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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다른 사건 없이 조용한, 악당도 없이 그저 어떻게든 살아가는 사람들이 등장하는 <완득이>는 ‘착한 영화’다. 학교가 배경이지만 교육문제만 다루지도 않고 외국인 노동자가 등장하지만 관습적인 인권영화도 아니다. 그런데 이 모두를 다 아우른다. 사려 깊고 따뜻하고 문득 심심한데, 스마트폰 한대도 등장하지 않는 21세기 한국의 이면을 깨알 같은 유머와 장르적 관습으로 묶는다. 이때 음악은 오직 그 정서적 설득을 겨냥한다. <박하사탕> <파이란> <호우시절>의 이재진 음악감독이다.
주로 피아노, 멜로디언, 스틸 기타가 사용된 소리는 낭만적이고 귀여운 인상을 남긴다. 최근 인디신의 경향과도 유사한데 신시사이저와 전기기타가 만드는 속도감도 긴박함보단 발랄함에 가깝다. 이 악기들은 ‘웬일인지 인간적으로 들리는 사운드’를 만든다. 대물림되는 가난과 갑갑한 현실을 비극적으로 묘사하지 않는 <완득이>에 어울린다. 엔딩 타이틀곡 <Now I
[차우진의 귀를 기울이면] 밝은 소리로 현실을 속닥속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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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동네에 가는 걸 즐기는 편이다. 주변 친구들은 여행가는 걸 좋아하는 거냐고 묻긴 하지만 그렇다고 여행도 아니고, 그렇다고 산책이라 하기엔 또 거창한 그 무엇이다. 새로운 동네를 굳이 찾아가서 새로운 가게라든가 혹은 나만 아는 장소를 찾는 일에 나름대로 희열을 느낀다. 이사를 가도 일주일은 동네를 서성이며 나만의 공간을 찾는 데 열을 올리기도 했다. 커피가게가 있을 것 같지 않은 동네에서 우연히 커피가게라도 찾으면 한동안 그곳만 가기도 하고 아무도 신경쓰지 않지만 스스로 단골이라고 칭하며 앞으로 그곳만 가겠다고 다짐도 한다. 물론 이사가면 거의 가진 않지만. 그래서 굳이 여행을 가더라도 여행객이 가지 않는 동네를 주로 돌아다니는 편이다.
3년 전 일본 여행(사진)을 다녀온 적이 있다. 여행이라고 해서 다녀왔는데 내가 간 곳은 동네만 간 것 같다. 일본 동네 이곳저곳을 돌다가 절대 가게라곤 보이지 않는 곳을 헤매다가 짠! 하고 무엇을 파는지도 알 수 없는 가게가 나타나기도 했다
[타인의 취향] 동네 탐색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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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평점은 일반인 평점보다 낮은 게 보통이다. 한데 <LA타임스> <월스트리트 저널> <USA 투데이> <버라이어티> <보스턴 글로브> 등이 모두 만점을 준 TV시리즈가 있다. 2011년 1월과 10월 미국의 공영방송채널인 <PBS>의 ‘마스터피스’ 프로그램을 통해 시즌1, 2를 방영한 <다운턴 애비>가 그 주인공이다. <다운턴 애비>는 2011년 에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여우조연상, 감독상, 촬영상, 각본상까지 모두 5개 부문을 수상했고, 2011년 평론가들에게 극찬을 받은 드라마로 기네스북에도 이름을 올렸다. 사실 <다운턴 애비>의 고향은 영국이다. 코너명에 버젓이 ‘미드’라고 써놓고 영드를 소개하는 이유는, 최근 미드의 재미와 만듦새가 조금 주춤하기도 하고, 내 입장에서는 미드나 영드나 똑같이 외화일 뿐이라서 굳이 국적을 구분해 재미있는 시리즈를 소개할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기
[안현진의 미드 앤 더 피플] 감탄할 만한 완성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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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꼭 그렇지만도 않지만 이십대 초반의 나는 상당히 엄격하고 보수적인 관객이었다. 특히 연기자는 다른 것보다 일단 연기를 잘해야 좋은 배우라 할 수 있고 가수는 얼굴이 잘생겨야… 아, 이게 아니지. 어쨌든 배우에게 ‘꽃미남’이니 ‘패셔니스타’니 하는 호들갑스런 수식어를 붙여 띄우는 매스미디어의 행태에 코웃음을 칠 만큼 냉철한 판단력을 지닌 차가운 도시 여대생이었단 얘기다. 그러니 ‘강동원’이라는 꽃미남 모델이 ‘귀여니’ 원작의 영화 <늑대의 유혹> 주연을 맡았다며 같이 보러 가자는 친구의 말에 떨떠름한 반응을 보였음은 당연한 일이었다. 패션에 문외한이라 모델 중에 제일 잘생기고 잘나간다는 강동원이 누군지 잘 모르기도 했지만 귀여니라니, 귀여니라니! 당시 “ㅎㅓ걱… ㄸl용… ㅇ_ㅇ…”이나 “꺄악!!!!!!>_<!!!!!!!!!!몰라 난 몰라 >_<” 따위 한글 파괴 소설이 베스트셀러에 오른 작금의 현실을 한탄해 마지않던 나에게 그 이름은 한국 문학계
[최지은의 TVIEW] 선입견을 버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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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오늘만 같아라' 제작발표회 현장.
