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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격한, 너무나 엄격한 뚝심<낮과 밤>의 감독 왕 차오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니, 엄격한 영화의 형식만큼이나 얼굴에서도 뚝심이 묻어난다. 두터운 안경, 그 안의 가느다란 눈, 굳게 다문 입술, 짧은 머리(여러분도 한 번 더 눈여겨 보시라!). 일단 한 번 터져나온 목소리는 어찌나 큰지 왠만한 주변 잡음은 모두 그 아래로 잠긴다. 같은 북경아카데미의 동료 지아 장커의 작품이라도 비판할 점은 확실하게 하고, 자신의 영화에 대한 비판에는 분명하게 반박한다. 강인함이 저절로 반사된다. 하긴, <안양의 고아>같은 영화는 아무나 선뜻 만들 수 있는 영화가 아니다. 영화의 질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영화의 뚝심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거기에는 그 자신이 여러 해를 거쳐 경험한 하층민 생활과 힘든 노동의 흔적들이 있다. 그것이 그 영화를 지탱하는 기초가 되었다. 그런 그가 이번 부산영화제에는 "인간 내면의 변화에 초점을 맞춘" <낮과 밤>으로 왔다.그가
<낮과 밤>의 왕 차오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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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서 본 한국영화, 그것이 알고 싶다해외에서 바라본 한국영화는 어떤 모습일까. 올해 부산영화제를 찾은 이들 중‘한국통’이라 불리는 3명의 평론가 및 기자에게 영화제에서 상영됐던 한국영화에 대한 코멘트를 부탁했다. <버라이어티>의 데릭 엘리는 “이정철 감독의 <가족>과 배창호 감독의 <길>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에 아쉬움을 표하면서 대사와 배우들을 보는 재미가 있는 <범죄의 재구성>과 “마음을 끌어당기는 전도연의 연기”가 돋보이는 <인어공주>를 특별언급했다. 토니 레인즈는 “티켓을 구하지 못해 독립영화들을 보지 못했다”면서 “최근에 본 황철민 감독의 <프락치>가 누락된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편, 달시 파켓은 재능있는 젊은 감독들의 부상이 눈에 띈다고 강조했다. 참고로 3인의 답변 중 국내에 해외 평이 빈번히 소개됐던 <올드 보이><사마리아><남자는 여자의 미래다><
부산 찾은 3명의 외국 평론가·기자의 말말말(+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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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불륜을 유일한 사랑으로 만들었다아시아 최초의 ‘도그마’ 인증 작품이기도 한 변혁 감독의 첫 장편 <인터뷰>(2000)는 국내에서 성공하지 못했다. 그로부터 4년, 두번째 장편 <주홍글씨>를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올려놓았고 10월29일 국내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크랭크업과 영화제 사이의 기간이 여유있지 않아서 “후반작업에 심하게 애를 먹은” 변혁 감독은 폐막 이틀 전까지도 편집에 매달려야했다.-사적 영역의 불륜과 공적 영역의 살인 미스터리를 섞었고, 그것이 서로의 거울처럼 비추게 했다. 전작도 다큐멘터리와 픽션의 경계를 오갔는데, 두 가지 대립항의 교차를 좋아하는 것 같다=<인터뷰> 때는 그런 형식적인 면에 경도된 측면이 있고, 이번에는 사람 자체에 대해 관심이 훨씬 많았다. 여전한 건 어떤 한 입장의 이야기만 듣기보다 모든 걸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방식이다. 그것이 전체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 같다. 또 한 가지는 어떤 특수한 개인의 문제
폐막작 <주홍글씨>의 변혁 감독(+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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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6월8∼22일 산 파블로, 페루
“이런 숭고한 대의를 대변하기엔 하찮은 존재들이지만 나와 그라나도는, 특히 이번 여행을 통해, 불안정하고 가공된 남미대륙의 분열이 완벽하게 허구임을 다시 한번 강하게 믿게 됐습니다. 우리는 단일한 메스티소 민족으로 합쳐져야 합니다. 멕시코에서부터 마젤란 해협에 이르기까지 우리 모두는 분명히 인종적 유사성을 지닌 단일민족입니다. 이제 이 편협한 지역주의를 걷어내자는 뜻으로 페루와 하나된 라틴아메리카를 위해 건배를 올리고 싶습니다.”
