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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 전력 수요만 급증한 건 아니다. 영화진흥위원회 집계에 따르면, 2012년 상반기 극장 관객 수는 8729만명으로, 지난해보다 21% 늘어났다. 2006년 이후 최고치다. 이상기류는 계속되고 있다. 7월 한달 동안 2095만5320명의 관객이 극장을 찾았는데, 이는 연중 극장 최대 성수기인 8월의 평균 관객 수를 훌쩍 뛰어넘는 수치다. 상반기 내내 점유율에 있어 엎치락뒤치락 호각세를 보였던 한국영화와 외국영화는 연말까지 접전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하반기 개봉예정작 중 36편의 영화를 추려 소개하면서, 굳이 한국영화와 외국영화로 따로 분류하지 않았다. 다만 10여개의 키워드 아래 묶인 영화들을 일별하다 보면 달아오른 2012년 극장가의 열풍까지도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클래식 본드 커밍순!
<007 스카이폴> 007 Skyfall
감독 샘 멘데스 / 출연 대니얼 크레이그, 하비에르 바르뎀, 나오미 해리스, 레이첼 와이즈 / 개봉 11월1일
2012 런던올림픽
흥행을 향해 튀어!-속편, 스핀오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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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반장 경선이는 강타 오빠의 팬이었다. 작고 마르고 목소리가 가늘었던, 수업시간이면 안경을 챙겨 끼고 첫째 줄에 앉아 선생님과 칠판에 시선을 고정하던 경선이에게 성적과 입시 고민은 인생의 전부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형편이 어려워 학원이나 과외도 포기하고 항상 공부에 지친 얼굴이던 경선이가 유일하게 눈을 빛내며 말이 많아지는 시기는 H.O.T의 새 앨범이 나올 때였다. 학교 앞 음반가게에 며칠 전부터 예약을 해두고 애써 모은 용돈으로 CD를 세장이나 사서 감상용과 소장용, 선물용으로 나누는 경선이와 함께 하교하는 날이면 무조건 이어폰 한쪽씩 나눠 끼고 H.O.T의 노래를 들어야 했다. 지루하고 팍팍한 수험생활 가운데 강타 오빠에게서 삶의 모든 즐거움과 희망을 얻던 경선이가 오빠의 살인미소와 착한 마음씨를 진지하게 찬양할 때면 어쩐지 경건한 기분마저 들곤 할 만큼, 그 시절 우리에게 오빠들은 ‘슬프도록 아름다운’ 존재였다.
tvN <응답하라 1997>은 바로 그 1997
[최지은의 TVIEW] 친구야, 너도 보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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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어쨌거나 <헤이와이어>는 스파이 액션영화다. 스파이도 있고 액션도 있으니까. 다만 ‘본 시리즈’나 ‘007 시리즈’와는 다른 방식인데 어떤 점에선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와 비슷한(지루한?) 인상도 받는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의 진짜 매력이 ‘경제성’에 있다고 본다. 이야기의 얼개도, 편집도, 대사도 군더더기 없이 명료하다. 특히 액션이 그렇다. 270도 역회전 발차기나 엄청난 화력의 건물 폭발 따위가 나오는 대신 짧게 때려서 공격하고 방어와 동시에 꺾고 조르고 넘어뜨린 뒤 권총을 한두발 쏘는 동작들이 유연하게 흐른다. 이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연속동작은 우아하기까지 하다.
70년대 스릴러풍의 훵키한 스코어도 마찬가지다. 어디에 어떤 음악이 흐르는지 모를 정도로 적재적소에 놓인다. 엔딩 크레딧에 흐르는 메인 테마 <Haywire>는 빈틈을 노려 날리는 일격처럼 짧고 굵다. 이 근사하고 쿨한 음악에 대한 상찬은 모두 ‘오션스 시리즈’에서 소더
[차우진의 귀를 기울이면] 그야말로 ‘일격필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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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경기 중계를 지켜보면서 떠오른 영화가 있다. 1936년 베를린올림픽 경기장면을 담은 레니 리펜슈탈의 기록영화 <올림피아>(1938). 급진적 카메라 앵글, 극단적 클로즈업, 급격한 스매시 컷 등, 오늘날 스포츠 중계와 상업영화에 사용되는 상당수의 기법이 이 영화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감독의 나치 전력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그 탁월한 기술적-예술적 성취에 힘입어 아직까지도 여러 리스트에 세계 100대 영화로 올라 있다.
