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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랑이 자취를 감춘 결혼식장. 신부와 하객은 그의 행방을 찾던 도중 빈방에서 전화를 하고 있는 신부의 친구와 마주치고, 곧 그녀의 치맛자락 아래 들어가 있는 신랑을 발견한다. “어머, 신랑 친구인 줄 알았지 뭐야.” 뻔뻔스레 응답하는 여자는 광고회사 중역 카티야(제니퍼 러브 휴이트). 앙심을 품은 신부는 파티라면 사족을 못 쓰는 카티야를 골탕먹이기 위해 유명 인사들이 운집하는 호화로운 파티를 개최하고 그녀의 이름만 쏙 빼놓는다. 파티의 입장권인 황금열쇠를 얻기 위해 온갖 파렴치한 수단을 동원하던 카티야는 회사 엘리베이터에서 꿈꾸던 이상형(콜린 퍼거슨)을 만나고, 이름도 알지 못하는 그의 마음을 얻기 위해 분투한다.
<제니퍼 러브 휴잇의 컨페션>(이하 <컨페션>)은 <섹스 & 시티>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등 젊은 여성들을 매혹했던 ‘칙릿’의 감수성을 빌려오고자 하는 영화다. 광고회사라는 도회적이고 트렌디한 무대부터 시시콜콜 고
민망한 호들갑 <제니퍼 러브 휴잇의 컨페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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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는 법적 정의를 실현해야 한다는 사회적 사명감과 고객의 이익을 실현해야 한다는 직업적 사명감을 동시에 품고 살아가는 존재다. 그 두개의 사명감은 종종 충돌해 변호사들은 딜레마에 빠지곤 한다. 의뢰인의 죄를 인정하고 법의 관용에 호소할 것인가, 죄를 모른 체하고 법의 허점을 파고들 것인가. <세븐데이즈>의 주인공 지연(김윤진)은 후자에 해당한다. 그녀는 의뢰인의 편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100%에 가까운 승률을 기록 중인 변호사다. 그러던 지연에게 최악의 사건이 벌어진다. 홀로 키우던 딸이 납치된 것. 유괴범은 공판이 7일밖에 남지 않은 살인용의자를 석방시키지 않으면 딸을 죽이겠다고 협박한다. 이제 그녀는 직업적 사명감이나 명예가 아니라 딸의 생명을 위해 무죄판결을 받아내야 한다.
그러나 <세븐데이즈>는 법정영화보다는 액션스릴러 장르에 가깝다. 살인혐의가 명명백백해 보이는 용의자의 살인혐의를 벗기기 위해 사건의 실체에 다가가려는 지연은 꽤 높은 물리적인 장
변호사의 분투기 <세븐데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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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괴물과 인간이 공존하던 암흑의 고대. 호르트가르 왕(앤서니 홉킨스)이 다스리는 덴마크 주민들은 정체불명의 괴물 그렌델(크리스핀 글로버)의 무차별적인 학살로 두려움에 떨고 있다. 물론 괴물이 존재하는 곳에는 언제나 영웅이 당도한다. 베오울프(레이 윈스턴)라는 젊은 전사가 열네명의 병사와 함께 호르트가르 성에 도착하고, 그들은 하룻밤 사이에 그렌델의 목숨을 빼앗아 덴마크의 영웅이 된다. 하지만 아들의 죽음에 분노한 그렌델의 엄마, 아름다운 물의 마녀(안젤리나 졸리)가 나타나 전사들을 무참히 도륙하고 만다. 그녀를 죽이려 혈혈단신 동굴로 들어선 베오울프는 그렌델이 호르트가르 왕의 자손이었음을 알게 되고, 그 역시 부귀영화와 권력을 유지해줄 테니 자신과 동침해 아들을 낳게 해달라는 유혹을 받게 된다. 제의는 받아들여지지만 무심한 운명은 50년 뒤 베오울프에게 되돌아온다.
<베오울프>는 퍼포먼스 캡처 기술로 만들어진 풀 CGI영화다. 모든 캐릭터는 실재 배우의 연기를 디지
‘어른들의 이야기꾼’ 저메키스 <베오울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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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광주민주화운동 열흘 전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화려한 휴가>의 또 다른 버전은 아닐까 궁금하겠지만, 김현석 감독은 친절히 ‘99% 픽션’이라는 자막까지 넣어뒀다. 그를 설명할 수 있는 두 가지는 바로 야구와 더불어 소심한 남자의 지고지순한 순애보다. 그러니까 <스카우트>는 그의 이전 두 영화인 <YMCA야구단>(2002)과 <광식이 동생 광태>(2005)가 한몸으로 만난 영화다. 하지만 그 속에는 시대의 암울한 공기가 흐른다. 스포츠 에이전시의 세계를 다뤘던 <제리 맥과이어>(1996)의 한국적 저개발의 기억이라고나 할까?
