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제균 감독과는 어떤 인연인가.
=윤제균 감독이 어렸을 때부터 알던 가장 친한 친구들이 <해운대>의 김휘 작가, JK필름의 길영민 이사인데 그중 김휘 작가와 과거 단편 <장마>(1996) 때부터 알고 지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어울려 친한 형들이 됐다. 사실 내가 <뚝방전설> 이후 JK필름의 전신인 두사부필름에서 작업할 거라고 하자, 주변 사람들이 “무슨 그런 쌈마이 영화사로 가냐” 하는 얘기도 했었다. (웃음) 하지만 어차피 영화란 공동작업이니까 ‘무조건 사람만 보고 간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래서 딱히 흔들릴 일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내가 JK필름에서 영화 만들었다고 하면 다들 “어떻게 JK필름하고 하게 됐어?” “나도 좀 소개시켜줘” 그런다. (웃음)
-<퀵>은 믿기 힘든 도심 촬영들이 많다.
=주무대는 도로 그 자체인데 촬영 허가가 진짜 힘들다. 제작부가 정말 대단했다. 무려 7개 기관과 접촉해서 명동을 섭외했고, 수원 영
아날로그 냄새 나는 액션 원했다
-
<퀵>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2009년 1천만 관객을 돌파했던, 한국영화 역대흥행 4위 <해운대>의 ‘젊은 피’가 뭉쳤다는 점이다. <해운대>에서 커플로 호흡을 맞췄던 이민기와 강예원은 이제 오토바이 한대 위에서 거의 한몸으로 움직이고, <해운대>에서 사사건건 이상한 일에만 얽히던 김인권이 이번에도 악전고투를 거듭한다. <해운대>의 신화를 일군 윤제균 감독이 제작자 겸 각색자로 이름을 올렸으니 둘의 연관성을 되짚는 것은 꽤 흥미로운 작업이다. <퀵>은 일단 저지르고 보는, 억지 부리지 않는 순수 오락영화다. 아니, 너무 억지를 부려서 신선한 액션코미디영화이기도 하다. <뚝방전설> 이후 전혀 다른 컨셉과 스타일의 <퀵>으로 돌아온 조범구 감독을 만났다.
<퀵>은 ‘한국판 <스피드> 혹은 <택시>’다. 시속 50마일 이하로 속도가 떨어지면 폭발하는 <스피드
달리고 또 달린다
-
-<영화는 영화다>부터 <의형제>를 거쳐 <고지전>까지 쉼없이 왔다. 이번 영화를 끝내고 하고 싶은 건 뭐였나.
=당분간 혼자 있는 시간을 가지고 싶다. 여행도 다니면서 정리를 해야겠다. 예전에 <의형제>를 끝내고 1주일 동안 중국을 간 적이 있었는데, 너무 추울 때 가서 감기만 걸려 왔다. (웃음) 올해는 아예 다음 작품을 잡지 않으려고 한다.
-박상연 작가가 쓴 시나리오를 함께 각색했다. 원래 시나리오에서 어떤 부분이 바뀌었나.
=원래 시나리오는 좀 길었고, 더 처절했다. 앞부분의 판문점 장면은 각색과정에서 추가한 부분이다. 당시 전쟁 상황이 어떠했는지 보여주려 했다. 그들이 왜 싸우는 건지, 그들의 전쟁이 어떤 맥락을 갖고 있는지 드러내야 할 것 같더라. 촬영하는 동안 넣은 부분도 있다. “우리는 빨갱이가 아니라 전쟁이랑 싸우는 거야”란 대사가 그렇다. 내가 이 영화를 만들면서 전쟁을 바라본 태도가 그거였다. 악어중대의 과거도 그런
인물은 따뜻하게, 죽음은 차갑게
-
한국전쟁만큼 말 많은 소재가 또 있을까. 영웅주의로 그리면 반공으로, 영웅주의를 지우면 좌파로, 이도 저도 아니면 역사에 대한 회피로 비난받는다. 장훈 감독의 <고지전> 또한 이러한 형편에서 자유롭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 7월11일 공개된 <고지전>은 한국전쟁의 성격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동시에, 감정의 소비없이 전쟁의 본질을 집요하게 파헤친 작품으로 등장했다. <고지전>의 영화적인 흥미와 전쟁영화로서의 성취를 살펴보았고. 세 번째 작품을 끝낸 뒤 숨 고르기 중인 장훈 감독을 만났다.
