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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 우주까지, 영화 역사를 호령한 괴물영화들
“나는 스스로를 예술가로 간주한다. 나는 기술자가 아니다. 나는 기술에 무지한 사람이며, 괴물을 창조하고 그로부터 끝내주는 이야기를 뽑아내는 일을 사랑할 뿐이다.” 위대한 괴물들의 창조주 스탠 윈스턴은 자신을 기술자로 부르는 사람들에게 당부했다. 자신을 예술가로 불러달라고. 그리고 괴물을 창조하는 것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예술적 고통을 수반하는 것이라고. 옳은 말이다. 괴물을 창조하는 것은 그저 괴물의 외양만을 만들어내는 작업이 아니라 괴물로부터 투영되는 우리의 삶과 공포와 환희를 담는 일이다. 그렇게 창조된 괴물들의 번득이는 이빨은, 냉전과 핵에 대한 공포일 수도 있으며, 페미니즘에 대한 공격일 수도 있고, 보수주의자들을 향한 일갈일 수도 있다. 하지만 괴물의 사회·심리·문화적 함의에 대해서 골똘히 고민하는 것보다 선행되어야 할 일이 있다. 프란체스카의 “그냥 즐겨!”라는 격언을 따르는 것이다. 괴물영화는 즐겁다. 그들
괴물영화대백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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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자무시의 데뷔작 <영원한 휴가>를 처음 봤다. 황량한 뉴욕의 뒷골목을 떠도는 청년의 이야기는 이후 만들어질 영화의 선언문 역할을 하는 것이어서, <천국보다 낯선>의 유명세에 종종 가려진다는 게 안타까울 정도다. “삶에 있어서 큰 차이는 없으며 기본적으로 사람들은 똑같다. 머물렀던 곳에서의 신선했던 시간이 지나면 그 장소를 떠나야 한다. 그것은 깨달음이다.” 자무시 영화의 주인공들은 모두 영원한 휴가를 즐기는 여행객이다. 그들에게 정착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자무시가 세상을 어떤 곳으로 보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그에게 끝없는 이동이란 타락하고 악한 세상에 굴하지 않고 물들지 않는 방법이다. 자무시인들은 세상의 굴레는 물론 심지어 시간으로부터 구속받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자무시 영화에서 기억에 남는 장면이 어디 한둘일까만 그의 정서가 반영된 두 장면을 그중 백미로 매번 꼽는다. <다운 바이 로>에서 탈옥한 세 남자는 숲속의 외딴집을 발견한
[명예의 전당] <짐 자무시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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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나 뮤직비디오 출신 영화감독들에 대해 흔히 하는 말. ‘화면 때깔만 좋으면 뭘 해’ 운운. 그러나 리들리 스콧의 경우 그것이 오히려 축복이었다. 영화계 진출 전부터 이미 유명한 광고 연출자였던 스콧은 90만달러짜리 장편 데뷔작을 준비하면서 ‘영화가 안 되면 내가 다 책임지겠다’며 자신과 함께 광고를 찍었던 스탭을 모았다. 촬영기간 내내 내린 비는 오히려 화면 속 정서를 더욱 깊이있게 꾸며주었으며, 훗날 스콧이 즐겨 사용하는 하나의 스타일이 되기도 했다. 혹한의 러시아 시퀀스는 일부 장면을 눈 쌓인 호텔 주차장에서 촬영했는데, 다른 장면들과 감쪽같이 붙었을뿐더러 비용도 크게 절감할 수 있었다. 저예산이어서 세트를 짓지는 않았지만 결투장면에서 사용할 권총 빌리는 데 돈이 더 들어가 촬영 내내 스탭들이 긴장하기도 했다. 주인공 두베르의 아내 역으로 당시 키스 캐러딘의 연인이었던 크리스티나 레인즈를 캐스팅할 수 있었고, 대배우 앨버트 피니를 샴페인 한 상자에 특별출연시킬 수 있었던 것은
