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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적인 박스오피스 침체 기류 속에 동물다큐멘터리 한편이 신선한 바람을 몰고 왔다고 여러 외신들이 앞다투어 보도하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펭귄: 위대한 모험>. 남극에 사는 황제펭귄의 생태를 담은 프랑스산 자연다큐멘터리다. 지난 2월 프랑스 관객 200만명을 동원했던 이 영화가 최근 미국에서 개봉해 놀라운 흥행돌풍을 일으키는 중이다. 6월26일 4개관으로 소규모 개봉한 뒤 서서히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더니 7월말에는 778개관에서 총 1633만달러를 거두면서 2주연속 흥행 10위를 차지했다. 미국에서 개봉한 역대 다큐멘터리 중에서 3위에 해당하는 성적이다. (1,2위는 <화씨 9/11>과 <볼링 포 콜럼바인>이다.) 지금 일본과 대만에서도 예상을 뛰어넘는 인기를 누리고 있다.
배급사 워너 인디펜던트 픽처스의 마크 질은 “리얼리티TV 덕분에 사람들이 다큐멘터리를 즐기는 법을 알게 된 것 같다”면서 “더욱 근본적인 이유는, 최근 할리우드 영화에 실망
‘펭귄’, 박스오피스 다크호스로 떠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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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닥터와 로즈를 연기하는 발음 이상한 배우들은 누구인가?
새로운 닥터를 연기하는 것은 대니 보일의 <쉘로우 그레이브>와 마이클 윈터보텀의 <쥬드>, 니콜 키드먼의 남편으로 등장했던 <디 아더스>, <28일후…> 등의 영화로 잘 알려진 영국 배우 크리스토퍼 에클스턴. 주로 어둡고 비정상적인 인물들을 연기해오던 그는 <닥터 후>의 제작자에게 직접 이메일을 보내 닥터 역을 쟁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로즈 역을 맡은 배우는 1998년 15살의 나이로 <Because We Want>를 차트 1위에 올려놓았던 아이돌 가수 출신 빌리 파이퍼. 17살 연상의 DJ 출신 방송거물 크리스 에반스와 결혼했다가 이혼한 뒤 <닥터 후>로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두 사람이 구사하는 맨체스터와 런던 토박이 발음 때문에 한 영국 시청자는 “영국 TV시리즈에서 T 발음이 사라질 판”이라고 딴죽을 걸기도 했다고(두 사람 공히
영국 SF시리즈 <닥터 후> [2] - 7가지 궁금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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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 어린 시절에 사람들이 지구가 돌고 있다고 말해줬던 순간을 기억하니. 물론 너는 믿을 수가 없었겠지. 모든 게 그저 조용히 정지해 있는 것처럼 느껴졌을 테니까. 하지만 나는 그걸 느낄 수 있어. 지구의 자전 말이야. 발을 딛고 있는 이 땅이 시간당 1천 마일의 속도로 돌아가고 있다는 걸 말이야. 그리고 이 행성이 시간당 6700마일의 속도로 태양의 주위를 맹렬하게 돌고 있다는 걸. 나는 느낄 수 있어.” <BBC>가 14년 만에 부활시킨 <닥터 후>는 은하의 자전을 감지할 수 있는 시간 탐험가 ‘닥터’와 평범한 영국 소녀 ‘로즈’의 모험을 그린 13부작 미니시리즈다. 폭발적인 시청률을 기록한 <닥터 후>의 모험담은 전 유럽권의 열광을 불러일으켰고, 유럽을 제외한 비영어권 국가로서는 처음으로 한국에 수출되어 KBS에서 방영되었다. 인터넷 게시판을 중심으로 뒤늦게 열광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SF시리즈 <닥터 후>를 여행하는, 혹은
영국 SF시리즈 <닥터 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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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라는 책제목과 사용설명서라는 시리즈 제목을 연결시켜 ‘실전 테크닉 안내서’로 추정하기 쉽지만(물론 독자가 사용하기 나름), ‘성적인 행동에 관한 사실과 일화, 과거와 현재로 이루어진 거대하나 희뿌연 연못에 살짝 한번 몸 담그는 유쾌한 지적 경험’이라는 저자의 말이 이 책의 성격을 정확하게 전해준다. 순서대로 읽을 필요도, 밑줄 그으며 읽을 필요도 없으며 심각하게 읽을 필요는 더더욱 없다. 어떤 내용이기에?
