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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언 맨> 시리즈를 만들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저 작은 영화나 만들고 가끔 연기도 하면서 소박하게 사는 게 존 파브로의 꿈이었다. 그런 면모 때문일까. <아이언 맨> 연출을 제안받았을 때 그는 “절대로 <다크나이트> 같은 어려운 영웅담은 만들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만큼 그에게 영화는 스스로 즐길 수 있는 것이어야 했다. <아이언 맨> 시리즈에서 토니 스타크의 비서 호건 역을 함께 맡은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극중에서 호건은 만능비서다. 든든한(?) 보디가드이자 능숙한 드라이버요, 심지어 운동상대가 되어주기까지 한다. 거구와 어울리지 않는 귀여운 유머도 적재적소에 날린다. 이런 모습은 그간 그가 쌓아올린 ‘곰돌이’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돈과 권력에 염증을 느껴 격투기에 빠져든 제니퍼 애니스톤의 백만장자 남자친구로 등장하는가 하면(<프렌즈>), 남자친구와 3주 이상 관계를 지속하지 못하는 팜케 얀센에게 진정한 사
[now & then] 존 파브로 Jon Favre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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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그런데 인터뷰하시면서 등을 보이면 안되죠. 좀 돌아봐주시면 안될까요?
=내 이름은 막시무스 데리우스 메리디우스. 북부군의 총사령관이자 펠릭의 장군이었으며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충복이었다. 너희가 태워 죽인 아들의 아버지이며, 능욕당한 아내의 남편이다. 반드시 복수하겠다. 살아서 안되면 죽어서라도!
-그런데 저 지금 <로빈후드>로 인터뷰하러 왔는데 계속 <글래디에이터> 때로 착각하고 계신 건 아니신지요.
=무슨 소리냐. 난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언제나 글래디에이터다. 그리고 인터뷰를 할 거면 부드럽게 청해봐라.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내 이름은 막시무스 데리우스 메리디우스. 북부군의 총사령관이자 펠릭의 장군이었으며….
-스탑! 스탑! 아 알았으니까 이름 얘기는 그만하시고요. 그럼 본인이 로빈 후드가 아니라 글래디에이터라는 증거는 있으신가요?
=굿 퀘스천. 귀여운 녀석이군. 넌 내가 나오는 영화도 안 보고 살았니. 글래디에이터라면 그 유명한 에피
[가상인터뷰] <로빈후드>의 로빈 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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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밀실살인입니다!”
탐정이 비장하게 선언한다. 초등학생 때는 밀실 선언이 있을 때마다 손에 땀을 쥐었다. 어느새 닳고 닳은 독자가 된 나는, 이제 탐정의 밀실 선언이 떨어지면 ‘또!’ 하고 생각한다. 워낙 많이 읽다보니 (그나마) 상식적으로 생각 가능한 모든 트릭을 경험했고, 남은 건 비상식적인 돌연변이 결론뿐인데, 그건 성에 안 차기 때문이다. 진짜 웃긴 건… 그래도 읽는다는 것이다! 클리셰와 제대로 놀 줄 아는 영민한 작가를 만나는 일은 언제나 즐겁기 때문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명탐정의 규칙>은 그런 탐정물 클리셰를 ‘놀려먹겠다’고 작정한 책이다. 명목상으로는 미스터리 단편집이지만 화자는 지방 경찰본부 수사1과 경감. 탐정물에서 명탐정 보조역으로 자주 등장하는 유의 인물이다. 그는 하소연부터 시작한다. 조연에게도 고충이 있다. 실수로라도, 탐정보다 먼저 미스터리를 풀면 안된다. 그러니 탐정보다 먼저 미스터리를 푼 뒤 오답만을 제출해야 하는 것이다(100점만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눈오는데 고립이라니 또 밀실살인은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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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시위를 반성하는 사람이 없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준엄한 꾸짖음이 화제다. 대체 무엇이 그로 하여금 저런 말을 해도 된다고 생각하게 만들었을까. 영화 제목 식으로 말하면 이 상황에서 미친놈, 덜된 놈, 이상한 놈은 누구인가? 생각을 해야 한다. 인문사회적 사고의 기본기를 키워주는 책들이 최근 꽤 선을 보였다. 진보를 위한 개론서들이라고 할까. 말을 주고받는 인터뷰 형식이 좋다면 김규항이 말하는 진보 이야기 <가장 왼쪽에서 가장 아래쪽까지>가 있고, 좀더 근본적인 이론적 체력 키우기가 필요하다고 느낀다면 이택광의 <인문좌파를 위한 이론 가이드>가 좋겠다. 오늘의 한국을 여러 관점에서 조망하고 싶은 사람에게 권할 만한 책이 <다시, 민주주의를 말한다>다. 2009년 연말 휴머니스트와 오마이뉴스가 공동으로 열었던 민주주의 특강 내용을 정리한 책이다. 한홍구, 진중권, 우석훈, 오연호, 박원순 등 총 12명의 강사가 참여했다.