[김갑수] "막장 드라마 아니라서 출연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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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머니볼' 기자간담회 현장.
[브래드 피트] "안젤리나 졸리에게 한국 이야기 많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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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9월17일 시작된 월가 점령 시위가 격화되자, 금융가의 상징물 황소 동상을 경찰 병력이 경비하고 나섰다. 시위대의 분노가 금융 지구를 대변하는 상징물에 위해를 가할까 우려한 결과다. 어느덧 월가의 황소상은 1% 금융자본의 대표 조형물로 시위대와 경찰 모두가 인정한 꼴이 되었다. 모든 시위의 도화선은 사회 부조리지만 집회를 살찌우는 매개는 문화운동의 개입일 때가 많다. 프랑스 68혁명 당시 유행한 반사회적 낙서문화는 상황주의 인터내셔널의 전략에서 가져온 것이고, 차가운 정치 구호와 성해방의 따끈한 요구가 나란히 구호에 쓰였다. 시위대/군중의 분산된 시선을 모으는 데 시각예술처럼 적절한 구심점은 없다. 예술은 직설적인 메시지를 유연하게 다듬는 필터링 효과를 지닌다. 구약에 등장하는 금송아지는 군중을 유인하는 시각 상징물로서, 추종자의 종교적 패륜과 속물적 탐욕을 연결짓는 적절한 모티브로 쓰인다. 야훼를 뵈러 시나이 산에 오른 모세의 부재를 틈타 다른 우상을 섬긴 어리석은 대중
[반이정의 예술판독기] 월가를 점령하라 vs. 금송아지를 점령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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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문화인입니까. 당신의 문화는 혹시 반쪽짜리는 아닌지요. 소비만 하면서 문화를 만끽한다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영화를 꼭 한번 만들어보겠다는 꿈을 가진 적이 없어도 좋습니다. 고가의 카메라를 갖고 있지 않아도 좋습니다. 관련 학과를 졸업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누군가와 무엇이라도 주고받고 싶은 마음이면 충분합니다. 미디액트(www.mediact.org)와 <씨네21>이 함께하는 영상공작소는 영상으로 대화하고픈 독자와 관객과 시민의 마음이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도울 것입니다. 네 번째 지상강좌 주제는 ‘원테이크 라이브 음악 영상’ 만들기입니다. 안내자는 음악영상블로그 렉앤플레이의 운영진으로 활동 중인 고아침입니다. 어떤 뮤지션의 영상 작업이나, 주변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를 화면에 담아두고 싶다거나, 음악이랑은 상관없지만 뭔가를 카메라로 찍어서 웹에 공유하고 싶다면 유용한 매뉴얼이 될 것입니다.
라이브 음악 영상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스페이스 공감
[영상공작소] 동시대 음악의 기록이자 공간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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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의 일치인지 모르지만 한 나라가 사회경제적 위기를 맞이할 때 그 시기를 전후해 자국영화의 ‘부활’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다. 1990년대 후반의 한국영화가 그러했고, 최근의 그리스영화가 그러하며, 특히 아르헨티나영화는 2001년 경제위기를 전후해 파블로 트라페로의 비범한 데뷔작 <크레인 월드>(1999)를 기폭제로 (안타깝게도 두편의 장편만 남기고 요절한) 파비안 비엘린스키나 다니엘 부르만 같은 상업영화 감독은 물론이고 리산드로 알론소와 루크레시아 마르텔 등 뛰어난 독립영화 감독들을 배출해내며 국제적인 주목을 얻었다. 여기에 좀더 독립적인 방식으로 작업해온 마리아노 이나스, 알레호 모길란스키, 마티아스 피녜이로-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와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가 시나리오를 쓴 기상천외한 정치SF <인베이전>(우고 산티아고, 1969)은 이 그룹의 영감의 원천이 된 영화로, 최근 복원되어 올해 토론토와 뉴욕영화제에서 특별상영된 바 있다- 까지 더하면 21세기
[유운성의 시네마나우] 위기에서 부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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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 근대철학의 초석을 놓은 이 유명한 명제를 모르는 이가 있을까? 데카르트는 이른바 ‘방법적 회의’를 통해 결코 의심할 수 없는 이 명제에 도달한다. ‘세상의 모든 것을 의심하자. 심지어 내가 보고 듣고 아는 모든 것이 실은 악마가 내 두뇌에 일으킨 간교한 속임수일지 모른다고 생각하자. 그럴 때조차도 내가 생각하는 한 존재한다는 사실만은 결코 의심할 수 없다.’
코기토의 철학
건물을 지을 때 초석부터 놓는 것과 같다고 할까? 데카르트는 이 자명한 명제 위에 확실한 지식의 체계를 세우려 한다. 토대가 튼튼하면 건물이 흔들리지 않는다. 지식의 체계 역시 흔들리지 않으려면 토대가 확실해야 한다. 근대의 모든 사상은 다소간 데카르트에서 유래하는 이 정초주의(foundationism)의 경향을 갖고 있다. 오늘날에도 학술서적의 제목에 종종 ‘기초’(foundation)라는 건축의 은유가 사용되지 않던가.
