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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을 이해하는 데 있어 법은 열등생이다. 법은 현실을 뒤늦게 이해하고 뒤늦게 현실을 반영한다. 앎도 마찬가지다. 앎은 사건이 일어난 뒤에 사후적으로 뒤늦게 구성된다. 윤리는 소문난 뒷북이다. 후진적인 사회일수록 이들 뒷북 삼총사의 속도는 더더욱 늦어지고 개인의 자유는 더 움츠러든다. 대신 이 뒷북 삼총사는 큰 힘을 발휘하며 사람들을 지배한다. 예술이 여기에 충격을 줄 수 있지만 그마저 검열의 그물에 걸려 꼼짝하기 어렵다. 2000년 12월, 30대 기혼 여성과 10대 남성 사이의 이른바 역원조교제 사건은 개인의 자유에 적대적이면서도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는 한국사회의 분열적 증상을 드러낸 사례였다.
<녹색의자>는 5년 만에 뒤늦게 한국사회를 향해 발언한다. 의미심장한 현(심지호)의 성인식 장면이다. 여기는 영화 안에서 가장 주목할 만하고 미학적 충격도 안겨줄 수 있는 대목이다. 현의 부모와 문희(서정)의 전남편을 비롯한 각계각층, 여러 세대의 목소리가 술자리에 한데 모
사막 같은 현대의 사랑법에 대한 고찰, <녹색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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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라>라는 작품으로 대표되는 ‘오토모 카츠히로’라는 이름은 일본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안 들어본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하다. 미야자키 하야오와 함께 재패니메이션이라는 단어를 전 세계에 유행시킨 그가 최신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 <스팀보이>로 오랜만에 돌아왔다.
하지만 유명세에 비해 솔직히 그가 제작에 참가한 작품치고 소위 말하는 대박을 친 작품은 드물다. <메모리즈>를 비롯해 다른 작품들 역시 실험 애니메이션의 성격이 강해, 마니아 계층의 환영은 받았지만 정작 일반인들의 시선을 끌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일반 애니메이션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재미’를 추구하기 위해 힘을 모은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반신반의했다. 오토모 카츠히로와 재미라... 뭔가 어색한 조합이라는 생각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다. 재미보다는 화려한 영상과 난이도 높은 스토리 등으로 마니아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는 그가 재미있는 작품을
박창선의 애니산책 <스팀보이 메모리얼 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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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영어교사 이유림(박해일)은 교생 최홍(강혜정)이 첫눈에 맘에 들어 시쳇말로 ‘작업을 건다’. 그는 아주 노골적으로 “같이 자고 싶어요”라고 하고, 홍은 “사랑하지 않으니 같이 잘 수 없다”며 버틴다. 끈질긴 유림의 노력은 마침내 빛을 본다. 유림과 홍은 각자 “자식 같고 부모 같은” 6년 된 여자친구와 “안정적이라서 좋다”는 의사 남자친구와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간헐적으로 섹스를 나눈다. 그러다 유림이 홍의 과거를 알게 되면서 연애는 사랑이 되고, 둘이 연애하는 사실이 보수적인 학교 안에 퍼지면서 사랑은 위기를 맞는다.
