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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나에게 ‘늙음’은, 더이상 누군가의 성적 대상이 되지 못하는 시간이다. 아내가, 애인이, 혹은 어떤 여자들이 나를 욕망하지 않을, 그러니까 만지고 싶지 않을 때가 오리라는 각성은 괴이하기보다는 슬프다(여자들도 그렇지 않을까). 그래서 <은교>는 몸에 대한, 요컨대 살에 대한 영화다. 사랑이란 마침내 살을 쓰다듬는 감촉이자 감정이므로 그렇다. 하지만 타인의 육체를 향한 욕망에는 ‘사회적’ 맥락들이 여지없이 개입한다. 금기는 그렇게 탄생한다.
몸과 욕망, 금기와 사랑에 빗대어 감각의 본질에 다가가려는 <은교>에서 음악이 중요한 건 그 때문이다. 더블베이스와 클라리넷의 대비되는 톤은 불안과 긴장을 반영하지만 피아노와 첼로, 바이올린의 얇은 음색은 간절한 서정을 빚으며 그 욕망의 불편함을 걸러내고 가면을 덧씌운다. 인상적인 두 신, 유리문을 두고 이적요와 은교가 마주보는 때와 두 사람이 비로소 이별하는 엔딩에 흐르는 테마는, 이 민감한 러브 스토리를 드디어
[차우진의 귀를 기울이면] 영화를 지배하는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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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이 어떤 이름을 기억하게 되는 가장 좋은 계기는 그가 세운 업적이 아닌 그가 휘말린 사건과 사고다. 플레이보이와 그에게 빌붙어 사는 별볼일 없는 부자(父子)의 이야기인 <두 남자와 1/2>과 따분하고 재미없는 사람들이라고 오해받는 물리학자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시트콤 <빅뱅이론>이라는, 지금 미국에서 시청률 1, 2위를 다투는 두편을 만든 척 로리 역시 이름을 만천하에 알린 계기는 따로 있었다. 바로 <두 남자와 1/2>에서 플레이보이 찰리를 연기하는 찰리 신과의 공개적인 싸움이다. 찰리 신이 라디오 인터뷰에서 로리를 인신공격하며 불거진 둘 사이의 불화는, 로리가 신을 해고하고 애시튼 커처를 새로운 주인공으로 초대해 완전히 새로운 쇼를 만드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TV, 라디오, 인터넷 할 것 없이 사람들은 찰리 신과 척을 친 남자가 누구인지 궁금해했다.
척 로리라는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라도 그가 만든 시트콤을 한번이라도 보았다면 에피소
[안현진의 미드 크리에이터 열전] 가짜 웃음소리는 절대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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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사노바에게 아내를 유혹해 달라고 부탁한 남자의 결별 프로젝트를 그린 코믹 로맨스 '내 아내의 모든 것'은 오는 5월 17일 개봉 예정이다.
[임수정]"많은 대사에 멘탈붕괴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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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으면 좋은 거고 싫으면 싫은 거지, 좋으면서도 싫고 싫으면서도 좋은 건 뭘까요? 솔직히 잘생긴 외모는 절대 아닌데 일주일 이상 그 사람을 못 보면 가슴이 답답해요. 그렇다고 성격이 좋으냐 하면 그것도 아니고 초면에도 막말에 사생활이며 재산이며 예의 없는 질문은 어찌나 많이 하는지. 그런데 그 사람, 그나마 지금은 좀 나아진 거고 예전에는 차마 입에 담을 수 없게 심한 말도 정말 많이 했어요. 아마 다른 사람이 그랬다면 절대 용서하지 못했겠죠.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사람만은 버리기가 힘드네요. 머리로는 나쁜 놈이라 생각하면서도 다음 순간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귀기울여 웃고 있는 저 자신을 발견해요. 제가 너무 개념이 없는 걸까요?”
