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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정혜>를 보다 ‘그녀의 아픔을 당신이 어떻게 알아?’라고 묻고 싶었다. 여성의 내밀한 트라우마에 다가서려는 남자가 왠지 괘씸하다고 여겼던 모양이다. 이후 이윤기는 여성드라마 작업을 계속해왔고, 이쯤에서 무례에 대한 용서를 빌어야겠다. 비록 그의 영화가 여성에 대한 성찰에까진 이르지 못했다 하더라도 대상으로 욕망되지 않는 <여자, 정혜>의 정혜와 <러브토크>의 써니와 영신 그리고 <아주 특별한 손님>의 보경은 한국영화에서 분명 낯선 여자의 이름이며, 아마도 이윤기는 여성의 포르노그래피를 시도하지 않는 한국의 유일한 상업영화 감독일 것이다. <아주…>는 ‘가짜 부녀의 하룻밤 상봉기’에서 ‘잃었던 자아를 되찾는 여자의 이야기’로 바뀌는 영화다. 타인의 양말을 신어봤다가 결국엔 자기 양말 안으로 발을 넣는 것처럼, 남의 이름을 돌려준 뒤 마침내 자기의 이름을 말하는 것처럼, 두개로 나뉜 혹은 타자가 설정한 정체성으로부터 꼭 숨겨
자기 마음속으로 다가가는 걸음을 따라, <아주 특별한 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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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으로 올바른 것은 올바른 것일까? 무쓸모 의심은 무쓸모 행동을 낳았다. 몇해 전 누군가가 “뉴욕에서는 ‘호모’라는 말이 쿨한 말이 됐대”라고 말하자, 나의 언어생활은 망가지기 시작했다. 성소수자 친구들과 수다를 떨다가 “호모”라는 말을 쓰기가 다반사. 처음엔 이랬다. 한국사회의 언어생활이 그래도 교정돼서 상식이 있는 사람과 매체라면, 더이상 ‘호모’라든가 ‘동성연애자’라는 말을 쓰지 않게 되자(아직도 쓰는 용감한 분들도 있다), 괜히 반감이 일었다. 이건 너무 쉽잖아, 말이 바뀌면 뭐하나 진심은 바뀌지 않았는데. 이렇게 ‘게이’라는 말에 묻은 겉치레 시민적 상식에 짜증이 났었다. 정치적 올바름으로 포장했지만 진심은 여전히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다는 혐의를 품었다. 그러니까 때이른 언어의 허무주의에 빠졌다고 포장하자. 정치적으로 포장을 하자면,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으면서 올바른 체하는 자신에 대한 조롱도 없지는 않았다고 해야겠다. 물론 남들과 같아졌다는 짜증이 2할, 쿨하다는
[이창] 정치적으로 올바르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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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1월28일치 일간신문에는 제7회 동계올림픽 출전단에 대한 기사가 일제히 떴다. 이탈리아 코르티나담페초에서 열린 이 대회에는 36개국에서 947명의 선수들이 참가했다. 한국은 전란 통에 전 대회에 불참한 터. 그래선지 임원 3명, 선수 4명, 모두 합해서 고작 7명인 단출한 선수단이었지만, 감격과 관심은 예상보다 높았다. 언론은 “파란 빤-쓰에 황갈색 코―트”를 휘날리며 보무 당당하게 입장하는 한국선수단이 현지 관중에게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다”고 썼다. 하지만 할리우드에 입성하게 된 25명의 고아들에게 쏟아진 스포트라이트에는 비할 바가 못 됐다. 해맑게 웃고 있는 고아들의 표정과 한 미군의 얼굴을 합성한 이 사진은 “국경을 초월한 인류애의 아름다운 결정(結晶)”이라 불린 사연과 함께 같은 날 각 신문의 톱을 모조리 차지했다.
주인공은 제주도 한국보육원에 있는 아이들과 한국전쟁 당시 이들을 수송기를 통해 피신시켰던 딘 E. 헤스 대령이었다. 헤스 대령은 한국전쟁 당시 미
[한국영화 후면비사] 기브 미 초콜렛의 씁쓸한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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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영화를 ‘즐감’하기 어려운 세상이다. 영화가 보여주는 대로 보면서 웃었다 울었다 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언젠가부터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각성이 스크린과 관객 사이에 필터처럼 끼워지더니 이제는 그 ‘정치적 올바름’의 상투성이나 위선까지 감식함으로써 불경하기 짝이 없는 영화의 ‘전복성’을 끄집어내 열광할 수 있어야 진정 수준있는 관객으로 거듭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이건 타르코프스키 영화를 보면서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것만큼이나 난이도가 높은 작업이다.
