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0년 뉴욕 퀸스의 공립학교에 다니며 아티스트를 꿈꾸는 6학년 폴 그라프(뱅크스 레페타)는 미국으로 이주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백인 남자아이다. 하지 말란 소리를 항시 듣는 말썽꾸러기의 일기장에 자주 등장할 법한 인물로는 해결사 어머니(앤 해서웨이)와 엄격한 아버지(제레미 스트롱)와 내 편인 할아버지(앤서니 홉킨스) 그리고 흑인 친구 죠니(제일린 웹)가 있다. 개학 첫날 선생에게 혼나다 안면을 튼 폴과 죠니는 취향을 공유하고 미래를 계획하며 단짝이 되지만 마약을 같이하다 걸린 뒤 폴의 가족이 그를 사립학교에 보내기로 하면서 둘의 우정은 미지근해진다.
<아마겟돈 타임>은 제임스 그레이 감독이 <인디와이어>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듯 “상상력을 사용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기억에 의존한” 극히 자전적인 영화다. 자신의 과거에서 예술적·정신적 근간을 찾는 작업이지만 핵전쟁에 대한 공포가 도사리고 불평등이 심화되던 1980년 미국 사회를 분명하게 짚어낸다. 자기 연
[리뷰] '아마겟돈 타임', 상실의 계절과 표정에 드러난 감정을 풍부하게
-
우진(서현우)은 태어난 지 21일이 채 안 된 아기의 아빠다. 민간신앙을 유달리 믿는 아내(심은우)는 아기가 있는 집 안을 성역으로 만들고, 위생을 지키듯 부정 타는 것을 철저히 기피한다. 그런 아내가 장례식장에 가겠다는 우진을 말리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우진은 아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우진의 전 연인인 세영(류아벨)의 장례식이라는 사실조차 숨긴 채 장례식장의 문턱을 넘는다. 놀랍게도 장례식장에서 우진이 마주한 것은 세영과 얼굴이 똑같은, 그녀의 쌍둥이 언니 예영(류아벨)의 얼굴이다. 이중의 금기를 어긴 우진에게 예정된 것처럼 시련이 닥친다. 아기는 점점 아프고, 예영과 죽은 세영이 겹치는 우진의 환시는 점점 강해진다.
금기를 깬 주인공이 고초를 겪는다는 설정은 공포영화의 클리셰다. 하지만 <세이레>는 저주의 파괴력보다는 우진의 내적 혼돈을 묘사하는 데 공을 들인다. 우진의 예견된 하강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현실과 환상을 뒤섞는 투명한 패치워킹 기술이다.
[리뷰] '세이레', 데이비드 린치의 ‘이레이저 헤드’에서 본 듯한 강렬함
-
글 쓰는 윤수(김권후)는 은근히 바쁘다. 노트북 앞에 종일 앉아 있는 것 같으면서도 치매인 어머니를 돌보고 과외 아르바이트도 나가야 한다. 안 풀리는 소설,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어머니, 학습 의욕이 없는 과외 학생과 심기 불편한 학부모에 서서히 짓눌리면서 그는 이명에 시달린다. 치매 환자 가족 모임에서 만난 주희(구자은)와의 한담이 특효약 역할을 하지만 효과는 그때뿐 증상은 갈수록 심해진다. 반면 장례지도사 치원(박종환)은 한가하다. 그러나 몸은 편해도 누가 자신을 조종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어 마음은 영 불편하다. 일에 금세 적응한 신입 은경(이태경) 역시 세상과 자신이 불화한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어 종종 멍해진다.
장세경 감독의 <픽션들>은 불안이라는 단일한 관심 주제에 최대한 가닿고자 노력하는 영화다. 특정 사건으로 생긴 한시적 불안이 아닌 인간의 근원적인 불안 자체를 탐구하려는 뚝심이 돋보인다. 소설가(윤수)가 사는 현실과 소설 속 인물들(치원과 은경)이
[리뷰] '픽션들', 이야기끼리의 균형과 리듬이 맞지 않아 어색
-
섬세하고 뛰어난 침술 실력을 지닌 경수(류준열)는 눈이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으로, 어의 이형익(최무성)의 도움을 받아 입궁하게 된다. 무엇이 됐든 보지도 말하지도 생각하지도 말아야 하는 궁궐에서 맹인은 비밀이 많은 이들을 안심시키는 존재다.
