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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18편의 작품이 상영되는 공식경쟁단편 일반부문에서는 낯익은 이름들이 드문드문 보인다. 얼마 전 한국에서 회고전이 열렸던 핀스크린 기법의 대가 자크 드루앵의 <흔적>, 앞에서 소개한 이고르 코발료프의 <밀크> 등은 단편애니메이션이 지닌 예술성을 또 다른 단계로 끌어올린 작품들. 하지만 관객에게 가장 반가운 것은 엽기적인 애니메이션 <난 이상한 사람과 결혼했다> <뮤턴트 에일리언>으로 유명한 빌 플림턴의 신작일 것이다. 선풍기와 꽃이 사랑에 빠진다는 당황스러운 내용의 <선풍기와 꽃 이야기>는 지독하게 간결하다. 색채는 실종되고 다만 하얀 도화지에 흑백 사인펜으로 주욱주욱 그어놓은 듯한 이미지들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하지만 선풍기와 꽃의 비극적인 로맨스가 아름답게 결실을 맺는 순간, 겨우 7분짜리 흑백애니메이션은 마술처럼 보는 이의 가슴을 울린다. <사이드 웨이>의 폴 지아메티가 친근한 목소리로 내레이션을 담당했다.
SICAF2005 가이드 [4] - 공식경쟁단편+개막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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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트릭트
헝가리에서 날아온 저예산애니메이션(제작비 42만유로) <디스트릭트>는 올해 SICAF의 가장 혁신적인 장편일 것이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8번 구역은 집시와 부패한 경찰, 갱들, 매춘부, 힙합과 랩 배틀(Rap-Battle)에 몰두하는 아이들이 가득한 할렘의 또 다른 이름이다. 가난과 미움이 흐르는 이곳에서 살아가는 집시 소년 로메오는 젊은 소녀 줄리와 사랑에 빠진다. 문제는 계급이 다른 두 사람의 집안이 철천지원수라는 것. 로메오와 친구들은 돈을 벌기 위해 석유를 찾기로 하고, 선사시대까지 시간여행을 떠나 8번 구역에 유전을 만들어버린다. 하지만 시간여행에는 언제나 부작용이 따르는 법. 8번 구역의 유전이 만들어낸 엄청난 부는 더 큰 문제를 야기시킨다.
이미 만들어진 350여개의 표정을 이어붙여 캐릭터들의 감정을 묘사하는 <디스트릭트>는 일종의 컴퓨터 컷아웃(Cut-out) 애니메이션. 제작진은 다민족이 모여사는 부다페스트 빈민가에 대한 세
SICAF2005 가이드 [3] - 공식경쟁장편 5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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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덜의 인생2: 파인애플 왕자
동그라미로만 이루어진 아기돼지 맥덜의 두 번째 이야기. 혼자 아들을 키우는 어머니 맥빙 부인은 중년의 가난한 싱글맘이라는 점에서 자신이 <해리 포터>의 작가 조앤 K. 롤링과 비슷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나도 책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한 맥빙 부인은 맥덜에게 동화책 대신 “옛날에 외로운 어린 왕자가 있었단다”로 시작되는 허무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러나 이야기는 스스로 생명을 가지는 법. 두세 문장이 전부이던 짧은 이야기는 조금씩 자라나 가난한 처녀와 사랑을 나누고선 고국으로 떠나가버린 맥덜의 아버지 파인애플빵 왕자의 성장담이 되어가기 시작한다.
