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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로
자신을 찾기 위한 장소
‘패턴’이라는 일종의 미로를 창조한 <앰버 연대기>의 로저 젤라즈니가 그랬듯이, 많은 작가들은 미로가 자아와 운명을 찾기 위해 걸어가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기예르모 델 토로도 비슷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는 <헬보이> 감독판 코멘터리에서 “미로는 길을 잃고 헤매는 곳이 아닌, 자신을 찾기 위한 장소라는 말이 있다. 미로에서는 자신에게 꼭 맞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때문에 델 토로는 자신의 영화에서 미로 혹은 어느 한 길을 택해야만 하는 갈림길을 자주 사용하곤 한다. <판의 미로: 오필리아와 세개의 열쇠>는 그러한 미로의 이미지가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나 있는 영화다. 이 영화에서 오필리아는 미로 동굴을 통과해, 그 중심에 놓인 조그만 미로 도형에 당도하는데, 그 원형의 미로는 <헬보이>에서 라스푸틴을 부활시키기 위해 희생자의 피를 흘려보내는 원형 미로와 매우 비슷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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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의 미로: 오필리아와 세개의 열쇠>에 이르는 다섯 가지 열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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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예르모 나바로
기예르모 델 토로는 <악마의 등뼈>를 “관음증적인 카메라”로 찍고 싶어했다. “카메라가 제3의 캐릭터처럼 인물 곁에 머물면서도 두드러지지 않는, 일종의 훔쳐보기”를 하는 유연하고 은밀한 카메라는 <블레이드2> <미믹>을 제외한 기예르모 델 토로의 모든 영화를 촬영한 기예르모 나바로의 것이었다. 사진을 공부했고 유럽에 유학을 가기도 했던 나바로는 <데스페라도> <스파이 키드 3D: 게임 오버> 등의 로버트 로드리게즈와도 좋은 파트너로 일해왔다.
론 펄먼
<크로노스> <블레이드2> <헬보이> 등에 출연한 론 펄먼은 기예르모 델 토로가 편지로 간청해서 <크로노스> 출연을 승낙했다. <크로노스>에는 분장을 하지 않아도 기괴한 맨 얼굴로 나오지만, 델 토로가 그에게 매혹된 까닭은 “론 채니처럼 분장을 활용할 줄 아는 배우”이기 때문이었다. TV시리즈 <미녀와
기예르모 델 토로의 왕국 건설을 도운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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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의 미로: 오필리아와 세개의 열쇠>의 숲은 현실과 전설이 뒤섞여 있는 곳이다. 파시즘 정부에 저항하는 게릴라들은 산등성이에 모닥불을 피우고, 그 아래 산기슭에는 기원 이전의 물건인 듯한 석상이 당연하다는 듯이 양치식물 사이에 피있다. 오솔길을 따라가면 이끼로 뒤덮인 아치 너머 미로 동굴이 있어 오래전에 닫혀버린 지하 왕국의 입구로 인도한다. 햇빛 사이로 어둠이 깃드는, 참혹한 전쟁터이면서 서글픈 마법에 걸린 숲. 이 공간을 창조한 멕시코 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는 <블레이드2> <헬보이> 같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만드는 사이사이 <악마의 등뼈> <판의 미로…>처럼 사적이고 신비한 영화를 만들어왔다. 스페인 내전을 작은 숲으로 축소하여 세상 모든 이가 타협하여도 홀로 타협하지 못했던 소녀를 감싸안는 <판의 미로…>는 그 이란성 쌍둥이 버전인 <악마의 등뼈>처럼 불가해한 존재를 믿는 상상력으로 야만의 세상을
상상과 모험의 세계, 기예르모 델 토로의 영화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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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본 친구들은 각자 자기 상황에 적용하느라 분주했다. 악마는 폭탄주를 마신다, 악마는 데리다를 읽는 척한다, 악마는 이디피에스를 즐긴다…. 직장 상사, 선배, 지도교수, 부모….일상의 슈퍼바이저들이 총출동했다. 자기 상사와 메릴 스트립을 비교하면서, 우리 중 누가 가장 핍박받는 ‘뉴 에밀리’인지를 놓고 경쟁했다. “그래도 메릴 스트립은 추천서는 써주잖아, l년만 견디면 보상이 있잖아, 나중에 고마워는 하잖아, 사람은 알아보잖아, 능력이 뛰어나니까 후배를 경쟁자로 보지는 않잖아, 성희롱은 안 하잖아….” 내 악마만이 진정한 악마일 뿐 남의 악마에 대한 칭찬과 부러움이 끝이 없었다. 그렇다. 어느 조직이나 지도자를 지배자로 착각하는 사람, 권한과 역할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이 부지기수지만 최소한 이 영화의 악마는 지도력 없는 지도자는 아니다.
