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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0만달러짜리 저예산영화 <크로니클>은 현재 미국 박스오피스에서 6천만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리고 있으며, 로튼토마토닷컴에서는 무려 86%의 신선도를 기록하고 있다. 당연히 감독과 배우들에게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도 강렬하다. <크로니클>의 감독과 배우들을 LA 현지 정킷으로 만났다.
“평범한 고등학생 같은 배우를 원했다”
감독 조시 트랭크 인터뷰
-<크로니클>은 독특한 영화다. 이 영화를 시장에 내놓는 데 특별한 전략이 있었나.
=여러 가지 자원을 활용했다. 나는 100% 인터넷 세대가 아니다. 요즘 아이들을 보면 인터넷과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생활을 하지 않나? 나는 50% 정도 인터넷 세대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인터넷이 어떻게 아이디어를 싹틔우고 소문을 만드는지, 얼마나 빠르게 이야기를 실어나르는지, 그리고 그 여파에 대해 관찰하고 알고 있을 만큼 운이 좋았던 셈이다. 이런 과정을 겪으며 한 가지 배운 것은 마케팅 시장이 인터넷으로
나쁜 슈퍼 히어로들의 박스오피스 습격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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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니클>은 지금 영화를 만드는 세대라면 누구나 한번쯤 생각해봤을 아이디어로부터 시작된 영화다. 만약 <클로버필드>와 <블레어 윗치 프로젝트> 같은 파운드 푸티지 장르의 형식을 지금 할리우드를 휩쓸고 있는 슈퍼히어로물과 접목한다면? 이 아이디어를 실현시킨 사람은 스물일곱 동갑내기인 감독 조시 트랭크와 각본가 맥스 랜디스다. 조시 트랭크는 <스타워즈>의 제다이와 스톰트루퍼가 십대들의 파티에 갑자기 나타난다는 내용의 파운드 푸티지 단편 <레아의 22번째 생일날의 칼부림>(Stabbing at Leia’s 22nd Birthday)으로 유튜브에서 돌풍을 일으킨 바 있다. 다큐멘터리 제작자의 아들로 태어난 조시 트랭크는 “실생활에서 일어날 수 있는 그런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한다. “아주 평범하고 현실에 바탕을 둔 이야기로 시작하다가 갑자기 엄청난 일이 일어나는 영화 말이다. 어느 날 여객기를 타고 날아가다 창밖을 봤는데 구름이
파운드 푸티지가 슈퍼히어로를 만났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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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 생각해보라. 지금 할리우드를 휩쓸고 있는 두개의 신종 장르인 파운드 푸티지와 슈퍼히어로물을 하나로 합친다면 뭔가 흥미진진한 영화가 나오지 않을까? <크로니클>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70∼80년대 선배 할리우드 장르영화와 일본 만화의 영향력까지 호쾌한 솜씨로 버무려넣는다. 스물일곱살 신인감독의 데뷔작 <크로니클>은 <블레어 윗치>가 <엑스맨>을 만난 영화, 혹은 <클로버필드>가 <아키라>를 만난 영화다.
만약 당신이 슈퍼파워를 손에 넣는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당신은 하늘을 날 수도, 손에서 거미줄을 뿜어내며 빌딩숲을 질주할 수도 있다. 그러나 피터 파커의 삼촌이 말했듯이 “큰 힘에는 큰 책임감이 따르게 마련”이다. 아니다. 그건 마블의 세계에서나 통하는 법칙이다. 진짜 세계에서라면 큰 힘에는 책임감이 아니라 큰 업보만 따라온다. 하늘을 나는 능력을 가지게 된다면? 당신은 기껏해야 산소를 공급받을 수 있는 고도
우리들의 일그러진 초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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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차>의 종근은 요상한 캐릭터다. 전직 형사 종근에게 주어진 임무는 사촌동생 문호(이선균)를 도와 선영(김민희)의 정체를 밝히는 것인데, 문호에게 바통을 넘겨주고 빠져도 될 시점에서도 자꾸 등장한다. 눈여겨봐야 할 점은 특별한 설정 없이도, 별다른 대사 없이도, 종근의 심리 변화가 단계별로 고스란히 관객에게 전해진다는 거다. 이건 캐릭터의 힘이기도 하지만, 종근을 뒤집어쓴 배우 조성하의 공이기도 하다. 평범한 듯 보이는 마스크는 한때 조성하에게 약점이었지만, 지금 조성하에겐 무엇이든 그려넣을 수 있는 캔버스 같다. 감정을 내면에서 뿜어올리되, 바깥으로 한꺼번에 분사하지 않고 계산해서 터트릴 줄 아는, 컨트롤 감각을 지닌 조성하가 <황해>의 버스회사 사장 태원 이후 <화차>의 종근으로 돌아왔다.
