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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여자> Runner
안드루스 블라제비시우스 | 리투아니아 | 2021년 | 87분 | 메탈 누아르
7.11 SO5 19:30 / 7.14 SO6 13:30
운동도 도망도 아니다. 27살 마리아가 달리는 이유는 사라진 남자 친구를 찾기 위해서다. 정신질환을 앓는 그를 보호해야 한다는 책임을 강하게 느끼는 그녀는 페이스북을 위치 추적기 삼아 혼자 또는 지인들과 함께 애인의 행방을 탐문한다. 우여곡절 끝에 마리아는 그를 발견하지만 연인의 재회는 전혀 달콤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그녀의 간절한 질주는 끝날 줄 모른다. 영화는 청각과 시각, 통각 등 모든 감각을 총동원해 주인공의 불안정한 심리를 끌어낸다. 받지 않아 계속되는 통화 연결음과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전화벨이 신경을 거스르고, 무형의 존재를 쫓아 별안간 시작되는 뜀박질과 이유 없이 점차 심해지는 팔의 통증은 불확실성의 공포를 안긴다. 마리아 역의 지기만테 엘레나 약슈타이테는 막대한 에너지를 뿜어내며
BIFAN #5호 [프리뷰] 안드루스 블라제비시우스 감독, '달리는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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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치/오즈> Lynch/Oz
알렉산더 O. 필립 | 미국 | 2022년 | 108분 | 매드 맥스
7.11 SO9 14:00 / 7.13 SO11 20:00 / 7.15 FA 17:00
영화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알렉산더 O. 필립 감독이 이번에는 데이비드 린치 감독과 <오즈의 마법사>(1939)에 주목한다. <엘리펀트 맨> <듄> <블루 벨벳> <멀홀랜드 드라이브> 등으로 잘 알려진 린치의 작품 곳곳에는 <오즈의 마법사>가 스며들어 있다. 영화비평가 에이미 니콜슨을 필두로 영화감독 로드니 에스쳐, 존 워터스, 카린 쿠사마, 저스틴 벤슨과 아론 무어헤드, 데이비드 로어리가 6가지 시점에서 풀어내는 시네마틱 에세이는 영화를 사유하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한다. 그들은 린치가 <오즈의 마법사>의 서사와 상징을 오마주하고 변형함으로써 환상적인 세계의 이면에 대해 고찰한다고 말한다. 마녀의 캐
BIFAN #5호 [프리뷰] 알렉산더 O. 필립 감독, '린치/오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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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얼 킬러> The Execution
라도 크바타냐 | 러시아 | 2021년 | 130분 | 아드레날린 라이드
7.10 MB4 16:30 / 7.14 SO5 19:30
경찰서장 승진을 앞둔 다비도프는 축하 파티 자리에서 자신이 엉뚱한 사람을 연쇄살인마로 지목했다는 사실을 알고 분노한다. 간신히 도망친 생존자의 진술 덕분에 범인을 자택에서 체포하지만 그의 죄를 구체적으로 입증할 방법이 없다. 자백을 받아내려는 형사와 이를 거부하는 연쇄살인마 사이의 심리전이 길어질수록 둘의 관계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시리얼 킬러>는 10여년에 걸친 살인 사건과 경찰 수사 과정을 시간순이 아닌 비선형적 내러티브로 제시한다. 진범의 정체를 일찌감치 드러낸 후 부정, 분노, 협상, 절망, 수용 등 각 챕터에 따라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플롯은 경찰의 오판이 어디서부터 잘못되기 시작한 것인지 미스터리의 퍼즐을 흥미롭게 조합해간다.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것은 냉
BIFAN #4호 [프리뷰] 라도 크바타냐 감독, '시리얼 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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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 피어> Deep Fear
그레고리 비겡 | 프랑스 | 2022년 | 80분 | 아드레날린 라이드
7.10 SO11 20:00 / 7.14 SO8 11:00
