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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개봉작 중 일본의 판타지멜로 <천국의 책방>과 스파이크 리의 <인사이드 맨>에는 공히 ‘해결사’가 나온다. <천국의 책방>에선 1인2역의 다케우치 유코가 천국과 지상에서 활약을 펼치는데 죽음이 갈라놓은 사랑이 달짝지근한 봉합을 향해 달려간다. 해결사는 천국의 책방 주인 야마키다. 이승과 저승 사이의 경계선 따위는 야마키의 봉사정신을 막지 못한다. 그는 정확한 예지 능력과 스타일을 갖춘 천사표 중년 남자다. <천국의 책방>이 선사하는 가공할 판타지의 완성은 야마키의 대가없는 노고 없이는 절대 불가능한 것이다. <인사이드 맨>의 매들린(조디 포스터)은 상류계급만 상대하는 로비스트인데 돈과 권력의 급소를 찌르고 어르며 목표를 이뤄가는 솜씨가 마피아 뺨친다. 받은 대가만큼 문제를 해결하는 매들린의 존재감이 야마키보다 현실적인데, 갖가지 유형의 해결사가 걸핏하면 영화에 등장하는 이유는 괄호쳐진 현실의 구멍들을 메우기 위해서일 거다.
[오픈칼럼] 해결사가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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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제작된 김정화, 공유 주연의 <그녀를 모르면 간첩>은 증후적 독해를 요하는 정치적으로 중요한 영화였다. 이 영화는 신자유주의 시대 한국사회의 주요 모순과 북한을 대체하는 새로운 타자(他者)의 등장을 보고한다. 패스트푸드점에 위장 취업한 얼짱 간첩에게 남한 청년이 사랑을 고백한다. 곤란해진 간첩이 “실은, 나 북에서 왔어”라고 털어놓자, 남남(南男)은 북녀(北女)를 이렇게 ‘위로’한다. “얘, 강북 사는 게 무슨 죄니, 괜찮아.”
이제 북한은 주적도, 타자 집단도 아닌 아예 무관심한 대상이며, 오늘날 우리사회에서 ‘북’은 ‘못사는 동네’ 강북을 의미하게 된 것이다. ‘문둥이’, ‘빨갱이’처럼 특정 시대에 혐오와 공포의 명명(命名) 대상을 보면, 그 시대 권력의 성격을 알 수 있다. 그 이름이 지금은 ‘강북’이란 말인가? 정치적 무지와 무관심이 ‘쿨함’으로 포장되고, 사회학자 서동진의 논의대로 자기계발 의지가 모든 사회적 억압의 대안으로 제시되며, 현 정부를 지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몸 계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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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홍길동의 심정을 알겠다. 길동이가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고,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했듯, 뼈빠지게 운동을 하고도 운동한다고 말하지 못하고, 헬스를 하면서도 수영을 한다고 말해야 하는 심정을, 그대는 아는가. 운동한 지 어언 3년. 날마다는 아니어도 일주일에 네댓번은 한 시간 반씩 운동을 해왔다. 지난 3년간 달린 거리는 그전의 30년 동안 달린 거리의 족히 3배는 넘을 것이다.
시작은 창대하진 못해도 미약하진 않았다. 달릴수록 허리살이 빠지고, 쇳덩이를 들면 ‘갑바’가 늘었다. 나중은 창대하리라, 기대가 거창했다. 쇳덩어리와 친해지기는 정말 쉽지 않았지만, ‘피어보지도 못하고 늙어가는 몸한테 미안하지 않냐’고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정말 건강은 엉망이었고, 몸매는 죽음이었다. 불가피하게 건강과 근육의 두 마리 토끼를 쫓았다. 달리면서는 ‘멈추면 죽는다. 살아야 한다’고 되뇌었고, 쇳덩어리와 씨름하면서는 ‘몸이라도 만들어야 팔린다’고 절치부심했다. 유산소 운동으로 건
[이창] 그래도 나는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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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국제영화제 공식일간지를 발행하기 위해 몇몇 기자들과 함께 전주에 내려갔다. 출범 초기, 프로그램팀이 해임되는 말썽을 빚기도 했던 전주영화제는 올해로 7회를 맞으면서 그에 걸맞은 안정감을 갖춰가고 있다. 영화제 홍보팀장에 따르면 객석점유율은 지난해보다 떨어질지 모르지만 전체관객 수는 지난해보다 늘었다고 한다. 영화제 기간 내내 일간지를 만든 기자들도 전체적인 시스템이 조화롭게 돌아가고 있다는 인상을 피력했다. 스타가 많이 오거나 영화 비즈니스맨들이 북적거리는 영화제는 아니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영화에 집중할 수 있는 영화제라고 할 만하다. 무엇보다 올해 영화제의 프로그램은 칭찬받을 만했다. 인도의 거장 리트윅 가탁의 회고전과 과거 소비에트 연방의 금지된 영화들을 선보인 특별전은 그중 백미였다.
