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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끔하고 부드러운 외모만으로 이동욱이 ‘왕자과’일 거라 짐작했다면 큰 오산이다. 질문이 떨어지기 무섭게 되돌아오는 답변은 명쾌하고 이에 곁들인 눈빛이나 말투도 그 의도가 들여다보일 듯 투명하다. <최강로맨스>에 출연한 이유가 무엇이냐는 첫 물음에 대한 대답부터가 그랬다. “시나리오를 읽어보니 재미있었고 흥행도 잘될 것 같았다, 솔직히.” 그런데 정녕 그게 다일까? 흥행 욕심으로 시작했다고 믿기에는 “로맨틱코미디는 되도록 거절하고 싶다”는 그의 옛말들이 여전히 귓가에 맴돈다. 그런 그가 제목부터 ‘로맨스’임을 호소하는 이 작품을 차기작으로 선택하다니 이게 무슨 일? “남녀주인공이 만나는 과정이 독특해서 그 부분에 끌렸다. 사실 시나리오를 고를 때 장르보단 캐릭터를 주로 본다. <아랑>도 공포영화여서가 아니라 캐릭터에 이끌려 출연했다.” 스크린 데뷔작 <아랑>에 이어 <최강로맨스>에 출연한 이동욱은 형사라는 직업과는 딴판으로 뾰족한 물체만 보면
가보지 않은 길을 가고 싶다 <최강로맨스> 배우 이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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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제12회 부산국제영화제 공식 포스터가 확정됐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공식 포스터는 김창영 화백의 극사실주의 그림 ‘Sand Play 0305-F‘를 원안으로 최순대 부산국제영화제 미술감독이 디자인했다. 영화제 조직위원회는 영화제의 상징 중의 하나인 핸드프린팅의 이미지와 부산국제영화제가 개최되는 부산의 바다와 축제 이미지를 잘 나타내고 있는 그림이라고 밝혔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는 10월4일부터 12일까지 열린다.
제12회 부산국제영화제 공식포스터 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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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뎅꼬치로 중원의 무술을 막아냈다. <최강로맨스>가 <황후화>를 간발의 차로 제쳤다. 이동욱·현영 주연의 로맨틱코미디 <최강로맨스>는 서울 51개, 전국 284개 스크린에서 서울 11만 3060명, 전국 52만 530명(이하 배급사 집계)으로 박스오피스 정상을 차지했다.
<최강로맨스>를 제작한 더드림픽쳐스 이민호 대표는 “장르적으로 코미디영화를 만들면서 중요한 지점은 반복적인 요소들을 통해서 웃음을 주는 방식인데 그것이 비교적 잘 구현됐다고 생각한다. 두 배우들이 캐릭터에 걸맞는 연기를 해 준 것이 관객들에게 좋은 인상을 준 것 같다. 배급상황에서는 <마파도 2>를 제외하면 강력한 흥행작이나 장르가 겹친 영화가 없는 상황도 작용했다”고 말했다. 이민호 대표는 프로듀서 시절 <신라의 달밤>, <광복절 특사>, <귀신이 산다>등으로 김상진 감독의 코미디영화를 작업한 바 있다.
<최강로맨스
<최강로맨스>, <황후화> 제치고 흥행 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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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경구, 김남주의 <씨네 21> 표지 촬영 현장과 영화<그놈 목소리>에 관한 인터뷰 영상입니다.
영상 중간에 배우가 직접 내는 돌발퀴즈가 있습니다.
재미있는 퀴즈도 풀고 배우가 주는 선물도 받아가세요.
정답은 2007년 2월 7일까지 댓글로 달아주시면 됩니다.
당첨자는 커뮤니티 '씨네21 소식'에서 확인해 주세요
동영상을 보시려면<동영상 보기> 버튼을 눌러 주십시오.
