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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적 관객수 439만명에 이른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열기가 아직도 뜨겁다. 2023년 1월4일 개봉 이후, 벚꽃이 다 저문 지금까지 장기 상영이 지속되는 것을 보면 그야말로 열광적인 신드롬이다. 실제로 원작 <슬램덩크>의 신장재편판은 100만부를 달성했고, 농놀(농구 놀이)을 위해 공터와 체육관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공식 굿즈를 쟁취하기 위한 클릭 전쟁과 아이맥스 버전 개봉 등 새로운 현상이 펼쳐지는 와중에 엔딩곡 <第ゼロ感>(제ZERO감)을 작곡하고 부른 3인조 밴드 텐피트(10-FEET)가 라이브 공연을 선보이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第ゼロ感>이 <더 퍼스트 슬램덩크> 흥행의 이유라면 텐피트의 내한은 흥행의 결과다. 인과관계 사이에 숨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파헤치기 위해 라이브 공연 전 텐피트 멤버를 만났다. 보컬과 기타 연주를 맡은 다쿠마, 드럼 연주와 코러스의 고이치, 베이스 연주와 보컬의 나오키와의 대담이다.
[기획] 텐피트 내한공연, 라이브 스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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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상반기, 일본 애니메이션은 한국의 극장가를 석권했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로 시작하여 <귀멸의 칼날: 상현집결, 그리고 도공 마을로>를 거쳐, <스즈메의 문단속>으로 이어진 애니메이션 붐은 4월 현재도 쉬이 꺼질 것 같지 않은 분위기다. 그렇다면 일본의 현지 상황은 어떨까?
지난 2022년, 일본의 극장용 애니메이션 흥행은 700억엔에 육박하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해에 개봉한 100여개의 작품들 중 흥행 수익이 10억엔을 넘긴 것은 열 작품 남짓하며, 실제로는 100억엔 클럽에 들어간 <원피스 필름 레드> <극장판 주술회전 0> <스즈메의 문단속>이 대부분의 수익을 독점했다. 일본 극장용 애니메이션의 생태계는 실사영화와 마찬가지로 작품들이 놓인 여건에 따라 여러 계층으로 나뉜다. 그 최상위에 존재하는 그룹이 바로 <명탐정 코난>이나 <짱구는 못말려> <도라에몽&g
[기획] 2022~2023년 일본 애니메이션 경향과 시장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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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황이 남긴 망령과의 사투가 시작된 한국영화
두 번째 착시는 시장 전반 상황에 대한 문제다. 지금 일본 애니메이션 열풍이 유독 도드라지는 건 <더 퍼스트 슬램덩크>와 <스즈메의 문단속>의 흥행세 덕분이라기보다는 다른 영화들의 부진 탓이 크다. 3월까지 극장 관객수는 2514만명으로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인 2019년 동 기간(5507만명) 대비 절반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전통적인 비수기였던 걸 감안하더라도 3월까지의 성적은 심각한 상황이다. 특히 문제가 되는 건 한국영화 자체에 대한 불신이 학습되고 있다는 점이다. 꾸준한 시장의 침체, 대작 영화들의 잇단 실패가 맞물려 지금 극장가를 채우는 영화들은 일찌감치 완성되었던, 이른바 묵은 영화들이다. 적절한 타이밍을 놓친 영화들은 트렌드에서 멀어진 채 한국영화의 지나간 악습만 반복 중이다.