총에 맞은 병사가 새처럼 파닥거린다. 아직 17살의 앳된 소년이다. 미성의 노래로 동료 병사들을 위로해 귀여움을 받던 그다. 하지만 전우라 부름직한 그들은 소년의 시체가 원래 그 자리에 있었다는 듯 전진한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약 2년6개월 뒤인 1953년 1월, <고지전>의 이야기는 병사들이 이미 전쟁의 생과 사에 지독히 길들여진 때부터 시작
전쟁은 미친 짓이다
-
-
이제 끝났다. 모두 끝났다. 두려움과 기대를 품고 9와 3/4 승강장으로 들어간 해리 포터의 모험은 마침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성장통으로 수렴되었다. 운명과 선택, 상처와 희생을 경험한 해리 포터와 친구들은 모두 어른이 되었다.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2>는 이 시리즈의 대단원이자 (아마도) 21세기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기억될 영화다. 크리스마스 시즌의 가족 판타지로 시작해 전세계가 주목하는 여름 블록버스터로 성장한 영화는 귀여운 꼬꼬마 해리 포터를 번뇌하는 청년으로 바꿔놓았다.
영화음악도 마찬가지다. 1편부터 3편까지 존 윌리엄스가 구축한 세계는, 4편의 제자 패트릭 도일에 의해, 5편과 6편은 니콜라스 후퍼에 의해 이어졌고 7편의 1부와 2부는 현재 가장 주목받는 스코어 창작자인 알렉상드르 데스플라에게 맡겨졌다. 점점 심각해지는 해리 포터의 변화에 맞춰 메인 테마도 점차 어두워졌다. 그럼에도 모든 시리즈의 오프닝은 언제나 존 윌리엄스였다. <Hedwig’s
[차우진의 귀를 기울이면] 해리의 마음이 들리니?
-
내 차 트렁크는 빈틈이 없다. 나의 동반자인 촬영장비 말고 또 다른 친구들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겉은 가죽으로 둘러져 있고 무게는 600~650g, 둘레 75~78cm로 바스켓이 있으면 최고의 짝꿍이 되는 농구공, 그리고 발목과 무릎을 보호해주는 농구화. 차도 작은데 참 많이 담아가지고 다닌다. 하지만 이 친구들은(농구공과 농구화) 나의 학창 시절 유일한 낙이었다. 공부하고는 그렇고 그런 사이인지라.
지금은 농구가 인기 종목은 아니지만 학창 시절 농구는 그야말로 서태지에 버금가는 인기 스포츠였다. 드라마(<마지막 승부>)와 연·고전 그리고 프로농구 개막, 마지막으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미국의 농구스타 ‘마이클 조던’까지, 아! 막 그립다. 그때의 농구 그리고 분위기…. 그렇게 좋아하게 된 농구는 완전 마약이었다. 아마 사진만큼 끊기 힘들어서 지금까지 이렇게 쭉 해오고 있는 것 같다.
아주 오래된 친구 같은 요놈의 매력 몇 가지. 움직이는 거 싫어하는 사람들은
[타인의 취향] 나는 농구 중독자
-
양자택일의 질문은 대부분 대답하기에 곤란하다. 둘 중 하나를 고를 수 없어 곤란하거니와 무응답은 수용하지 않는 질문의 한계 때문이다. 예컨대 <트와일라잇>에서 팀 제이콥이냐 팀 에드워드냐의 경우가 그렇다. 하지만 <트루 블러드>의 빌이냐 에릭이냐를 묻는다면 0.1초의 주저함도 없이 에릭이라고 대답할 수 있다. 여자에게나 남자에게나 공평하게 비열하고 교활하지만 알파메일의 매력이 넘치고 아름답기까지 해 경외하게 만드는 마성의 캐릭터가 바로 에릭 노스먼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취향의 문제다. 팀 에드워드를 비롯해 팀 제이콥, 팀 빌은 던지려던 돌(들)을 내려놓으시길.
