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탈리아 최남단 칼라브리아의 한 시골 마을. 사람들은 모두 도시로 떠났는지 높은 산악지대에 위치한 마을은 인적이 드물다. 이곳에서 한 노인(기우세페 부다)이 홀로 수십 마리의 염소를 키우며 살고 있다. 병을 앓던 그는 교회 바닥에서 모은 먼지야말로 자신을 살릴 수 있는 약이라 믿는다. 매일 교회를 찾아가 먼지를 염소 젖과 바꿔 물에 타 마시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어느 날 그는 염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상을 떠나고, 다음날 아침 아기 염소가 태어난다. 아기 염소는 풀을 먹기 위해 다른 염소들과 함께 들에 나갔다가 길을 잃고 전나무 밑에서 잠든다. 시간이 지나고 마을에서는 축제가 열린다. 마을 사람들은 아기 염소가 누웠던 곳에 있던 전나무를 잘라 축제에 사용한다. 축제가 끝난 뒤 전나무는 숯장수에게 팔려간다. 불이 활활 타오르는 가마 안에서 전나무는 숯이 되고, 우리는 가마에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하늘로 올라가는 풍경을 목격하게 된다.
윤회(輪廻). 이 말은 중생이 죽은 뒤 그
삶과 죽음은 끊임없이 순환한다 <네 번>
-
우리는 영화책에 관한 기사를 준비하던 중 궁금증이 들었다. 영화평론가들은 지금 어떤 책을 읽고 싶어 할까. 그래서 세 가지 항목으로 물었다. 1. 복간되어야 할 영화책은 무엇입니까? 2. 번역되어야 할 영화책은 무엇입니까? 3. 지금은 없지만 언젠가 출간되면 좋을 상상의 영화책은 무엇입니까? 셋 중 한 항목을 선택하셔서 한권의 책을 추천해주시고 짧은 선정 이유도 부탁드립니다. 필자에 따라 세 항목 모두에 답하거나 한권 이상 추천한 분들이 계신다.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실었다. 아마도 추천자들은 그들의 영화책 베스트를 적었다기보다는 함께 읽으면 좋을 목록을 우리에게 전달했을 것이다. 그들의 추천 명단을 보자.(이하 가나다순)
김봉석
-번역되어야 할 영화책
=<映畵はおそろしい>(영화는 무섭다) 구로사와 기요시: 구로사와 기요시가 쓴 공포영화론
=<See No Evil: Banned Films and Video Controversy>, 데이비드 케레케스, 데이
제발 나와줘~
-
지하철에서 읽기 권장 지수 ★
패러독스 지수 ★★★★
고다르의 영화를 다시 보게 만드는 지수 ★★★★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일상에 휩싸이던 어느 찰나, 문득 우리 속 심연이 말을 걸어온다. 네가 처음에 가고자 했던 곳은 어디냐? 지금 당신의 모습이 정말 처음에 원한 것과 같아? 그제야 떠오르는 <극장전>의 마지막 대사. “생각을 해야한다. 끝까지 생각하면 뭐든 고칠 수 있다. 생각만이 우리를 살릴 수 있다.” 이제 이 질문을 영화한테로 돌린다. 영화를 생각하다 혼란에 빠질 경우 보아야 하는 지평, 만일 그런 것이 있다면 그건 아마 고다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살아남기 위해 영화는, 그렇게나 고다르에 집착했는지 모른다.
