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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간의 아름답고 짜릿했던 현장의 기억들 #1
제8회 부산의 축제를 알리는 개막식의 올해 사회자는 박중훈과 방은진씨. 박중훈씨의 특유의 유머와 영화제 단골사회자 방은진씨의 노련함으로 활기찬 막이 올랐다.
야쿠쇼 고지-안성기 오픈토크 10월3일 5시 파라다이스 가든에서 일본의 국민배우와 한국의 국민배우가 만났다. 일본영화 <잠자는 남자>에 같이 출연하기도 했던 두 배우는 시종일관 화기애애하게 웃음을 건네며 양국의 ‘국민토크’를 나눴다.
정창화-임권택 오픈토크 ‘액션영화의 대부’ 정창화 감독과 임권택 감독의 오픈토크가 파라다이스 야외가든에서 열렸다. 임 감독은 “1955년 정 감독님의 <장화홍련전>에서 제작부 똘마니로 일하며 영화계에 입문했다”며 정창화 감독과의 인연을 소개했다. 임 감독은 정창화 감독에게 액션영화를 한편 더 만들어줄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제1회 아시아영화인상 마흐말바프에게 환호를! 10월8일 그랜드호텔 2층 볼룸에서
제 8회 부산국제영화제 결산 [2] - 현장 스케치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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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포동 영화의 거리에는 언제나처럼 10여개의 부스가 차려져 행인들의 눈길과 발길을 붙잡고 있었다. 항상 북적거리는 남포동이지만, 상영작이 적어서인지 예년만큼 흥분된 분위기는 덜했다.
영화의 바다? 사람의 바다! 10월3일 개천절이 금요일이라 황금연휴를 맞은 남포동 극장가가 사람의 물결로 출렁거렸다. 남포동에서는 영화제 작품을 6개관에서만 상영했지만, 해운대보다 좌석 수가 많아 상당한 관객이 찾아왔다. 하지만 첫 주말이 지나자 남포동의 인파는 다소 한산해졌다.
영화계에도 햇볕이? 영화제 사상 최초로 북한영화 7편이 부산을 찾았다. 국정원과 통일부와의 지루한 협의 끝에 뒤늦게 상영이 결정된 탓에 많은 관객이 참석하진 못했지만, 남북영화 교류의 물꼬를 텄다는 의의만큼은 인정받을 만했다. 사진은 북한영화 상영 첫날인 10월7일 오전 11시30분 <신혼여행>이 상영되는 대영시네마 3관으로 입장하는 관객의 모습. 노인들이 상당수 찾아 이채로운 풍경을 연출했다.
영화인
제 8회 부산국제영화제 결산 [3] - 현장 스케치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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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았노라 보앗노라, 한국영화의 힘
올해 부산프로모션플랜(PPP)의 가장 큰 특징은 한국 프로젝트가 어느 해보다 많다는 것이었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유명감독들의 우수한 프로젝트가 15편 이상 접수되었다. 선정에 어느 해보다 힘들었다”는 정태성 PPP 수석운영위원이 말은 총 18편의 프로젝트 중 선정된 5편의 한국프로젝트의 면면만 보더라도 과장이 아님을 알수 있다. 여기 미국으로 건너간 지 4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이명세 감독을 비롯, 허진호, 정재은, 김인식, 전수일 감독이 선보이는 신작 프로젝트와의 짧은 만남을 주선한다.
전쟁의 상흔, 생이별의 절규
이명세 감독의 <크로싱>
오랜만에 고국의 영화인들과 만난 이명세 감독의 표정은 무척 밝았다. 2000년 4월에 미국에 건너가 3년 넘게 이국 땅에서 영화준비를 했던 그에게 낯익은 얼굴과 정감어린 언어가 어찌 반갑지 않겠는가. 인터뷰를 하는 도중에도 수많은 영화인들이 오랜만에 만난 이명세 감독에게 악수를 청했고
제 8회 부산국제영화제 결산 [4]- PPP에서 만난 한국 감독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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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기있고, 감정이 풍부한 사랑 이야기
허진호 감독의 <행복>(가제)
봄날이 간 뒤, 보리밭에서 웃음짓던 그 남자는 어디로 갔을까? 2001년 개봉한 <봄날은 간다> 이후 2년 만에 새로운 프로젝트 <행복>(가제)을 들고 부산에 나타난 허진호 감독은 찰나의 행복 뒤에 잔인한 사랑의 붕괴과정을 담아냈던 전작의 고통을 말끔히 잊은 듯 보였다. 게다가 이제는 “정상적이고 평범한 삶 속에서 나오는 이야기말고 극적인 상황 속에서 나오는 사랑 이야기를 하고 싶다”며 다시 한번 사랑의 본질에 대한 징한 탐험을 시작할 태세였다.