1980년, 대학 직원 호창(임창정)에게 광주 출장 명령이 떨어진다. 광주일고 3학년 ‘괴물’ 야구선수 선동열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스카우트해오라는 것. 하지만 경쟁 대학이 이미 점찍어둔 상태고, 행방 역시 묘연해 출장 일수는 늘어만 간다. 그런 가운데 호창은 광주가 고향이자 옛사랑이기도 한 대학
비주류를 향해 바치는 찬가 <스카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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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은 혼란스럽다. 안토니오 반데라스의 두 번째 연출작 <춤추는 나의 베아트리체>는 청춘을 다루는 여타 영화들과 비슷한 태도를 견지하는 영화다. 소년도, 어른 남자도 아닌 십대 청년들은 불안정한 에너지로 가득 차 있다. 바보스럽게 낄낄대다가 잔인할 정도의 폭언을 쏟아내기도 하는 이들 무리는 딱 그 나이만큼의 고뇌를 짊어진 채 가족과 사랑, 미래를 고민한다. 초현실주의적인 느낌을 주는 몇몇 장면이나 빠른 템포의 음악도, 청춘의 카오스를 빚어내기에 적합해 보인다. 거기다 이 영화가 한 가지 덧붙인 것이라면 단테의 장편서사시 <신곡>이다. 1970년대 스페인의 작은 마을. 신장 하나를 떼내는 수술을 받은 미겔리토(알베르토 아마릴라)는 갑자기 <신곡>에 빠져들면서 시인이 되기를 소망한다. 그와 붙어다니는 친구들은 모두 세명. 불우하나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파코(펠릭스 고메즈), 동양무술에 심취한 바비, 그리고 모라탈라가 그들이다. 친구들과 수영장에서 소일하던
청춘의 카오스 <춤추는 나의 베아트리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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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신 거울을 바라보는 소녀의 모습으로 시작한 영화는 세상을 응시하는 소녀의 모습으로 끝을 맺는다. 소녀는 그렇게 세상 밖으로 나온다. 아니 던져진다. 첫숏과 마지막 숏의 이러한 대조는 전수일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일종의 전환점과도 같은 <검은 땅의 소녀와>의 위상과 유사점이 있다. 전작 <개와 늑대 사이의 시간>이 동일한 강원도 탄광촌을 배경으로 기억의 편린들을 꿰맞추며 자신을 찾아가는 내면의 여정을 보여주었다면, <검은 땅의 소녀와>는 인물들이 하루하루 버텨가기에 급급한 검은 땅의 세상으로 그 시선을 옮긴다.
진폐증에 걸린 해곤(조영진)은 회사에서 쫓겨나고, 허름한 집 한채마저도 철거 대상인 형편이다. 광부들은 합병증으로 발전되지 않는 한 진폐증만으로는 아무런 보상도 받을 수 없다. 해곤은 철거 보조비로 보험조차 가입되지 않은 트럭 한대를 임대해 장사를 시작하지만, 정신 지체아 아들 동구(박현우)의 실수로 사고가 나면서 작은 희망마저도 빼앗긴다.