기록을 넘어서
<올림피아>에 사용된 다양한 기법은 일반적으로 기록영화에서 요구되는 수준을 넘어선다. 이 영화의 예술성은 바로 이 시각적 ‘과잉’에서 나온다. 가령 높이뛰기 경기는 앙각으로 촬영된다. 선수가 마치 하늘을 배경으로 나는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서다. 넓이뛰기의 경우, 앙각을 확보하기 위해 경기장 옆에 참호를 팠다. 심지어 경기장의 부감숏을 얻기 위해서 카메라를 애드벌룬에 실어 날린 뒤, 주민신고를 받아 필름을 회수하
[진중권의 미학 에세이] 막연한 감성 차원의 파시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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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성격이 모두 다르다는 게 놀라울 때가 있다. 각각 고유한 퇴적층이 되어 유일한 삶과 생각들을 쌓아올리며 자신만의 성격을 완성했을 테니 성격이 다른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인데, 문득 생각하면 놀랍다. 동물도 그럴까. 같은 동물이라고 해도 태어난 시간이 다르고, 자라온 동네가 다르니 자신만의 성격 같은 게 있지 않을까. 수많은 동물애니메이션 때문에 동물의 입장을 제대로 상상하기 힘들지만 어쩐지 그럴 것 같다. 같은 종의 고양이라도, 같은 종의 개라도, 성격과 취향과 철학이 다를 것 같다.
‘한번 정해진 성격은 영원히 그 사람 성격’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던데, 내 생각엔 (우리가 무슨 해병대도 아니고) 성격 역시 변하는 것 같다. 성격은 고쳐야지 마음먹는다고 되는 일은 아닌 것 같고, 큰일을 겪거나 중요한 사건에 맞닥뜨리고 난 뒤 조금씩 변하는 게 아닌가 싶다. 그때는 알지 못하더라도 어느 순간 되돌아보면, ‘아, 그때 그래서 내가 변한 거로군’ 하고 깨닫게 된다.
내
[김중혁의 최신가요인가요] 변화 그리고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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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2시 종이 울리면 오래된 푸조를 타고 1920년대의 파리로 간다. 스콧 피츠제럴드와 그의 아내 젤다가 여는 파티에 참석하고,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헤밍웨이가 불쑥 “당신은 어떤 소설을 쓰지? 문장은 간결해야 해” 하고 조언해주며, 거트루드 스타인이 내가 쓴 글을 평가해준다. 더할 나위 없이 환상적이고 기발한 발상이지만, 우디 앨런의 영화이기에 놀랍지 않았다. 지금껏 우디 앨런의 영화에서는 별의별 기상천외한 일이 다 일어나 우리를 즐겁게 해주었으니까. 죽은 사람이 저승사자 눈을 피해 이승으로 도망쳐왔고, 영화를 보는 것만이 낙이던 한 여자는 스크린 속으로 진짜 들어가버렸으며, 우디 앨런은 젊은 시절 직접 정자 한 마리가 되어 다른 정자들과 경쟁하며 난자로 돌진했었다.
놀랍기로 따지자면, 파리의 관광객인 길(오언 윌슨)이 프랑스어 한마디 못하는 여행객이면서도, 가까운 친구네 집 놀러가는 사람처럼 스스럼없이 파리를 돌아다니는 게 난 더 놀라웠다. 그리고 오언 윌슨마저 우디 앨런
[fashion+] 365일 똑같이 입고도 멋진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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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완전함이 없다는 걸 나 역시 잘 알지만 음악만큼은 가끔 예외로 하고 싶다. 그 정신적 애착에 관해서 그 유난스러움과 의미심장한 매혹을 애써 외면한다쳐도 음악이 우리에게 불러일으키는 이름 모를 정열의 소용돌이마저 무시할 순 없는 법이다. 트랜스한 공황상태. 그분이 오셨다. 이른바 ‘빙의’. 이 태곳적 열락은 내 영광의 기반이거나 부수적인 징후 아니던가? 그러므로 나의 이 명상, 이 애무를 좀더 완벽하고 진실되게 경험하기 위해서라도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만 같은 일상의 비루함마저 사랑해야 한다고 믿었었다.