“DVD 작업 때문에 와 <봄날은 간다>를 연달아 볼 기회가 생겼다. 문득 <봄날은 간다>가 참 건조하게 찍혔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카메라와 인물과의 물리적 위치뿐 아니라, 인물을 바라보는 심리적 거리 역시 너무 먼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어쩌면 나란 사람이 그 사이 많이 건조해졌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제 8회 부산국제영화제 결산 [5] - PPP에서 만난 한국 감독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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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눈으로 세상을 연다
하나 마흐말바프, 이강생, 세디그 바르막, 마니쉬 자, 이제 영화감독의 길을 향해 걸음마를 시작한 이들은 뭔가 특별한 사연을 갖고 있는 아시아의 신인감독들이다. 아버지와 어머니, 언니의 영향을 받아 다큐멘터리를 만든 14살 소녀감독, 11년 동안 배우생활을 한 뒤 모니터 앞으로 자리를 옮겨앉은 감독, 아프가니스탄의 척박한 터전을 헤치고 23년 만에 데뷔작을 만든 감독, 첫 단편으로 칸영화제에서, 첫 장편으로 베니스영화제에서 주목받은 감독까지, 아주 특별한 이들을 만나보자.
카메라에도 ‘인격’이 있습니다
14살 소녀 감독 <광기의 즐거움>의 하나 마흐말바프
소녀가 영화를 배우기 시작한 나이는 8살이었다. 올해 베니스영화제 비평가 주간에 초청된 중편 다큐멘터리 <광기의 즐거움>을 만들었던 때는 13살이었다. 그리고 “영화는 예술과 상업이라는 구분과 상관없이 인간을 도울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진지하게 말하는 지금 14
제 8회 부산국제영화제 결산 [8] - 아주 특별한 신인감독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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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 위에 끔찍하고 비극적인 기억을 읽었다”
탈레반 정권 후 첫 번째 장편 <오사마>의 세디그 바르막 감독
세디그 바르막(41) 감독은 영화제 게스트 중 가장 많은 주목을 끌었다. 탈레반 정권 이후 아프가니스탄의 첫 번째 장편영화이며, 모흐센 마흐말바프가 제작을 맡아 호기심을 자극했을 것이다. 하지만 폐허로 변해버린 아프가니스탄의 풍광 위에 생계를 위해 소년으로 변장했다가 비극의 낭떠러지로 발을 내디디게 되는 소녀의 운명을 겹쳐놓은 <오사마>(2002)의 절절한 울림을 대하고 나면 그에게 쏟아진 환대는 온당하고 마땅하다.
-관객 반응이 좋았다.
=진심으로 영화를 받아들인 것 같다. 어쩌면 한국도 (아프가니스탄과) 비슷한 고통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산가족이 만나는 장면을 아프가니스탄에서 본 적이 있는데 공감했다. 전쟁을 벌인 자들은 결코 그 결과를 이해하지 못한다.
데뷔작 <오사마>를 만들기까지 바르막은 수많은 협곡을
제 8회 부산국제영화제 결산 [9] - 아주 특별한 신인감독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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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화인생의 절반은 황산벌에서 배웠다
유난히 비가 많이 왔던 올 여름, 어느 촬영현장이라고 쉬웠겠느냐마는 유달리 몸으로 뒹군 현장이 있었으니, 바로 <황산벌>의 현장이다. 질퍽해진 땅 때문에 다리 한쪽 옮기기도 쉽지 않았을 텐데 20kg이 넘는 갑옷과 온갖 무기들을 들고 나뒹굴어야 했으니 말이다. 6년 전 기획 때부터 올 여름 촬영현장까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황산벌>이 드디어 이번 주말 극장에 걸린다. 그리고 이 영화와 함께한 정승혜 제작이사가 <황산벌>의 지난 6년의 기록을 여기 풀어놓았다.
#1 ▶ 6년 전, 조철현의 이준익 옆구리 찌르기
“‘백제의 마지막 날’을 소재로 사극영화 한편 맹글면 어쩌것소이. 계백장군, 의자왕, 김유신, 화랭이 관창 나오는 황산벌 전투 야그 안 있소….”
<키드캅> 이후 5년 만에 만들어 개봉, 절반의 성공을 거둔 <간첩 리철진>을 끝내고 이미 그 이전에 기획되었던 <아나
<황산벌> 제작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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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 “사투리에 능한자 우대, 숙식제공”
“캐스팅도 다 했고 이제 슬슬 전쟁 혀야제!”
