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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깊숙한 것들은 오히려 이성적이지 않다”
-영화의 도입부에는 ‘이 영화를 장 외스타슈에게 바칩니다’라는 헌사가 있다. 그가 당신에게 어떤 영감을 준 것인가.
=헌사에 대한 이유는 다양하다. 나와 영화적 스타일은 전혀 다르지만, 그의 영화 <엄마와 창녀>는 남성과 여성간의 의사 소통 불능에 관한 매우 아름다운 영화들 중 하나이며, 내 영화에도 그런 요소가 있다. 그리고, 내 작업실 책상 오른편에는 <엄마와 창녀> 세트장에서의 외스타슈 사진과 1981년 <뉴욕타임스>에 실린 그의 부고 기사가 붙어 있다. 내가 이 영화의 각본을 쓰면서 열중할 때에도, 환멸을 느낄 때에도 언제나 그는 거기서 나를 보고 있었다. 또 다른 이유는 내가 바라는 뭔가가 그에게 있다는 거다. 시장논리나 타인들의 기대심리에 연연하지 않고 스스로에게 진실인 영화를 만드는 것. 자신의 스타일로 뭔가를 표현하고자 간절히 원하는 바로 그 순수의 정신 말이다.
짐 자무시의 모든 것 [5] -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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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웨이츠에서 물라투 아스탓케까지
짐 자무시는 음악을 잘 다루는 감독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의 영화에서 음악은 거의 미장센의 일부다. 물론 엘비스 프레슬리에서부터 물라투 아스탓케까지 특별히 가리지 않고 적재적소에 쓰는 편이지만, 대체로 우울한 정조가 진하게 배어 있거나 그도 아니라면 구슬프면서도 유머러스한 간결한 음조가 반복적으로 흘러나오는 것들이 많다. 알고 보면 자무시는 대학 시절 델 비잔틴이라는 밴드를 결성할 만큼 음악에 대한 정열이 많았다. 그의 초창기 인터뷰를 보면 70, 80년대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록밴드들, 특히 “연주의 전문적인 기술보다 음악의 영혼이 훨씬 중요했던 패티 스미스, 텔레비전, 하트 브레이커스, 라몬스, 블론디, 토킹 헤즈 등을 좋아했고, 그 당시 내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는 말을 곧잘 한다.
<영원한 휴가>에서 주인공 앨리는 찰리 파커의 광이다. 영화 속에는 얼 보스틱의 음악도 흘러나온다. <천국보다 낯선>에서 에바는
짐 자무시의 모든 것 [4] -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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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시키거나 출연하거나
<브로큰 플라워>에 얽힌 일화 하나. 처음에 빌 머레이는 짐 자무시가 <하늘 위에 뜬 세개의 달>에서 <브로큰 플라워>로 바꾼 각본을 쏙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프리 프로덕션 과정 중에 함께 저녁 식사를 하던 머레이는 전화였는지, 담배였는지 하여간 핑계를 대고는, 갑자기 식사 도중 사라져서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자무시는 넉넉하게 말한다. “그게 나를 뭐 힘들게 할 건 없죠. 내 친구들은 다 그래요. 그들은 그냥 사라지기도 하지만, 언제나 다시 돌아오죠.”
짐 자무시는 친구들을 불러모아 배역을 주길 즐긴다. 그 점에서 <커피와 담배>는 영화 자체보다 그 친구들이 총출연했다는 점에서 더 흥미로웠던 작품이다. 아마 <브로큰 플라워>를 그의 메인스트림 영화로 보는 이유는 그들의 이름이 대거 빠진 탓도 클 것이다. <데드 맨>의 이기 팝과 빌리 밥 손튼, <미스
짐 자무시의 모든 것 [3] -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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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각’이라는 횡적인 분산을 ‘그 시대’라는 시간의 종적 연속성 안에 끼워넣고 ‘문명 속의 고독’을 생각하는 것이 <데드 맨>(1995)과 <고스트 독>(1999)이다. “완전히 문화가 다른 시대, 다른 나라에서 후회없이 자신이 꿈꾸는 생활을 고집스레 끌어나가는 돈키호테를 떠올렸다 돈키호테처럼 고스트 독은 자신의 행보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자신의 신념을 전혀 존중하지 않는 세계에서 살아간다”고 자무시는 말한다. 그건 <데드 맨>의 주인공 윌리엄 블레이크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시대의 돈키호테다.
