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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릭 저먼을 맨 처음 만났던 건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도서관에 있던 <가든> LD를 봤을 때였다. 예전에 본 적 없던 새로운 형식에 가장 놀랐고, 화려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우울한 분위기가 너무 좋았고, 회화의 아름다움이 영화에 이런 식으로 녹아들 수 있다는 점에 다시 한번 놀랐다. 그뒤로 데릭 저먼에 대한 관심에 <카라바지오>와 <에드워드 2세>를 찾아봤었는데, <가든>과는 다르게 너무도 정적인 이 두 영화는 사실 큰 감동을 안겨주진 않았었다.
그리고는 잠시 잊고 있었다. 그동안 난 군대를 다녀왔고, 3년이란 세월은 학교에 많은 변화를 안겨주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반가운 변화는 지하실에 새로 생긴 영상자료실이었는데, 그곳에서 다시 되찾은 영화가 바로 <카라바지오>였다. 격한 생애를 살다 마감한 그의 인생사가 무척이나 가슴 아프게 다가왔고, 그의 광적인 행동이 모두 이해될 정도로 카라바지오란 화가는 강렬히 내 가슴속에 들어와버렸다
내 인생의 영화, <카라바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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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적 사고의 여지를 남기지 않은 <매트릭스3 레볼루션>
<매트릭스3 레볼루션> 속의 혁명은 혁명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역(逆)혁명에 가깝다(물론 이것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매트릭스3 레볼루션>이 세계의 숨겨진 비밀을 당신에게 알려줄 거라고 성급히 기대하지는 말라. 지난 세기에 시작된 이 시리즈물의 인간 내면을 향한 격렬한 여정은 스펙터클의 대혼란 속에서 이제 한 차례의 연습을 마무리짓고 있는 듯 보인다.
사실 <매트릭스> 본편이 애초에 보여준 독창성은 이 영화가 시각적 혼란보다는 형이상학적 내용을 통해 우리의 머리를 아프게 했다는 데 있다. 모순되게 들리지만, 가히 천재적이라고 할 만한 <매트릭스> 본편은 총알의 속도에 가까운 슬로모션을 통해 영화사상 가장 기억할 만한 “폭력”장면을 펼쳐 보인 “지적인” 액션영화였던 것이다. 거기에다 <매트릭스> 본편은 90년대 후반의 두 가지 영화적 유행을 (비디오 게
지나친 `비주얼`만의 승리,<매트릭스3 레볼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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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으로서의 나’를 발견한 <프리다>의 프리다 칼로
“나는 나 자신을 그린다. 왜냐하면 나는 너무도 자주 외롭고 또 무엇보다 내가 가장 잘 아는 주제가 나이기 때문이다.”
프리다 칼로(1907∼54)는 진정 외로운 예술가였다. 아마 역사상 가장 외로운 예술가의 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는 그렇게 외로웠지만, 그를 둘러싼 환경은 늘 복잡하게 요동쳤다. 아니, 그렇게 복잡하게 요동쳤기에 그의 외로움이 더욱 깊을 수밖에 없었다. 영화 <프리다>는 바로 그 진정한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이다. 우선 영화 전체에 대한 개인적인 평을 하자면, 한마디로 맛있는 멕시코 요리를 먹은 듯 매우 만족스러운 작품이었다. 이야기의 구성도, 주인공 샐마 헤이엑의 연기도, 간간이 등장하는 초현실주의적인 화면 기법도 모두 짜임새가 있고 알찼다. 예술가 영화, 특히 미술가 영화를 만드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인데(미술 작품은 기본적으로 정지돼 있는 이미지여서 이를 동영상으로 담는 것 자
상처가 키운 대모,<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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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최민식이 작심하고 카메라 앞에서 명치에 힘을 주면, 결코 대충은 수습이 안 된다. 최민식이 움직이거나 멈춰 서 있는 스크린을 보는 동안 그의 아픔과 쾌감은 어물쩍 관객의 몸으로 옮겨오고 다음에 그가 무슨 짓을 할지 궁금해 좀이 쑤신다. 그처럼 강력한 최민식이라는 배우의 감정적 설득력은 프레임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극중 인물로 아예 살아버리는 연기방식에서도 비롯되지만, 배우 뒤에 숨은 사람 최민식이 어쩔 수 없이 풍기는 선의와 연민의 기운에도 기인한다. 그는 관객을 감상적이고 예민하게 만든다. 그러니 <올드보이>의 관객은 고통스럽다. 최민식의 오대수는, 원형적 갈등으로 축조된 복수담에 우리를 자꾸 ‘필요 이상’ 몰입하게 만든다. <올드보이> 개봉 사흘째의 오후, 어젯밤의 행복한 숙취를 아직 몸 안에 간직하고 있는 최민식을 만났다. 그리고 몰입했다.