그래서 내가 <보랏: 카자흐스탄 킹카의 미국 문화 빨아들이기>를 보고 곤혹스러웠냐 하면 그런 건 아니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이거 참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내 말에 “선배가 제일 많이 웃던데요”라고 옆의 후배가 대꾸했으니 피해갈 도리가 없다. 그렇다고 이 영화의 전투적인 풍자정신과 전복적 성향에 환호했다고 둘러댈 만큼 내가 ‘위선적’인 건 아니다. ‘정말 그렇게 많이 웃었나, 내 웃음소리가
[투덜군 투덜양] 열받는 걸 열받는다 하지 못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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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랏: 카자흐스탄 킹카의 미국 문화 빨아들이기>는 미국에서 흥행에 이어 평단의 극찬을 받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정치적으로 불공정해짐으로써 오히려 정치적으로 공정해지는 종류의 영화’(<씨네21> 587호 55쪽)라는 호평을 받고 있다. 흔히 <보랏…>의 조롱이 소수자(유대인, 동성애자, 여성, 제3세계인)를 경유하여 궁극적으로는 미국 중심 사회를 향하고 있다는 이유로 호평을 내리며, 소수의 평자들이 미국 중심 사회를 비판한다는 명목으로 일어나는 소수자에 대한 조롱을 불편해하며 ‘양날의 칼’이자 ‘무차별적인 방식의 조롱’이라며 비판을 덧붙이는 추세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보랏…>의 현실정치적 맥락은 그보다 훨씬 심오(?)하다. 조롱은 (무차별적이 아니라) 대상에 따라 차별적으로 이루어지며, 온갖 비하발언 속에서 오직 유대인만이 ‘고상한 피해자’로 영광스럽게 부활한다. 결국 <보랏…>의 정치성은 놀랍게도 ‘유대주의’이다. 이는
[영화읽기] <보랏..> 1세계인의 오만과 무지에 치가 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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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은 언제나 공부를 하는 곳이었다. 시험을 앞둔 수험생과 취업 준비생들은 새벽같이 열람실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전쟁을 치러왔다. 참고서가 아닌 책을 보기 위해 도서관에 가는 것이 오히려 어색하게 느껴지는 주객전도의 상황. ‘공부방’이 아닌 도서관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규모는 작지만, 특별한 다섯곳의 도서관을 찾아갔다. 미술 작품을 감상하고, 도자기를 굽고, 공원을 산책하며, 만화책에 파묻힐 수 있는 곳. 하나의 문화 공간으로 도약 중인 신나는 도서관, 즐거운 도서관의 세계로 들어가보자.
책 테마파크
책을 들고, 미술품 한번 보고, 숲 향기 한번 마시고
이용시간: 10:00~18:00(월요일, 법정 공휴일 휴관)
찾아가는 길: 지하철 분당선 서현역에서 내려 119, 1500-2, 1005-5, 3, 22, 17, 3-1번 버스 이용
이용문의: 031-708-3588, www.snart.or.kr
겨울의 공원은 소슬하다. 잎을 떨군 나무들, 차갑게 굳어진 흙바닥은 가슴속
책 읽는 즐거움은 기본, 문화 체험까지 즐길 수 있는 도서관 다섯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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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마이클(애덤 샌들러)은 일중독자다. 그는 현재를 희생해야만 미래의 안정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다. 끊임없이 밀려드는 일은 거절하지 못하고, 그 일에 대한 스트레스는 패스트푸드로 달랜다. 성격은 점점 포악해지고 가족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횟수는 늘어간다. 그런 그에게 일상을 컨트롤할 수 있는 ‘만능 리모컨’이 생긴다. 말 그대로 클릭 한번만 하면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는 리모컨. 그러나 쾌감도 잠시일 뿐, 반환 불가능한 이 리모컨은 마이클의 인생을 겉잡을 수 없는 지경으로 이끌고 만다.
