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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으레 거짓말하게 마련인 어린이의 성장담으로만 이야기한다면 설명이 부족할 것이다. 생각 많은 여자아이의 마음 깊은 곳을 살핀 작품이라 말하고 나서도, 이 영화를 보고 나온 당신에겐 할 이야기가 넘치도록 남아 있을 것이다. <비밀의 언덕>은 인간 사회의 아주 넓은 땅에 창피함과 자랑스러움, 숨김과 드러냄, 거짓말과 참말 사이의 경계가 자리한다는 점을 짚는 영화다. 그러고는 그곳에 처한 인물들을 꼬옥 끌어안는다. 우리는 저 어정쩡한 경계에서 어느 쪽으로든 즉시 결정하고 다음 단계의 의사소통을 향해 발을 내딛어야만 하는 사회적 동물이다. 그때의 즉흥적인 선택이 얼마나 적절했는지 우리 대부분은 알지 못한다. 그렇게 충분히 아름다웠을 인생의 소중한 순간들 역시 지나치곤 한다. 영화는 10대 초반의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면서도, 나이와 성별을 불문한 우리의 평소 언행 중 대개의 경우가 눈치와 염치, 수치 등등이 머릿속에 오가는 가운데 자동기술적으로 행해진다는 점을 꼼꼼히
[비평] 트루 라이즈, ‘비밀의 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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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어디서 작업하세요?’
누구를 만나든 날씨 이야기와 함께 꼭 나누는 질문이다. 어디서, 어떻게, 무엇으로 일하는가. 예전에는 나만 모르는 작가들의 비밀이 있을 것 같아 미어캣처럼 둘러봤다면 지금은 안다. 그게 그거인 것을. 다만 내 몸이 원하는 장소와 방법이 때마다 달라지기 때문에 잊었던 선택지를 발견하기 위해 질문을 꺼내놓고는 한다. 한 가지의 공간과 방식, 도구에 탑승해 글을 쓰다가 그것들의 힘이 떨어지면 다시 다른 것들로 옮겨 탑승해 달리는 거다. 그래서 나는 지난 <씨네21>의 ‘LIST’ 코너에서 언급했듯이 <민음사TV>의 ‘문박싱’, <오지은 임이랑의 무슨 얘기>의 홈쇼핑st편을 좋아한다(홈쇼핑st 말고도 언니들의 이야기는 다 좋아한다!!). 물론 <씨네21>의 ‘LIST’도! 여러 분야의 사람들이 갖는 일할 때 곁에 두는 도구에 대한 애정을 듣다 보면 강력한 희망과 욕망에 사로잡히게 된다. 저 구글 시계가 내 책상 위에 있
[김세인의 데구루루] 긴장과 이완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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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라이징 스타로 <씨네21>과 첫 인연을 맺었고, 2021년 <스위트홈> 당시 송강, 이도현, 고민시와 함께 커버를 장식했다. 그리고 <셀러브리티>로 첫 단독 커버 모델이 됐다.
= 데뷔 초에는 <씨네21>에 내 이름이 나오는 게 꿈이자 버킷 리스트 중 하나였다. <스위트홈> 때 친구들과 함께 표지에 나오게 돼 기분이 정말 좋았는데, 이렇게 단독으로 커버와 인터뷰를 하게 되어 너무 좋다.
- 박규영은 차근차근 커리어를 쌓아서 넷플릭스 시리즈 원톱 주연에까지 이른 배우처럼 보인다. <셀러브리티>라는 기회가 왔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
= ‘차근차근’이라고 표현해주신 게 정말 감사하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나름의 경험을 계속 쌓고 있었는데, 넷플릭스 시리즈의 1롤 주인공으로 대본을 받았을 때 믿을 수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일까’ 하는 고민을 많이 했다. 하지만 원래 할 수 있는 것보다 좀
[인터뷰] 차근차근 쌓아올리다, ‘셀러브리티’ 박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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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러브리티>의 서아리는 많은 인플루언서 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뉴 페이스다. 팔로워 K와 M의 계급을 나누는 이 세계에서 서아리는 그럴싸한 과장으로 자신을 포장하고 더 유명해져야겠다는 자의식 없이도 특유의 꾸밈없는 매력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끈다. 협찬 광고에 얽매이기보다는 자체 브랜드를 키우는 데 주력해 성공하고 순식간에 인스타그램 팔로워 130만명을 거느리는 유명 인사가 된다. 연세대학교 의류환경학과 재학 시절 <대학내일> 표지모델을 장식했다가 캐스팅 제안을 받고 배우 연습생을 시작한 배우 박규영에게도 그런 매력이 있었다.
