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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악마를 만났다? 알려졌다시피 박훈정 감독은 <혈투>(2011)로 데뷔하기 전 김지운 감독의 <악마를 보았다>(2010)와 류승완 감독의 <부당거래>(2010)의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쓴 주인공으로 알려지면서 제법 유명세를 탔다. 충무로 감독들 중에서 장르적 감식안으로 치자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두 감독을 단숨에 매료시킨 작가였던 것. 그런 그가 두 번째 작품 <신세계>를 통해 자신이 창조한 악마 ‘장경철’을 연기했던 최민식과 조우하게 됐다. <악마를 보았다>를 지나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로 새로운 전성기를 맞은 최민식은 <신세계>가 투자 등 난항을 겪다 NEW가 최종 투자를 결정하기까지 묵묵히 의리를 지켰다. “<악마를 보았다>의 작가로 처음 마주했을 때부터 비상한 재능을 지닌 친구라고 생각했다. 무조건 같이 하자고 했다”는 게 그의 얘기다. 그러고 보면 <신세계>의
한국 갱스터 누아르를 향해 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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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 제작진한테서 연락을 받은 건 오전 10시가 조금 넘었을 무렵이었다. 청계천 세운상가의 한 건물 옥상에서 촬영을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밤새 내리던 비는 잠시 소강상태였다. 7월의 폭염 아래서 숨 돌릴 틈 없이 촬영을 진행했으니 잠깐의 휴식이 절실할 테지만, 제작진은 한컷이라도 더 건져올리기 위한 수고를 감내키로 한 모양이다. 개봉을 올해 11월 말로 못박아뒀으니, 오락가락 장대비를 핑계삼아 여유 부릴 처지도 아니다. 모성진 프로듀서는 “지난달엔 하늘이 도와줬는데 이달 들어 앙갚음당하고 있다”고 한다. 광주에서 촬영을 진행하다 비가 와서 피신 왔는데 서울 하늘도 말썽이니 스탭들의 애간장이 탈 법도 하다.
청계천 일대에서 미진(한혜진)이 취객에게 돈을 건네는 장면의 촬영을 끝낸 스탭들이 옥상 한쪽에 카메라 두대를 세우느라 부산히 움직인다. 짱구 노인(김기천)에게 개조해달라고 부탁한 총을 미진이 돌려받고 확인하는 장면을 동시에 나눠 찍을 모양이다. “주말까지 찍으
우리들의 오월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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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풀 원작, 조근현 감독의 <26년> 현장(사진)을 찾았다. 영화화에 이르기까지 힘들었던 시간들, 그리고 세상을 둘러싼 무거운 공기와 무더위만큼 뜨거운 현장이었다. 그렇게 많은 다른 한국영화들도 뜨거운 여름날의 현장을 보내고 있다. 두달여의 베를린, 라트비아 현장 촬영을 마치고 국내에서 막바지 촬영 중인 류승완 감독의 <베를린>, 본격적인 누아르의 무대 부산에서 역시 마무리 작업 중인 박훈정 감독의 <신세계> 등 2013년을 기다리는 기대작이 즐비하다. 공포스릴러를 표방하는 김용균 감독의 <이야기>(가제), 동명 웹툰을 바탕으로 김수현이 출연하는 장철수 감독의 <은밀하게 위대하게>, ‘한국판 미녀삼총사’가 될 박제현 감독의 <조선미녀삼총사>, <평행이론>에 이어 다시 한번 미스터리 스릴러에 도전하는 권호영 감독의 <미라클>(가제), 그리고 기억해둘 만한 두 신인감독 정근섭(<몽타주>)과
응답하라 2013 한국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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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개봉한 이 영화라면 할 말이 너무 많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실질적인 예고이자(92년 <저수지의 개들>은 96년에나 국내 개봉했다) X세대의 ‘근본없는 감수성’이 범벅된 작품(<청춘 스케치>는 기껏 범생이 영화였지), 또 엄청난 배우들을 패키지로 본(관록의 게리 올드먼과 풋내기 브래드 피트가 나란히 단역!) 내 인생의 영화(얼추 50번은 봤다). 특히 남자들‘만’ 멋지게 찍어대던 토니 스콧 감독이 웬일로 입체적인 여주인공(뭐 각본을 쓴 타란티노의 취향이었겠지만)을 등장시키기도 했고.
