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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호 감독이 네 번째 사랑영화 <행복>을 들고 다시 가을로 찾아왔다. <행복>은 그의 전작들처럼, 살포시 만난 남자와 여자가 조곤조곤 사랑을 나누다가 이내 뒤돌아서게 되는 과정을 섬세하고 치밀한 사실주의 화법으로 그려낸다. 하지만, <행복>은 허진호 감독의 말마따나 “좀더 다가가려 했고, 친절해지려 했다”는 점에서 앞의 세편과는 조금 다른 느낌을 전한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무렵, 가을날의 싸한 새벽 공기를 녹이는 손난로만큼의 열기가 가슴속으로 치미는 것은 아마도 그 때문일 것이다. 평소 허진호 감독의 영화를 즐겨왔던 영화계 바깥의 세명의 필자가 <행복>에 대한 감상을 전해왔다. 그리고 <행복>에서 미묘하지만 의미있는 변화를 감지한 박진표 감독이 허진호 감독을 만나 영화 안과 바깥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 스포일러 경고: <행복>에 관한 세 사람의 에세이에는 영화의 결말을 암시하는 표현이 있습니다.
애타게, <행복>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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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여년 동안 나온 수백편 중에서 필청 음반이나 베스트 음반, 혹은 대표 음반을 한정된 지면에 꼽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또 있을까. 게다가 너무도 많은 수작이 있는 경우에는 더욱더. 용서를 빈다.
<황야의 무법자> Per un Pugno di Dollari: A Fistful of Dollars (1964)
매끈하고 풍성한 관현악 오케스트레이션 대신, 독특한 악기를 선택하고 일상의 소리를 절묘하게 결합하여 ‘스파게티 웨스턴’으로 화학작용을 일으킨 첫 음반. 이때부터 지금까지 엔니오 모리코네는 사람의 (목)소리를 길어올리는 재능과 기억을 사로잡는 멜로디 감각을 지속시켜왔다. 첫곡 <Titoli>는 그 유명한 휘파람 소리로 시작하여 알레산드로니의 펜더 스트라토캐스터 전기기타와 휘파람 협연, “We can fight”라고 내뱉는 원시적이고 조야한 남성 보컬, 그리고 채찍소리, 종소리, 말 달리는 듯한 사운드, 고음역의 피콜로 음향 등이 어우러진다. <Them
[엔니오 모리코네] 풍부한 오케스트레이션부터 낭만적인 휘파람 소리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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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취소된 엔니오 모리코네의 한국 공연이 재성사되었다. 그의 대표곡들이 대형 오케스트라 및 합창단과 함게 공연되고, 그의 오랜 음악 동료 피아니스트 길다 부타와 소프라노 수잔나 리가치가 함께할 예정이다. 그를 서면상으로 만나 여러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많은 감독과 작업을 했지만, 영화음악 작곡가로 활동한 초창기부터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과 짝을 이루어 활동했다. (이전부터 동창생이던) 레오네 감독과 어떤 영향을 주고받았는가.
=레오네 감독이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던 자질은 감독으로서 어떤 것이 자신의 영화를 위해 맞는지를 잘 이해하는 것이었다. 내 음악이 그의 영화에 잘 어우러졌기 때문에 그와 단짝을 이루어 활동했던 것이다.
-‘무법자 3부작’ 이후에는, 촬영이 어느 정도 이루어진 뒤 나중에 사운드트랙을 녹음하는 대신, 미리 많은 음악을 만들어 촬영 중에도 사용했다고 들었다. 누구의 의도인가? 원래부터 기존의 할리우드식 영화음악 작업에 반감을 가지고 있었는지.
