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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로 간주될 정보가 있습니다.)
구스 반 산트 감독이 죽음의 테마에 사로잡힌 지도 꽤 오래됐다. 캘리포니아 데스 밸리(Death Valley)에서 <게리>를 찍은 2002년을 기점으로 치자면 5년째다. <엘리펀트>(2003)는 의도적으로 또래들을 살해한 10대 소년에 관한 영화였고, <라스트 데이즈>(2006)는 불가피하게 자기를 살해한 20대 청년에 관한 영화였다. 그리고 <파라노이드 파크>는 의도하지 않은 살인을 범하고 그 기억을 혼자 삼켜버리는 10대 소년에 관한 영화다. ‘죽음과 청년’ 연작(?) 네편은 미학적으로도 소집단을 형성한다. 이들 영화에서 관습적 드라마투르기와 편집 공식은 거의 폐기되고, 시간은 주관적으로 흐른다. 또 음악과 음향이 그리는 보이지 않는 풍경(sound-scape)이 이미지를 질기게 따라붙는다.
포틀랜드에 사는 소년 알렉스(게이브 네빈스)는 친구 제라드(제이크 밀러)에게 이끌려, 집나온 10대
외부자의 영화 <파라노이드 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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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미래의 영화는 어떻게 될까? <베오울프>를 아이맥스 상영관에서 보면 누구라도 이런 의문을 품게 된다. 흔히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보면서 롤로코스터를 타는 기분이라는 표현을 쓰지만 <베오울프>만큼 롤로코스터에 다가간 영화는 없는 것 같다. 테마파크에서 보는 입체영화와 비슷한 체험이지만 입체영화와 달리 캐릭터와 이야기가 있는 <베오울프>는 미래의 영화가 지금껏 보던 것과 다른 종류일 것이라 암시한다. 극장용 영화란 3차원 공간감을 만들어내는 종류만을 의미하고 나머지 영화는 TV나 컴퓨터 모니터로만 보는 시대가 오는 게 아닐까. <베오울프>가 그 정도로 완벽하진 않지만 기술이 점점 발전한다면 어떻게 될까 싶다. 물론 <베오울프>의 기술은 특정한 소재에 한정된 것이다. <베오울프>가 드래곤과 마녀가 나오는 중세모험담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사람들의 상상에만 존재하는 시공간이 아니라면 이런 기술의 장점은 찾기 어려울 것이다
[편집장이 독자에게] 미래 영화의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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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경제에 오랜 기반을 두고 살았던 우리는 땅에 대해서 거의 절대적인 애착을 가지고 있다. 토지가 거의 절대적인 자본을 형성하게 된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반도라는 지리적 특성으로 무역의 대상국이 없었던 이유가 가장 큰 듯하다. 흔히 반도적 특성을 들어 이탈리아와 한반도의 유사성을 얘기하지만 어불성설이다. 이탈리아는 유럽과 아프리카가 거대하게 펼쳐져 있지만 우리는 많이 다르다. 얼핏 개괄해도, 북으로는 약탈을 일삼는 유목민들이고, 바다 건너에는 국가 개념이 없는 일본이 있을 뿐이다. 단지 중국이라는 거대한 나라가 서쪽 바다 건너 존재하고 있는 게 다다. 이런 상황에서 토지는 가장 유력하고 유일한 재화가치의 생산수단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토지사유제는 언제나 심각한 문제를 야기했다. 근대 이전의 신분제하에서도 그랬고, 근대 이후 토지개념을 정립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더욱 혼란스러웠다.
베버는 유럽경제사에서 상인이나 금융업자로 특이한 지위를 차지해왔던 유대인들의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권리는 갖되 소유하지 않는 토지를 제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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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것과 맛있다고 생각하는 것, 재밌는 것과 재밌다고 생각하는 것, 멋진 것과 멋지다고 생각하는 것. 가끔씩 뭔가를 결정할 때 이 두 가지 항목 안에서 고민하게 된다. 영화를 볼 때는 그 어딘가의 글이나 카피 문구를 의식하게 되고, 케이크를 고를 때는 드라마나 만화 속 제과점의 풍경을 그리며, 옷을 살 때는 어느 화보의 모델을, 머리를 자를 때는 머리 모양보다 모델의 외모를 먼저 떠올린다. 선택이란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것이겠지만, 선택을 하는 사람의 주관은 항상 그 누군가의 생각을 경유하고 만다. 세상에서 처음으로 맛보는 음식이 아니고서야 가장 먼저 보는 영화가 아닐 바에야, 순전히 맛으로만 고르고 재미로만 보는 선택이 어디 있겠냐 하겠지만 요즘 세상은 맛있다는 생각이 맛을 만들고, 멋있다는 환상이 멋으로 꾸며지는 쪽에 더 가까워 보인다.