게바라와 그라나도가 3주 동안 머무른 페루의 나환자촌은, 손으로 만져서는 절대 옮지 않는 나병에 걸린 남미 각지의 사람들이 가족들로부터 버림받고 고립된 공간이었다. 로케이션 헌팅차 그곳을 방문한 살레스 일행은 한때 그곳에서 지냈던 사람들로부터 “우리에 대한 영화를 찍을 거라면 우리가 직접 출연하고 싶다”는 희망사항을 접수했다. 나환자촌 거주자 100여명 가운데 90여명이 현지인으로 구성됐다. 리얼리즘의 포획
체 게바라의 젊은 날, <모터싸이클 다이어리> 미리보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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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3월7일 발파라이소, 칠레
“깊은 불안함이 나를 엄습했다. 어떤 것도 느낄 수 없을 것 같았다. 난 내 자신에 대해 두려워지기 시작했고 눈물로 편지를 쓰기 시작했지만, 쓸 수 없었다. 해봐야 소용없는 일이었다. (중략) 난 이 순간까지도 내가 그녀를 사랑한다고 믿었다. 내가 아무런 존재도 아니란 걸 깨닫는 이 순간까지도. 내 맘을 다해 그녀를 다시 불러와야만 했다. 그녀를 다시 얻기 위해 싸워야만 했다. 그녀는 내 거야, 내 거야….”
게바라는, 자신의 첫사랑이었던 치치나로부터 이별을 고함받았다. 영화는 이 순간을 아주 적막하게 표현한다. 게바라의 말 한마디나 몸짓 대신 감독은 그의 어깨 너머로 그림자가 드리워진 옆얼굴을, 그의 등 너머로 그 등보다 넓은 바다를 가깝지만 먼 듯 비춘다. 이 대목과 관련해 <사이트 앤 사운드>는 “만약 게바라가 치치나로부터 버림받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라는 우문을 던졌다. 살레스는 이렇게 대답했다. “게바라가 오늘날 울
체 게바라의 젊은 날, <모터싸이클 다이어리> 미리보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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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터 살레스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미리보기
‘게바라’가 ‘체 게바라’가 되기까지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 남미대륙과 남미인들에 대해 그 누구보다 순수하고 뜨거운 애정만 갖고 자기 고국 땅을 넘어서서 쿠바로, 볼리비아로 건너간 혁명 지도자. 20세기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혁명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그를 영화화하기란 어떤 면에서 참 쉬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월터 살레스의 체 게바라 전기는 그를 영광스럽게 기리지 않는다. 살레스의 신작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는 쿠바혁명이 성공하는 해로부터 일곱번 거슬러올라가, 오토바이 한대만을 이끌고 친구와 무작정 길을 떠난 한 청년의 남미대륙 여행기를 소박하고 깨끗하게 그리는 영화다. 지난 9월9일부터 19일까지 열린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월터 살레스를 만났다. 거기서 이루어진 단독 인터뷰와 자료들 그리고 게바라가 쓴 원작을 토대로, 게바라-그라나도 혹은 살레스 일행의 남미여행에 미리 동참할 수 있는 티켓을 끊어왔다. 11월
체 게바라의 젊은 날, <모터싸이클 다이어리> 미리보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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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2004, 감독 변혁, 오후7시30분 수영만 야외상영장난데없이 창세기 3장 6절이 스크린에 새겨진다. “여자가 그 나무를 본 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익히 알려진 구절이다. 여자가 이 나무의 실과를 따먹고 남자에게도 건넸고, 이로써 눈이 밝아진 이들은 알몸이었던 자신들의 몸을 무화과 잎으로 가리게 됐다는 이야기. <주홍글씨>가 이 성경구절로 시작했다는 건 영화가 끝나고 나서 새롭게 되새겨질 것이다. 이 구절은 여자를 치명적인 유혹의 함정에 비유하도록 유도하지만, 이건 그녀의 ‘선지적’ 그리고 ‘모험적’ 인도로 인간이 진짜 현실을 대면하게 됐다는 이야기로 해석될 수도 된다. 비록 몰랐으면 좋았을 고통스런 진실을 깨우쳐주는. <주홍글씨>의 세 여자 경희(성현아), 가희(이은주), 수현(엄지원)이 기훈(한석규)에게 이와 비슷한 가르침을 안겨준다. 물론 해석은 자유다. 그녀들을 장르화한 팜므 파탈로 보던지,