그런데 문제는 엄한 곳에서 생긴다. 하드웨어, 즉 물질적 속성에 따른 경솔하고 아둔한 선택이 종종 모든 걸 망치는 꼴을 보게 된다. 자신의 탁월한 감각과 관대한 정신으로도 도저히 참아낼 길이 없는 취향의 저 절묘한 순간이 도래한 것이다. 그러니까 그건 같은 곡이라도 앰프와 스피커에 따라, 장소와 시간에 따라, 그리고 소스의 종류(즉 LP, CD, 테이프, 최근엔 무손실
[SO WHAT] 만족해? 정말? 돌고 도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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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즈 다이어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한결같음
[헌즈 다이어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한결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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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섯살 생일을 3일 앞둔 어느 날, 낮에 아버지와 여동생을 살해하고, 저녁에 같은 학교 친구들을 학살한 케빈, 그 아이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고 이 영화는 말한다. 그 요청에 나대로 응해보려고 한다. 우선 케빈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한 사람들의 말을 들어봐야 할 것이다. 원작 소설 <케빈에 대하여> 한국어판의 뒤표지에는 케빈을 규정하는 두개의 단어가 적혀 있다. 하나는 ‘소시오패스’이고 다른 하나는 ‘괴물’이다. 둘 중 앞의 것은 대단히 부적절하게 선택된 단어로 보인다. 우리가 어떤 서사의 등장인물을 소시오패스니 사이코패스니 하며 ‘규정’하는 행위는 그 자체로 그리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지하생활자의 수기>의 ‘나’와 <이방인>의 ‘뫼르소’ 등을 소시오패스라 규정한다고 해서 그 소설의 비밀이 풀리지는 않는다. 좋은 서사란 대체로 그런 식의 거친 규정을 무너뜨리기 위해 고안된 정교한 발파장치다. 케빈을 소시오패스라고 규정해버리면 이 이야기는 ‘낳고 보니
[신형철의 스토리-텔링] 어떤 사랑의 실패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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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의 피조물> 1994
“자동차 뒷좌석에서 대본을 읽다가 아빠에게 소리를 질렀죠. ‘이건 꼭 해야 해!’ 아빠가 말하더군요. ‘원한다면 하게 될 거란다.’ 그 말을 듣고 생각했죠. ‘그래. 그거야. 무조건 할 거야.’ 제게는 굳은 결의가 있었어요. 제 삶의 결정적인 순간이었으니까요. 제가 뽑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땐 무척 행복해서 울었어요. 당시 샌드위치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는데 샌드위치를 만들다 제가 됐다는 전화를 받았어요. 눈물을 멈출 수 없어서 가게에서 뛰어나가야 했죠.”
<센스, 센서빌리티> 1995
“이 영화로 오스카 시상식에 처음으로 참가했을 때 함께 출연한 에마 톰슨이 이렇게 말했어요. ‘잘 들어. 솔직히 말하자면 이건 그냥 끝내주는 쇼를 보러 가는 거야.’ 진짜 그렇더라고요. 하지만 시상식에 참여한 엄마, 아빠와 저는 꼭 촌놈들 같았죠. 차에서 나오는데 엄마가 제 드레스를 밟았고, 저는 ‘엄마! 좀! 엄마!’ 이렇게 외쳐댔죠.
[케이트 윈슬럿] 케이트 윈슬럿이 말하는 내 배우 인생의 다섯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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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를 꿈꾸는 초보 배우에게 <대학살의 신>은 훌륭한 가르침의 장이다. 동시에, 이 영화는 초보 연기자의 꿈을 짓밟는 대학살극일 수도 있다. 조디 포스터, 크리스토프 왈츠, 존 C. 라일리와 케이트 윈슬럿이 물을 만난 고기처럼, 불을 만난 나방처럼 노는 모습을 한번 지켜보시라. 만약 당신이 조금 자존감이 낮은 초보 배우라면, 이 미친 연기자들의 발끝에라도 미치는 건 영원히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좌절감에 쉬이 빠져들지도 모른다. 특히 케이트 윈슬럿은, 맙소사. 이 멋진 여배우는 정말로 우리 시대의 메릴 스트립이 되어가고 있다. 겨우 몇년 전만 해도 그녀는 “메릴 스트립과 함께 언급되는 여배우가 됐다는 사실은 정말 믿을 수가 없어요. 제 삶에 이런 일이 벌어지리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죠”라고 말하던 배우였다. 지금은? 누군가가 오스카 연단에 올라 “케이트 윈슬럿과 같은 부문에 후보로 오르다니, 영광스러워요”라고 말해도 우리는 금세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케이트 윈슬럿의
[케이트 윈슬럿] 난 멈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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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에 시간 날 때마다 ‘오늘의 요리’를 올렸더니 사람들 반응이 제각각이다. 변영주 감독을 비롯한 영화계 인간들은 이제 하다하다 안되니 요리 사진을 미끼로 던져 연애질을 하려는 솔로의 마지막 몸부림 아니냐며 가자미눈으로 힐난을 일삼는가 하면, 또 어떤 이들은 본업이 요리고 부업이 영화냐며 비웃기조차 한다.