=일단 영화
[엔니오 모리코네] “영화의 감동을 배가시키는 음악이 좋은 영화음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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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음악가 엔니오 모리코네가 10월2∼3일 양일간 한국에서 콘서트를 갖는다. 당신이 엔니오 모리코네가 음악 작업한 영화들을 단 한편도 본 적 없다 해도 그의 음악을 들어본 적 없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시네마 천국> <러브 어페어> <미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의 메인 테마들 그리고 그 유명한 <석양의 무법자>의 휘파람 소리는 모리코네 이후 등장한 전세계의 수많은 팝·클래식 뮤지션들을 통해서뿐만 아니라 온갖 CF와 영화와 드라마 속에서 무수하게 반복돼왔다. 아카데미는 모리코네에게 음악상을 수여한 적이 없을 뿐 아니라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시네마 천국> <러브 어페어>의 음악을 후보에도 올리지 않는 결코 이해받을 수 없는 과오를 여러 번 저질렀지만 그럼에도 모리코네는 대중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아온 음악가이다. 영화정보포털 IMDb 사이트에 등록된 그의 필모그
[엔니오 모리코네] 영화음악의 지존, 한국에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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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20일에 있었던 <바르게 살자> 기자간담회 현장 영상입니다.
장진 감독, "기획기간이 길었던 만큼 남다른 애정이 있는 영화다!"
라희찬 감독, "코미디 이면에 깔린 진정성을 잃지 않는게 중요하다!"
손병호, "정도만!! 자넨 그냥 은행을 털어, 우리가 잡을께~!"
정재영, "후회하실지도 모르는데요~"
그들의 진솔하고 유쾌한 인터뷰가 담겨 있습니다.
동영상을 보시려면 ‘동영상보기’ 버튼을 눌러주세요
융통성 0% 순경의 은행강도극 <바르게살자> 기자간담회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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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본 얼티메이텀> 기억상실증에 걸린 기남씨
[정훈이 만화] <본 얼티메이텀> 기억상실증에 걸린 기남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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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duation> 카니예 웨스트/ 유니버설뮤직 발매
탁월한 힙합 아티스트란, 과장되게 말하자면 샘플의 고고학(정보와 발굴)과 샘플의 계보학(배치와 맥락)에 통달한 이들이다. 남들이 잘 몰랐던 곡에서 누구의 귀에나 쏙 들어오는 샘플 뭉치를 뽑아내거나 누구나 들어본 곡에서 처음 듣는 것 같은 신선함을 추출하기도 한다. 힙합 아티스트는 그 샘플들을 촘촘히, 혹은 헐겁게, 혹은 날것으로, 혹은 두텁게, 혹은 가볍게 배치하면서 듣는 이들과 일종의 음악적 게임을 벌인다.
카니예 웨스트는 그런 의미에서 훌륭한 고고학자이자 감각적인 계보학자다. 샘플을 고르고 재조직하고 배치하는 데 있어 그만큼 발군의 능력을 보이는 힙합 뮤지션은 흔하지 않다. 그가 발표한 두장의 음반(<The College Dropout>(2004), <Late Registration>(2005))에서 웨스트는 클래식 솔의 풍성한 아우라와 현대적인 비트 감각을 접목한, 햇볕에 잘 말린
힙합 우등생의 무난한 졸업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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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소소설> <괴소소설> <독소소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바움 펴냄
히가시노 게이고는 추리소설 작가로 한국에도 잘 알려져 있다. 나오키상을 받은 <용의자 X의 헌신>, 영화화된 <비밀> <호숫가 살인사건> <게임의 이름은 유괴>, 한국에서 영화화가 진행 중인 <백야행> 등 어느 것 하나를 대표작으로 꼽기 힘들 정도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이 지닌 장점이라면 다른 무엇보다 성실함과 진지함.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 나온 블랙유머 단편집 3권을 처음 봤을 때, ‘설마 히가시노 게이고가 웃길까?’ 하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는 변함없이 진지하다, 그래서 웃긴다.