당신은 현재 우리 영화계에서 고전적 의미의 정극 배우상에 가장 가까운 연기자가 아닐까. 우선 미남이고 성량, 음
<취화선><올드보이>의 배우 최민식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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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호씨도 우진 역을 탐냈다고 들었다. 이우진 역이 그토록 매력적인 까닭은. 오오, 이우진은 너무나 훌륭한 역이다. 슬픔과 순정, 잔인무도함과 용의주도함까지 캐릭터의 폭이 이보다 넓을 수 없다. 우진은 누나를 잃은 뒤 삶이 정지된, 기형적인 인간이다. 그는 수십년간 “우리를 파멸시킨 놈”만 생각한 인간이다. 햄릿 같기도 하고 에드워드 노튼처럼 여린 듯 무시무시한 악마성을 가진 배우에게 어울리는 역이다. 사실 박찬욱 감독에게 “내가 우진을 하고 오대수를 캐스팅하는 게 어때요?”라고 간곡히 제의했다. 그런데 2∼3일 고민하더니 거절하더라. “선배가 우진을 하면 오대수는 신구 선생이 하나요, 최불암 선생이 하나요?”라며. 나도 살 쪽 빼고 스킨케어받으면 할 수 있다고! <올드보이2>가 나오면 이우진 아닌 이우신이라도 하고 싶다.
당신의 얼굴과 연기에는 감정과 생각을 그저 전할 뿐 아니라 관객이 자기 것처럼 여기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일정한 경지에 오른 그 능력을 마음껏 펼친
<취화선><올드보이>의 배우 최민식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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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대학로에서 열렸던 서울독립영화제 사전 감독 모임. 영화제쪽이 본선에 오른 이들을 초대하는 이 행사에는 50여명의 감독들이 자리해 성황을 이루었다. 이날 가장 바빴던 이는 조영각 집행위원장이었는데, 독립영화계 마당발로 소문난 그도 “감독님 맞으시죠?”라며 손내밀기 바빴다. 집행위원인 구정아씨도 “잘 모르는 감독들이 너무 많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12월5일부터 시작되는 서울독립영화제 2003은 어쩌면 새로운 얼굴들만큼이나 지금까지 맛보지 못한 새로운 영화를 안겨줄지도 모른다.
12월14일까지 10일 동안 서울 대학로 동숭홀과 나다에서 열리는 이번 행사의 슬로건은 ‘거침없는’이다. 낡은 시대, 낡은 영화를 넘어서고자 하는 거침없는 목소리들에 주목하겠다는 이번 영화제의 포부는 다른 어떤 행사보다도 100편의 상영작이 말해줄 것이다. 특히 지난 9월부터 출품된 414편(극영화 286편, 실험영화 35편, 애니메이션 51편, 다큐멘터리 41편 등) 중 예심위원들에 의해 본
현실에 대한 영화의 `거침없는` 목소리,서울독립영화제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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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에 선 영상세대를 위한 제언
현재 우리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격렬한 진통을 겪으며 양극화의 위험에 처해 있다. 홈시어터와 인텔리전트 주방체제를 갖춘 첨단하이테크 고층아파트가 하늘을 치솟는 새로운 파노라마가 펼쳐지는 가운데, 다른 한편에서는 생존의 벼랑 끝에 내몰린 노동자, 농민들의 분신이 잇따르고 있다. 이렇게 양극화된 사회적 풍경은 지상과 지하의 삶으로 양분된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묵시록적 풍경을 연상시킨다. 첨단 인텔리전트 빌딩 위에서 사는 극소수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사이보그의 탄생은 테크노피아의 실현이겠지만, 사이보그에 쫓기는 다수의 지하생활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는 지옥의 묵시록에 다름아닐 것이다.
