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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구도시 구암의 건달들 사이에 피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한다. 부산의 작은 포구 구암 일대를 수십년 동안 쥐락펴락해온 만리장 호텔 사장 손 영감(김갑수)은 겉으로는 덕망 있는 지역 유지 같아 보이지만 실상은 해수욕장 이권 사업과 밀수 사업을 쥐고 흔드는 지역 건달 패거리의 두목이다. 그에게는 충실한 오른팔 희수(정우)가 있다. 손 영감의 각종 사업, 그중에서도 만리장 호텔 운영을 도맡고 있는 희수는 자신의 아버지와 다름없는 손 영감에게 충성을 다한다. 그러나 주변에서 그를 가만히 놔두지 않는 게 문제다. 다른 건달들이 전자오락게임 사업을 같이해보자며 그를 꼬드기자, 마흔줄에 접어든 희수는 추풍낙엽마냥 흔들린다. 손 영감에게 평생 충성을 바친다 한들 자신에게 만리장 호텔을 물려줄지도 확신할 수 없다. 늘 애물단지같이 구는 손 영감의 유일한 혈육인 조카 도다리도 눈에 밟힌다. 희수는 무리해서 손 영감에게 독립을 해보겠다고 말하지만 어쨌거나 의리도 정의도 없는 건달들 사이에서 새로운 사업이
[리뷰] 항구도시 구암의 건달들 사이 몰아치는 피바람 '뜨거운 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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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선란 작가의 소설 <나인>이 새로운 표지의 리커버판으로 출간되었다.
“강한 힘을 가지면 그런 선함도 함께 깃드는 걸까. 아니면 그런 용기를 가지고 있기에 강한 힘이 자리를 잡을 수 있는 걸까. 인과를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지모는 후자이기를 바랐다. 강한 힘을 가진다고 해서 선함이 무조건 깃드는 건 아닐 수도 있으니까. 올바르게 쓰일 줄 모르는 힘은 재앙과 다르지 않았다.” 나인의 이모가 나인에 대해 생각하는 소설 후반부의 한 대목이다. 더 강한 힘을 가지면 모든 게 해결될 것처럼 믿는 세상에서, 천선란의 주인공(들)은 온전한 하나의 삶을 끝까지 책임지기 위해, 기꺼이 다른 생명과 함께한다.
주인공 유나인은 고등학생이며, 미래와 현재라는 이름의 친구와 곧잘 어울린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 셋은 어느 날 미래의 집에 가기로 하는데, 집 승강기에서 갑자기 엄마의 애인이 여자라고 툭 말을 꺼냈다. 나인은 자신이 이모랑 살고 부모 얼굴을 모른다고 고백해버렸고, 현재는 가끔
씨네21 추천 도서 - <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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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 다이어 선집이 출간되었다. 음악과 사진, 여행 등에 대해 사색적인 에세이를 쓰는 제프 다이어의 책은 이전에도 출간된 적이 있는데,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그러나 아름다운>과 <지속의 순간들>은 새롭게 번역되었으며, <인간과 사진>은 처음 소개된다. 책이 다루는 분야에 해박한 번역자들이 책을 옮겼는데, 설명하지 않고 레스터 영, 듀크 엘링턴, 텔로니어스 멍크를 비롯한 재즈의 거인들이 활동한 현장을 묘사하듯 보여주는, 재즈 뮤지션들과 재즈 음악에 대한 <그러나 아름다운>의 번역이 특히 돋보인다. 본문은 과거 흑백 사진을 통해 당시의 장면들을 흑백영화처럼 그려가는데, 후기(‘후기: 전통, 영향 그리고 혁신’)에 이르면 제프 다이어가 픽션 같기도 논픽션 같기도 한 이 책을 통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모든 예술은 동시에 비평이다.” <그러나 아름다운>에 실린 추천 음반 목록은 이 책을 다 읽은 뒤에도 지속될 황홀한