시장 상황이 좋아 많은 영화들이 쏟아져나올 땐 이렇게 방만한 양산형의 기획 영화들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대
[기획] 지금 일본 애니메이션 열풍을 되짚어 봐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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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은 때때로 이야기의 형태로 소비된다. 이야기의 세계에서 우연은 없다. 현상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기에 사람들은 인과관계로 정리한 뒤에야 안심한다. 어떤 영화가 흥행하고 나면 그토록 흥행 원인을 찾으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적지 않은 현상에서 원인은 결과의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절대적인 필연성 따윈 없다는 말이다. 대다수 흥행 분석이 당연한 이야기를 당연하게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럴 땐 질문의 각을 달리하면 종종 본질과 민낯이 드러나는 경우가 있다. 현재 한국 극장가에 불고 있는 일본 애니메이션 열풍을 둘러싼 반응들을 보며 새삼 흥행 분석의 무용함을 생각하게 된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와 <스즈메의 문단속>의 흥행 이후 일본 애니메이션 열풍에 대한 기사가 쏟아지고 있다. 1월4일 개봉한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441만 관객, 3월8일 개봉한 <스즈메의 문단속>이 390만 관객을 돌파하며 장기 흥행 중이다
[기획] 일본 애니메이션의 승리는 “착시”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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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2023년 1분기도 채 지나지 않았지만 올해 극장가의 승자는 누가 뭐라 해도 일본 애니메이션들이다. 우선 1월에 개봉한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441만 관객을 동원하며 역대 일본 애니메이션 국내 흥행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뒤이어 3월에 개봉한 신카이 마코토의 신작 <스즈메의 문단속>은 390만명을 돌파하며 역대 순위 2위였던 감독 자신의 전작 <너의 이름은.>(2016)을 밀어내고야 말았다. 3월까지 극장을 찾은 전체 누적 관객수의 3분의 1에 가까운 관객 동원을 단 두편의 일본 애니메이션이 이뤄낸 것이다. 한때 스튜디오 지브리로 대표되던 일본 애니메이션의 세대교체는 <너의 이름은.> <귀멸의 칼날>등을 앞세워 일찌감치 이뤄졌지만 올해만큼 폭발적인 결과를 선보인 적이 있었나 싶다. 단지 애니메이션에 한정해서가 아니라 일본영화 전반으로 넓혀봐도 이례적인 열풍이다. 무엇보다 1월에 시작된 열풍이 아직까지 이어진다는
[기획] 한국에서 열풍 부는 일본 애니메이션 산업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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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운 감독이 말하는 배우 임수정
아직도 임수정 배우의 오디션 때 기억이 선명하다. 똑 부러지게 자기 생각을 말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지만 귓가에 또랑또랑하게 들리는 음색과 딕션이 무엇보다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살면서 적개심과 죄의식을 느낀 적이 있는지 다소 에둘러 둘러댈 법한 어렵고 곤란한 질문에도 주저 없이 적절하게 대답해주었다. 아마도 촬영 내내 감독 다음으로 가장 많은 부담감을 느낀 사람은 임수정 배우였을 거다. 촬영을 끝내고 매일 밤 숙소로 돌아가 자신이 짊어지고 갈 엄청난 압박과 무게감에 끝없이 자책하고 절망하고 괴로워했다는 후일담을 들었다. 그 어려운 시간을 스스로 이겨내고 돌파하면서 훌륭한 연기자로 성장했고 비로소 오늘날 한국의 대표적인 여배우가 되었다
김지운 감독이 말하는 배우 문근영
당시 중학생이었던 문근영 배우는 자신의 촬영이 없을 때도 잠시도 쉬지 않았다. 선배 배우의 연기를 지켜보거나 스탭 사이에 끼어서 까르르거리거나(그녀가 현장에 오면 모든 언니,
[기획] 김지운 감독이 말하는 배우 임수정과 문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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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여성 서사를 기다리며
- <장화, 홍련>처럼 본능적으로 연기하던 시절이 그리울 때는 없나요.
문근영 그리워요. 배성우 선배님이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너 <가을동화> 때 연기 진~짜 잘했어. 다시 하라고 해도 그렇게 못할 거야. 그런데 생각하고 고민하고 어느덧 연기에 대해 다 알게 됐을 때, 다시 그때처럼 똑같이 연기를 한다? 그러면 연기의 신이 되는 거야.” 그게 제가 가야 할 길이라고 하면서요. (웃음)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열심히 하겠다고 했죠.
임수정 요즘 그 길을 가고 있는 거야? (웃음)
문근영 응, 추구하고 있어. (웃음)
임수정 근데 근영이는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지옥> 시즌2도 정말 기대하고 있어요. 최근 연기 활동을 쉬어가는 동안 차곡차곡 내면에 쌓인 게 많을 거예요. 그게 어떤 캐릭터와 만났을 때, 특히 장르적인 작품을 만날 때 자기도 모르게 터져나오는 것들이 있어요. 저도 <장화, 홍련&
[기획] 임수정, 문근영 “또다시 만날 작품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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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만 마주쳐도 울고, 뒷모습만 봐도 울고…
- 김지운 감독은 당시 여러 인터뷰에서 “임수정 배우는 오디션에서 살면서 느낀 죄의식과 적개심이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하고 대답한 유일한 배우였다”는 말을 많이 했었죠.