-염창동에서 최모양
그렇다. 김구라 얘기다. 정확히 말하면 MBC <황금어장-라디오 스타>(이하 <라디오 스타>)의 김구라 말이다. 사실 아무리 생각해도 용서는 안된다. 경찰의 집창촌 단속에 항의하기 위해 전세버스를 타고 국
[최지은의 TVIEW] 좋으면서도 싫고 싫으면서도 좋은 이 사람, 어찌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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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소나’(persona)라는 말이 있다. 한 개인이 제 본래 성격과 관계없이 밖으로 보이고 싶어 하는 성격을 가리키는 말이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이 심리학 용어는 원래 그리스의 연극에 사용되던 ‘가면’에서 유래했다. 오늘날과 달리 고대 그리스의 연극에서는 배우들이 무대 위에서 늘 가면을 쓰고 연기했다고 한다. 본래의 얼굴을 감추고 겉으로 다른 얼굴을 내세운다는 점에서 연극의 ‘페르소나’와 심리학의 ‘페르소나’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다.
고대 그리스의 연극에서는 왜 가면을 사용했을까? 거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고 한다. 먼저 고대에는 배우 한 사람이 동시에 여러 배역을 담당하다 보니 그 인격의 차이를 나타내기 위해 가면을 사용해야 했다. 게다가 당시에는 종교적 제의의 흔적인지, 여성이 배우가 되어 무대에 오르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결국 여성의 역할도 남성이 해야 했기에 배우와 배역의 성차를 지우기 위해서도 가면이 필요했던 것이다.
가면은 극적 효과를 위한 것이기도
[진중권의 미학 에세이] 페르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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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십대와 삼십대를 함께했던, <배철수의 음악캠프>에 출연했다. 가문의 영광까지는 아니더라도 이 계절의 영광으로 쳐주고 싶은 사건이었다. ‘사람과 음악’이라는 코너였는데, 선곡부터 애를 먹었다. 다섯곡? 세상에, 나의 30년 음악인생을 고작 다섯곡으로? 시디장을 보면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김중혁이라는 사람을 어떤 음악으로 설명해야 하나. 설명이 되긴 되나. 그렇게 힘들게 고른 다섯곡의 음악이 무엇이냐 하면, <배철수의 음악캠프> 게시판에 가서 보시고요, 하하, 첫곡만 알려드리자면 킨크스(Kinks)의 <Sunny Afternoon>이었다. 라디오에서도 말했지만 킨크스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들의 엉성함 때문이다. 비틀스 때문에 음악과 사랑에 빠졌고, 여전히 그들의 노래에 감탄하지만, 이상하게 깊은 정이 느껴지질 않는다. 완벽해서 그런 게 아닌가 싶다.
비틀스에 비해 킨크스는 엉성하기 짝이 없다. 레이 데이비스의 까끌까끌한 목소리가 좋고, 후크
[김중혁의 최신가요인가요] 허술해서 빠져들어, 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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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 밴드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의 ≪우정 모텔≫ 앨범 속에 수록된 <생두부>라는 곡이 있다. 최근에 내가 가장 열광적으로 좋아한 가요다. 들어도 들어도 질리지 않는 느릿한 곡조의 유장한 매력이 있는 데다가 가사가 압권이다. 특히 이 부분이 그렇다.
‘내 방의 고요, 동네의 정적, 우주의 큰 침묵 속에서, 나만 떠드네. 우~ 난 언발란스!’
그럴 때 없나? 나 혼자만 떠들고 있다는 생각에 문득 외로워질 때. ‘문명의 실어증’ 앞에서 나 혼자만 ‘언발란스’하게 떠들고 있다는 생각에 문득 슬퍼지는 때? 내 경우 일방통행 매체인 텔레비전 앞에서 다들 과묵하게 앉아 있거나 좋다고 박장대소하며 웃고 있는데 나 혼자만 씨부렁씨부렁 불만을 토해낼 때 그런 느낌이 든다. 텔레비전을 보며 혼자 욕을 하는 여자라니. “야, 야, 입 닥쳐. 너도 아나운서냐? 그걸 뉴스라고 내보내? 무슨 놈의 아나운서가 존심도 없이 만날 버라이어티쇼 재탕하는 얘기만 그렇게 나불나불하냐고? 아으 무뇌아.”