이 양극화된 풍경이 더욱 묵시록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그 위로 ‘위험사회화’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기 때문이다. ‘대구참사’와 같은 위험이 ‘압축적 근대화’ 과정에서 예측돼온 물리적 위험이라면,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와 정보화가 가져오는 문화적 위험은 아
영화의 힘을 다시 묻는다 - 한국영화의 미래를 찾아서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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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와 한국밖에는 없소!” 드디어 의문이 풀리다
그가 젊은 여성 감독과 함께 68혁명의 현재적 의미를 묻는 영화 <코드 68>을 준비 중이라는 건 집으로 찾아가 만난 뒤에야 알았다. 판권담보융자로 제작비도 마련해 카날 플뤼가 제작사로 나섰으며, 촬영은 그때 그 시기에 맞춰 내년 5월에 시작할 예정이었다. 이런 우연이 있다니. 그런데 행운은 잇따랐다. 궁금증을 속시원히 풀지 못하고 그냥 돌아가는 게 아닐까 하던 우려는 장 앙리 로제를 만나면서 풀렸다. 물론 혹자는 이걸로 해답이 되겠느냐고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는 68세대의 자유로움을 35년 동안 그대로 간직해온 듯한 느낌을 물씬 풍기며 어떤 질문에도 명쾌한 답을 일러줬다. 최소한의 살림살이로 아파트를 텅빈 듯 꾸며놓은 그의 소탈하고 소박한 태도가 더욱 신뢰감을 줬다(이건 어쩔 수 없는 편견이다. 그는 드브레의 인상과 드브레의 집과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장 앙리 로제는 1969년 고다르와 함께 정치적이고 표
영화의 힘을 다시 묻는다 - 한국영화의 미래를 찾아서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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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퀴어아카이브가 “퀴어 베리테-레즈비언, 게이 다큐멘터리의 지도그리기”라는 주제하에 7일(일)까지 아트시네마에서 상영회를 갖는다. 성적 소수자들의 삶과 정치학을 다룬 10개국의 다큐멘터리 18편을 통해 ‘적극적인 개입의 장’으로 관객을 초대한다. 무엇보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대중문화의 주류 안에서 게이, 레즈비언의 영토를 구축해나가는 과정을 기록한 다큐멘터리들이다. 국내에서도 상영되어 인기를 모았던 영화 <헤드윅>에 대한 다큐멘터리 <좋든 싫든: 헤드윅 이야기>는 록밴드 ‘헤드윅 앤 앵그리인치’의 역사를 다룬 것이자, 극영화 <헤드윅>의 메이킹 다큐멘터리 역할을 한다.
밴드의 결성과정과 최초 공연 자료, 연이은 관객의 반응, 영화의 제작과정, 선댄스영화제와 로스앤젤레스 게이영화제에서의 상영에 이르기까지 극영화의 바탕이 된 모든 사실을 다룬다. 헤드윅이자 주연과 감독을 겸한 존 미첼 카메론 외에도 밴드 또는 영화제작과 관련된 주요 인물들이 등장
퀴어 다큐멘터리 상영전, 10개국 작품 18편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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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혁명의 무기로 삼은 지 35년, 그들은 의심하지 않았다 11월20일 Arcueil Cachan의 에스파스 장 빌라 극장. 시간은 밤 11시를 넘기고 있다. 밀레탕트(투쟁참여적) 시네마의 살아 있는 거장 장 루이 코몰리가 1시간 넘게 꼬박 선 채로 관객의 쏟아지는 질문에 응한다. 60년대부터 정치적 다큐멘터리 작업을 왕성히 벌이는 동시에 고다르와 함께 논쟁적인 글들을 생산했던 그의 에너지는 지칠 줄 모른다. 올해 퐁피두센터에선 코몰리 회고전을 열었고(마치 예술의전당에서 김동원 감독 회고전을 연 셈이랄까. 이때 코몰리는 10년에 걸쳐 완성시킨 다큐멘터리를 통해 지난해 대선에서 2위를 차지하며 파란을 일으켰던 극우파 장 마리 르펭에 대해 날카로운 분석을 가했다), 최근에는 방송자본이 막강한 영향력을 휘두르고 있는 프랑스 영화현실에 반발해 “차라리 가난한 영화를 만들자”며 <카이에 뒤 시네마>에 또 한번 논쟁적인 글을 실었다.
