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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어느 일요일 아침, 파리 14구 당페르 광장 한 모퉁이의 작은 극장, 아담한 체구의 한 여성이 지팡이에 몸을 의존한 채 극장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극장 안에는 일요일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수십명의 사람들이 조금은 열띤 얼굴들을 하고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이 기다리는 사람은 ‘누벨바그의 어머니’인 아녜스 바르다였다. 이날 당페르극장(Cinema Le Denfert)에서는 아녜스 바르다의 1975년 에세이영화인 <다게레오 거리의 사람들>(Daguerreotypes)의 상영회와 작가와의 만남이 있었다. 자신의 영화를 사랑해주는 관객의 애정에 보답이라도 하려는 듯 그녀는 상영에 앞서 75살에 만든 12분짜리 단편영화 <날아가버린 사자>(Le Lion volatil, 2003)를 함께 보기를 제안했다.
<날아가버린 사자>는 파리 14구의 상징적 장소인 당페르 광장과 그곳에 있는 벨포르 사자 동상을 모티브로 그곳에서 일하며 살아가는
[파리] 이웃을 향한 정겨운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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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7년 10월31일, 독일 동북부 비텐베르크라는 소도시 교회 정문에 가톨릭 사제 마틴 루터가 조목조목 품들여 쓴 “95개 논제”란 글이 나붙었다. 훗날 “95개조 반박문”이라 명명된 바로 그 문장이다. 그로부터 485년이 지난 올해, 제작비 420억원이 투입된 할리우드 대서사극 <루터>가 종교개혁 기념일 하루 전, 루터의 나라 독일에서 개봉되었다. 그리고 이어진 독일인들의 반발.
이 작품의 꼴을 가장 못 봐주는 쪽은 독일 신학자들이다. 그들은 마틴 루터를 자유, 평등, 박애의 프랑스 혁명의 정신을 200년쯤 앞서 종교적으로 구현한 개혁자가 아닌 가톨릭의 골수 원리주의자로 간주하면서, 이는 철저한 연구와 검증을 거쳐 내린 결론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영국 감독 에릭 틸이 미국 루터파 보험회사의 물량공세를 받아 그들의 비위에 맞춰 빚어낸 영화 <루터>는 역사적 사실을 잘라내고, 비틀고, 뻥튀긴 얼렁뚱땅 할리우드 사극이라는 것이다. 일단 배우들의 면면은 무척 화
[베를린] 독일인들, 역사왜곡에 항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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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힘에 굴복한 백색의 마법사 사루만을 다시 만날 수 없게 됐다.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에 등장할 예정이던 사루만이 피터 잭슨의 가위에 ‘편집’당했기 때문이다.
인터넷을 통해 유포된 소문의 전모는 이렇다. 제작사인 뉴라인이 상영시간을 줄이기 위해 편집과정에 압력을 가했고, 그 결과 사루만을 연기한 크리스토퍼 리의 출연 분량이 7분가량 삭제됐다는 것이다. 이는 감독 피터 잭슨이 ‘에인트 잇 쿨 뉴스’ 사이트에 직접 해명의 글을 올리면서, ‘일부’ 사실로 드러났다.