사심 가득하게 문을 연 이번 칼럼의 ‘피플’은 <HBO>의 TV시리즈 <트루 블러드>에서 1천년 묵은 바이킹 뱀파이어 에릭을 연기하는 스웨덴 출신 배우 알렉산더 스카스가드다. 샬린 해리스의 <남부 뱀파이어 미스터리 시리즈>를 원작으로 해 만든 <트루
[안현진의 미드 앤 더 피플] 하악하악 내 피도 빨아줘
-
서울 변두리 지역에 20년째 살고 있다. 사실 교통이나 위치는 그리 오지가 아닌데 어디 사냐는 질문에 대답할 때마다 상대가 ‘처음 듣는데… 도대체 어느 구석에 붙어 있는 동네야?’라는 표정으로 알쏭달쏭해하기 일쑤라 이젠 그냥 유명한 옆 동네 이름을 대며 “그 근처”라고 하게 되는 동네다. 심지어 오랜 주민인 L(32)씨가 과거 MBC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에서 재호(배용준)가 “나는 구로동이 싫어!”라고 외쳤을 때 못지않게 절박한 얼굴로 “내가 시집 못 가는 건 OO동에 살기 때문이야!”라고 부르짖기까지 한 그런 동네인 것이다. 물론 그 이전에 L씨에게는 애인이 없다는 사소한 문제가 있지만 어쨌든 이 동네에 살면서 최고로 혹은 유일하게 자부심을 느꼈던 순간이 있으니 바로 90년대 후반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이경규가 간다>에 동네 버스 정류장 앞 구멍가게가 소개되었을 때다.
술이나 담배를 사려고 하는 청소년에게 주민등록증을 확인하고 성인이 아니면 판
[최지은의 TVIEW] 벌써부터 속상하네
-
세게 낙인찍힌 표지는 여간해선 뇌리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이를 뒤집어 말하면 한번 세게 찍힌 낙인은 중독성과 매력지수도 높단 의미. 20세기 초·중반 서유럽을 평정하려 한 파시스트 국가들의 시각적 표지들도 군중에게 높은 흡인력을 발휘했다. 파시스트가 고안한 표지는 20세기 중반 서유럽이라는 시공간에 한정되지 않고, 세기를 뛰어넘어 전세계에 비판적으로 인용되거나 문화적 코드로 차용되고 숭앙되었다.
설마 20세기 중반 현실 정치의 표지들이 차세대 문화 파생상품으로 변형되어 생존할 것을 전제로 고안되진 않았을 것이다. 1960년대 중국 문화 혁명기의 홍위병의 표지도 서유럽 파시스트와 공통분모가 많다. 단정하고 절도있는 제복, 정치 신념의 화룡점정 격인 완장, 이 모두가 착용자의 과대망상과 카리스마를 배로 증폭시키는 장치였다. 비슷한 장치를 갈급하는 시공간에 차용되는 건 예상 가능한 일이다. 전체주의(쇼맨십)는 구성원 속 개인을 일체화된 군중, 즉 개인들의 총합에 종속시킬 때 완성된다
[반이정의 예술판독기] 전체주의 페티시, 위험한 매력
-
영상설치미술 혹은 비디오아트가 오늘날 미술계의 주요 흐름으로 자리잡은 이후, 이들과 영화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음을 논하는 것은 벌써 진부한 일로 여겨질 정도다. 두 영역을 오가며 작업하는 이들이 점점 늘고 있음은 분명 주목할 만한 현상이며, 이를 반영하듯 로테르담, 베를린 그리고 토론토영화제 등은 몇년 전부터 상당한 규모의 전시프로그램을 영화제 기간 동안 마련해왔다. 미술계에서 활동하던 이들이 만든 사뭇 영화적인 ‘작품’이 영화제에 공식 초청되어 영화관에서 상영된다거나 영화감독들이 만든 영상설치물이 (때론 그들의 영화 자체가) 비엔날레에 초청되고 미술관에서 전시되는 것도 이젠 흔한 일이 되었다. 가령 <24시간 사이코>(1993)의 더글러스 고든이 만든 <지단: 21세기의 초상>(2006)이나 <크리매스터>(1995~2002) 연작의 매튜 바니가 만든 <구속의 드로잉 9>(2005) 등이 칸과 베니스에서 상영되며 관심을 모았는가 하면
[유운성의 시네마나우] 위기의 아름다움
-
“트위터가 세상을 바꾼다.” 독설 닷컴의 고재열 기자가 언젠가 자신의 트윗 계정에 내걸었던 모토다. 당시 이 모토가 몇 사람의 심기를 거슬렀던 모양이다. 인터넷에는 금방 ‘트위터로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는 반론이 올라왔다. 하지만 그 얼마 뒤 중동에는 이른바 ‘SNS 혁명’이 일어나 수십년 동안 장기집권했던 독재자들이 줄줄이 권좌에서 물러났다. 물론 그 혁명을 SNS가 일으켰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SNS가 기존의 통치에 균열을 내 중동의 민주화를 촉진하는 촉매 역할을 했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최근 한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에서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 민주노총 김진숙 지도위원을 응원하기 위해 시민과 노동자들이 이른바 ‘희망버스’를 타고 전국에서 몰려들었다. 6월10일의 1차 희망버스 행사는 비교적 작은 규모였지만 배우 김여진씨의 참여로 전국적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당시의 상황은 현장에 있던 이들의 트윗을 통해 실시간으로 중계되었고, 그