유림이 6년 된 여자친구와의 관계도 파기하지 않으면서 자기 욕망을 실현시키고 싶어하는 설정은 나름대로 현실적이다. 영화 안에서 유림으로 대표되는 남자의 욕망은 (그것이 얼마나 보편적인가와 별개로) 생생하게 꿈틀거리고 움직인다. 홍의 캐릭터도 그런 유림의 캐릭터와 어떤 면에선 조화롭다. 유림과 첫 섹스를 할 때의 홍은 유림만큼 정열적이며 “너 되게 맛있다”
뻔뻔한 남자와 당돌한 여자의 연애, <연애의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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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이 되면 가족들에게 50억원 상당의 유산을 나눠주고, 통일이 안 된 채 사망하면 전액을 통일부에 기증한다는 아버지의 유언장을 보고 흔들리지 않을 자식이 과연 얼마나 될까. 게다가 아버지의 여생이 3개월뿐이라는 사실까지 알게 된다면 ‘통일 자작극’ 정도가 아니라 온몸에 철조망을 감고 DMZ에서 1인시위라도 하려 하지 않을까. <간큰가족>은 이렇듯 비정하고 씁쓸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 남한의 현실에서 출발한다. 빚독촉에 시달리는 명석(감우성)과 가족들이 아버지 중엽(신구)의 눈과 귀를 현혹시키기 위해 갖은 고생을 사서 하는 모습은 사악하게 느껴지기보다는 애처로워 보인다. 늘 북에 두고 온 딸자식 이름만을 되뇌던 중엽이 이산가족을 상봉한다는 설렘에 건강을 되찾는 기적을 행하지만 않았던들 이 가족의 소동극은 900만원이라는 ‘저예산’만 지불한 채 끝낼 수 있었을 터. 이제 “우리 언제 피양에 가네?”라며 초롱초롱 눈을 빛내는 아버지를 속이기 위해선 TV뉴스 조작이
돈다발에 혹한 일가족의 남북통일 대장정, <간큰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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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하이데거는 죽음이란 존재의 가장 중요한 가능성이라고 했다. 죽음에 대한 강박 혹은 매혹을 창작의 원천과 동력으로 바꿔낼 줄 아는 노년의 예술가들은 이 명제를 아마도 가장 훌륭하게 입증하는 존재들일 것이다. 현재 100살을 얼마 두지 않고 있는 포르투갈의 시네아스트 마뇰 드 올리베이라도, 그가 만든 영화들로 미루어볼 때, 그런 이들 가운데 당당히 끼워줄 만한 인물이다. <세상의 시초로의 여행>(1997)에서 “장수란 신이 내린 축복”이라고 말하는 그이지만 그것이나 <집으로 돌아가리라>(2001), <포르토에서의 어린 시절>(2001) 같은 영화들에서 언뜻언뜻 자신을 드러내는 그는 이제 실존의 한계에 도달해 있다는 일종의 위기의식에 맞닥뜨리고 있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그는 헛된 회고의 시선을 세상과 삶에 들이대며 이 위기의식에 짓눌리는 것이 아니라 진중한 통찰의 힘을 잃지 않고서 그것을 자기 세계를 구축할 기본 동력으로 활용해낼 줄 알고 또 그렇게
올리베이라의 기적, <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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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원엔터테인먼트의 정태원 대표가 스펙트럼DVD를 인수했다. 정태원 대표는 지난 5월30일 스펙트럼DVD의 지분 중 11.68%에 해당하는 66만5천800주를 매입해 1대 주주가 되었고, 11.67%에 해당하는 66만5000주를 매입한 영화배우 하지원과 함께 스펙트럼DVD를 인수했다. 이로써 상장사인 스펙트럼을 인수, 비상장사인 태원엔터테인먼트를 합병하는 형태로 조직을 개편하게 된다.
정태원 대표는 이번 인수합병을 통해, 기존에 역점을 두었던 영화 제작과 투자는 물론 DVD와 음반, MGM 케이블 채널, DMB 등으로 사업을 다각화하고, 장기적으로는 2대 주주인 하지원의 소속사 웰메이드엔터테인먼트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매니지먼트 사업도 병행한다는 구상을 밝혔다. 스펙트럼DVD는 1천개 이상의 타이틀을 갖고 있으며, 음반 라이브러리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태원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제작 및 수입영화들을 독점적으로 출시 유통해온 인연으로, “서로의 장점을 공유하고 단점을 보완하
태원, 콘텐츠 기업으로 거듭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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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기 영상물등급위원회가 꾸려졌다. 대한민국예술원이 추천하고 대통령이 위촉한 신임 위원은 김민선, 김양은, 노계원, 민병훈, 박옥희, 박찬, 신봉승, 오욱환, 유현정, 이경순, 이세기, 이은성, 이창호, 이현숙, 조혜정 등 모두 15명. 예술원, 한국문화예술진흥원, 방송위원회, 청소년위원회, 한국청소년상담원, 영화진흥위원회, 대한변호사협회, 예총, 민예총, 게임산업개발원, 한국음악산업협회, 교총, 대한YMCA, 학부모정보감시단 등의 기관 및 단체들이 위원 추천에 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3년 임기의 신임 위원들은 6월7일 오전 위촉장을 전달받고, 심의 업무를 시작할 예정이다.