데이비드 스테릿이 엮은 <고다르X고다르>는 고다르의 장편 데뷔작인 <네 멋대로 해라>가 나온 2년 뒤, 그러니까 <비브르 사 비>가 개봉된 1962년의 인터뷰를 시작으로 1996년 <필름 코멘트>
장 뤽 고다르의 34년을 듣다
-
저자의 시네필 지수 ★★★★★
정성스런 번역지수 ★★★★
읽고나서 일본영화 지식 증폭지수 ★★★★
<일본영화의 래디컬한 의지>의 저자 요모타 이누히코는 이미 1993년에 “동아시아에서 활약하는 28명의 감독들을 열전의 형태로 다루어, <전영풍운>이라는 책을 상재한 적이 있다”. 한국, 중국, 타이완, 홍콩, 필리핀, 오키나와에서 활동하는 감독들에 대한 감독론을 중심으로 “동아시아 영화사의 전반적인 개설과 북한의 영화 상황에 대한 논문을 덧붙였”던 책이다. 그런데 이 책을 쓴 다음 요모타 이누히코는 외국의 친구들에게서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왜 당신은 동세대의 일본 감독들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았는가? <일본영화의 래디컬한 의지>가 실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월간지 <세카이>에 1997년 7월호부터 1998년 12월호에 걸쳐 <전영풍운, 일본 영화의 신예들>이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던 글들이고 이후 대폭 수정 보완을 통해 19
80년 이후 일본을 이끄는 전영풍운아들
-
-
<한번은,> 빔 벤더스 지음, 이동준 옮김 / 이봄 펴냄
스타 등장 지수 ★★★
시각 자극 지수 ★★
다독 요구 지수 ★★★★
빨리 구입하라고 권할 만한 사진집은 아니다. 그의 영화가 그러하듯이, 빔 벤더스의 카메라는 시신경을 자극할 요소들을 찾아내고 추출하는 데 별 관심이 없다. 시간과 공간과 인물을 ‘극적으로’ 포착하려고 안달하지도 않는다. 더 다가갈 수 있는데도, 더 물러설 수 있는데도, 빔 벤더스의 ‘눈’은 언제나 모호한 위치에서 서성인다.
하지만 이러한 망설임은 대상을 대하는 그의 확고한 태도다. 늙은 텍사스 카우보이(280∼284쪽)를 보라. 빔 벤더스는 카우보이에게 다가가서 그의 육체에 새겨진 굵은 주름을 굳이 드러내려고 하지 않는다. “나에게 사진은 보는 것보다 듣는 행위에 더 가깝다.” 언젠가 빔 벤더스는 그렇게 말한 적이 있는데, <한번은,>에 담긴 수백장의 이미지들 역시 주목보다 경청을 요한다. 구부정한 허리와 느린 걸음걸이의 카
풍경의 이야기를 들어봐 · 시오노 나나미의 영화 관찰
-
<조선인 극장 단성사 1907-1939> 이순진 지음 / 한국영상자료원 펴냄
학술적 가치 지수 ★★★★★
자료 활용도 지수 ★★★★
간편한 휴대성 지수 ★★★
영화 <접속>이 인상적으로 포착했듯 종로라는 공간은 개인의 영화 경험을 환기시키는 정서 공간이자, 그 경험을 공유하는 대중의 무의식이 자리잡은 대중지성적 공간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순진의 <조선인 극장 단성사 1907-1939>는 식민지 시대 조선인 영화체험의 중심 공간이던 단성사의 위상을 복합문화생산의 맥락으로 풀어낸 알찬 학술서적이자 영화사적 증언이다.
이 책은 식민지 시대 조선인 대상 활동사진 상설관으로 출발했던 단성사의 등장, 번영, 몰락을 다루고 있다. 1907년 구극 공연장으로 설립된 단성사는 1918년 흥행의 귀재 박승필에 의해 조선인을 대상으로 하는 상설활동사진관으로 재편되었다. 키네오드라마, 키노드라마 등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활동사진의 일부로 도입하며 변사와 악사
오래된 극장에서 조선영화의 힘을 보다 · 불꽃처럼 살다간 30년대 중국의 국민 배우
-
영화 포스터 등 도판 수록 지수 ★★
한 분야 깊이 파기 지수 ★★★
필자의 준비성과 박식함 지수 ★★★★