이날 코몰리는 ‘다큐멘터리 스크린’이란 제
영화의 힘을 다시 묻는다 - 한국영화의 미래를 찾아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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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반동’을 만나다
파리의 겨울은 지독하게 우울하다. 늘 흐린 하늘에 툭하면 차가운 비를 뿌리고 냉기는 집요하게 옷 속으로 파고든다. 하지만 그에 비할 수 없이 힘들었던 건 레지스 드브레를 만나는 일이었다. 3주 전부터 섭외를 시작했으나 가타부타 답은 좀체 오지 않았고, 기획을 개편 특집이 아니라 신년 특집으로 미뤄야겠다고 내부 조율을 마치려는 찰나 약속시간을 통보받았다. 파리에서 취소 위기를 겪었고 시간은 한번 더 바뀌었다. 소르본 부근에 있는, 파리의 전형적인 고급 주택에서 만난 그는 파리의 겨울 하늘 못지않게 냉철하고 까다로웠다. 건네준 <씨네21>을 뒤적거리며 던진 그의 첫 일성은 “68년 5월이라면 잘못 선택했다”였다. “난 그때를 대표하지 않는다. 그 당시 난 남미 감옥에 있었으니까. 무엇보다 나는 철학자였으며, 정치적 혁명운동에 전념했고, 최근에는 종교를 연구하고 있다. 내가 가장 관심을 갖는 바는 ‘영향’(influence)이다. 설득하고 매혹하는
영화의 힘을 다시 묻는다 - 한국영화의 미래를 찾아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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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은 살아있다 - 상상력에게 권력을!
“상상력에게 권력을!” 68년 5월 파리를 뒤덮었던 구호다. 68혁명의 슬로건과 2003년의 한국, 아니 한국영화는 과연 어울릴까? 35년 전과 현재에 대해 동시에 묻는 이 낯선 작업이 엉뚱한 것만은 아니다. 68년과 지금은 다르면서도 닮았으니까.
유럽과 미국을 들끓게 한 68혁명의 배경은 베트남전에 대한 반전 움직임이었다. 거짓으로 드러날 명분을 내세워 전쟁을 시작하고, 호언장담과 달리 전쟁은 자꾸 이상하게 흘러간다. 베트남전이 그랬고, 지금의 이라크전이 마치 그때를 되풀이하는 듯하다. “윌슨은 어디로 갔나, 펜타곤으로 기어가고 있다!” 1965년 윌슨 총리가 이끄는 영국 노동당 정부를 향해 런던 시민들은 이렇게 외치며 반전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다. 2003년 11월21일 런던에선 20여만명이 반전 시위를 벌였다. 이날 토니 블레어 노동당 총리는 자신을 찾아온 부시 미국 대통령과 함께 “한치도 겁내거나 양보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영화의 힘을 다시 묻는다 - 한국영화의 미래를 찾아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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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카치아피카스 교수, 한국의 문화적 투쟁을 지지하다
미국 보스턴의 웬트워스 공과대 인문사회과학부 교수이며 <뉴 폴리티컬 사이언스>의 편집장이기도 한 조지 카치아피카스는 <신좌파의 상상력>에서 68혁명이 일종의 문화혁명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사회과학자인 그에게 굳이 서면으로나마 인터뷰를 청한 데에는 이런 이유가 있으나, 그가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마르쿠제와 연구하며 그의 영향을 받아 ‘에로스 이론’을 자신의 분석틀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도 작용했다. 아마도 그는 영화인과 인문학자보다 한 발짝 멀찍이 떨어져 우리에게 좀더 객관적이고 유용한 정보를 줄 수 있을지 모른다.
-68혁명이 벌어지던 그때 당신은 어디서 무엇을 했나? 11년 동안 캘리포니아주의 오션비치에 있는 급진적인 반문화 공동체에서 활동했다고 하던데.
=그렇다. 오션비치는 1970년대의 청년문화가 꽃피웠던 반문화의 안식처이자 대안적 생활방식, 상업적 문화와 체계에 맞서는 정치 활동의 중심지였다. 한
영화의 힘을 다시 묻는다 - 한국영화의 미래를 찾아서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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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여성관객영화상 최고의 영화상에 권칠인 감독의 <싱글즈>가, 최고의 남녀 캐릭터에 <질투는 나의 힘>의 원상(박해일)과 <바람난 가족>의 호정(문소리)이 각각 뽑혔다. 최악의 영화상에는 윤제균 감독의 <색즉시공>이 선정됐으며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는 남녀 주인공 태일(차태현)과 일매(손예진) 모두 최악의 캐릭터로 뽑히는 불명예를 안았다.
여성문화예술기획이 주최하는 여성관객영화상의 수상작은 지난달 10-16일 1천622명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과 우편 설문 조사 결과로 선정됐다. 시상식은 5일 6시 서울 대방동 서울여성플라자 아트홀에서 열린다. (서울=연합뉴스)
여성관객이 뽑은 최고 영화는 <싱글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