[커버 스토리] <그놈 목소리>의 설경구, 김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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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자 교환학생으로 서울에 온 재일동포 3세 여성과 강의를 같이 들은 적이 있다. 그때 그녀는 한국어를 잘하지 못했는데, 며칠 전 이화여대 아시아여성학센터가 주최한 ‘한일여성지식인교류프로그램’에서 다시 만났을 때는 한국어로 논문을 발표할 정도로 한국말이 유창했다. 그런 그녀가 내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다가왔다. 재외동포가 한국에 왔을 때 “우리말도 못하면서…”식으로 무시, 비난당하는 경우가 많아서 나도 그런 행동을 했던 것은 아닐까 싶어 내심 겁이 났다. 그녀에 의하면 내가 당시 한국어로 말하다가 중간에 “아리가토(고마워)”라는 일본어를 사용했는데, 그 말이 자기가 유일하게 알아들은 단어였다는 것이다. 그녀는 “그때는 저를 너무 미워했어요”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적으로 올바르면서도’ 그녀에게 힘을 줄 수 있는 말은 무엇일까. 언어(생각)가 없으면 상투적으로 말하게 된다. “저도 영어를 못 알아들어 비참한 적이 많은걸요”, “꼭 한국어를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2개 ‘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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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TV드라마 <고스트 앤 크라임>의 주인공 알리슨은 죽은 이들과 대화하고, 영혼을 읽어내는 특수한 능력으로 범죄 수사의 자문 역할을 한다. 꿈을 통해 피해자의 메시지를 수신받곤 하는 그녀는 종종 그들의 위치에서 사건을 체험한다. 단지 사태의 전말을 파악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고통과 두려움, 아픔 전부를 자신의 것인 양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고스트 앤 크라임>에는 알리슨 이상으로 비범한 인물이 있다. 바로 남편으로 등장하는 조 드부아다. 매일같이 새벽 3시에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는 아내에게 “잠 좀 자자” 짜증을 부릴 법도 하건만, 그가 건네는 첫마디는 언제나 “무슨 일이야? 괜찮아?”다. 자전거 헬멧을 쓴 채 먹고, 자고, 학교를 가는 둘째딸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속이 타오를지언정 강제로 헬맷을 벗기려 하지 않는다. 악몽에 시달리는 아내의 고통과 새 헬멧을 향한 딸의 귀여운 애착을 헤아리는 그는 어떤 초자연적 능력도 갖고 있지 않지만, 상대방의 마음에
[오픈칼럼] 역지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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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리 타임즈>의 원제는 ‘최호적시광’, 즉 최고의 순간이다. 허우샤오시엔은 1966년의 허름한 당구장과 1911년의 고급 유곽, 2005년의 테크노바를 오가며 세 가지의 연애를 통해 대만의 역사를 성찰했다. 그 세 가지 색 사랑의 주인공의 이름은 모두 ‘첸’. 장첸은 1966년의 첸처럼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당구를 쳤고, 2005년의 첸처럼 로모카메라로 장난을 치곤 한다. 2005년의 첸이 자신의 집 한쪽 벽을 장식한 사진은 평소에 장첸이 찍었던 사진을 그대로 활용했다. 또한 첫 번째 에피소드의 배경이 된 60년대는 그가 16년 전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을 통해 이미 ‘경험’했다. 소년 장첸은 에드워드 양의 긴 작업시간 동안, 실제 그 시절을 회상하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60년대를 느꼈다.
“가장 힘든 에피소드는 청 말기를 배경으로 지식인 남자와 고급 창녀의 사랑을 다룬 두 번째 것이었다. 낯선 시대이기도 했고, 너무 위대한 사랑이라 나 같은 사람
이 남자의 最好的時光, <쓰리 타임즈> <숨> 배우 장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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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6일부터 16일까지 시네마테크 부산서
“당신이 신선한 공기를 원한다면 여기에서는 찾지 말아요.” 존 휴스턴의 <아스팔트 정글>(1950)에서 변호사 에머리히가 자기 부인에게 하는 이 유명한 대사는 그 자체로 필름 누아르의 ‘공기’를 간명하게 일러준다. 불안, 부패, 타락, 욕망의 기운이 짙게 깔려 있는 곳이 그 영화들의 세계였던 것이다. 중요한 것은 1940년대와 1950년대의 필름 누아르가 바로 그런 흐릿한 공기 속에서 혹은 그 덕택에 시선과 형식 면에서 이전까지의 할리우드산 영화들로부터 멀리 나아갈 수 있었다는 점이다. 2월6일부터 16일까지 시네마테크 부산에서 열리는 ‘필름 누아르 걸작선’은 ‘불안의 향취’ 가득한 필름 누아르의 매혹적인 세계로 안내하는 자리이다.