[진중권의 아이콘] 혼합현실에 살다
-
남다정의 <플레이>는 딱 소문 그대로의 영화였다. 이 영화를 보고 평을 쓰려고 한다고 했더니 누군가가 “그 영화는 평 쓸 게 없을걸요. 그냥 귀여운 음악영화예요”라고 말해줬다. 이 영화는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수순으로 흘러간다. 대단한 극적 갈등이 있는 것도 아니고 대체로 심심하다. 심심한 일상으로 끝내 끌고 가는 것이 거꾸로 이 영화의 특이한 점이다. 그게 아마 앞서 말한 그 누군가가 귀여운 영화라고 말한 이유일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이제 막 음악계에 등장한 밴드 ‘메이트’ 멤버들의 실제 삶에 기초해서 만든 영화에 대단한 스토리가 있을 리 없다. 모든 것이 현재진행형이다. 그들의 삶도, 음악도, 미래의 비전에도 과장이 끼어들 틈이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적 부풀림을 자제한 <플레이>에는 엄연히 극적 파장이 있다. 이 파장은 이 영화의 등장인물들이 유독 일상생활에서 소극적인 것에서 나온다. 그들의 연애사는 특히 지지부진하고 플롯에서 꽤 비중있게
[김영진의 인디라마] 영화도 음악도 사람을 닮는 거겠지
-
<인 어 베러 월드>는 딴죽 걸기 힘든 영화다. 폭력의 악순환을 끊겠다는 선의로 가득한 이 영화에 대해 비판의 날을 세우는 것은 그리 마음 편한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다소 편협한 시선으로 이 작품을 바라보고 싶다. <인 어 베러 월드>는 복수와 폭력의 악순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관용의 힘을 이야기하고 그것이 꽤 매력적으로 형상화된 작품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것을 이야기하기 위해, 또는 그것을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비판했던 폭력적 행위의 주체가 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이러한 나의 비판이 편협한 시선의 결과에 불과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 어 베러 월드>처럼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영화라면 편협한 관점이 더 필요할 수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단순한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윤리적 차원의 문제와 연관되기 때문이다.
복수와 더 나은 세상 사이에서
<인 어 베러 월드>의 원제인 ‘Haev
[전영객잔] 주관적 폭력만이 문제는 아니잖아
-
<유튜브 보이>(On Line All The Time, 2009)는 유튜브에서 스타가 되길 원하는 아일랜드 소년 제이크의 이야기입니다. 감독이 따로 있긴 하지만 제이크가 1인칭 화자로 스스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자전 다큐멘터리의 일종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다큐멘터리는 ‘웹2.0과 나’에 대해서 질문하는 데 좋은 레퍼런스가 됩니다. 제이크는 1년째 유튜브에서 ‘나’에 대한 동영상을 업로드하는 중입니다. 제이크는 영화 초입에서 자신은 유튜브에서 ‘스타’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림1과 그림2에서처럼 <유튜브 보이>는 제이크가 캠코더를 들고 자신과 가족, 친구들을 찍어서 유튜브에 올리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물론 제이크의 목표는 한 가지입니다. 이 유튜브 채널에 올린 ‘나’에 대한 동영상을 통해서 유명해지는 것입니다. 제이크의 유튜브 채널은 이렇게 제이크가 성장해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제이크가 좀더 동영상을 잘 만들어가는 과정,
[영상공작소] 극장부터 온라인까지, 플랫폼은 열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