그는 화려하게 꾸미기보다는 편하고 말간 스타일링과 매사에 진지한 애티튜드를 보여주는 신인배우였고, 몇편의 뮤직비디오와 드라마 조연으로 경력을 시작할 때부터 눈 밝은 사람들에게 먼저 각인되는 존재감을 보여줬다(참고로 <셀러브리티>의 서아리가 조금씩 이름을 알리기 시작할 당시 인스타그램 프로필 사진은 박규영이 과거 SNS에 올
[커버] 오늘도 차분하게, ‘셀러브리티’ 박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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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는 용감했다. 아니, 형제는 유쾌했고 또 멋있었다. 류승완·류승범 형제, 일명 ‘류 브러더스’는 어느 날 혜성처럼 등장해 한국영화계를 씹어먹을 듯한 기세로 커리어를 펼치기 시작했다. 이들을 집중 조명한 기사에 맞춰 류승완 감독의 <피도 눈물도 없이> 로케이션 현장을 방문했다.
[ARCHIVE] 류 브러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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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거릿 케네디 지음 / 박경희 옮김 / 복복서가 펴냄
어느 날의 일이다. 자고 일어나니 감쪽같이, 절벽 아래에 있던 저택이 사라져버렸다. 물론 전조는 있었다. 측량 전문가는 절벽 균열이 커지면 저택도 안전을 장담할 수 없으니 이사를 하는 게 낫겠다고, 진즉 호텔 소유주 시달에게 편지를 쓴 바 있다. 시달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고 결국 온 가족이 절벽 아래 누워 있는 신세가 되었다. 1947년 여름, 영국의 해변 휴가지 콘월에서 있었던 일이다. <휴가지에서 생긴 일>의 제목과 단란한 표지를 보면 언뜻 여름철 휴가지에서 일어난 흥미로운 멜로드라마가 연상된다. 따사로운 햇볕 아래 사랑에 빠진 연인, 다시금 애정을 회복하는 부부, 모래밭을 뛰어다니는 작은 아이들과 바다 위로 부서지는 햇살과 청량한 웃음들. 마거릿 케네디의 소설 <휴가지에서 생긴 일>에 그런 풍경이 아예 없다고만도 할 수 없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는 그보다 한층 음산하고 어두운, 멸망적 징후가
씨네21 추천도서 - <휴가지에서 생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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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리시 리스펙토르 지음 / 민승남 옮김 / 을유문화사 펴냄
글에 대한 글을 기대하고 <아구아 비바>를 펼쳤다면 이 책은 절반은 당신을 만족시킬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당신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간다. <아구아 비바>는 이해가 안되는 문단의 반복이다. 대여섯줄을 잘라내 SNS에 올린다면 그 자체로 완결성을 갖는 아포리즘이 되겠지만 이어지는 문단과 문단은 서로 연결성을 갖지 않고 있어 여러 페이지를 그저 흘려보내야 한다. ‘당신’이라고 일컬어지는 사람에게 계속 화두를 던지고 있지만 화자는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전개해 나가고 그 안에는 내러티브가 없다. 읽다 보면 “그래서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거지?”라는 생각도 든다. 난해하고 현학적으로도 느껴진다. 이 산문 안에서는 어떤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다. “내가 당신에게 글을 써야만 하는 또 다른 이유는, 당신이 내 그림에서 명확성 대신에 두서없는 말들을 수확해가기 때문이다… 이것은 책이 아니다. 왜냐하면 남들이 쓰는 방
씨네21 추천도서 - <아구아 비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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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디아 피녜이로 지음 / 엄지영 옮김 / 비채 펴냄
