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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틱, 틱... 붐!>으로 린마누엘 미란다의 성공적인 할리우드 데뷔를 확인한 다음날은 공교롭게도 디즈니+의 한국 서비스 론칭일이었다. 그의 대표작이자 그에게 토니상, 그래미상, 퓰리처상, 맥아더 펠로십까지 안기며 브로드웨이의 역사를 쓴 <해밀턴>의 공연 실황을 정식으로 볼 수 있는 날이었다는 뜻이다. <해밀턴>을 떠올릴 때면 책 한권이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말이 허상이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모든 것은 <인 더 하이츠>를 마친 린마누엘 미란다가 공항에 앉아 알렉산더 해밀턴의 전기를 읽으면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10달러 지폐에 초상을 새긴, 고아이자 이민자 출신 초대 재무부 장관의 파란만장한 삶에 매료된 미란다는 그의 삶을 무대로 옮겨 정부의 알렉산더 해밀턴 10달러 퇴출 논의도 백지화시키는 뮤지컬 효과를 일으킨다.
그러니 디즈니+에 가입하자마자 <해밀턴>을 검색할 수밖에. 하지만 기대는 금세 당혹감으로 덮였는데, 한글자막이
'해밀턴' 한글자막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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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이 뮤지컬의 호소력을 풍부히 견인하니 넷플릭스의 선택지도 늘었다. 넷플릭스 뮤지컬영화 <틱, 틱... 붐!>은 11월19일 스트리밍 서비스 실시를 일주일 앞둔 12일에 극장 상영을 시작했다. 양쪽의 경험을 모두 하고 싶어 온라인 시사 참석 후 집 앞 극장에서 영화를 다시 봤다. 연달아 두번 보고 싶었을 만큼 영화가 좋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틱, 틱... 붐!>은 뮤지컬 <렌트>를 유작으로 남긴 조너선 라슨이 자전적인 이야기를 풀어낸 동명의 공연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그 안에는 35살에 죽음을 맞기 전 라슨이 뮤지컬을 꿈꾸며 살아온 세월이 서른살 생일을 앞둔 1990년 초입의 며칠로 압축돼 있다. 록 모놀로그로 기획된 최초의 <틱, 틱... 붐!>과 라슨 사후 3인극으로 재편된 <틱, 틱... 붐!>, 영화로 구현할 수 있는 회상과 환상 장면들이 멋들어지게 섞여 있다. 앞서 소개한 <디어 에반 핸슨>의 원안 작
'틱, 틱... 붐!'이 품은 여명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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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 마지막 토요일, 달뜬 마음으로 귀가 후 한숨도 못 잤다. 7년 만에 돌아온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월드투어 프로덕션의 서울 공연을 만끽한 밤이었다. 두달 전 앙상블 배우 중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와 잠시 중단했다 재개한, 입장 전 서너 차례의 체온 검사와 문진표 작성 후 관람한 공연은 걱정을 잊게 할 정도로 황홀했다. 여운을 안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TV를 틀었다. 유튜브를 연결해 본 클립은 조엘 슈마허의 영화 <오페라의 유령> 속 지하 호수 신. 무대에 오를 순 없었던 촛대 행렬과 깊은 물길을 보며, 영화가 잘하는 게 무엇인지 확인한 동시에 노래로 모든 걸 이해시킨 뮤지컬의 설득력을 되새겼다. 이어서 각국의 크리스틴과 팬텀을 차례로 소환해준 알고리즘은 슬슬 다른 작품들로 엄지를 잡아끌었다. 일레인 페이지가 부른 <Memory>(<캣츠>)를 듣고, <Defying Gravity>(<위키드>)를 옥주현과
'디어 에반 핸슨'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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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이 실린 <씨네21> 1332호에 가장 많이 언급된 이름은 린마누엘 미란다일 것이라 확신한다. 그는 <엔칸토: 마법의 세계>의 음악을, <틱, 틱... 붐!> 연출을, 공연 실황 <해밀턴>의 주연과 작사·작곡을 도맡은 이로, 현재 브로드웨이와 할리우드 모두에서 뮤지컬 1인자의 위용을 떨치는 중이다. 기세는 아이러니하게도 오프라인 공연이 어려워진 코로나19 이후 더 커지는 중이다. 그가 원작자인 뮤지컬 <인 더 하이츠>의 영화화 버전, 그의 영화 연출 데뷔작인 <틱, 틱... 붐!>, 그를 스타로 만든 뮤지컬 <해밀턴>의 공연 실황 모두 팬데믹 시기에 공개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연스레 “뮤지컬영화가 새로운 트렌드가 될 거라 보느냐”는 질문을 받게 되었고, 디즈니+ 가입자 수를 훌쩍 끌어올린 <해밀턴>의 사례로 “공연을 영화로 보여주는 게 관객을 빼앗기는 게 아
