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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남자>의 공길이 그저 아름답기만 했다면 세상 무엇이든 손에 넣을 수 있는 왕의 마음을 뒤흔들지는 못했을 것이다. 겁먹은 듯이 올려다보던 첫 번째 시선, 꽃과 나비가 노는 그림자극을 하며 곱게 웃던 눈매, 붉은 댕기를 늘어뜨린 채 무너지던 애처로운 자태. 광대 장생과 연산의 파국에 동행하는 공길은 그 앳된 얼굴에 웃음이 서릴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해주고 싶어지고, 그 하얀 얼굴에 먼지가 닿지 않을 수만 있다면 내 몸의 상처쯤은 상관없어지는 정인이었다. 그 남자 이준기를 캐스팅한 이준익 감독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눈빛을 가졌고, 자신도 모르게 잠재된 끼를 발산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호텔 비너스> <발레교습소> 오디션을 “눈빛이 좋다”는 말로 통과했던 이준기는 오디션을 보기 위해 <왕의 남자> 시나리오를 받아들었을 때 이 영화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재미있어서 단숨에 읽었는데 무슨 이야기인지 몰랐어요. 그래서 그 자리
情人의 눈매, 광대의 품성, <왕의 남자>의 이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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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예술이 아니라 과학이다, 라는 깨우침을 <태풍>은 알려준다.
한국영화 흥행작이 되기로 작정하고 만들어진 <태풍>은 흥행이 검증된 작품들을 통해 도출되는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공식을 충실하게 따른다. 따라서 <태풍>이 제시하는 모든 것은 한국인들이 영화에서 누리고자 하는 모든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태풍>이 흥행작들의 치밀한 데이터 분석을 통해 제시한 한국인들의 영화 취향을 세 가지로 요약하면,
① 거의 모든 기사에 등장했듯 남북 대치 국면이라는 역사성을 전면에 내세운 최고의 흥행 소재다. - <쉬리>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
② ‘싸나이’들의 영화이어야 하며 로맨스는 사소한 부속물로 처리하거나 차라리 없는 게 낫다. - <친구>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전세계 최고 흥행작이라지만 <타이타닉>이 어떻게 한국에서도 엄청난 흥행성공을 했나
[투덜군 투덜양] 과학이냐 예술이냐, <태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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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적 비관주의’(cultural pessimism)라는 말이 있다. 어려워 보이지만 실은 간단한 말이다. 이런 태도를 대화체로 표현하면 이렇다.
“요즘 음악들은 쓰레기야. 도대체 들을 게 없다니까.”
“음악은 비틀스로 끝났어. 그 이후로는 소음일 뿐이야.”
“도스토예프스키 같은 대문호는 왜 더이상 나오지 않는가?”
“인상주의 이후의 현대미술은 사기다.”
“요즘 영화가 1970년대보다 나아진 게 뭐 있나? 특수효과만 발전했을 뿐.”
같은 태도라 할 수 있다. 요약하자면 과거는 황금시대였으나 현재는 한심한 시대라는 것. 그리고 앞으로 더욱 퇴보하리라는 것. 별로 낯설지 않을 것이다. 사석에서 심심찮게 이런 견해들을 접할 수 있다. 이 비관주의자들은 당대의 모든 예술 장르에 적대적이다. 그들 눈에 비친 요즘 예술은 ‘상업주의에 물들어 있으며’, ‘자기도 모르고 남도 모르는’ 짓을 하고 있다. 그래서 언젠가부터는 아예 그쪽으로 눈길도 주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결론
[이창] 문화적 비관주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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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내 또래 남성이, 나로서는 재밌고 바람직했지만 그로서는 비참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평소 그는 생계와 사회활동을 이유로 외박을 일삼으며 살았다. 항의하는 아내에게는 “나 간섭 말고, 당신도 그렇게 살면 되잖아”라고 받아쳤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3시 비까지 내리는데, 아내가 귀가하지 않아 걱정이 된 그는 우산을 들고 마중 나갔다. 만취한 아내가 택시에서 내리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뒤따라 어떤 남자가 아내를 부축하며 같이 내리는 것이었다. 순간 그의 머릿속은, ‘신사답게’ 그와 정중한 인사를 나누고 아내를 데려올 것인가, 아니면 ‘박력있게’ 상대 남자의 멱살을 잡고 “당신 뭐야!”를 따질까… 갈등으로 뒤죽박죽이었다.