억울한 건 아닌데, 뭔가 그들의 질투를 달래줘야 할 것 같아 이 지면을 빌려 오늘의 요리에 얽힌 사연을 조금 남겨놓을까 한다.
난 개고기를 먹지 않는다. 어렸을 적 엄마한테 깜빡 속아 소고기인 줄 알고 한입 먹었다가 토한 이후로, 한번도 입에 대지 않았다. 물론 브리지트 바르도처럼 개고기를 먹는 사람을 야만인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나에게 지구를 걸어다니는 포유동물들은 모두 평등할 뿐이고, 특정 동물에 대한 특권적 애호를 주장하는 건 논리적 모순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저 영화 <파니 핑크>에서 “눈 달린 동물은 먹지 않았다”는 문장을 나중에 비문으로 쓰
[이송희일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오늘의 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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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면도를 하고 집을 나서도 오후가 되면 벌써 뺨이나 턱이 거뭇거뭇해지는 남성들이 있다. 여행 중이 아닌 평상시라도 서랍에 여행용 전기면도기 하나쯤은 준비해두는 게 어떨까 싶다. 그런데 결정적인 순간마다 배터리는 운명 직전의 상태이기 일쑤다. 그렇다고 사무실에서 주섬주섬 충전용 어댑터를 꺼내는 건 어쩐지 유난스러워 보이는 듯하고. 그러니 하루 평균 면도 횟수가 2회 이상이라면 필립스의 여행용 면도기 PQ222를 고려해볼 만하다. 일반 전원 플러그 외에 USB 케이블을 이용한 충전도 가능하기 때문에 늘 컴퓨터 곁에서 생활하는 직장인이라면 손쉽게 배터리 관리를 할 수 있다. 얼굴 굴곡에 따라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쿠션형 헤드를 장착해 수염도 만족스럽게 깎이는 편. 아쉬운 건 USB 케이블을 사용할 경우 충전 시간이 너무 길어진다는 점이다. 8시간 충전을 해도 최대 30분만 사용이 가능하다. 그냥 USB단자 하나를 면도기에 장기 대여해주고 지내는 수밖에.
[gadget] USB로 충전하는 면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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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양
화면 크기 15.6인치(371.9×232.7×35.5mm) 무게 1.06kg
특징
1. 별도 전원 케이블이나 어댑터 없이 USB 케이블만으로 컴퓨터와 연결해 사용할 수 있다.
2. PC 한대에 복수의 모니터를 연결할 경우, 편리한 멀티태스킹 환경이 구현된다.
3. 1.06kg의 초경량 제품인 만큼 휴대하기도 유리한 편.
초소형 노트북의 출현은 새로운 딜레마의 시작이기도 했다. 작고 가벼워진 만큼 휴대도 용이해졌지만 사용자 입장에서 감수해야 할 불편함 역시 발생했던 것이다. 오밀조밀한 자판에 적응하려면 꽤 시간이 필요했고, 무엇보다 비좁은 모니터는 인터넷 서핑의 즐거움과 일의 능률을 현저히 떨어뜨리는 요소였다. 물론 개선된 신제품들이 꾸준히 소개되고 있지만, 나는 여전히 데스크톱 앞이 아니면 장시간의 업무에 애를 먹는 편이다. 특히 동영상이라도 감상할라치면 모니터의 사이즈는 더욱 중요한 숫자가 된다.
알파스캔의 e1649 울트라 USB 모니터는 디스플레이 환경에
[gadget] 똑똑히 보여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