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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하마. 근대까지만 해도 보잘것없는 한촌이었던 이곳은 일본이 서구를 향하여 문을 활짝 열면서 개항장이 되어 항구도시로 탈바꿈했다. 도쿄에서도 가까운 이 아름다운 도시에는 세계 유수의 사진 컬렉션을 갖춘 미술관이 있어 사람들의 발길을 모으는데, 매번 이곳을 찾을 때마다 근대도시와 근대예술인 사진의 만남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사진은 영화와 더불어 우리가 기원을 아는 몇 안 되는 예술 장르이다. 누가 최초로 동굴벽화를 그렸는지 아니면 대리석을 다듬어 인체를 조각하기 시작했는지 우리는 도저히 알 수 없다. 그저 오래되었거니 여기며 미술사를 통해 찬란한 미의 역사에 감탄한다. 그렇지만 그에 비하면 역사가 턱없이 짧은 사진이나 영화에 대해서는 어느 날부터 카메라와 영사기가 하늘에서 툭 하고 우리 손으로 떨어진 것인 양 생각한다.그리 생각하는 독자들은 이 책을 펼치는 순간부터 당황하게 된다. 1826년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진의 젊은 역사가 왜 그리 파란만장하고 우여곡절이 있었는지 말
글로 찍은 사진의 역사,세계 사진사 32장면 (1826∼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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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시아>로 5년만에 스크린에 복귀한 심혜진이 씨네 에세이 ‘나랑 함께 꿈꾸실래요?’(문예당 刊)를 펴냈다. 1989년 ‘추억의 이름으로’로 데뷔한 심혜진은 그동안 20여 편의 영화에 출연했으며 현재 4년째 ‘SBS FM 심혜진의 씨네타운’을 진행하고 있다.
책은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관객의 입장에서 바라본 영화에 대한 느낌들을 풀어내고 있다. 스스로 뽑은 명화, 명장면, 명배우, 명대사를 영화와 인생 이야기를 곁들여 소개하며 <초록물고기>, <그들도 우리처럼> 등 초기 작품부터 최근작 <아카시아>까지 영화 출연 당시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 놓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새 책] 심혜진의 영화로 세상 엿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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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그룹 '신화'의 김동완이 <돌려차기>(감독 남상국 제작 씨네2000)로 영화에 데뷔한다.
<돌려차기>는 불량학생들로 구성된 '만세고(高)' 태권도부의 활약을 담을 학원 스포츠 코미디물. '태권도부원들을 두들겨 팬 불량 학생들이 도리어 태권도부가 된다'는 아이러니한 상황속에 유발되는 만화적인 웃음과 스릴을 결합한다고 한다. 김동완은 학교의 '주먹 짱' 용객으로 출연해 <클래식>의 이기우, 드라마 '보디가드'의 현빈, '첫사랑'의 조안 등과 호흡을 맞춘다.
<돌려차기>는 지난 2001년 <틈>으로 제6회 부산국제영화제 NDIF 대상을 수상한 남상국 감독의 데뷔작으로 이달 말 촬영을 시작해 내년 초 개봉할 예정이다.