[코멘터리] 아는 것과 갖고 있는 것을 활용하라, <결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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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의 한 택시운전사는 거기서 만나본 사람 중 가장 친절했다. 러시아에서 이주했다는 그는 LA에서 한번도 눈을 보지 못했다고, 그래서 간혹 눈이 그리워 스키를 타러 가는 게 몇 안 되는 낙이라 했다. <크래쉬>는 ‘LA에 눈이 왔던 어떤 날’의 이야기다. LA에 눈이 오는 건 뉴욕이나 서울에서 눈을 보는 것과 달리 어떤 불가능한 일이 일어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수개월 전 DVD로 <크래쉬>를 처음 보았을 때는 내리는 눈이 그렇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다 얼마 전 스크린 전체를 가득 뒤덮은 눈을 보면서 감독이 그 눈을 얼마나 보여주고 싶었을까, 하고 짐작할 수 있었다. 눈은 애타게 그리운 따뜻한 정이 되어 몸을 감싸고 포근한 솜이 되어 더러운 마음과 죄를 살짝 덮어준다. <크래쉬>의 많은 장면에서 사람들은 유리와 강철로 만들어진 문과 집과 차로 격리된 채 살고 있다. 그리고 그 문이 열릴 때마다 고통이 등장해 그들은 통증을 경험한다. 하지만 그
늘어난 2분30초를 찾아볼까, <크래쉬: 감독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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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그릴라, 유토피아는 존재의 여지가 없는 가공의 이상향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낙원을 꿈꾼다. 그리고 어떤 영화는 천국이 여기 땅 위에 분명 존재하는 어떤 곳이라고 말한다. <서울독립영화제 2005 수상작> DVD에는 그런 낙원과 그런 영화가 있다. 김종관의 <낙원>은 이런 생각을 시작하게 만든 출발점이다. 그가 절뚝거리며 따라간다, 그녀의 치맛자락이 저만치 돌아선다, 바람이 분다, 어린 시절의 비눗방울처럼 천국은 그렇게 사라져간다. 정녕 깊은 한숨 없이는 그 옆에 눕기조차 힘든 걸작이다. <낙원>에서 가난한 남자로 분한 양익준이 주연과 연출을 맡은 <바라만 본다>에는 사랑하는 자에게 내비치는 어색한 감정 표현과 예쁜 미소 그리고 햇살에 빛나는 흰 이빨이 있다. 낙원에 도착한 자는 그런 모습일 게다. 이지상의 <십우도2-견적>은 땅으로 내려간 남자와 근심 가득한 여자의 편지를 통해 잃어버린 낙원을 복원하며, 최지영의 <산책&g
낙원과 천국이 여기에, <서울독립영화제 2005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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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순수한 사랑, 첫사랑의 감미로운 기억을 더듬어가는 기타야마 교이치의 소설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의 한국판 버전. 동명의 일본영화와는 조금 다르긴 하지만, 상큼한 매력을 발산하는 두 주연배우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2장으로 구성된 스페셜에디션 DVD는 영화 명장면을 담은 16쪽의 화보집과 스틸컷 엽서를 포함, 전윤수 감독과 차태현, 송혜교의 영화 음성해설, 하이라이트 모음, 메이킹 필름, 제작진과 배우들의 인터뷰 영상을 부록으로 제공한다.
차태현과 송해교의 상큼 매력, <파랑주의보 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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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려진 고전 동화의 이야기를 살짝 뒤집으면서 추리적 요소를 가미한 <빨간 모자의 진실>. DVD는 영어 더빙과 함께 김수미, 강혜정 등이 참여한 우리말 더빙까지 수록해 메리트가 있다. 다만 우리말 더빙이야 예외이지만, 한글자막의 경우 지나칠 정도의 우리식 표현들이 많아서 아쉽다. 화질과 음향은 대단히 우수하며, 부가영상으로 제작진의 인터뷰 중심으로 진행이 되는 12분 분량의 메이킹 필름과 5개의 삭제장면, 흥겨운 뮤직비디오 영상을 제공한다.