한마디로, “무능한 주제에 인간성도 바닥인 상사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성토장이었다. 뒤집어 말하면,
[유스토피아 디스토피아] 악마의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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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트콤의 마스터’ 김병욱 감독이 돌아왔다. 아쉬움 속에 종영된 <귀엽거나 미치거나> 뒤 와신상담의 시간을 보내고 11월 초 내놓은 MBC 일일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으로 말이다. <순풍산부인과>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똑바로 살아라>로 이어지며 한국 가족시트콤의 원형을 만들어낸 김병욱 감독은 <거침없이 하이킥>을 통해 가장 ‘가족적’이지만 ‘가족시트콤’은 아닌 그 무엇으로 달려가고 있는 중이다. 시작부터 하이킥을 날리며 거침없이 돌진해오는 문제적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의 이모저모를 살펴본다.
가족은 소우주, 우주가 요동치는 웃음이 왔다
MBC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집은 종종 광활한 공간처럼 묘사된다. 순재(이순재)가 잘못을 저지른 그의 자식들을 뒤쫓을 때, <거침없이 하이킥>의 카메라는 수평구도로 집을 바라보며 집을 최대한 넓게 보여준다. 그렇게 넓게 묘사된
김병욱 시트콤의 이상향을 향한 일보전진, <거침없이 하이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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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3개월 전, 남들에겐 있는데 내가 갖지 못한 세 가지가 있었다. 나는 직장이 없었고, 통장 잔고가 없었으며, 같이 놀아줄 사람이 없었다. 그때는 통산 여섯 번째(많기도 하지!) 직장이 장렬히 전사한 뒤, 엄청나게 남는 시간과 얇은 지갑을 주체 못해 간간이 들어오는 아르바이트로 연명하던 참이었다. 이따금 전전(前前) 직장을 들락거리며 옛 사수들에게 “어이, 오랜만이야→왔냐?→또 왔냐?→한가한가 보구나→…왔군”이란 소릴 반복해서 듣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와 비슷한 시기에 (자발적) 백수세계에 입문한 전전 회사의 편집장 선배에게 전화가 왔다. 실업급여를 함께 신청하러 가자는 것이었다(우리는 한 동네에 산다). 국가가 내게 해준 것도 없는데 이런 거라도 악착같이 받아야 한다며, 나는 기꺼이 집을 나섰다.
실업급여를 타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고용안정센터의 분위기는 우중충하기 짝이 없다. 그 세계에서 인간은 딱 두 부류로 나뉜다. 사회 경제인이거나 백수이거나. 편집장과 기자
[오픈칼럼] 수평적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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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밤 침대에 누워 울고 있는 심정을 그댄 아는가? 너무나 아프고 아픈 그 가슴에 칼을 꽂는 마조히스트의 심정을. 내가 그런 심정에 빠져 있을 때 날 구해준 것은 한명의 시인이었다. 그의 이름은 이성복이다. 이성복 시인은 아픔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의 시가 정녕 싫어지는 때가 왔으면 좋겠다고 느낄 만큼 그의 시어들은 날카롭고 예리하다. <성탄절>이란 시를 읽고 난 가슴에 정확히 총알이 박히는 기분을 느꼈다.
나를 지배하는 감정은 우울이다. 우울함을 극복할 수 있을까. 그늘이 있어도 없는 척 능청스럽게 살 수 있을까. 마음을 정리해도 끝까지 남는 것은 언제나 우울이다. 그럼 불안, 고독 등 인간이 가져야 할 당연한 감정들마저 죄의식처럼 느껴진다. 밤새 라디오를 들으며 행복하게 웃다가도, 방송 뒤에 찾아 듣는 음악은 엘리엇 스미스나 막시밀리언 해커의 곡들이다. 마치 우울을 향해 몸을 던지기로 작정한 사람처럼 말이다.
