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는 <다크 나이트> 시리즈로 유명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2001년 초짜 시절(?)에 만들었던 <메멘토>란 영화가 있다. 단기기억상실증에 걸린 주인공이 아내를 살해한 범인을 찾아 죽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인데, 영화 말미에서 주인공은 이미 범인을 죽였음에도 그걸 잊고 계속 범인을 찾아 헤매고 있었음이 드러난다. 이 한줄의 설명에 딱히 살을 더 붙일 것이 없을 만큼 스토리는 단순하다.
하지만 이 단순한 영화는 많은 이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줬고 크리스토퍼 놀란이란 이름을 ‘기억’하게 만들었다. 이후 그는 다시 ‘기억’에 관한 두 번째 작품인 <인셉션>을 만드는데, 자세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어쨌거나 그가 ‘기억’에 집착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리고 아마 아는 사람이 거의 없겠지만 나 역시 바로 이 ‘기억’에 집착하는 편이다.
흔히 우리는 ‘기억’을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담긴 데이터라고 생각한다. 절반은 맞지만 절반은 틀리다. 컴퓨터 하드디
[김진혁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메멘토 인셉션 그리고 박근혜
-
최근 <피에타>의 상영을 두고 말들이 많다. 주로 메이저 배급사가 배급하는 한두편의 영화가 시장을 독과점하는 행태에 대한 비판이다. 독과점 행태가 가능한 것은 거대 배급사와 거대 상영관이 수직계열화되어 있기 때문이고, 이런 환경이 작은 영화들을 죽이고 있다는 비판도 함께 제기된다. 이런 일들은 거의 매년 반복되어온 일이다. 하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못했다. 결정적인 이유는 상영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영화관이 없기 때문이다. 영화관쪽은 “독립/예술영화의 상영 기회가 영화인들에게는 턱없이 부족한 규모이겠지만, 이런 영화들을 상영하는 관의 좌석점유율이 워낙 낮다보니 수익을 좇는 사기업으로서 더이상의 확대는 어렵다”라는 입장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CGV 무비꼴라쥬의 경우 평균 좌석점유율은 일반 상영관의 절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해당 기사에서 무비꼴라쥬 강기명 팀장은 “무비꼴라쥬 자체가 공익적인 성격이 강하지만, 사기업으로서
[충무로 도가니] 좀 나눠 가집시다
-
늦게 피는 꽃이 아름답다. <나이트폴> 홍보차 방한한 임달화는 이제 우리에게 익숙하고 매력적인 중견배우로 거듭났다. 주윤발의 캐릭터를 넘겨받기엔 어딘지 모자랐던 <첩혈가두>(1990)의 느끼한 킬러나 B급 에로영화에서 간간이 얼굴을 비치던 시절의 흔적은 이제 찾아볼 수 없다. 어느새 두기봉 사단이 낳은 최고의 스타가 되더니 급기야 <도둑들>로 1천만 배우의 반열에까지 오른 배우. 그는 한국에서 ‘꽃중년’이라 불린다는 말에 환한 미소를 짓다가(‘화중년’이라는 표현이 얼마나 멋지냐는 말과 함께) 이내 자신감 넘치는 미소로 대답한다. 하지만 “나는 아직 활짝 피지 않았다. 이제 막 꽃잎이 펴지려고 하는 순간이다. 10년 뒤를 지켜봐 달라”며 활짝 웃었다. 쑥스러운 얼굴 한편에 기쁨을 감추지 않고 이내 당당히 ‘꽃노년’까지 욕심내는 소년 같은 남자. 그저 그런 배우에서 홍콩의 오늘을 가장 잘 담아내고 있다는 평을 듣기까지, 배우 임달화를 만나 지켜온 연기에
[임달화] “계속 잘하면 다음에는 ‘꽃노년’이라 불러주나?”
-
김학선/ 음악웹진 ‘보다’ 편집장 ★★★☆
언제부턴가 펩 숍 보이스(PSB)의 음악을 말할 때면 늘 “우아하다”는 표현을 썼던 것 같다. 런던올림픽을 겨냥한 듯한, 어떻게 보면 노골적이라 할 수 있는 트랙 <Winner>에서도 이들은 여전히 우아하며 품격을 잃지 않는다. 댄스 트랙보다는 느린 비트의 곡들이 더 많은 이번 앨범에서 그 우아함은 더 도드라진다. 경배하라, 이들의 우아함을, 그리고 여전한 전설의 행보를.