이명세 감독의 <M>이 말썽이다. 작품에 대한 호불호가 거의 절반으로 나뉘었던 감독의 전작 <형사 Duelist>와
[오픈칼럼] 모델만 보고 옷 사는 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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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대의 태반을 보습학원에서 아르바이트하며 보냈다. 학원 옆에는 주유소가 있어서 열린 창으로 기름 냄새가 스며들었다. 냄새 때문인지 문제지에 고개를 처박은 핏기없는 아이들 때문인지 교실에 들어가면 자주 멀미가 났다. 도대체 뭘 하며 살아야 할지 알 수 없어 막막하던 때였다. 시험 대비용 문제지를 풀어주는 날이 언제까지나 계속될 것만 같았다. 이도저도 생각하기 싫어서 틈날 때마다 잠을 잤다. 어떤 꿈에서는 낯선 도시를 헤맸다. 어떤 꿈에서는 깨고 나면 새까맣게 잊어버릴 소설을 썼다. 간혹 아이들을 가르치는 꿈도 꿨다. 똑같은 문제를 계속 풀어주거나 답을 알 수 없는 문제 때문에 쩔쩔매는 꿈이었다.
친구는 날마다 전화를 걸어와 실패한 사랑 때문에 눈물을 쏟았다. 보습학원에서 아이들에게 문제를 풀라고 시켜놓은 틈에, 수업시간에 교수님의 강의를 듣다 말고 복도로 나와서, 자다 말고 일어나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친구는 사랑 때문에 죽고 싶다고 했다. 나는 사랑 때문에 죽는 사람은 없다고
[내 인생의 영화] <밝은 미래> -소설가 편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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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빌씨를 사적으로 만나, 나와 관련한 쾌락의 요청을 충족시켜주기로 한다.” 허버트 백작부인은 이런 조건으로 네빌과 계약을 맺는다. 약속대로 백작의 영지를 열두장의 그림에 담던 중, 네빌은 자신이 이미 그린 곳에 자꾸 그림을 그릴 때에는 없었던 물건들이 나타나는 것을 발견한다. 이 원치 않는 변화에 불평을 하면서, 충실한 자연주의자답게 그는 새로 나타난 그 물건들을 제 그림 안에 포함시킨다. 그리고 이것이 그의 운명을 결정한다.
탈만 부인은 자신의 아버지가 살해당한 것 같다며, 네빌의 그림들 속에 살인의 단서가 들어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 물건들은 네빌의 살인을 말해주는 증거로는 충분하지 않다. 정원의 살인사건에 애거서 크리스티와 같은 과학적 추리를 들이대는 것은 쓸데없는 일. 그림에 담긴 그 단서라는 것들의 기호적 성격은 그 인접성으로 사건을 증언하는 ‘지표’가 아니다. 그저 막연한 암시,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남기는 기호 아닌 기호다.