여기서 우리는 우선 필름 누아르의 원형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이제 더이상 이야기할 거리가 남았을까 싶을 정도로 너무나도 유명한 영화사의 고전 <시민 케인>(Citizen Kane,
불안의 매혹에 취하다, 필름 누아르 걸작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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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1월30일
장소 서울극장
이 영화
80년대 헤비급 챔피언으로 이름을 날렸던 록키는 은퇴 후 동네에서 조그만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손님들은 그의 흥미진진한 과거사를 들으며 즐거워하고, 아들 로버트는 자기가 퇴물 복서 록키의 아들이란 꼬리표가 싫다. 아내 잃고 아들의 관심도 받지 못한 채 외롭고 소박하게 살던 록키는 TV에서 젊은 복서 메이슨 딕슨과 자신의 가상 경기를 만들어 보여주는 광경을 본다. 이것이 큰 돈이 될 거라 생각한 딕슨 쪽 프로모터가 록키를 찾아와 친선경기를 제안하고 록키는 이를 받아들인다.
100자평
<록키 발보아>는 지극히 예상 가능하고 당연한 결과로 흐르는 영화다. 마치 실존인물 같은 착각도 간혹 일으키는 복서 캐릭터 록키의 관점에서 봐도 그렇고, ‘록키’ 외에 아무것도 되지 못했던 할리우드 배우 실베스터 스탤론의 관점에서 봐도 그렇다. 스탤론은 현실이 녹록치 않음을 배운 환갑의 남자다. 동시에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 있음을 믿고 사는
실베스타 스탤론의 귀환. <록키 발보아> 첫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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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향>에는 비영어권 영화로는 드물게 감독의 음성해설과 인터뷰가 수록되어 있는데, 그 내용이 훌륭해서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영화 만들기에 대한 많은 궁금증이 술술 풀려나간다. 그렇지만 ‘왜 항상 붉은색이 잔뜩 나올까?’ 같은 식상한 질문은 묻어두자. 기자들이 왜 그런 질문을 계속하는지 모르겠다고 감독이 먼저 말해버리니까 말이다. 한때 섹스와 스릴러를 작업의 한축으로 삼았으나 여성멜로드라마의 대가로 변신한 지금, 그는 음성해설 내내 여성에 대한 애정을 늘어놓기에 바쁘다. 알모도바르는 바깥세상 남자들과 분리된 채 가사를 돌보는 여자들 사이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한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성인 여자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렸던 그에게 남자들과의 기억이 자리할 곳이 없음은 당연했고, 그때의 행복하고 즐거운 추억은 이후 알모도바르의 삶에 깊은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는 걸 우린 듣게 된다. 그가 자랐던 라만차의 가부장적인 전통과 엄숙하고 조용한 거리 풍경에 대해 그는 자주 언급하는데,
[서플먼트] 강인한 여성들에 대한 알모도바르의 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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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정혜>를 보다 ‘그녀의 아픔을 당신이 어떻게 알아?’라고 묻고 싶었다. 여성의 내밀한 트라우마에 다가서려는 남자가 왠지 괘씸하다고 여겼던 모양이다. 이후 이윤기는 여성드라마 작업을 계속해왔고, 이쯤에서 무례에 대한 용서를 빌어야겠다. 비록 그의 영화가 여성에 대한 성찰에까진 이르지 못했다 하더라도 대상으로 욕망되지 않는 <여자, 정혜>의 정혜와 <러브토크>의 써니와 영신 그리고 <아주 특별한 손님>의 보경은 한국영화에서 분명 낯선 여자의 이름이며, 아마도 이윤기는 여성의 포르노그래피를 시도하지 않는 한국의 유일한 상업영화 감독일 것이다. <아주…>는 ‘가짜 부녀의 하룻밤 상봉기’에서 ‘잃었던 자아를 되찾는 여자의 이야기’로 바뀌는 영화다. 타인의 양말을 신어봤다가 결국엔 자기 양말 안으로 발을 넣는 것처럼, 남의 이름을 돌려준 뒤 마침내 자기의 이름을 말하는 것처럼, 두개로 나뉜 혹은 타자가 설정한 정체성으로부터 꼭 숨겨