스무명 남짓한 스탭들만 데리고 <맥덜의 인생>을 완성했던 감독 토에 유엔은 맥덜이 사탕 포장지와 저금통 디자인을 휩쓰는 캐릭터 상품이 된 다음에도 느슨하고 자유롭고 사랑스러운 구조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고, 무너지는 홍콩의 오늘을 근심하고, 어느 순간, 환상처럼
SICAF2005 가이드 [2] - <씨네21>의 초이스 5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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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아홉 번째 만화 축제다! 제9회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이하 SICAF)이 8월11일부터 16일까지 6일 동안 메가박스와 코엑스, 시청 앞 서울광장 등에서 개최된다. 예년처럼 전시컨벤션, 산업마켓, 스페셜 이벤트들이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는 SICAF에서 <씨네21> 독자들이 가장 군침을 흘릴 부문은 축제의 수라상인 애니메이션영화제. 빌 플림턴과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신작이 포함된 경쟁부문, 현재 애니메이션의 경향을 짚어볼 수 있는 ‘시카프의 시선’ 부문, 신동헌 감독의 67년작 <호피와 차돌바위>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한국애니만세전’, 체코의 초현실주의 작가 얀 슈반크마이에르의 방, 그외에도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물결을 확인할 수 있는 애니스펙트럼 부문 등,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성찬은 차려졌다. <씨네21>이 소개하는 작품들은 성찬의 주요 메뉴만 간략하게 담아낸 메뉴판이다. 한 작품도 놓칠 수 없다고 생각하시는 독자들은 SICAF 홈페이
SICAF2005 가이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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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커플의 이별 이야기가 교차되는 독특한 구성의 영화 <새드무비>가 지난 7일 촬영을 마지막으로 4월 13일에 크랭크인한 이후 약 4개월 동안의 촬영을 마무리했다. 정우성-임수정 커플을 시작으로, 차태현-손태영, 신민아-이기우 커플에 이어 이별의 대미를 장식한 커플은 염정아-여진구 커플이었다.
마지막 촬영은 고려대학교 근처 도로변에서 진행되었다. 세상에서 제일 바쁜 엄마(염정아)가 미워서 일부러 거짓말 일기를 쓰고 받아쓰기도 틀리는 아들 휘찬(여진구)이 이날은 싱글벙글이다. 바쁘기만 한 엄마가 학교 앞으로 마중을 나왔기 때문이다.
촬영을 마친 뒤, 염정아는 네 커플의 이별 중 마지막 주자가 되어 영화를 완성할 수 있게 되어 무척 기쁘다는 소감을 밝혔다. 특히 앞선 세 커플이 그린 ‘연인들의 이별’에 이어, 자신이 연기한 ‘모자의 이별’이 누구나 인생에서 겪을 수 있는 이별의 의미를 한층 확장 시켜 준 것에 대해 만족감을 표시했다.
<새드무비>는 4개
<새드무비> 염정아-여진구 커플 촬영 끝으로 크랭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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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앞서 간 천재적 영화인으로 평가받는 스탠리 큐브릭. 그의 영화들 가운데 가장 문제작으로 꼽히는 <시계태엽 오렌지>가 완전 무삭제, 무수정본으로 DVD 출시된다. DVD 출시에 앞서 지난 7월 열렸던 리얼판타스틱영화제에서 국내 최초로 필름 상영을 가졌는데, 그 동안 이 영화를 사설 시네마테크 등을 통해 침침한 화면과 조악한 자막으로 보았던 영화광들에게는 그야말로 격세지감으로 다가왔을 법한 사건이었을 것이다. 세상이 확실히 좋아지긴 했다.
그러나, 정작 <시계태엽 오렌지>를 보고 나면 ‘정말 좋아진 건가? 더 나빠진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고개를 든다. 장기 불황의 늪에 빠져들고 있는 암울한 사회 분위기, 연이어 발생하는 강력 사건들, 그리고 사람들의 희망을 점차 앗아가고 있는 사회 최고위층의 비리와 온갖 추악한 행태들이 이 영화에서 본 것들과 너무나 닮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계태엽 오렌지>에서 소름끼치도록 사실적으로 묘사된 주인공
<시계태엽 오렌지> 완전판으로 보는 큐브릭 최대의 문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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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도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미우치 스즈에의 동명 만화 원작의 신작 TV 애니메이션 <유리가면>이 일본에서 DVD로 발매된다.
연극에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주인공 마야와 그녀를 둘러싼 인간군상을 통해 화려한 연극의 세계를 그리고 있는 <유리가면>은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장기 연재되고 있는 만화. 일본 내 단행본 판매량이 통산 5천만 부가 넘을 정도로 팬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고 있는데 그러한 인기를 바탕으로 지난 80년대 TV 시리즈와 98년 3부작 OVA(오리지널 비디오 애니메이션) 작품으로 선보인 바 있다.