유럽의 오래된 도시 파리에는 거대한 지하 세계가 있다. 중세 시대에 만들어진 지하 채석장과 지하 묘지는 수백 킬로미터의 지하 동굴 카타콤을 남겼다. 현재까지도 모두 파악되지 않은 카타콤은 때로 인간 심연의 두려움을 자극하는 상상력을 이끌어낸다. <딥 피어>가 그 예시다. 소니아, 맥스, 헨리는 학업을 마친 후 추억을 쌓기 위해 지하 세계로 발을 들인다. 카타콤을 탐험하는 카타필의 일원인 라미가 인도하는 길을 따라 매력적이고 위험한 파리의 이면을 찾아나선 것이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굴을 통과하고 어두운 길을 한참 걷자 19세기에 조성된 거대한 지하 도시가 나타난다. 경이를 느낀 네 사람은 공개되지 않은 구역 ‘화이트 존’을 향해 더 깊숙이 들어가지만, 계속되는 위협에 모험은 중단된다. 좁은
BIFAN #4호 [프리뷰] 그레고리 비겡 감독, '딥 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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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모론의 단서> Something in the Dirt
저스틴 벤슨, 아론 무어헤드 | 미국 | 2021년 | 116분 | 매드 맥스
7.10 SO8 11:00 / 7.14 SO9 20:00
무거운 유리 재떨이가 공중으로 떠오르고 섬광을 내뿜는다. 문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새들이 집 앞에 떨어져 있다. 이해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는 현상을 연달아 목격한 두 남자는 이 광경을 잘 찍으면 넷플릭스가 관심 가질 만한 다큐멘터리가 될 거라고 확신한다. <음모론의 단서>는 LA의 낡은 아파트에 이사 온 대책 없는 바텐더 레비(저스틴 벤슨)와 일상이 따분한 이웃 존(아론 무어헤드)의 다큐멘터리 촬영기다. 의욕적인 두 사람은 팟캐스트나 유튜브, 테드에서 보고 들은 온갖 조각 지식을 동원해 초자연적인 현상의 실체를 밝히고자 한다. 영화로 재현되는 기이한 현상들은 저예산영화 특유의 그래픽 느낌이 물씬하지만, 이 현상을 해석하는 두 사람의 달변과 이를 뒷받침하는 푸티지 영
BIFAN #4호 [프리뷰] 저스틴 벤슨, 아론 무어헤드 감독, '음모론의 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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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의 화원> Office Royale
세키 가즈아키 | 일본 | 2021년 | 102분 | 메리 고 라운드
7.9 MM 16:30 / 7.14 SO4 19:30
학교에서 일어날 법한 패싸움이 회사에서 벌어진다는 엉뚱한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작품으로, 싸움의 주체는 여성 직원들이다. 이쪽에서 조용한 회사 생활이 이어질 때 저쪽에서는 떠들썩한 난투극이 벌어지는데, 그 격차에서 오는 코미디가 영화의 재미를 전적으로 책임진다. 부서 단위에서 회사 단위로 커지는 결투의 규모에 맞춰 액션 신의 완성도가 높아지는 것은 아니나 엉망진창의 활력만큼은 강해진다. 영화의 페이소스는 두명의 오피스 레이디가 맡는다. 절친한 직장 동료인 나오코(나가노 메이)와 란(히로세 아리스)은 중대 결투에 휘말린 뒤 각자의 역할을 각성한다. 자신을 주인공 친구쯤으로 여겨왔던 나오코가 자신 안의 슈퍼히어로를 발견하는 과정의 짜릿함이 <캡틴 마블>의 그것 못지않다. 반대로 스스로 주인공이라 믿
BIFAN #3호 [프리뷰] 세키 가즈아키 감독, '지옥의 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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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카: 외계에서 온 소녀> Maika: The Girl From Another Galaxy
함 트란 | 베트남 | 2022년 | 105분 | 저 세상 패밀리
7.9 SO6 13:30 / 7.12 SO5 13:30
어린이와 외계인의 우정을 그린다는 점에서 'E.T.'를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 서로가 얼마나 다른지에는 관심 없는 지구 소년 흥과 외계 소녀 마이카는 손장난과 방귀 놀이에 몰입하며 단숨에 친구가 된다. 외계 소녀의 지구 적응기는 모험 없이 흘러가지만 능력을 적재적소에 쓴 아기자기한 에피소드가 재미를 준다. 보라색 거대 캡슐을 타고 날아다니거나 등에 달린 긴 촉수를 활용한 액션 장면에서 대단한 파괴력을 느낄 순 없으나 동화적인 영화의 톤과 잘 맞아떨어진다. 과학적 야망을 품은 기업가에게 납치된 마이카를 친구들이 구하러 가는 종반부의 소동극은 허술하지만 의기투합의 박진감이 살아 있다. 희생까지 감내하며 촘촘히 우정을 쌓아왔던 소년, 소녀의 예정된 이별이 뭉