검은 땅의 세상 <검은 땅의소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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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중국영화가 아닐까? <검은 땅의 소녀와>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중국어로 대사를 하는 것도 아니고 중국에서 찍은 영화도 아닌데 그랬던 건 지금 한국에도 저런 일이 있나 싶어서였다. 지아장커나 리양 같은 중국 감독의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가난과 궁핍을 21세기 한국영화에서 보는 것은 참으로 낯선 일이었다. 폐광촌에 카지노가 들어섰다는 뉴스만 보고 들었던 나 같은 사람에겐 <검은 땅의 소녀와>가 보여주는 현실이 몇 십년 전 일처럼 보인다. 박광수 감독의 <그들도 우리처럼> 이후로 탄광촌의 막장인생에 카메라를 들이댄 다른 영화가 없었던 탓일지도 모른다. 독립영화조차 탄광촌을 다룬 경우는 드물었기에 그곳의 삶은 모두의 관심권에서 멀어졌다. 전수일 감독은 여전히 그곳에 존재하는 것을 보여주며 우리의 주의를 환기시킨다. 가난한 이들의 안간힘과 그럼에도 어쩔 수 없는 궁지의 나락을 그린다. 그것을 단지 전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의 삶에
[편집장이 독자에게] 주목! <검은 땅의 소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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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레브리티, 미디어, 대중의 삼각 공생
<뉴욕타임스>는 힐튼의 출소를 다룬 2007년 6월28일자 기사에서 이런 말을 썼다. “패리스 힐튼 현상에 관한 기이한 소급효과(counter-effect)가 하나 있다. 엉터리이기만 한 그녀의 명성이 확인시켜주는 것은 그 바보 같은 명성을 더럽히려고 하는 사람이 더 바보가 된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이어 바버라 월터스가 <뉴욕포스트>의 칼럼니스트 신디 애덤스에게 했던 말을 인용했다. “나는 패리스 힐튼을 정식으로 인터뷰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어떤 면에선 그 모든 것이 내 밑바닥에 있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패리스 힐튼의 이름을 더럽히는 자, 더욱 더러워질 것이다. 패리스 힐튼은 파파라치를 향해 손가락으로 브이자를 해보일 만큼 관심받는 게 좋아 어쩔 줄 모르는 여자다. 그런 그녀가 어디선가 또 멍청한 짓을 하면 틀림없이 미디어는 그쪽에 몰리고 대중이 그 뒤를 좇는다. 미디어 노출증을 의심받기
21세기 쇼비즈니스의 새로운 모델 패리스 힐튼, 그녀는 누구인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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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배우 하정우가 말하는 영화 속 한 컷!
"길게 이야기 할 것이 없이 그냥 멋지다"는 말이 터진 그 한 컷!
"무엇을 보여주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향만 보여줬던 것 같다"라고 말한 하정우의 내 인생의 한 컷은 무엇일까요?
하정우의 [내 인생의 한컷]을 보시려면 <동영상보기> 버튼을 눌러주세요.
[하정우] 배우의 향을 느낄 수 있었던 한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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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미국 LA에 사는 패리스 힐튼이 면허 정지기간 중 음주운전으로 체포되어 23일간의 징역을 살고 나왔을 때, 그의 입·출소 표정을 비교한 게시물이 우리나라 네티즌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입소 때 패리스 힐튼은 10살 먹은 어린애처럼 질질 울고 있었고 출소 때 그는 역시 10살 된 아이처럼 좋아라 웃고 있었다. 모두 파파라치에게 찍힌 이 두장의 사진은 단지 ‘패리스 힐튼은 울고 있다/웃고 있다’의 사실밖에 담고 있지 않았는데 나란히 놓았다는 것만으로 유머가 됐다. 유머의 의도는 분명해 보였다. ‘패리스 힐튼은 역시 멍청하다.’
‘멍청함’으로 유지되는 기이한 스타덤
일반적으로 공인에게 부정적 영향이 더 크다고 판단되는 이 이미지는 패리스 힐튼에게 붙으면 그렇지 않다. 그에게는 먼 나라 대한민국의 대중까지 알고 있는 ‘멍청한 패리스 힐튼’은 그의 스타덤을 유지시키는 핵심 이미지, 결정적인 상품가치다. 그리고 패리스 힐튼은 이 이미지를 스스로 이용한다. 어릴 때부터 자선
21세기 쇼비즈니스의 새로운 모델 패리스 힐튼, 그녀는 누구인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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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7일 패리스 힐튼이 내한했다. 국내 모 스포츠 의류 브랜드 모델로 올해 초부터 활동했던 패리스 힐튼이 의류 홍보차 일본을 거쳐 한국에 온 것이다. 무려 패리스 힐튼이 내한해서 공항은 예상대로 팬들과 취채진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마지막 입국 심사까지 마치고 입국장에 나타난 패리스 힐튼은 매니저와 수행원들의 사인이 있을 때까지 자동문 밖을 나오지 않고 뒤에서 대기했다. 그 짧은 와중에도 틈틈이 패리스 힐튼은 모두 보란 듯 고개를 쑥 빼거나 손가락을 까닥까닥해 보였다. 스타가 제스처를 취할 때마다 취재진과 팬들은 마치 파블로프의 개처럼 반응했다. 마침내 스탭들의 사인에 따라 취재진과 팬들 앞에 ‘정식’으로 나타날 수 있게 된 패리스 힐튼은 포즈를 취하면서 브이자 사인을 그리고 행복한 포토타임을 가진 뒤 리무진을 타고 사라졌다.