우울할 때 혼자 있는 것을 못 견뎌하면서도 끝
[이창] 우울과 몽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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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기 이전부터 관객을 흥분시키는 감독이다”, “독특한 감수성으로 관객을 감화시키는 연출자다”. 한국의 봉준호 감독과 일본의 이누도 잇신 감독이 제3회 메가박스일본영화제에서 만났다. 영화제 마지막 날인 11월19일, ‘영화의 현재와 미래’라는 주제로 진행된 심포지엄에서 두 감독은 서로에 대한 칭찬과 질문을 시작으로 각자 개인의 영화적 경험을 털어놓았다. 일본의 영화평론가 데라와키 겐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의 대화가 다소 거창한 심포지엄 주제인 ‘영화의 현재와 미래’의 결론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TV와 만화를 통해 영화적 감수성을 쌓아온 두 감독의 대화는 현재 한국과 일본영화의 한 경향을 설명하는 데 충분했다. 이누도 잇신 감독의 영화 <터치> 상영 뒤, 90여분간 진행된 심포지엄을 여기 옮긴다.
데라와키 겐: 우선 봉준호 감독께 <터치>를 본 소감을 부탁드린다.
봉준호: 영화를 보면서 두 가지 추억이 떠올랐다. 하나는 야구에 대한 것이고 다른 하
봉준호 감독, 이누도 잇신 감독 심포지엄 중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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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스튜디오 감독들보다 마틴 스코시즈는 홍콩 뉴웨이브에 큰 영향을 끼쳤다. 오우삼은 <첩혈쌍웅>을 그에게 헌사했고 왕가위는 <비열한 거리>를 따라 자신의 첫 극영화 <열혈남아>를 만들었다. <택시 드라이버>의 비오는 슬로모션의 도시적 스타일은 수많은 홍콩영화들에 녹아들어갔다. 스코시즈는 최근 가장 강력했던 아시아의 액션영화를 리메이크한 <디파티드>를 통해 이에 대한 보답을 보내고 있다.
유위강과 맥조휘의 2002년작 <무간도>의 뛰어난 이야기는 영화 역사의 두 번째 세기를 맞아서야 등장했다(만약 그전에 나왔다면 독자들은 알려주시기를). 강력한 조직의 두목은 소년기 아이를 데려다 경찰 조직에 심고, 경찰은 비밀 요원을 두목의 폭력 집단에 심어놓는다. 두 조직은 고정 첩자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영화의 절정에 가서야 깊숙이 숨겨진 첩자 둘은 서로를 알아내기 위한 노력을 시작한다.
중요한 극적 장치로 휴대폰이 사
마틴 스코시즈의 <디파티드>가 관객들을 사로잡지 못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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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견 감독의 신작을 보기 힘든 한국에서 올해 상반기와 하반기의 끝자락에서 여균동과 배창호의 작품을 만난 기쁨은 컸다. 우연인지 <비단구두>와 <길>은 공히 로드무비 형식으로 한국적 정서를 표현한 작품이다. 두 감독이 자조 방식으로 힘겹게 만든 영화가 또한 어렵사리 개봉됐지만 관객은 많지 않았다. 먼저 <비단구두>가 DVD로 관객을 찾는다. 두 배우를 이끌고 음성해설을 척척 진행하는 여균동의 솜씨에 방송 진행자와 배우로서 활동했던 전력이 묻어난다. 음성해설 도중 최덕문의 말수가 적으니까 여균동은 “두 마디 이상 문장은 안 됩니까”라고 따져본다. 그래도 최덕문은 그냥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할 뿐이다. 어이없었을 감독의 얼굴이 선히 보인다. 깡패의 협박에 못 이겨 영화 흉내를 내게 된 감독의 이야기 <비단구두>에는 “영화는 뭐든 할 수 있잖아”라는 대사가 나온다. 그러나 영화를 만드는 건 쉽지 않음을, <비단구두>는 안팎으로 보여준다.
[코멘터리] “춥고 힘들었지만 그래도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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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러셀 크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섹스 & 시티>에서 네 여자가 성적 판타지를 채우고 싶은 섹시남으로 러셀 크로를 꼽았을 때 “언니들, 그러니까 맞고 사는 여자 보고 맞을 짓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거란다”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잘해봐야 <LA 컨피덴셜>에서 보여준 약간의 아이 같음이나 <글래디에이터>의 우직한 용기, <신데렐라>에서의 묵묵한 부성애 정도가 러셀 크로가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좋은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한마디로 너무 무식하고 깡패같이 보인다는 말씀이다. 사실이기도 하잖아?