“나는 많은 것이 혼란스럽게 뒤섞여 있는 사람이다. (…) 나는 타이완 토박이가 아니기 때문에 요즘 독립을 강력히 원하는 타이완 토박이들과는 다르다. 하지만 중국으로 되돌아간다면, 그곳에서는 타이완인이다. 현재 나는 미국에 살고 있고 어디를 가든 이방인 같은 존재다. 진정한 정체성을 찾기 힘든 것이다.” _1993년 리안의 말
리안은 대만 출신으로 미국에서 공부하고 중국 문화권의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영국의 고전과 미국 역사, 대중문화를 자신의 영화로 끌어들인 인물이다. 리안 영화가 다루고 있는 쿵후, 제인 오스틴, 남북전쟁, 헐크, 우드스톡 사이의 공통점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이 광범위한 스펙트럼이 리안의 영화세계에서는 하나로 묶인다. 정체성과 아이러니, 이것은 리안을 관통하는 단어다. 이 두 단어조차 사실은 아이러니한 정체성이라고 묶을 수 있다. 타이완 스신대
경계를 허무는 이방인, 리안
-
폭풍우가 치는 밤이다. 바깥은 어둡고 바람이 몹시 불어, 소녀는 쉬이 잠들지 못한다. 그날 밤 아이는 침대에 누워서 ‘사람과 동물, 지구, 탄생과 사후’ 등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해 생각한다. 하나의 생각은 다른 생각을 낳고, 얽힌 생각들은 완전히 새로운 공간이 되어 눈앞에 펼쳐진다. ‘비트윈 숏 앤 숏’에 초대된 단편애니메이션 <폭풍의 밤>의 내용이다. 제3회 서울국제건축영화제의 테마는 ‘비트윈’(Between)이다. 이 짧은 애니메이션에 담긴 내용처럼 올해의 영화제는 건축이 인간의 삶과 문화에 침투해 그들과 맺고 있는 역학적 관계를 조망한다.
개막작은 차드 프리드리히의 신작 <프루이트 아이고>(2011)다. 세계무역센터의 건축으로 유명한 ‘미노루 야마사키’가 설계한 모더니즘 양식의 대단지 아파트 ‘프루이트 아이고’를 다룬다. 50년대 중반에 이 아파트가 처음 완성됐을 때, 미국건축가협회는 건축상을 줬고 매스컴은 ‘모더니즘의 정상’이란 수식을 댔다. 한때 가
건축과 인간의 관계 맺기
-
스페인 카탈루냐주에서는 ‘영화 만들기’를 교과목으로 가르치는 학교들이 있다. 이는 ‘Cinema en Curs’(학교에서 배우는 영화)라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바르셀로나 같은 도시부터 피레네 산맥 산골짜기의 학교들까지 고루 참여한다. 교육과 예술을 결합한 프로젝트를 만드는 아바오아쿠(A Bao A Qu)가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와 함께 기획한 이 행사는 카탈루냐주 정부와 영상자료원, 각 도시의 교육청이 후원해 공립학교에서 진행된다. 2005년에 시작해 7년째를 맞은 올해는 20군데 학교에서 영화를 제작 중이다.
아이들은 시나리오 쓰기부터 연기, 촬영, 더빙, 편집 과정을 거쳐 6∼9분짜리 단편영화를 만들고 학기 말에 작품 시사회를 연다. 잘 만든 영화들은 파리의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 ‘해외 상영’ 된다. 프랑스에선 1995년부터 이미 ‘Le cinema, cent ans de jeunesse’라는 이름으로 같은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영화는 주로 학교생활과 교우관계에 초점이 맞
[바르셀로나] 영화도 조기 교육 시대
-
지난 10월15일 대구에서 열린 아시아송페스티벌에 대만의 최고 배우 겸 가수 하윤동이 내한했다. 채림, 장나라와 함께했던 드라마는 물론 <진심화>(1999)를 시작으로 <착신아리2>(2004) 등 수많은 영화에 출연했으며, <소피의 연애매뉴얼>(2009)에서는 장쯔이, 소지섭과 호흡을 맞추기도 했다. 특히 내년 개봉예정인 견자단, 주윤발, 곽부성의 <서유기>에서 손오공을 쫓는 이랑신 역으로 출연한다. 내한 직전 그와 서면 인터뷰를 가졌다.
-견자단, 주윤발과 함께한 영화 <서유기> 촬영을 마쳤다고 들었다. 영화에서 이랑신 역할을 맡았는데, 서유기와 이랑신 역할에 대해 소개해달라.