도정일 교수의 여는 말은 왜
[도서] 어떤 세계에 살고 싶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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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략 소개부터. 더 버드 앤 더 비는 이나라 조지(버드)와 그렉 커스틴(비)으로 구성된 LA 출신의 신스팝 듀오다. 몇몇 팝가수 앨범의 크레딧을 꼼꼼하게 살펴본 경험이 있다면 그렉 커스틴이라는 이름이 익숙할지 모른다. 왕성하게 활동하는 프로듀서로 브리트니, 카일리 미노그와 작업한 경력이 있다. 릴리 앨런의 최근 앨범을 통째로 해치우기도 했다.
프로듀서는 주문제작에 길들여진 피고용인이지만 한편으론 온전한 자기 음악을 꿈꾸는 영혼이자 실현이 가능한 뮤지션이다. 프로듀서가 다 그렇진 않지만 커스틴은 꿈꾸고 행했는데 파고든 분야는 미디였다. 이는 연주의 힘으로 음악을 평가한다면 가볍고 조잡하다 여길지 몰라도 실제 다뤄봤다면 엄청난 시간과 결벽과 숙련을 요한다 인정하는 영역이다.
이들의 노래는 사실 캔디팝인데 여타 요정 취향의 싱어송라이터에게 엄격한 교본의 역할을 한다. 장비와 조작의 사운드가 단내만 풀풀 나지 않는다는 것을, 울림이 크지 않은 소녀적인 발성이 그러나 미묘하고 미세한
[추천음반] ≪Interpreting the Masters Volume 1: A Tribute to Daryl Hall and John Oa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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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선 ★★★☆
우리는 좋은 커버가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다. 원곡의 스타일을 존중해주면서 거기에 자신의 색깔을 입히는 것. 하지만 이는 정직하게 살라는 대통령 어머니의 유언만큼이나 당연하지만 지키기는 어려운 일이다. 플라시보는 그런 어려움을 헤치고 몇몇 빛나는 순간을 만들어낸다. 아쉬운 부분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럴 땐 원곡을 한번 더 찾아듣게 해주는 미덕(?)이라 생각하면 된다.
이민희/ 음악웹진 ‘백비트’ 편집인 ★★
체계적인 리메이크 기획이 아니라 비사이드 총망라한 편집반인데도 매사 심각한 게 그들의 운명이라 말하는 앨범. 보니 엠의 <Daddy Cool>을 다룰 때만큼은 최소한의 유머감각을 갖고 사는 인간적인 조직인 것 같지만 몹시 예외. 그 밖의 초이스는 너무 진지하거나 늘어지거나의 반복. 뭘 택하든 날카롭게 노래하고 연주에 몰입하는 과도한 정열. 휴식마저도 치열하고 엄숙한 양반들.
김도훈 ★★☆
커버앨범이다. 그런데 이 리스트를 보라. 픽시스, 스미
[Hot Tracks] 누구 노래처럼 들려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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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30일까지 | 매주 토·일 저녁 7시
고양아람누리 노루목야외극장 | 전석 무료
문의 1577-7766
국내 유명 음악대학 브라스밴드가 총출동한다. 브라스밴드가 생소하다면, 세 번째 싱글 <뱅!>(Bang!)으로 돌아온 걸그룹 애프터스쿨의 컨셉을 떠올려보라. 관악합주단이라고도 불리며, 바람을 이용해서 소리를 내기 때문에 윈드오케스트라로도 불린다. 이번 공연은 정통 클래식부터 영화음악, 뮤지컬 넘버, 팝송 등 온 가족을 겨냥한 레퍼토리로 짜여 있다. 5월15일 서울대, 16일 한국예술종합학교, 22일 중앙대, 23일 숭실대, 29일 한세대, 30일 성신여대가 차례로 무대를 꾸민다.