결과는? 머리보다 발이 빨랐다(몸에서 뇌가 가장 반응이 느린 부위다). 그는 “무서워서” 혼자 집으로 뛰어들어왔다. 사실, 박력있는 남자와 신사는 같은 의미(남성다움)다. 두 가지 태도는 모두 사회가 ‘이런 상황에서는 이렇게 행동하라’고 남성에게 가르치는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양심적 병역 기피’를 옹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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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출장의 가장 큰 부산물은 디지털 리마스터를 한 데다 DTS까지 입힌 <아비정전> DVD를 비교적 싼값에 산 일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을 꼽으라면 단연코 장국영이 장만옥을 꼬시는 대목이라고 말하겠다. “내 시계를 봐”라고 장국영은 말한다. 장만옥이 “내가 왜 그래야 되죠?”라고 물으면 장국영은 “딱 1분만 봐주지 않겠어?”라고 답한다. 째깍대는 시계 소리와 함께 1분이 지나면 장국영이 말한다. “1960년 4월16일 오후 3시1분 전, 당신은 나와 함께했어. 당신 덕분에 난 그 1분을 기억할 거야. 지금부터 우리는 1분의 친구야. 이건 네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야. 왜냐하면 그건 과거니까.” 그리고 결국 장만옥은 그 1분에 붙들려 살게 되니, 이 얼마나 로맨틱한 수작이요, 수준 높은 ‘작업’인가. 그들이 나눈 시간은 고작 60초밖에 안되지만, 그것을 돌이킬 방도가 없으니 기억이 작동하는 한 그 1분은 영원히 존재한다. <아비정전>은 지나갔기에
[오픈칼럼] 너와의 5년을 기억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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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연쇄살인>은 부제가 말하듯 한국에 존재했던 ‘희대의 살인마에 대한 범죄수사와 심리분석’에 대한 책이다. 연쇄살인에 대한 개념 정리와 연쇄살인마의 분석부터 시작하여 한국의 연쇄살인사를 훑어낸다. 김대두, 온보현, 유영철 등 유명한 연쇄살인마들과 여전히 미제사건인 부산의 어린이 연쇄살인과 화성의 연쇄살인사건도 분석한다. 저자는 연쇄살인이 단지 ‘선진국병’이 아니라 ‘아시아에서도 싱가포르나 일본, 홍콩보다는 우리나라와 중국이 심’한 현상이라고도 말한다. 다른 말로 하자면 ‘연쇄살인은 그 사회가 안고 있는 병리 현상’이라는 것이다.
현실에서는 <양들의 침묵>의 한니발 렉터 같은 살인마를 찾아보기 힘들다. 의사나 간호사가 연쇄살인을 저지른 경우는 있지만, 고도의 지능과 사회적 지위를 겸비한 천재가 살인마로 잡힌 경우는 거의 없다. 물론 다른 주장도 가능하다. 잭 더 리퍼의 정체가 영국의 왕족이었기에 잡히지 않았다는 가설 같은 것 말이다. 하지만 픽션과 사실은
[B딱하게 보기] 우리 사회의 병, <한국의 연쇄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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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러진 적수 위에 앉아서 똥을 싸고, 적수는 죽어가면서 그 똥을 먹고 기뻐 소리치는 경우가 어디 있겠는가? 누가 아무 저항도 못하는 연약한 사람을 매달고 사악한 개처럼 그의 정액을 입으로 받아먹는가? 점잖은 독자들이여, 나는 기꺼이 당신이 이 끔찍한 것들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주려 했으나, 내 펜이 마치 노수부(老水夫)처럼 자기의 뜻을 세우는구려.” 윌리엄 S. 버로스의 <네이키드 런치>는, 초자아의 장벽이 무너진 인간의 의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독자들의 의식을 발기된 성기처럼 유린한다. 노수부의 최면에 걸려 꼼짝없이 이야기를 듣고 마는 코울리지 시의 청자처럼, 우리, 위선적인 독자들은 버로스의 화려한 언어 향연에 홀려 죽음과 성과 환각을 한데 뒤섞어 시작도 끝도 없이 자아내는 이드(id)의 천일야화를 정신없이 읽어 내려간다. “반문화”의 대표주자이자, 전설적 반항아들의 문파인 “비트 제너레이션”의 일원인 버로스의 매혹은, 언어와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사회와 질서를
벌거벗은 글쓰기의 정수, <네이키드 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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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는 해피엔딩으로 끝날 수 있을까요?” 뮤지컬 <유린타운>은 이런 질문으로 끝이 난다. 그렇다, 이 뮤지컬은 행복과는 거리가 멀고, 가상의 마을이 배경이나 지독하게 현실적이다. ‘오줌마을’을 뜻하는 <유린타운>은 극의 논리가 아니라 현실의 논리를 따르기 때문이다. 모든 악(惡)에는 그 이유가 있고 선한 의도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고, 이 비정한 뮤지컬은 가르친다.