=영화 <서유기>는 할리우드의 뛰어난 특수기술 및 3D 특수효과팀을 초청해 찍었다. <서유기>에서 잘 알려진 ‘대뇨천궁’ 이야기가 배경인데 인물 성격에 개성을 좀더 불어넣었다. 이랑신의 경우가 그렇다. 영화를 보고 나면 새로운 시
[Cinetalk] 한국영화는 소재를 극한까지 표현한다
-
-<레모니 스니켓의 위험한 대결>에서 침착하게 검은 머리 끈을 묶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현실에서는 전혀 침착할 수 없었다. 호주에 살던 나로서는 할리우드라는 새로운 세계에 발을 내디디기가 두려웠다. 연기를 하게 된 계기도 연극계에 있던 같은 반 친구의 부모님 눈에 띄어서였으니까.
-<트와일라잇> 작가 스테파니 메이어는 당신이 벨라 역을 맡아주길 바랐다고.
=오디션 제안을 받았다. 하지만 <안나와 알렉스: 두 자매 이야기>를 한 뒤여서 몸과 마음을 추스를 시간이 필요했다. 3부작이나 되는데 덜컥 맡았다가 나중에 후회하긴 싫었다. 원래 한 군데 오래 집중하지 못하는 성격이기도 하고. 그리고 벨라에겐 어딘지 소심한 구석이 있는데 내겐 없는 기질이다.
-회복기를 가지고 싶었다면 <써커 펀치>는 다소 과격한 선택이 아닌지.
=베이비돌은 원래 아만다 시프리드에게 갔던 역이다. 그녀가 <HBO> 시리즈 <빅 러브> 스케줄
[who are you] 에밀리 브라우닝 Emily Browning
-
긴긴 영화와 긴긴 크레딧이 끝나고 김영진 영화평론가가 농담 반 진담 반 탄식을 내뱉었다. “내가 대충 사는 동안 저분은 또 저기까지 가셨구나.” 정말이다. 인간의 고통을 즐겨 그리는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새로운 수사의 영역을 개척했다. 핍박한 인생을 짊어진 인물들, 죽음과의 시간 다툼, 인종과 계급의 질서를 새로 그려넣은 1세계의 지도까지, <비우티풀>은 뒤돌아보지 않고 내달리는 감독의 속도가 느껴지는 영화다. 그러나 그것은 단거리 질주가 아니라 장거리 마라톤의 결과물이다. 10월12일 CGV대학로에서 열린 <비우티풀> 시네마톡 행사에 참석한 김영진 영화평론가와 <씨네21> 주성철 기자는 마라톤을 중계하는 캐스터와 해설자처럼 번갈아가며 이냐리투 감독의 신작 <비우티풀>에 대한 느낌을 주고받았다.
이냐리투 감독이 꿈꾸고 하비에르 바르뎀이 빚어낸 이번 작품의 발단은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주성철 기자가 당
[시네마톡] 언어를 초월하는 이미지의 영화
-
<다큐멘터리의 새로운 역사> 잭 C. 엘리스, 베시 멕레인 지음, 허욱, 김영란, 이장욱, 김계중, 노경태 옮김 / 비즈앤비즈 펴냄
이해 안되는 오탈자 출현 지수 ★★★☆
좋은 도판이었으면 좋았을걸 하는 아쉬움 지수 ★★★★
이 책 읽고 다큐멘터리에 관심 가질 지수 ★★★★
두명의 저자 중 한 사람의 이름이 유독 눈에 들어온다. 잭 C. 엘리스. 오랜만에 다시 마주하게 된 이름이다. 국내에 <옥스포드 세계 영화사>도 없고, 데이비드 보드웰이 쓴 <세계 영화사1, 2, 3>도 없던 때다. 그때에 믿을 만한 영화사 번역서로 꼽히던 것이 잭 C. 엘리스가 버지니아 라이트 웩스만과 함께 써냈던 <세계 영화사>(이론과 실천 펴냄, 1990)였다. 감독 이름과 영화 제목을 열심히 외우던 시기라 그때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것일까. 지금 <다큐멘터리의 새로운 역사>를 마주하고 보니 이 사람이 영화사를 기술하는 방식에는 이야기꾼의
다큐멘터리의 새로운 역사 · 영화와 문학이 만났을 때
-
[헌즈 다이어리] <리얼스틸> 백마디 말보다 한 번의 행동
[헌즈 다이어리] <리얼스틸> 백마디 말보다 한 번의 행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