이번 인선의 큰 특징은 유난히 신임 위원이 많다는 점이다. 2기에서 유임된 위원은 이경순 전 영등위 위원장과 노계원 위원 단 두명에 그쳤다. 대신 과거 영등위 소위원회에서 활동했던 이들이 다수 진출했다. 최고령인 신봉승(72) 위원과 최연소인 이은성 위원의 나이 차는 42년으로, 위원들의 평균 나이는 48.4
3기 영등위, 문제많은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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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운영을 둘러싼 문제제기가 끊이지 않던 광주국제영화제가 또다시 삐걱거리고 있다. 지난 5월31일, 수석프로그래머로 4개월간 일해왔던 정재형 동국대 영화영상제작학과 교수와 권주연 프로그램팀장, 프로그램팀원 등 3명이 집행위원장에게 사직서를 제출했다. “영화제 개막이 3개월 앞으로 다가왔지만, 광주시와 문화관광부로부터 일절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는 파행적인 운영 상황”을 문제제기하며 사의를 표명한 정재형 교수는 “돈이 없어 전화까지 끊기는 상황에서도 자비를 들여 프로그래밍을 진행해왔다. 4월27일 집행위원장에게 정상화를 촉구하면서 공식적으로 항의했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며 배경을 설명했다.
광주영화제의 뒤늦은 예산집행 문제는 3회 때부터 계속됐던 고질적인 사항. 다른 지역 국제영화제와 달리 민간인 주도로 출범한 광주영화제가 국고지원을 받기 시작하면서, 예산을 지원하는 시가 조직위원회 이사회를 문제삼으며 예산을 마지막까지 집행하지 않는 경우가 빈번해진 것이다. 정재
정말 하긴 하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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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어떻게 안 변하니”라고 아프게 역설하던 <봄날은 간다>가 단연 선두다. 연애의 심리를 흥미롭게 포착한 영화에 대해 물었더니, 연애의 이데올로기전보다 연애의 심리전에 더 많은 점수들이 갔다. 변하지 않을 듯 변하기도 하고, 난공불락 같던 그 사람이 문득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리던 경험들이 반영된 듯. “그러나… 사랑은 변한다… 그걸 알아가는 게 늙는다는 거지”(tairi75) 같은 심정이 모여 1위를 만들었다.
홍상수 영화에서 드물게 연애에 성공했던 <오! 수정>이 꽤 높은 호응으로 2위를 했다. “연애=평행선이 교차하는 점이라면 <오! 수정>에는 그걸 표현하려고 하는 의지가 보인다”(kojongsoo8318)는 소감처럼 영화에 묘사된 연애의 속내가 그렇게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연애, 결혼, 동거 등 남녀 사이의 많은 것들이 적나라하게 담겨 있다”(ksk8686)는 <결혼은, 미친 짓이다>가 힘겹게 3위를 했다.
∇ 연애의
[씨네폴] 은수-상우의 심리전이 짱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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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이 눈을 찌른다. <외출> 촬영현장으로 향하는 길 산자락에 눈꽃이 피어 있던 것이 고작 두달 전이라니 거짓말 같다. 자신들을 배신하고 몰래 사랑한 배우자들의 교통사고로 인해 고통 속에 마주친 <외출>의 남자 인수(배용준)와 여자 서영(손예진)은 3월 그날의 죽서루에서 처음 친밀감을 나누었더랬다. 지금쯤 두 사람도 서로에게 부쩍 다가섰으리라. 오후 1시. 삼척해수욕장에 도착하니 촬영 기재들보다 일본에서 온 욘사마 팬들이 먼저 여기가 촬영현장임을 알린다. 해변을 면한 가게 2층 테라스에 늘어선 한떼의 망원경이 우르르 움직이는 품새가 흡사 철새 도래지의 버드워칭(bird-watching) 풍경이다.