<주홍글씨> The Scarlet Let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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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2004, 감독 다니엘 부르만, 오후 5시, 부산 1관아르헨티나 청년 아리엘은 홀로코스트를 피해 폴란드에서 탈출한 유태인 가문의 자손이다. 그의 아버지는 갓난 둘째아들을 두고 이스라엘 군대에 자원입대한 뒤에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 아기가 청년이 되도록, 한마디 변명도 없이. 쇼핑몰에서 속옷가게를 하고 있는 어머니도 아버지 이야기는 피하기만 한다. 아리엘은 아버지가 떠난 사연을 알고 싶어서 유럽으로 가려고 하지만, 또다시 알 수 없는 이유로, 아버지가 돌아온다. 곁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막연한 고민과 불만을 떠안길 수 있었던 아버지. 그의 비밀을 알게 된 아리엘은 골목길을 달리고 달려서 화해를 향해 뛰어간다.서른 남짓한 나이만큼 경쾌한 영화를 만든 다니엘 부르만은 이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로부터 사연을 듣고 지나가는 행인의 단편까지 모아 <잃어버린 포옹>을 완성했다. 식민지로 개척된 라틴 아메리카에서도 유독 유럽 이민이 많은 아
<잃어버린 포옹> Lost Embr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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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프랑스, 2003, 감독 왕 차오, 오후 2시, 메가박스 6관<안양의 고아>로 데뷔한 왕 차오가 정식으로 중국 정부의 허가를 얻어 만든 작품. 탄광촌에서 일하는 광생은 같은 광부이면서도 종민을 주인으로 부르며 하늘같이 섬긴다. 그러나 한편으론 욕망을 참지 못하고 그 주인의 젊은 아내와 육체적 관계를 맺는다. 어느날 광산이 무너지는 사고가 일어나고, 혼자 살아남은 광생은 주인의 목숨을 건지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이제 종민의 아내도 떠나버리고, 광생은 혼자 폐광을 되살리려고 노력한다. 그러던 중에 그는 광맥을 발견하고 일확천금의 부자가 된다. 다소 모자란 종민의 아들 아푸를 결혼시키는 것만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광생은 끝내 아푸를 결혼시키고, 그에게 재산을 물려준 후, 그곳을 떠난다.<안양의 고아>에서 도시의 하층민들을 통해 중국 현 사회의 공기를 은유적으로 표현했던왕차오는 두 번째 영화에서 좀 더 근본적인 존재론적 질문을 던진다.
<낮과 밤 > Day and 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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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션의 방법’과 ‘감정의 액션’에 대한 이명세의 모색
대신, 이 영화의 전모는 동력이 될 영화적 개념과 구성의 과정을 통해 그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우선 <형사>는 범죄자 집단을 쫓는 하지원과 안성기를 신참과 베테랑 형사(포교)의 캐릭터로 놓는다. 그리고는 그 상대 진영에 ‘슬픈 눈’이라는 범죄자를 대치시킨다. “<형사>는 간단하게 말해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조선판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인정사정 볼 것 없다>가 ‘추적편’이었다면, 이번 영화는 ‘대결편’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영어 제목도 듀얼리스트이고, 한글 제목도 <형사: 듀얼리스트>로 할까 생각 중이다.” 이것이 핵심이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추적신을 공들여 찍고, 영화의 전체 구조를 추적이라는 설정에 맞춰갔던 것을 감안한다면, 이번 영화의 ‘대결이라는 구조’가 어떻게 표현될지가 궁금하다. 그 예로 지금까지 한번도 사용하지 않았던(어떤 영화에
돌아온 이명세, 신작 <형사>를 이야기하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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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세가 돌아온다. 제목은 <형사>. 시대는 조선이고, 주인공은 여형사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후속편으로 기대된다. 오랜만에 새 영화를 만드는 감독들에게 매번 들러붙는 클리셰, ‘돌아오다’라는 표현이 이번만큼은 좀 감동적으로 들린다. 말 그대로 이명세는 근 5년 동안의 미국 작업 일지를 잠시 덮고, 다시 충무로 안으로 돌아온 것이다. 아직 촬영도 시작하지 않았지만, 궁금한 마음에 미리 만나보고, 또 예상해본다.
