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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창대는 그림자이지만 그림자여서는 안되는 캐릭터다. 전설의 ‘선거판의 여우’는 60~70년대 정치판의 판도를 바꾼 스타 김운범(설경구)이 선거에서 이길 수 있도록 기상천외한 전략을 짜냈지만 일급 참모의 존재는 전면에 드러나지 않고 그는 명함조차 없이 일한다. 하지만 <킹메이커>는 대의를 위해 뒤에 숨어야만 했던 서창대의 일대기에 주목하며 그를 격동의 근현대사에 파원을 만든 장본인으로 조명한다. 이선균은 “선균이를 확 바꿔봤으면” 하는 설경구의 제안으로 성사된 캐스팅이다. 언제나 작품의 전체 그림을 우선시했던 이선균이, 변성현 감독의 표현을 빌리자면 “영화에 필요한 기초공사도, 그 앞에 반짝이는 간판 역할도 하는”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거쳤던 고민을 들었다.
- 변성현 감독이 지금까지 영화 일을 하면서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눈 배우일 것이라는 말을 전해줬다.
= <킹메이커>는 시대극이고 편안한 일상 연기를 하는 작품이 아니다. 엄창록이라는 실존 인물이 모티브가 됐
'킹메이커' 이선균, 말의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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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메이커>에서 설경구는 스포트라이트가 떨어지는 연단의 한가운데에 서서 모두의 시선을 흡수하는 정치인 김운범을 연기한다. 그는 킹이고 빛이다. 영화는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정치인 김운범과 김운범의 곁에서 선거 전략을 짜는 서창대(이선균)의 관계에 집중하는데, 설경구는 환하고 거대한 존재가 되어 서창대의 그림자를 진하게 부각시킨다. 알려졌다시피 김운범은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을 모티브로 한 인물이며, 영화는 김대중 대통령이 1970년 야당의 대통령 후보로 나서기까지의 시기를 주요하게 다룬다. <자산어보>의 정약전으로 꼿꼿하면서도 호기심 많은 선비의 얼굴을 보여주며 흑백의 화면에 조명을 밝혔던 설경구는 <킹메이커>에서도 실존 인물과 영화적 캐릭터 사이에서 완벽한 줄타기를 하며 관객을 감탄하게 만든다.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이하 <불한당>)에 이어 변성현 감독과 또다시 만난 설경구와 <킹메이커> 이야기를 나눴다.
'킹메이커' 설경구, 사실적 연기의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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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성현 감독의 <킹메이커>는 엄혹한 세상을 바꿔보려는 정치인 김운범(설경구)과 선거 전략의 귀재 서창대(이선균)의 만남을 통해 1960~70년대 정치사의 풍경을 그려내는 영화다. 서창대는 목표를 이루는 것이 중요한 선거 전략가이고, 김운범은 목표를 이루는 것만큼이나 수단과 과정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정치인이지만 누구도 차별받지 않고 누구나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공통된 뜻으로 함께 발맞춰 선거를 치른다. ‘선거판의 여우’ 서창대의 등장으로 괜스레 위기의식을 느끼는 박 비서(김성오), 김운범의 곁에서 공기처럼 존재하는 이 보좌관(전배수), 젊은 선거운동원 수연(서은수) 역시 뜻을 함께하는 김운범 캠프의 사람들이다. 영화 개봉을 앞두고 설경구, 이선균, 김성오, 전배수, 서은수까지 한팀으로 뭉친 다섯 배우를 만났다.
KING OF DRAMA '킹메이커' 설경구, 이선균, 김성오, 전배수, 서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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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이 2021년을 빛낸 영화인을 발표했다. 올해의 영화인은 감독, 주연 남녀배우, 신인 감독 및 남녀배우, 제작자, 시나리오작가, 촬영감독까지 총 9개 부문으로, 2020년 12월부터 2021년 11월까지 개봉한 한국영화를 대상으로 했다. 선정에는 31명의 평론가와 기자들이 참여했다.