영화 전체를 통해
[진중권의 이매진] 화가의 죽음, 주체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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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이 들면서 몇 가지 결심을 했었다. 꽤 많은 결심을 했던 것 같지만 기억나는 것은 이것저것 말고 하나만 하는 일관성있는 인간이 되겠다는 것과 유부남은 건드리지 않겠다, 술 마시고 취해서 옛날 애인에게 전화하지 않겠다, 이 세 가지 정도뿐이다. 가끔 휘청거리긴 하지만 일관성 면에서는 그럭저럭 본전치기는 한 것 같고 유부남 문제는, 필사의 각오로 건드리지 않았다기보다는 건드리고 싶을 만큼 매력적인 유부남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사실 나의 의지보다는 저도 모르게 나에게서 자신을 지키고 만 그들의 공이 컸다. <어깨너머의 연인>에서 수완(이미연)이 건드린 유부남만큼 섹시하고 단단한 몸매를 지닌 유능하며 부유한 유부남이 나에게 미소를 보냈다면 모르겠지만 아마 그렇다 해도 별일 없었을 것이다. 원래 스스로를 자제하지 못하는 인간은 강제로 자제를 당하게 되는 법망이란 것을 매우 두려워하는 법이니까. 결의 중 3분의 2를 지켰으니 나는 결심을 잘 지키는 인간이라며 우쭐대고 싶지만 그러기
[냉정과 열정 사이] 술 마시고 남자한테 굳이 전화를 해야겠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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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미국에서 돌아온 이명세 감독이 <형사 Duelist>를 준비하던 시점부터 <씨네21>이 그를 만나 인터뷰를 할 일이 있을 때면 도맡아왔고, <형사…>와 <M>의 개봉 때는 그가 주장하는 영화에 대한 생각을 존중하며 최대한 객관적인 정보전달 차원에서의 기획기사도 써왔다. 이미 <형사…>를 본 뒤 한번의 거리감을 경험했으며 올해 부산에서 <M>을 본 뒤 그 거리가 좁혀질 수 없는 것임을 확인했음에도 <M>에 관해 “이명세의 필치로 쓴 <율리시스> 혹은 <꿈의 해석>”이라며 비경쟁 영화제의 데일리에 걸맞도록 호감어린 20자평을 쓰고 별 셋을 적은 건 이 영화와 나의 감상 사이에 놓인 공감 때문이기보다 그동안 인터뷰와 현장 방문을 통해 이명세 감독을 만나고 또 그가 가진 열정적인 신념을 확인하면서 갖게 된 깊은 존경심 때문이었다. 이명세는 결코 그의 신념을 쉽게 꺾지 않을 것이다.
[전영객잔] 이미지의 미로에서 길을 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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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스카우트> 남기남의 새로운 회사는?
[정훈이 만화] <스카우트> 남기남의 새로운 회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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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3일 토요일 캘리포니아 베벌리힐스의 포시즌 호텔에서 로버트 저메키스의 신작 <베오울프> 정킷이 개최됐다. 기자회견에는 제작자와 작가들을 비롯해 영화에 참여한 주요 배우들이 모두 참석했다. 20분간 진행된 기자회견 중에서 안젤리나 졸리, 앤서니 홉킨스, 존 말코비치의 말들을 골라서 싣는다.
-스크린에서 자신이 아닌 자신을 바라보는 기분은.
=안젤리나 졸리: 화면을 볼 때까지 어떨까 궁금하긴 했다. 처음에는 재미있다고 생각했는데, 내 나신이 나올 때는 진짜로 쑥스럽더라.
-괴물의 어머니 역을 어떻게 준비했나.
=안젤리나 졸리: 로버트 저메키스가 데려간 방에 캐릭터 그림이 있었다. 온몸을 황금으로 칠한 여자의 이미지와 도마뱀. (웃음) 파충류 여인을 연기해야 한다기에 재미있겠다고 생각했다. 이틀 반 동안 정말 재미있게 촬영하고 나서야 영화 포스터를 봤는데 그냥 도마뱀이 아니더라. (웃음) 사악하고 유혹적인 강한 여인이었다.