이민희/ 음악웹진 ‘백비트’ 편집인 ★★★☆
누군가는 PSB의 음악에 맞춰 제대로 춤추는 순간을 꿈꿨다고 말한다.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들의 음악은 미친 막춤이 불가능할 것만 같은 고급 일렉트로니카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때가 되면 나타나 춤보다는 감상에 최적화된 모순의 댄스 음악을 선보인다. 시종일관 흐느적거리는 사운드가 유지되는 가운데, 소름 돋을 만큼 아름다운 멜로디가 튀어나와 사람을 멍하게 만든다. 여전히 사랑스러운 일관성.
최민우/ 음악웹진
[MUSIC] 살아 있네
-
-
뮤지컬 <두 도시 이야기>
기간: 10월7일까지
장소: 충무아트홀 대극장
문의: 02-2230-6601
연극 <쥐덫>
기간: 오픈런
장소: SH아트홀
문의: 02-747-2265
이렇게 날 좋은 날, 실내에서 책 읽기는 답답하다. 책 속의 상상력을 눈으로 귀로 보고 들을 수 있다. 바로 소설을 원작으로 한 공연이다. 이때 위대한 소설이 원작이라는 것은 큰 믿음을 준다. 비록 책으로 읽어보지 않았더라도 말이다.
우선 이름만 들어도 긴장하게 되는 추리소설의 여왕, 애거사 크리스티의 <쥐덫>이 연극 무대에 올랐다. 1952년 초연된 뒤 극장만 바뀌었을 뿐 60년째 상연되고 있는 명작이다. 쥐덫 노래와 함께 어우러지는 책의 몽환적인 분위기가 원작의 키포인트다. 연극이라는 매체에서도 책의 오리지널리티를 구현할 수 있을까. 정교한 건축물 같은 애거사 크리스티의 소설은 사실 무대에 올리기 꽤 까다로운 작품이다. 무대 위 세트는 원작의 클래식한 느낌을
[공연] 가을날의 고전을 좋아하세요?
-
[올드독의 영화노트] <늑대아이> 모두의 영혼을 적셔주는 애니메이션
[올드독의 영화노트] <늑대아이> 모두의 영혼을 적셔주는 애니메이션
-
클로드 프랑수아는 1960년대에서 70년대까지 많은 인기를 누린 프랑스 음악계 인물이었으며 1978년 돌연 욕실에서 감전사하기 전까지 프랑스인들의 스타였다. ‘끌로끌로’는 그의 애칭이었다. 영화는 프랑수아가 유년 시절을 보낸 이집트에서부터 시작한다. 이집트가 정치적으로 혼란에 빠지자 프랑수아의 아버지의 사업도 기울게 되고 그는 클럽의 가수를 전전하며 겨우 밥벌이를 하게 된다. 하지만 본격적인 음악 생활을 위해 파리에 도착한 프랑수아의 앞길은 이제 탄탄대로다. 그는 1961년에 데뷔 앨범을 낸 다음 이듬해부터 곧장 스타로 다시 태어난다. 1968년에는 프랭크 시내트라의 노래 <마이 웨이>로 더 잘 알려진 원곡도 발표한다. 그는 음악을 떠나 사업가로서도 자리를 굳혀간다.
<끌로끌로>는 평범하지만 지루함이 없는 전기영화다. 에디트 피아프의 생애를 다뤘던 <라비앙 로즈>의 연출자 플로렝 에밀리오 시리가 연출했고 우리에게는 <로나의 침묵> <
지루함이 없는 전기영화 <끌로끌로>
-
미처 두려움을 지워내지 못한 얼굴로 한 청년이 상대방의 이마에 총을 겨누고 있다. 화면이 암전되고 남은 것은 한발의 총성뿐. 영화는 3일 전의 어느 날로 되돌아간다. 가난한 전기수리공 빈스(샘 라일리)는 일하던 중에 집주인이 들고 온 우편물이 악마의 초대장임을 알게 된다. 병들어 입원 중인 아버지, 병원비를 대기 위해 내놓은 집, 어린 여동생을 떠올린 빈스는 별수 없이 악마의 초대에 응하고 만다. 죽음의 파티가 열리는 어딘가에서 빈스는 13번을 배정받고 러시안룰렛 토너먼트에 참가한다.