그중 통통 튀는 마림바 음색이 아스라한 스코어는 <정은임의 영화음악실> 시그널로도 유명한데 <파워 오브 원>으로 ‘아프리카의 소리’에 심취한 한스 짐머의 취향을 엿볼 수 있는 단서다. 하지만 영화의 틈을 꽉 채우는 엘비스 프레슬리, 크리스 아이작, 사운드 가든의 로큰롤은 더 중요하다. 요컨대 미국의 축적된 ‘팝 컬처’가 없었다면 이 영화, 혹은 타란
[차우진의 귀를 기울이면] 토니 스콧, 당신의 가장 번득이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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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의 사소하지만 꾸준한 궁금증은 수도권 중산층 60대 전후 남성 퇴직자들의 종합편성채널(이하 종편) 사랑의 근원에 대한 것이다. 물론 여기서 ‘중산층’이란 언론에서 말하는 거창한 기준이 아니라 대략 서울 외곽 중소형 아파트 정도에 거주하는 나와 몇몇 친구들(의 부모님)을 기준으로 한다. 어쨌든 초등학교 동창과 만나도 대학교 동기와 만나도 심지어 결혼해 가끔 친정에 들르는 친구를 만나도 공통된 증언은 ‘아빠가 항상 종편 채널만 틀어놓으셔서 TV를 볼 수 없다’이니 이는 마치 ‘24시간 뉴스채널’이라는 야심찬 슬로건과 함께 등장했던 YTN 개국 당시 종일 채널을 고정하시던 할아버지의 모습과 다름없지 않은가. 물론 이제 우리 아버지들이 ‘아저씨’보다 ‘할아버지’에 가까우신 데다, 딸들의 평소 추측으로도 인터넷 게시판 어딘가에서 “빨갱이 놈들”을 향해 훈계와 호통을 시전하고 계실 듯한 ‘보수논객’이셨음을 생각하면 결코 놀라운 일은 아니다. 다만 일부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을 제외하면
[최지은의 TVIEW] 혼자 보기는 아깝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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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모든 것은 망각의 결과’라는 솔로몬의 말을 프랜시스 베이컨이 인용한 것을 보르헤스가 인용한 것을 진중권이 인용한다.” 언젠가 내가 쓴 책의 머리말에 이렇게 적어놓고 뿌듯해하던 기억이 난다. 어떤 묘한 의미에서 이 말은 재귀적이다. 왜냐하면 ‘새로운 모든 것은 망각의 결과’라는 문장은 그 자체로서는 아주 오래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거듭되는 인용을 통해 시대마다 망각의 바다에서 새로운 것으로 태어나기 때문이다.
원저자의 원저자
쌍용차 노동자들의 삶을 다룬 공지영의 <의자놀이>가 표절, 혹은 도용 시비에 휘말렸다. SNS의 세계는 두패로 나뉘어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실존주의적 부조리극을 연출하고 있다. 물론 나의 실존 역시 그 부조리극 속에서 꽤 비중있는 역할을 맡았다. 하지만 오직 ‘망각’만이 궁극적 해법으로 보이는 이 막막한 상황에서 굳이 무의미한 패싸움을 재연할 필요는 없을 거다. 중요한 것은 ‘사안’ 자체로 돌아가는 것이다.
논점은 두 가지다
[진중권의 미학 에세이] 인용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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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링(featuring) 소설이란 걸 쓰려고 한 적이 있었다. 두 번째 소설집을 낸 2008년 즈음이었는데, 뭔가 새로운 걸 해보고 싶어서 온몸을 배배 꼬던 시절이었다. 설탕을 잔뜩 묻힌 굵직한 꽈배기를 생각하면, 그게 딱 나였다. 피처링 소설이란, 힙합 곡을 만들 때처럼 내가 소설의 주요 부분을 다 쓰고 동료 작가들에게 부분적인 참여를 부탁하는 것이다. 생각만 해도 재미날 것 같았다. 웃기는 대사에 일가견이 있는 작가에게 몇 장면의 대화를 부탁한다든지, 잔인한 묘사를 잘하는 작가에게 사람 죽이는 장면을 부탁한다든지, 옷차림을 상세히 묘사하기로 유명한 작가에게 모든 등장인물의 모든 패션을 부탁한다든지…, 할 수 있는 게 얼마나 많을까. 소설 속 피처링 부분을 알아맞히는 것도 재미난 놀이가 되지 않을까. 실제로 몇몇 작가들에게 피처링 소설을 설명했더니 (불가능한 프로젝트란 걸 눈치챘기 때문인지) 흔쾌히 수락을 해주었다.