<데드 맨>과 <고스트 독>은 형제처럼 닮은 영화다. 일단 이 둘은 웨스턴 무비와 갱스터 무비라는 장르를 기점으로 우회한다. 하지만 장르에 얽매이지 않고 볼 때 이 두 영화의 닮은꼴은 더 잘 보인다. 영화는 한명의 주인공을 따라 흘러간다. 그들이 만나는 인물들, 사건들은 에피소드처럼 다시금 새로운 국면의 이야기로 꼬리에 꼬리를
짐 자무시의 모든 것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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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패니메이션 DVD를 주로 출시해온 일본의 반다이비주얼사가 내년부터 미국 시장에 본격 진출한다고 발표했다. 미국 지사를 통해 2006년 4월부터 타이틀을 출시하는데, 그 첫 작품으로 오시이 마모루 감독 작품 <기동경찰 패트레이버 극장판>을 준비 중이라고 전했다.
반다이비주얼사가 기존의 라이센스 판매 방식 대신 현지에서 직접 생산 판매하게 된 이유는 일본에서와 마찬가지로 고부가가치 비즈니스 모델을 적용시키기 위한 목적에서다. 미국 내 재패니메이션의 수요는 급증하고 있지만 퀄리티나 마케팅 면에서 마니아들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한 것이 사실. 이에 동사는 ‘오네아미스’라는 이름의 새 레이블을 설립해 고가의 소장가치가 있는 컬렉션을 소개한다는 계획이다.
오네아미스 레이블의 제 1탄인 <기동경찰 패트레이버 극장판>의 경우 앞서 미국 망가엔터테인먼트를 통해 발매된 적이 있으나, 이전에 없었던 메이킹 등 부가영상 등을 추가해 한정판으로 새롭게 선보일 예정. 여기에 두터운
반다이비주얼, 美에서 고가 애니 DVD 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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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자무시는 우리에게 이름에 비해 영화의 실체가 덜 알려져 있는 감독이다. 그것은 아마 <브로큰 플라워> 이전까지 만든 8편의 장편영화 중 한국에서 개봉한 그의 영화가 <천국보다 낯선> <데드맨> <고스트 독> 세편뿐이라는 단순하고도 안타까운 사실 때문일 거다. 그러니 그동안 간과되어왔던 그의 나머지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를 덧붙이고 나서야, 간명하면서도 유쾌하고, 유쾌하면서도 탄식어린 자무시의 세계가 좀더 친절히 열릴 것이다. 우리는 지금 자무시에게서 <브로큰 플라워>라는 영화편지 한통을 받았다. 자무시의 전작(과거)을 되돌아보기를 독촉받는 이상한 영화의 아홉 번째 편지를. 그걸 계기로 ‘짐 자무시의 모든 것’을 살펴본다.
니콜라스 레이에게는 그를 따르는 많은 후대 감독들 중에서도 특히 유명한 두명의 후배가 있었다. 그의 마지막 생전의 모습을 담은 영화 <물 위의 번개>(1980)를 만들었던 빔 벤더스가 그 한명
짐 자무시의 모든 것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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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플 에이 무술팀 지도에 따라 감우성과 이준기가 구르기 텀블링 땅재주 싸움 등을 이틀 동안 배우는 자리다. 줄타기에서 띠동갑인 감우성에 줄곧 밀리면서 체면을 구겼던 이준기. 오늘은 스트레칭부터 출발이 좋다. 스트레칭에서 다리를 벌리니 정확히 180도가 만들어진다.
“찢으니까 찢어지네요.” 자기 말투가 오만하다고 생각했을까, 보충설명을 곁들인다. “원래 태권도 했잖아요. 고관절 움직임이 커야 공격할 수 있는 각도가 더 커져요.” 태권도 3단 실력답다. 저 큰 키에 저렇게 높이 발차기가 나오면 꽤 치명타가 되겠다. 이준기가 발을 휘두르자 무술팀 얼굴 위에서 날아다닌다. 그러나 싸움장면에서 그가 실제로 싸우는 건 없다. 그건 장생의 몫이다.
