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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퀘벡 출신인 당신이 중동지역 이야기를 영화로 만드는 것에 대해 망설였던 순간은 없었나.
=물론, 감독이 자기가 잘 모르는 대상에 대해 영화를 만드는 건 좋지 않은 선택이다. 난 중동 출신도 아니고 전쟁을 겪어본 적도 없다. 그러나 가족과 분노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다. ‘친밀함’이라는 주제를 통해서만 <그을린 사랑>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 영화의 주제는 ‘가족’이니까. 나의 전작 <폴리테크닉>은 20여년 전 내 고향의 대학에서 벌어졌던, 여성혐오에서 비롯된 아주 슬프고 끔찍한 살상사건을 다루고 있다. 당시 내가 그 영화를 만드는 게 불가능할 거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바로 내 고향에서 일어난 사건인데다 너무 끔찍한 비극이라 그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가 금기시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영화를 만들면서 객관적인 시각을 견지하기가 힘들 거라고들 했다. <그을린 사랑>은 그 반대의 경우였다. 두 경우 모두 나름의
<그을린 사랑>은 위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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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당시 모두들 수군거렸다. “<그을린> 봤어?” 캐나다에서 날아온 이 낯선 영화는 부산 최고의 화제작이었다. 이 영화가 <그을린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개봉한다. 언뜻 기이한 제목은,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나면 이해가 간다. 프랑스어 원제 ‘incendie’는 ‘화재, 전란, 감정의 고조, 폭발’ 등을 뜻한다. 실상 ‘그을린’이라는 표현은 영화 내용을 그대로 함축하는 원제에 비해 대단히 우아한 시적 압축이다. <그을린 사랑>은 그 자체로 격렬한 폭발이기 때문이다.
비밀스런 여인 나왈 마르완(루브나 아자발)이 숨을 거둔다. 나왈의 상사였던 공증인 르벨은 쌍둥이 자녀 잔느(멜리사 드소르모-풀랭)와 시몽(막심 고데트)에게 그녀의 유언장을 건넨다. 뜻밖의 유언에 잔느와 시몽은 당황한다. 자신의 무덤에 관도, 비석도, 비문도 필요없다며, 죽은 줄로만 알았던 생부와 존재조차 몰랐던 형제를 찾으라는 것이다. “침묵이 깨지고 약속이 지켜지는 그때
진실 앞에서 침묵을 깨뜨려라 분노의 흐름을 끊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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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비스> Rabies
나봇 파푸샤도, 아하론 케샬레스 | 이스라엘 | 2010년 | 90분 | 월드 판타스틱 시네마
사냥꾼으로부터 여동생을 구해내려는 오빠의 노력은 좀더 복잡한 우연의 연쇄 속으로 빠져들고 만다. 문제는 누가 이 숲속을 살아서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인가이다. 인물들은 단순히 상대의 행동에 대한 반응으로서 자신의 행동을 결정할 뿐이지만 그 결과는 매번 죽음이다. 그중 쉬르라는 인물은 특정한 싸움상대가 아닌 살인의 풍경에 반응한다. 털끝 하나 다치지 않고 숲을 빠져나왔으면서도 그녀는 넋을 잃고 자살하듯 달려오는 차에 몸을 내맡긴다. 이때쯤 그녀가 아디와 함께 저 멀리서 굽이친 길을 돌아 접근하는 경찰차를 오래도록 바라보았던 기이한 장면이 다시 떠오른다. 그 길로 들어서는 바람에 시작된 악몽에서 우연과 필연의 비율은 몇 대 몇일까. 치밀한 리듬감이 서늘함을 자아내는 영화다.
<앰피비어스 3D> Amphibious 3D
브라이언 유즈나 | 네덜
즐겨라! 괴성과 광란의 파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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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롤 사냥꾼> Troll Hunter
안드레 외브레달 | 노르웨이 | 2010년 | 103분 | 월드 판타스틱 시네마
파운드 푸티지 장르에 가능성이 남아 있기나 한가. 누군가가 찍은 영상을 뒤늦게 발견해 상영한다는 파운드 푸티지의 전성기는 <블레어 윗치 패러디>가 막을 올렸고 <클로버필드>가 일종의 막을 내렸다. 웬걸. 노르웨이 영화쟁이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트롤 사냥꾼>은 북유럽 설화에 등장하는 괴물 ‘트롤’을 소재로 한 파운드 푸티지 영화다. 일단의 다큐멘터리팀이 노르웨이에 급증한 살인곰 케이스를 쫓기 위해 곰 사냥꾼들을 찾아다닌다. 여정의 와중에 그들은 미스터리한 사냥꾼을 만나게 되고, 그가 정부의 명령을 받고 비밀리에 트롤들을 관리하는 남자라는 걸 알게 된다.