BIFAN #3호 [프리뷰] 함 트란 감독, '마이카: 외계에서 온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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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불바다> The Midnight Maiden War
니노미야 겐 | 일본 | 2022년 | 113분 | 메탈 누아르
7.9 SO8 11:00 / 7.14 CH 10:30
무엇을 위해 생을 투신할 것인가. 영화는 도돌이표처럼 반복될 뿐인 허무한 삶 속에서 생명을 이어가야 할 이유에 대해 질문한다. 지방에서 도쿄로 유학 온 주인공은 생계를 유지하며 학업을 병행해야 하는 일상에 환멸을 느낀다. 그저 평범하게 연애하고 결혼하고 싶다는 그의 작은 바람은 가혹한 현실 앞에서 허상이 될 뿐이다. 어둠 속으로 조금씩 침잠하던 주인공은 이윽고 모든 것을 파괴하고 싶다는 열망에 휩싸인다. 그런 주인공 앞에 두 사람이 등장한다. 주인공의 속내를 처음으로 알아차려준 선배와 모종의 이유로 사건 일으키기를 즐기는 수수께끼의 남성 ‘검은 옷’.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주인공을 파멸의 세계로 인도한다. 부패한 사회 시스템을 모조리 파괴해야 한다는 검은 옷과 병들고 가난한 세상을 벗어날 길
BIFAN #3호 [프리뷰] 니노미야 겐 감독, '도쿄불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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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 장르에 상당한 지분을 차지하는 거리 문화와 갱스터 랩의 영향으로 갱스터 누아르 영화에 대한 힙합 커뮤니티의 컬트적인 시선과 애정은 남다르다. 이런 장르영화를 단순히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폭력성과 누아르 특유의 매캐한 분위기 때문에 열광하는 이도 많겠지만 힙합 팬들에게는 조금 더 각별한 이유가 존재한다. 많은 힙합 음악에서 고전 갱스터영화들의 무수한 레퍼런스와 오마주들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성전처럼 여겨지는 영화가 있다. 바로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 1983년작 <스카페이스>다.
80년대 마이애미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미국으로 망명한 쿠바 난민 토니 몬타나(알 파치노)가 범죄와 함께 정착, 생존해나가며 도시의 마약왕으로 거듭나지만 결국엔 파멸하고 마는, 한 범죄자의 흥망성쇠를 전형적이면서 직관적으로 그려내는 스토리다. 우리가 줄거리보다 눈여겨볼 건 주인공 토니 몬타나가 처한 신분과 야망, 그리고 원하는 것을 쟁취해내는 태도다. 영화에서
[딥플로우의 딥포커스] 세상은 너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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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유명한 첫 문장을 박형규 선생은 이렇게 번역했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 나는 이 말이 품고 있는 생각이 소설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망하고 끝장나고 불행해지는 결말은 다양하게 만들어내기 쉽다. 그러나 문제가 모두 해결되는 행복한 결말로 가는 길은 결코 많지 않고 궁리해내기 어렵다. 동화 중에 행복한 결말로 끝나는 이야기들이 많다보니 소설을 직접 써보지 않으면 행복한 결말이 그저 유치하고 간단한 것이라고 착각하기 쉬운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설득력 있고 그럴듯하게 행복한 결말을 만들어내는 것은 불행한 결말보다 어렵다는 것을 나는 경험으로 알았다.
그 이유는 삶의 행복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러 사람의 삶이 모여 이루어지는 세상도 마찬가지다. 세상이 정말 행복한 곳이 되려면 대단히 많은 조건이 갖추어져야 한다. 커다란 전쟁도 있으면 안되고, 큰 재난도 있으면 안되고, 악
[곽재식의 오늘은 SF] 섬세한 '오메가 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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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즈 라이트이어>가 돌아보는 시네마의 시간에 대하여.
