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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경(박정민)의 같은 반 친구인 라희는 <기적>의 인물들 중 가장 밝고 명랑한 에너지를 지녔다. 그를 ‘부족함 없이 잘 자란 친구’로 정의할 찰나, 준경을 좇는 라희의 시선이 예사롭지 않다. 준경의 엉뚱함에서 천재성을 발견한 라희는 그가 마을에 주저앉는 대신 자신의 꿈을 찾아 나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17살의 명랑함과 순수한 호기심이 타인의 꿈을 온전히 믿고 도와줄 에너지로 변모하는 순간이다.
라희는 배우 임윤아가 연기한 드라마 <너는 내 운명>의 새벽과 <허쉬>의 지수, 영화 <엑시트>의 의주처럼 올곧고 당차면서도 조금 다른 궤도를 그린다. “지금까지 내가 연기한 인물 중 가장 순수하면서도, 끝까지 밀고 나가는 힘이 있다”는 임윤아 배우의 말이 정확히 라희를 가리킨다. “어떤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 질문”하며 작품을 고른다는 임윤아 배우는 사투리 톤과 소품 하나까지 꼼꼼히 준비하며, <기적>의 라희라는 새로운 답
'기적' 배우 임윤아, 착실히 쌓인 경험치로 더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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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찻길은 있지만 기차는 서지 않는 마을이 있다. 철로를 따라 다른 역으로 걸어가는 것이 마을 사람들이 이동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다. 위험한 순간이 반복되자 어린 준경(박정민)이 대통령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한다.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준경은 ‘마을에 제대로 된 기차역을 세워달라’는 54통의 편지를 보낸다. 이장훈 감독의 신작 <기적>은 1988년 대한민국 최초로 세워진 민자역 ‘양원역’을 모티브로, 기차역이 지어지길 염원하는 준경과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창조했다. 영화는 기차역을 중심으로 준경과 그를 돕는 친구 라희(임윤아), 누나 보경(이수경), 아버지 태윤(이성민)의 관계를 차근히 쌓아간다.
영화는 준경에게 기차역 개설과 천문학 공부, 두개의 꿈이 있음을 강조한다. 천문학에 대한 준경의 애정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는 그렇게 별을 동경하면서도 준경이 기차역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에 관해 의문을 품게 만들기 때문이다. 영화는 갈등하는 준경의 태도를 주의 깊게
영화 '기적' 리뷰, 우리 곁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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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를 앞두고 관객의 마음을 공략할 2편의 한국영화와 1편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가 나란히 공개된다. 박정민, 임윤아 주연의 <기적>은 기차가 서지 않아 위험하게 기찻길을 걸어 다녀야 하는 마을에 간이역 하나 세우는 게 꿈인 고등학생 소년의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다. 소년의 꿈과 가족간의 갈등, 거기에 첫사랑의 풋풋함까지 더한 <기적>은 따스한 가을빛을 닮은 영화다.
반면 <보이스>는 날로 진화하는 보이스피싱 사기의 거의 모든 것을 담은 영화다. 변요한이 거대 보이스피싱 사기 조직을 쫓는 전직 형사, 김무열이 콜센터의 브레인이자 영화의 악역인 곽프로로 분해 우리의 일상에 깊숙이 파고든 범죄의 일면을 그려낸다.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되는 이정재, 박해수 주연의 <오징어 게임>은 <수상한 그녀> <남한산성>의 황동혁 감독이 선보이는 9부작 시리즈다. 거액의 상금이 걸린 서바이벌 게임에 목숨 걸고 참여하는 사람들의
<기적> ,<보이스>, <오징어 게임>…추석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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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이하 든든)의 달력은 여름을 지나며 더욱 빼곡해졌다. 올해 5월,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영비법)이 개정되어 성폭력 예방교육이 의무화되었고, 개정된 법이 지난 8월 19일부터 시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든든은 8월 한달간 총 23건의 교육을 실시하고 997명의 영화인을 수강생으로 만났다. 영화계 특성을 반영한 ‘성희롱 예방교육 표준강의안’도 추가로 내놓았다. 유엔개발계획, 유엔글로벌콤팩트 한국협회 등에서 젠더 및 여성 문제를 다뤄온 공유진 교육위원은 변화의 중심에서 든든의 교육 프로그램을 담당 중이다. 그는 “든든이 말 그대로 영화인들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겠다”는 약속과 함께 영비법 개정 이후의 목적지를 가리켰다.