올해의 감독은 <모가디슈> 류승완 감독이다. 내전에 휩싸인 소말리아 모가디슈에 고립된 남북한 대사관 일행의 탈출기를 그린 <모가디슈>는 “극한의 도전을 멈추지 않는 감독의 태도가 그대로 영화에 반영되어 눈에 띄는 성과로 나타났다”는 찬사와 함께 지지를 얻었다. 차기작 <밀수>의 촬영을 마친 류승완 감독은 “어려운 제작 환경과 개봉 상황을 뚫고 큰 영화를 운영한 것에 대한 응원”으로 받아들이겠다며 소감을 밝혔다.
올해의 여자배우로는 <세자매>의 배우 문소리가 꼽혔다. 세 자매 중 둘째를 연기해 “결정적인 순간에 리드미컬한 완급 조절력을
<씨네21>이 뽑은 2021년을 대표하는 감독, 배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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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컴컴한 방에서는 사물을 볼 수 없다. 본다는 행위는 빛을 매개로 가능한 행위다. 그래서 엄격하게 말하면 “사물은 ‘보이는’ 것이지 ‘보는’ 것이 아니다”. 조명 디자이너 조수민의 <빛의 얼굴들>은 우리의 시각 경험을 좌우하는 빛에 대한 책이다. 저자는 우리가 빛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를 “눈으로 보는 모든 것이 사물과 공간이기 이전에 ‘빛’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빛이다.”
<빛의 얼굴들>은 1장에서 빛에 대한 잘못된 고정관념을 바로잡은 뒤, 빛과 사람, 빛과 공간, 빛과 사회를 차례로 이야기한다. 빛은 영화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일출과 일몰 시, 태양이 낮은 고도에 있어 지면을 측면에서 비추는 노란 태양빛과 하늘이 조금씩 어두워지며 진한 파란빛으로 빛나는 천공광이 만나 특별한 빛 환경이 만들어지는데 이것을 ‘골든아워’라고 한다. 모든 존재가 부드럽게 빛나는 이 시간대는 하루 중 짧게 스쳐가는 순간이지만 많은 영화들이
씨네21 추천도서 <빛의 얼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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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자잘한 악이 싫어서 홀로 열심히 살아도, 버틸 수 없는 순간이 온다. <내가 아는 가장 밝은 세계>의 주인공은 글 쓰는 프리랜서로 살며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고 성실히 살아왔다. 하지만 부동산 세계에 들어가며 달라진다. 전망 좋은 신축 빌라는 사자마자 바로 앞에 12층 빌딩이 세워지고 장마가 닥치자 곰팡이가 번진다. 보수 요청을 하려고 하니 시공사는 책임을 피하려고 부도를 내고 잠적해버렸다. 프리랜서라면 이미 다들 알고 있을 해촉증명서 제출에 시달리는 한편, ‘나’는 아파트 청약에 당첨되기 위해 남들에게 꼭꼭 숨긴 장애로 점수를 얻을까 따져본다. 한때 문학이 가장 밝은 세계라고 믿었던 ‘나’였는데, 이제는 외벽 보수공사로 눈속임한 빌라를 팔아치우고 외곽 지대의 아파트로 떠나게 되었다. 개인을 지켜주지 않는 세계에 살다 보면 자잘한 악에 무감해진다.