-눈이 충혈된 것 같다.
=(매니저를 보며) 안약 넣자. (웃음) 충혈이 잦은 편이다. 드라마(<한반도>) 촬영 때문에 잠을 못 자서 더 그런
[조성하] 놀 수 있는 판이 있어 행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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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에 또 다녀왔다. 회사 일과 관련된 출장이었지만 잉마르 베리만에 대한 관심을 계속 이어갈 기회이기도 했다. 스톡홀름 알란다 공항 입국장에 붙어 있는 베리만의 사진은 이제 익숙하게 느껴진다. 스웨덴을 알린 여러 사람들의 사진 중에서도 그의 사진이 가장 크고, 또 가장 마지막에 붙어 있다.
스톡홀름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그의 고향인 웁살라를 찾았다. 대학 도시이자 생물학자 린네가 활동했던 것으로 유명한 이 역사 도시에서 베리만은 루터교 교구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이름을 딴 거리도 있고 그가 살았던 집도 있으며 심지어 어린 시절 그가 들락거렸다는 영화관도 그대로 남아 있다. 북구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는 벽돌로 지어진 웁살라 대성당도 바로 지척이다. 그의 자서전인 <마법의 등>에 이런 구절이 있다.
“나는 교회라는 신비한 세계에 빠져들었다. 낮은 아치, 두꺼운 벽, 영원의 냄새, 그리고 벽과 천장에 복잡하게 얽혀 있는 중세의 그림과 조각들 위를 떨리듯 비추는,
[architecture+] 교회의 문을 열면 신비로운 세상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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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선 / 음악웹진 ‘보다’ 편집장 ★★★★
지난 앨범 ≪꽃, 다시 첫 번째≫는 말 그대로 ‘다시’ 시작하는 ‘첫 번째’ 앨범이었다. 그만큼의 인상적인 변화를 담고 있었다. 이번 앨범 ≪나무가 되는 꿈≫은 그런 박지윤의 변화를 한층 더 심화해 담아냈다. 박지윤은 이제 어쿠스틱한 사운드와 처연한 멜로디를 가지고 “더이상 소녀가 아니”라며 새된 소리를 지르지 않아도 고혹한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는 성숙한 여인이 되었다
이민희 / 음악웹진 ‘백비트’ 편집인 ★★★★
막 데뷔한 신예였다면 관심이 덜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박지윤의 커리어를 이해하고 있기에 몹시 천천히 이루어진 엄청난 음악적 변화에 훨씬 너그럽고 따뜻한 마음을 갖게 된다. 곡 사이의 변별력이 크지 않다고 느꼈다가도 가장 진중하게 흐르는 <나무가 되는 꿈>, 가장 상냥하게 노래하는 <너에게 가는 길>은 더 듣고 싶어진다. 꼬꼬마 가수들에게 의미있는 앨범이 되기를. 이만큼 진솔하고 치열한 아이돌
[hottracks] 소녀에서 성숙한 여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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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 3월20일-4월8일
장소: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문의: 02-758-2150
오래전 탄광에서 일어난 폭발 사고. 17년이 흐른 지금, 탄광이 없어진 자리엔 화려한 불빛의 카지노가 사람들을 유혹한다. 남산예술센터가 2012년 두 번째 시즌작으로 무대에 올리는 연극 <878미터의 봄>은 탄광과 카지노, 그리고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주검마저 확인하지 못한 광산 사고의 진실들을 하나씩, 천천히 벗겨낸다. 카지노로 변해버린 정선 폐광촌에서 삶을 이어가는 막장 인생들과 타워크레인에서 농성 중인 노동자들의 현실을 오버랩하며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대해 묵직한 비판을 던지는 작품이다. 제목 <878미터의 봄>의 숫자 ‘878’은 작품의 주된 배경인 탄광 막장의 깊이를 상징하기도 하고, 카지노의 잭팟이 터지는 21에 2가 더해져 이루지 못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주인공 ‘우영’이 딜러로 일하는 카지노는 과거 자신의 아버지가 광부로 일했던 탄광이었다. 개발로 인해 끊임
[공연] 그럼에도 봄은 찾아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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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서울대학교 미술관
기간: 4월12일까지
문의: 02-880-9508
만나지 못할 두 여자가 만났다. ‘똥머리’에 단색 티셔츠를 입은 왼쪽 여자는 여행지에서 흔히 볼 수 있을 법한 현대 유럽 여성이고, 이마를 시원하게 드러낸 고전 복식의 오른쪽 여자는 르네상스 시대 페라레를 지배했던 고고한 이탈리아 공주다. 작품의 제목은 <아잇제와 피사넬로>. 자신의 딸 아잇제와 르네상스 화가 피사넬로의 초상화 주인공을 하나의 화폭에 담아낸 네덜란드 화가 쿠스 반 쿠오렌의 그림이다.