하지만 경수 또한 남모를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그가 ‘주맹증’이라는 사실. 어두운 곳에서 물체를 인식하기 어려운 야맹증과 달리 주맹증은 빛이 밝게 비출 때 앞을 볼 수 없다. 한마디로 밝은 빛이 내리쬐는 낮에는 아무것도 볼 수 없던 경수는 어두운 밤이 되면 앞을 볼 수 있게 된다. 모든 게 무탈하게 흘러가고 있다고 생각하던 어느 날 밤, 경수는 소현세자(김성철)가 독살당하는 광경을 목격한다. 아무것도 못 보는 줄로만 알았던 맹인이 유일한 목격자가 된 상황. 문제가 조금씩 악화되면서 용의자로 지목된 경수는 억울한 누명을 벗고 진범을 밝혀내고자 눈이 보이는 밤 사이 혼자만의 치열한 싸움을 벌인다.
<올빼미>는 &l
[리뷰] '올빼미', 우직한 상상력이 추동한 뒷심 좋은 결말
-
-
시미즈 신지 프로듀서는 1977년 도에이 애니메이션에 입사한 뒤 <푸른 전설의 슛 극장판>(1994), <은하철도 999>(1999), <김전일 소년의 사건부> 등을 기획한 베테랑 프로듀서다. 1999년부터 <원피스> TV애니메이션과 극장판의 기획을 전담해온 그는 <원피스>의 항해를 책임진 듬직한 조타수라 할 만하다. “우리는 지금 <원피스>라는, 세계 만화 역사상 보기 드문 대하 만화, 대하 애니메이션을 매주 체험하고 있다. <원피스>라는 전설이 만들어지고 있는 시대를 실시간으로 살고 있다고 해도 좋겠다. <원피스>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고 우리의 여행은 끝나지 않았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원피스>를 향한 모험에 동참해주기 바란다.”
-<원피스 필름 레드>의 흥행을 축하한다. 이 정도 반응을 예상했는지.
=솔직히 이 정도로 열광적일 줄은 몰랐다. 젊은 사람들, 특히
[인터뷰] ‘원피스 필름 레드’ 시미즈 신지 프로듀서, “계속 함께 항해 중”
-
다니구치 고로 감독은 0기 극장판으로 불리는 <원피스>의 첫 OVA <원피스: 쓰러뜨려라! 해적 간자크>(1998)의 연출자다. 이후 <플라네테스> <코드기아스> <밀림의 왕 레오> <리비전즈> <순결의 마리아> 등 원작과 오리지널을 넘나들며 종횡무진 활약해온 그는 24년 만에 <원피스> 극장판 연출자로 돌아와 <원피스> 극장판 최고의 흥행작을 만들어냈다.
-8월6일 일본에서 개봉한 이후 이틀 만에 흥행수입 22억5천만엔을 돌파했고, 올해 박스오피스 1위는 물론 역대 <원피스> 극장판 중에서도 최고 흥행작에 등극했다.
=팬들이 이번 작품을 좋아해주셔서 정말 다행이다. 작품을 만든 사람으로서 그보다 기쁜 일은 없다. 총괄 프로듀서인 오다 에이치로를 비롯해 모든 스탭과 배우들, 광고와 홍보 및 모든 관계자들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새로움을 선사하기 위해 노력했다.
-
[인터뷰] ‘원피스 필름 레드’ 다니구치 고로 감독, “전통적이면서도 이전에 없던”
-
<원피스>는 캐릭터 퍼레이드로 불러도 좋을 만큼 수많은 캐릭터들이 다양한 개성과 능력을 자랑한다. 한편으론 25년의 시간이 쌓아온 모든 인물을 다룰 수 없기에 대부분 극장판에서는 아는 사람만 알아볼 수 있도록 깨알 같은 팬 서비스를 선보이는 선에서 소화한다. 몰라도 영화를 즐기는 데는 전혀 지장 없지만 아는 만큼 더 즐거워지는, 밀짚모자 해적단 이모저모를 소개한다.
1 선장 · 몽키 D. 루피
밀짚모자 일당의 선장. 어릴 때 은인인 빨간 머리 샹크스에게 받은 밀짚모자가 트레이드마크. 악마의 열매 중 하나인 ‘고무고무 열매’를 먹고 온몸이 고무처럼 자라는 ‘고무인간’이 되어버렸다. 꿈은 해적왕이 되는 것.