올해 3회를 맞은 ‘노루목 브라스밴드 페스티벌’은 고양문화재단이 기획한 무료 야외음악축제다. 그러니 특히 ‘가정의 달’ 행사로 가벼워진 지갑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선착순 입장이니 부지런만 떨면 된다. 비가 안 오길 기도하면서.
[공연] 노루목 브라스밴드 페스티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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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오고 있는 건 맞지만, 아직 봄의 미열이 가시지 않은 요즘이다. 봄기운이 담뿍 들어 있는 전시가 있어 소개한다. <왕릉의 전설전>은 왕릉을 테마로 작업한 젊은 작가 13명의 작품을 모은 전시다. 호젓한 풍경과 먹, 꽃, 여인이 어우러진 그림들이 영락없이 봄의 기운을 선사한다. 모르고 보아도 운치가 있지만, 이번 전시는 특별히 역사적 인물 여덟명을 염두에 두고 구성됐다. 연산군의 어머니이자 폐위된 왕비 윤씨와 계모의 계략으로 숨을 거둔 인종, 개혁을 외치다 의문의 죽임을 당한 소현세자 등이 그들이다. 이들의 사연을 현대 미술 작가들이 어떻게 재해석했는지 살펴보는 재미가 있는 전시다.
[전시] <왕릉의 전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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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빨래>
학전 그린 소극장 | 오픈런
작·연출 추민주
출연 엄태리, 정문성, 이봉련, 이미선, 맹상열, 이영기, 조훈, 강유미 등
02-928-3362
창작 뮤지컬 <빨래>가 1천회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작품으로 출발한 <빨래>는 2005년 초연 이래 이번이 6차 공연이다. 6월27일까지며, 7월7일부터 새로운 팀으로 7차 공연을 이어간다. 한국 뮤지컬의 희망으로 커가고 있는 이 작품의 매력은 뭘까.
한국사회에서 주눅 든 채 살아가는 이주 노동자들, 그들과 별반 다를 바 없는 달동네의 고단한 삶. 이렇게 보면 뮤지컬 <빨래>는 그다지 특별하지 않다. 연극과 영화, TV에서 이미 수십번도 더 우려먹은 소재가 아닌가? 그러나 <빨래>를 진부하다고 말할 수 없다. 등장인물들의 삶이 너무 우리네 삶과 닮았기 때문이다. 하나같이 지지리궁상이다. 한국에 온 지 5년 된 몽골 청년 솔롱고는 악덕 사
[공연] 남루한 일상에서 건진 비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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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아직도 급식비를 못 내거나 점심을 굶는 아이들이 있다. 하지만 나라의 허리가 되는 중산층 자녀인 아이들, 즉, 보편적인 기준에서 언급이 되는 우리나라의 아이들은 비교적 잘 먹고 잘 자라는 편이다. 잘 먹고 잘 자란다는 것은 문화적인 풍요로움도 잘 누리고 있다는 소리. 더군다나 중국의 도움으로 1천원짜리 지폐 한장이면 구입할 수 있는 아이들의 장난감도 많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어지간한 장난감이나 고가의 게임기가 아닌 이상 아이들을 감동시키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물론 그것을 준비해야 하는 어른들의 고민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잠깐 가지고 놀다가 역사의 뒷길로 사라지는 소비지향적 장난감이나 아이들에게 흥미 이상의 무언가를 전해주지 못하는 영혼이 없는 장난감은 이제 그만. 가지고 놀 수도 있으며 그 행위 중에 교육의 효과도 거둘 수 있고 더군다나 아이와 부모들이 모두 간직할 수 있는 것이라면 어떨까? 사진기가 그것이다. 물론 복잡한 작동법의 디지털카메라는 무리. 후지필
아이들을 위한 사진 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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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전주영화제에서 상영된 두편의 다른 장르의 영화를 소개하겠다. 한편은 다큐멘터리로 박동현의 첫 장편 <기무>다. 다른 한편은 전규환의 두 번째 장편 극영화 <애니멀 타운>이다.