피터 잭슨은 크리스토퍼 리의 촬영 분량을 잘라낸 사실을 인정하면서, 그것은 스튜디오의 압력이 아니라 내러티브의 당위성에 따른 선택이라고 밝혔다. 문제의 삭제분은 애초 2부를 위해 촬영된 것이었고, 3부의 오프닝으로 활용하려 했다가 적절치 않아 포기한 것이라고. 그는 2부의 관객이 헬름계곡에서의 엔트의 습격을 곧 사루만의 퇴장이라고 이해했다면서, 3부의 악당으로 사우론을 단독 부각시켜 내러티브에 긴장을 주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 가위질 당한 사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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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정부가 2004년 긴축재정안을 발표하면서 멕시코 영화계가 충격에 휩싸였다. 빈센트 폭스 대통령이 멕시코국립영화학교(CCC)와 멕시코영화협회(IMCINE), 1944년 설립된 멕시코 최대 규모의 스튜디오인 추루부스코 아즈테카를 지원대상에서 제외하겠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멕시코영화는 1990년대 부진을 딛고 막 부흥기에 접어든 단계. 여덟편의 영화만 제작된 2000년에 비해 올해는 서른편에 가까운 영화가 제작되는 성과를 올렸다. 그 때문에 멕시코 영화인들의 반발은 매우 격렬하다.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를 촬영 중인 알폰소 쿠아론(사진)은 “정부가 다음엔 뭘 하겠는가. 피라미드라도 팔아서 쇼핑몰을 지을지도 모를 일이다”라는 말로 정부를 비난했다. 그는 첫 번째 영화 <신경증 시대의 사랑>을 IMCINE의 지원으로 찍을 수 있었고, 그것은 데뷔 기회를 얻기 힘든 대부분의 신인감독들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아모레스 페로스>의 감독 알레한
영화계 목조르는 멕시코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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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레이먼드 챈들러가 영화 시나리오로 썼을 법한 불법 도청 스캔들이 할리우드 사교계를 뒤흔들고 있다. 신작 영화의 시사회, 스타들의 단골 레스토랑, 스튜디오 구내 식당 등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마다 화제를 독점하고 있는 추문의 중심 인물은, 명사를 주고객으로 삼는 변호사들과 일해온 59살의 사립탐정 앤서니 펠리카노. FBI가 펠리카노의 사무실 컴퓨터에서 유명인사의 전화를 도청한 파일을 다량 발견하면서 엔터테인먼트계의 중요 인물 가운데 누가 도청당했고 누가 도청을 의뢰했으며 도청 테이프가 어떻게 이용되었는가가 수사선상에 오른 것이다.
<AP>와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얽히고 설킨 스캔들의 뿌리는 2002년 6월까지 거슬러올라간다. 긴 이야기의 발단은 <LA타임스> 기자 아니타 부시가 당한 협박사건. 당시 배우 스티븐 시걸과 마피아 인사 줄리어스 나소의 공조관계를 취재하던 부시는 그녀의 자동차에서 죽은 물고기와 장미, 그리고 ‘스톱’이라고 쓰인 카드를
불법 도청 사건으로 뒤숭숭한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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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제 선호증’이라고 불러야 할까, ‘존립 근거를 확인하기 위한 안간힘’으로 봐야 할까.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영화등급소위원회(의장 정홍택)가 <킬 빌>(사진)에 칼을 대게 하고서야 ‘18세 관람가’를 내주더니, 청소년보호위원회(위원장 이승희)는 <여섯개의 시선>에서 정재은 감독의 <그 남자의 사정>을 제외시키고 상영해야 한다고 11월14일 주장하고 나섰다.먼저 영상물등급위원회. 정홍택 의장은 애초 <킬 빌>에 제한상영 결정을 내린 것은 “특정장면이 문제라기보다 전체적인 잔혹성이 문제”라고 했다. 등급위가 수입추천을 무난히 내줘서 안심하고 있던 수입사는 제한상영이라는 ‘기습’을 받고 부랴부랴 일부를 잘라 다시 심의를 요청했다. 그 분량은 불과 12초. 일부 프레임을 잘라낸 것인데, 이것으로 <킬 빌>의 ‘잔혹성’이 사라졌는지는 의문이다. 12초든 12분이든 훼손이긴 마찬가지이지만, 이건 일종의 성의 표시처럼 보인다. 언제든 발목을 잡
