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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만 마시면 폭력을 가하는 의붓아버지로 인해 연규(홍사빈)에게 집은 지옥과 다름없다. 아직 17살 학생인 탓에 독립을 하지 못했지만, 엄마와 함께 네덜란드로 이주하겠다는 목표 하나만 바라보며 차근히 돈을 모으는 중이다. 어느 날, 학교에서 이복 여동생 하얀(김형서)을 괴롭히던 학생들에게 연규가 대신 보복을 가한다. 그로 인해 정학을 당하고 합의금까지 물어줘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아르바이트를 하던 가게 사장에게 부탁해보지만 결국 돈을 가불받지 못하고, 대화를 듣던 손님 치건(송중기)이 선뜻 연규에게 돈을 건넨다. 치건은 한 조직의 중간 보스였고, 이를 계기로 연규는 치건 밑에서 일을 배우기 시작한다. 빠르게 적응한 연규는 능력을 인정받고 점점 더 위험한 사건으로 내몰리게 된다.
김창훈 감독의 장편 데뷔작 <화란>은 연규를 중심으로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를 그리는 것에 집중한다. 가장 비중 있게 묘사되는 것은 연규와 치건의 관계다. 한 동네에서 자랐고 어린 나이에 뜻하지
[리뷰] ‘화란’, 아득히 먼 각자의 이상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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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65년, 지구에선 인간과 AI의 전쟁이 한창이다. AI가 스스로의 판단으로 LA에 핵무기를 투하해 엄청난 인명 피해를 입혔던 10년 전 사건으로 인해 서방 국가 연맹이 지구상의 모든 AI를 제거하겠다는 정책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하나 지구 어딘가에선 AI와 깊은 감정적 교류를 나누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중 AI의 창조자인 니르마타가 살고 있는 뉴아시아 지역 사람들은 강대국의 눈을 피해 AI와의 공존을 포기하지 않는다. 이에 미국은 마침내 니르마타 암살을 계획한다. 요원 조슈아(존 데이비드 워싱턴)를 위장 잠입시킨 뒤 조직원인 마야(제마 챈)를 정보원 삼아 니르마타의 정확한 위치를 캐내려는 것이다. 그러나 작전은 제대로 실행되지 못했고, 임무 중 마야를 사랑하게 된 조슈아는 마야를 잃고 상심에 빠진다.
<크리에이터>의 본격적인 이야기는 그로부터 5년이 흐른 시점에서 시작된다. 조슈아는 니르마타가 서구 세력에 대항하기 위해 만든 무기를 파괴하는 작전에 투입되어
[리뷰] ‘크리에이터’, 사색에 잠기기 딱 좋은 세계에서 선문선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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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11일부터 16일까지, 순천에서 첫 번째 남도영화제가 열린다. 남도영화제는 전남 지역 고유의 자연, 음식, 관광 등 문화 자원을 한껏 활용한 종합 축제로서 첫발을 내디딘다. 외연만 커다란 게 아니라 내실도 튼튼하다. <무진기행>의 김승옥 작가를 직접 초빙한 김승옥 특별기획 등 지역색을 살린 부대 행사는 물론, 지역 영화인과 영화문화 활동가를 육성하기 위한 여러 프로그램도 준비했다. 영화제의 원활한 시작이 가능했던 이유는 10~20년간 전남의 영화·영상 기반을 닦아온 전남영상위원회(이하 전남영상위)의 몫이 크다. <동백아가씨> 등을 연출했던 다큐멘터리스트이자 현재 전남영상위·남도영화제의 사무국장으로 활동하며 영화제 업무를 총괄한 박정숙 사무국장을 만나 남도영화제의 시작을 엿봤다.
- 남도영화제를 개최한 배경은.