전규환은 벌써 세 번째 영화 <댄스 타운>을 거의 찍어, 첫 번째 영화 <모짜르트 타운>과 함께 ‘타운 3부작’의 완성을 앞두고 있다고 한다. 무슨 3부작 운운하는 걸 좀 우습게 생각하는 편인데 <애니멀 타운>을 보고 그의 3부작을 모두 보고 싶어졌다. 한국에서 처음 공개된 <애니멀 타운>은 서구의 일부 영화제에서 호평받았으나 한국에서 열린 국제영화제에서는 죄다 떨어진 작품이다. 전작 <모짜르트 타운>도 마찬가지다. 내가 이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재능에 비해 과하게 구박받은 전규환이라는 감독에게 느끼는 호감 때문이다. 그는 빠른 속도로 영화를 찍고 있으며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기무>와 <애니멀
[김영진의 인디라마] 상처를 품은 도시의 표정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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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권(<씨네21> 제752)이 모두 홍상수 감독의 세계에 바쳐졌다. 이런 상황에서 무언가 말을 덧붙이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하하하>를 본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영화가 홍상수의 전작들 중에서 가장 유쾌하다는 공통된 평을 들려주고 있다. 수도 없이 자문했다. 내가 이상한 걸까? 내게는 슬픈 영화다. <하하하>는 어둡고 슬픈 것에 나쁜 것이 있다고 경고했지만, 어쩔 수 없다. 영화 속 인물들이 웃는다고 나도 같이 웃어야 하는 건 아니다. 물론 그들이 피에로처럼 울음을 감춘 웃음을 짓고 있으니 그 이면을 봐야 한다고 말하는 건 홍상수의 세계에 대한 완벽한 오해일 것이다. 그의 영화는 이면을 드러내기 위해 표면을 희생시키지 않는다. <하하하>의 인물들은 웃고 싶을 때 웃는다. 그게 전부다. 그렇다면 내 감정은 어디서 오는 걸까. 영화 속 문경(김상경)의 꿈에 등장한 이순신 장군은 “그 눈으로 보아라. 그러면 힘이 저절로 날 것이다. 네
[전영객잔] 우리, 맨 얼굴의 공포와 대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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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를 이용하게 됐다. 처음에는 무료로 쓰는 문자 메시지 정도로 생각했다. 조금 뒤에는, 만연체 방지 기능을 탑재한 블로그로 여기면 되겠다 싶었고, 지금은 삼삼오오 마실 나가 세를 넓히거나 그냥 지인끼리 (아니면 혼자서라도) 소요하는 집회를 닮았다는 생각도 든다. 어느 정도 무리는 짓되 옆에 뒤에 은근히 기웃거리며 동정을 살피는, 그렇게 대오를 포기함으로써 오히려 다른 질서가 생긴 광장 같은 느낌. 재밌다. 예전 PC통신 시절 영화퀴즈 따위를 핑계로 밤새우며 한담을 나누던 (말 그대로 트윗거리던) 채팅룸이 무한히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확장된 듯도 하고, 미니홈피에서 남의 아포리즘과 주말의 외식 메뉴, 적절하게 골라 내 센스를 전시해야 하는 배경음악 따위 장식물들을 싹 제거하고 간명한 멘트 또는 의미있는 단신의 공유만으로 너와 내가 만나자는 기획이니 은근히 즉자적인 매체 같기도 하다.
그러나 사람과 매체는 결국 자기를 알아달라는 건데(황지우 <聖요한 병원>) 소셜 네
[윤성호의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 Follower 늘려서 살림살이 나아지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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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경영이 젊은이들 사이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던 시절, 우연히 이 광우의 콘서트에 간 적이 있다. 홍대 앞 카페를 빌린 공연장에서 제일 먼저 인상을 남긴 것은 발디딜 틈도 없이 홀을 가득 메운 관객.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은 무대 앞 좁은 공간에 서서 펄쩍펄쩍 뛰며 목청 높여 “허경영! 허경영!”을 연호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게 그보다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공연장 뒤쪽의 좌석에 고요히 앉아 계시던 60~70대 노인들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눈앞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다소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허경영 콘서트 관중의 어떤 세대차이
이 희한한 관객 분포가 허경영 신드롬의 본질을 제대로 보여준다. 즉 무대 앞의 공간을 가득 메운 젊은이들에게는 허경영이 그저 새로운 종류의 ‘개그맨’일 뿐이다. 그들은 기존의 방송 코미디 프로그램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종류의 개그에 열광하는 중이었다. 반면 뒤에 조용히 앉아 계시던 할머니, 할아버지들. 그분들에게 허경영은 ‘정치인
[진중권의 아이콘] 사회의 부조리에 야유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