“엘레나는 딸이 살해당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누가, 왜 그런 짓을 저질렀는지는 모른다.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살해 동기를 찾을 수가 없다. 짐작도 가지 않는다. 그래서 이제는 자살이라는 판사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엘레나의 딸 리타는 성당 종탑에 목을 맨 채, 이미 숨진 상태로 발견되었다. 7시 미사의 시작을 알리는 종을 울리도록 신부가 탑으로 올려 보낸 남자아이들에 의해 발견되었다. 하지만 신부는 자살로 추정되는 리타의 죽음에 대해 연민을 보내지 않는다. 오히려, 딸의 죽음을 파헤치려는 엘레나에게 교만의 죄를 지었다고 말한다. “당신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현실은 정반대인데 세상이 당신 말대로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의 죄를 짓고 있다고. 문제는 엘레나가 파킨슨병을 앓고 있기 때문에 자기 몸이 자기 몸처럼 느껴지지 않은지 오래되었다는 데 있다. 딸의 죽음에 관한 진실
씨네21 추천도서 - <엘레나는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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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빈 지음 / 문학과지성사 펴냄
“운동화 안에서/ 작은 돌멩이 한 알이 굴러다니는 것을/ 알아챘을 때/ 폴은 느낀다/ 살아 있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고.” 발이 불편했던 일상의 어느 순간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고궁에 산책 간/ 내가 돌아오지 않습니다// 궁이 좋아서”라고, 풍요로운 산책의 시간을 환기하는 대목도 있다. “슈크림의 다정함이라면/ 누구에게도/ 버림받지 않을 거라고”라는 귀여운 표현을 읽으며, 달콤한 디저트를 먹던 순간을 떠올릴 수도 있다. 이 시집에는 일상의 감각들을 환기하면서, 그 감각으로 또 다른 세계를 키워나가는 시들이 있다. <눈사람을 보면 이상해>는, 어느 겨울 SNS를 달구었던 논쟁이 떠오른다. 정성껏 만든 눈사람을 굳이 발로 차서 부수는 사람들이 있다는 제보와 그들을 향한 비난이 이어지는 한편, 그런 논쟁이 있든 말든 현실에서는 눈사람을 부수는 이들이 계속 있었다. “굴러가는 머리 보면서 웃는 사람은/ 아무래도 이상해”라는 표현에 이어, 시
씨네21 추천도서 - <미래는 허밍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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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기영 지음 / 창비 펴냄
역사소설은 결말이 정해져 있다. 특히 4·3 사건처럼 수많은 주민이 죽어간 참사라면, 책에서 아무리 밝고 희망찬 내용이 펼쳐진다 해도 결말에 대한 근심과 불안을 완전히 지울 수는 없다. 육지에서 제주로 건너온 거대한 뱀의 신화에서 시작하는 제주 이야기는, 식민지 시대 제주를 무지막지하게 괴롭히고 수탈한 일제와 그에 맞서 싸우고 끌려가고 죽어간 청년들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직전에는 화산이 폭발하기라도 한 것처럼 미군이 공습을 가하는 바람에 섬은 암흑 그 자체가 되어버린다. 그렇지만 이 어두운 시절에도 두 소년 창세와 행필은 바닷가에서 일본군을 향해 방귀 뀌는 시늉을 하며 웃음을 터트린다. 드세다는 소리를 들어가며 힘들게 말 다루는 법을 배우는 창세의 누나 만옥 등 여성들 또한 제 삶을 개척해나간다. 청년들의 생기, 미래를 향한 꿈은 시대가 아무리 엄혹해도 절대 부서지지 않고 오히려 더욱 강해지는 것 같다. 그래서 슬프다. 꿈
씨네21 추천도서 - <제주도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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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우다> _ 현기영 지음
<미래는 허밍을 한다> _ 강혜빈 지음
<엘레나는 알고 있다> _ 클라우디아 피녜이로 지음
<아구아 비바> _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지음
<휴가지에서 생긴 일> _ 마거릿 케네디 지음
씨네21 추천도서 – <씨네21>이 추천하는 7월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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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배우·감독. 영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 출연, <흑교육> 연출
'LIST’는 매주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에게 취향과 영감의 원천 5가지를 물어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이름하여 그들이 요즘 빠져 있는 것들의 목록.