이 자명한 명제
[진중권의 아이콘] 데카르트의 고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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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30일
밀린 <BBC> 영화 팟캐스트를 들으며 빨래를 개는데, 서울에 사는 청취자가 보낸 사연이 소개됐다. 주한 영국인으로 짐작되는 이 애청자는 프랭크 다라본트 감독의 <Shawshank Redemption>이 한국에서는 <쇼생크 탈출>로 개봉했다며 제목이 대놓고 스포일러라는 사실에 깊은 충격을 받았다고 토로해왔다. 추측하건대 주변 한국인 친구들이 이 지적에도 심드렁했던 점이 고국의 팟캐스트에 호소하고픈 심정을 발동시킨 모양이었다. 진행자 사이먼 마요와 평론가 마크 커모드는 “호오, 과연 그렇군요. 영화가 얼마간 진행될 때까지는 팀 로빈스가 탈옥을 할지 안 할지 모르잖아요?”라면서 공감을 표해주었다. 흠, 나 역시 어찌된 영문인지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문제다. 덧붙여 <장화, 홍련>의 일본 개봉 제목인 <단스>(장롱)를 보고 뭐 이런 노골적인 힌트가 제목이냐고 내가 펄쩍 뛰자 일본 친구가 어깨만 으쓱했던 허무한 추억이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싸움 대상 감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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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장사양
OS: 윈도 7 64바이트
프로세서: QUAD-CORE CPU
메모리: 4GB
하드 드라이브: 20GB
그래픽 카드: DIRECTX 11 COMPATIBLE WITH 1024 MB RAM(NVIDIA GEFORCE GTX 560 OR ATI RADEON 6950)
흐린 듯 개어 있는 날씨, 하지만 저 멀리 커다란 화재가 났었는지 엄청난 연기가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다. 실제로 타는 듯한 냄새가 날 것 같다. 그곳을 목표로 부지런히 뛰고 있는 분대원들이 모래 먼지를 피워올리고 있다. 입 안에 서걱하니 모래가 씹히는 듯하다. 이것은 실제의 전장일까? 이런 엄청난 그래픽은 단순히 게임이라고 하기엔 장면의 퀄리티가 지금껏 접해보지 못한 것이다. <콜오브듀티>와 밀리터리 FPS의 양대 산맥 중 하나가 된 <배틀필드>의 최신작, <배틀필드3>의 플레이 화면이다.
<배틀필드>는 멀티플레이에 집중된 게임이다. 뿐만 아니라 기존의 FPS처
[gadget] 여기가 바로 전쟁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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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낙원>의 집필 당시, 시인 존 밀턴은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었다. 평생을 헌신했던 정치적 혁명은 실패로 돌아갔고, 이미 여러 명의 자식들이 세상을 떠난 뒤였다. 양쪽 눈마저 완전히 실명한 상태에서, 그는 천지창조와 인류의 타락에 대한 장대한 서사시를 구술하기 시작한다. 태고의 신화를 통해 현실의 질곡을 넘어서고자 했던 것이다. 밀턴처럼 고통은 때로 범우주적인 시간관을 요한다.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영겁의 시간 속에 현재를 하나의 점으로 위치시킴으로써 비로소 비극적 현실을 마주할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트리 오브 라이프>가 담아낸 우주적 시간도 이 맥락에 닿아 있다. 아들을 잃은 오브라이언 부부의 슬픔과 중년의 잭이 느끼는 염증은 곧 우주의 빅뱅과 생명체의 탄생에 대한 숭고한 이미지들로 이어진다. 마치 영화의 서두에 쓰인 욥기의 한 구절(“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을 화면에 옮긴 듯, 일차적으로 이 이미지들은 신이 어디에 있으며
[영화읽기] 우주라는 휴머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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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거슬리는 결점마저 애써 눈감아버리고픈 영화가 있다. 간간이 눈에 밟히는 결점이 있더라도 미간을 찌푸리거나 냉소하기보다는, 그래도 나는 이 영화가 참 좋다, 라고 말하고 싶은 영화. <완득이>가 세계의 단면적인 묘사에 머물고 말았다 해도, 생기 가득한 인물들이 얽히고설키며 소소하게 풀어내는 흥겹고도 정겨운 이야기는 이러한 아쉬움을 상쇄하기에 충분하다. 21세기 신자유주의 시대의 <꼬방동네 사람들>로 완성되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비루한 것들의 카니발’이 발산하는 생동감은 근래 어떤 작품에서도 느끼지 못한 감흥을 준다.
조화(調和)로운 조화(造花)의 낙원
<완득이>에는 악인이 등장하지 않는다. 더구나 빈곤, 장애, 다문화 가정, 이주 노동자, 결손 가정과 교육에서의 차별 등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건드리는 것과 달리, 그 어떤 영역에서도 첨예한 대립과 갈등은 발생하지 않는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물론 외국인 노동자를 추방하거
[전영객잔] 소통과 연대에서 비롯하는 낙관의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