우리가 디딘 세계 자체가 문제라는 의식은 <희고 둥근 부분>에서도 생생하게 나타난다. 기간제 교사로
씨네21 추천도서 <아무것도 아니라고 잘라 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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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시골의 작은 농장에 사는 야스는 냉장고 문을 열고 손톱으로 과자의 설탕을 긁어먹기 좋아하는 어린이다. 야스에게는 모든 경험이 차가운 유리를 만질 때처럼 선명하고 생생하게 다가온다. 상상이 끝 간 데 없이 뻗어나가기도 한다. 다락방의 밧줄을 보며 아버지가 목을 매는 장면을 상상하기도 하고,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스케이트를 타고 호수 건너편으로 갈 수 있는 맛히스 오빠가 토끼 대신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그런데 오빠가 정말로 세상을 떠났다. 호수 얼음이 녹아서 물에 빠져 죽은 것이다. 목욕 중에 오빠의 사망 소식을 전하는 말을 들은 야스는, 욕조에 오줌을 싸버린다. 이후 야스는 입고 다니는 코트를 절대 벗지 않는다. 지독한 변비에 시달리기도 한다. 사람들이 죽은 오빠의 시신 엉덩이에서 뭐가 더 나오지 않도록 솜뭉치로 막아놓았다는 말 때문일까, 똥을 빨리 싸지 않으면 두더지가 똥구멍에 들어가 굴을 팔 것이라는 말을 들어서일까. 야스는 몸에서 아무것도 내보내고 싶지
씨네21 추천도서 <그날 저녁의 불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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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 시인이 이전에 출간했던 에세이집은 영화감독 켄 로치의 영화들과 노동자 친구들을 연결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었다. 근면히 노동하는 친구의 거친 손, 노력 없이 얻어지는 것을 믿지 않는 두 친구와 늦은 밤 소주를 기울이며 하염없이 슬퍼지던 기분, 아무도 언급하지 않으려 하는 세월호에 대해 쓸 때, 김현의 성실하고 맑은 문장들이 신기하게도 켄 로치 영화들과 긴밀히 연결되었다. 김현의 신작 에세이 <다정하기 싫어서 다정하게>에도 선한 사람들에 대한 애정, 충실한 하루에 대한 낙관은 여전한데 그에 덧붙여 시인은 더 진솔하게 현실을 토로한다. 김현은 참으로 여전하면서도, 더 성숙한 어른이자 동료가 된 것 같다.
출판 편집자로 일하는 직장인, 차별금지법과 생활동반자법을 지지하는 생활인, 시인이며 누군가의 애인이고 친구이기도 한 그의 이번 에세이는 유머러스하게 인간 김현을 내보인다. 책에 인스타 아이디를 쓰면서(여기 쓰면 얼마나 느는지 보겠다고 쓰고), 심심할 때마다 전국 팔도의
씨네21 추천도서 <다정하기 싫어서 다정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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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 <이런 얘기 하지 말까?>를 보자 웃음이 새어나왔다. 기자의 글쓰기(기획, 취재 등의 과정을 거쳐 목적이 확실한 기사)가 익숙했던 내가 ‘내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를 써야 할 때마다 든 생각이 ‘이런 얘기 해도 되나?’였기 때문이다. 혹은, 이런 얘기를 누가 읽는다고, 이런 얘기가 남한테도 의미가 있나, 라는 장벽이 가로막았다. 대중문화 기자로 일했던 최지은 작가 역시 자신이 겪은 일을 쓰기보다는 미디어라는 창을 한번 거친 글쓰기가 더 익숙한 방식이었을 거(잘 알지도 못하면서)라고 추측해본다. 거기다 ‘이런 얘기 하지 말까?’는 불특정 다수가 모인 자리에서 페미니즘이 대화의 소재가 될 때마다 여성들이 속으로 하는 생각이다. 괜히 분위기를 망치는 건 아닌지, 상대가 나를 까다롭고 예민한 사람이라고 평가하면 어쩌지? 불평등한 사회에 균열을 가져오는 것은 그런 오해를 감수하고 ‘이런 얘기’를 부득불 꺼내는 여자들이라는 걸 알면서도 용기내기가 쉽지 않다.
얼마 전 “
씨네21 추천도서 <이런 얘기 하지 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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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를 마무리하는 시기, 차분하게 삶을 돌아보고 미래를 계획하기 위해 당신의 독서 리스트를 풍부하게 만들 만한 책들을 소개한다.