자기 마음속으로 다가가는 걸음을 따라, <아주 특별한 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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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으로 올바른 것은 올바른 것일까? 무쓸모 의심은 무쓸모 행동을 낳았다. 몇해 전 누군가가 “뉴욕에서는 ‘호모’라는 말이 쿨한 말이 됐대”라고 말하자, 나의 언어생활은 망가지기 시작했다. 성소수자 친구들과 수다를 떨다가 “호모”라는 말을 쓰기가 다반사. 처음엔 이랬다. 한국사회의 언어생활이 그래도 교정돼서 상식이 있는 사람과 매체라면, 더이상 ‘호모’라든가 ‘동성연애자’라는 말을 쓰지 않게 되자(아직도 쓰는 용감한 분들도 있다), 괜히 반감이 일었다. 이건 너무 쉽잖아, 말이 바뀌면 뭐하나 진심은 바뀌지 않았는데. 이렇게 ‘게이’라는 말에 묻은 겉치레 시민적 상식에 짜증이 났었다. 정치적 올바름으로 포장했지만 진심은 여전히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다는 혐의를 품었다. 그러니까 때이른 언어의 허무주의에 빠졌다고 포장하자. 정치적으로 포장을 하자면,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으면서 올바른 체하는 자신에 대한 조롱도 없지는 않았다고 해야겠다. 물론 남들과 같아졌다는 짜증이 2할, 쿨하다는
[이창] 정치적으로 올바르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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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1월28일치 일간신문에는 제7회 동계올림픽 출전단에 대한 기사가 일제히 떴다. 이탈리아 코르티나담페초에서 열린 이 대회에는 36개국에서 947명의 선수들이 참가했다. 한국은 전란 통에 전 대회에 불참한 터. 그래선지 임원 3명, 선수 4명, 모두 합해서 고작 7명인 단출한 선수단이었지만, 감격과 관심은 예상보다 높았다. 언론은 “파란 빤-쓰에 황갈색 코―트”를 휘날리며 보무 당당하게 입장하는 한국선수단이 현지 관중에게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다”고 썼다. 하지만 할리우드에 입성하게 된 25명의 고아들에게 쏟아진 스포트라이트에는 비할 바가 못 됐다. 해맑게 웃고 있는 고아들의 표정과 한 미군의 얼굴을 합성한 이 사진은 “국경을 초월한 인류애의 아름다운 결정(結晶)”이라 불린 사연과 함께 같은 날 각 신문의 톱을 모조리 차지했다.
주인공은 제주도 한국보육원에 있는 아이들과 한국전쟁 당시 이들을 수송기를 통해 피신시켰던 딘 E. 헤스 대령이었다. 헤스 대령은 한국전쟁 당시 미
[한국영화 후면비사] 기브 미 초콜렛의 씁쓸한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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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영화를 ‘즐감’하기 어려운 세상이다. 영화가 보여주는 대로 보면서 웃었다 울었다 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언젠가부터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각성이 스크린과 관객 사이에 필터처럼 끼워지더니 이제는 그 ‘정치적 올바름’의 상투성이나 위선까지 감식함으로써 불경하기 짝이 없는 영화의 ‘전복성’을 끄집어내 열광할 수 있어야 진정 수준있는 관객으로 거듭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이건 타르코프스키 영화를 보면서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것만큼이나 난이도가 높은 작업이다.
그래서 내가 <보랏: 카자흐스탄 킹카의 미국 문화 빨아들이기>를 보고 곤혹스러웠냐 하면 그런 건 아니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이거 참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내 말에 “선배가 제일 많이 웃던데요”라고 옆의 후배가 대꾸했으니 피해갈 도리가 없다. 그렇다고 이 영화의 전투적인 풍자정신과 전복적 성향에 환호했다고 둘러댈 만큼 내가 ‘위선적’인 건 아니다. ‘정말 그렇게 많이 웃었나, 내 웃음소리가
[투덜군 투덜양] 열받는 걸 열받는다 하지 못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