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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는 용감했다. 아니, 형제는 유쾌했고 또 멋있었다. 류승완·류승범 형제, 일명 ‘류 브러더스’는 어느 날 혜성처럼 등장해 한국영화계를 씹어먹을 듯한 기세로 커리어를 펼치기 시작했다. 이들을 집중 조명한 기사에 맞춰 류승완 감독의 <피도 눈물도 없이> 로케이션 현장을 방문했다.
[ARCHIVE] 류 브러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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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거릿 케네디 지음 / 박경희 옮김 / 복복서가 펴냄
어느 날의 일이다. 자고 일어나니 감쪽같이, 절벽 아래에 있던 저택이 사라져버렸다. 물론 전조는 있었다. 측량 전문가는 절벽 균열이 커지면 저택도 안전을 장담할 수 없으니 이사를 하는 게 낫겠다고, 진즉 호텔 소유주 시달에게 편지를 쓴 바 있다. 시달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고 결국 온 가족이 절벽 아래 누워 있는 신세가 되었다. 1947년 여름, 영국의 해변 휴가지 콘월에서 있었던 일이다. <휴가지에서 생긴 일>의 제목과 단란한 표지를 보면 언뜻 여름철 휴가지에서 일어난 흥미로운 멜로드라마가 연상된다. 따사로운 햇볕 아래 사랑에 빠진 연인, 다시금 애정을 회복하는 부부, 모래밭을 뛰어다니는 작은 아이들과 바다 위로 부서지는 햇살과 청량한 웃음들. 마거릿 케네디의 소설 <휴가지에서 생긴 일>에 그런 풍경이 아예 없다고만도 할 수 없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는 그보다 한층 음산하고 어두운, 멸망적 징후가
씨네21 추천도서 - <휴가지에서 생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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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리시 리스펙토르 지음 / 민승남 옮김 / 을유문화사 펴냄
글에 대한 글을 기대하고 <아구아 비바>를 펼쳤다면 이 책은 절반은 당신을 만족시킬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당신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간다. <아구아 비바>는 이해가 안되는 문단의 반복이다. 대여섯줄을 잘라내 SNS에 올린다면 그 자체로 완결성을 갖는 아포리즘이 되겠지만 이어지는 문단과 문단은 서로 연결성을 갖지 않고 있어 여러 페이지를 그저 흘려보내야 한다. ‘당신’이라고 일컬어지는 사람에게 계속 화두를 던지고 있지만 화자는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전개해 나가고 그 안에는 내러티브가 없다. 읽다 보면 “그래서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거지?”라는 생각도 든다. 난해하고 현학적으로도 느껴진다. 이 산문 안에서는 어떤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다. “내가 당신에게 글을 써야만 하는 또 다른 이유는, 당신이 내 그림에서 명확성 대신에 두서없는 말들을 수확해가기 때문이다… 이것은 책이 아니다. 왜냐하면 남들이 쓰는 방
씨네21 추천도서 - <아구아 비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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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디아 피녜이로 지음 / 엄지영 옮김 / 비채 펴냄
“엘레나는 딸이 살해당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누가, 왜 그런 짓을 저질렀는지는 모른다.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살해 동기를 찾을 수가 없다. 짐작도 가지 않는다. 그래서 이제는 자살이라는 판사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엘레나의 딸 리타는 성당 종탑에 목을 맨 채, 이미 숨진 상태로 발견되었다. 7시 미사의 시작을 알리는 종을 울리도록 신부가 탑으로 올려 보낸 남자아이들에 의해 발견되었다. 하지만 신부는 자살로 추정되는 리타의 죽음에 대해 연민을 보내지 않는다. 오히려, 딸의 죽음을 파헤치려는 엘레나에게 교만의 죄를 지었다고 말한다. “당신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현실은 정반대인데 세상이 당신 말대로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의 죄를 짓고 있다고. 문제는 엘레나가 파킨슨병을 앓고 있기 때문에 자기 몸이 자기 몸처럼 느껴지지 않은지 오래되었다는 데 있다. 딸의 죽음에 관한 진실