<유린타운>의 배경은 가상의 소도시다. 20년 전 혹독한 가뭄을 겪고 나서 도시는 주민들의 용변을 제한하고 유료화장실에서 생리현상을 해결하도록 한다. 화장실을 운영하는 회사, 유린 굿 컴퍼니는 규칙을 위반하는 자를 체포해 유린타운이라고 불리는 미지의 공간으로 보내곤 한다. 바비 스트롱의 아버지도 유린타운으로 갔다. 그 직후 유린 굿 컴퍼니 사장 클로드웰의 외동딸 호프가 도시로 찾아온다. 그녀는 이름과 어울리게도 바비에게 희망을 가지라고 부추기며 그의 연인이 되고, 용기를 얻은 바비는
비정한 현실의 수레바퀴 아래, <유린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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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책상 위의 천사>는 재닛 프레임의 자서전 3부작을 영화화한 것이다. 서글프도록 아름다운 음악이 출렁대다 서서히 분절되어 사라지면 우리는 한 여자의 영혼이 먼지가 되어 날갯짓하는 걸 본다. 1부 <이즈랜드로>. 훔친 돈으로 껌을 나눠줘야 친구 소리를 듣는 프레임은 왕따 소녀다. 글쓰기에 소질이 있던 프레임은 사범학교에 들어가면서 어릴 적 쓴 시를 불태운다. 2부 <내 책상 위의 천사>. 타인과 외부세계로부터 점점 소외되던 프레임은 정신병원에서의 8년 동안 정신분열증 치료라는 명분 아래 전기충격 요법을 받아야 했다. 그 와중에 그녀의 글이 주목받기 시작하고, 그녀는 첫 소설이 출판되기 전 유럽으로 떠난다. 3부 <거울 도시로부터의 결구>. 스페인에서의 연애도 잠시, 다시 병원을 찾은 그녀는 과거 진단이 오진이었음을 알게 된다. 프레임은 가족들이 죽은 고향으로 돌아간다. 그녀의 타자기에선 풀, 바람, 전나무, 바다가 나지막이 들려주는 이야기
[DVD vs DVD] 상처입은 사람에게 바치는 제인 캠피온의 입맞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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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잭슨은 누군가 <킹콩> 촬영장의 사진을 몰래 찍어 인터넷에 올리는 것을 알게 되는데, 추적 끝에 그가 마법사 ‘간달프’임을 밝혀낸다. 마침내 현장에서 간달프를 발견한 스탭은 그를 맹렬히 뒤쫓는데, 갑자기 그가 지팡이에서 발사한 전격을 맞아 쓰러지고 만다. 그리고는 섀도팩스도 아닌, 승용차를 타고 유유히 사라지는 간달프…. 이것은 <킹콩>의 메이킹 다큐멘터리가 전달하는 수많은 재미 가운데 일부일 뿐이다. 제작과정의 기술적인 이야기를 듣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재미있는 장난도 쳐보자는 것. 그런데 그 스케일이 거의 킹콩만하다. 촬영 마지막 주에 접어든 잭슨은 ‘이쯤 되면 다 지친다. 하지만 나름대로 극복하는 방법이 있다’면서 마침 촬영차 뉴질랜드에 온 브라이언 싱어 감독과 프랭크 다라본트 감독을 하루씩 불러 대신 영화를 찍게 한다. 잭슨이 낮잠을 자는 사이 이들은 촬영장에서 헤매거나(싱어), 킹콩과 앤 대로우의 역할을 바꾸어 찍는 등(다라본트) 현장을 엉망으로
[서플먼트] 피터 잭슨의 유쾌한 농담, <피터 잭슨의 킹콩 제작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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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드 니로와 공연한 <스탠리와 아이리스> 이후 15년 만에 복귀한 제인 폰다. 그녀는 이 영화에서 깐깐한 시어머니 역으로 분해, 며느리가 된 제니퍼 로페즈와 불꽃 튀는 신경전을 벌인다. 오랜 세월 스크린을 떠났지만, 제인 폰다의 관록있는 연기는 여전하다. DVD 타이틀은 2장의 디스크로 구성되며, 로맨틱코미디영화다운 밝고 화사한 영상이 좋다. 스페셜피처로는 감독 음성해설과 본편 못잖은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담긴 삭제 장면 모음, 그리고 NG 모음이 추천할 만한 부가영상이다.