위원회 존립근거 위한 딴죽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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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담>을 만든 일본 애니메이션 제작사 반다이그룹이 한국에서 인터넷 VOD(주문형 비디오) 서비스를 시작한다. 이 그룹의 한국지사인 반다이코리아는 17일 낮 사업 설명회를 갖고 "이달 말부터 반다이 채널 사이트(www.b-ch.co.kr)와 포털사이트들을 통해 <기동전사 건담>시리즈를 비롯해 다수의 애니메이션의 VOD 서비스를 시작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 <기동전사 건담>, <기동전사 Z건담>, <성전사 던바인>, <더티페어>, <닷핵> 등의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반다이 채널과 하나포스, 콘피아, MSN, Candy33 등의 사이트에서 회당 800원∼2천원의 비용으로 스트리밍 형태로 시청할 수 있다. 반다이 그룹은 앞으로 휴대폰, PDA 등의 모바일 서비스로도 이 사업을 확장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서울=연합뉴스)
일본 반다이, 한국 VOD 서비스 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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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매혹시킨 반항아 말론 브랜도」(패트리샤 보스워스 지음. 정영목 외 옮김)는 영화 <대부>(1972)의 돈 콜레오네를 연기한 말론 브랜도(사진)에 관한 평전이다. 무명 배우 말론 브랜도는 1947년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 근육질의 비천한 노동자, 코왈스키로 분해 특유의 웅얼거림과 야수적 즉흥연기를 선보임으로써 신인간형의 등장을 선언한다.'거친 자'의 매력적 반항아 조니, <워터프런트>의 일자무식 노동자 테리 멀로이,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의 이방인 폴, <대부>의 마피아 두목 돈 콜레오네, <지옥의 묵시록>의 광기에 찬 커츠 대령 등은 그가 창조해낸 영화사상 기록적인 초상들이었다. 미국 일리노이주 시골 농장 출신으로서 알코올 중독자였던 어머니를 세상 누구보다 사랑했던 아들, 평생을 아버지와 투쟁한 반항아, 자신의 명성을 세상에 바꾸는 일에 사용하려 애썼던 이상주의자.영화평론가인 저자는 배우로서의 브랜도
[새 책] ‘세계를 매혹시킨 반항아 말론 브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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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속>과 <텔 미 썸딩>의 장윤현 감독이 미스터리 액션영화 <썸>(SOME)(제작 씨앤필름)으로 5년 만에 메가폰을 잡는다. 23일 촬영을 시작해 내년 6월 개봉될 이 영화는 천문학적 액수의 마약 분실사건을 추적하는 형사와 그의 죽음을 예견한 여자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CF와 TV 드라마로 절정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고수(사진)와 <여고괴담 세번째 이야기:여우계단>에서 가능성을 보여준 송지효가 남녀 주인공으로 캐스팅됐다. (서울=연합뉴스)
장윤현 감독 신작 <썸> 23일 크랭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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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탤런트 소유진이 <몽정기>로 이름난 정초신 감독의 신작 코미디 영화 <대한민국 대표선생>에 주인공으로 캐스팅됐다.다음달 20일 촬영을 시작할 이 영화는 늘푸른커뮤니케이션의 창립작으로 소유진은 남녀공학 고등학교의 과격한 여교사로 등장해 문제아들이 득실거리는 학급을 폭력으로 제압하는 연기를 펼칠 예정이다.
소유진은 <루키>, <맛있는 청혼>, <쿨>, <여우와 솜사탕>, <라이벌>, <좋은 사람> 등의 TV 드라마에서 신선한 마스크와 개성있는 연기력을 과시해왔으며 영화 출연은 지난해 개봉된 이연우 감독의 에 이어 두 번째다. (서울=연합뉴스)
정초신 감독 신작에 소유진 캐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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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예장동의 서울애니메이션센터는 21∼22일 오타와 국제학생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수상작 초청전을 개최한다. 지난달 19일 캐나다에서 막을 내린 오타와 국제학생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은 1997년부터 한해 걸러 열리는 세계 최고 권위의 국제학생경쟁영화제. 올해 대상 수상작 <사탄의 후예들>(미국)을 비롯해 최우수대학작품상 <캣츠>(한국ㆍ미국), 최우수졸업작품상 <크리미널>(미국), 최우수신인작품상 <스톤 오브 폴리>(캐나다), 최우수고교작품상 <왓?>(미국) 등 모두 18편이 선보인다.