개인적인 베스트는 리트윅 가탁의 <강>이었다. <강>은 시인의 재능을 지닌 감독이 만든 사회비판 리얼리즘의 걸작이다. 영화는 가난과 정치적 박해에 시달리는 피난민 거
[편집장이 독자에게] 전주국제영화제의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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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은 폭력에 관한 두 걸작이 탄생한 해다. 공히 그래픽 노블을 원작으로 제작된 <씬 시티>와 <폭력의 역사>은 그러나, 전혀 다른 길을 갔다. 원작자가 연출에 참여한 <씬 시티>가 폭력의 스타일을 완성한 반면, <폭력의 역사>의 연출 계약서에 사인할 때 원작이 있는 줄 몰랐다는 데이비드 크로넨버그는 만화적 상상력과 스타일에는 관심이 없다는 투다. 그런데 사실 크로넨버그는 할리우드 제작사와 손을 잡으면서 <폭력의 역사>이 상업적인 영화가 되길 희망했고(그래서 칸영화제엔 어울리지 않을 거라고 했다), 완성된 영화의 겉모습은 평범한 장르영화에 가깝다. 고전 웨스턴의 영향 아래 있는 <폭력의 역사>을 짧게 요약하면 한 남자가 가족을 위협하는 갱스터에 맞선다는 이야기다. 과거를 잊고 살려는 남자를 악의 세계가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는 설정은 <서부의 사나이>와 <과거 때문에> 같은 웨스턴과 누아르에서
[해외 타이틀] 폭력의 메커니즘이 내뿜는 공포, <폭력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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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의 악몽>은 전직 디즈니 애니메이터 팀 버튼의 화려한 귀환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술적 자의식이 강했던 버튼에게는 애니메이터 시절 빚었던 갈등이나 그의 첫 실사영화인 <프랑켄위니>의 배급 취소 등 디즈니와의 불편한 과거가 있었다. 하지만 강산이 한번 바뀌는 동안 버튼은 <배트맨> 시리즈를 거치면서 거물이 되었고, 결국 그가 제작한 장편애니메이션이 디즈니를 통해 선보이게 되는 반전을 연출하게 된다. 따라서 <크리스마스의 악몽>의 DVD에 버튼의 초기 단편인 <빈센트>(1982)와 <프랑켄위니>(1984)가 부록으로 담긴 것은 재미있는 아이러니다. <빈센트>는 에드거 앨런 포를 탐독하고, 전설의 공포영화 배우 빈센트 프라이스가 되고 싶어하는 소년이 주인공인 스톱모션애니메이션. 실제와 환상을 오가는 소년의 심리를 표현한 연출과 독특한 블랙유머는 후일 버튼이 만들게 될 작품들을 자연스럽게 연상시킨다. 실제로
[서플먼트] <팀 버튼의 크리스마스 악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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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에 의해 필리핀 포로수용소에 감금된 500여명의 미군 포로 구출 작전을 극화한 전쟁휴먼드라마.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전쟁 경험이 없는 풋내기 병사들을 훈련시키고 작전에 나선 뮤시 중령의 눈부신 활약을 그리고 있다. DVD의 화질과 음향이 뛰어나 현장감 넘치는 전시 상황을 만끽할 수 있는 타이틀이다. 부가영상은 편집 과정에서 누락된 8개의 삭제장면 모음이 전부다. 액션보다는 드라마 위주의 장면들이지만, 전쟁의 참혹함을 강조하는 아까운 장면들도 있다.
