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0월 12일 문을 여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전세계 63개국 총 245편의 작품이 선보인다. 특히 부산국제영화제 역사상 최다인 월드 프리미어 64편을 상영함으로써 세계적인 영화제로서의 위상을 확인시키고 있다. 영화제 기간 부산을 찾을 관객들에게 있어 가장 큰 고민은 바로 ‘245편의 상영작 중 어떤 작품을 선택해야 하는가’이다. 영화선택을 고민하고 있는 관객들에게 절대 놓쳐서는 안 될 월드 프리미어 추천작들을 소개한다. 부산영화제를 통해 세계에서 가장 먼저 상영되는 영화를 접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아시아영화 추천작 - 김지석 프로그래머
<영원한 여름 Eternal Summer> 색다른 소재의 퀴어 시네마. 동성이건 이성이건 사랑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서로의 진심을 이해하는 것이라는 주제를 매력적인 방식으로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성장영화의 틀을 빈 퀴어 시네마, 또는 퀴어 시네마의 틀을 빈 성장영화.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란 쩡싱과 슈헹, 그리고 그들의 여자친구인 후이지아는 대학 입시를 앞두고 미묘한 감정의 변화를 겪는다. 쩡싱은 자신이 슈헹을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고 후이지아와 거리를 두기 시작하고, 슈헹은 후이지아를 사랑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후이지아는 두 사람의 억눌린 사랑의 감정을 알게 되고 그 사이에서 갈등을 하게 된다.
<아주 특별한 축제 Grand Festival> 마치 한국의 소외된 독립영화의 현실을 이야기하는 듯한 작품. 저예산 독립영화를 완성한 감독이 그 작품을 상영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무척 낯이 익다.
이상주의적인 영화감독 미스 데사이는 자신의 데뷔작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지만, 상영해줄 곳을 찾지 못한다. 좌절한 나머지 그는 축제가 열리는 곳에서 강물에 뛰어들려고 하지만 마을사람들에 의해 저지당한다. 그의 죽마고우인 라자는 친구의 사기를 북돋아주기 위해서 마을에서 영화상영회를 열자고 제안한다. 미스는 곧 영화제를 조직하는 데 매달리지만, 부패한 공무원들과 불운이 그를 계속 괴롭힌다. 모든 계획이 급속도로 혼란에 빠지면서, 이 혼란은 뜻밖의 기묘한 결말로 치닫는다.
<일루전 Illusion> 에로틱한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성장영화. 복고풍의 캐릭터와 영상이 영화 전체의 에로틱한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킨다.
1958년, 젊은 청년 미겔은 시골에서의 요양을 마치고 현대화가인 아버지가 계신 마닐라를 방문한다. 마닐라에 머물기 위해 그는 집을 페인트칠하는 일자리를 얻는다. 어느 날 아버지의 누드모델이 집에 찾아오자, 그녀의 아름다움에 반한 미겔은 시치미를 떼고 아버지 행세를 한다. 이 거짓된 관계가 진행되면서 미겔은 아름다움, 욕망, 사랑, 그리고 스스로에게 진실해지는 법을 배우게 된다.
<하얀 아오자이 The White Silk Dress> 베트남의 여성을 상징하는 아오자이에 바치는 헌사와도 같은 영화. 다소 신파적인 이야기 구성에도 불구하고 드라마의 강력한 힘이 관객을 매료시킬 것이다.
베트남 여성의 고결하고 순수한 의지를 상징하는 아오자이에 바치는 헌사. 가난과 억압 속에서도 자존심을 지켜나가는 한 가족의 이야기로, 특히 고난을 이겨내는 강한 여성의 힘을 그리고 있다. 50년대 베트남의 호이안. 지주 밑에서 하인 생활을 하던 다우와 구는 주인집을 도망쳐 나와 가정을 꾸리고 산다. 하지만, 끝없는 가난과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이들 가족에게는 엄청난 비극이 계속되고,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와중에서도 가족들은 다우가 남긴 아오자이를 지키며 역경을 이겨나간다.
월드 시네마 추천작 - 전양준 프로그래머
<푸른 눈의 평양 시민 Crossing the Line> 북한에 생존해 있는 유일한 미국인 망명자이자 지난 50년 동안 어떤 외국인과도 접견이 허용되지 않았던 ‘조동지’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우리는 <어떤 나라>로 찬사를 받았던 대니얼 고든의 카메라를 통해 보게 된다.