러시아 신비주의자 라스푸틴은 이것의 길이가 31cm였고, 영화배우 에럴 플린은 파티장에서 이것으로 피아노를 연주했으며, 작가 헤밍웨이는 이것이 새끼손가락만 했고, 헤밍웨이 못지않게 이것이 작았던 작가 피츠제럴드는 헤밍웨이와 함께 이것의 크기를 재본 적도 있으며, 고대 로마의 시인 유베날리스는 ‘운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이것이 아무리 길다한들 무슨 소용이랴’라고 말했다. 이것은 인간에게만 있는 건 아닌데, 예컨대 흰긴수염고래의 이것은 3m에 달한다. ‘이것’이 뭔지는 굳이….
섹스에 관한 잡다하고 세세한 백과사전, <섹스: 사용설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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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한복판에 커다란 덩치의 남자가 걸어간다. 단순한 비대남으로 보기에는 뭔가 이상하다. 온몸이 풍선처럼 부풀어올라 있는 남자는 계속해서 식은땀을 흘리며 기침을 해댄다. 감기라도 걸린 걸까? 그는 횡단보도 앞에 멈춰 서고, 주변에는 그와 함께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리는 많은 사람들이 보인다. 돌연 남자는 두눈, 두 콧구멍, 입… 신체의 모든 구멍으로 피를 스프링클러처럼 뿌려대며 쓰러진다. 주변 사람들도 비명을 지르며 피범벅이 된다. ‘안녕하세요, 고객님.’ 지금껏 인류에게 발견되지 않은 새로운 바이러스가 화려한 길거리 홍보 행사를 벌이고 있다.
10년 혹은 20년 전만 해도 만화와 영화는 현실의 대재앙을 충분히 앞서갔다. 사람들은 ‘정말로 미래에는 이런 일도 벌어질지 몰라’ 하며 오싹한 불안감을 야릇한 안도감으로 누르며 책장을 덮고 극장을 나왔다. 하지만 지금은 9·11 테러와 쓰나미와 같은 대재앙이 위성TV와 인터넷으로 생중계되는 시대. 게다가 그 파괴의 범위와 사망자 수도 픽
사스의 악몽을 기억한다면, 호카조노 마사야의 <이머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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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에서 가사의 비중은 그리 크지 않다. 하지만 어떤 노래들은 가사가 중요하다. 가령 이렇게. “주어진 만큼만 누리는 것, 나눠진 만큼만 갖는 것, 필요한 만큼만 먹는 것, 허락된 만큼의 욕망”(<이런 생각 한번 어때요?>), “이 세상에 군대와 사람들의 재앙이 왜 있는지 알고 싶거든 깊은 밤 도살장에서 들려오는 가여운 비명소리에 귀 기울여 보게”(<귀 기울여 보게>). 노랫말과 곡 제목 모두 메시지의 ‘강한 포스’를 드러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메시지 또는 이야기가 없는 음악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앞에 옮겨 적은 노래의 주인공은 박창근이다. 대학 1학년 때 교수가 틀어준 정태춘의 <아, 대한민국…>을 듣고 충격을 받았고 그뒤 노래패 활동을 했으며 노찾사, 꽃다지 출신 등과 ‘가객’이란 밴드로 활동하기도 했고 거리에서, 소극장에서, 대학가에서, 비정부기구(NGO) 행사장에서 노래해온 포크 가수임을, 눈치 빠른 이들은 이미 짐작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노래에 귀 기울여보게, 박창근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기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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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야민은 사진과 영화가 새로운 예술로 등장하는 것을 보면서 기술복제시대에 예술이란 대체 어떤 것이 될 것인지를 질문했다. 우리는 아마 그와 유사한, 그러나 그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을 요구받고 있다. 생명복제의 시대에 생명체란, 혹은 그것의 삶이란 어떤 것이 될 것인가? 이는 복제된 것, 복제된 생명체의 타자성에 관한 질문이다. 우리가 복제하거나 변형해서 만들어진 생명체를 우리는 있는 그대로 인정할 수 있을까?