씨네21 추천 도서 - <인간과 사진>, <그러나 아름다운>, <지속의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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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연상시키는 분위기에, 현대 타이완에 살아가는 셜록 홈스와 왓슨을 보탠 뒤, 호숫가에서 살해당한 시체로 사건을 시작한다. 무대는 특급 호텔 캉티뉴스. 2016년 1월1일 금요일 새벽 6시28분. 캉티뉴스 호텔 뒤 호숫가 산책로에서 총에 맞아 죽은 듯한 남성 시신이 발견됐다는 신고가 긴급신고센터에 접수된다. 피살자는 캉티뉴스 호텔 사장이다. 새해가 시작되자마자 접한 사건 때문에 현장에 가게 된 검사는 불만이 대단하다. 그는 경찰국으로 공문을 보내는데, 그가 언급하는 이름이 하나 있다. 푸얼타이. 한자로 ‘푸얼모쓰’는 셜록 홈스를 중국식으로 음역한 이름이며 ‘푸얼타이’는 볼테르를 중국식으로 음역한 이름이다. 셜록 홈스처럼 명석한 추리력을 갖춘 탐정 캐릭터가 바로 푸얼타이인데, 그는 공교롭게도 살인 사건 전날인 12월31일에 캉티뉴스 호텔에 있었다. 그의 가장 친한 친구인 웨이즈가 캉티뉴스 호텔에서 약혼식을 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당일이 되도록
씨네21 추천 도서 - <그랜드 캉티뉴쓰 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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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지방대 강사로 일하는 설영에게 어느 날 ‘셜록’의 메시지가 도착한다. 셜록은 6년8개월 전 연락이 끊긴 친구다. “죽은 아버지. 아니, 죽은 마녀. (중략) 도둑신부와 원본 없는 세상. 1948년, 1963년, 다시 2016년, 2017년.” 셜록으로 불렸던 친구는 탐정소설 마니아답게 알쏭달쏭한 문장과 마릴린 먼로의 사진을 보내온다. 한편 강남에서 성형외과의로 일하는 연정은 가끔 죽은 딸 도영의 환영을 본다. 성범죄로 목숨을 잃은 도영은 탐정소설을 좋아했다. 설영과 연정은 관계없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셜록’이라는 교차점에서 만나게 된다.
셜록이 설영과 함께 연구했던 논문 주제는 ‘배제된 여성문학, 빨치산 문학’이었고 이들은 취재차 일본에서 한 할머니를 만난 적이 있다. 빨치산들과 생활했던 할머니는 당시 기억을 미래의 여자들에게 덤덤히 들려준다. 빨치산과 남한 경찰에게 성폭력을 당하고 사랑하는 이의 손을 놓고 떠나야만 했던 이야기를. <나를 마릴린 먼로라고 하자>
씨네21 추천 도서 - <나를 마릴린 먼로라고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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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 소설집 <마음에 없는 소리>에는 9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주인공은 각기 다른 인물들이지만 어쩐지 한 사람이 1인칭 시점에서 하는 말처럼 읽히기도 한다. 몰개성하단 것이 아니라 그들 모두 내가 익히 잘 아는 사람 같다. 때로 그것은 소설 속 인물이 하는 말이 아니라 언젠가 써놓은 내 일기장 속 문장 같기도 하다. 김지연 소설의 여자들은 살기 위해 모멸감을 참다가도 대뜸 상대에게 화를 내기도 하고, 연약한 것 같아도 강인하고, 자신이 뭘 원하는지 모르겠다지만 실은 자기 욕망을 관철하기 위해 능동적이다. 가족의 기대를 배반하며 이룬 것도 없이 고향으로 돌아오고, 계획도 비전도 없는 자신을 혐오하는 것 같아도 마지막 문장을 닫을 때면 그가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느껴진다.
배경 도시나 인물의 이름이 겹치지 않아도 소설들이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는 9개의 스핀오프처럼 읽힌 이유는 그 세계가 현재 시점의 대한민국이라서다. 거기 사는 여자들은 매일 무신경한 말에 노출
씨네21 추천 도서 - <마음에 없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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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커버와 새 번역으로 선을 보이는 에세이와 소설, 처음 선보이는 타이완 작가의 추리소설, 한국 소설가들의 ‘지금, 여기’를 담아내는 이야기를 고르게 소개한다.