<아잇제와 피사넬로>는 이 그림이 소개될 <네덜란드의 마술적 사실주의: 전통에서 현대까지>의 상징적인 작품이다. 192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네덜란드 전역에 유행했던 미술운동 ‘마술적 사실주의’의 흐름을 소개하는 이 전시는 과거의 유산이 의도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현재를 살아가는 예술가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시사한다. 전시된 작품을 눈으로 훑기만 해도 생각나는
[전시] 사실 너머의 그 무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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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역시 누군가 24세 넘은 아줌마나 아저씨가 필요해.”
몇번을 읽었는지 셀 수 없지만 읽을 때마다 다른 대목에서 웃게 되는 강경옥의 <17세의 나레이션>인데 이번에는 방학 때 함께 놀러가기로 한 고등학생들의 대화에서 빵 터졌다. 생각해보면 나는 17살 때, 35살까지 살고 나면 모든 게 너무 다 정해져버려서 인생이 지겨워질 거라고 생각했고 그쯤에는 죽는 게 좋겠다고 결론냈었다. 선생님들이(생각해보면 당시 신생학교 선생이었던 그들 태반이 지금의 나보다 어렸다) 우리를 아련한 눈길로 바라보면서 “너희는 아무것도 안 해도 얼굴에서 빛이 난다”고 할 때 코웃음쳤고 “공부만 하면 된다는 게 얼마나 좋은 줄 아냐”는 훈계를 끔찍하게 경멸했었다. <17세의 나레이션>의 주인공 세영이는 상담에 응해준 대학생 오빠에게 털어놓는다. “17살도 세상은 살기 힘들어요.”
처음 읽었을 때는 그저 애틋한 연애물이었지만 <17세의 나레이션>은 국산 청소년 소설이 부재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17살도 세상은 살기 힘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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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책은 길고도 다채로운 변천사를 가졌다. 90년대 초반에는 <세계를 간다> 시리즈가 바이블이었다. 일본 책을 중역했네 지도가 안 맞네 해도 대안이 없었다. 90년대 중반이 지나 배낭여행이 활성화되면서 가이드북이 하나씩 늘었고 2000년대는 여행에세이의 전성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직장에 사표를 쓰고 1년쯤 살다온 런던, 뉴욕, 파리 이야기라든가 하루에 1달러로 생활하는 타이, 베트남, 인도 이야기라든가 쇼핑을 위해 떠난 도쿄, 홍콩, 뉴욕 체류기라든가. 워낙 책이 많이 나오니 읽을 만큼 읽었다고 생각해도 떠나고 싶은 마음이 없어지지 않는 한 여행에세이라는 장르는 늘 봄볕 드는 양지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생각하게 된다.
<열대식당>은 타이, 베트남, 인도네시아, 미얀마에서 먹은 이야기를 모았다. 매연 그득한 길거리에서 사먹는 화려한 맛(달고 시고 매운)의 한 접시가 얼마나 매혹적인지, 그 후끈한 공기까지 담아내려고 노력했다. “순전히 먹기 위해 방문
[도서] 떠나려는 사람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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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이하 <하이킥3>) 17회 일명 ‘광견병 에피소드’. 눈꼬리를 축 늘어뜨리고, 이웃집 굶주린 개를 안타깝게 지켜보던 노량진 지나고등학교 박하선 선생은 끝내 측은지심을 이기지 못해 사료를 사들고 월담한다. 제법 스포츠맨스러운 동작이 허리를 졸라맨 빨간 코트에 뾰족구두 차림과 부조화하다. “왜 이렇게 짖어, 이 좋은 날…” 하며 다소곳이 개를 달래던 이 여자, 흥분한 개에게 한입 물려 보건소에서 광견병 가능성을 경고받자 대뜸 입매가 찌그러진다. 그날 밤 옆집 윤 선생(윤지석)은 포장마차에서 꽥꽥 소리를 지르고 있는 그녀를 만난다. “비련의 여주인공이면 병이라도 그럴듯하든지! 광견병이 뭐예요, 광견병이!”