그래서 그가 <어느 멋진 순간>이라는 ‘로맨틱코미디’에 ‘펀드매니저’로 등장한다는 기사를 보고 ‘지나가던 개나 웃을 만한 영화군’이라고 생각했다(이런 영화를 돈 주고 봐야 하는게 ‘투덜양’의 비애라고나 할까). 사실 이 영화의 앞부분은 이런 예상을 크게 넘어가지 않았다. 와인잔을 앞에 두고 어린 시절 주인공의 삼촌이 주저리주
투덜양, <어느 멋진 순간>을 보고 프로방스의 낭만에 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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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가 많이 포함돼 있습니다.
도입부에 등장하는 <쉴 곳이 필요해>(Gimme Shelter)는 롤링 스톤스의 악명 높은 히트곡이다. 제대로 알아먹기 힘든 그 노래는 두 주체의 외설적 대화 혹은 분열된 자아의 이중 음성을 담고 있다. “폭풍우가 지금 내 삶을 위협하고 있어… 쉴 곳이 필요해”라는 겁먹은 듯한 독백 다음에 “그건 그냥 지나가는 것일 뿐이야… 강간, 살인, 그건 그냥 지나가는 것일 뿐이야”가 이어지고 “사랑이란 말이야, 아가씨, 그건 그냥 지나가는 키스일 뿐이야”라고 끝맺는다.
마틴 스코시즈는 전작 <좋은 친구들>과 <카지노>에도 이 음악을 썼지만 <디파티드>에 가장 잘 들어맞는다. 살인자, 신성모독자, 여성혐오자, 인종주의자, 동성애혐오자 그리고 아이리시 갱 두목인 프랭크 코스텔로는 이 노래와 함께 등장해 보스턴의 아일랜드인 갱의 역사를 요약한다. 그리고 어린 소녀를 희롱하며 자신의 아들을 찾기 시작한다. 그에게 ‘
거장의 가장 나쁜 영화 <디파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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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 와 그랬노?” <친구>에서 감옥에 갇힌 준석에게 던져진 질문이다. 준석이 답한다. “쪽팔리서….” 처음 영화를 봤을 때 이게 무슨 뜻인지 몰랐고 지금도 아리송하다. 친구를 왜 죽였느냐는 질문에 쪽팔려서 죽였다고 말하는 것인가. 쪽팔려서 자수를 했다는 말인가. 아님 왜 친구를 죽였냐고 물었는데 쪽팔려서 자수했다고 동문서답을 하고 있는 것인가. 한발 떨어져서 보면 우스꽝스러운 대화건만 <친구>의 이 석연치 않은 문답은 사나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그들의 대화가 우습다고 생각했다면 800만명 넘는 관객이 호응하진 않았으리라. 사람들은 친구를 죽여야 했던 준석을 동정했고 눈물을 흘렸다. 물론 그럴 수 있다. 준석이나 동수나 알고보면 불쌍한 남자니까. 상택이 그랬듯 우린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친 그들에게 돌을 던질 만큼 깨끗하지도 용감하지도 않다. 하지만 그럴 수 있다는 것과 그래야 한다는 것은 다르다. <친구>는 당위와 윤리에 속하는 의문을
[편집장이 독자에게] 아저씨들, 눈물 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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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사랑 상대에게 부담없는 이성친구임을 자처하는 것은 스스로 십자가를 지는 일이다. 고속도로변 “만남의 광장”만큼이나 부담없는 친구인 탓에, 다른 사랑으로 기뻐하고 아파하는 그의 모습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봐야 하기 때문이다. 친구와 연인 사이의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동안 고백은 자꾸 연기되고 아픔의 무게만 늘어난다. 영화 <무지개 여신>은 그런 아픔을 ‘뒤늦게’ 쫓아가는 추억담이다. 항상 같이 있으면서도 알아채지 못했던, 모든 걸 알고 있는 듯했지만 알 수 없었던 친구의 아픔이다.
아오이(우에노 주리)에게 토모야(이치하라 하야토)는 야속한 이성친구다. 토모야는 아오이를 통해서 짝사랑하는 여자에게 마음을 전하고 러브레터를 대신 써달라고 부탁하지만, 사실 아오이는 토모야를 향한 사랑을 에둘러 감추고 있다. 하지만 눈치없는 토모야는 언제나 그녀를 좋은 친구로만 여길 뿐이다. 대학 졸업 뒤 유학을 결심한 아오이는 내심 토모야가 잡아주길 기대하지만, 이때도 역시 토모야는 그녀를
아픔을 뒤늦게 쫓아가는 추억담 <무지개 여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