미군 포로를 구출하라! <그레이트 레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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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몸집의 빅마마가 돌아왔다. 이번에는 용의자의 집에서 유모로 취업을 해 잠복근무에 나선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안정된 결혼생활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전편보다 더 많은 해프닝이 일어난다. 코믹액션영화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마틴 로렌스의 입담과 코미디 재능은 여전하지만, 전편의 답습이란 속편의 한계는 어쩔 수가 없다. 하지만 DVD 타이틀에서 또 다른 재미를 찾을 수 있다. 누구나 궁금하게 여기는 마틴 로렌스의 감쪽같은 분장의 비밀과 12개의 삭제장면 모음이다.
감쪽같은 분장의 비밀 공개, <빅마마 하우스2: 근무중 이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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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슈퍼히어로영화들의 노골적인 패러디 <흡혈형사 나도열>. 모든 것이 예측 가능한 상황에서, 꼴리면 흡혈귀가 되는 코믹 컨셉이 나름 독특하게 다가온다. 국내에서 흔치 않은 코믹호러의 가능성을 시도하고 있어 흥미롭다. 2장의 디스크로 구성된 DVD 타이틀은 다양한 부가영상을 수록했고, 영화 특성을 반영한 메뉴 이름들이 재미있다. 삭제장면을 일컫는 ‘모자란 피’에서는 극장에서 볼 수 없었던 장면들을 소개하며, ‘어긋난 송곳니’는 본편만큼 코믹한 NG장면 모음과 애드리브를 담았다.
코믹호러의 가능성 시도, <흡혈형사 나도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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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 없는 피아노 선생과 결핍 많은 천재 학생이 음악을 통해 서로를 감싸안는 휴먼드라마 <호로비츠를 위하여>가 5월9일 대한극장에서 공개됐다. 얼마전 콘서트 형식의 독특한 제작보고회를 열어 화제를 모으기도 했던 이 영화는 시사 직후 기대 이상의 감동을 받았다는 호평이 주를 이루고 있다. 제작사인 싸이더스FNH는 기자시사 반응에 고무되어 2만2천명의 일반관객을 대상으로 진행하려던 대규모 시사회를 2만8천명까지 늘려 ‘입소문’을 기대하고 있다.
음대를 졸업했지만 다른 친구들에 비해 성공하지 못한 지수(엄정화)는 변두리에 피아노 학원을 차린다. 코흘리개 학원생들은 받지 않고 전공자만 제자로 받아들이겠다는 그녀의 고집도 잠깐. 월세도 제대로 못내는 상황이 되자 별 수 없다. 전설적인 피아니스트 호로비츠를 꿈꾸지만 자신의 재능없음에 절망해 온 지수. 피아노를 가르쳐달라며 추근대는 피자가게 노총각 광호(박용우)와 실랑이를 하며 별볼일 없는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러던 그녀에게 반
엄정화 주연 휴먼드라마 <호로비츠를 위하여>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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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최고의 빔 벤더스 영화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다. 아무리 <파리 텍사스>가 걸작이라 해도 <시간의…>의 감동엔 비할 바가 아니다. 영화는 과거의 시간을 기억하는 것이기에 <시간의…>는 무성영화 시대에 영화음악을 연주한 할아버지와의 대화로 시작한다. 그러나 <시간의…>는 이후 세 시간 가까이 영사기를 고치는 남자와 아내와 헤어진 남자의 발걸음을 따라가거나 그들이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을 보여줄 뿐이다. 자동차가 물에 잠기고, 면도를 하고, 전화를 걸고, 버려진 신문을 읽고, 커피를 마시고, 시를 읽으며 밤을 맞이하고, 하얀 모래 위에 검은 똥을 누고, 아버지를 찾아가 다투고, 신문을 만들고, 극장 매점 여자와 하룻밤을 보내고, 버려진 집을 찾아갈 동안 아이들은 장난치며 웃고, 한 남자는 영사기 옆에서 자위하고, 어떤 남자는 전날 밤 자살한 아내를 그리워한다. 그리고 두 사람은 동독과 서독의 국경에서 마지막 밤을 보낸 다음날
