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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강우석 프로덕션으로 출발해 95년 지금의 이름을 갖게 된 시네마서비스가 본격적으로 배급 사업을 시작한 것은 98년이다. 소규모로 배급에 뛰어든 것은 그 전 해였지만, 1년치 라인업을 꾸리고 계획적인 배급을 하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딱 10년 전이라는 얘기다. 한때 막강한 직배사들의 아성에 도전했고, 삼성 같은 대기업과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했으며, 절정기에는 독점 논란까지 제기될 정도로 한국영화산업에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했던 시네마서비스의 배급 사업이 10년 만에 막을 내릴 분위기다. 강우석 감독의 한 측근 인사에 따르면, 최근 강 감독은 연출과 제작, 그리고 투자에 집중하기 위해 배급 사업 포기를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최근 시네마서비스의 배급업은 사실상 무의미해졌고 라인업을 구성하기 위해 무리한 소모전을 벌이기 힘든 상황이라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시네마서비스의 최근 배급작은 <섹스 앤 더 시티> <서울이 보이냐> <
[문석의 취재파일] 시네마서비스, 10년 만에 배급 사업 접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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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광고 연출가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단다. “광고로 모은 돈, 꼭 내 장편영화 만드는 데 쓴다”고. 근데 진짜 실천하는 사람은 거의 없단다. 편안한 삶에 빠진 그들은 결국 계속 광고를 찍거나, 뮤직비디오, 혹은 얼토당토않은 액션영화나 찍게 마련이다. 그런 면에서 타셈 싱은 특이한 케이스다. 근 20년 동안 광고와 뮤직비디오 연출가로 모은 전 재산을 털어 4년간 28국에서 촬영한 영화 <더 폴>(The Fall)을 내놨으니 말이다.
<더 폴>의 배경은 1차 세계대전의 초반기인 1915년 로스엔젤레스의 한 병원이다. 하반신이 마비된 무성영화 스턴트맨 로이는 영어가 서툰 외국인 소녀 알렉산드리아와 우연히 친해진다. 로이는 소녀에게 동화를 이야기해주기 시작하고, 이때부터 <더 폴>은 전쟁 부상자들을 기다리는 듯한 텅 비고 나른해 보이던 병동에서 화려한 동화의 세계로 들어간다. 이야기는 로이가 들려주지만 관객이 지켜보는 영상은 4살짜리 소녀의 상상
[뉴욕] 무려 4년간 28개국에서 촬영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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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호환마마보다 무서운 게 기름값이다. 유가 폭등은 지난 겨울의 미국작가조합(WGA) 파업과 최근 우려되는 배우조합(SAG)의 파업에 이어 할리우드에 세 번째 대재앙을 예고하고 있다. <버라이어티>는 “지난 6개월 동안 급등한 유가는 아직까지 미디어와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뒤흔들 정도는 아니지만, 곧 피를 부를 것(데어 윌 비 블러드)”이라며 앞으로의 전망을 예측하는 기사를 내놓았다.
첫 번째 변화는 ‘출장’에서 시작된다. 할리우드, 즉 LA와 가깝다는 지리적 특성은 종종 영화 관계자들이 출장을 가거나 영화 마케팅을 하기에 매력적인 요소로 작용했다. 하지만 유가가 오르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앞으로 아카데미 시즌과 가을 축제 기간이 되면 출장비 책정 논란이 거세질 거다. 예산을 편성할 때 기름값을 걱정하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 관계자의 말이다. 트레일러나 리무진, 제작 도구를 운영하는 회사들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원자재 가격은 날이 갈
고유가! 피를 부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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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리번이 완성되기까지
<몬스터 주식회사>의 주인공 설리번이 최종 완성되기까지 아티스트들이 시도했던 다양한 디자인안들. 하나의 캐릭터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컨셉 드로잉 -> 마켓 제작 -> 3D CG애니메이션화 작업’이 무한 반복된다. 다시 말해 최종 확정된 디자인이 아니더라도 선택 가능성이 있다면 실물화하는 작업이 뒷받침되는 것. 1~3번의 마켓들이 바로 캐릭터 디자인 과정에서 무수히 만들고 버려진 여러 버전의 설리번 중 일부다. 4번 이미지는 최종 확정된 캐릭터의 외양 위에 여러 종류의 털을 입혀본 아트워크. 5번은 <몬스터 주식회사>의 감독 피트 닥터가 아티스트들에게 던져준 최초의 캐릭터 컨셉 아트다. 킴 도노반의 설명에 따르면 이 단순한 펜 그림을 기초로 무수한 설리번이 시도되었는데 모두가 “바로 이것이야!”라고 합의한 디자인이 결국은 이 컨셉 아트와 가장 닮은 것이었다고.