<익스트림 No.13>은 겔라 바브루아니 감독이 직접 연출한 <13 자메티>의 리메이크작이다. 아쉽게도 <13 자메티>에서 흑백 콘트라스트가 자아냈던 절제된 공허함이 <익스트림 No.13>에서는 다소 심심하고 가벼워졌다. 할리우드로 옮겨오면서 <익스트림 No.13>은 세련된 디테일을 무기로 삼은 듯하다. <13 자메티>의 무성영화적인
악마의 초대장 <익스트림 No.13>
-
일본의 스시 레스토랑 스키야바시 지로. 번화가 긴자의 한 건물 지하에 위치한 이 레스토랑은 좌석 10개가 겨우 들어가는 10평 남짓한 크기다. 그러나 한두달 전 예약은 필수. 메뉴는 단 하나, 스시. 가격은 무려 3만엔(45만여원)이다. 이곳의 주인은 85살로 최고령 <미슐랭 가이드> 3스타 셰프에 오른 오노 지로다. 제목대로 <스시 장인: 지로의 꿈>은 오노 지로의 스토리를 그려낸 다큐멘터리다.
물론 영화는 단순한 맛집 탐방 TV프로그램 같은 작품이 아니다. 인기 셰프의 요리 인생을 드라마틱하게 그려낸 작품은 더더욱 아니다. <스시 장인: 지로의 꿈>은 ‘오노 지로가 만든 스시의 맛이 얼마나 훌륭한가’보다 ‘손님에게 최상의 요리를 선보이기 위해 노력하는 그의 태도와 자세’를 보여주는 데 상당 부분 할애한다. 검버섯이 피고, 상처가 날까봐 외출 시 항상 손장갑을 끼고 나가는 조심성이며, 미각을 유지하기 위해 커피 같은 자극적인 음식을 피하는 절제력
인생의 의미를 되새기다 <스시 장인: 지로의 꿈>
-
아시아 지하세계를 평정한 사나이 돈(샤룩 칸)이 이제 유럽 대륙을 손에 넣기 위해 움직인다. 위협을 감지하고 일부러 특수팀의 비샬말릭(옴 푸리)에게 자수를 하고 감옥에 들어간 돈은 그곳에서 자신을 향한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던 바르드한(보만 이라니)과 연합해 탈옥한다. 여형사 로마(프리얀카 초프라)를 비롯한 세계 각국 경찰이 그를 뒤쫓지만 여유만만한 돈은 이번엔 유럽에서 사상 최대의 범죄를 계획한다.
보는 내가 다 부끄럽다. 그런데 그게 또 왠지 멋지다. <천재사기꾼 돈: 세상을 속여라>는 지금 인도영화의 현주소를 증명하는 영화다. 익히 알고 있는 마살라 무비(춤과 노래가 어우러진 뮤지컬 형식)의 요소를 최대한 자제하고 할리우드 액션영화의 공식들을 모사해나가는 이 영화는 전형적인 인도식 프랜차이즈 영화라 할 수 있다. 전작 <돈>(2006)의 폭발적인 흥행에 힘입어 스타 감독의 반열에 오른 파르한 악타르 감독이 다시 한번 메가폰을 잡고, ‘3대 칸’으로 불리
부끄럽거나 멋지거나 <천재사기꾼 돈: 세상을 속여라>
-
국제경찰인 존(주걸륜)은 변종 바이러스를 만든 박사를 후송하던 중 동료에게 배신당하고, 애인을 잃고, 머리에 총을 맞는다. 죽음을 앞둔 존에게 남은 시간은 2주 정도. 마침 그의 엄마는 과거에 헤어진 아버지와 형을 찾아달라고 애원한다. 가족을 찾아 말레이시아로 향한 존은 그곳에서 또다시 바이러스를 탈취한 세력과 맞붙고 이 과정에서 형인 만양(사정봉)을 만난다. 이제 존에게는 두 가지 미션이 떨어진다. 변종 바이러스를 확산시킨 뒤, 백신을 유통해 돈을 벌려는 세력을 소탕하는 것, 그리고 27년 전 헤어진 형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 쉬운 건 아무것도 없다.