씨네21 추천도서 - <엘레나는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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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빈 지음 / 문학과지성사 펴냄
“운동화 안에서/ 작은 돌멩이 한 알이 굴러다니는 것을/ 알아챘을 때/ 폴은 느낀다/ 살아 있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고.” 발이 불편했던 일상의 어느 순간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고궁에 산책 간/ 내가 돌아오지 않습니다// 궁이 좋아서”라고, 풍요로운 산책의 시간을 환기하는 대목도 있다. “슈크림의 다정함이라면/ 누구에게도/ 버림받지 않을 거라고”라는 귀여운 표현을 읽으며, 달콤한 디저트를 먹던 순간을 떠올릴 수도 있다. 이 시집에는 일상의 감각들을 환기하면서, 그 감각으로 또 다른 세계를 키워나가는 시들이 있다. <눈사람을 보면 이상해>는, 어느 겨울 SNS를 달구었던 논쟁이 떠오른다. 정성껏 만든 눈사람을 굳이 발로 차서 부수는 사람들이 있다는 제보와 그들을 향한 비난이 이어지는 한편, 그런 논쟁이 있든 말든 현실에서는 눈사람을 부수는 이들이 계속 있었다. “굴러가는 머리 보면서 웃는 사람은/ 아무래도 이상해”라는 표현에 이어, 시
씨네21 추천도서 - <미래는 허밍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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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기영 지음 / 창비 펴냄
역사소설은 결말이 정해져 있다. 특히 4·3 사건처럼 수많은 주민이 죽어간 참사라면, 책에서 아무리 밝고 희망찬 내용이 펼쳐진다 해도 결말에 대한 근심과 불안을 완전히 지울 수는 없다. 육지에서 제주로 건너온 거대한 뱀의 신화에서 시작하는 제주 이야기는, 식민지 시대 제주를 무지막지하게 괴롭히고 수탈한 일제와 그에 맞서 싸우고 끌려가고 죽어간 청년들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직전에는 화산이 폭발하기라도 한 것처럼 미군이 공습을 가하는 바람에 섬은 암흑 그 자체가 되어버린다. 그렇지만 이 어두운 시절에도 두 소년 창세와 행필은 바닷가에서 일본군을 향해 방귀 뀌는 시늉을 하며 웃음을 터트린다. 드세다는 소리를 들어가며 힘들게 말 다루는 법을 배우는 창세의 누나 만옥 등 여성들 또한 제 삶을 개척해나간다. 청년들의 생기, 미래를 향한 꿈은 시대가 아무리 엄혹해도 절대 부서지지 않고 오히려 더욱 강해지는 것 같다. 그래서 슬프다. 꿈
씨네21 추천도서 - <제주도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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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우다> _ 현기영 지음
<미래는 허밍을 한다> _ 강혜빈 지음
<엘레나는 알고 있다> _ 클라우디아 피녜이로 지음
<아구아 비바> _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지음
<휴가지에서 생긴 일> _ 마거릿 케네디 지음
씨네21 추천도서 – <씨네21>이 추천하는 7월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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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배우·감독. 영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 출연, <흑교육> 연출
'LIST’는 매주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에게 취향과 영감의 원천 5가지를 물어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이름하여 그들이 요즘 빠져 있는 것들의 목록.
영화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난관을 돌파해나가는 주인공 마일스의 낙관적인 태도나 운명이 자신의 인생을 결정하지 않게 할 거라는 굳은 의지 등이 무척 인상 깊었다. 대만에서 내가 마일스 목소리를 더빙하기도 했고. (웃음)
유튜브 <老高與小茉 Mr & Mrs Gao>
전세계의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유튜브 채널이다. 기상천외하고 깜짝 놀랄 만한 일화를 들려주는데 유튜버들이 재담을 잘한다. 밤마다 틀어놓고 잠든다.