상영작을 두 개의 섹션으로 나눠 21일 오후 7시, 22일 오후 1시ㆍ3시ㆍ5시에 번갈아 두 차례씩 소개하며 관련자료도 전시한다. 또한 오타와 국제학생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의 켈리 닐 디렉터가 내한해 강연과 함께 관객 대화에 나선다. ☎(02)3455-8365 (서울=연합뉴스)
오타와 학생애니페스티벌 수상작상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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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계 미국인의 대표감독격인 로버트 로드리게즈의 신작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멕시코>는 그 특유의 코믹하고 황당무계한 상상력이 할리우드 메이저급의 규모와 만나 이루어진 작품이다. 7천달러를 주변에서 겨우겨우 구해 만들었다는 <엘 마리아치>가 1990년대적 저예산 신화의 핵심 영화인 데 비해 그 이후의 영화는 비교적 할리우드 시스템에 순응하는 영화들이었다. 그러는 가운데에서도 그는 감독, 촬영, 편집을 혼자 도맡는 일인 다중 플레이의 방식을 고수해왔다. 이번에는, 점입가경으로, 오리지널 음악 스코어까지 그 자신이 맡았다. 참 욕심도 많고 재주도 많은 감독이다.
그의 이번 영화는 역시 마카로니 웨스턴의 거장 세르지오 레오네를 위시한 액션의 황제들이 구축해놓은 대표 시퀀스들을 극단으로 몰고가 그것들에 클리셰, 즉 상투형의 지위를 부여함으로써 그로부터 웃음과 뜻을 끌어내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래서 황당무계한 코믹액션이면서도 영화 자체가 영화적인 음미의 현장인 특
이색적인 라틴 짬뽕,<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멕시코> 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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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밀리언 헤커의 <Infinite Love Songs>와 다음 앨범인 <Rose>우울의 예술적 힘을 발견한 것은 낭만주의이다. 기본적으로 세상에 대한 불신으로부터 비롯되는 이 ‘안으로 타들어가는 불’은 근대 예술가의 초상을 그리는 데 가장 중요한 붓의 하나가 된다. 유배당한 알바트로스의 날갯짓으로 근대 예술의 존재이유를 자리매김한 보들레르도 우울을 노래했지만, 역시 우울의 고향은 낭만주의의 땅 독일이다. 우울의 끝은 자살이다. 슈만과 베르테르. 자살은 시궁창에서 사는 고귀한 영혼의 상승에 불을 붙이는 로켓연료다. 음유시인의 전통과 사회와 화합하지 못하는 우울한 낭만주의 예술가의 그림자가 오늘 탈현대의 포크 가수들에게까지 드리워진다. 근조 엘리엇 스미스.우울의 메카 독일 땅에서 우울한 청년 가수 하나가 음반을 낸 것이 눈에 띈다. 이름은 막시밀리언 헤커(Maximilian Hecker). 스물네살의 꽃다운 나이인 그의 음반 두장이 거의 동시에 우리나라에서 라이선
독일에서 온 우울청년,막시밀리언 헤커의 새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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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은 한국 만화·애니메이션계에 새 바람이 분 해였다. 이 해에만 국제행사가 5개나 열렸다. “만화·애니메이션이 21세기 문화콘텐츠 시대의 핵심이고 어쩌고저쩌고…” 하는 말이 유행어가 되기 시작한 것도 그때였다그해 가을 동아LG페스티벌이 처음으로 개최됐다. 김병갑(30) 감독은 그 대회에서 자신의 첫 작품으로 대상과 캐릭터상과 감독상을 휩쓸었다. 2D로 만든 13분42초짜리 작품 <꿈꾸는 종이인형의 살인>이라는 작품이었다. 소녀를 사랑하게 된 한 로봇의 이야기를 강렬한 색감으로 표현했다.“운이 좋았죠.”그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그 대회에서 심사위원장을 맡았던 사람이 국내 메이저 제작사 중 하나인 애이콤의 넬슨 신 회장이었다. 김 감독의 재능을 한눈에 알아본 신 회장은 그를 바로 스카우트했다. 자신의 첫 창작품이자 야심작인 <왕후 심청>의 캐릭터디자인과 콘티, 설정을 맡기기 위해서였다. 애이콤 기획실에서 3년 넘게 근무하며 그는 극장용 대작이 어떻게 만들
[애니비전] 운좋은 노력가,애니작가 김병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