북유럽에서 온 작은 영화라고 웃어넘길 필요는 없다. <트롤 사냥꾼>은 스펙터클의 규모로도 <클로버필드>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특
즐겨라! 괴성과 광란의 파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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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명과 피로 난무할 광란의 계절이 돌아왔다. 15주년을 맞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상영작들은 장르 명장들의 이름값보다 미지의 나라에서 탄생한 신선한 장르영화들의 발견에 초점을 맞춘 듯 보인다. 노르웨이에서 만든 괴수영화부터 인도의 히어로영화까지 추천작 20편을 직접 보고 골랐다. 예매할 여력이 남아 있다면 참조하시라.
즐겨라! 괴성과 광란의 파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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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언 형제를 좋아한다. 96년인가 개판 그 자체였던 학점에 생각만 많던 ‘잉여’ 시절, 학교 앞 비디오방에서 혼자 <파고>를 보고 거기 알바생과 밤새 얘기를 나눈 기억 때문인지도 모른다. 절제된 연출과 대사는 간결한 기도문처럼 확고하고 우직하게 정의를 구현하니 어쩌니 나불댔던 것 같다. 형제의 오랜 벗, 작곡가 카터 버웰이 스코어를 맡은 <더 브레이브>도 그랬다.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모험을 떠나는 14살 딸내미가 주인공인 영화는 원작 소설의 대사와 배경을 거의 그대로 재현한다. 이때 사운드트랙은 원작의 권위(그대로 옮길지어다!)에 맞서는 배수진(이건 내 영화라고!)일 수밖에 없는데, 19세기 찬송가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스코어는 그 최종 방어선을 견고하게 지켜낸다. 아일랜드 민요의 흔적이 강한 19세기 미국 찬송가는 얼핏 우울하지만 사실상 신념에 차 있다. 특히 앤서니 존슨 쇼월터의 1888년 곡 <Leaning on the Everlasting Arm
[차우진의 귀를 기울이면] 어쨌든 삶은 지속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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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뭐 하냐? 약속 있다고? 술 한잔 하려고 했지!”
괜스레 여기저기 전화 걸어보고 없는 약속도 만들 판이다. 귀찮은 마음에 나 자신과 한없이 타협하려고 하지만 끝내 발걸음은 그곳으로 향하고 있다. 발길이 닿는 곳은 웨이트 훈련장. 흔히들 하는 표현이 헬스장, 조금 더 고급스럽게 포장한다면 fitness, gym이라 표현하는 그곳이다.
왜 사진 찍는 사람이 웨이트를 하냐고 반문을 많이 하지만, 그건 큰일날 소리이다. 영화나 텔레비전에서 보는 것처럼 절대 화려하지 않은 것이 포토그래퍼니깐 말이다. 잘 알고 지내는 포토들과 주고받는 농담 중에 우리는 포토가 아니라 포터(자동차 1.5t 트럭)라는 표현이 있다. 그만큼 고되고 힘이 필요한 일이라는 말이다. 사진 장비 하나가 웬만한 아령에 버금갈 정도로 무게있고, 장시간 고된 자세로 촬영에 임하다 보면 여기저기 뼈마디와 관절에서 신호를 보내온다. 치열한 현장이나 기자회견장에선 이종격투기 못지않게 몸싸움이 일어나는 곳이니깐 말이다. 체
[타인의취향] 웃통 벗을 때의 자신감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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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회사 점심시간이었다. 근처 식당에 앉아 밥술을 뜨는데 어디선가 ‘뚜뚜루뚜루뚜뚜’ 하는 노래 추임새가 들려왔다. 소리의 근원은 컴퓨터에 연결된 식당 스피커. 점점 더 급박한 호흡으로 달려가는 그 ‘뚜뚜루뚜루뚜뚜’에 정신이 팔려 밥을 대충 우겨넣고 사무실로 돌아와 인터넷 검색창을 열었다. 검색어는 당연히 ‘뚜뚜루뚜루뚜뚜’. 아 이게 장안의 화제라는 김범수 버전의 <님과 함께>로구나!