<흑소소설>은 ‘쓴웃음 소설’을 모은 단편집이다. 유명한 문학상을 둘러싼 작가와 편집자의 동상이몽은 상의 종류가 많아 수많은 신인 작가가 태어나고 또 잊혀지는 일본의 문단 현실을 풍자한다. 이 이야
소시민의 뇌를 강타하는 괴이한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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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W의 독주가 지속되던 영상통화 CF에 드디어 T가 맞불을 놨다. ‘SHOW를 하라’라며 말 그대로 쇼를 하는 광고들이 대규모 물량공세와 맞물려서 폭발적 반응을 얻어낸 지난 몇달간, CF계는 SHOW의 시대였다. 이를 가만두고 볼 수 없었던 T는 ‘영상통화 완전정복’이라는 캠페인 광고를 내보내기 시작했고, SHOW는 또 이에 맞서 ‘대한민국 보고서’라는 캠페인 광고를 내보내고 있다.
언제나 라이벌전은 재미있지만 더욱이 재미있는 것은 이 두 경쟁사의 CF가 모두 영상통화와 관련된 실사용자들의 여러 가지 행태를 보여주는 유사한 형식을 취했다는 것이다. T의 경우는 ‘완전정복’이라는 이름하에 영상통화 대처 노하우를, SHOW는 영상통화를 적절히 활용한 코믹 사례들을 ‘보고서’라는 이름으로 보여준다. 두 캠페인 모두 영상통화와 관련된 ‘생활의 지혜’ 시리즈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은 급속히 늘어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서비스의 실사용자가 미비한 상황에서 더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도마 위의 CF] 공감대에서 갈리는 T와 Sh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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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리 타임즈>는 세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시대적 배경도 다르고 내용도 묶어지지 않지만, 동일한 배우(서기와 장첸)가 시대를 넘어 환생한 듯 조금씩 이름과 관계를 바꾸어 등장한다. 첫 번째 시간은 1966년, 가오슝의 어느 당구장, 두 연인의 ‘연애몽’이고 두 번째 시간은 1911년, 격변기 대만의 신지식인과 기녀의 ‘자유몽’이며 마지막 시간은 2005년 타이베이에서 부유하는 청춘들의 ‘청춘몽’이다. 세개의 이야기에서는 <동년왕사> <해상화> <밀레니엄 맘보>가 겹쳐지는데, 무엇보다도 놀라운 것은 이 한편의 영화에서 허우샤오시엔은 자신의 영화적 궤적을 들여다보고 자유롭게 오가면서 새로운 방식으로 자신의 시간을 창조, 사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영화의 원제는 ‘최호적시광’(最好的時光), 즉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나의 최호적시광은 ‘연애몽’이다.
당구장에서 일하는 슈메이(서기)는 우연히 알게 된 첸(장첸)이 입대한 뒤, 그와
허우샤오시엔의 ‘최호적시광’, <쓰리 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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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상성의 시한폭탄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폭풍 전야의 조마조마함을 털어낼 수 없지만 MBC <아현동 마님>은 현재까지 비교적 많이 튀지 않는 멜로의 도로를 주행 중이다. 띠동갑의 연상연하 커플이 사랑에 빠졌고, 집안의 반대로 눈물로 베갯머리를 적신다는 전개야 남녀의 이름 석자가 한번만 들어도 머리에 콕 박히는 탁월한 작명의 ‘백시향’과 ‘부길라’라는 점을 빼고는 언뜻 특별할 게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 멜로가 <아현동 마님>을 논할 때 누락할 수 없는 존재인 임성한 작가의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점은 좀 주목할 필요가 있다. 12살 연하의 남성과 결혼한 작가의 개인사와 맞물려 진작부터 자전적 스토리가 아니냐는 조명도 받은 이 드라마의 러브스토리는 ‘불가해’해서 늘 안줏거리 같은 담화를 양산해온 임성한 작가에게 일보 전진하는, 그나마 친절한 열쇠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임성한 월드’의 인물들은 김수현 작가의 분신들과 한번 대결을 주선하고 싶을 만큼 누