1962년, 남한의 평화를 지키도록 파견된 한 미군병사가 아주 특별한 여행을 감행했다. 부대를 버리고, 지구상 최고의 중무장지대를 가로질러, 반대쪽으로, 적에게로, 공산주의 국가 북한으로 망명했다. 미국 정부는 미국인 망명자의 존재를 인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경계를 넘어간 남자는 이쪽 세계에선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북한에서 그는 인기스타가 되었다. 악한 미국인으로 영화에 출연하며, 미국에 대한 증오와 국가와 지도자에 대한 충성을 선전했다. 북한에 남은 마지막 미국인 망명자 ‘조 동지’의 이야기가 사상 최초로 공개된다.
<꿈의 동지들 Comrades in Dreams> 4인의 영사기사의 삶을 조명하는 다큐멘터리가 월드 프리미어로 공개된다. 이들은 북한과 미국, 인도와 아프리카 등 저마다 나름의 ‘문제적’ 국가들에 살고 있지만 영화를 향한 열정과 꿈만은 상이하지 않다. 영화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바치는 헌사와 같은 작품이다.
인도 남부, 부르키나파소, 북한 그리고 미국 중서부 시골마을 등, 작고 허름한 단관 영화관에서 필름을 돌리는 영사기사들의 삶과 영화에 대한 애정을 다각도로 그려낸 다큐멘터리. 세계영화 산업의 변방에서 일하고 있는 그들이지만, 오히려 세계적으로 알려진 그 어떤 영화인보다도 높은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간다. 특히 북한 영사기사 한영실의 일상과 교차 편집되는 미국의 중년 독신녀 페니의 삶은, 정치적으로는 세계의 양극에서 있음에도 그들이 가진 꿈의 원천과 동기는 결코 상이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 영화 추천작 - 허문영 프로그래머
<폭력써클 Gangster High> 육사 진학이 장래희망인 고등학교 1학년생 상호에겐 중학교 때부터 친한 친구인 재구와 창배가 있다. 싸움에 천부적인 자질이 있는 상호는 꿈을 이루기 위해 모범생의 길을 걷는다. 상호 일행은 고등학교에 와서 다른 세 친구와 함께 ‘타이거’라는 모임을 만들어 축구를 즐긴다. ‘타이거’는 시간이 갈수록 ‘폭력서클’로 잘못 알려지면서 가혹한 싸움판에 휩쓸리게 된다. 격렬한 폭력 묘사를 통해 동정 없는 세상을 살아가는 10대들을 그려낸 박기형(<여고괴담>, <아카시아>) 감독의 신작.
<열혈남아 Cruel Winter Blues> 재문은 소년원에서 만난 민재와 한 폭력조직에 몸을 담고 운명을 함께해 왔지만, 둘은 엉뚱한 사람을 죽이고, 민재는 대식에게 살해당한다. 민재는 복수를 위해 조직의 막내 치국을 데리고 대식의 고향 벌교로 간다. 대식을 기다리던 재문은 허름한 식당을 하는 대식의 엄마를 만나고, 대식의 엄마는 재문을 따뜻하게 대한다. 조폭 액션으로 시작해서 가족멜로드라마로 끝맺는 드문 영화. 황량한 겨울 들판을 무대로 생의 막다른 골목에 이른 깡패의 황폐한 내면을 서정적으로 그려낸다. 대식 엄마로 분한 나문희의 연기가 탁월하다.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 Driving with My Wife’s Lover> 치정극의 외양이지만, 하층민의 삶에 대한 따뜻하면서도 위트 넘치는 묘사. 아이러니와 페이소스의 절묘한 결합. 뛰어난 시각적 표현이 매혹적인 수작.
강원도 강릉의 도장집 주인 태한은 아내의 불륜 현장을 목도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아내의 애인이 살고 있는 서울로 향한다. 태한은 아내의 애인인 택시기사 중식의 택시를 잡아타고, 장거리를 가자고 제안한다. 아내의 애인과의 드라이브가 시작된다. 태한과 중식은 강원도행 국도를 달리면서 여러 상황과 만나게 된다. 때로는 어색한 적막감에 휩싸이기도 하고, 기묘한 신경전을 벌이기도 하고, 또한 일체감으로 호들갑을 떨기도 한다. 아이러니와 페이소스의 절묘한 배합, 뛰어난 시각적 표현이 매혹적이다.