영어 혹은 우리말, 골라 듣는 재미, <빨간 모자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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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케우치 유코의 매력이 돋보인 감성멜로 <천국의 책방>. 영원한 사랑을 테마로 아름다운 영상과 음악이 인상적인, 그래서 제작과정을 엿보고 싶은 그런 영화다. 뜻밖에도 1시간17분 분량의 꼼꼼한 메이킹 필름인 ‘일기’에서는 본편과는 사뭇 다른 느낌의 촬영현장을 대할 수 있다. 어둡고 칙칙한 그런, 그 속에서 유일하게 활기를 띤 이들은 제작진과 감독의 모습이다. 그 밖에 피아노 레슨과 오디오북 <천국의 책방>, 도쿄에서 있었던 시사회 현장 등의 부록이 있다.
활기 넘치는 촬영현장의 일기, <천국의 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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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행과 속편, 이 둘의 관계는 의외로 간단하지 않다. 흥행이 되면 속편을 제작할 순 있지만, 그렇게 제작한 속편이 흥행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속편에선 아이템이 중요하다. 전편의 설정들을 새롭게 변주할 수 있는 아이템. <가문의 부활>과 <동갑내기 과외하기2>는 그런 의미에서 속편 제작의 가능성이 높이 제기됐던 영화들이다. 조폭과 가족, 청춘과 로맨스 등 이야기를 구성해낼 재료들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이제 막 촬영을 시작한 두 영화를 살짝 들여다보았다.
불량선생과 열혈제자의 한국어 과외기, <동갑내기 과외하기2>
시놉시스/ 재일동포인 준코(이청아)는 한국 대학생 정우성을 좋아해 그를 만나기 위해 한국으로 건너온다. 게스트하우스를 숙소로 잡은 준코는 주인 아들인 종만(박기웅)과 처음부터 티격태격이다. 아버지의 명령으로 어쩔 수 없이 준코에게 한국어 과외를 해줘야 하는 종만. 상황이 마음에 안 들기는 준코 역시 마찬가지다. 종만은
2006 하반기 신작 프로젝트 [5] - 속편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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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소설과 만화의 판권이 팔렸다는 뉴스는 더이상 신기하게 들리지 않는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바보> <오래된 정원> 등이 이미 서점에서 영감을 찾아냈고, 인터넷 소설도 몇년 전부터 연이어 영화로 제작되고 있다. <황진이>와 <순정만화>도 미묘한 창작의 과정인 각색을 시도하고 있는 영화들이다. 잊혀진 우리말과 시와 노래를 싣고 있는 <황진이>와 네명의 이야기가 교차하는 <순정만화>는 유독 각색이 어려운 작품들이겠지만, 그만큼 원작이 다른 매체로 변화했을 때의 모습이 궁금해지기도 한다.
특별하지 않은 이들의 특별한 사랑, <순정만화>
시놉시스/ 서른살 회사원 김연수는 출근길 아침마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사나운 여고생에게 자꾸 마음이 간다. 여고생 한수영 역시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이 숙맥 아저씨가 마음에 든다. 어느 날 교복 넥타이를 잊고 집에서 나온 수영은 연수에게 넥타이를 빌려
2006 하반기 신작 프로젝트 [4] - 원작능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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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3각 게임에서 제멋대로 몸을 놀렸다간 얼마 못가 넘어지기 마련이다. 한데 발을 묶은 두 사람이 보폭과 호흡을 어떻게 맞추느냐가 얼마나 빨리 결승점에 가닿을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관건이다. 6월12일 오후 2시 서울 삼성동 메가박스 1관과 5관에서 동시에 첫선을 보인 <강적>. 한데 묶이기 쉽지 않은 살인범죄 용의자와 망나니 형사가 함께 수갑을 차고 도주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2인3각' 버디 무비 <강적> 은 얼마나 성공적인 계주를 벌였을까.