영화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난관을 돌파해나가는 주인공 마일스의 낙관적인 태도나 운명이 자신의 인생을 결정하지 않게 할 거라는 굳은 의지 등이 무척 인상 깊었다. 대만에서 내가 마일스 목소리를 더빙하기도 했고. (웃음)
유튜브 <老高與小茉 Mr & Mrs Gao>
전세계의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유튜브 채널이다. 기상천외하고 깜짝 놀랄 만한 일화를 들려주는데 유튜버들이 재담을 잘한다. 밤마다 틀어놓고 잠든다.
진혁신 <우리>(我们)
영화 <먼 훗날 우리>의 O.S.T다. 가수 진혁신을 좋아했는데
[LIST] 가진동이 말하는 요즘 빠져 있는 것들의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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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오컬트 드라마와 달리 SBS <악귀>는 시청자가 귀신 이미지에 소스라쳐 물러서기 전에 화면을 전환하고 흐릿한 상에, 스치는 찰나에 더 다가가게 하는 방법을 취한다. 스물다섯의 공시생 구산영(김태리)에겐 정체와 목적이 불분명한 악귀가 들락날락하는데, 이를 알기 쉽게 가시화하는 CG 사용을 않고 배우에게 맡긴 덕분에 민속학 교수 염해상(오정세)과 대화하던 산영이 “아” 하는 한마디로 매끄럽게 인격이 스위치되는 순간들을 만들어낸다. 산 사람과 귀신. 분명한 경계가 있음에도 식별하기 어려운 같음에 붙들리게 하는 것이 이 드라마의 매력이랄까. 이삿짐센터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개천 돌다리를 흥얼거리며 건너는 뒷모습이 산영의 의식을 악귀가 장악하고 있던 때임을 나중에 알고 나서 떠올린 장면이 있었다. 극에 처음 등장한 산영이 배달 일을 하며 퇴근하는 직장인 무리의 퇴사 푸념을 듣던 그 뒷모습이었다. 한강 다리에 도착해 몸을 기울이는 산영과 이삿짐 일이 끝나고 유복한 아이의 인형을
[유선주의 드라마톡] ‘악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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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아워스>
Apple TV+ ▶▶▶
액정이 다 깨진 스마트폰을 사용하며 금방이라도 시동이 꺼질 것만 같은 고물차로 난폭 운전을 하고 있는 한 여자. 이 여자의 이름은 페기 뉴먼이다. 과거 마약상이었던 페기는, 지금은 서부개척시대를 재현한 민속촌에서 파트타임으로 생계를 이어간다. 아직도 가끔씩 마약에 손대는 것 같기도 하다. <하이 데저트>는 이 문제적 인물이 큰돈을 벌기 위해 사설탐정 일을 시작하면서 생기는 일화를 다룬 시리즈물이다. 주연은 <보이후드>의 퍼트리샤 아켓, 감독은 <미트 페어런츠> 시리즈의 제이 로치이며 코미디의 대가 벤 스틸러가 제작에 참여했다.
<하모니움>
왓챠, 웨이브, 시리즈온, 티빙 ▶▶▶▶
7월19일 개봉예정인 <러브 라이프>의 감독 후카다 고지가 2016년에 발표한 작품이다. 그해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서 심사위원상을 받은 이 영화는, 살인을 저지른 한 전과자가 친
[OTT 추천작] ‘하이 데저트’ ‘하모니움’ ‘멜랑콜리아’ ‘숨 쉬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