크랭크인 60여일 전. 이명세 감독의 새 영화 <형사>는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궁금한 건 어쩔 수 없다. 그러므로 무슨 진지한 평을 하기보다는 편안하게 대화를 나누는 마음으로 지난 5년간의 미국 생활과 앞으로 만들어질 영화 <형사>에 대한 기대를 펼쳐보자. 우선 그가 미국에서의 작업을 잠시 접고 다시 충무로에 입성하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그 짧지 않은 여정은 신작 <형사>의 출생과도 관계가 있다.
돌아온 이명세, 신작 <형사>를 이야기하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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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출판사가 미국의 위대한 비평가인 매니 파버의 저서를 처음으로 불어로 번역했다. 그의 과녁 가운데 프랑수아 트뤼포가 있음을 알고 나는 내심 놀라고 실망했다. <이웃집 여인>의 작가인 트뤼포는 현재 프랑스 뉴스의 핵심에 있다. 그의 사망 20주년을 맞아 다양한 기념 행사가 펼쳐지고 있으며 MK2가 감탄할 만큼 훌륭하게 복원시킨 (사진)가 재상영되고 있다.
파버는 트뤼포의 모든 비방자들처럼 그가 지나치게 다듬어진 영화의 대표적 인물이며 트뤼포 자신이 비평가로서 고발한 전통에 대한 지지자라고 비난한다. 파버는 유명한 비평 글에서 ‘흰개미 스타일’과 ‘흰 코끼리 스타일’을 비교한다. 흰개미 스타일은 지하 예술가들의 스타일을 일컫는다. 즉, “가장 훌륭한 영화는 일반적으로 공공연한 문화에 대한 모든 욕망이 없어 보이는 창조자들에게서 나타난다”. 그 반대급부에 자신의 예술(그리고 그 자신)을 가지고 고귀한 이념을 만들어내는 영화인의 흰 코끼리 스타일이 있다. 영화팬이라는 과
[외신기자클럽] 사후 20주년 트뤼포를 다시 보다 (+불어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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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4월 베를린. 한 나라가 통째로 몰락을 기다리고 있다. 거리에는 게릴라전이 치열하고, 도시 외곽에는 이미 소련군대가 진입했다. 연발 총알과 대포알에 속절없이 사람들이 쓰러져가는 그 순간, 시멘트벽 두께가 수미터에 달하는 철통 같은 지하벙커에서 세심하게 연출된 자살극이 벌어진다. 주인공은 아돌프와 에바. 막 부부의 연을 맺은 이들은 신혼의 단꿈 대신 죽음의 문을 택한다. 이와 함께, 악명 높은 나치 원흉 아돌프 히틀러가 꿈꾸던 천년제국도 종말로 치닫는다.
1945년 4월 말 나치제국 본부 지하에 있는 벙커에서 일어난 며칠 동안의 사건을 보여주는 올리버 히르쉬비겔 감독(<엑스페리먼트>)의 <몰락>은 독일 영화사상 그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큰 관심과 뜨거운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상영 전부터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이 작품을 타이틀 기사로 집중 보도했고, 개봉 열흘 만에 75만명 관객동원이라는 대기록까지 세웠다. 게다가 아카데미 외국영화상 독일
독일영화 <몰락>은 어떤영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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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독일과 세계의 민주주의자들은 식은땀을 흘렸을 것이다. 가을로 접어들 즈음 특별한 공포영화 한편이 개봉되었고, 또 실질적인 사회 공포가 실현되었기 때문이다. 지난 9월9일 독일에서 개봉된 영화 <몰락>은 나치 지도자 아돌프 히틀러 정권의 붕괴와 그의 자살 직전까지 12일간의 행적을 다룬, 독일의 유명 제작자 베언드 아이힝거의 작품이다. 독재자로서의 히틀러 모습보다는 그의 인간적인 측면을 집중적으로 다룬 작품으로 개봉 전부터 기존의 터부를 깨는 것을 둘러싸고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때마침 신나치주의 극우정당들은 지방선거에서 파격적인 성공을 거두며 지방의회에 대거 진출했다. 극우성향의 신문을 발간하는 언론인을 비롯해 신나치주의자들 여러 명이 <몰락> 촬영 때 엑스트라로 활약했다는 것만으로도 이 두 사건이 사회적으로, 그리고 역사적으로 어떻게 뒤엉켜 있는지 알 수 있다. 배우처럼 매일매일 거울 앞에서 연설을 연습했던 히틀러가 증오와 환상으로 대중을 최면시
히틀러의 망령과 악수하다, 독일영화 <몰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