-성폭력 예방교육 의무화의 배경과 의미는 무엇인가.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지원사업 대상작 구성원들에게 성범죄·성희롱 사실확인서, 성범죄 예방교육 이수확인서를 제출하게 하는 것이 예방교육 의무화의 시작이었다. 이
공유진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 교육위원, 과소 대표되었던 집단이 좀더 재현될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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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7일,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이 공개된다. 9부작 시리즈인 <오징어 게임>은 456억원의 상금이 걸린 의문의 서바이벌 게임에 목숨 걸고 참가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드라마가 공개되기 전, 황동혁 감독과의 인터뷰를 토대로 정리한 <오징어 게임>의 관람 포인트를 소개한다.
<오징어 게임>은 일본 서바이벌물의 요소를 한국적 상황에 접목시킨 작품이다. 2008년에 작품을 구상하고 2009년에 쓴 황동혁 감독은 당시 만홧가게에서 즐겨 읽은 <도박 묵시록 카이지> <라이어 게임> <배틀 로얄> 등의 일본 서바이벌물 만화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2009년엔 현실감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반응이 많았지만, 10여년이 지나선 이 이야기를 현실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또한 OTT 플랫폼으로 인해 작품의 러닝타임이나 표현의 수위가 상대적으로 자유로워진 영향도 있었다.
<오징어 게임>
황동혁 감독이 말하는 <오징어 게임>의 관람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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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박찬욱 감독의 다음 작품인 <HBO> 시리즈 <동조자>에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프로듀서 겸 배우로 참여한다는 뉴스가 보도됐다. <동조자>는 비엣 타인 응우옌 교수가 쓴 동명의 책이 원작으로, 베트남전 직후 미국과 베트남의 이중첩자로 살다가 미국에서 생활하게 되는 남자의 삶을 다룬다. 현재 <동조자>는 여러 작가를 모아 하나의 팀을 꾸리는 ‘작가방’(Writers’ Room) 구성을 마무리하고 곧 각본 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등 첩보 모티브가 있는 여러 작품을 제안 받아온 박찬욱 감독이 그중 <동조자>를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에 따르면 <동조자>는 “아시아인의 전통과 미국이 대표하는 서양인의 사고방식이 빚는 충돌이 주요한 주제다. 이야기의 품이 장르를 넘어선다. 아시아인으로서 내가 가져온 문제의식이 투영될 것 같다. 베트남은 제국주의 열강이 그들의 땅에서 각축을
[인터뷰] 박찬욱 감독이 시리즈 <동조자>를 차기작으로 택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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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5일 개봉한 영화 <기적>에서 배우 임윤아는 준경(박정민)의 같은 반 친구 라희를 연기한다. 라희는 배우 임윤아가 연기한 드라마 <너는 내 운명>의 새벽과 <허쉬>의 지수, 영화 <엑시트>의 의주처럼 올곧고 당차면서도 조금 다른 궤도를 그린다. “지금까지 내가 연기한 인물 중 가장 순수하면서도, 끝까지 밀고 나가는 힘이 있다”는 임윤아 배우의 말이 정확히 라희를 가리킨다. 마냥 밝고 부족함 없이 잘 자란 친구 같던 라희는 준경(박정민)의 엉뚱함에서 천재성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가 주저하는 대신 자신의 꿈을 찾아 나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임윤아는 이번 작품에서 처음으로 고등학생을 연기했다. “학생 역할이라 내심 교복을 기대했는데 계속 사복만 입어야 했다”며 웃는다. 1980년대 중후반이 배경인 만큼 라희의 의상에도 신경을 썼다. 당시 유행하는 스타일과 브랜드의 제품을 참고했고, 라희의 밝고 명랑한 성격을 참고해 노란색, 파란색 등
[인터뷰] '기적' 배우 임윤아, "처음으로 고등학생 연기한 소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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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병영에서 발생한 인권침해 사건들을 다룬 넷플릭스 드라마 <D.P.>가 대한민국을 넘어 아시아까지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세대를 불문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모양새다. 최근 공군과 해군에서 연이어 성범죄 피해자들이 극단적 선택을 함에 따라 국민적 공분이 극에 달해 있는 상황에서 드라마가 출시되었다는 점, 더불어 사실에 기반을 둔 김보통 작가의 탄탄한 시나리오가 큰 반향을 불러온 것으로 보인다.