소설을 빨리 써야 한다는 게 함정이었다. 단편소설은 대체로
[김중혁의 최신가요인가요] 피처링의 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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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 이런 상상을 해봤다. 친구들과 경복궁에 가서 문 닫을 시간이 되면 어디에 몰래 숨는다. 그러다가 밤이 깊어지면 밖으로 나와 아무도 없는 궁궐 안을 걷는다. 경회루에도 올라가보고, 달빛을 받고 있는 근정전 월대도 바라본다. 밤새 노닐다가 아침이 되면 또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개장 시간에 맞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빠져나온다. 누가 아는가, 혹시 산책 중인 세종대왕이라도 뵙고 나올지?
장소를 경복궁이 아닌 미국 어딘가의 자연사박물관으로 옮기고, 불법침입자를 박물관 야간경비로 바꾸면 바로 웃기는 훈남 벤 스틸러 주연의 <박물관이 살아있다!>가 된다. 되살아난 공룡에 쫓기고 커스터 장군과 링컨 같은 역사적 인물과 조우하는, 누구나 한번 해봄직한 유쾌한 상상의 영화다. 경복궁 야간 잠입의 꿈을 아직 접지 않고 있는(!) 나 또한 이 영화를 보고 많은 대리만족을 얻었다.
궁궐이나 박물관이 이런 상상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밤이라는 시간이 주는 넉넉
[architecture+] 밤은 상상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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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서둘러 원주에 다녀와야 한다. 근데 비가 장난이 아니다. 지난해 이맘때 고속도로에서 폭우를 만나 혼쭐이 난 경험이 있어서 더 걱정이 된다. 그래, 오늘만큼은 고속버스를 이용하자. 그만큼 날씨가 더럽다. 우선 네이버 지도 검색에 목적지 주소와 우리집 주소를 친다. 흠, 10초도 걸리지 않는다. 우선 버스를 타고 광주시외버스터미널에 가서 원주행 고속버스를 타라는 지침을 받는다. “네, 알겠습니다.” 아무 의심 없이 네이버가 하라는 대로 했다. 참 편한 세상이다. 어라, 그런데 원주 가는 버스가 없단다. 그럴 리가. 아침 9시에 한대 있었는데 방금 갔단다. 게다가 원주행은 그거 딱 한대뿐. 황당하긴 했지만 화가 나지는 않았다. 누구한테 화를 낸단 말인가? 내가 한 짓인데. 믿음의 체계가 그렇고 디지털 세상이라는 게 그렇다. 그걸 지나치게 믿고 신뢰한 자들을 수시로 바보로 만든다. 덕분에 광주에서 이천터미널로 다시 원주로 얼마나 돌았던지 100km도 채 안되는 구간을 무려 3시간
[SO WHAT] 바보에게 바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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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토니 스콧의 투신자살 소식을 들었다. 처음에는 그의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쓰겠다는 마음이 없었으므로 잠깐 놀라고 애도의 마음을 가졌을 뿐 곧 잊었다. 하지만 방향은 엉뚱한 순간에 휘었다. 회사에 가기 위해서는 전철을 타야 하고 그 전철을 타면 철교를 한번 건너야 한다. 내려다보니 흙탕물이었다. 토니 스콧이 뛰어내렸다는 LA 산페드로의 빈센트 토머스 다리 사진을 보고 생의 자의적 최후를 맞이하기에는 다소 황량하고 허름한 곳이 아닌가 생각했던 게 그 흙탕물 때문에 떠올랐다. 그는 왜 뛰어내렸을까, 나이 예순여덟살의 노인이 알려진 것처럼 불치의 뇌종양 때문에 낙담하여 그러한 것도 아니라면 혹시 사랑 때문이었을까, 하고 밥 먹는 도중에 동료에게 말했다가 쓸데없이 군다고 면박만 당했다.
2.
2003년 8월경 <4인용 식탁> 개봉 즈음에 <씨네21>은 ‘영화 속 영화 밖 자살’에 대한 글들을 실었는데 그때 남재일 선배가 자살의 유형에 관하여 쓴 인상 깊었던
[신 전영객잔] 송신과 수신의 액션은 어떻게 완성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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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은 제레미 레너라는 배우가 대중에게 알려지는 해가 될 것이다. <미션 임파서블: 고스트 프로토콜>의 브랜트, <어벤져스>의 호크아이, 그리고 ‘본’ 트릴로지의 뒤를 잇는 <본 레거시>의 애론 크로스까지, 이 남자는 2012년 여름이 채 가기 전에 3편의 블록버스터에 이름을 올렸다. 그중 한국에서의 개봉을 기다리는 <본 레거시>는 “이미 궤도에 오른 프랜차이즈의 주연을 맡았다는 점”에서 레너에게는 특별한 마일스톤이다. 2012년 7월21일, <본 레거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려고 그를 만났다. 그의 나이는 올해로 41살. 이야기를 나눌수록 젊은 시절의 그가 궁금해졌다.
