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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은 사람을 살리는 곳이지만 그렇게 환자를 살리기 위해 수많은 구성원이 조용히 희생하고, 때로는 죽어가는 곳이기도 하다. <밑바닥에서>는 신촌세브란스병원 암병원 중환자실에서 간호사로 7년간 근무했고 2020년 코로나19 확산 초기에 대구의 코로나19 중환자실로 파견되어 근무한 김수련 간호사의 경험담을 담은 책이다. 최근 몇년간 간호사들이 직접 병원 근무 경험을 기록한 에세이가 자주 나왔는데, 희망을 품은 책이든 냉정한 시선을 보이는 책이든 공통점이 있다면 병원 간호사, 특히 신규 간호사에게 너무 많은 짐을 지운다는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중환자실은 언제든 갑자기 혈뇨가 나오거나 인공호흡기 서킷이 분리되는 일이 발생할 수 있고 상황이 다급히 돌아가는 와중에 전화벨이 울릴 수 있다. 시간에 맞춰 투약, 체위 변경, 구강 간호 같은 일 말고도 물품 개수를 확인하고 전산 입력을 하고 보호자와 레지던트에게 전화를 거는 일도 빼놓을 수 없다.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보고서를 제
씨네21 추천도서 - <밑바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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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자기 계발서 열풍을 불러온 작가로 손꼽히는 이가 고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장이다. 회사에 고용된 사람이 아니라 1인 기업을 운영하는 마음가짐으로 일해야 한다는 제안은 ‘자기 브랜딩’ 같은 말들이 당연한 지금에야 익숙한 이야기지만 21세기 초반에는 IMF 이후 달라진 직장 풍속과 어우러져 큰 영향을 미쳤다. 구 소장이 세상을 떠나기 전 작업하던 원고 ‘마음편지’는 마음에 깊은 울림을 남긴 문장들로 저자가 질문을 던지면 독자가 보내온 답으로 구성할 계획이었다. 2013년에 세상을 떠난 저자를 대신해 ‘콘텐츠랩 심재’ 홍승완 대표가 원고를 보완하고 그에 대한 답까지 채워 책을 완성했다. 여느 자기 계발서가 그렇듯, 이 책 또한 나 자신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를 다룬다. 그 과정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디에 있어야 가장 어울릴 사람인지 따져보며 내면으로 여행을 떠나는 일이다. 평생 신념과 열정에 충실했던 버트런드 러셀의 사상을 음미하며 잊고 있던 내면의 열정을 짚어보자고 한다. 운명처
씨네21 추천도서 - <마음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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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비 종교에 빠져 가산을 탕진하거나 가족을 파탄으로 이끌고 간 사람의 이야기, 한 다리만 건너면 흔하게 들을 수 있다. 누구네 아버지가, 혹은 할머니가 그랬다는 풍문을 전해 들을 때마다 우리는 “아니, 멀쩡한 사람이 도대체 왜? 가족들은 안 말리고 뭐했대?”라고 순진한 의문을 품게 된다. 사이비 종교에 포섭되는 사람은 사회적 관계가 취약하거나 정보에 무지하고 무언가에 쉽게 중독되는 심약한 종류의 인간일 거라고 짐작하기 쉽다.