<인크레더블> 콜라주 아트
컨셉 아트워크는 모든 애니메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리는 픽사 애니메이션 20주년 기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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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 주식회사>의 괴물 설리반을 탄생시킨 최초의 스케치가 보고 싶은가? 그 위에, 야근으로 인한 아티스트의 커피 얼룩까지 덩그러니 남아 있다면 어떨까. <픽사 애니메이션 20주년 기념전>(PIXAR展 IN SEOUL: 20 Years of Animation)은 <토이 스토리>(1995)에서 <라따뚜이>(2007)까지, 미국 픽사 스튜디오 애니메이션들의 바로 그런 흥미로운 탄생 과정을 공개하는 전시회다. 오는 7월2일부터 9월7일까지 약 두달간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리게 될 이 전시회는 애니메이션 캐릭터 드로잉을 비롯한 각종 컨셉·스크립트 아트워크, 마켓(marquette: 3D애니메이션 데이터 작업에 필요한 캐릭터 조형물), 미공개 단편 등 총 650여점의 작품들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2005년 겨울 뉴욕을 시작으로 런던, 도쿄, 에든버러, 멜버른, 헬싱키를 거쳐 도착한 전세계 7번째 행사로, 전시 규모가 가장 크
공개합니다! 픽사 애니메이션 탄생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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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적벽대전>에서는 손권이 왜 전쟁을 피하려는지 자세한 내막이 드러나지 않는다. 손권이 어떤 이유로 그런 행동을 했다고 이해했나.
=내가 이해한 손권을 만약 현대에 적용한다면 그는 매우 지혜로운 지도자 또는 국가의 관리자가 되었을 것 같다. 그는 자기가 데리고 있는 사람 중 인재를 알아보고 그들을 이용하는 능력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그가 전쟁을 주저한 이유는 당시 오나라가 비록 작은 땅덩어리이긴 하나 충분히 부유했고 백성들도 평안히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굳이 그걸 깰 이유가 없었다.
-그렇다면 왜 그는 전쟁을 선택한 건가.
=(옆에 앉은 금성무, “제갈량이 속여서”. 일동 웃음) 제갈량은 손권과 조조를 모두 잘 알고 있는 인물이다. 그들이 어떻게 행동할지 미리 알고서 그에 맞춰 계략을 짠 것이다. 그러니까 손권이 제갈량에게 속은 거다. (웃음)
-손권을 표현하기 위해 중점을 둔 부분이 있다면.
=이전에 고전극을 찍어본 경험이 없어서 그 점에서 우선 흥미를 많
[장첸] “손권은 두려움과 용기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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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에 여러 영웅들이 등장하는데 본인은 제갈공명 말고 다른 역은 생각해본 적도 없다고 말했다. 이유가 뭔지.
=아마도 내 자신이 그만큼 지혜롭고 똑똑하지 못해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제갈공명은 지혜롭고 다재다능한 인물이다. 영웅을 다루는 이야기는 대부분 전투를 잘하는 용사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제갈공명은 지혜로 전쟁을 하는 사람이다. 나는 한번도 지혜로운 인물을 연기한 적이 없다. <적벽>의 출연 연락을 받았을 때 나는 <명장>을 찍고 있었다. 몸을 써서 전쟁을 하느라 힘들어 하고 있었는데(웃음), 머리를 써서 전쟁을 한다기에 흥미로웠다.
-영화에는 지략가가 두명이다. 제갈량과 주유. 둘은 똑같이 지혜롭다. 차이라면 주유는 현장을 뛰고 제갈량은 뛰지 않는다는 것뿐인데 두 인물을 분별하는 점이 무엇이라 생각하나.
=그 둘을 모두 지혜로운 사람으로 표현하는 것이 감독의 의도였다. 일반적으로는 둘이 서로를 견제했다고 알려졌는데, 감독은 그 둘
[금성무] “제갈공명 말고 다른 역은 생각해본 적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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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벽대전>의 주유는 매우 전형적인 스타일의 영웅이다. 마음에 드는 다른 캐릭터로 조조를 꼽았다. 이유가 뭔가.