2 검사 · 롤로노아 조로
‘해적 사냥의 조로’라는 별명을 가진 삼도류의 검사. 젊어서 목숨을 잃은 소꿉친구 쿠이나와의 약속을 완수하기 위해서 ‘세계 제일의 검호’를 목표로 한다. 항상 수행에 힘쓰고 싸움에서는 강자를 찾는다.
3 항해사 · 나미
해적
‘원피스 필름 레드’ 속 밀짚모자 해적단 동료들의 이모저모
-
“내 보물 말인가? 원한다면 주마. 어디 찾아봐라! 이 세상의 전부를 그곳에 두고 왔으니!” 처형을 앞둔 해적왕의 유언으로 막을 연 대해적 시대도 어느덧 25년이 넘었다. <드래곤볼> <슬램덩크> <포켓몬스터> <나루토> 등 일본 만화계의 전설로 불릴 만한 작품들은 헤아리기 힘들 만큼 많지만 현재 진행형의 전설을 꼽는다면 그 제일 앞자리는 단연 <원피스>의 몫이다. 1997년 <주간 소년 점프>에서 연재를 개시한 <원피스>는 단행본 102권을 돌파했고 누적 발행부수 4억9천만부(2021년 기준)를 넘어섰다. 1999년부터 시작한 TV애니메이션 역시 1000화(2021년 11월 기준)가 넘게 제작되어 전세계의 사랑을 받는 작품으로 자리매김했다. 당연히 극장판 애니메이션도 14편이나 나왔는데 <원피스> 극장판은 팬들을 위한 떠들썩한 축제에 가깝다. 간혹 본편의 스토리에 영향을 미치거나 정사로 자리 잡기
다시 꿈과 모험의 깃발을 올려라: 극장판의 재미를 최대로 끌어올린 ‘원피스 필름 레드’
-
왕의 귀환이다. 동명의 인기 만화 <원피스>를 원작으로 한 15번째 극장판 애니메이션 <원피스 필름 레드>는 일본 현지 누적 관객수 1300만명을 돌파하며 <원피스> 극장판 시리즈 사상 역대 최고의 흥행을 기록하며 역사를 다시 쓰는 중이다. 원작가 오다 에이치로 작가가 6년 만에 총괄 프로듀서를 맡고, <원피스>의 첫 OVA(오리지널 비디오 애니메이션)를 연출한 다니구치 고로 감독이 연출한 이번 극장판은 기존 팬들을 만족시키는 건 물론 새로운 관객을 끌어모으며 <원피스> 세계관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일본 내의 선풍적인 인기는 물론 전세계적인 명성에 비해 <원피스> 극장판의 한국 반응은 다소 아쉬웠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다르다. 신작 <원피스 필름 레드>는 <원피스>의 오랜 팬들과 함께 조금은 낯설게 느낄지도 모를 이들까지 기꺼이 대해적 시대의 피날레에 동참시킬 만한 작품이다.
우리의 항해는 끝나지 않았다: 극장판 역대 최대 흥행 ‘원피스 필름 레드’의 매력 대탐구
-
지금의 넷플릭스는 바로 이런 비디오 가게에서 시작되었다. 오프라인 비디오 렌털 비즈니스가 기술 혁신으로 진화해 마침내 오늘날의 OTT 전성시대를 이루어낸 것. 넷플릭스 영화 <20세기 소녀>도 이 추억 돋는 비디오 가게에서 사랑이 시작된다.
[ARCHIVE] 비디오 가게를 기억하나요?
-
<스트레인지 월드>라는 타이틀이 야심차다. 제목은 어떻게 지었나. 제목에 걸맞은 영화를 만들기 위한 부담은 없었나.
돈 홀 부담이라고 표현하진 않겠지만, <피노키오> <덤보>와 같은 디즈니의 유산들과 함께 놓여야 하기 때문에 만드는 매 순간 그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사실 <스트레인지 월드>가 다른 영화의 제목으로 쓰인 적이 없다는 사실에 솔직히 더 놀랐다. 그래서 오히려 더 완벽한 제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통해 제목에 합당한 이야기와 비주얼을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스트레인지 월드>라는 제목이 영화를 잘 요약해주는 것 같다.스토리는 어디에서 영감을 얻었나.