<바이럴 팩터>는 <비스트 스토커> 시리즈를 연출했던 임초현 감독의 신작이다. 전성기 시절 홍콩영화의 분위기와 자신만의 액션 스타일을 적절히 활용해온 그는 이번에도 관객을 만족시킬 만한 결과물을 내놓았다. 경찰과 범죄자로 갈린 형제의 운명은 <영웅본색>을 연상시키는 대목이고, 도심을 달리다 오르내
가족의 재구성 <바이럴 팩터>
-
선비 주효렴(덩차오)은 도적 맹용담(예성)의 뒤를 쫓다가 들어간 사원에서 우연히 아름다운 벽화를 본다. 잠시 뒤 벽화에 그려진 여인 무단(정솽)이 주효렴의 눈앞에 실제로 나타나고, 주효렴은 홀린 듯 그녀를 따라 벽화 속 세계로 들어간다. 꽃의 이름을 단 선녀들이 가득한 그곳은 독단적인 여왕(염니)이 다스리는 금남의 세계다. 작약(손려)과 무단은 여왕의 눈을 피해 주효렴을 숨겨주다가 불지옥에 갇히게 되고 주효렴은 여인들을 구하기 위해 맹용담과 선녀들의 도움을 받아 여왕을 상대로 분투한다.
<화벽>은 중국의 기서 <요재지이> 중 ‘벽화 속 여인’ 에피소드에 착안해 만들어졌다. 영화는 한편의 러브 스토리이기보다 평등과 화해를 노래하는 서사시에 가까운데, 결말부에 가서야 조금씩 드러나는 주효렴과 작약의 멜로는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 오히려 영화는 사랑에 대해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는 여왕과 작약이 주효렴으로 인해 남성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거나,
평등과 화해를 노래하는 서사시 <화벽>
-
2달 전 <미드나잇 인 파리>를 봤던 기억이 난다. 마치 신데렐라라도 된 듯 밤 12시에 정해진 장소에서 푸조형 타임머신을 기다리던 그 남자. 꿈에서 깨면 자기 회의에 빠진 별볼일 없는 얼치기 예술가로 돌아가야 했던 그 남자. 그의 얼굴 위로 다른 남자의 얼굴 하나가 어렵지 않게 겹쳐졌다. 바로 우디 앨런 감독의 얼굴이었다. 그가 직접 주인공을 연기하기 힘든 나이가 된 뒤에도, 그의 주인공들은 늘 어딘가 그와 닮은 구석을 드러냈다. 그의 필모그래피가 서사시부터 SF에 이르기까지 범상치 않은 스펙트럼을 자랑하지만, 캐릭터에 새겨져 있는 작가의 인장 때문에 그의 영화는 언제나 코미디로 인지되곤 했다. 그 웃음의 공약성분이 무엇인지 <우디 앨런: 우리가 몰랐던 이야기>를 보면 알 수 있다. 모질었던 어머니와 울적했던 학창 시절을 거쳐 그는 개그를 팔던 작가에서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TV 스타로, 그리고 끝내 영화감독 겸 배우로 성장했다. 그 과정에서 그가 경험한 성
그의 염세주의적 세계관 <우디 앨런: 우리가 몰랐던 이야기>
-
2011년 1월6일 새벽 5시50분.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은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내 85호 크레인에 오른다. 한진중공업 사쪽이 1년 새 3천명이 넘는 노동자들을 해고한 데 이어 생산직 직원 400여명을 추가로 감원키로 하자 고공시위에 돌입한 것이다. 85호 크레인은 김 지도위원의 둘도 없는 동료였던 김주익, 곽재규 열사의 무덤이기도 하다. 김 지도위원이 목숨을 내건 고공시위를 시작한 지 157일.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기적’의 행렬이 시작된다. ‘소금꽃나무’ 김진숙을 응원하기 위해 전국 각지의 사람들이 ‘희망버스’를 타고 영도조선소로 몰려든 것이다. 깃발 대신 기타로 무장한 ‘날라리 외부세력’이 가세하면서 한진중공업 사태는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김진숙 지도위원 구하기’에 뛰어든 수만명의 사람들 중 비장한 각오를 가슴에 새긴 투사는 없다. 만사 제쳐두고 그림자 섬 영도에 온 한 청년은 얼마 전까지 자신이 노동자인 줄도 몰랐다. 경찰의 삼엄한 경계선을 뚫느라 가방
투쟁이 아닌 축제 <깔깔깔 희망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