=그가 갖고 있는 흡인력이 대단하다. 그는 도덕률과 같은 어떤 규칙에 구속되는 사람이 아니다. 자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아주 자유로운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 인물을 연기하면 얼마나 짜릿할까, 얼마나 흥분될까 싶었다. 내가 보기에 주유는 매우 완벽한 사람, 정면의 얼굴만을 보여주는 사람이다. 워낙 해보고 싶은 인물이었는데 사실 이번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베이징어라는 언어의 장벽 때문에 준비기간이 부족해서 어려웠을 것이다. 어쨌든 내가 조조를 했으면 관객에게도 신선함과 궁금증을 주지 않았을까 싶다. 의외의 조합이라고 여겼을 것 같다.
-오우삼이 해석한 <삼국지>는 어떤 것인가.
=마찬가지다. 감독이 바라보는 <적벽대전>은 <삼국지>에 대한 매우 정면적인 시각의 영화다. 단결, 용기,
[양조위] “주유는 정면의 얼굴만을 보여주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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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빵! 정의는 살아 있다,
라는 문자메시지를 친구에게 날렸다. 한달 전이다. 정말로 오대빵이었다. 재판을 게임으로 친다면, 5 대 0의 스코어를 기록하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2년 전, 나는 어느 언론사 사장 한분이 보기에 대단히 기분 나쁜 칼럼을 썼다. ‘몰상식의 표본’이라는 단어까지 사용하며 어떤 행태를 비판했다. 그는 격분했고, 민·형사 소송을 걸었다. 아무리 개인의 인격을 침해하는 글이더라도 ‘공익에 부합하면’ 쉽게 죄가 되지 않는 게 명예훼손 소송의 일반적인 판례다. 다행스럽게도 대법원까지 간 세 차례의 형사재판에서 모두 무죄를 받았다. 그리고 1억5천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당한 민사소송 1심과 항소심에서도 승소했다. 원고쪽에서 대법원 상고를 포기했으니 경기종료 휘슬까지 분 셈이다.
자랑을 하려는 게 아니다. 사실은 전혀 딴 이야기를 꺼내려 한다. 재판이 끝난 뒤 우연히 어떤 책 한권을 읽다 두눈이 튀어나올 뻔했다.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노골적이고 모욕적인 표현들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도올과 오대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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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혈속집>(1992) 이후 거의 15년 만에 홍콩영화계로 복귀한 것은 물론, <적벽대전: 거대한 전쟁의 시작>(이하 <적벽대전>)은 당신의 첫 번째 베이징어 영화다.
=홍콩 시절 나의 모든 영화는 광둥어 영화였다. 70년대 이전에는 대륙 영화인들이 홍콩에서 활발히 활동하면서 베이징 표준어 영화가 대부분이었지만, 내가 활동을 시작했던 70년대 이후부터는 다시 광둥어가 주도권을 쥐었다. 그래서 <적벽대전>도 광둥어로 만들면 내가 직접 시나리오를 쓸 생각도 있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말하자면 할리우드에서 영어와 부딪혔던 것과 마찬가지로 세월이 지나 고향에 돌아와서도 다시 언어문제에 부딪힌 것이다. (웃음) 그래도 별 문제는 없었다. 아시아영화는 아시아에서 만들어야 한다는 원칙이 더 중요하다.
-앞서 만들어진 <삼국지: 용의 부활>에서 당신과 당신의 스승 장철 감독이 아꼈던 적룡이 관우로 출연했다. 섭섭하지 않았나.
=사실 &l
[오우삼] “주유와 제갈량은 끝까지 마음이 통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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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건대, 나는 얼마 전까지 불면증 환자였다. 불면증은 무서운 병이다. 이 병에 걸리면 하루 스물네 시간 중 고작 한두 시간 정도만 온전히 잠들 수 있다. 그런 생활이 몇 개월쯤 지속되면 잠을 자고 있어도 자는 것 같지 않고, 깨어 있을 때에도 약간은 몽롱한 정신으로 살게 된다. 아주 늦은 새벽에도 내가 깨어 있다는 걸 아는 몇몇 친구들은 나를 완벽한 야행성 인간으로 여겼다. 하지만 숙면을 위해 온갖 노력을 반복하다 해가 떠오를 때쯤 잠이 드는 기분이 썩 상쾌하지는 않았음을 지금은 말할 수 있다. 2007년 여름부터 2008년 5월까지의 일이다.