가령 인공수정이나 유전자 복제를 해서 ‘만들어진’ 생명체가 ‘기형아’일 경우 우리는 그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할까? 그가 생명체임을 존중하여 그대로 태어나게 한다면, 우리는 그에게 이후 힘겨운 삶을 그대로 짐지게 하게 될 것이며, 그로 인해 우리 역시 힘겨운 삶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그 힘든 삶을 방지하기 위해 태어날 기회를 박탈한다면, 그것은 그의 의사와 무관하게 우리 뜻대로 처분하는 것이 될 것이다. 어떤 것이 그의 삶을, 그의 생명을 진정 존중하는 것일까?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생명복제시대의 윤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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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주전쟁>쪽에 제기된 투덜 중 대표작들을 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① SF액션영화인 줄 알았는데 민방위 영화였다 ② 외계인이 세균 때문에 전멸하는 설정은 관람료 환불 사유에 해당된다 ③ 우주전쟁이라면서 왜 지구에서 전쟁하냐 ④ 톰 크루즈의 자녀 캐릭터들이 마음에 안 든다. 둘 다. ⑤ 팀 로빈스는 <쇼생크 탈출>에서 27년 동안 땅만 팠는데, 또다시 땅굴을 파게 한 건 너무나 가혹했다 ⑥ 난 팀 로빈스 보고 히딩크 감독인 줄 알았다
다들 일리 있는 얘기다. 하지만 ①번의 경우, 지난 1938년 미 컬럼비아방송사에서 방송된 <우주전쟁>의 라디오 버전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 용서된다. 오슨 웰스가 연출을 맡았던 이 라디오극은, 가짜 음악 프로그램 중간중간에 화성인 침공을 알리는 뉴스를 속보로 끼워넣는 형식으로 진행됐는데, 일부에서는 실제로 짐을 싸서 피난가는 사람들이 출현할 정도로 그 실감과 충격은 대단했다. 만일, 스티븐 스필버그가 그때 그 필
[투덜군 투덜양] 엄마는, 알고 보니 외계인? <우주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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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도 운명이란 게 있다. 신문이나 잡지에서 기자로 일하다보면 느끼는 것이지만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단 하루도 못 버티는 글이 있는가 하면 수십년이 지나도록 읽히는 글이 있다. 주간지라면 그 생명은 대체로 일주일일 것이고 월간지라면 한달이 평균 수명일 것이다. 그렇다고 일간지보다 주간지가, 주간지보다 월간지가, 월간지보다 단행본이 우월하다는 뜻은 아니다. 그저 각자 주어진 생명에 걸맞은 삶이 있다. 단 하루 살아남는 일간지 기사라 할지라도 워터게이트 사건 보도나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 보도처럼 고전소설 못지않은 가치를 지닌 글도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한주가 지나면 쓰레기통에 처박혀 영영 사라질 주간지라 해도 최선의 노력이 들어가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10년 넘는 역사를 만들어가면서 일주일 만에 잊혀지고 버려지기 아까운 글들이 <씨네21>에 적지 않게 쌓였다. 가끔 한주의 삶으로 만족 못할 글들이 “이대로 죽을 순 없다”고 아우성치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
[편집장이 독자에게] <씨네21>의 첫 단행본 <내 인생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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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즈다이어리] <웰컴 투 동막골> よう-こそ 동막골
[헌즈다이어리] <웰컴 투 동막골> よう-こそ 동막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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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이 차 빌리신 건가요?” 한강 고수부지에서 촬영을 마치고 인터뷰 자리로 옮기기 위해 흰색 밴을 얻어타는 순간 입에서 맴돌았던 질문은, 끝내 발설되지 않았다. 그런 눈치를 챈 건지, “옮긴 (매니지먼트) 회사에서 주더라고요”라고 정재영이 선수를 쳤기 때문이다. 큼직한 가죽 시트의 아늑함을 즐기며 정재영과 밴, 어울리지 않는 두 항의 함수관계를 따지고 있을 즈음 그가 말한다. “이게 아주 어색해요. 밴에서 내가 내리면 사람들이 그럴 거 아녜요. ‘어, 배우는 안 탔나 보네’라고.” 민망해선지, 겸손해선지, 한국 연예계에서 밴이 상징하는 바를 애써 무시하려는 그의 말을 듣는 도중 바퀴가 스르르 멈춘다.