[SO WHAT] TV를 켜면 욕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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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배우가 분장을 하고 영화에서 노역을 맡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박해일이 주연한 <은교>는 사정이 좀 다르다. 이 영화의 주제는 늙음과 관련이 있고 적어도 한국의 관객은 아무리 발달한 분장기술의 덕을 봤다고 해도 <은교>의 늙은 소설가 이적요를 영화 속 주인공으로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힘들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그가 처음으로 입을 뗄 때 나는 연기 잘하는 배우 박해일도 고전하는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건 누가 봐도 젊은 박해일이 늙은 이적요를 연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게 잘못됐다고 말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이것 때문에 영화가 텍스트의 논리를 충실히 따라가는 입장에서 매혹을 준다기보다는 텍스트 바깥의 관객 입장에서 다른 매혹을 준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영화 중반에 늙은 이적요가 환상 속에서 청순하고 풋풋한 소녀 은교와 정사를 나누는 장면이 나올 때 그것은 늙은 이적요의 환상이라기보다 배우 박해일이 본모습으로 나온다는 인상이 더 강했다. 실제로 함께 영
[신전영객잔] 이 육체성, 혹여 관념적이지는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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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새해 벽두, <짝>의 첫 본방을 우연히 봤다. SBS 스페셜이었다. 다른 지상파의 ‘스페셜’들처럼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의 대표선수였으니 내 안의 첫 반응은 ‘참으로 별걸 다 한다’였다. 또한 흥미를 떨어뜨린 건 실험자들이었다. 비싼 차를 타고 제각기 등장하는 남녀들은 예상대로 너무 멋졌다. ‘저런 친구들이면 굳이 이런 곳이 아니어도 짝을 잘 찾을 텐데’라는 느낌이 다큐적 호기심을 식혔다. 연예인도 아닌 (연애) 선수들의 경기를 굳이 지켜봐야 하나. 곧 채널을 돌렸다. 그런데 나는 사악한 시청자가 아닌가. 모태솔로 편이 아주 나중에 기획된 게 순리처럼 보이듯, 짝 찾기 힘들겠다 싶은 분위기의 남녀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면 채널링은 더 빨라졌을 거다. 석달 뒤 정규 방송으로 편성되자 동시간대 프로그램을 가뿐히 제치고 나의 애정 목록에 올라섰다.
애정 획득은 정공법으로
<짝>을 보며 가장 의아했던 건 ‘저들은 대체 무슨 맘으로 출연을 결심한 걸까’였다.
나도 짝을 갖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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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이 있던 4월11일에 홍대 근처에 있었다. 내가 살고 있는 고양시에서 일찌감치 투표를 마치고 볼일을 보러 나간 것이었는데, 모임이 저녁 술자리까지 이어졌다. 한 클럽에서는 ‘우리 모두 모여서 총선 개표 방송을 보아요’라는(설마 지기야 하겠어, 싶은 마음의) 긍정적인 문구를 내걸고 조촐한 행사를 만들었다. 나도 그 자리에 가게 됐다. 분위기는 무거웠다. 무거울 수밖에 없지, 우리 모두 이제는 선거 결과를 담담하게 받아들이게 됐지만 투표함 뚜껑을 막 열었을 때는 우리 머리 뚜껑도 함께 열린 상태여서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울어, 말아? 홍대를 포함한 마포 구역을 지역 기반으로 활동하는 고소 전문 후보가 참담한 득표율을 보이고 있다는 소식에 환호성을 지르기도 하고, 몇몇 지역구에서 예상외의 선전을 하는 후보들을 보며 응원의 박수를 보내기도 했지만 한숨을 쉴 때가 더 많았다. 트위터에서는 진보신당이 여당이고 녹색당이 제1야당이었는데, 새누리당 이야기는 욕밖에 없었는데,
당신의 3일은 어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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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자. <나는 꼼수다> 열풍 전에 <나는 가수다> 열풍이 있었다. 청출어람 청어람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명백한 것은 <일밤-나는 가수다>(이하 <나가수>)가 원전이고 <나는 꼼수다>(<나꼼수>)는 패러디물이라는 것이다. 시간이 좀 되어서 혹은 <나꼼수> 열풍이 워낙 거세 <나꼼수>가 오리지널이고, <나가수>가 파생 상품이라 헷갈릴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나가수>가 처음 방송된 건 2011년 3월6일이고, <나꼼수>가 처음 업로드된 건 그해 4월27일이다.