몸을 푼 뒤 발차기 연습에 들어갔다. 대가집 마당에서 한바탕 논 뒤 꼭두쇠와 벌어지는 결투장면이다. 이 싸움을 계기로 장생과 공길은 한양으로 향한다. 점점 고난이도 동작으로 진도가 올라가는데 배우들은 무리없이 따라간다. 매트를 깔고 앞뒤로 구
<왕의 남자> 감우성, 광대만들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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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스티븐 스필버그는 '최고 흥행감독‘의 자리에 연연하지는 않는 듯하다. 그보다는 요즘의 그는 어느 정도 흥행을 보장한다는 조건 안에서 자신이 찍고 싶은 영화를 마음껏 찍는 듯 하다. 톰 크루즈, 톰 행크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처럼 톱스타들을 데려다가 SF / 코미디 양쪽의 영화를 쉴 새 엇이 찍을 뿐만 아니라, 영화의 내용 역시 <쥬라기 공원>과 <라이언 일병 구하기>처럼 확실한 흥행작과 아카데미 수상용 영화를 분리해 만드는 대신 그 두 가지가 합쳐져 보다 미국의 현실을 직접적으로 겨냥한 작품을 만들고 있다. <캐치 미 이프 유 캔>은 낭만적이었지만 동시에 위기의 시대였던 1970년대 미국을 통해 지금의 미국을 풍자했고, 미국의 입국 절차에 관한 내용을 다룬 <터미널>은 아예 직접적으로 9.11 이후 외국인에게 관용의 자세를 닫아버린 미국 보수주의자들을 겨냥하고 있다.
<우주전쟁>은 최근의 스티븐 스필버그의 작품
강명석의 Shuffle! <우주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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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주종합촬영소 하고도 한참을 더 들어가면 이명세 감독의 <형사> 촬영장이 나오고, 그 촬영장도 지나쳐 언덕배기로 올라가면 운당이라는 곳이 나온다. 조선시대 여관 같은 모습이다. 마당 위에서 누군가 하늘로 번쩍 뛰어올랐다가 가라앉는 게 밖에서도 보인다. 비 그친 뒤 쨍쨍한 하늘을 시원스레 날아오르는 저이는 누군가. 와이어를 달기는 했지만 선글라스를 끼고 줄 위에 앉았다가 훌쩍 뛰어올라 공중에서 방향을 전환하는(허공재비) 감우성의 재주, 보통은 아니다.
그럼 그렇지. 감우성이 줄에 쓸려 타들어간, 조금 과장을 하자면 너덜너덜해진 손바닥을 보여준다. 자칫 잘못하면 살점이 나가니 살얼음 걷듯 조심해야 하는 게 어름 아닌가. “중요 부위는 보호대를 했지만 보호대 범위를 더 넓혀야겠어요.”(감우성) 줄을 잘못 타면 삽시간에 중요 부위가 그 기능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게 권 선생의 설명이다. 참 무서운 얘기 아닌가, 남자들로서는.
6월1일 첫 촬영을 위한 테스트 촬영인지라 크
<왕의 남자> 감우성, 광대만들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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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부안 세트장에서 촬영 중인 <왕의 남자>(감독 이준익)는 광대를 위한 영화다. 연산군 시대를 웃음으로 누빈 광대 장생(감우성)과 공길(이준기)은 줄타기부터 접시돌리기까지 재주도 비상했지만, 그 못지않게 정치판을 우스개의 소재로 과감하게 끌어들이면서 저잣거리의 놀이마당을 격상시켰다. 그걸 알아본 이는 폭군으로 알려진 연산군(정진영)이다. 당쟁에 염증이 난 연산군, 왕마저 놀릴 줄 아는 광대의 자유가 부럽다. 그러나 광대를 궁으로 끌어들인 것에 중신들이 격분하고, 장녹수(강성연)가 광대를 질투하면서 광대들의 운명에 광풍이 몰아친다.