탈영병 잡는 군무 이탈 체포조 안준호 이병 역을 맡은 배우 정해인의 연기 변신도 한몫했을 것이다. 그가 전작 멜로드라마에서 보여주었던 달달한 연기와 다소 거리가 있는 무거운 캐릭터를 잘 소화했다는 세평이 있다. 그런데 사실 정해인은 이미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을 통해 군인 연기를 선보인 적 있다. 군대 내 인권침해 사건으로 누명을 쓰고 징역살이를 하는 유정우 대위 역을 잘 소화했다는 점에서 안준호 이병 역도 잘 소화해낼 것이라는 기대를 촬영이 시작될 무렵,
'D.P.'를 보며 군대가 좋아졌다는 착시에 대해 거듭 생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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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P.>가 재미있게 잘 만들어진 드라마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군 내부에 고착화된 부조리를 성공적으로 환기시키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다소 이의를 제기하고 싶다. <D.P.>의 장점은 명확하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군 내부폭력에 대한 신랄한 고발을 통해 공감과 호응을 일으킨다는 것. 여기에 버디물과 형사물을 섞어놓은 D.P.요원 안준호(정해인)과 한호열(구교환)의 활약상이 보는 재미를 더한다. 어디선가 한번쯤 들어봤음직한 다양한 군인 캐릭터, 군대 내 참으로 다채롭게 서식 중인 빌런들을 통해 끊임없는 잔재미를 선사하는 것도 즐거움의 요소 중 하나다. 한편 일부에서 제기되는 아쉬움들은 대부분 동전의 앞뒷면마냥 장점과 연결된다. 우선 군대 내 폭력을 전시하듯 반복적으로 드러낸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노골적으로 말하면 <D.P.>에는 폭력적인 상황 그 자체를 전시, 과시하는 것 같은 태도가 깔려 있다.
이렇게 재미있어도 괜찮은가
'D.P.'가 너무 많이 보여주는 것과 끝내 드러내지 못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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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너머에] 비평을 쓰기 위해 가능하다면 영화를 두번 정도 본다. 새로운 발견을 기다릴 때도 있지만, 기억의 오류가 없는지 점검하기 위해서다. 마음만 먹으면 같은 영화를 손쉽게 돌려 볼 수 있게 되면서 영화를 본다는 의미가 점점 퇴색된다고 느낀다. 신선한 글을 쓰기 위해 기억의 오류를 용기 있게 드러내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무모한 생각도 든다. 물론 이는 이어지는 글의 오류를 대비한 밑밥이다. 글을 마감한 시점은 개봉 전이며 영화를 다시 볼 수 없었다. 불안하게 기억을 더듬는 상태가 이 영화를 말하기에는 퍽 적절하리라는 위안도 해본다.
존재 너머 자동기계의 세계
<그대 너머에>는 감독이자 시나리오작가인 박홍민의 자의식이 반영된 작품이다. 주인공은 감독이며, 그는 작품을 위한 시나리오를 쓴다(정확하게는 시나리오가 스스로 쓰이고 있다). ‘영화에 관한 영화’라는 말은 이런 방식의 영화를 설명하는 데 유용한 데우스엑스마키나 같은 말이다. 이것이 시나리오인지 현실인지,
'그대 너머에' 리얼함의 형식이 우리를 기만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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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의 첫 개인 사진전 <너의 표정>이 10월 1일부터 부산 국제갤러리에서 열린다. 전시를 앞두고 사진전과 사진집을 준비하면서도 감독, 제작자로서의 작업을 바쁘게 이어가는 박찬욱 감독을 만났다. 처음 사진을 시작하게 된 계기, 작품에 관한 대화에 이어 현재 후반 작업 중인 <헤어질 결심> 관한 이야기를 전해들을 수 있었다.