씨네21 추천도서 - <씨네21>이 추천하는 12월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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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동독에서 서독으로 탈출한 시인이자 극작가, 영화감독이었던 토마스 브라슈(1945~2001)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디어 토마스>가 11월에 개봉했다. 영화는 독일 근현대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유대인이었던 브라슈의 부모는 나치를 피해 영국으로 망명했다 2차대전이 끝나고 동독으로 돌아왔다. 주인공의 부친은 동독 공산당 고위 간부로 출세가도를 달린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작가가 꿈이었던 주인공에게 동독은 꿈을 펼칠 만한 곳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동독에 보헤미안의 삶이 없었던 건 아니다. 영화에서 60~70년대 동독 언더그라운드 예술가의 삶을 엿볼 수 있다. 브라슈는 동독에서의 삶을 사랑하면서도 동시에 견딜 수 없어 했다. 급기야 1968년 소련군이 프라하를 점령했을 때 친구들과 프라하의 소식을 전단지로 만들어 뿌린다. 하지만 아버지의 고발로 감방 생활을 하다 집행유예로 풀려난다. 대학에서도 퇴학당한 브라슈는 공장에서 일하며 혁명과 사랑과 죽음을 노래하는 작품을
[베를린] 영화감독·시인·극작가 토마스 브라슈 일대기 담은 <디어 토마스>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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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가을부터 이어진 궁궐 배경 사극의 화려한 복식을 즐기던 참인데 tvN 드라마 <어사와 조이>를 보다 새롭게 눈이 뜨였다. 극중 양반의 사모관대나 임금의 용포는 빌려 입은 옷처럼 품이 들뜨고 엉성한데 양반 이하 백성들의 의상은 질감과 배색, 몸에 맞춘 핏까지 의상팀의 혼을 털어넣은 티가 역력하다. 왕이 직접 임명하는 비밀 관리인 어사는 임금의 의지와 연결된 직책이나 <어사와 조이>는 왕(조관우)에 대한 묘사를 무능한 결재권자로 한정한다. 암행어사가 된 종6품 관리라이언(옥택연) 역시 왕명이고 뭐고 지방 맛집 순례로 어사 임무를 때울 계획이었다. 한데 고대하던 충청도 짜글이 맛집은 문을 닫았고, 기별(이혼)부인 김조이(김혜윤)가 암행 파트너로 합류하게 된다. 이를 시작으로 탐관오리를 벌하고 억울한 백성을 구제하던 암행어사 이야기는 새로운 목소리를 얻는다. 자신의 행복을 찾겠다고 원님 앞에서 이혼 송사를 치르던 조이를 비롯해 이언이 만나는 백성들은 이미 자신을 구하
'어사와 조이' 지지 말고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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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 화려함, 그리고 탐욕으로 가득한 이탈리아 가문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 구찌를 탄생시킨 구치 가문은 1990년대에 경영권 승계 문제로 갈등이 있었고 살인사건 스캔들까지 겪었다. 이탈리아 패션산업을 오랫동안 취재한 사라 게이 포든의 논픽션 <하우스 오브 구찌>를 읽은 리들리 스콧 감독은 20년 전에 사치스러움 뒤에 가려진 구치 가문의 이야기를 영화로 옮기기로 마음먹었다. <스타 이즈 본>으로 아카데미 주제가상을 거머쥔 레이디 가가는 <하우스 오브 구찌>에서 질투와 탐욕에 눈이 멀어 살인사건을 벌이는 여인 파트리치아로 변신했고, <라스트 듀얼: 최후의 전투>에서 난봉꾼 연기를 보여준 애덤 드라이버는 그의 남편이자 구찌의 젊은 후계자 마우리찌오를 연기한다. 두 배우는 호화로운 패션은 물론 이탈리아 악센트까지 소화했다. <프로메테우스> <올 더 머니> <마션> <라스트 듀얼: 최후의 전
[Coming Soon]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 구찌를 탄생시킨 구치 가문, '하우스 오브 구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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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빠진 로맨스>
감독 정가영 / 출연 전종서, 손석구
지난주 1, 2위였던 <유체이탈자>와 <엔칸토: 마법의 세계>가 2, 3위로 내려앉고 지난주 3위였던 <연애 빠진 로맨스>가 1위에 올라섰다. <연애 빠진 로맨스>는 정가영 감독의 상업영화 데뷔작으로 데이팅 앱에서 만난 자영(전종서)과 우리(손석구)의 관계를 그린 작품이다. 하지만 <연애 빠진 로맨스>의 매출 점유율이 20%를 넘지 못하고, 1~3위의 관객수 차이도 1만명 내외로 큰 차이가 없는 상황이다. 4위에는 12월8일 개봉한 <돈 룩 업>이 새롭게 이름을 올렸으며 <듄>은 굳건하게 5위를 유지 중이다. 한편 12월15일 개봉한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은 개봉 첫날 63만5988명을 동원하며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최고 오프닝 스코어를 기록했다. 하지만 새 방역 지침으로 영화관 운영시간이 밤 10시로 제한되면서 <
[BOX OFFICE] '연애 빠진 로맨스' 1위! 다음 타자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