<왕의 남자>는 <황산벌>과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의 뒤를 잇는 사극이지만 이들 사극보다 품이 더 많이 든다. 바로 배우를 광대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병역비리로 장생 역의 장혁이 물러나면서 공동제작사인 이글픽처스와 씨네월드는 근심이 더 많아졌다. 대안은 도회적인 분위기의 감우성이었다. 감우성은 왜
<왕의 남자> 감우성, 광대만들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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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2,700만부 이상이 팔려 나갔으며, 국내에서도 13권까지 출간되어 50만 권 정도가 팔려나간 이자와아이의 만화 「나나」를 원작으로 한 동명의 영화가 한국에서 개봉된다. 영화 <나나>는 올 9월 3일에 일본에서 개봉되어 흥행수입 45억엔(한화 450억원)을 벌어들였으며, 대만과 홍콩에서도 개봉되어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영화 <나나>의 주연배우인 나카시마 미카는 국내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 OST의 원곡인 ‘눈의 꽃’으로 잘 알려져 있는 가수로 일본 대중 음악을 대표하는 스타이다. 영화 <나나>의 배급을 맡은(주)대원디지털엔터테인먼트는 만화 14권이 발행되는 내년 초에 맞추어 개봉할 예정이며, 개봉 시점에는 주인공 나카시마 미카를 초청하여, 팬미팅 등 다양한 행사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선풍적 인기를 끈 만화 원작 영화 <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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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칠>, 그 제목과 2차 세계대전을 시대적 배경으로 한다는 점만 놓고 보면, 이 영화는 영국의 총리였던 ‘윈스턴 처칠’을 주인공으로 한 전기영화처럼 보인다. 하지만 <처칠>은 처칠을 비롯한 여러 역사적 실존 인물에 대한 관객의 지식과 영화에서 창조한 상상의 세계를 서로 어긋나게 하고, 이로부터 웃음을 유발시키는 코미디영화이다. 물론 이 영화에서 필요로 하는 관객의 세계사적 지식은 이들 인물이 얼마나 뒤틀리게 재현되는지를 알 정도면 충분하다(물론 전혀 없어도 무방하다).
영국의 명문가 출신으로 2차대전 당시 노년의 나이였던 처칠을 미국 국적에 20대의 젊은 장교로 회춘시키고, 노벨 문학상까지 수상한 그의 뛰어난 문장력을 암컷을 꼬드기는 수컷의 작업 기술로 변형시키는 것만으로 <처칠>의 웃음 유발 전략은 명백하게 드러난다. 물론 이러한 인물의 전도는 처칠에 국한되지 않는다. 미국의 대통령까지 역임했던 아이젠하워(로마니 말코)는 백인 조력자 역할을 충실
엉뚱하고 혼란스러운 슬랩스틱 코미디, <처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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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나면 어둡고 광활한 러시아 숲의 초입에 성큼 들어와버렸다는 생각이 든다. <나이트 워치>는 러시아판 <반지의 제왕>이다. 그러나 이 진술의 방점은 ‘러시아판’에 있다. <반지의 제왕>에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지점은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한 역사성이다. 여기엔 천년 가까운 어둠의 세력과 빛의 세력의 대결이 있다. 단 두 사람이 싸우는데, 천년 동안 싸워 온 전사들이 모두 호출된다. 선과 악의 엄청난 대결이 아니라, 싸움 하나에도 역사적인 의미를 두고 과거사를 들춰 보이는 과장된 진지함이 있는 것이다. 선은 악을 품고 있고, 악에도 선이 있으니 도스토예프스키적인 판타지라 해도 무방하다.
흡혈귀와 마법사와 둔갑술사가 활약하는 걸 보면 조잡해 보이는 <블레이드> 연작이나 <언더월드>처럼 보인다. 그러나 <나이트 워치>만의 영상언어는 그것보다 더 형이상학적이며, 판타지 장르에 훨씬 더 깊이 들어가 있다.
도스토예프스키적인 판타지, <나이트 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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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크리스마스는 어떤 의미일까? 많은 영화에서 그것은 이웃과 ‘공식적으로’ 화해하기 위한 날로 쓰인다. 적어도 그날만큼은 자신보다 이웃을 생각할 것. 소외된 사람이나 자기와 다른 사람을 배제하지 않을 것. 이런 것들이 일반적인 크리스마스의 의미일 것이다. <크리스마스 건너뛰기>의 주제는 화합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 화합이 단순히 ‘크리스마스’라는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한 ‘회합’으로만 읽힌다는 점이다.
매년 크리스마스를 성대하게 치르던 루더(팀 앨런)와 노라(제이미 리 커티스) 부부는 올해만큼은 특별하게 보내려 한다. 지난해 예산의 절반으로 카리브해 크루즈에서 멋진 휴가를 보내겠다고 결심한 부부. 그들은 매년 해온 기부를 거부하고,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조차 하지 않는다. 헴록 스트리트의 사람들은 곧 부부를 크리스마스를 싫어하는 ‘그린치’와 같은 괴물로 인식해버린다. 부부의 불참으로 인해 지역 신문에서 주최하는 경연대회에서 이길 가능성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웃들은
이기적인 ‘크리스마스 화합’ 프로젝트, <크리스마스 건너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