= 전국 지역 중 관광 실적이 최상위권인 전남이지만, 영화 관련 문화는 약하다. 총인구가 200만 명쯤 되는데 인구 대비 극장 수와 극장
[인터뷰] 남도영화제 시즌1 순천, 영화의 정원을 거닐다, 박정숙 남도영화제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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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과 경험은 성장의 좋은 밑거름이다. 배우 유수빈은 이미 <사랑의 불시착>, <인간실격>, <스타트업>, <D.P.> 시즌2 등 여러 작품에서 활약했음에도 여전히 자신의 연기가 모자라고 아쉽다고 고백했다. 성장이란 스스로의 부족함을 인지하는 결핍과 갈망에서부터 출발한다. 수줍게, 하지만 명료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로 옮기는 이 신중하고 듬직한 배우의 원동력 역시 ‘더 잘하고 싶은 마음’에 있다. <거래>에서 홀로 고립된 납치 피해자 역은 늘 팀의 일부로 활약했던 그에게 새로운 도전이었다. 언젠가 연출에도 도전하고 싶다는 그는 좋은 이야기를 찾아내는 눈과 거기에 생기를 부여할 줄 아는 성실함을 지닌 배우다. 모자람을 알고 새로운 경험을 추구하는 그는 배우로서 무럭무럭 자라는 중이다.
- 민우는 처음엔 납치극의 피해자였는데 점점 한편이 되는 것처럼 보이는 독특한 캐릭터다. 그의 선택에 따라 상황은 더 엉망이 되고, 이야기는 점
[인터뷰] 청춘의 표상, ‘거래’ 유수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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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생 재효는 모종의 이유로 학교에서 퇴학당할 위기에 처한다. 재효는 갓 전역한 준성(유승호)을 민우(유수빈)와의 술자리에 부른 뒤 민우가 인사불성으로 취하자 자신의 자취방에 민우를 납치, 감금한다. 그리고 민우 엄마(백지원)에게 몸값으로 현금 10억원을 요구한다. 배우 김동휘는 그런 재효를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스스로를 세뇌하는 캐릭터”라 요약했다. 하지만 재효와 달리 김동휘는 재효의 궤적을 시청자에게 납득시키기 위한 수많은 연기적 근거를 마련해두고 있었다.
- 재효와 준성은 오랜 친구였다가 범죄의 공범이 되고 또 서로의 눈엣가시가 된다. 두 사람의 사이를 어떻게 규정했나.
= 준성이 전역 당일 재효를 만나러 온 걸 보면 두 사람은 둘도 없는 친구였을 것이다. 그래서 둘의 관계가 계속해서 변해도 단짝이라는 점은 가져가려 했다. 재효가 준성을 납치극에 끌어들인 이유 또한 준성을 진심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혼자 저질러도 되는 범죄지만 준성의 상황도 여의치 않으니 그냥
[인터뷰] 주도하고 계획한다, ‘거래’ 김동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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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출발을 하고 싶은 어떤 절박함이 있는 거다.” 유승호는 <거래>의 준성을 그렇게 묘사했다. 배우 자신의 인상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 웃을 때면 사정없이 휘어지는 반달눈과 소년 같은 미소는 여전하지만, 표정을 거두고 난 유승호의 얼굴엔 무엇이든 쉽게 담판 짓지 않으려고 고민하는 인간의 우수가 묻어나온다. 5살에 데뷔해 31살이 된 지금, 유승호는 “가장 나다운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어서” 택한 배우의 일에 여전히 혼란해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는 어느새 해사한 얼굴 뒤에 걸린 짙은 그림자를, 중후하게 나이 들 미래를 궁금하게 하는 배우가 됐다. KBS 사극 <꽃 피면 달 생각하고>(2021) 이후 첫 OTT 시리즈에 진입해 30대의 새 행로를 개척 중인 유승호를, <봉이 김선달>(2016) 이후 7년 만의 <씨네21> 인터뷰로 만났다.
- 이정곤 감독의 전작 <낫아웃>에서 정재광 배우가 보여준 반골 기질의 이미지가
[인터뷰] 이유 있는 딜레마, ‘거래’ 유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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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21일 대한민국 국회는 최초로 ‘국무총리 해임건의안’과 ‘국회 단독 과반 정당의 현직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가결했다. 총리 해임건의는 현 정부 국정운영의 총체적 실패를 사법적 또는 헌법적 차원에 이르기 전의 한도에서 최대치로 선고하는 것이다. 대통령이 불수용하면 그의 막돼먹음과 옹졸함만 부각되고, 이 역시도 총체적 국정 실패의 근거가 된다. 체포동의의 결과는 ‘구속’이 아니라 ‘구속영장 실질심사’다. 제1야당 대표의 주변에서 거대 부패사건들이 벌어졌던 것은 사실이니 그의 책임을 놓고 중간 판단이 필요했다. 거대양당의 당론이나 다수 의견은 하나만 찬성하고 다른 하나는 반대하는 것이었지만, 다들 가결돼 이 사안들에서 나같은 시민들은 그들보다 더 크게 이겼다. 둘 다 찬성한 시민들이 거대양당을 역이용해 전승을 거뒀다. 이런 날이 언제 있었더라.