한국계 미국 작가 권오경의 <인센디어리스>는 광신적 종교에 마음을 빼앗긴 이들의 심연을 파고드는 매혹적인 소설이다. ‘인센디어리스’는 방화, 선동적이라는 의미. 소설은 사이비 종교에 빠지는 인물과 그의 연인, 그리고 종교 집단 교주의 내면을 묘사하며 인간에게 종교란 어떤 의미이며 우리가 거기서 얻고자 하는 진리란 무엇인지 모색한다. 한국인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피비에게 어머니, 그리고 피아노는 인생의 전부였다. 딸이 주체적으로 살길 바라던 피비
씨네21 추천도서 - <인센디어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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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대표하는 사회파 추리소설 작가이지만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 중 무엇을 좋아하느냐에 따라 그에 대한 인식은 조금씩 다를 것이다. <화차>나 <모방범>을 감명 깊게 읽었다면 사회파 작가라고, 에도시대를 배경으로 한 미스터리 시리즈(<기타기타 사건부> <외딴집> 등)를 좋아한다면 옛날이야기 전문가로 기억할지도. <용은 잠들다>나 <브레이브 스토리> 등에서는 판타지 미스터리를 선보이기도 했던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에는 과학적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기이한 현상과 SF적인 요소들이 간혹 엿보인다. SF 앤솔러지 잡지에 연재 제안을 받은 작가가 “그동안의 ‘어쩐지 SF’가 아니라 ‘제대로 SF’인 작품을 쓰기로 마음먹었다”고 밝힌 것은 이전 소설에 묻어났던 ‘어쩐지 SF’적인 요소에 대한 정확한 언급이다. 10년간 발표한 SF 소설을 단행본으로 묶은 신간 <안녕의 의식>에는 총 8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노인이 된 작가
씨네21 추천도서 - <안녕의 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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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의 의식_미야베 미유키 지음
인센디어리스_권오경 지음
마음편지_구본형, 홍승완 지음
밑바닥에서_김수련 지음
러브 몬스터_이두온 지음
씨네21 추천도서 - <씨네21>이 추천하는 2월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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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ST’는 매주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에게 취향과 영감의 원천 5가지를 물어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이름하여 그들이 요즘 빠져 있는 것들의 목록.
<일타 스캔들>
밝고 씩씩한 전도연 선배의 캐릭터와 연기에 매료되었다. 밝고 통통 튀는 역할을 할 때만의 재미도 좋아한다. <일타 스캔들>을 보면서 ‘언젠가 나도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절대 못할 것 같은데!’ 하는 식으로 이입하며 본다.
제주도
생애 첫 나 홀로 제주도 여행을 하고 싶어서 알아보고 있다. 2박3일 정도? 사실 그동안은 왠지 용기가 나지 않아 티켓을 끊지 못했다. 운전면허도 있으니 제주도에서 혼자 드라이브를 하면 좋겠다.
<다음 소희>
한동안 <다음 소희>가 해외 영화제를 순방할 때부터 이 영화가 한국에서 국내 관객과 만나면 어떤 평가를 받을지 정말 궁금했다. 영화 홍보 활동을 하고 극장가에서 관객의 반응을 시시각각 느끼는 요즘이 내가 가장 꽂혀 있는 시간이
[LIST] 배우 김시은이 말하는 요즘 빠져 있는 것들의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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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영국은 코로나19 팬데믹과 브렉시트의 여파로 의료 및 교육, 교통 등 사회 전반에 걸쳐 지속적인 파업이 일어나는 등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지만 영화 및 하이엔드 TV 산업만은 예외로 보인다. 영국영화협회는 지난 2월2일 협회 내 통계조사기관의 조사 결과를 대중에 공개하며 2022년 영화 및 하이엔드 TV 산업이 기록적인 성과를 보였다고 전했다. 영국영화협회는 2022년 영화 및 하이엔드 TV 작품 제작에 무려 62억7천만파운드가 투자됐다고 밝혔는데, 이는 팬데믹 이전인 2019년보다 무려 18억3천만파운드가 증가한 수치다. 영국영화협회는 외부 투자로 전체의 86%에 해당되는 53억7천만파운드를 받았다는 점도 강조했다. 팬데믹 이후 영국은 정부 주도하에 영국 내 영화 및 TV 작품 제작을 장려하기 위한 ‘영화와 TV 재시동 계획’ 정책을 실시한 바 있는데, 영화 <미션 임파서블7>과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 넷플릭스 <위쳐> 시리즈 등이