인터넷 컨텐츠팀 cine21@news.hani.co.kr
‘신화’ 김동완, <돌려차기>로 영화 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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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안 잡> 박진감 넘치는 자동차 추격신에 관객들 소형차 ‘미니’ 열광지난 여름 출장차 파리에 갈 기회가 있었다.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통해 지겹게 봐온 도시였지만, 막상 그 실체를 접한다는 생각을 하니 출국 전부터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런 흥분은 공항에서 파리 시내로 진입하면서 더욱 고조되었고, 개선문을 중심으로 하는 샹젤리제 거리에 섰을 때 비로소 폭발했다. 라데팡스까지 끊임없이 이어진 샹젤리제 거리의 스케일에 압도당했다고 할까. 최고의 기술력으로 만들어진 그 어떤 복제라도, 원본이 가지는 아우라는 절대로 전달할 수 없다는 평소의 믿음이 그때 더욱 확실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아쉬운 점은 짧은 출장이라 느긋하게 시내 뒷골목 구석구석까지 관광할 처지가 못 되었다는 사실. 파리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카페에서 차 한잔을 마시고 에펠탑 정상에 올라보는 것으로 파리 유람이 끝나야만 했기 때문이다.그런데 그 짧은 시간에 유독 내 시선을 끄는 것이 있었는데, 바로 파리 시내를
진짜 주인공은 `미니`,<이탈리안 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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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남자가 모여 있다는 ‘아집’(AZIP)을 찾아가면서 내심 ‘꿀꿀한 남자 냄새 가득한 어수선한 작업실’을 떠올렸다. 하지만 웬걸. 회의용 원탁 테이블 뒤에 있는 2인용 침대에는 정갈해 보이는 대나무 요가 깔려 있었고 이불은 검열 직전 군 내무반에서처럼 각지게 개어져 있었다. 여기까지는 기자가 온다니까 신경써서 치웠을 것이라 치자. 하지만 흰색 이불보는 급조한 것이라고 보기엔 너무 하얬다. 신작 포트폴리오가 든 파일을 들고 나타난 이광욱(26) 감독 역시 진회색 스웨터에 베이지색 남방을 받쳐입은, ‘보기 드문’ 깔끔한 모습이었다.“아집은 애니메이션의 ‘a’와 하우스의 우리말인 ‘집’의 합성어입니다. 말 그대로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집이란 뜻이죠. 애니메이션을 하고 싶은 팀원들의 고집과 열정이라는 의미도 있고요.”‘아집’을 이루는 네 사람은 이 감독과 이지윤(26), 문형범(25), 허복문(26)씨다. 모두 청강문화산업대 애니메이션과 동기동창이다. 1학년 때 프로젝트를 위
아집의 다짐,젊은 애니를 껴안다 12 - 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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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니와 클로버>라, 듣기만 해도 온몸에 닭살이 돋고 그 소름들 사이사이에 끈적이는 꿀물이 흘러들어와 촉촉하게 적신 뒤에 식물성 기름으로 살짝 튀겨내놓을 것만 같은 제목이다. 그래, 반대로 생각할 수도 있다. 꿀이란 그저 끈적거리며 인간을 유혹하는 악마의 액체일 뿐이다. 많이 먹으면 머리가 아프다. 클로버는 괭이풀과 비슷하게 생긴 식물로 어디서나 잘 크는 잡초일 뿐이다. 행운을 이야기하는 네잎도 사실은 기형의 돌연변이에 열성이다. 그러니까 <허니와 클로버>라는 뻔한 제목을 겉으로 내놓고, 사실은 인생의 폐부를 찌르는 공포 이야기를 그려낼 수도 있다. 제발 그래주면 안 될까? 사실 그쪽이 훨씬 마음 편하다. ‘꿀과 토끼풀’이라니. 솔직히 꿈꾸는 소녀들이 아니고서는 이런 제목의 만화를 내놓고 읽을 수 있겠나?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미노 치카의 <허니와 클로버>(학산문화사 펴냄)는 그 제목의 상식적인 뉘앙스에 너무나 잘 들어맞는 만화다. 그럼에도 나같은 냉
세잎에 하나 더,꿀로 붙여줘,우미노 치카의 <허니와 클로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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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 <스캔들>을 보고, 나약한 프로페셔널리즘에 찡그리다<오션스 일레븐>보다 허술하고 아류냄새나는 이야기 구조에도 불구하고, <오션스 일레븐>보다 오빠들의 면면이 다소 처진다는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안 잡>은 썩 매력적인 영화였다. 여러 층의 건물바닥을 폭파시키며 대형금고를 통째로 챙긴다는 대범한 행동이나 깜찍이 미니 3형제(자동차)가 달리는 지하철 앞으로 뛰어드는 살떨리는 액션도 좋았지만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오션스 일레븐>과 같은 결말, 도둑놈들이 결국 금괴를 차지한다는 결론이었다.물론 건전한 상식을 가지고 법질서를 수호하는 데 앞장서고자 하는 시민의 일원으로서 나는 세상의 모든 도둑을 두둔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이 정도의 프로페셔널한 재능과 투철한 직업윤리, 그리고 상부상조의 미덕을 가진 도둑들이라면 가끔은 성공해주는 게 말 잘 듣고 살아봤자 별볼일 없는 인생들에게 위안이 되지 않을까 싶다. 더구나 그것이 두
페이스 조절을 잘했어야지,<스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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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묵시록과 달뜬 희망을 함축하는 구로사와 기요시의 <도플갱어>
<도플갱어>라는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때 떠올렸던 것은 검은 선글라스와 물방울 문양 스카프를 한 여인의 얼굴이었다. 사실은 그 여인의 이름조차 알고 있다- 드루 배리모어. 착해서 거미 한 마리 때려죽일 수 없는 청순가련형 여자가 있는가 하면 그와 똑같이 생겼지만 엽기적 살인도 마다하지 않는 선글라스에 스카프한 요부가 있다. 이 둘은 구별할 수 없을 만치 외관이 같다는 것 외에 연결고리랄 게 없다. 단서가 있다면 섹스 정도? 이 두 사람이 정말 두 사람인지 아니면 한 사람인지에 대해 거듭 말을 바꾸다가 느닷없는 결론에 이르는 하품나는 스릴러. 이상이 1993년 드루 배리모어 주연의 동명영화 <도플갱어>다. 유감이지만 이 이상 더 기억할 게 없다.