불면증에 대한 나의 고백을 절대 믿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이 있다. 지금은 나의 ‘선배’가 되신 <씨네21>의 기자들. 사연은 이렇다. 이곳에 입사하기 전 나는 1년 동안 <씨네21>의 객원기자로 일했다. 객원기자의 주요 업무는 일정 기간 동안 열리는 국내의 크고 작은 영화제에 참석해 <씨네21> 기자들과
[오픈칼럼] 불면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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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벽대전>은 서기 208년, 위·촉·오 3국이 대립하던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위의 조조(장풍의)는 막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대륙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유비 진영은 조자룡(후준)이 유비의 하나뿐인 아들을 구해오는 대활약 속에서도 퇴각에 퇴각을 거듭한다. 이에 유비의 책사 제갈량(금성무)은 강남 지역의 최고 실력자 손권(장첸)과의 동맹을 제안한다. 제갈량은 손권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손권 휘하 제일명장 주유(양조위)의 마음을 먼저 얻는 데 주력한다. 한편, 강남을 공격하는 조조의 마음속에는 주유의 아내인 소교(린즈링)를 차지하겠다는 욕망도 있다. 그렇게 조조 군대와 유비, 손권의 연합군대는 적벽에서 대치하게 된다.
조자룡 대신 관우가 마무리하는 장판교 전투
오우삼 감독은 <삼국지: 용의 부활>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같은 원작을 바탕으로 ‘선수를 친’ 작품이기도 하지만 유덕화를 조자룡으로 캐스팅했다는 것은 치명적이었다. 게다가 <
오우삼의 스펙터클 <적벽대전: 거대한 전쟁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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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들을 기를 수 있겠소? 나 없이도 말이요.” 거처도 알리지 않고 몇달 동안 떠돌다 슬그머니 돌아온 남편의 뜬금없는 물음에 부인 이씨는 아무 말도 못했다. 괜한 소리 말고 어서 노곤한 몸 뉘이라고 안방으로 밀었을 따름이다. 다음날 아침, 남편은 무슨 일 때문인지 서둘러 광희동 집을 떠났다. 어디로 가시오, 언제 오시오, 물어볼 참도 없었다. “벗은 옷 빨 필요 없으니 그냥 두구려.” 이틀이 채 되지 않아 이씨는 남편 소식을 들었다. 죽었다고 했다. 남편의 시신이 발견된 곳은 집으로부터 얼마 떨어지지 않은 종로구 삼청공원 안이었다. 남편은 집에서 들고 간 빨랫줄로 소나무에 목을 맸다. 호주머니에는 시계를 판 돈 3600원이 있었다. 생활비 한번 제대로 주지 못했는데 장례비 걱정까지 맡길 순 없다는 남편의 마음이 느껴져 이씨는 진저리, 몸서리쳤다.
노필 감독이 세상을 끊은 건 1966년 6월29일 새벽이었다. 노 감독의 부음에 충무로도 발칵 뒤집혔다. <안창남 비행사>
[한국영화 후면비사] 사람 잡는 영화규제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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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의 클라이맥스를 영화화한 <적벽대전: 거대한 전쟁의 시작>(이하 <적벽대전>)이 드디어 그 뚜껑을 열었다. 아시아 영화사상 최고 제작비로 얘기되는 800억원(8천만달러)의 이 영화는 한국, 일본, 중국, 대만의 자본이 결합된 범아시아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장대한 스케일의 적벽을 재현하기 위해 서안 지역에 실제 40피트(?미터) 가까운 어마어마한 높이의 언덕을 재건했고, 조조의 100만 대군을 보여주기 위해 2천척의 배를 띄우는가 하면 36m 높이의 실제 배를 직접 제작해 촬영했다. 그리고 오우삼식 무협영화를 보좌하기 위해 뛰어든 무술감독은 바로 할리우드에서 직접 <D. O. A>를 연출하기도 했던 원규다. 그야말로 올해 ‘최대’의 아시아영화라 해도 틀리지 않다. 게다가 이례적으로 7월10일 개봉하는 전편에 이어 올 겨울 2편을 개봉할 예정이다. 할리우드에서나 볼 수 없었던 이례적인 ‘사전 동시 제작 시리즈물’인 셈이다. <적벽
아시아 블록버스터: 거대한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