<나가수>가 방송되자 논쟁이 일었다. 아무리 오디션 열풍이 거세기로서니 중견 가수들까지 오디션 무대에 세우느냐는 것이었다. 몇몇 대중 가수는 이런 프로그램은 뮤지션을 무시하는 처사라며 고춧가루를 뿌렸고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동료를 자존심이 없는 뮤지션으로 몰아세웠다. 음악이 어떻게 평가의 대상이 되
오디션 권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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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킥’ 시리즈 중에서 가장 문제작이지만 그에 합당한 주목을 덜 받은 것이 바로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이하 <짧은 다리의 역습>)이다. 그 이유를 여러 가지로 지목할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 이 시리즈가 노골적으로 블랙코미디를 표방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과거보다도 더 정공법을 택했다고 할까, 그래서 시청자에게 현실에 대한 위트를 제공하고자 했던 것이 이 시리즈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위트는 현실에 대한 재치있는 비틀기인데, 약간의 냉소가 묻어 있는 유머의 기법이다. 전작에 비해 <짧은 다리의 역습>은 이런 위트의 특성을 많이 살려서 코미디는 코미디이되 상당히 뒤틀린 스타일을 보여준다. 이전 시리즈에서 ‘하이킥’은 현실에 대한 알레고리를 제공했다고 할 수 있다. 알레고리라는 것은 현실을 그대로 말하지 않고 돌려서 다르게 표현하는 수사법이다. 극중 캐릭터는 현실의 개인이면서 동시에 전형이기도 하다. 전형은 현실을 비례적으로 재현하는 지
대신 웃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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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채꽃 흐드러진 4월 초, 문정현 신부님이 강정마을 방파제 7m 아래로 떨어졌을 때, 주위 사람들은 그분께 임종이 닥쳤다고 생각했다. 그때 강정마을을 새까맣게 포위하고 있던 경찰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 죽음을 또 어떻게 축소 은폐해야 하나, 설마 그런 생각을 하지야 않았겠지. 다행히 신부님은 그런 높이에서 추락하고서 어떻게 그 정도밖에 다치지 않았는지 모두 신기해할 정도로 입원 13일 만에 퇴원해 강정마을로 돌아왔다. 사고가 난 그날, 포구에서 기도할 때 쓰던 깔개가 바람에 날려 방파제 밑에 떨어져 있었다고 한다. 70노구의 사제를 받아낸 그 기도용 깔개에 대해 생각한다. 고마워해야 할 것들은 대개 이렇게 바닥에 있는 것들이다. 기적은 멀리 있지 않다.
이른바 ‘강정앓이’ 중이다. 아침에 눈뜨면 제일 먼저 그곳이 염려되고, 밤새 별일 없었는지 안부를 챙기는 일부터 시작하게 된다. ‘앓이’를 해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앓는다는 건 일종의 사랑의 상태다. 사랑의 에너지는 삶에 ‘
[김선우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아름다움에의 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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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서역발 라싸행 T27 열차에 올랐다. 6인실 침대칸에 짐을 풀고 늦은 저녁을 먹었다. 열차가 출발하자 가랑비가 흩날리기 시작했다. 비에 젖은 베이징 시내가 빠르게 뒷걸음질쳤다. 양치질 소리가 요란스레 들려왔다. 46시간을 꼬박 열차에서 보내야 할 사람들이 서둘러 잠잘 채비를 하고 있었다. 얼마 안 있어 객실등이 꺼지고 정적이 찾아왔다. 코고는 소리 요란한 객실에서 나는 이런저런 상념에 빠져 몸을 이리저리 뒤척였다.
티베트 여행은 오랜 꿈이었다. 스무살 무렵 달라이 라마에 대해 알게 된 이후로 티베트는 내게 근면하고 경건한 사람들이 메마른 땅에 몸을 던지며 삶과 신념을 일구어내는 숭고한 땅이라는 이미지로 가득했다. 힘들고 지쳐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을 때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해 외로울 때 문득문득 티베트에 가고 싶었다. 그곳에 가면 어쩐지 위로받고 회복하고 용서하고 거듭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열차는 하루 종일 내몽골의 황량한 초원지대를 쉼없이 달렸다. 3일째가 되자 눈 덮
[SO WHAT] 별의 웅성거림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