1995년, 앤디는 버즈 라이트이어라는 장난감을 생일 선물로 받았다. 뿅뽀롱뿅뿅~ 번쩍번쩍하는 제법 근사한 장난감이었다. 구닥다리 카우보이 봉제인형인 우디와는 비교도 안된다. 물론 이 둘은 <You’ve Got a Friend in Me>라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멋진 듀오가 된다. <토이 스토리>는 1995년, 100주년 생일을 맞은 시네마에 뜻밖의 선물처럼 등장했다. 아니, 선물이라기보다는 두 번째 세기를 맞이하는 시네마에 주어진 새로운 육신과도 같았다. 시네마는 셀룰로이드 필름이라는 봉제인형의 몸에서 디지털이라는 플라이스틱 보디로 갈아타야 할 시간이었다. <토이 스토리>는 영화 탄생 100주년에 맞춰 등장한 첫 번째 장편 디지털 영화였다. 당시 관객에게 ‘과연 우디와 버즈 라이트이어처럼 시네마도 과거의 필름과 미래의 디지털이 훌륭한 팀워크를 이룰 수 있는가?’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나호원 애니메이션 연구가의 '버즈 라이트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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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폭탄에 반대하지 않지만 군대는 반대한다.”
- 장뤽 고다르
매버릭은 어떻게 살아난 걸까? <탑건: 매버릭>의 도입부. 신형 전투기 개발 프로그램이 중단될 위기에 처하자, 매버릭은 아직 성능이 검증되지 않은 전투기를 몰고 목표속도인 마하 10을 돌파하는 초음속 비행을 성공시킨다. 그러나 동료가 염려한 대로 목표지점에 도달한 뒤에도 그는 가속을 멈추지 않는다. 과열된 기체는 끝내 사고를 일으킨다. 순식간에 통신이 끊어져 비행을 지켜보던 관제소의 스크린이 꺼지고, 초음속으로 질주하다 추락하는 전투기의 포물선이 카메라에 붙잡힌다. 매버릭을 연기한 배우가 톰 크루즈가 아니었다면 즉각적으로 조종사의 죽음을 예감할 만한 장면이다. 가늠할 수 없는 속도로 비행하면서도 극도의 긴박감을 제공하는 대신 창밖을 바라보는 매버릭의 표정과 덧입혀진 서정적 음악이 화면을 불안하게 감싼다. 물론 매버릭은 살아남는다. 하지만 영화는 그가 조종석에서 탈출하는 구체적인 과정을 숨긴다. 전투기에
김병규 평론가의 '탑건: 매버릭' 이미지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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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인연이다. 언제,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만나느냐에 따라 영화와 나의 관계가 바뀐다. 많은 사람이 환호하는 걸작이 정작 나에게 시큰둥하게 다가온다고 이상할 건 없다. 아직 그 영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안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반대로 소리 소문 없이 지나간 영화가 나만의 걸작이 되는 일도 그리 드물지 않다. 그렇게 자신만의 보석함을 늘려가는 즐거움이 영화를 보는 또 다른 행복일 것이다.
한편 어떤 영화는 시간과 함께 익어가는 운명을 타고난다. 시간의 풍화를 받지 않는 걸작을 다시 보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지만, 시대를 앞서간 영화가 당대에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다가 뒤늦게 발굴되는 것 역시 드문 일이 아니다. 그렇게 몇몇 영화는 시대마다 새롭게 태어난다. 정확히는 당신을 만나 새롭게 태어난다. 물론 모든 영화가 이런 행운을 거머쥐는 건 아니다. 그만큼의 깊이와 존재감, 그리고 변하지 않는 어떤 것을 품고 있어야 가능하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큐어>는 그런
'큐어'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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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프리드 히치콕의 영화들
비밀이 많아 보이는 여자, 그런 여자를 관찰하고 수사하는 남자. 마침내 사랑에 빠지는 두 사람. 수사물의 미스터리에 로맨스를 교묘하게 얽어낸 <헤어질 결심>의 이야기는 앨프리드 히치콕의 <현기증>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 이뿐만 아니다. 고소공포증, 불면증, 관음증의 모티브, 크게 2부로 나뉘어 여인의 비밀을 파고드는 플롯, 파도치는 바닷가를 뒤로한 기암괴석에서의 대화, 청록색 드레스를 입은 여자주인공의 자태, 제임스 스튜어트의 멀끔함과 비슷한 해준(박해일)의 품위까지 영화 곳곳엔 <현기증>의 인장이 넘쳐난다. <현기증> 말고도 히치콕의 냄새는 <헤어질 결심> 곳곳에서 풍긴다. 해준이 서래(탕웨이)의 집 안을 몰래 들여다보는 <이창>의 구도, 수사 대상인 여자와 사랑에 빠지는 형사 그리고 남편의 죽음이라는 <사보타주>의 서사. 또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속 러시모
'헤어질 결심'의 레퍼런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