이번에 출시되는 DVD는 올해 4월부터 일본 TV 도쿄 등지에서 방영이 시작된 신작 애니메이션을 수록한 것으로, 감독은 <기동전사 건담> 등에 참여하고 <아슬란 전기> 등을 감독한 하마츠 마모루가 맡았으며 고바야시 사나에, 모리카와 토시유키 등 유명 성우들이 참여했다. 원작의 연재기간이 길었던 나머지 어색했던 시대설
日, TV 애니메이션 <유리가면> 발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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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는 15년 뒤의 이야기다. 15년 뒤의 미래를 보면서 15년 전의 과거가 겹쳐졌다. 대략 나의 고딩 시절 말이다. 나의 고딩 시절은 오늘도 대략 반복되고 있다. 물론 미국영화인 <아일랜드>가 의도했을 리는 없지만, 클론의 세계는 한국 중고딩의 현실과 매우 닮았다. 복제인간(클론)의 세계는 입시지옥의 복제처럼 보인다.
클론의 일상과 고딩의 하루는 매우 비슷하다. <아일랜드>의 클론들은 스스로가 클론인지 모른 채 살아간다. 대한민국 고딩들도 자신의 존재에 대한 질문 따위는 접어둔 채 살아야 한다. 클론들은 똑같은 옷을 입어야 하고, 비슷한 음식을 배급받는다. 고딩들도 교복을 입고, 똑같은 급식을 먹는다. 하는 일도 비슷하다. 클론들은 자신이 무엇을 만드는지도 모른 채 매일 단순작업을 반복한다. 고딩들도 자신이 배우는 지식에 의문을 품지 말고 단순암기를 반복해야 한다. 분류체계도 유사하다. 장기를 제공하는 ‘제품’인 클론들은 ‘링컨6-에코’와
맙소사, 여기가 낙원이라구, <아일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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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포일러를 피하고 싶은 분은 영화를 본 뒤 읽어주세요
‘복수 시리즈’를 되짚어보자. ‘복수’는 폭력의 본질이 엿보이는 창이다. 돈이나 권력 같은 외적 이유에 의한 폭력과 달리 내적 동력에 이끌리는 ‘복수’는 ‘폭력의 순수 정념’을 보유한다. 따라서 복수를 다룬 <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 <컷>에는 폭력의 내적 본질이 담겨 있다. <복수는…>에서 그들 행동의 정당성은 법이나 도덕이 아니라, 그들이 ‘당한 바’로부터 나오며, 주체의 의지나 결단도 무의미하다. <복수는…>은 ‘복수가 복수를 낳는’ 연쇄반응을 통해 ‘폭력의 자연사’를 규명하였다. 한편 <올드보이>와 <컷>은 ‘폭력의 발생론’을 다룬다. <올드보이>의 이우진은 근친상간의 죄의식으로 죽은 누나에 대한 죗 값을 오대수에게 물어 근친상간을 행하게 한다. 자기 죄의식에서 벗어나고자 죄의식을 전가시킨 것이
정의로운 금자씨, <친절한 금자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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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극장가는 지금 자국 애니메이션 바람이 한창이다. 여름방학 성수기를 맞이해 신작들도 대폭 선보였고 기존 개봉작들도 꾸준한 인기를 끌고 있어 탑10안에 일본 애니메이션이 무려 4편이나 된다(1위 <나루토, 대격돌! 환상의 지하유적>. 3위 <극장판 포켓 몬스터>. 8위 <금색 갓슈벨! 메가발칸의 내습>. 9위 <강철 연금술사 샴발라를 정복한 자>). 여기에 <로봇>까지 포함하면 절반이 애니메이션이다.