‘길의 왕’의 행보, <빔 벤더스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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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 주택가에 침입한 흔적을 남겨둬 공포감을 심고 아울러 사회적인 메시지를 읽게 한다? 글쎄다, 철통같은 부르주아의 심장이 그 정도로 각성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깨우치는 자’를 자처하는 얀과 피터는 자신들의 행동을 의심하지 않으며, 동시대의 누군가가 그들을 뒤따르리라 믿는다. 그리고 여기에 피터의 여자친구 율이 합세한다. <에쥬케이터>를 풍요로운 사회에 사는 철없는 아이들의 치기 어린 장난으로 본다 해도 무리는 아니다. 분노가 아닌 불만이 가득하고 그냥 자유롭고 싶은 세 젊은이가 내뱉는 혁명, 제3세계, 불평등이란 말들이 공허하게만 들린다(그러나 으리으리하게 꾸며놓은 저택을 보며 부러워한 게 솔직한 심정이고 보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안락한 삶을 챙기기에 바쁜 나 자신이 정작 죄의식을 느껴야 할 일이다). <에쥬케이터>가 더 덜컹거리는 건 납치된 부르주아가 가당찮게 68혁명을 향수하고 세 주인공 사이에 애정전선이 끼면서부터다. 이렇게 <에쥬케이터>가
영화보다 풍성한 부록 모음, <에쥬케이터: 특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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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동 시민의 숲에서 사진촬영을 하기로 약속했다. 차승원은 2시간 정도 늦게 도착했다. 지난주부터 계속된 목감기 때문에 급히 병원에 다녀온 길이라 했다. 한가한 오후 땡볕이 필요한 사진이었는데 해가 많이 기울어 있었다. 무엇을 어떻게 하면 되겠느냐고 차승원은 본론부터 물어왔다. 본의 아니게 늦었지만 전체 일정에는 차질이 없게 해주겠다는 듯한 태도였다. 제가 알아서 잘 할 수 있습니다. 모델 10년, 영화배우 10년을 합쳐 20년을 엔터테인먼트업계에서 있으면서 그는 효율과 효과의 법칙들을 많이 체험한 듯하다.
법칙 하나, 될 만한 것에는 목맨다
“홍보 활동을 예로 들면, 나는 될 만한 것에는 목을 매서 하는 성격이다. 가짓수는 몇개 안 된다. 될 법하지 않은 것은 건드리지도 않는다. 이 사람은 맡기면 다 열심히 한다고 생각해서 이것저것 다 하라고 하면 그건 아니란 말이다. 그럼 나는 어느 순간 확 놓아버린다.”
될 것에 매달려 최선을 다하는 차승원은 다가올 미래를 종종 내다보
<국경의 남쪽> 배우 차승원이 살아가는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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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연성있는 상상력으로 알을 깨다
MBC <궁>이 드라마 프로덕션 디자인 한계의 최대치를 높여 놓았고, SBS <연애시대>가 현실적인 대사와 시적인 영상 표현의 폭을 넓혔다면, 이번에는 역사의식을 거슬러 올라가 한반도 원년을 되짚어 보게 하는 드라마가 윤곽을 드러냈다.
5월 10일 압구정 CGV에서 MBC 창사 45주년 특별기획 <주몽>의 시사회 겸 기자 간담회가 열렸다. 연출을 담당한 이주한 PD는 "재현은 싫다. 그 시대의 꿈과 그 때 그 사람들을 움직이게 한 추진력, 현대인들이 절대 느껴볼 수 없는 사극만의 상황과 그에 따른 감정을 그리고 싶다." 고 힘주어 말했다.
네 번째 사극 <주몽>을 집필하는 최완규 작가는 "비빌 언덕이 없었다"며 참고 자료 부족과 고증의 어려움을 신음 뱉어내듯 말했다. 그래서 고대 문헌의 몇 줄 기록이 전부인 고구려 탄생에 대한 이야기를 '개연성 있는 상상력' 으로 채워 넣고 싶다는 것.
"스케일이
MBC 창사 45주년 특별기획 <주몽> 제작 발표회 열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