-첫 장면을 보면, 당신이 얼어붙은 호수에 입수하는 장면이 나온다. 어떻게 준비했나.
=준비라니, 그 장면을 찍으려고 준비하는 건 사실 고문이나 다름없다. 물속이 조금 춥다면 물 밖은 몹시 추웠다. 그래서 물 밖에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턱수염과 머리카락
[제레미 레너] 직접 하는 스턴트의 리얼리티만큼 안전도 중요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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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아이돌 공화국에 살고 있다. 1세대 아이돌 핑클의 리더 출신인 나조차도 이름과 얼굴을 매치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아이돌 그룹이 쏟아지듯 나온다. 요즘 아이돌은 내가 활동하던 때와 달리 영화, 드라마, 예능, 뮤지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트렌드를 이끌고 있다. 게다가 K-POP 열풍으로 전세계에서 러브콜을 받고 있다. 나로서는 이게 기쁘기도 하지만 속사정을 알고 있는 탓에 안쓰럽기도 하다. 분신술을 쓰는게 아니라면 그들의 스케줄은 살인적일 것이다. 얼마 전 만난 한 아이돌 후배 말로는 아시아권은 당일치기로 갔다온단다. 하루에 두세 국가를 다니기도 하고, 유럽이나 미국처럼 먼 나라도 1박2일이나 2박3일로 후딱 다녀와야 한단다. 맙소사. 인기도, 돈도 좋지만 그 스케줄을 대체 어떻게 지탱할 수 있는 걸까. 그 이야기를 해준 아이돌 후배의 표정도 그리 밝아 보이진 않았다.
한국 아이돌의 평균 나이는 21살이다. 대부분이 10대다. 평균 연습 기간은 4∼5년이다. 이들은 친구, 가
[이효리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아이돌, 아니 아이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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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제품 개발 과정은 결국 틈새시장 경쟁이다. 소비자조차도 미처 깨닫지 못한 빈틈을 찾아내, 고객 만족을 통해 매출을 올리는 게 모든 기업의 목표. 브리츠의 사운드바 스피커 BE-100은 이같은 목표에 특히 충실한 제품이라 하겠다. 말 그대도 LED/LCD 모니터 하단의 ‘빈자리’를 영리하게 파고들고 있으니까. 가뜩이나 지저분하고 어지러운 책상 위에서 스피커 놓을 자리만큼은 절약하도록 해주겠다는 전략이다. 길이 41cm의 be-100은 그간 버려둔 채 지내던 공간을 흡족하게 메운다. 본체 각도는 11도 경사로 기울었는데 컴퓨터 앞에 앉은 사용자에게 직접적으로 소리를 전달하기 위한 선택이라고. 원할 경우 벽에 걸어 사용할 수 있도록 후면에 월마운트 홀을 마련해두기도 했지만 역시 이 제품에 가장 잘 어울리는 곳은 모니터 아래다. 물론 3W의 출력은 썩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지만 책상 정리에 특히 서투른 사람이라면 이 정도 타협은 고려해볼 만하지 않나 싶다. 가격 3만원.
[gadget] 틈새를 노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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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양
크기 247x36x24mm(스캐너), 280x71.8x66.5mm (스캐너+도킹)
무게 154g(스캐너), 456.2g(스캐너+도킹)
특징
1. 어디든 부담없이 들고 다니며 사용할 수 있는 초경량, 초소형 휴대용 스캐너.
2. 빠르다. A4용지 한장 분량의 문서를 1.5초 만에 스캔해 저장할 정도.
3. 실외에서는 무선 스캐너로, 실내에서는 자동 급지형의 도킹 스캐너로 다양하고 편리하게 활용할 수 있다.
4. 전용 소프트웨어가 스캔한 데이터를 편집 가능한 텍스트 형태로 MS오피스 프로그램에 옮겨준다. 물론 악용 및 과용은 금물.
여러 해 전에 만들어진 SF영화를 다시 관람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미래에 관한 과거의 예측을 현시점에서 점검해볼 기회인 셈이다. 용하게 내다봤다 싶은 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불발에 가까운 상상이 더 많은 듯하다. 최근 렌 와이즈먼이 불필요한 리메이크 버전을 만들기도 한 폴 버호벤의 1990년작 <토탈 리콜>에서도 눈에 띈 장면이 있
[gadget] 밖에서도 해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