퍼펙트 제인 폰다, <퍼펙트 웨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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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희창 감독의 <강력3반>은 액션영화로서의 형사물보다는 형사라는 직업이 얼마나 고단하고 힘겨운지, 그들이 겪는 애환에 초점을 맞춘다. 다만 그들의 고충을 현실감있게 그려나가다, 중반 이후 방향을 잃는 것이 흠이다. DVD 타이틀은 일반적인 구성이다. 영화 제작과정 다큐멘터리가 제공되며, 11개의 삭제 장면, 감독과 배우 인터뷰, 자동차 충돌 장면 등에 CG가 어떻게 구현되었는지 그 과정을 소개한다. 특히 이 CG 장면들이 극중에서 교묘하게 사용돼 그 비밀을 엿보면 꽤 놀랍다.
자동차 충돌 장면이 CG라고? <강력3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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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업주부로 살아가는 남편들이 늘어나는 요즘, <미스터 주부퀴즈왕>은 현 세태를 그대로 반영한 매우 흥미로운 소재다. 여기에 퀴즈쇼까지 곁들였으니 금상첨화. 그러나 소재의 탁월함에도 불구하고 장점들을 효과적으로 살리지 못해 그냥 무난한 수준에 머물고 만다. DVD 타이틀에 수록된 부가영상들은 꽤 많은 분량이다. 분리수거라는 재미있는 이름으로 대체된 6개의 삭제 장면, 카메오 출연을 한 배우들과의 인터뷰를 담은 반상회, 영화 제작과정, NG 장면 모음 등을 수록했다. 화질과 음향은 무난하다.
主婦 말고 主夫입니다, <미스터 주부퀴즈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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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연재소설이 인기있던 시절, 춤바람에 빠진 아낙네들이 잡혀가던 시절, 말끝마다 영어 몇 마디 넣는 게 유행이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그 시절, 정비석의 소설 <자유부인>과 한형모의 영화 <자유부인>은 태풍의 중심이었다. 1954년 정초부터 시작된 <자유부인>의 열기는 대단한 것이어서, 사람들은 연재소설을 읽기 위해 <서울신문>을 구독했다 한다. 이어 시대를 읽는 감각이 남다른 테크니션 한형모가 연출을 맡은 건 정비석도 원하는 바였다. <자유부인>은 가정의 테두리에 머물던 대학교수 부인이 춤과 연애에 눈길을 돌리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하지만 <자유부인>은 유교적 인습에 갇혀 살던 여자를 대변하고 여자의 주체성을 옹호하는 영화는 아니다. 오히려 당시의 새로운 물결이 전통적 관습과 충돌하면서 벌어지는 사회적 파장을 논쟁 삼아 온건한 결론을 유도하는, 계몽적인 성격이 강한 작품이다. 가정 파괴의 죄를 뒤집어쓴 여주인공은
1950년대 한국사회와 문화를 말한다, <자유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