[런던] 영화 찍으러 영국에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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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몸은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자다가도 근육을 삐끗하는 허약한 현대인에게 넷플릭스 예능<피지컬: 100>은 압도적으로 매혹적인 세계다. 국가대표급 엘리트 스포츠인부터 특수부대원, 격투기 선수, 댄서, 유튜버, 자동차 딜러까지 다양한 경력을 지녔으나 신체 능력만큼은 자신 있다는 공통점을 지닌 100명이 모여 상금 3억원을 걸고 경쟁한다. <오징어 게임>과 스트롱맨 대회 사이 어디쯤 있는 듯한 이 프로그램은, 몸은 오직 진짜만을 보여준다는 전제를 트릭 삼아 각본 없는(것처럼 보이는) 드라마를 펼친다. 근육질의 거구의 남성 출연자들 사이에서 160cm, 53kg의 체조 선수 양학선의 ‘힘’을 기대할 수 없던 관중은, 그가 첫 번째 퀘스트인 오래 매달리기에서 마지막까지 활약하는 모습에 ‘힘’의 정의를 되돌아보는 동시에 자연스럽게 양학선을 응원하게 된다. 자신보다 체격이 1.5배는 큰 럭비 선수 장성민에게 바깥다리를 걸어 넘어뜨리는 씨름 선수 박민지의 승부수,
[최지은의 논픽션 다이어리] ‘피지컬: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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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니발>
디즈니+
쿠게 마을에 순경 아가와가 새로 부임한다. 임업 기반의 농촌에서 고토 가문은 마을의 지주 격으로 세력을 떨치고 있다. 그런데 마을 주민과 고토 가문 사람들의 태도가 수상하기 그지없다. 외부인 아가와를 지나치게 의심하고 억압하기 때문이다. 아가와는 수상함의 이유를 좇은 끝에 쿠게 마을의 식인 풍습을 수사하기에 이른다. 농촌 공동체를 폐쇄적인 타자로 여기며 공포의 근원으로 삼는 진부함이 먼저 눈에 띈다. 다만 <드라이브 마이 카>와 <모두 잊었으니까>의 각본으로 실력을 입증한 오에 다카마사의 솜씨가 걸출한 장르적 몰입감으로 단점을 상쇄한다. 아가와의 과거, 쿠게 마을의 비밀 등이 촘촘히 엮이며 전개의 휴지기를 줄인다. 특히 <실종>의 가타야마 신조 감독이 연출한 1화의 오프닝 시퀀스는 강렬함 이상의 섬뜩함으로 기대를 돋운다.
<맵다 매워! 지미의 상담소>
Apple TV+
<테드 래소>의
[OTT 추천작] ‘간니발’ ‘맵다 매워! 지미의 상담소’ ‘아기 코끼리와 노부부’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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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 연출 김정권 / 극본 최수영 / 출연 김옥빈, 유태오, 김지훈, 고원희, 김성령 / 플레이지수 ▶▶
변호사 여미란(김옥빈)은 남자를 싫어한다. 그들은 여성을 도구로만 여기며 이용하려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유명 배우 남강호(유태오)는 여자를 싫어한다. 그들은 남자를 출세의 기회로만 생각하고 아양을 떤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극의 남녀 둘이 마주친다. 미란이 연예인 보호를 전문으로 하는 법무법인 길무에 들어오면서다. 성향이 정반대인 둘은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비호감을 갖게 되나 점차 서로의 본모습을 들여다보게 된다. 미란은 강호의 예상과 달리 털털하며 주체적인 사람이고, 강호는 미란의 추정과 달리 여리고 주변인을 진심으로 아낀다. 갈등의 해빙기를 지나던 둘은 강호의 스캔들을 막기 위한 계약 연애를 계기로 점차 깊은 관계로 나아간다.
<연애대전>은 최근 한국 사회에 불거졌던 남녀 갈등 요소를 적극적으로 이용해 주인공들의 성격과 초반 관계
[OTT 리뷰] 넷플릭스 ‘연애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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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시카고. 임신 중 심근병증을 진단받으며 시한부 선고가 내려진 조이(엘리자베스 뱅크스)의 유일한 치료법은 임신 중절이다. 장고 끝에 임신 중절 수술 위원회를 찾지만 남성으로만 구성된 자리에서 조이의 결단은 단순한 감정적 호소로 격하될 뿐이다. 전원 반대라는 결과에 절망한 그는 우연히 “임신하셨나요? 제인에게 전화해보세요”라는 작은 벽보 광고를 발견하고 수화기를 든다. <콜 제인>은 1960년대 약 1만2천명의 여성이 안전하게 임신 중절 수술을 받도록 도운 단체 ‘제인스’(The Jane Collective)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했으며 영화 <캐롤>의 각본가인 필리스 나지가 연출을 맡았다. 영화 <피치 퍼펙트2>를 기점으로 연출자와 배우의 자리를 유연하게 넘나드는 엘리자베스 뱅크스와 <아바타: 물의 길>로 세계적 흥행을 기록 중인 시고니 위버가 만나 여성 연대를 근간으로 한 이야기를 선보인다.