<강적>의 수현(천정명)은 맘 먹고 새 삶을 차린 젊은이다. 조직생활을 청산하고 여자친구와 함께 라면가게를 운영하는 수현은 어느날 밤 어린시절 보육원에서 함께 자란 재필(최창학)의 연락을 받는다.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다짐을 받아들고서 수현은 재필의 부탁을 받아들이고, 약속대로 수현은 사채 놀리는 건달 김중만을 찾아가 그의 옆구리에 칼을 먹인다. 따라붙는 김중만 일당을 어찌하지 못하던 도중 수현은 음주단속을
박중훈, 천정명 주연 <강적> 첫 시사 (+100자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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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만큼 애증이라는, 모순된 감정과 어울리는 존재가 있을까. 영화 속에서 그들은 어떤 식으로든 그림자를 드리워서, 그 흔적이 없는 영화를 찾는 것이 오히려 어려울 정도. 그러나 장애인과 그의 어머니를 주인공으로 하는 <허브>와 판자촌 식구들의 힘겨운 투쟁과 새로운 시작을 그리게 될 <특별시 사람들>은 가족의 미묘한 의미를 직접 화법으로 고민한다는 점이 눈에 띈다. 두편의 영화 속 가족은 가깝고도 멀고, 당연하면서도 낯설다. 우리네 가족들과 제법 닮았다.
장애인 아가씨의 꿋꿋한 홀로서기, <허브>
시놉시스/ 생머리에 마른 체구를 지닌 스무살 아가씨 상은(강혜정)은 남들과 조금 다르다. 정신연령이 일곱살에서 멈춰버린 정신지체자이고, 아버지 없이 꽃집을 운영하는 엄마 현숙(배종옥)과 함께 살고 있는 그는, 언제 어디서고 자신을 바보라고 부르는 사람은 가차없이 물어버리고, <미녀와 야수> 이야기를 가장 좋아한다. 그러던 어느 날 상은은 자신만
2006 하반기 신작 프로젝트 [3] - 가족정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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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극은 만만찮은 장르다. 영화를 만드는 동안 고증에서 재연까지 드는 수고는 물론이고 과거를 끌어와 현재와 어떤 접점을 만들 것인가 하는 고민도 적지 않다. 5·18 광주민중항쟁과 베트남 전쟁처럼 아직도 우리 삶에 영향을 끼치는 역사를 되짚어야 한다면, 그러한 부담은 배가 될 것이다. <화려한 휴가>와 <무기의 그늘>은 누구도 선뜻 택하지 않는 소재와 배경을 택했다는 점만으로도 주목받는 프로젝트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이제 막 돌리기 시작한 김지훈, 필감성 두 젊은 감독들로부터 고투의 과정 일부를 들었다.
정면으로 80년 광주를 바라본다, <화려한 휴가>
시놉시스/ 민우(김상경)는 택시기사다. 넉넉지 않은 생활이지만, 그는 공부 잘하는 동생 진우(이준기)만 바라보고 살고 있다. 직장 동료의 부추김으로 평소 호감을 갖고 있던 간호사 신애(이요원)와 극장 데이트를 하게 된 민우. 첫 데이트의 설렘은 그러나, 갑작스럽게 극장에 들이닥쳐 곤봉을 휘두르는
2006 하반기 신작 프로젝트 [2] - 시대역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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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열풍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땀을 흘리는 사람들이 있다. 신작 촬영준비에 여념이 없는 충무로 제작진들이다. 과연 그들은 월드컵 개막일이 며칠인지 알고 있을까. 한국의 예선 경기가 언제, 어디서 열리는지 알고 있을까. 이것만은 분명하다. 월드컵에 나선 축구선수들 못지않게 그들 또한 오랜 시간 사활을 걸고 프로젝트 진수를 위해 애써왔다는 것만은. 하반기부터 내년 상반기까지 개봉할 한국영화 중 최근 몇년 동안 상업영화의 트렌드라고 할 만한 소재, 배경 등을 택한 10편의 영화를 꼽았다. 청춘을 되묻고, 시대를 거스르고, 가족을 내세우고, 원작을 택하고, 속편이 뒤따르는 영화로 범주를 나누고 제작이 가시화한 대표적인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2편씩 선정했다. 그 다음 과거 비슷한 트렌드의 영화들의 장점을 어떻게 극대화하고 단점들을 어떻게 피해갈 것인지를 물었다. 올해 하반기부터 쏟아져 나올 한국영화 기상도의 일부분을 미리 들여다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담아.
두편의 청춘영화 &
2006 하반기 신작 프로젝트 [1] - 청춘유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