임수정 신인배우에게 너무 큰 역할을 맡기는 데 반대 의견도 많았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당시 저는 굉장히 폐쇄적이었고 경계심이 많았고, 부조리한 세상과 사람에 대한 불만과 불신, 분노, 회피 같은 어두운 감정을 품고 있었어요. 감독님의 질문에 잠시 침묵하다가 어떠한 설명도 없이 “네”라고 답하는 모습을 보고 제가 수미를 연기할 수 있다고 생각하셨대요.
- 문근영 배우와 미팅했을 때는 ‘어떻게 이 아이는 이렇게 깊은 눈을 가졌지?’라고 생각했다고 해요. 김지운 감독과 처음 만났을 때의 상황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나요.
문근영 한 시간 정도 이런저런 수다를 떨고 나왔어요. “시나리오는 어떻게 읽었어?” “수연이는 어떤 아이인 것 같아?” “수미 역할은 누가 했으면 좋겠
[기획] 임수정, 문근영 “‘장화, 홍련’은 가장 본능적으로 연기했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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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은 한국영화의 화양연화였다. <살인의 추억>의 봉준호, <올드보이>의 박찬욱, <장화, 홍련>의 김지운, <지구를 지켜라!>의 장준환 등 상업적 감각을 갖춘 작가 감독들이 주목받기 시작했고, 한국영화 객석 점유율 50%를 돌파하며 최초의 천만 영화도 탄생했다. 특히 역대 한국 공포영화 흥행 1위(관객수 314만명,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기준)의 자리를 20년째 유지하고 있는 <장화, 홍련>의 의미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선명해졌다. 개봉 당시 평단의 반응은 엇갈렸지만 입소문과 함께 흥행에 성공한 <장화, 홍련>은 일본, 태국과는 다른 감성을 품은 한국 호러영화만의 계보를 탄생시켰고, 이후 많은 장르영화가 포스트 <장화, 홍련>을 꿈꾸며 수미와 수연 자매의 애상적 이미지를 본보기 삼았다. 오히려 개봉 당시보다 비평적인 성취도 격상했다. 도전적인 제작자들은 신선한 얼굴이 주연을 맡은 공포영화의 가능성에
[기획] '장화, 홍련' 20주년… 임수정과 문근영을 다시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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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을 찢어놓는 것은 언제나 행복의 낱말들이다. 사랑, 축하, 벚꽃, 여행 같은 말들. 소박하고 아름다운 말들이 그렇게 나를 낭떠러지로 끌고 가곤 했다. 예를 들면 내가 빌리지도 않은 돈을 갚아야 하던 시절에 그랬다. 한번도 거래한 적 없는 은행에서 걸려온 독촉 전화를 받느라 사무실을 뛰쳐나가던 시절에는 가족에 대해 생각하는 게 두려웠다. 가족이 두려웠다.
그 무렵 어느 날, 친구가 대여섯살 된 아이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뒷모습을 본 적이 있다. 아무렇지도 않은 그 장면이 눈이 아플 만큼 부러웠다. 다시는 그 길로 다니지 않았다. 나의 좌절과 슬픔이 남의 희망과 기쁨을 해칠 것 같았다. 적어도 나 자신은 해쳤다. 많은 시간이 흘렀고 그럭저럭 이겨냈으며 그보다 더한 일들을 겪기도 했다. 이제는 확실한 행복을 느낄 때도 있지만, 저 아래엔 그때의 서늘함이 남아 있다. 웃을 때 조심하게 된다.