2010년 기초의원으로서 구미시 박정희 기념사업을 반대했을 때, 사퇴를 요구하는 친박단체, 면전에서 비난하는 지역 유지, ‘생매
[김수민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주유소 습격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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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면 꿈을 꾼 것 같다. 지난 4년간 다큐멘터리 13편을 취재·연출했다. 이들 중에는 세상에 내놓을 정도는 된다고 여기는 것도 있고 그보다는 부끄러움이 앞서는 경우도 있다. 칸영화제 취재기처럼 한달 만에 급조한 것도 있고 오랜 기간 땀과 눈물을 흘리며 인류의 위기를 걱정한 특집 다큐멘터리도 있다. 모두 초저예산 독립영화 수준의 제작비와 가차 없는 제작 기간 속에 낳은 자식 같은 아이들이다. 산고는 대개 화면엔 드러나지 않는다. 난관의 시작은 카메라 앞에 등장인물을 모시는 과정부터다.
주제에 맞는 인물을 찾더라도 대중 앞에 나서겠다는 이는 몹시 드물다. 비슷한 일을 겪은 다른 분을 찾아내더라도, 제작 기간 내 서로 일정이 맞지 않기 일쑤다. 세상 모든 영상 제작자에게 코로나19는 누구도 겪어본 적 없는 제약을 가져왔다. 무슨 수를 쓰든 그분을 만나야 해. 어떻게든 만나서 그 말 한마디를 받아야 한다. 가까스로 카메라 앞에 세웠는데, 전화로 나눴던 말씀을 촬영 중에는 왜 안 하
[비평] 다중몽(多重夢), ‘거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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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를 납치할 수밖에 없었던 두 남자와 친구들에게 납치당한 남자. <거래>는 이 기구한 소동에 발 묶인 친구라는 이름의 낯선 자들에 대한 이야기다. 경쾌한 스포츠물의 동료이거나 우정 맺힌 청춘물의 일원일 수도 있었던 유승호, 유수빈, 김동휘는 비좁은 자취방에 갇혀 서로를 묶고 묶이는 처량한 현실을 살아내기로 한다. 그들은 속고 속이는 스릴의 방아쇠를 쥘 때조차 누구 하나 머뭇대는 법 없이 차례로 팽팽히 겨눈다. 10월6일 웨이브에서 공개되는 8부작 납치 스릴러 <거래>의 끈끈한 삼각관계를 소개한다. 친구, 인질, 공범을 오가는 세 남자의 속사정. 들여다볼수록 퍽 절박하고도 흥미롭다.
*이어지는 기사에서 <거래>의 유승호, 유수빈, 김동휘 배우와의 인터뷰가 계속됩니다.
[커버] 세 남자의 속사정, ‘거래’ 유승호, 김동휘, 유수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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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지 스콜리모프스키의 놀라운 걸작 <당나귀 EO>를 말하기에 앞서, 이 작품이 두번의 오마주를 거친 결과물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당나귀 EO>가 각색한 <당나귀 발타자르>는 로베르 브레송이 도스토옙스키의 <백치>를 각색했다고 밝힌 영화다. 브레송은 <백치>의 주인공 미쉬킨이 당나귀에 관해 말한 짧은 대목을 읽고, 아예 미쉬킨을 당나귀로 치환한 새로운 서사를 착상했다. 하지만 <당나귀 발타자르>는 <백치>와 무연하다고 봐도 무방한 독자적 작품이다. 갑작스레 상속된 유산, 공원의 벤치 장면 등 원작을 연상하는 요소가 엿보이지만 그 정도 유사성은 다른 작품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여기에는 도스토옙스키의 장기인 시끌벅적한 난장판과 과장된 만화적 유머 감각 대신 평론가 폴린 케일을 질색하게 했던 지독한 엄숙주의가 있다. 우리는 <백치>를 각색했다는 브레송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서로 다른