하지만 굳이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1)독일 민담에 나오는 ‘도플갱어’라기보다는 사실은 영미권의 ‘사악한 쌍둥이’(Evil Twin)
현실적으로 확실히 무책임한,<도플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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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돌아왔다, 라고 말한다면, 스크린만이 세상의 전부라고 믿는 오만을 범하는 일일 것이다. 드라마와 방송 활동에 주력했던 배우 심혜진의 새 영화가 개봉한다. <실락원>(1998)이후 5년 만의 신작이고, 한국영화 르네상스와 더불어 영화(榮華)를 누렸던 ‘1990년대 스크린 스타’의 호칭이 과거시제가 된 지도 3년이 지났다. 심혜진과 영화를 붉고 질긴 실로 다시 이어준 작품은 박기형 감독의 <아카시아>. 박기형 감독에게는 심혜진이라는 배우를 적절한 예우로 스크린에 다시 초대할 수 있다는 사실이 의욕의 촉매가 됐고, 심혜진에게는 ‘미숙’이라는 고요한 극중 인물과 “당신 아니면 안 된다”는 감독의 요란한 확신이 거절할 수 없는 초대가 되었다. 심혜진은 여의도 약속장소에 청바지 차림으로 들어섰다. 시간은 그녀의 유명한 볼우물에 찰랑이던 청량한 물기를 거두어갔지만 대신 갸름한 눈과 입술에 굳센 기운을 불어넣어주었다. 어디 아주 먼 곳에라도 가는 듯한 걸음걸이로 성큼성
<아카시아>로 5년 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온 배우 심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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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러 가는 관객의 가장 기본적인 목적은 극장비를 건지는 데 있다. 그런데 문제는 어떤 경우에 ‘극장비를 건졌다’고 판단하는지가 관객마다 다르다는 데 있다. 이는 영화 관객만이 아니라 자기 돈과 시간을 들여서 뭔가를 보거나 읽는, 모든 관객 또는 독자에게 해당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물론 가끔은 돈과 시간을 전혀 들이지 않고 지나가다 우연히 건성으로 본 것에 대해 욕을 바가지로 하거나 뜻밖의 소득에 기뻐하는 관객이나 독자가 있을 수는 있다.앞서 제기된 문제는 영화의 본질에 대한 관객의 기준이 제각기 다르기 때문에 생겨난다. 다시 말해서 관객은 저마다 ‘영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이루는 핵심적인 요소의 기준을 명시적으로나 암묵적으로나 가지고 있고, 이러한 보편적 기준을 근거로 삼아 개별적인 영화를 보며, 그 영화에서 자신이 가진 보편적 기준에 합치하는 것을 많이 발견했을수록 ‘극장비를 건졌다’고 판단하리라고 추측할 수 있다는 것이다.영화를 일종의 텍스트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본질과 관객: <파리,텍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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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조선일보>의 이한우 논설위원이 “송두율 선배”에게 보내는 편지를 써서 언론에 공개한 바 있다. 그 편지를 읽으며 나는 학계의 선배를 대하는 이한우 학동의 깍듯한 자세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 감동이 얼마나 강했던지, 그 버거운 감동의 덩어리를 이 지면에 덜어놓지 않고서는 도저히 못 견디겠다고 느낄 정도가 되었다.문제의 편지에서 이한우 논설위원은 송두율씨를 ‘선배’라 불렀다. 그 이유가 재미있다. “뮌스터대학 임시교수”는 “1년짜리 시간강사로 불리는 겸임교수”에 가깝기 때문에 교수라 불러드릴 수 없다는 거다. 그 어렵다는 교수자격시험을 통과한 이가 ‘교수’라 불리는 게 그토록 아니꼬우면 그냥 ‘강사’라 부를 일. 그 많은 호칭 중에 왜 하필 ‘선배’인가?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난삽하게 이 책 저 책 번역도 하니까, 자기도 학계에 속한다고 착각한 걸까?언젠가 그는 모교의 스승인 최장집의 사상을 검증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런 그를 강모 교수가 “스승의 등 뒤에