소음으로부터 차단되고 싶다면 볼륨 키를 누르고, 과거의 어떤 추억을 다시 보고 싶다면 되감기를 누르고, 현재의 시간을 건너뛰고 싶다면 빨리감기나 스킵 버튼을 누르면 된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경험하고 싶은 것만 경험하는 방식으로 인생 메뉴를 설정하기. 마이클은 이러한 방식으로 인생의 모든 지루한 과정들을 인내하고 견뎌내지 않고도 승
<클릭> 가장 할리우드적인 드라마 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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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밀림에서 종전을 맞은 겐타로(하기와라 마사토)는 군악대 선배였던 조(마쓰오카 슌스케) 등과 함께 밴드 럭키 스트라이커를 만들어 미군 클럽에서 재즈를 연주한다. 그와 동료들에게 재즈는 전쟁을 잊고 삶을 견디도록 해주는 동력이었다. 그러나 일본군에 동생을 잃은 미군 러셀은 미국 음악을 연주하는 겐타로를 경멸하며 노골적으로 시비를 걸어온다. 러셀은 겐타로가 분노하면서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뛰어난 색소폰 주자이기도 하다.
재즈영화로 착각하기 쉬운 <클럽 진주군>은 황폐하면서도 떠들썩했던 전후 도쿄의 스케치에 가까운 영화다. 발붙일 데가 없는 참전용사와 지하도를 누비는 부랑아, 미군한테 몸을 팔며 언젠가 바를 열겠다는 꿈을 꾸는 호스티스, 밤을 새우며 등사기를 미는 사회주의자 그룹, 엉성한 영어 간판. <클럽 진주군>은 그처럼 1947년 즈음 도쿄에서 보았을 법한 인물과 사건들을 느슨하게 지나쳐가곤 한다. 그 때문에 <클럽 진주군>
<클럽 진주군> 한순간 마음을 건드리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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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한 시골의 평범한 17살 여고생 노리코(후키이시 가즈에)는 서로 무관심한 가족들에게 상처받고 권위적인 아버지의 태도에 반발하여 어느 날 가출을 감행한다. 집을 나온 그녀는 ‘폐허닷컴’이라는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알게 된 자신의 우상 쿠미코(쓰구미)를 만나기 위해 도쿄로 간다. 강보에 싸인 채 우에노역 사물함 54번 안에 버려졌던 쿠미코는 자신의 출생지는 우에노역 사물함 54번이라고 주장하면서 혈연에 의한 가족을 부정한다. 노리코는 쿠미코가 하고 있는 ‘렌털가족’ 사업에 합류하게 되고 ‘미츠코’로 새로 태어난다. 한편, 노리코의 여동생과 아버지는 그녀의 흔적을 찾아나서고 엄마는 상실감과 죄책감에 시달리면서 가족은 해체되어간다.
<노리코의 식탁>은 소노 시온 감독의 2002년 화제작 <자살클럽>과 동궤에 있다. 54명의 여고생이 신주쿠역에서 집단 투신하는 장면은 이번 영화에 다시 등장하여 매우 강렬한 시각적 이미지로 고정된다. 집단 자살을 위해 모인 54명의
<노리코의 식탁> 잔혹한 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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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야문명이 번창하던 시기, 숲속에는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 ‘표범발’(루디 영블러드)의 부족이 살고 있다. 표범발과 동료들은 어느 날 이 숲에서 타 부족의 피난 행렬을 보며 불안감을 갖게 된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새벽 잘 단련된 전사들이 침입해 마을은 쑥대밭으로 변한다. 침략자들은 주민들을 닥치는 대로 죽이고 강간한 뒤 대다수를 산 채로 붙잡는다. 아내와 아들을 땅속 구멍에 숨긴 표범발 또한 이들에게 붙들려 어디론가 끌려간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거대한 건물이 지어지고 있는 마야문명권의 도시. 침략자들은 마을 주민을 하늘에 바치는 제물로 삼으려 한다. 급작스러운 개기일식과 함께 표범발은 침략자들에게서 탈출할 기회를 얻고, 이제부터 본격적인 복수극이 시작된다.
멜 깁슨의 4번째 연출작 <아포칼립토>는 소문만큼이나 잔혹하고 폭력적이다. “네 살 껍질을 벗긴 뒤 그것을 입은 모습을 네게 보여줄 거다”라는 분노에 찬 대사는 (다행히도) 장면으로 만들어지지는 않았지만
<아포칼립토> 소문만큼이나 잔혹하고 폭력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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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나가는 뉴스 앵커 한경배(설경구)는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자신만만하다. 그의 아내 오지선(김남주)은 아들의 모든 것을 관리하며 남편을 맞이하는 완벽한 내조자다. 그러던 어느 날, 9살 난 아들이 유괴되면서 이들의 모든 것이 달라진다. 1991년, 온 국민을 경악하게 만들었던 ‘압구정동 이형호 유괴살해사건’을 모티브로 한 <그놈 목소리>는 소름 끼치게 차분한 말씨를 구사하는 범인의 끊임없는 협박전화에 끌려다니는 이들의 44일을 우직하게 따라간다.