퀴 응우옌 솔직히 말하면 감독인 돈에게 아버지와 어떤 사이였는지 자주 물었다. 돈의 아버지는 서처처럼 농부였다. 그래서 돈에게 농부의 아들은 어떤 생활을 하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등 여러 질문을 던졌다. 이런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영화
[인터뷰] ‘스트레인지 월드’ 돈 홀 감독, 퀴 응우옌 작가 겸 공동 감독, “제목 그 자체가 이 영화다”
-
2021년 개봉예정작들 대부분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예상치 못한 긴 휴식 뒤에야 공개됐다. 대부분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을 거뒀지만 디즈니는 달랐다.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과 픽사의 <메이의 새빨간 비밀>은 디즈니+에서 공개되어 호평받았고, 지난해 이맘때 영화관에서 독점적으로 개봉한 <엔칸토: 마법의 세계>는 애니메이션 명가라는 수식어에 걸맞은 호평을 받으며 흥행까지 거머쥐었다. 그리고 월트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61번째 장편애니메이션 <스트레인지 월드>가 개봉을 앞두고 있다. 미국에서 공식적인 연말을 알리는 추수감사절 전날인 11월23일로 개봉일을 정했는데, 이는 <겨울왕국> 시리즈와 <코코> <엔칸토: 마법의 세계> 등 이전 흥행작들이 개봉한 날이다. 3대가 주인공인 가족영화이며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를 연상시키는 어드벤처 장르의 SF애니메이션이라는, 여러 겹의 장르를 두른 <
[L.A.] 상상조차 불가한 낯선 세계로의 초대
-
'LIST’는 매주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에게 취향과 영감의 원천 5가지를 물어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이름하여 그들이 요즘 빠져 있는 것들의 목록.
소설 <여수의 사랑>
1970년생인 한강 작가가 1995년에 펴낸 첫 소설 <여수의 사랑>이 유독 내 마음에 와닿았다. 작가가 20대를 보내며 담은 이야기에 여러 생각이 들었지만, 나 또한 20대를 통과하는 한 사람으로서 삶이란 얼마나 불안정하고 유약한가 생각했다. 아주 작은 실금에도 깨져버리기에 우리는 서로에게 조금 더 다가서고 들여다봐줘야 한다고, 그렇게 믿었다.
동해 일출
밤 늦게 출발해 도착한 동해에서 지평선 너머로 떠오르는 해를 보았을 때, 잊지 못할 삶의 어떤 순간들을 기억하게 된다.
영화 <흐트러지다>>
자극적이고 직접적이다 못해 빈틈없이 하나하나 다 설명해버리는 요즘. 나루세 미키오 감독의 <흐트러지다>(1964)를 보면 철저하게 계획하고 절제하는 줄타기
[LIST] 배우 홍경이 말하는 요즘 빠져 있는 것들의 목록
-
<에놀라 홈즈>
넷플릭스
11월 초 공개돼 넷플릭스 글로벌 시청시간 1위를 기록한 <에놀라 홈즈2>를 탄생시킬 수 있었던, 시리즈의 첫편이다. 동시대 다른 여성들과 ‘같은 속옷(코르셋)을 입는’ 것을 거부한 10대 여성 에놀라 홈즈의 첫 모험을 다룬 영화다. 엄마 유도리아가 어느 날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에놀라는 엄마를 찾는 것과 동시에 자신을 시대가 규정하는 틀에 맞춘 숙녀로 키우려는 천재 오빠들의 추적도 피해야 한다. 기본적으론 여타 ‘홈즈 시리즈’와 같은 추리물의 성격을 띠고 있으나 영화 속 여러 가지 요소를 통해 불합리한 현실을 꼬집고 있다. 어쩌면 <기묘한 이야기>로 이름을 알린 배우 밀리 바비 브라운의 대표작을 갈아치울 수도 있는, 그 시작에 있는 영화.
<고독한 훈련사>
티빙
‘개통령’이라는 별명을 가진 유명 반려견 훈련사 강형욱은 고독하다. 언제부터 좋아하기 시작했는지 기억조차 못할 정도로 어렸을 때부터 개를
[OTT 추천작] ‘에놀라 홈즈’ ‘고독한 훈련사’ ‘아테나’ ‘형사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