물론 밴의 존재 유무를 떠나더라도, 정재영이 한국 영화계의 대표 배우 중 하나로 성장한 것은 분명하다. <산부인과> <박봉곤 가출사건> 같은 영화에서 아주 미미한 역할을 맡았던 그는 <킬러들의 수다> <피도 눈물도 없이> <실미도&
가죽 의자가 어색한 남자, <웰컴 투 동막골>의 정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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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금자씨>에는 주인공 금자를 따르는 귀여운 사내가 나온다. 같은 빵집에서 근무하는 21살 청년 근식. 알고 보니 청년 근식 역의 김시후는 그보다 세살 아래인 18살 소년이다. 아직 청년이라 부르기가 선뜻 망설여지는…. 양복을 벗고 면바지와 청조끼를 입고 나타나니 다른 사람처럼 보일 정도다. 선하고 여리게 생긴 이 얼굴만 보고는 믿기지 않겠지만, “원래 성격은 불같다”고 한다. 그래서 연기를 시작하면서 가장 많이 배운 건 “자존심 죽이고 사회생활하는 방법”이었다. 그는 많은 대답의 끝을 “많이 배우게 됐어요, 도움 정말 많이 됐어요”라고 맺는다. 하긴 그렇기도 한 것 같다. 근식 역을 하기 위해 빵 만드는 기초작업을 배웠고, 법적으로 아직 면허증을 딸 수 있는 나이가 아님에도 운전까지 배웠다. “남자는 자격증이 있어야 나중에 뭘 해도 해먹고 산다”는 담임 선생님의 가르침에 따라 공고에 갔던 것은 사실 좀 쓸모없게 된 셈이다. 자격증이 있어야 배우를 할 수 있는 건 아
연기도 인생도 살 찌우는 중, <친절한 금자씨>의 김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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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에 갓 도착한 영국인 존 부어맨은 아메리칸 뉴시네마도 아니고 그렇다고 장르영화도 아닌 이상한 영화 한편을 만든다. 굳이 모던 누아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겠으나, 네오 누아르가 본격적으로 등장하자면 아직 몇년을 더 기다려야 할 때였다. <포인트 블랭크>는 당시 정점에 있던 유럽 뉴웨이브와 작가영화가 아메리칸 뉴시네마과 조우한 대표적인 예다. 한 남자가 총에 맞는다. 그는 자신을 배신한 부인과 친구를 찾아내 복수하고 자기 몫을 찾으려 한다.
존 부어맨은 DVD의 음성해설에서 <포인트 블랭크>가 죽은 자의 꿈 혹은 죽는 순간에 떠오른 생각일지 모른다고 말했다. 마약에 취한 듯 초현실·퀴어·사이키델릭·수정주의 누아르가 뒤범벅된 <포인트 블랭크>는 누아르가 꾸는 난폭한 악몽이다. 죽은 자는 알카트라즈의 폐허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하며, 그토록 원했던 돈을 눈앞에 두고도 어둠 속으로 사라질 뿐이다. 그래서 <포인트 블랭크>는 혼란스러운
[DVD vs DVD] 터프가이 하면 리 마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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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재미있으면 사람들도 재미있을 줄 알고 만들었지. 감독들만 좋아하더라고. 감독들은 하나도 안 중요한데 말야….” <올드보이>의 차분하고 여유로운 음성해설과는 달리, <복수는 나의 것>에서의 박찬욱 감독은 내내 심드렁하다. 가끔은 말투에서 열심히 만든 작품이 저평가된 것에 대한 불만이 드러난다. 동료 감독 류승완과 함께한 <복수는 나의 것>의 음성해설은 복수라는 상투적인 소재를 좀더 개성적인 영화로 승화하려 했던 흔적을 더듬는 작업이다. 하지만 그러한 작품의 핵심은 느닷없음, 부조리, 불친절함, 엉뚱함, 아이러니 등으로 가득 찬 결과물이 되어버렸고, 관객은 자신들이 외면하고자 했던 것들만을 골라서 보여주는 영화를 싫어했다. 되돌아보면, <복수는 나의 것>은 <올드보이>나 <친절한 금자씨>와 그렇게 다르지 않다. 세상은 선한 사람들이 무심코 저지르는 악행투성이고, 세편 모두 그 틈바구니에서 집요하게 기다리고 기다려 자
[코멘터리] 박찬욱 <복수 3부작>의 시작, <복수는 나의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