-앤서니 홉킨스는 호르트가드왕 역
[스폿 인터뷰] 영화가 아니라 연극 무대에 선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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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크 루카스는 대단한 비즈니스맨이다. 그는 여러 유통경로를 통해 소비자에게 공급되던 상품의 생산지 직수입 루트를 개척해 상품의 월등한 품질을 보장하는 것은 물론 기존 가격의 절반으로 판매하며 경쟁업체들을 완패시켰다. 프랭크 루카스는 패밀리맨이다. 사업으로 번 돈으로 노모에게 저택을 사드리고, 시골에 있던 형제, 친척들을 도시에 이주시켜 사업에 동참시켰고, 가족과 함께 일요일마다 교회를 다녔다. 문제는 그가 거래하는 ‘상품’이 헤로인이라는 것. 루카스는 이 헤로인을 ‘상품’이라고 굳게 믿고 취급한다. 그리고 루카스가 무너질 때 그의 전 가족도 함께 무너진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아메리칸 갱스터>는 70년대 초 뉴욕 할렘에서 ‘헤로인 킹핀’으로 굴림했던 실존 인물 루카스(덴젤 워싱턴)와 그를 체포한 뉴저지주 형사 리치 로버츠(러셀 크로)의 이야기다. 러셀 크로가 연기한 리치 로버츠 형사는 가정적인 루카스에 비해 바람을 피워 이혼당하고 양육권까지 빼앗긴다. 하지만 지나치
[현지보고] 성실한 마약왕과 고지식한 형사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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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술은 항상 젊은이들의 장난감이 되어왔다. 십대들은 30대나 40대는 절대로 따라할 수 없을 방식으로 휴대폰을 사용한다. 세계에서 가장 숙련된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은 모두 20대들인 듯하다. 올해 처음 발매되는 아이폰을 사기 위해 줄을 섰던 사람들 가운데 60대나 70대는 아마 거의 없었을 것이다.
영화제작기술 분야에서는 지난 5~6년 사이에 DI(디지털 보정·Digital Intermediate)나 좀더 향상된 시각효과 등 여러 가지 새로운 기술들의 상용화가 가능해졌다. 그러나 내가 볼 때 주류 한국영화의 신기술 중 가장 흥미로운 것은 HD기술이다. 기술 그 자체가 특별히 혁신적이어서가 아니다. 사실 HD기술은 이전의 디지털비디오 양식을 개선한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HD기술은 영화제작자들에게 새로운 제작환경을 열어줬다.
신기술의 활용은 일정 정도 경제적인 문제와 연관돼 있다. HD로는 35mm필름으로 찍는 것보다 훨씬 적은 돈으로 매우 좋은 화면을 만들어낼 수 있다. 저
[외신기자클럽] 중견들을 위한 젊은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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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가 다시 웨스턴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지난 90년대 초 케빈 코스트너 감독의 <늑대와 춤을>과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용서받지 못한 자> 등 이후 간간이 명맥을 유지해오던 서부극과 변종 서부극 장르가 최근 다시 붐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시즌 종영된 <HBO>의 오리지널 시리즈 <데드우드>의 영향을 받아 증가한 서부극에 대한 관심은 할리우드 영화제작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장르의 특성을 살린 작품성있는 영화들이 속속 개봉돼 영화팬들의 눈길을 끌고 있는 것이다.
1957년 동명작을 리메이크한 제임스 맨골드 감독의 <3:10 투 유마>를 선두로, 앤드루 도미닉 감독의 <제시 제임스의 암살>,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의 <데어 윌 비 블러드> 등의 정통 서부극으로 연이어 극장가를 찾고 있는 가운데 서부극 변종으로 볼 수 있는 코언 형제 감독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와 숀 펜 감독의 &l
[뉴욕] 고 웨스트 어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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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극장업계 1, 2위인 CJ CGV와 롯데시네마가 최근 ‘디지털 시네마 합작회사’를 설립키로 한 것과 관련해 영화계 안팎이 술렁이고 있다. 필름으로 영화를 제작해 배급, 상영하는 것과 비교하면 획기적인 비용 절감이 가능하다는 디지털 시네마. 할리우드와 유럽을 중심으로 디지털 시네마 열풍이 거세게 불고 있음을 감안해 서둘러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평가도 있지만, 전체적인 협의없이 일부 업체들이 단독적으로 진행하는 사업이 이후 가져올 폐해에 대한 우려 또한 만만치 않다. 디지털 시네마를 둘러싼 충무로의 논란들을 살펴봤다.
11월8일 CGV와 롯데시네마는 각각 50%씩 출자해 디시네마 코리아를 만들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디시네마 코리아는 “국내 영화관을 대상으로 디지털 영사시스템을 보급한다”는 목적의 회사다. CGV 관계자는 “디지털 시네마 사업은 그동안 추진 필요성에 다들 공감하면서도 주체가 없어 지지부진했다”고 말하고 “디시네마 코리아를 통해 영사기를 현 장비
[쟁점] 디지털 시네마로 가는 길, 같이 갈까? 먼저 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