진혁신 <우리>(我们)
영화 <먼 훗날 우리>의 O.S.T다. 가수 진혁신을 좋아했는데
[LIST] 가진동이 말하는 요즘 빠져 있는 것들의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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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오컬트 드라마와 달리 SBS <악귀>는 시청자가 귀신 이미지에 소스라쳐 물러서기 전에 화면을 전환하고 흐릿한 상에, 스치는 찰나에 더 다가가게 하는 방법을 취한다. 스물다섯의 공시생 구산영(김태리)에겐 정체와 목적이 불분명한 악귀가 들락날락하는데, 이를 알기 쉽게 가시화하는 CG 사용을 않고 배우에게 맡긴 덕분에 민속학 교수 염해상(오정세)과 대화하던 산영이 “아” 하는 한마디로 매끄럽게 인격이 스위치되는 순간들을 만들어낸다. 산 사람과 귀신. 분명한 경계가 있음에도 식별하기 어려운 같음에 붙들리게 하는 것이 이 드라마의 매력이랄까. 이삿짐센터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개천 돌다리를 흥얼거리며 건너는 뒷모습이 산영의 의식을 악귀가 장악하고 있던 때임을 나중에 알고 나서 떠올린 장면이 있었다. 극에 처음 등장한 산영이 배달 일을 하며 퇴근하는 직장인 무리의 퇴사 푸념을 듣던 그 뒷모습이었다. 한강 다리에 도착해 몸을 기울이는 산영과 이삿짐 일이 끝나고 유복한 아이의 인형을
[유선주의 드라마톡] ‘악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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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아워스>
Apple TV+ ▶▶▶
액정이 다 깨진 스마트폰을 사용하며 금방이라도 시동이 꺼질 것만 같은 고물차로 난폭 운전을 하고 있는 한 여자. 이 여자의 이름은 페기 뉴먼이다. 과거 마약상이었던 페기는, 지금은 서부개척시대를 재현한 민속촌에서 파트타임으로 생계를 이어간다. 아직도 가끔씩 마약에 손대는 것 같기도 하다. <하이 데저트>는 이 문제적 인물이 큰돈을 벌기 위해 사설탐정 일을 시작하면서 생기는 일화를 다룬 시리즈물이다. 주연은 <보이후드>의 퍼트리샤 아켓, 감독은 <미트 페어런츠> 시리즈의 제이 로치이며 코미디의 대가 벤 스틸러가 제작에 참여했다.
<하모니움>
왓챠, 웨이브, 시리즈온, 티빙 ▶▶▶▶
7월19일 개봉예정인 <러브 라이프>의 감독 후카다 고지가 2016년에 발표한 작품이다. 그해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서 심사위원상을 받은 이 영화는, 살인을 저지른 한 전과자가 친
[OTT 추천작] ‘하이 데저트’ ‘하모니움’ ‘멜랑콜리아’ ‘숨 쉬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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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 감독 닉 브루노, 트로이 콴 / 각본 로버트 L. 베어드, 로이드 테일러, 파멜라 리본 / 출연 클로이 머레츠, 리즈 아메드, 유진 리 양, 프랜시스 콘로이 / 플레이지수 ▶▶▶▷
천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미래 도시 글로레스는 이제 새로운 시대로의 전환을 앞두고 있다. 특별한 혈통을 가진 사람만이 기사가 되어 도시를 지킬 수 있다는 규칙을 깨려는 한 평범한 시민 발리스터(리즈 아메드)의 존재 덕분이다. 동료 기사들과 대다수의 시민들은 평민이 기사가 되는 것에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지만 국왕의 전폭적인 지지와 연인 암브로시우스(유진 리 양)의 응원이 있기에 발리스터는 용기를 낸다. 마침내 전 국민의 관심 속에 기사 임명식이 거행되지만 그 과정에서 국왕은 살해되고 발리스터는 국왕 시해자라는 누명을 쓰게 된다. 그렇게 시작된 도피 생활에서 발리스터는 정체불명의 소녀 니모나(클로이 머레츠)를 만나게 되는데, 니모나는 자신과 함께 세상에 대한 복수를 하자는 뜻밖의 제안을 한