[비평] 죄의식 대신 물질의 흐름에 집중한 시청각적 환상곡, '당나귀 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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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출장은 유독 시차 적응이 되지 않았다. 아무리 커피를 들이부어도 금세 의식이 넘어가 꾸벅꾸벅대다가 그대로 꼬꾸라질 것만 같았다. 걷고 있는 내 발에 닿는 것이 땅인지 매트리스인지 모를 감각으로 무대 인사를 하러 시네테카에 갔다. 행사까지 시간이 떠서 다른 팀원들은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가고 나는 혼자 극장 앞 벤치에 앉아 눈을 감았다. 강렬한 햇볕에 눈을 감아도 여전히 눈이 부셨다. 선선한 바람에 머리카락이 자꾸 얼굴을 간지럽혔다. 그렇게 졸다 보니 시간이 다 되었다. 조용한 관객들은 이 선선한 바람처럼 극장에 흘러들어갔나.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기에 분명 아주 적은 관객이 들었을 것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적은 관객이지만 깊은 인사를 나누자 마음을 다잡았다. 프로그래머와도 간단한 인사를 나눈 뒤 상영관에 들어섰는데 이런. 단 한명의 관객도 있지 않았다. 텅 비어 있는 극장에 당황스러운 기시감이 들었다. 아주 오래도록 꾸었던 악몽의 실물을 이렇게 마주하다니. 에이, 아닐 거야. 애
[김세인의 데구루루] 너그럽게 열린 극장 문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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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취적인 단편영화를 발굴해 창작자의 의욕을 고취시키는 ‘제15회 대단한 단편영화제’가 9월7일부터 12일까지 총 6일간 진행됐다. 9월7일, KT&G 상상마당 시네마에서 KT&G 사회공헌실 심영아 상무의 개막 선언과 함께 축제의 막이 올랐다. 올해는 총 601편이 출품됐고 예심을 거쳐 25편의 영화가 본심에 올랐다. 예선 심사에 참여한 형슬우 감독의 “새롭게 등장한 배우와 감독님들을 기대해달라”는 소감 뒤로 “최선을 다해 마음이 가는 작품을 선정하겠다”는 본선 심사위원들의 포부가 이어졌다. 올해 본선 심사위원은 이종필·한준희 감독, 공민정·유승목 배우 등 감독 2인, 배우 2인으로 구성됐다. 개막작으로 선정된 한준희 감독의 <시나리오 가이드>와 이종필 감독의 <달세계여행>이 상영된 뒤 장소를 옮겨 개막파티가 시작됐다. 상영작 감독들뿐만 아니라 심사위원, 예술영화관, 매니지먼트와 단편·장편 배급사 등 관계자들이 다수 참석했다. 밝은 분위기 속에
[리뷰] ‘대단하게, 재미있게!’ 제15회 대단한 단편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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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영화 <집으로…> 이후 매년 빼곡하게 필모그래피를 채워가던 시절의 유승호를 만났다. 늦은 오후 한강 둔치에서 만난 그는 곧 치를 중간고사를 걱정하고 현장에서 감독님에게 혼나는 것을 두려워하는, 영락없는 14살의 싱그러운 소년이었다.
[ARCHIVE] 유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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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ST’는 매주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에게 취향과 영감의 원천 5가지를 물어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이름하여 그들이 요즘 빠져 있는 것들의 목록.
가을 하늘 보기
가을이 선사하는 하늘을 맘껏 쳐다보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매년 가장 좋아하는 일.
책 <아침의 피아노>
지난해 봄에 만난 책이다. 올가을에 다시 읽고 싶어 꺼내 읽는 중이다. 문장들은 짧지만 마음에 이는 공명은 그 어떤 글보다 깊게 닿는다. 아끼는 누군가에게 선물을 해야 한다면 이 책을 전해주면 어떨까
최백호의 <바다 끝>
단연 취미라 자신 있게 꼽을 수 있는 것은 ‘음악감상’이다. 몸이 지친 날에도 귀만은 피곤하지 않다. 덩그러니 누워 두눈을 꼭 감고 노래를 듣는다. 다소 소란한 곳이라도 노이즈 캔슬링을 통해 조용한 세상을 구축할 수 있다. 최근 가장 많이 들은 곡은 최백호님의 <바다 끝>.
아이스라떼
요즘 아이스라떼를 좋아하게 됐다. 집 근처 카페에
[LIST] 전여빈이 말하는 요즘 빠져 있는 것들의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