<경의선 The Railroad> 악몽에 시달리는 지하철 기관사와 맺어질 수 없는 남자에 얽매인 인텔리 여성의 만남. 이룰 수 없는 꿈, 죄의식과 외로움이 서정적인 영상에 실려 아프게 전해진다.
만수는 성실한 지하철 기관사다. 그는 매번 빵과 잡지 <샘터>를 전해주는 여인에게 호감을 갖지만 그녀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그녀는 어느 날 만수의 열차에 뛰어들어 자살한다. 만수는 불안과 고통에 빠져 휴가를 떠난다. 한나는 대학강사이며 독일에서 함께 공부한 유부남 선배를 여전히 사랑하지만, 선배의 부인으로부터 심한 모욕을 당하고 깊은 상처를 입는다. 두 사람은 우연히 하룻밤을 함께 보낸다. 이룰 수 없는 꿈, 죄의식과 외로움이 서정적인 영상에 실려 사금파리처럼 빛나는 작품.
<나의 친구, 그의 아내 My Friend & His Wife> 외환딜러와 그의 친구인 요리사 지망생, 그리고 그의 아내. 이 세사람이 벌이는 치정극이자 소동극. 부드러움과 잔혹함, 일상성과 역사성, 에로스와 공포가 뒤섞인 기괴한 이야기.
예준은 운동권 출신이지만 지금은 외환딜러로 고속 승진하고 있다. 예준의 군대시절 동료 재문은 고졸 출신의 성실한 청년이며 미용사인 아내와 미국 이민을 준비하고 있다. 두 사람은 절친한 친구로 지낸다. 재문의 아내가 출장 간 사이 재문의 갓 태어난 아기를 돌보던 예준은 실수로 아기를 질식사하게 한다. 재문은 예준의 잘못을 뒤집어쓰고 구속되며 예준은 재문의 아내를 돌본다. 일상적이면서도 어딘지 음산하고 불길한 톤, 연원을 알 수 없는 강박관념 묘사, 미스터리한 결말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와이드 앵글 추천작 - 홍효숙 프로그래머
<코리안 돈키호테, 이희세 Korean Don Quixote, Lee Hise> 전작 <평범하기>처럼 작업과정에서 변화하는 감독 자신의 모습을 솔직히 드러내고 ‘관계맺음’에 대해 잘 표현한 작품.
어릴 적 반공웅변대회 스타였던 내가 해외민주투사인 이희세 선생님의 삶을 기록한다. 목적을 가진 만남의 시작이 순조롭게 진행되지는 않는다. 작업이 진행되면서 감독 자신의 변화가 작품에 드러나고, 한 길을 걸어온 노년의 화가의 삶을 통해 나 자신과의 세상과의 관계맺음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하게 된다.
<강을 건너는 사람들 People Crossing the River> 재일동포 감독으로 전작 <건너야 할 강>에 이어 변화하는 한일 양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6년 동안 촬영한 작품이다.
한국과 일본 두 나라 사이에 흘러간 시간, 역사를 걸어왔던 사람들의 길, 그리고 새로운 길을 열어나가려는 양국 사람들의 만남을 관찰자적 시점으로 그려내고 있다. 각자의 길을 찾아가고 있는 4명의 주인공의 궤적을 통해 현재 우리가 가고 있는 길을 사색하게 하는 깊이 있는 작품이다.
<우리 학교 Our School> 일상적인 재일 조선인학교 학생들의 1년 생활을 차분하게 드러내고 있지만 강한 느낌을 전달하고 있다.
훗가이도 조선초중고급학교에 다니는 재일조선인 3, 4세들에 대한 기록이다. 11년 동안 민족교육을 받은 고3 아이들의 1년 동안의 모습을 차분하게 담아내고 있다. 어떤 특별한 사건이나 이슈를 드러내기보다는 일상적인 생활을 통해 여전히 일본에서 재일조선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의미가 무엇인지 드러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