니라 오히려 팬층을 늘린다”는
뮤지컬이 스크린으로 간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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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 4부부터는 완전히 달라진 세계가 펼쳐진다. 정진수 의장(유아인)이 사라지고 난 뒤 새진리회를 믿는 사람들은 빠르게 늘어나고, 사람들은 지옥의 고지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여기 공포에 의해 억압되는 세상에 던져진 한 부부가 있다. 방송국 PD인 배영재(박정민)는 새진리회가 탐탁지 않다. 바쁜 업무 탓에 이제 막 출산한 아내 송소현(원진아)의 곁을 지켜주지 못할 때 죄 없는 아기에게 지옥의 고지가 내려진다. 절망에 좌절할 틈도 없이, 이들 부부는 사실을 은폐하려는 새진리회의 손길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 미쳐버린 세상 속 평범한 사람들을 대변하는 박정민 배우는 “부산국제영화제 때 3화까지만 공개됐는데 역할을 상세하게 소개해드릴 수 없어서 아쉬웠다. 부산에서 반응이 좋았는데 내가 나오는 4화 이후로도 괜찮아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다. 어떻게 봐주실지 궁금하다”며 설레는 마음을 드러냈다. 송소현 역의 원진아 배우는 “<지옥>은 볼거리고 많고 무서우면서도
비틀린 신념 속 선택의 문제를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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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수 없는 이유로 신으로부터 죽음을 고지받고 목숨을 빼앗기는 시연을 겪어야 하는 <지옥>의 세계는 끔찍하고 미스터리하다. 최근 출연작을 통틀어 가장 많은 대사를 소화한 배우 유아인이 대중을 압도하는 비뚤어진 카리스마를 내뿜는 고독한 인물 정진수를 연기한다. 그에 맞서 정의감과 분노를 표출하는 상처 많은 형사 진경훈 역의 배우 양익준은 부성애 넘치는 아빠의 면모를 드러낸다. 시리즈의 절반에 해당하는 3화까지의 이야기가 정진수와 진경훈의 대립이라면 4화에서 6화에 이르는 극의 후반부에서는 극 전체를 아우르는 민혜진 변호사를 연기하는 배우 김현주의 진면모를 볼 수 있다. 세 배우는 작품의 어두운 세계관과 달리 즐거웠던 현장 분위기를 전하며, 연상호 유니버스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정진수 의장, 민혜진 변호사, 진경훈 형사는 모두 <지옥>의 포문을 여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이다. 캐릭터의 어떤 점에 끌려서 이 작품에 참여하게 됐는지 궁금하다. 시리즈를 관람한
"믿음과 두려움은 함께 오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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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2003)
연상호 감독은 <염력>에서 초인적인 힘을 얻게 된 한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서 힘없고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이 세상과 맞설 때 필요한 동력과 효과에 대해 다룬 적 있다. <지옥>의 많은 인물들도 이런 저항정신을 지니고 있는데 <지옥>의 엔딩은 묘하게 곤 사토시 감독의 <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의 엔딩과 닮아 있다. 꿈과 환상의 경계를 오가며 ‘꿈’, ‘망상’과 같은 주제를 다루던 곤 사토시 감독이 세 번째 장편 <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에서는 난데없이 도시 빈민층의 삶을 사실적인 터치로 그려낸다. 거친 알코올중독자와 소녀 같은 마음씨를 지닌 게이, 가출 소녀가 모여 도쿄 뒷골목에서 아이를 발견하게 되는 이 작품이 보여주는 ‘구원’의 의미가 <지옥>의 메시지와 닮아 있다. 두 작품의 특정한 설정이 일치하는 것 또한 우연은 아닐 것이다.