임성한 작가의 흥미로운 퇴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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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자의 권리만 사랑받는 세상이다. <199-399: 더불어사는집 이야기>(이현정)는 없는 자의 권리를 내세운다. 빈민의 생산·협동·분배 공동체를 표방하며 ‘더불어사는집’을 결성한 일군의 노숙자들과 빈민운동가가 청계천에 있는 빈 아파트에 모여살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5년 9월, 그들은 정릉에 있는 빈집을 점거해 공동체와 삶의 꿈을 키웠지만 공동체 내외의 갈등으로 씁쓸한 결말을 맞는다. <199-399: 더불어사는집 이야기>는 호락호락한 접근을 거부하는 작품이다. 카메라는 대상을 결연하게 바라보기를 계속하고, 전후 사정을 모르는 사람을 위한 친절한 안내도 없으며, 무엇보다 우리가 보기 싫어하고 말하기 싫어하는 부분을 들춰낸다. TV다큐멘터리처럼 가난을 이야기하기는 쉽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얻어지는 값싼 동정을 이 다큐멘터리는 원하지 않는다. 어떤 체제하에서도 빈민이 존재한다면, 시시콜콜 체제 타령하기보다 빈민의 존재와 권리를 인정하는 게 우선이라고, 영
독립영화의 진심을 듣다, <서울독립영화제 2006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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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안다. 물을 주지 않아도 스스로 알아서 자라난다고 믿는 내성의 아이덴티티가 면역력이 없음은. 그 면역력 없음이 때론 누구도 감당하지 못할 부정적인 공격성으로 표출된다는 건 역사가 명증하고 있다. 바깥에서 묻는 건 그래서 중요하다. 정체성에 대한 물음이 그렇다. 민족과 같은 개념이 그렇다. 이 경우, 안에 있는 누군가가 아니라 바깥으로 내던져진 누군가에게서부터 답이 온다. 온갖 외파에 시달리면서도 끝끝내 남는 무엇, 바깥의 ‘그들’에게 정체성은 주어진 것이 아니라 찾아가는 것이다. 그래야만 한다. 주어지면 위험하지만, 찾아가는 건 의미있다. ‘조선, 고려, 꼬레아, 코리아 소통하다’라는 슬로건을 내건 세 번째 재외동포영화제는 익숙한 대상을 바깥에서 묻고, 사유하는 자리다. 때만 되면 빨간 옷 입고 ‘오, 필승 코리아!’라고 외치는 이들에게 ‘그들’은 이렇게 묻는다. “당신은 정말 한국 사람입니까?”
10월3일부터 7일까지 닷새 동안 한국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 KOFA 등에서
당신은 정말 한국 사람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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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에리히 폰 스트로하임과 ‘푸 만추’ 시리즈의 작가 색스 로머가 공존하는 에릭 로메르라는 이름처럼 로메르의 영화에선 자연과 인간, 이성과 감성, 고결함과 속됨, 철학과 종교, 남성과 여성 등 상이한 존재가 조화를 이룬다. 그것을 꿰뚫어본 프랑수아 트뤼포는 로메르를 일컬어 ‘가장 지적인 동시에 가장 진실한 최고의 프랑스 영화감독’이라고 했다. 로메르가 필름으로 쓰는 에세이는 파스칼의 <팡세>를 닮았다. 파스칼이 끝맺지 못한 원고들이 <팡세>로 남았듯이, 완결 대신 순환을 선택한 영화들이 로메르의 세계를 구성한다. 감정이 싹트다 오해와 의심과 머뭇거림이 지나간 어느 지점에서 로메르의 영화는 멈춘다. 하지만 그의 영화가 매번 제자리를 맴도는 건 아니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존재의 진실을 파악하는 순간, 로메르의 영화는 운명같이 정점에 오르고, 우리는 성숙의 경지를 바라본다. 숙성과 수확의 계절 가을에는 로메르의 영화가 제격인 것이다. 10월5일부터 24일까
숙성과 수확의 계절 가을엔 로메르의 영화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