[OTT 리뷰] ‘니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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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지금까진 날씨 운이 따라줬다. 다음주에 태풍이 온다는데 촬영일을 비껴가길 기원 중이다.”(이한 감독) 지난해 8월31일, 서울 성수동에 위치한 한 펍에서 <달짝지근해: 7510>의 촬영이 진행됐다. 전날까지 쏟아지던 비는 그친 뒤였으나 후덥지근한 한여름의 열기는 여전했다. 그럼에도 스탭과 배우들은 이에 아랑곳없이 촬영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8월15일 개봉예정인 <달짝지근해: 7510>은 <증인> <완득이>의 이한 감독이 각색과 연출을 맡은 작품이다. 제과 회사의 천재적인 연구원 치호(유해진)가 일영(김희선)을 만난 뒤로 점차 변화하는 로맨스코미디다. 배우 차인표가 치호의 철없는 형 석호로 등장하며, 치호가 다니는 제과 회사의 사장 병훈을 배우 진선규가, 도통 속내를 예측할 수 없는 은숙은 배우 한선화가 연기한다.
“오랜만에 현장에서 <씨네21>을 만나네요.” 유해진 배우가 기자들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
[씨네스코프] ‘달짝지근해: 7510’ 촬영 현장, 달달한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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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9년 대한민국의 달 탐사선 우리호가 달을 향해 날아오른다. 하지만 태양 흑점 폭발로 인한 태양풍이 우리호를 덮치면서 대원들이 사망하고 황선우(도경수)만이 홀로 우주에 남는다. 사실 한국 달 탐사선의 비극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황선우 대원을 무사히 귀환시키기 위해 5년 전 나래호 사고의 총책임자였던 전임 센터장 김재국(설경구)이 다시 우주센터로 소환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맷 데이먼이 화성에 혼자 남겨졌던 <마션>을 비롯해 우주에 표류한 지구인을 구하는 할리우드영화는 있었지만, 한국에서 우주를 배경으로 한 대형 프로젝트가 추진된 것은 <승리호> 이후 처음이다.
<신과 함께> 시리즈를 통해 한국 VFX 기술의 최전선이 한국적 정서와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 보여줬던 김용화 감독은 <더 문>에서 우주를 배경으로 진득한 휴먼 드라마를 그려낼 예정이다. 뿐만 아니라 우주선과 달, 지구의 우주센터를 실감나게 구현한 실물 세트와
[Coming soon] ‘더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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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인도 극장가는 논란의 연속이었다. 먼저 음모론을 바탕으로 한 영화 <케랄라 이야기>가 화제였다. 일명 ‘러브 지하드’로 케랄라 지역의 수많은 여성들이 이슬람으로 개종, ISIS(이라크 시리아 이슬람 국가)에 가담했다는 설을 영화화했다. 영화는 친근하게 접근하는 이슬람 극단주의자에 의해 무슬림으로 개종한 뒤, ISIS에 가담하도록 종용받아 끝내 아프가니스탄의 감옥에 수감된 한 평범한 힌두교 여성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영화의 감독인 수딥토 센은 일찍이 같은 소재(케랄라를 이슬람 국가로 만들려는 음모론)의 다큐멘터리를 연출한 바 있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지만 영화는 사실을 지나치게 부풀려 왜곡했다. 소위 인도에 무슬림 신도들을 늘리려는 음모라는 ‘러브 지하드’는 극우 성향의 힌두교도에 의한 음모론이고, 영화 속 내용이 실제 사건을 다루고는 있지만 영화에서 표현한 대로 수만명의 힌두 여성들이 연루된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자극적인 소재의 영화는 세간의 폭발적인 관
[델리] 종교 갈등 부추기는 ‘케랄라 이야기’ 찬반 논쟁 가열, 논란의 극장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