<사이비&
의심하고 질문하고 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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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19일 넷플릭스에서 공개하는 시리즈 <지옥>은 <부산행> <반도>의 연상호 감독과 <송곳>의 최규석 작가가 함께 쓰고 그린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신과 지옥의 이미지를 배반하는 충격적인 설정과 사건을 통해 개인과 사회, 집단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일종의 재난 상황에서 이 사회는 어떤 대처 능력을 지니고 있는지 마치 테스트라도 하듯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지옥>이 제시하는 삶의 태도는 무엇일까. 연상호 감독이 창조한 지옥도 속으로 들어가보자.
천사의 고지, 그리고 사자의 시연에 의해 세상은 지옥이 되고 만다. <지옥>의 기본적인 설정은 신이라고 하는, 인간이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는 영역의 어떤 힘이 물리적으로 발현되어 목숨을 거둬갈 수 있는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알 수 없는 선택에 의해 누군가는 천사로부터 자신의 사망 일
연상호 감독의 '지옥' 김현수 기자의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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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상호 감독과 최규석 작가가 함께 쓰고 그린 웹툰 <지옥>이 6부작 넷플릭스 시리즈로 재탄생했다. <지옥>은 웹툰이 완결되기도 전에 드라마 제작이 확정되어 화제를 모았고 영국, 일본, 대만, 프랑스 등에서도 단행본이 출간됐다. ‘사람이 만들어가는 지옥’이라는 단행본 <지옥>의 소개 카피처럼 연상호 감독의 시리즈 <지옥>이 제시하는 세계의 풍경이 섬뜩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신의 분노가 아니라 인간이 인간을 해치기 시작할 때 그것 역시 또 다른 ‘지옥’이라는 걸 보여주기 때문이다. 있을 수 없는 상상 속 풍경이 아니라 지금 당장이라도 벌어질 수 있는 실재하는 지옥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작품이다. 이번호에서는 11월19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될 6부작 <지옥>이 지닌 이야기의 매력에 관해서 짚어보며 원작과의 닮은 점, 함께 보면 좋을 추천작을 소개한다. 시리즈의 주역인 유아인, 김현주, 박정민, 원진아, 양익준 배우를 만나 연상호 감
지옥의 문이 열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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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상호 감독과 최규석 작가가 함께 쓰고 그린 웹툰 <지옥>이 6부작 넷플릭스 시리즈로 재탄생했다. <지옥>은 웹툰이 완결되기도 전에 드라마 제작이 확정되며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1~3부에선 알 수 없는 이유로 신으로부터 죽음을 고지받고 목숨을 빼앗기는 ‘시연’의 상황이 펼쳐지며, 4부부터는 사람들이 고지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신흥 종교 단체인 새진리회를 믿고 따르는 완전히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단행본 <지옥>의 소개 카피처럼, ‘사람이 만들어가는 지옥’이란 세계를 연상호 감독과 함께 그려간 유아인, 김현주, 박정민, 원진아, 양익준 배우를 <씨네21>이 만났다. 더 자세한 내용은 <씨네21> 1332호와 <씨네21> 유튜브 채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새진리회 정진수 의장 역의 유아인
정진수는 <소리도 없이>의 태인, <#살아있다>의 준우 등 그간 유아인이 맡아온 인물들과 달리 대중을 압도하는
유아인, 김현주, 박정민, 원진아, 양익준. 다섯 배우가 말하는 <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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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를 쓸 때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또 만들어진 가사를 확인하기 위해 쓰는 나만의 방법이 있다. 문장을 뒤집어보는 것이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잊어야 할 일은 잊어요 → 잊지 말아야 할 일은 잊지 말자’, ‘우리 좋았었던 날은 모두 두고서야 돌아설 수 있었네 → 좋았었던 날을 모두 놓아두지 않고서는 돌아설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함께했던 날들의 열에 하나만 기억해줄래 → 우리가 함께했던 날의 십중팔구는 잊어버리자’, ‘조금 힘겨운 하루였다고 해도 언제나 그렇지는 않을 수도 있겠지 → 때로 아닐 수 있겠지만 대체로 힘겨운 하루일 것이다.’