거시기 역의 이문식, 의자왕에 오지명, 계백 처에 김선아…. 그리고 류승수, 이원종의 기꺼이 특별출연, 김승우, 신현준 즐거운 우정출연…. 이렇게 원하는 대로 되는 거 문제 있는 거 아닌가? 싶을 만큼 모든 것이 잘 진행되었다. 분에 넘치게 좋은 주연급 배우들로 캐스팅 윤곽이 잡히고 대사 있는 역할만 60여명이 필요해 불가피하게 오디션을 봐야 했다.
과감히 신인배우들로 포진하자는 전략을 세운 뒤 500여명의 지원자 중 추리고 추린 250여명의 연기를 꼬박 열흘간 심사했다. “사투리에 능한 자 우대, 숙식제공”. 이 한줄에 몰려든 배우들의 열렬한 응원과 노력은 제작진에게 커다란 힘이 되었다. 사실 사투리는 표현의 방식일 뿐 무조건 사투리를 잘한다고 뽑는 대신 열정이 살아 있는 배우들로 선발했다. 이른바 엑기스 천군만마인 그들은 끝까지 주연들을 긴장시키면서 ‘참여영화’의 진면목을 보여
<황산벌> 제작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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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행복이란 작은 금 하나로 깨져버리는 거울과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올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이었던 <아카시아>에서 박기형 감독은 그 파멸을 끝까지 밀어붙이며 똑똑히 지켜본다. 가족이 공포의 소재라는 점에서 <장화, 홍련>을 상기시키지만 남는 느낌은 다르다. 이 개별인간의 소통의 불가능함에 절망한다면, <아카시아>는 가족을 지키려는 현대인의 무의식을 직접적으로 ‘공격하는’ 영화랄까. 한가닥 희망도 남기지 않는다는 점에선 더 비관적이고 지독하다.금슬좋고 풍족한 미숙(심혜진)과 도일(김진근) 부부에게 단 하나 고민은 결혼 10년이 되도록 아이가 없다는 것이다. 미숙은 뭉크 같은 어두운 그림을 그리는 6살 진성(문우빈)에게 끌려 그를 입양한다.티 하나 없어 보이는 하얀 목조의 미숙 부부의 집처럼, 처음엔 행복했다. 그런데 박 감독은 그 순간조차 미니멀할 정도로 단정한 화면을 통해 기이한 느낌으로 풀어낸다. ‘행복한 가족’ 국정홍보물 같이 단란한 한때를
[새 영화] <아카시아> 아직도 ‘행복한 가족’ 믿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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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은 즐거운데‥바바라 노박은 “여성도 남성처럼 섹스를 즐기고 일에서 성공하라”고 선동하는 <사랑은 사절>(다운 위드 러브)이라는 책으로 베스트셀러가 된 작가다. 인터뷰 약속을 번번히 바람맞힌 희대의 바람둥이 남성지 기자 캐처 블락은 스타가 된 노박으로부터 공개적 망신을 당한뒤 폭로기사를 쓰겠다며 자신의 신분을 위장한 채 노박에게 접근한다.개와 고양이 같은 이 앙숙은 <시카고>의 르네 젤위거와 <물랭루즈>의 이완 맥그리거. 마지막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야 이들의 노래가 나오지만,모든 인물이 스텝을 밟으며 등장하는 식으로 <다운 위드 러브>는 뮤지컬의 흥겨움을 물씬 풍긴다. 영화의 목적은 명확하다. 철저하게 60년대초 스크루볼 코미디의 화면을 현대에 옮기는 복고풍 향수 전략. 그 속에서 로맨틱 코미디의 필수요소인 남녀심리의 화학작용은 사라져버렸다. 분홍색 파스텔톤의 호텔 방, 옛날 미국 드라마에서 빠져나온 듯 위로 머리를 틀어올린 여자주인공들의
[새 영화] 로맨틱코미디 <다운 위드 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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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 영화가 총리를 비롯해 독일 사회를 울리고 있다. 50년 만에 영화로 되살아난, 어려웠던 시절의 가슴 벅찼던 일이 경제침체와 사회적 갈등에 시달리는 독일에 다시 일체감과 희망을 불어넣어 줄 것인가? 지난 16일 저녁 독일 서부 에센(市)의 리히트부르크 극장에는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를 비롯해 루디 푈러 국가대표 축구팀 감독 등 독일의 각계 인사 1천300명이 모였다. 죈케 보르트만 감독의 영화 <베른의 기적> 시사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영화의 제목은 1954년 스위스 베른 월드컵에서 독일이 헝가리에 2대 0으로 지다가 3대2로 기적적으로 역전승하며 우승한 일을 가리킨다. 주인공 마티아스는 루르 탄광지대 에센에 사는 11세 소년. 2차대전이 끝난 지도 10년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를 기다리는 소년의 영웅은 에센 출신의 국가대표 축구팀 주장 헬무트 란.드디어 아버지가 소련의 포로수용소에서 귀향, 기차역에 내린다. 그러나 아버지는 마중나온 딸을 부인으로 착각하고