오늘은 서영과 인수가 조심스럽게 데이트를 한다. 몇달 전 허진호 감독은 이런 그늘진 러브스토리에도 천진난만한 연애의 희열이 빛나는 장면이 있을까라는 물음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답했는데 오늘이 바로 그날인가보다. 해변과 나란하게 깔린 카메라 트랙이 두 사람이 걸어갈
그늘진 러브스토리에도 희열은 있다, <외출> 촬영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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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독의 TV감상실] <내 이름은 김삼순>, 변기 위의 음유시인 김삼순
[올드독의 TV감상실] <내 이름은 김삼순>, 변기 위의 음유시인 김삼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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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제작가협회(제협)는 지난해 말부터 영화 저작권 침해 실태에 대한 조사를 벌인 뒤 이를 토대로 올봄부터 한국영화 저작권 신탁관리기구 설립에 발벗고 나섰다. 할리우드 영화에 치우쳤던 불법복제 기승이 한국영화로 확산되면서 “당장 손을 쓰지 않으면 수습이 불가능한 지경”이라는 위기에 봉착했기 때문이다. 영화진흥위원회도 한국영화의 2차 판권 시장 위기와 불법복제 문제를 2005년도 중점연구사업으로 지정해 조사중이다.
제협이 설립을 추진중인 신탁관리기구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불법복제 영상물을 찾아내고 검찰에 고발함과 아울러, 비디오방 등으로부터 저작권 수입을 받아 회원사에 나눠주는 일을 하게 된다. 지금까지는 한국영상산업협회가 단일 제작사나 작품별로 계약을 맺고 이 일을 해왔으나, 제협은 한국영화 전체의 저작권 관리 창구를 단일화하겠다는 방침이다. 신탁기구 설립과 함께 제협은 네티즌들이 선호하는 ‘다운로드 플레이’(내려받은 다음 일정 기한에 자유롭게 볼 수 있는 방식) 방식 등 합
불법단속 한편에선 온라인 수익모델 궁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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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신사바>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
안병기 감독의 <분신사바>가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될 전망이다. 영화의 해외판매를 담당한 미로비젼은 지난 5월20일 칸영화제 마켓에서 <분신사바>의 판권이 프랑스 출신 제작자인 사뮈엘 하디다에게 판매되었다고 밝혔다. <분신사바>의 리메이크는 사뮈엘 하디다가 운영하는 데이비스필름에서 진행되며, 영문 제목은 <Spell>(주문)로 알려졌다.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 연장상영
애니메이션 전용상영관 서울애니시네마가 6월2일부터 3주간 다카하다 이사오 감독의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을 연장상영한다. 관람료는 성인 5천원·학생 4천원이며, 자세한 문의는 02-3455-8373.
올해 부산에서 아시아의 숨겨진 감독들을 만난다
10회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영화 특별전 프로그램들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이란의 소흐랍 샤히드 살레스, 타이의 라타나 페스톤지, 인도네시아의 테그 카리야
[국내단신] <분신사바>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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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칠 때 떠나라> 세트에선 올바른 통로를 찾기가 어렵다. 가운데가 뚫린 사각형 모양의 2층 건물 아래쪽에 서면 계단 끝이 어느 방에 닿아 있는지 보이지 않고, 복도와 복도를 잇는 브리지는 출구의 위치를 더욱 헷갈리게 만든다. 새로운 목격자와 용의자가 줄을 서고, 서로 다른 범행 동기가 겹치는 이 영화의 살인사건처럼. 2000년 LG아트센터 개관기념 공연으로 무대에 올랐던 <박수칠 때 떠나라>는 호텔 방에서 죽은 채 발견된 광고회사 여사장의 살인범을 찾아내는 영화다. 호텔 로비에서 체포된 용의자 김영훈(신하균)은 그녀를 죽이고 싶었지만 이미 죽어 있었기 때문에 죽일 수 없었다고 말한다. 금세 끝날 줄 알았던 사건 속에서 길을 잃은 검사 최연기(차승원)는 심문과정이 TV로 생중계되는 가운데 그날 밤 호텔에 투숙했던 사람들의 행적을 재구성한다.
브리지 반대쪽 방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멀리서 모니터로 신구와 차승원의 연기를 지켜보던 장진 감독은 헤드폰을 쓰고서 웃음
“살인에 관한 가장 화려한 수사”, <박수칠 때 떠나라> 촬영현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