[Coming soon] '콜 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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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도 잘 알려진 제56회 슈퍼볼 LVI가 지난 2월13일(현지 시간) 열렸다. 풋볼을 좋아하지 않는 미디어 업계 관계자들도 유명 뮤지션이 출연하는 슈퍼볼 하프타임 쇼와 30초 광고 단가만 700만달러(약 86억원)에 달하는 슈퍼볼 중간 광고에는 관심을 가질 만하다. 미국 극장들이 기지개를 켜는 봄, 여름 시즌에 맞춘 영화들의 트레일러가 11편이나 공개되었다. 온라인에 많이 공개돼 있으니 찾아보는 재미도 있을 것 같다. 슈퍼볼 광고에서 큰 화제를 모은 두 스트리밍 회사가 있는데, 하나는 GM의 전기차와 파트너십을 맺은 넷플릭스였고 다른 하나는 바로 폭스의 비밀 무기, 광고 기반의 OTT 서비스 투비였다.
광고는 간단하다. 중계진의 경기 해설이 이어지다 갑자기 스마트TV UI가 나오면서 투비 서비스가 선택된다. 이후 영화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가 선택되고 넷플릭스처럼 투비 로고가 나오면서 영화가 시작되는 것 같은 페이크 광고였다. 실제로 누군가가 리모컨을
[김조한의 OTT 인사이트] 폭스의 비밀 무기, 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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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4일, 강릉씨네마떼끄가 공식 SNS와 뉴스레터를 통해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의 운영비 마련을 위한 후원 캠페인’ 시작 소식을 알렸다. 강원도와 강릉시에서 독립영화, 예술영화 전용관을 지원하는 지자체 보조금을 삭감하면서 재정 위기를 맞았기 때문이다. 재정 악화를 딛고 2017년 3월 재개관한 뒤 6년 만의 일이다. 강릉씨네마떼끄는 현재 추가 경정 예산을 받기 위해 강원도와 강릉시에 예산안을 올렸으나, 예산안이 통과된 후에도 보조금이 지급되기까지 시간이 필요해 최대 5월까지 버틸 수 있는 자금을 마련하고자 캠페인을 시작했다. 송은지 강릉씨네마떼끄 사무처장은 “어려운 시기라 캠페인을 시작하면서도 걱정이 많았는데, 다행히 강릉 시민들을 포함해 전국 영화인들과 단체에서 많이 도와주셔서 2월16일 현재까지 약 2700만원이 모금됐다”고 밝혔다. 모금이 시작된 지 12일 만에 전체 모금액의 반 이상이 모인 것이다.
강릉씨네마떼끄 후원 캠페인과의 연대로 영화 <나는 마을 방과후
독립영화를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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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례행사 같은 ‘신인배우 특집’을 올해도 이어간다. <씨네21>은 해마다 올해 주목해야 할 신인배우들을 선정해 인터뷰하는데 이들은 대체로 2~3년 뒤 진가를 발휘한다는 (믿거나 말거나 한) 속설이 있다. <씨네21>의 영험한 예지력이 특별히 빛을 발한 해는 2014년. 당시 라이징 스타 11인의 명단엔 강하늘, 박보검, 변요한, 천우희, 최우식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9년 전엔 이들도 꿈꾸는 신인이었다. 이제 막 경력을 시작한 신인배우들과의 인터뷰가 설레는 이유는 연기를 향한 순정과 풋풋한 마음을 투명하게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신인배우들의 뜨거운 언어를 마주하다 보면 우리 모두 한때는 기회에 목마른 초짜였고 꿈 많은 신입이었다는 사실도 새삼 깨닫게 된다.
여기 끼도 많고 꿈도 많은 8명의 싱그러운 신인배우들을 소개한다. 올해 <더 문> <무빙>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악귀> <범죄도시4>
[이주현 편집장] 좋은 배우, 좋은 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