씨네21 추천도서 - <씨네21>이 추천하는 3월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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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우드 대표 흥행 감독 산제이 릴라 반살리의 신작 <강구바이 카티아와디>가 순항 중이다. 인도 북서부 해안 카티아와르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발리우드 배우를 꿈꾸던 10대 소녀 강가가 거짓된 사랑의 속삭임에 뭄바이로 도주했다가 인신매매를 당하고 기구한 삶을 살게 되지만, 훗날 입지전적인 인물로 성장한다는 내용이다. 전기 형태의 범죄 드라마로 감독 자신이 살아온 시대를 향한 송가에 가까운 이 영화는 알리야 바트의 군더더기 없는 연기를 내세워 산제이 릴라표 영화 특유의 섬세한 감정선을 재현해냈다. 긴 세월 그의 작품을 믿고 보며 고대해온 팬들에게 선물 같은 영화다. 아쉽다면 그것이 전부. 그 밖엔 새로울 것이 없다는 평이다. 이보다 앞서 개봉한 <바다이 도>는 조금 특별한 영화다. 각자 동성에게 이끌리는 남녀가 주위에 자신들의 성 정체성을 숨기려 위장 결혼을 한다는 코미디 드라마다. 이른바 퀴어영화가 박스오피스에 등장한 점이 눈에 띄는데, 비록 가벼운 터치에 그
[델리] 발리우드 화제작 3편을 통해 보는 인도영화계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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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긋는 소녀>
감독 장 자크 발레 | 웨이브
평화로운 시골의 작은 마을 윈드갭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신문기자인 카밀 프리커(에이미 애덤스)는 사건 취재를 위해 오랜만에 고향 윈드갭으로 돌아간다. 카밀이 윈드갭에 돌아온 이후, 살해당한 채 발견된 앤 내쉬에 이어 실종됐던 나탈리 킨의 사체가 발견된다. 10대 소녀들의 연이은 사고에 마을 사람들은 혼란스러워한다. <몸을 긋는 소녀>는 심리묘사에 탁월한 고 장 자크 발레 감독의 연출법이 잘 드러난 작품이다. 수사 드라마의 형식을 취하되 카밀의 과거와 엮어 윈드갭의 비밀을 천천히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메어 오브 이스트타운>
감독 크레이그 조벨 | 웨이브
한때 이스트타운의 농구 영웅이었던 메어(케이트 윈슬렛)는 형사가 되어 마을의 사건 사고를 책임진다. 실력이 좋아 신임이 두터움에도 실종된 한 소녀를 찾지 못해 애를 먹는 중이다. 그러던 어느 날, 고등학생 에린(케일리 스패니)까지 실종되면
[홈시네마] 10대 소녀들의 연이은 사고 '몸을 긋는 소녀'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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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초에 불과한 몸싸움, 손을 떠난 공이 링을 통과하는 짧은 순간을 확장해 각성이나 성장이 발생하는 밀도 높은 찰나를 보여주는 스포츠 서사의 맛을 만화 <슬램덩크>로 처음 알았다. 그리고 IMF 외환 위기로 펜싱부가 없어져도 기어코 동경하는 선수가 있는 곳으로 전학 간 18살 나희도(김태리)를 통해 그 느낌을 다시 곱씹는다. 처음 국가대표 선발전에 나간 희도의 내레이션이 “여기 나보다 노력한 사람은 없어. 오늘 한 경기도 안 진다”에서 “그래 나는 아직 나를 못 믿어. 나를 알아봐준 당신들을 믿”는다고 뒤집힐 때 깨달았다. 희도는 어리구나. 그래서 처음, 생생하게 겪는 순간이겠구나. 또렷한 자기 확신으로도 모자랄 때, 누군가의 기대를 수혈해 돌파하고 그 경험을 다시 자신에 대한 믿음으로 다지는 성장의 순간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 집중하다 보니 내 얼굴까지 벌겋게 달아오른다. 가만히 엎드려 드라마가 간질이는 옛 기억을 따라가다가 좋아하던 과학 실험이 떠올랐다. 사인펜을 칠한
[홈시네마] 온라인 친구와 오프했는데... 너였구나 '스물다섯 스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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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진하게, 더 쨍하게