봄은 왜 매번 갑자기 올까. 마음이 아직 겨울에 있는 사람에게 봄은 어려운 계절이다. 밝
[김소영의 디스토피아로부터] 꽃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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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진실을 알지 못한 채 시작한다. 매거진은 과거의 영광을 잃은 지 오래고, 시네마는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진실이 그렇게 중요한가. 처음 부재중 번호로 전화가 왔을 때 잡지를 만들겠다는 사람들이 서점에 몰려와 수많은 잡지를 뒤적거리던 중이었다. 서점 주인은 무엇이든 알고 있을 것이라는 크나큰 착각을 하고 있는지, 아니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들은 요즘 어떤 잡지가 잘 팔리는지, 무슨 잡지가 유행인지, 좋아하는 잡지는 무엇인지 등 끝없이 질문을 던지는 중이었다. 사실 잡지 창간을 앞둔 그들에게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은 “빨리 도망치세요”였지만 굳이 내색하지 않았다. 모두가 망해서 사라졌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거기에도 사는 사람이 있다. ‘여기 아직 우리 살아 있어요.’ 이런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지나간 어제와 달라지지 않는 오늘과 이미 정해져버린 미래의 경계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지금 시대에 잡지를 만드는 사람이, 영화를 보는 사람이 있다고
[김민성의 시네마 디스패치] 1. 프롤로그: 쇠락과 사망 섹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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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의 얼굴을 내도록 지켜보면서도 마음이 이리 비어버려도 되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아도 <소울메이트>를 순수하게 받아들이긴 어렵다. 원작인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2016)의 잔상이 아른거리고, 서사적 결함이 눈에 밟힌다. 이 영화의 이야기는 빽빽하고도 헐겁다. 두 친구의 진한 우정과 다사다난한 인생사를 빼곡히 채운 이야기는 반전의 반전을 거듭한 끝에 온전히 드러나는데, 그 뒷맛이 씁쓸하다. 종국에 드러나는 서사의 평이함 때문인지 이야기가 주가 된다기보다는 반전이 안기는 충격이 핵심인 것 같고, 반격을 가하는 스토리텔링에 강한 집착마저 보인다는 인상이 남는다. 물론 서사의 기본 구조는 원작에서 빌려온 것이며, 서사 전달에 긴장감을 부여하려는 시도가 매도될 일은 아니다. 다소 투박하지만 야심만만한 구조 안에서 감성 짙은 이야기를 전개한다는 점도 감상자에 따라서는 다양하게 작용한다. 하지만 그 반응을
[비평] '소울메이트', 여성 서사와 모성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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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를 연기할 때조차 대부분 단독자인 여자를 연기했다. 남편이 없거나 있어도 잘 보이지 않는다. (웃음) 역할에 상관없이 항상 ‘여자’랄까.
= 그건 확실히 일할 때의 내 성향과도 연결되는 부분이다. 나는 누군가의 엄마, 아내로도 충실하지만 배우일 때의 내 삶 역시 오롯이 살아내 고자 한다. 나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한다기보다, 음… 본능적으로 자신을 존중하면서 내 임무와 역할에 충실한 삶을 살고 싶다고 말하는 편이 맞겠다. 내가 가진 성향을 끌어내 연기하니까 그게 역할에 투영되어 보여지는 것 같다.
-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생일>에 이어 배우 설경구와 세 번째로 호흡을 맞췄다.
= 오래전부터 같이 일해왔고 익숙해져 있는 배우이기 때문에 어떤 면에선 서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길복순>을 통해 아직 내가 이 사람에게 모르는 게 많다는 사실을, 그래서 다음 작품에서 또 만나고 싶다는 기대를 하게 됐
[인터뷰] ‘길복순’ 전도연, “현장에서 일할 때, 나는 가장 나답고 살아 있다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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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람들이 <일타 스캔들>과 <길복순>으로 인해서 뭐가 달라졌냐고 물어요. 달라진 건 없다고, 하지만 이 두개의 경험이 앞으로를 바꿀 수는 있을 것 같다고 답하고 싶어요. 이상하게 기대가 돼요. 자꾸만 더 기대해보고 싶어져요.”
- 3월31일 공개된 넷플릭스 영화 <길복순>이 3일 만에 글로벌 톱10 영화 (비영어)부문 1위를 차지했다. 이렇게 확실한 지표로서 반응이 나오기 전까지 배우 자신의 개인적인 평가는 어땠나.
= 1차 시사 끝나고 만족스러웠다. 전도연 하면 드라마에 강한 배우라는 이미지, 액션 장르에 대입하기엔 낯선 배우라는 연상을 깨고 싶었다. 변성현 감독님이 자기만의 방식으로 전도연이란 배우를 새롭게 쓸 수 있음을 증명해줬다는 것에 감사한다. 나름의 용기가 생겼다. 욕심 같아선 갖가지 장르를 거침없이 소화해보고 싶은데 내게 주어지는 선택지가 부족해서 답답한 시간을 보낸 게 사실이다.
그러다 만난 <길복순>은 너무
[인터뷰] '길복순' 전도연, 나는 여전히 목마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