엄밀하게 규칙이나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고 그냥 바꾸어본다. 1천피스 퍼즐을 맞추다가 그림을 보고서는 더이상 맞출 만한 것이 없을 때 아무 조각이나 일단 갖다대보는 것처럼. 지나가는 차 번호판의 숫자를 그냥 더해보는 것처럼. 때로는 단순히 순서를 반대로 놓아보기도 하고, 가끔은 원인과 결과를 바꾸어보기도 하고, 조금 논리적으로 수
[윤덕원의 노래가 끝났지만] 우리는 끝없는 과정에 놓여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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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워즈>와 <스타트렉> 중 어느 쪽이 더 좋냐는 질문은 정말 난제 중의 난제다. 엄마가 좋냐 아빠가 좋냐고 물으면 고민은 되겠지만 솔직히 엄마가 좀더 좋다고 말할 것 같은데, 이 질문만은 도저히 답을 내릴 수가 없다. 두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워즈’와 ‘트렉’은 우주의 끝과 끝에 위치한 스페이스 오페라다. 전혀 다른 시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두 우주는 도무지 공통점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서로 너무 달라 접촉하면 쌍소멸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스타워즈>는 신비주의 초능력 칼잡이와 카우보이가 수선을 떨며 전쟁을 벌이는 유머러스한 영웅담이다. 등장인물들도 대개 심부름꾼, 군인, 상인, 범죄자, 제다이 등 과학과는 조금도 인연이 없을 듯한 인상을 강하게 풍긴다. 반면 <스타트렉>의 우주 여행객들은 다들 조금씩 과학자다. 과학자들이 고상한 말투로 과학적인 척하며 별로 과학적이지도 않은 문제를 과학적으로 해결
[이경희의 SF를 좋아해] 워즈가 좋아요, 트렉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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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렌치 디스패치>에 관한 작품비평이라기보다는 웨스 앤더슨의 세계에 관한 노트가 되었다. 눈길을 끄는 외관보다 더 독특한 내부를 생각해보았다.
웨스 앤더슨이라는 연출자에 관해 비평하는 것은 은근히 까다로운 일이다. 그는 명성과 성취에 비해 늘 덜 회자된다. 정확히는 특정한 화제에서만 동어반복되는 편이다. 인상적인 ‘영상미’와 화려한 ‘색감’은 그의 영화가 개봉할 때마다 나오는 소리이지 않은가. 물론 감독 스스로가 강박적으로 보일 만큼 화면을 정교하게 디자인하는 데 천착하니 정녕 피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의 미장센은 즉각적으로 아름다우며 이를 거부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그가 영화의 외피를 현란하게 재단하는 만큼 영화의 내부 질서 또한 능란하게 조직한다는 점을 생각해볼 때 유난히 비주얼리스트로서의 면모만 부각되는 것은 다소 억울한 일이다.
그가 20년 전 연출한 <로얄 테넌바움>은 거짓말에 관한 영화였다. 오랫동안 머물던 호텔에서 쫓겨날 신세가
허구와 인공의 앤더슨 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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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이 좋다 사람이 좋다 풍악 따라 걸어온 유랑의 길 (중략) 가진 건 없어도 행복한 인생 나는 나는 나는 딴따라.” 송해의 노래 <딴따라>의 가사일부다. “딴따라라는 게 불어로 팡파르에서 나온 말이에요. 쿵짝쿵짝 팡파르, 쿵짝쿵짝 딴따라. 전에는 비아냥대고 경시하는 소리로 들렸지만 지금은 상당히 좋은 소리라 생각합니다.” 방송인 송해는 1927년 일제강점기 황해도 재령에서 태어나 한국전쟁 때 부산으로 피난 와 이름을 송해로 바꾸고 떠돌이 악극단 생활을 하며 희극인으로서 토대를 닦았다. 무엇보다 1988년부터 지금까지 <전국노래자랑>의 진행을 맡아, 최장수 프로그램의 최장수 진행자로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는 원로 방송인이다. 일요일 낮 12시가 되면 들려오는 정겹고 힘찬 “전국~ 노래자랑”이라는 구호, 땡과 딩동댕을 경쾌하게 오가는 실로폰 소리와 유쾌한 웃음소리. 그 한가운데 30여년이 넘게 송해라는 존재가 있었다. 그러나 11월18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l
나는 아버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