눈 밑까지 붉게 상기된 얼굴이 다시 우리를 노려본다. “양미숙(공효진)은 왜 그럴까?” 이경미 감독이 시나리오를 쓰는 동안 되뇌었다는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좋아하는 러시아어를 더는 가르치지 못하게 됐고, 좋아하는 남자도 동료에게 뺏기게 생긴 중학교 영어 선생 미숙의 울긋불긋한 마음을 제대로 들여다볼 기회가 왔다. 2008년 10월16일 개봉한 <미쓰 홍당무>의 블루레이가 코멘터리, 인터뷰 여러 편을 새로 갖춘 한정판으로 4월11일 발매된다. 이 소식을 기념해 <씨네21> 트위터 스페이스에 나온 이경미 감독은 우여곡절 끝에 저작권 문제를 해결하고 리마스터링과 색 보정에 임한 사연을 들려줬다. “<미쓰 홍당무> 촬영 당시에는 디지털카메라로 영화를 촬영하는 일이 흔치 않았어요. 디지털로 찍은 걸 필름으로 옮겨 상영했는데, 그걸 다시 디지털로 리마스터링했어요. 그러면서 이야기를 새롭게 보니 인물들이 화도 많이 나 있고, 시끄럽더라고요
[씨네21 트위터 스페이스] '미쓰 홍당무' 블루레이 발매 앞둔 이경미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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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길, 서현, 유재명, 이현욱, 이호정
넷플릭스 시리즈 <도적: 칼의 소리>(기획 스튜디오드래곤·제작 얼반웍스, 바람픽쳐스)에 배우 김남길, 서현, 유재명, 이현욱, 이호정이 캐스팅되었다. <도적: 칼의 소리>는 일제강점기에 각기 다른 사연으로 간도로 향한 이들이 조선인의 터전을 지키고자 하나가 되는 액션 활극이다. 김남길은 일본군 출신 도적 이윤을, 서현은 정체를 감춘 조선총독부 철도국 과장 남희신을 연기한다.
신하균, 원진아
이병헌 감독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은 쿠팡플레이 시트콤 <유니콘>(제작 스튜디오 드래곤, 플러스미디어엔터테인먼트)에 배우 신하균, 원진아가 출연한다. 드라마 <멜로가 체질> 김혜영 감독이 연출하고, 스탠드업 코미디 유병재 작가와 드라마 <어쩌다 발견한 하루> 인지혜 작가가 집필한다. <유니콘>은 올여름 쿠팡플레이에서 공개될 예정이다.
숀 레비
<프리 가이> <
넷플릭스 시리즈 '도적: 칼의 소리'의 김남길, 서현, 유재명, 이현욱, 이호정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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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상자료원(원장 김홍준)이 ‘시네마테크KOFA가 주목한 2021년 한국영화’ 기획전을 연다. <그대 너머에>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 <너에게 가는 길> <당신 얼굴 앞에서> <모가디슈> <세자매> <인트로덕션> <자산어보> <종착역> <최선의 삶> <휴가> 등 코로나19 시기에 극장에서 개봉한 한국영화 11편이 상영된다. 배우 이혜영, 이준익 감독 등 게스트를 초대해 관객과의 대화도 연다. 이번 기획전은 3월18일부터 31일까지 시네마테크KOFA 1관에서 열린다. 자세한 내용은 한국영상자료원 홈페이지(www.koreafilm.or.kr/cinematheque/screenings) 참조.
‘시네마테크KOFA가 주목한 2021년 한국영화’ 기획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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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가 ‘태흥영화사’ 회고전을 열고 1980~90년대 ‘코리안 뉴웨이브’를 조명한다. 이번 회고전에선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2002)을 포함해 송능한 감독의 <세기말>(1999), 김유진 감독의 <금홍아 금홍아>(1995), 김홍준 감독의 <장미빛 인생>(1994), 장선우 감독의 <경마장 가는 길>(1991), 이명세 감독의 <개그맨>(1988), 배창호 감독의 <기쁜 우리 젊은 날>(1987), 이두용 감독의 <장남>(1984) 등 태흥영화사가 제작한 영화 8편이 상영된다. 문석 프로그래머는 “지난해 타계한 이태원 전 대표를 추모하고 그가 설립한 태흥영화사가 한국영화계의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를 기리고자 한다”고 전했다. 영화제는 4월28일(목)부터 5월7일(토)까지 열흘간 전주 영화의거리 일대에서 열린다.
전주국제영화제, 태흥영화사 회고전 개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