박하선은 지켜보고 있자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겠는 배우다. 현재 20대 여자 연기자 가운데 이만큼 표정이 풍부한 이가 있나 싶다. 울컥하면 윗입술이 사정없이 말려 올라가고 환하게 웃을 때는 꿀단지를 앞에 둔 새끼곰마냥 혀까지 나온다.
[박하선] 그녀의 표정에 홀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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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란 무엇일까. 도리스 되리의 신작은 시작부터 “사람들은 자신이 행복한 순간에도 행복하다는 사실을 모를 때가 많다”는 독백과 함께 푸른 하늘, 흰 구름, 넓은 양귀비 꽃밭으로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전작 <파니 핑크> <내 남자의 유통기간> <체리 블로섬-하나미> <헤어드레서>에서 볼 수 있듯이, 되리는 행복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이번에도 그녀는 독일어로 행복을 뜻하는 <글뤽>(Gluck)이라는 영화로 행복의 본질에 천착한다.
영화는 주인공의 불행을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주인공 이리나(알바 로르바처)는 동유럽 어느 시골에서 부모와 함께 소박하지만 행복한 삶을 누린다. 농가에서 양을 치고 꿀을 병에 담는 일상이 동화처럼 그려진다. 어느 날 갑자기 마을로 탱크가 쳐들어오고 부모는 군인에게 살해당하며 이리나는 강간당한다. 결국 이리나는 혼자 베를린으로 도망가 거리의 매춘부로 연명하고, 정신적 고통을 못 이겨 압정으
[베를린] 행복의 본질을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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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틀쉽> Battleship
감독 피터 버그 / 출연 테일러 키치, 브루클린 데커, 리암 니슨, 알렉산더 스카스가드, 리한나, 아사노 다다노부 / 개봉 4월19일
하스브로사의 게임과 블록버스터의 결합은 이제 지겹다고? <배틀쉽>은 좀 다른 영화가 될지도 모르겠다. 감독 피터 버그에 따르면, <배틀쉽>은 거대한 전함과 외계인의 전쟁이라는 소재를 통해 전투에 참가한 사람들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영화란다. 아마도 이 해양블록버스터가 지향하는 건 <트랜스포머>의 외피에 <진주만>의 드라마를 지닌 영화인 듯하다. <배틀쉽>은 지구의 바다 자원을 취하기 위해 진주만을 습격한 외계인 종족에 맞서싸우는 국제 해군 함대원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존 카터: 바숨 전쟁의 서막>의 존 카터로 주목받은 테일러 키치가 사랑과 전쟁의 승리를 모두 쟁취하려는 해군 대위로, 팝스타 리한나가 부대원으로 출연한다.
[Coming soon] <트랜스포머>의 외피에 <진주만>의 드라마를 지닌 영화 <배틀쉽> Battlesh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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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께 밤에 카피차를 황태자 전하께서 많이 진어하신 후 곧 피를 토하시고 정신이 혼미하샤… (중략)… 황상폐하께서는 조금 진어하신 후 토하시고 근시 김한종 김서태 양씨와 엄상궁이 퇴선을 맛본 후 김한종씨는 곧 호도하여 불성인사하매 업어내어가고 하인 넷이 나머지를 먹고 또 병이 들었다 하니… 수라 맡은 사람들의 조심 아니한 것은 황송한 일이로다.”(강준만·오두진, <고종 스타벅스에 가다>, 24∼25쪽) 1989년 9월에 발생한 고종 독살 음모사건은 김탁환의 소설 <노서아 가비>의 출발점이었다. <노서아 가비>는 “아관파천(俄館播遷) 시절에 세도를 부렸던” 역관(譯官) 김홍륙이 흑산도로 유배를 당하게 되자 고종이 즐겨 마시던 가비차(커피)에 독극물을 넣은 사건을 바탕으로 하되, 청나라와 러시아를 무대로 사기 행각을 벌이다 조선에 돌아와 조정을 상대로 위험한 거래를 벌이는 상상의 캐릭터를 빚어넣었다. <노서아 가비>를 원작으로 삼은 장윤현
병풍이 화려하면 그림이 보이지 않는다 <가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