게 된 제프리는 그에게 등에 타투를 새겨 살아 있는 예술품으로 전시될 것을 제안한다. 유럽의 솅겐 비자를 등에 타투로 새긴 채 미술관에 전시된 샘은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일등석과 5성급 호텔을 누리는 일약 스타가 된다. 그럼에도 자신이 바라던 것과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다고 느끼던 어느 날, 샘은 미술관에서 헤어진 연인 아비르(디아 리앤)와 마주친다.
첫 장편 극영화 <뷰티 앤 더 독스>(2017)로 칸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받은 튀니지의 여성감독 카우타르 벤 하니야의 신작이다. 벨기에의 독창적인 예술가 빔 델보예의 실화를 바탕으로 시리아 난민을 주인공 삼아 난민 문제, 인간 존엄성과 권리, 예술과 자본의 역학 관계를
[리뷰] 벨기에의 독창적인 예술가 빔 델보예의 실화 '피부를 판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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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입학을 앞둔 라일리(알렉산드라 십)에겐 사랑하는 남자 친구 크리스(니콜라스 해밀턴)가 있다. 영원할 것 같았던 그들의 사랑은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크리스가 목숨을 잃으며 애처롭게 끝난다. 라일리가 채 회복되기도 전에, 운전대를 잡았던 라일리를 대상으로 교통사고의 원인과 과실을 찾는 경찰 조사가 이어진다. 가족과 친구들이 라일리의 회복을 위해 정성껏 노력하지만 다시는 크리스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번번이 라일리를 좌절시킨다. 그러나 크리스의 영혼이 아직 세상을 떠나지 못한 채 라일리의 곁을 맴돌고, 라일리가 그 영혼의 존재를 감지하게 되면서 이들의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된다.
죽은 연인의 영혼과의 교감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판타지 로맨스 <엔드리스>의 방점은 사랑 그 자체보다는 각자의 성장에 찍힌 모양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세상을 향해 막 발을 내디딘 두 사람에게 들이닥친 교통사고는 그들을 단숨에 삶과 죽음으로 갈라놓는다. 사고에서 자신만이 살아남았다는 것을 받아들
[리뷰] 죽은 연인의 영혼과의 판타지 로맨스 '엔드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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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혜성을 관측한 천문학과 연구진이 이를 기념하며 축배를 든다. 최초 발견자인 대학원생 케이트(제니퍼 로렌스)는 담당 교수 민디(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마치 이과생들의 놀이처럼 혜성의 궤도를 계산해보는데, 그 결과 혜성이 100%의 확률로 지구에 충돌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충격에 빠진다. 충돌하면 필시 인류를 멸종시킬 크기의 ‘행성 파괴자’가 지구에 도착하기까지 남은 시간은 6개월. 민디와 케이트는 이 사실을 직접 브리핑하기 위해 백악관을 방문한다.
반면 대통령 올리언(메릴 스트립)은 곧 있을 중간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다. 아들 제이슨(조나 힐)을 비서실장으로 두고 있는 그녀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도 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상황을 지켜보자는 말을 할 뿐이다. 분통이 터지는 민디와 케이트는 모든 사실을 폭로하기 위해 가장 핫한 TV 프로그램에 출연한다. 그러나 진행자 브리(케이트 블란쳇)와 잭(타일러 페리) 역시 민디와 케이트를 이색 출연자 취급을 하며 사태
[리뷰] 2021년 최고 기대작, 애덤 맥케이 감독의 '돈 룩 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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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벤져스의 블립 이후 세상은 변했다. 5년의 시간이 흐른 사람들과 5년 전 모습 그대로 돌아온 사람들 사이의 공백. MCU 페이즈4는 블립 이후 달라진 삶이 무대로 펼쳐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멀티버스라는 복잡한 개념이 본격적으로 추가되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에 앞서 블립 사태부터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까지 이어지는 타임라인을 정리해보았다.
2015년: Before 블립 8년
넷플릭스 <데어데블>
낮에는 변호사 맷 머독으로 살고, 밤에는 자경단이 되어 악당들을 단죄하는 데어 데블은 마블을 대표하는 다크 히어로다. 불의의 사고로 실명 후 예민해진 청각을 활용하여 초인적인 활약을 펼친다. 마블 스트리트 히어로 프로젝트 ‘디펜더스’의 일원이기도 한 데어데블이 과연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에 합류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맷 머독 변호사라면, 살인자라는 누명을 쓴 채 곤욕을 치르고 있는 피터 파커를 누구보다 확실하게 도와줄
새로운 영웅들의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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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파커 인생 최대 위기다. ‘우리의 친절한 이웃’ 스파이더맨이 토니 스타크에 대한 개인적인 복수심과 피해망상에 젖어 있던 가짜 히어로 미스테리오(제이크 질런홀) 때문에 신분이 노출되고 말았다. 스파이더맨 가면 뒤에 숨어 있던 인물이 뉴욕에 사는 고등학생 피터 파커라는 사실이 세상에 공개된 이후, 스파이더맨의 일상에는 어떤 변화가 찾아올까.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을 보기 전에 관객이 궁금해할 몇 가지 질문을 쟁점별로 정리해봤다. 공개된 정보가 상당히 제한적이라 어떤 질문이든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이다. 피터 파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아직 아무도 모르지만, 한편으로는 이미 모두가 한마음으로 ‘그들’이 나타나기를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Q. 피터 파커의 일상, 어떻게 달라질까?
죽기보다 싫은 일이 벌어졌다. 톰 홀랜드가 연기하는 피터 파커는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서의 첫 등장 이후,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에 입성한 스파이더맨 중
정말로 역대 스파이더맨 총출동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