<베른의 기적> 독일의 희망 되찾기를 자극하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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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김기덕 감독을 처음 만난 건 파리에서였다. 1996년 초 겨울로 기억한다. 그는 당시 <야생동물 보호구역> 영화 준비를 위해 파리를 헤매고 있었다. 나 역시 <인샬라> 영화 준비를 위해 한달여간 파리를 헤집고 다닐 때다. 대학가 주변의 작은 호텔에서 며칠간 함께 지냈다. 그가 나에게 기생한 셈이다. 그는 나와 달리 영화제작에 대한 아무런 조건이나 준비가 없이 혼자만 달랑 파리에 왔었다. 나의 상식으로는 무모하고 순진해 보였다. 투자자나 제작사에 대한 아무런 토대가 없이 자기만의 확신이 있을 뿐이었다. 그것도 한국이 아닌 프랑스에서 말이다. 어쨌든 그 영화는 만들어졌고, 결과는 성공적이지 못했다. 처음에 아무도 주목하지 못했던 <악어> 이후에 대한 기대가 ‘혹시나’에서 ‘역시나’로 끝나버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의 생명력과 열정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그에 대한 첫인상은 ‘순진함’과 ‘순수함’ 그 자체였다. 수줍은 듯 자신의 속내를 살며시 드러내
김기덕 감독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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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이 영화를 보는 이유는 다양하다. 같은 영화라도 관객에 따라 극장을 찾는 이유도 천차만별이다. 아무 생각없이 시간을 때우려고 가는 사람도 있고, 영화내용이나 완성도 등을 살피면서 진지하게 선택하는 학구파도 있다. 데이트 코스에 영화관람이 기본 매뉴얼로 깔려 있는 사람도 있고, 극장 앞을 지나가다 충동적으로 들르는 사람도 있다. 이러한 관객의 성향에 대해, 여성영화인모임이 주최했던 특강 중 서강대 경영학과 정재학 교수의 인상 깊었던 강의 내용을 몇자 적어본다.정재학 교수가 나름대로 관객의 영화관람 성향을 구분한 것인데, 재미도 있지만 꽤나 신빙성이 있어 보이는 분석이다. 정 교수에 따르면 영화를 보는 주관객층은 다음 다섯 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한다.첫 번째가 외로운 멧돼지형이다. “영화는 무조건 봐준다”는 표현처럼 잡식성 영화광으로 대부분이 20대 미혼여성이라고 한다.그리고 두 번째가 슬픈 가시나무새형. “사랑은 깨져야 아름다운 것.” 슬픈 사랑영화를 선호하고 주로 강남에 거주하
영화 관객의 다섯 가지 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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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혁명 전야의 상류사회를 차가운 눈으로 그린 라클로의 고전적 치정극 <위험한 관계>의 조선판 리메이크 작품인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는 스타일 있는 영화다. 화려한 색깔의 의상과 소품이 주는 시원한 매력 속에 충분히 관객의 시선이 빠질 만하다. 이 영화는 조선시대를 ‘디베르티멘토’적 관점에서 바라보았다는 점이 흥미롭다.디베르티멘토란 ‘기분전환’이라는 뜻이기도 하고 고전 음악 장르로서는 ‘희유곡’이라 번역되는 이탈리아어. 원작인 <위험한 관계>가 나올 당시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전 유럽에서 크게 유행하던 장르인 디베르티멘토는 말 그대로 귀족들의 즐길거리로서 귀족의 살롱에서 연주되곤 하던 기분 좋은 실내음악을 말한다. 하이든도 유명하지만 역시 디베르티멘토의 황제는 모차르트가 아닌가 싶다. 약간 경박한 가운데 촌철살인의 구조미를 갖춘 그 즐겁디 즐거운 멜로디들!이재용 감독은 ‘바로크 음악을 듣다가 문득 서양 클래식 음악이 한국 사극의 배경으로 쓰이면
조화로운 유희곡,<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O.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