<헤어질 결심>은 산에서 발생한 변사 사건을 수사하게 된 형사 해준(박해일)과 사망자의 아내 서래(탕웨이)의 관계를 그린 영화다. 2019년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헤어질 결심>을 두고 “한국영화의 많은 형사들과 달리, 거칠지 않고 차근차근 수사 루틴을 진행하는 인물이 등장하는 사랑 이야기”라고 설명한 바 있다. 박찬욱 감독에 따르면 “박해일 배우가 연기하는 형사는 친절하고 예의 바르고 청결한 사람이다. 항상 물티슈를 휴대하고 상의에만 12개, 바지에 6개 주머니가 있다. 그 주머니들에 티
박찬욱 감독이 인터뷰를 통해 새롭게 밝힌 '헤어질 결심'에 관한 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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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대학 전공은 외국의 문학 근처 어드메였다. 2000년에 입학을 했는데 그때도 이미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이 사방에서 들렸다. 뉴스 검색을 해보니 일단 <연합뉴스>의 1997년 5월 기사가 눈에 보인다. “21세기를 눈앞에 두고 세기말적인 ‘위기’- 知的인 위기, 특히 인문학과 문학의 위기가 운위되고 있는 가운데 (중략) <창작과비평>은 권두좌담 ‘지구화시대의 한국학’에서 전통적 대학이념의 쇠퇴와 맞물린 인문학의 위기, 그 가운데서도… (후략).”
당시 내 눈에 영문학이나 불문학 등에 큰 뜻을 품고 학과에 들어온 친구는 별로 없어 보였다. 동기들은 술이 들어가면 서로의 점수를 물었다. 생각보다 낮은 점수로 들어온 친구가 있다면 그 행운을 축하했고 높은 점수로 들어온, 즉 눈치작전에 실패한 친구가 있다면 진심으로 안타까워했다. 문 닫고 들어온 사람이 승자였다.
문과대에는 잔잔한 패배의 기운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옆의 경영대는 입학점수가 우리보다 7점
[오지은의 마음이 하는 일] 인문학의 위기는 영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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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 태창흥업주식회사 / 감독 김수용 / 상영시간 65분 / 제작연도 1977년
<야행>의 제작 과정은 1970년대 한국영화의 일면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건이다. 1974년 1월에 촬영을 마친 영화가 3년이나 지난 1977년 4월에 개봉했고, 그해 국산영화 흥행 4위를 차지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윤정희는 1973년 5월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는데, 김수용 감독의 연락을 받고 방학 기간을 이용해 일시 귀국한다. 칸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을 만한 작품을 만들어보자는 제안이었다. <야행>은 <안개>(1967)의 후속 프로젝트 같은 기획이었는데, 역시 김승옥 원작으로 태창흥업이 제작하고 윤정희와 신성일이 주연을 맡았다. 각색은 시나리오작가로 출발해 데뷔작 <몸 전체로 사랑을>(1973)까지 연출했던 홍파 감독이 맡아 예술영화의 톤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 촬영은 당시 신문 기사에도 언급될 정도로 신속하게 진행됐는데, 1973년 12월 마지
[정종화의 충무로 클래식] 여성의 욕망에 관한 70년대식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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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선하게 태어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100% 그가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고 말할 수 없다. 그렇다고 그가 다시 나쁜 사람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장담할 수도 없다.” 리용자오 감독은 2019년 미얀마 북부 카친주에 있는 약물중독 치료 센터에서 스스로를 ‘나쁜 남자’라고 말하는 청년을 만난다. 청년의 이야기에 따르면 폭발적인 성격으로 인해 그는 가족에게 공포스러운 존재였고, 군대에서는 냉혹한 상사였다. 그리고 그는 40~60명의 목숨을 빼앗기도 했다. 카메라 앞에서 언뜻언뜻 드러나는 청년의 잔혹한 모습과 그가 저지른 악행을 고려할 때 그는 분명 악인이지만, 그가 살아온 복잡한 삶의 궤적을 돌이켜보면 선뜻 손가락질하기 어려워진다.
미얀마의 소수민족 카친족인 청년은, 2011년 미얀마로부터 독립을 요구하는 카친독립군에 강제 입대해 무장봉기에 참여했다가 왼쪽 다리를 잃었다. 한달에 30달러(약 3만5천원)를 받고 복무한 결과였다. 카친족의 독립 요구와 분쟁은 미얀마 땅에서 오랫동안
'미얀마의 소년병' 리용자오 감독, “청년의 존엄성을 지켜주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