모두가 알고 있는, 그러나 미제로 남은 유괴사건을 극화하는 것은 사방에 덫을 둔 위태로운 발걸음이다. 한편에는 상업화, 왜곡, 과도한 개입 혹은 해석의 우려가 있다면, 다른 한편으로는 극적 긴장감 결여 등 비대중성과 싸워야 한다. 실제 사건의 골격을 그대로 가져온 채 인물의 디테일과 캐릭터를 영화적으로 변형한 감독이 택한 전략은, 공개적인 ‘현상수배극’ 표방. 영화의 실제적 주인공이자 영화를 만든 목적에 해당하는 범인의 목소리
<그놈 목소리> 절박함만으로는 역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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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마다 도시마다 적절하게 어울리는 단어들이 있다. 때로는 그 단어들이 관광객을 유치하거나 이미지 쇄신을 위해 국가적 차원에서 만들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아주 오랜 시간을 두고 서서히 만들어져 견고해지는 경우도 있다. 2004년 한국의 국가브랜드로 만들어진 ‘다이내믹 코리아’는 아마도 전자의 대표적인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역동성과 한국은, 특히 매일 매일 얼굴을 바꾸는 현재의 서울에는 잘 맞아떨어지지만 정책적 차원에서 만들어져 대외적으로 홍보하고 있는 이미지다. 반면에 사랑과 낭만의 도시로서의 파리는 오랜 역사에 걸친 전방위적 문화 활동과 산업적 지원을 통해 전세계인에게 각인된 경우라고 하겠다. 스무명의 내로라하는 감독들이 참여해 만든 옴니버스 프로젝트 <사랑해, 파리>는 파리가 환기하는 사랑이라는 단어의 이미지에 실체를 입힌 작업이자 파리라는 도시를 향한 절절한 구애가이기도 하다.
열여덟개로 이루어진 에피소드들은 파리의 행정구역마다 사랑 이야기를 심어놓는다. 영
<사랑해, 파리> 좋은 것들도 지나치면 역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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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스쿠프>는 <매치 포인트>(2005)에 이어 우디 앨런 감독이 런던에서 연출한 두 번째 영화다(앨런은 런던에서 세편의 영화를 만들기로 했다). <매치 포인트>와 <스쿠프>는 동시상영으로 관람하면 재미있을 법한 짝이다. 배우 스칼렛 요한슨은 두 영화에 모두 주요 인물로 등장하는데 우디 앨런은 그녀의 매력을 두 영화에서 각각 다른 방식으로 찬양한다. <매치 포인트>와 <스쿠프>의 모티브가 되는 범죄는 유사하다. 말하자면 “출세에 거치적거리는 정부(情婦) 제거하기”인데 <범죄와 비행>에서도 같은 악행이 등장한 바 있으니 우디 앨런은 상습범이다. <스쿠프>와 <매치 포인트>에서는 영화 <젊은이의 양지>로 각색된 T. 드라이저의 소설 <아메리카의 비극>을 대놓고 인용하는 대목도 눈에 띈다. 그러나 두 영화의 모양새는 대조적이다. 살인한 자가 단죄받지
<스쿠프> 사건의 전말이 중요하지 않은 희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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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미녀는 괴로워>가 한국영화 역대 흥행순위 10위에 올랐단다. 1월24일까지 전국 585만명을 넘었고 600만명 돌파가 기정사실로 보인다는 것이다. 종전까지 역대 흥행 10위 자리를 지켰던 <공동경비구역 JSA>를 10위권 밖으로 밀어내는 결과이니, 새삼 놀랍다. <공동경비구역 JSA>가 <쉬리>의 기록을 넘었느니 못 넘었으니 다투며 한국영화 역대 흥행 1위 자리에 이름을 올렸던 게 엊그제 같은데 말이다. 코미디영화로는 <투사부일체>가 <미녀는 괴로워>보다 많은 관객을 동원했지만 조만간 추월당할 가능성이 크다. 상대적으로 적은 제작비를 들이는 코미디 장르라 편당 수익률로 따지면 상위 5위 안에 들 만한 결과다. <미녀는 괴로워>가 이런 인기를 끈 이유는 무엇일까? 김아중의 신선한 매력? 귀에 쏙 들어오는 노래? 성형이라는 소재의 힘? 대중영화의 기본기를 지키는 연출력? 눈길을 사로잡는 마케팅과 적절한
[편집장이 독자에게] 미녀는 괴로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