어떤 특정한 모종의 후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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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내 비가 내렸던 지난 여름엔 쏟아지는 빗줄기 속에 종로거리를 쏘다니곤 했던 나의 십대가 유난히 생각났다. 장대비 속에 우산을 꽉 잡고 길바닥에 원을 그리며 튕기는 빗방울을 보기만 해도, 그땐 그냥 가슴이 벅차올랐다. 유난히 종로 언저리에 추억이 많았던, 모범생의 일탈을 즐겼던 나의 십대는 허리우드극장에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러 갔던 중학교 2학년 때 시작되었다. 대한극장에서 <엄마 없는 하늘 아래> 같은 단체관람용 영화를 보았던 것이 전부였던 내가 처음 시내 개봉관으로 영화를 보러 갔던 일은 알을 깨고 나오는 것 같은 사건이었다. 늦었다 생각되어 친구들과 숨을 헐떡거리며 계단을 막 뛰어올라가던 그때가 지금도 생생하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뭐니뭐니해도 올리비아 허시의 영화였다. 알쏭달쏭한 순백의 표정을 짓는 그 예쁜 얼굴(물론 백치미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과 발코니 장면에서의 그 커다란 젖무덤은 그냥 내 가슴에 팍 꽂혀버렸다. 그 이후로 그녀에
남자에 속지 말자는 다짐 무너지다, <로미오와 줄리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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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에는 여러 가지 유형이 있지만, 권력도 없고, 재력도 없고, 학력도 없으며 따라서 매력도 없는 무력한 사람은 극한의 상황에 빠지면 결국 폭력을 동원할 수밖에 없다. 미국인 노동자 존 큐가 가족을 먹여살리는 힘은 근력이다. 근력이란, 재력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헬스클럽에 가서 돈 뿌려가며 탕진해야 할 만큼 흔해빠진 능력이기 때문에 근력으로 사회의 일원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사실 무시당하고도 남을 일이다. 그래서 존 큐는 충분히 무시당하며 살고 있다. 얼마나 무시당하는가 하면, 그 근력으로 쉬지 않고 일을 해서 그 사회의 많은 물질적인 것들을 건설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자식이 수술을 받지 않으면 목숨이 끊기는 상황에서는 ‘그런 부류의 자식이라면 죽거나 말거나’ 정도의 대접이 마땅한 현실이다. 우리말에서, 가난하다. 궁핍하다는 말은 흔히 ‘못산다’라는 말로 표현한다. 과연 가난하다는 것은 살 수가 없는 일인 것이다. 존 큐 역의 덴젤 워싱턴은 실망스럽게도 영화의 개봉에 부쳐
아이들을 왜 부모가 키워야 하는가,<존 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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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와이어,No CG 리얼 액션의 진수
한국의 ‘국가대표 무술감독’ 정두홍은 얼마 전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언젠가 와이어 액션의 유행은 지나간다. 그때를 위해 새로운 라이브 액션을 준비하겠다”는 내용의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에게 결정적인 자극을 준 영화는 지난 10월8일 부산영화제 야외상영관에서 선보인 타이의 액션영화 <옹박>이었다. “후배 스턴트맨들이 <옹박> <옹박> 하기에 뭔가 해서 불법복제 VCD로 봤는데(이 영화는 이미 인터넷에서 화제를 모으며 파일 형태로 돌아다니고 있다)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아닌 게 아니라 <옹박>의 액션은 아직까지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완전히 새로운 것이다. 분명 사람이 공중을 날 듯 점프하는 데 중력감각이 느껴지며, 엄청난 스피드로 나무 위에서 움직이는 데 특수촬영의 흔적은 없다.
정말이지 영화가 내세우는 ‘No 와이어, No CG’는 사실로 보인다. 여기에는 와이어 액
제 8회 부산국제영화제 결산 [6] - 정두홍 vs 토니 자 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