이소라의 <넘버원>도 식당에서 들을 노래는 아니긴 하다. 오늘도 한목숨 이어가자고 밥숟가락을 들었는데, 저승의 뭐라도 능히 소환할 수 있을 것 같은 ‘흐어으흐으흐’ 하는 노래 소리가 들려오면 괜히 국건더기를 뒤적이며 ‘여긴 어디고, 나는 누군가?’를 되묻게 된다. MBC <나는 가수다>(이하 <나가수>)를 생방송으로 보게 되면 누군가 탈락하게 되는 형식의 긴장감도 있고 무대에 도취된 가수와 관객의 영상이 있으니 감동을 주거나 얻기 쉬운 상황이겠지만 그런
[유선주의 TVIEW] 비장미라는 감수성에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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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면 이해하기 힘든 일이 있다. 당시에는 모든 게 너무나 당연했겠지만 지금 생각하면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일들이 있다. “글쎄, 옛날 옛적에는 모든 글을 원고지나 종이에다 썼다지 뭐야”라고 할 때가 언젠가는 올 테고, “예전에는 휴대전화기에다 손가락으로 문자를 찍어야 메시지를 보낼 수 있었대. 믿거나 말거나지만 말야”라며 시큰둥하게 말하고는 ‘휘리릭’ 음성인식문자를 발송하는 때가 언젠가는 오지 않을까? 나는 도무지 미래를 상상하기 힘들다.
‘모뎀’이라는 걸 사용하여 ‘PC통신’이라는 걸 했던 때가 수백년 지난 것 같고(그럼 지금 내 나이는 몇살?), 가끔은 전생의 일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이제 겨우 20년쯤- 20년이면 많은 세월이 흐른 건가?- 지났을 뿐이다. 무슨 레지스탕스라도 된 것처럼 부모님이 전화를 사용하지 않는 야간 시간을 이용해 컴퓨터에 접속한 다음 (한밤중에 통화하려고 전화기를 들었던 부모님은 뚜 뚜우 하는 신호를 들으면서 정말 아들이 스파이가 아닌가 의
[김중혁의 No Music No Life] 새로운 우주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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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맞이한 대만영화계. 2011년 대만영화의 상황을 정리하면 이렇다. 먼저 기회. 올 상반기에 개봉한 영화 중 <계비영웅>(鷄排英雄)은 1억3천만위안을 벌어들임으로써 대만영화 역대 흥행 3위에 올랐다. <계비영웅>의 흥행은 대만이 자기만의 하세편(賀歲片) 방식을 정착할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홍콩과 중국에서는 매년 구정에 개봉하여 흥행을 성공시키는 ‘하세편’이 있다. 주로 코미디영화에 호화캐스팅 등이 공식이다. 대만은 지난해 니우치엔저의 <몽가>가 설날에 개봉하여 역대 대만영화 흥행순위 2위에 해당하는 2억6천만위안의 수입을 기록한 바 있다.
7월과 8월에 개봉예정인 인터넷 소설작가 겸 감독인 기덴스(필명)의 <내 눈에 당신은 사과>, 린유시엔의 <점프 아신>, 리펑보의 <살인하지 않는 킬러> 등이 각 1억위안 이상의 흥행수입을 올릴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게다가 하반기에는 최고
[ 김지석의 시네마나우] 다음 기적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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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우 작가의 <Seven Days> 연작 중 <Sunday Morning>(2010-11). 일요일 오전의 현금출납기. 작가는 장소와 상황에 대한 정보를 교묘히 지웠다. 그러니 이야기는 내 안에서 시작될밖에. 휴일 이른 아침, 나는 무엇 때문에 갑자기 돈이 필요해졌을까? 텅 빈 냉장고? 데이트? 전쟁?