4주연속 1위를 지켰던 <스타워즈3>를 밀어내고 이번주 1위에 오른 작품은 <나루토, 대격돌! 환상의 지하유적>. 작년에 13억 7천만엔의 흥행을 기록한 작품의 극장판으로 주말 이틀동안 20만명의 관객을 동원하고 2억1700만엔의 수입을 올렸다. 작년 흥행수입의 60.7%지만 개봉시기가 작년보다 이른 점을 고려하면 거의 작년수준의 성적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5주만에 2위로 한계단 하락한 <스타워즈
지금 일본 극장가는 애니메이션이 점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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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DVD를 대체할 미디어로 블루레이 디스크를 추진하고 있는 BDA(블루레이 디스크 연합)는 지난 9일 블루레이 디스크에 새로운 저작권 보호 기능인 'BD+'와 'ROM 마크'를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BD+'는 업데이트가 가능한 블루레이 디스크의 독자적인 저작권 보호기술로서, 디스크 상에서 작동하는 프로그램이 플레이어 쪽의 버철머신이라고 불리는 영역과 디스크의 암호를 서로 조합하는 방식이다. 만일 플레이어의 보안기능이 파괴되었을 경우에도 컨텐츠 제공자가 새로운 암호를 디스크에 기록하면 그 디스크는 더 이상 재생할 수 없게 된다.
'ROM 마크'는 블루레이 디스크 롬 원판의 위조 및 복제를 방지하는 기능. 블루레이 디스크 롬의 라이센스를 부여받은 제조업자 이외에는 원판을 제조하거나 복제할 수 없기 때문에 불법 디스크의 생산을 방지할 수 있다고 한다. 이 두 가지 기능은 종래의 AACS(Advanced Access Content System)라는 저작권 보호 기술과 맞물려 사용되
블루레이 디스크, 새로운 복제방지 기술 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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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아시아계 감독의 등용문으로 불리는 제28회 아시안 아메리칸 국제영화제에서 한국계 감독의 작품이 큰 관심을 모았다. 비영리단체 아시안시네비전이 주관한 이번 행사에서는 마이클 강 감독의 <모텔>과 그레이스 리 감독의 다큐멘터리 <그레이스 리 프로젝트>, 손희숙 감독의 다큐멘터리 <해피 패밀리> 등 장편 외에도 제55회 베를린국제영화제 파노라마 부문에 초청됐던 김성숙 감독의 <세라진> 등 10여편의 단편 작품이 소개돼 눈길을 끌었다.
이중 올 영화제에서 관객이 뽑은 신인감독상(Emerging Director Award)을 수상한 다큐멘터리 그레이스 리 감독의 <그레이스…>는 감독 자신의 것이기도 하지만 아시안 여성 사이에 흔한 ‘그레이스 리’라는 이름을 가진 다른 여성의 모습을 방방곡곡 다니며 카메라에 담은 작품이다. 감독의 유머러스한 내레이션과 때로는 감동적인 여러 ‘그레이스 리’의 삶을 조화롭게 선보여 관객의
[현지보고] 제28회 아시안 아메리칸 국제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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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로봇> 나간다 V, 청운의 꿈을 안고 상경하다
[정훈이 만화] <로봇> 나간다 V, 청운의 꿈을 안고 상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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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스 루나 감독의 <하몽하몽>의 섹스 심벌,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감독의 <바다 속으로>의 전신마비 역, 마이클 만 감독의 <콜래트럴>의 마피아 단원 등을 연기한 스페인 배우 하비에르 바르뎀은 어떤 역할이든 소화해낸다. 그렇지만 그는 유럽에서 자신을 충분히 표현할 기회가 없다.
파리의 국제영화 모임에서 그는 거의 체념한 듯이 스페인에서 15년간 활동한 후 할리우드로 진출하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안토니오 반데라스와 페넬로페 크루즈의 뒤를 이어 미국에 가는 이유는 수많은 이민자들과 마찬가지로 일을 찾기 위해서다. 물론 스페인에서의 작업도 그의 필요를 충분히 충족해주긴 한다. 그러나 유럽의 다른 나라에 수출되는 소수의 스페인 감독들의 작품은 일년에 한편밖에 없다. 그는 괄목할 만한 데뷔작의 불확실함에 기대를 걸거나 매번 같은 감독들과 작업하는 것을 감내해야 한다. 이런 경우, 의존적이거나 갇혔다는 느낌을 피하려면 미국행 티켓을 살 수밖에 없다. 그러면
[외신기자클럽] 왜 유럽 영화는 존재하지 않는가? (+불어원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