패리스 힐튼을 초청한 의류 브랜드의 마케팅 관계자는 패리스 힐튼을 모델로 선정한 이유에 대해 “어쨌든 세계적인 패셔니스타로 인정을 받고 있고 패
[패리스 힐튼] 우리들의 일그러진 셀레브리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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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두나의 손놀림, 전도연의 눈웃음, 임수정의 시선, 공효진의 말투, 김정은의 울먹임에 비교할 만하다. 반쯤 말과 섞여서 터져나오는 흐느낌과 울 때 빨개지는 그 코의 자연적인 반응이 좋다. 게다가 애교인 것도 같고 능청인 것도 같은 약간의 비음은 언제나 초현실적이다. 엄지원이 지닌 몸의 세세한 감각이 좋다. 하지만 기록적일 만큼 아름다웠던 <극장전>의 영실을 제외한다면 지금까지 엄지원의 역할은 그녀의 구체적인 감각이 돋보이기보다 스스로의 말처럼 남자들이 염원하는 이상적 이미지에 초점이 맞춰진 쪽이었을 것이다. 혹은 그 이미지 중에서 영실의 이미지가 가장 압도적이었다.
<스카우트>의 세영도 어쩌면 이미지다. 하지만 잔인했던 시대의 70년대 학번, 80년 광주의 활동가라고는 해도, 영화의 정서 안에서 어딘가 귀여운 소시민의 캐릭터로 포현되어 있는 것이 긍정해줄 만한 부분이다. 대학 1학년 새내기로 같은 과 선배이자 야구선수인 호창(임창정)을 만나 풋사랑에 빠졌지만
[엄지원] 시대를 건너온 순수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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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브란스>는 이상한 영화다. 끔찍한 장면에서 음흉하게 유머의 화살을 날리는 이 작품은 관객을 질겁하게 만들다가 웃기고, 배꼽을 쥐고 뒹굴다가 또 깜짝 놀라게 만든다. 등장인물들도 하나같이 뭔가 이상하다. 무기회사 팔리세이드의 영국 지사에서 일하다 헝가리로 워크숍을 떠난 이들은 부하직원이 “Fuck me now, Fuck me hard!”라고 외치는 황당무계한 꿈을 꾸거나, 테이블 위에 놓인 정체불명의 파이를 누군가의 선물이라고 여기거나, 악당들을 새 무기로 혼내주겠다고 장담하다가 애꿎은 비행기를 박살내기도 한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이상한 인물은 스티브다. 환각 버섯을 아무렇지 않게 씹어 먹는가 하면 글래머 간호사가 등장하는 섹시한 백일몽을 서슴없이 읊조리는 이 남자는 마약과 섹스에 환장한, 혹은 도통 이를 숨기려들지 않는 문제적 인간이다. 심지어 악한들의 손아귀에서 간신히 목숨을 건진 뒤 장엄한 음악을 배경으로 동료에게 건네는 말이, “넷이서 할까?”(foursom
[대니 다이어] 구겨진 청바지가 어울리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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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것 같은데 잘 모르겠다. 수더분한 인상과 얼굴의 절반을 가린 마스크, 아래로 깐 눈빛에 가려진 쌍꺼풀. <저수지에서 건진 치타>의 조성하는 익숙한 인상을 어두운 그림자로 가린 남자다. 스스로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사육사인 직업을 통해 동물과 이야기하며, 인터넷 채팅으로만 타인과 소통한다. 어둠에 잠시 빛을 비춰 기억을 더듬으면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의 박석호, <미소>의 비행 교관이 떠오른다. 어슴푸레하지만 낯이 익다. 지진희의 형이자 문소리의 옛 애인으로 출연했던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의 박석호는 폭력과 협박으로 일관된 인물. <저수지에서 건진 치타>의 최병철과는 연결할 수 없을 만큼 멀지만 마스크에 잠재된 폭력은 어딘가 풍기는 냄새가 비슷하다. <미소>의 비행 교관은 조금 더 쉽다. 병철만큼 폐쇄적이지만 좀더 내면으로 깊이 패어 있던 비행 교관은 시력을 잃은 사진가 소정(추상미)의 상처를 시리
[조성하] 낯익은 그 남자의 비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