6월27일
“이야기는 허술한데 비주얼은 뛰어나다.” 극장 출구를 나서면서 1년이면 줄잡아 마흔번은 듣는 말이다. 그리고 마이클 베이 감독의 <트랜스포머> 시리즈는 1편이 나온 2007년 이후 그런 부류 영화들의 종족 대표로 공인됐다. 3D로 만들어진 세 번째 <트랜스포머>까지 공개된 지금 나는 다만, “스토리는 별것 없지만 눈은 호강한다”는 우리의 입에 달라붙은 표현이 신중히 재고되길 바란다. <트랜스포머3>의 비주얼은 결코 뛰어나지 않다. 아니, 비주얼은 <트랜스포머3>의 가장 큰 약점이다. 무엇인가 눈앞에서 계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비주얼은 좋다고요? 확실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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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익숙해졌지만 유학에서 막 돌아왔을 때는 방송이 무척 낯설게 느껴졌었다. 정서에도 기후가 있다면 독일사회는 한랭건조하고, 한국사회는 고온다습하다. 건조한 기후에 살다가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이야기로 가득 찬 습식 TV를 보는 것은 한랭건조한 기후 속에 살다온 사람에게는 정서적으로 힘이 드는 일이었다. 장르의 구별 없이 모든 프로그램이 ‘드라마’를 지향하는 것도 그렇지만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뉴스의 리포트 꼭지에조차 감정을 자극하는 서정적 음악을 배경으로 깔아놓는 관습이었다.
모니터에 흐르는 눈물
옛날에는 동네 영화관의 영화에 비가 내리곤 했는데, 요즘은 HD TV 모니터에 비가 내리는 듯하다. 물론 우연의 일치겠지만 리모컨으로 채널을 돌리다 보니 여기저기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드라마에서는 배우가 울고,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는 참가자가 울고, 또 다른 프로그램에서는 아예 합창단원 전체가 운다. 하지만 TV가 흘리는 눈물에도 10년 사이에 약간의 변화가 있었던 것
[진중권의 아이콘] 감정과잉의 오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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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산개>는 분단의 정황을 이야깃감으로 삼은 일단의 한국영화들이 부려놓은 장르적 기대 위에 서 있는 작품이다. 물론 김기덕이 각본을 쓰고 제작까지 한 까닭에 몇 가지 설정은 노골적으로 김기덕의 작풍을 계승하고 있지만 ‘김기덕’은 이 영화를 논평하는 유용한 열쇠어가 아니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 실어증에 걸린 허깨비 같은 주인공이 활약하는 이야기라는 것이나 그가 카메라를 든 사나이라는 것(카메라를 통한 자기 반영성은 최근 김기덕 영화에 빈발하는 형식적 모티브다), 그와 관련된 인물들이 하나같이 간악하기 이를 데 없는 존재들이라는 것 외에 한 실향민 노파의 입을 통해 노래 <아리랑>을 부르게 한다는 사실 정도가 김기덕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이런 몇 가지 이유로 김기덕을 불러오는 것은 <풍산개>에 대한 바른 독법이 되지 못한다. 도리어 <간첩 리철진>(1999), <공동경비구역 JSA>(2000), <웰컴 투 동막골>(
[전영객잔] 침묵이 덮을 수 없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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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산개>는 강한 의미에서 ‘김기덕 사단’의 영화다. <영화는 영화다>(2008) 역시 김기덕의 원안을 바탕으로 해서 장훈 감독이 연출한 영화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그 영화에는 기존의 익숙한 ‘김기덕의 세계’와는 달라 보이는 구석이 있다. 무엇보다 그 영화의 주인공인 강패(소지섭)와 수타(강지환)는 전형적인 김기덕 캐릭터와는 일정한 거리가 있는 인물이고, 그 둘 사이에서 형성되는 역학 관계도 이전의 김기덕 영화에서는 볼 수 없던 것이다. 둘 모두 김기덕의 영화 세계 속에 서식하던 김기덕식 ‘단독자’ 또는 ‘짐승-인간’의 형상과는 다른 인물이다. 가령 <나쁜 남자>의 조재현-한기와 <영화는 영화다>의 소지섭-강패는 똑같은 깡패 두목이지만 둘은 전혀 다른 캐릭터다. 그리고 그 이전의 김기덕 영화에서 ‘버디무비’적 코드가 차용되었던 적도 없다. ‘김기덕 영화’와 ‘김기덕 사단’의 영화에 어떤 차이가 있다면 후자가 좀더 적극적으로 장르적 코드를 차용
[영화읽기] 비장함에 숨은 수수께끼의 감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