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로 옮긴 사무실에는 꽤 너른 테라스가 딸려 있는데, 추운 기온에 눈이 온통 얼어붙어 창밖으로 보면 극지방에 있는 것 같다. 담배를 피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테라스로 나서면 남극 탐험대원이 된 기분마저 든다. 그럴 정도로 한파에 시달리다 보니 기온이 조금이나마 올라가거나 칼바람이 고개를 약간 숙이기만 해도 따뜻하다, 살 만하다 따위의 말이 저절로 튀어나온다. 기상청 앱은 여전히 ‘현재기온 영하 8도’를 가리키고 있는데 말이다. 그런 스스로를 보면서 사람이란 참 간사한 존재라는 생각을 한다. 영하 1도의 날씨에도 추워 죽겠다고 버둥거리던 게 얼마 전인데 이젠 영하 8도에 감사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굳이 진화학을 들이밀지 않더라도 거센 환경에 이토록 잘 적응하지 못했다면 인류는 지구상에서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고 보면 사람이란 무서운 생존본능을 갖고 있는 모양이다.
대선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다. 아직 그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분들이 있
[에디토리얼] 2013년 한국영화, 기대해도 좋습니다
-
서울 변두리의 오래된 노포(老鋪)를 배경으로 삼대째 국수공장을 운영하는 가족들의 이야기를 다룬 MBC 주말 특별기획드라마 '백년의 유산'은 오는 1월 5일(토) 밤 9시 50분에 첫 방송 된다.
[유진]"시월드 경험, 연기에 도움 돼"
-
대부분의 영화음악은 영상이 말하지 못하는 것을 대신 말한다. 캐릭터의 내면에서도 유난히 작은 떨림이라든가 상황의 아이러니 중에서도 다소 애매한 감정이라든가. 특히 다층적이고 복잡한 이야기에서 음악은 그야말로 카메라의 다른 입이 되기를 자처한다. <범죄소년>의 음악 역시 그렇다. 이 따뜻하고 막막한 영화에 흐르는 음악은 소년 지구가 소년원에 입소하고, 할아버지의 죽음과 직면하고, 엄마와 만나고, 오지 않는 엄마를 기다리고, 엄마가 사는 집에 가고, 여자친구를 통해 엄마를 이해하고, 그러나 계속해서 모서리로 내몰릴 때마다 부드럽게, 우울하게, 체념적으로, 또한 희망적으로 흐른다.
<말하는 건축가>에서 숨어 있는 음악을 선보였던 강민우는 여기서 보다 적극적으로 음표를 다듬으며 어린 지구와 그의 젊은 엄마 효승의 현재를 보듬는다. 메이저 코드의 기타가 정의하는 엔딩의 희망적인 뉘앙스는 효승의 미소를 한번 더 강조한다. 사실 둘 모두 가족을 갖기엔 너무 어렸을 뿐 어
[차우진의 귀를 기울이면] 알 수 있을 거 같아… 너를
-
가끔은 별다른 사고 없이 좋게 마무리를 짓는 미니시리즈 드라마란 게 기적 같을 때가 있다. 70분물 주당 두편. 당연한 밤샘 촬영. 예고도 내보내지 못할 정도로 급박한 촬영 스케줄. 중반이 넘어가면 작가와 배우, 스탭들 모두 재능과 성실함의 차원을 넘어서는 쥐어짜기로 매 장면 하얗게 불태우는 마당에 “한류 열풍, 자랑스러워요” 뭐 이런 말은 못하겠다. 이따금씩 훌륭한 드라마가 나오는 이유를 손에 꼽을 만한 천재급 작가 몇명에서 찾는 것도 서글프다. 어쨌든간에 이 판에서 방송사는 한계상황을 돌파하며 시스템을 구축하고 노하우가 쌓이는 구심점이었다. 그러나 리스크가 큰 자체 제작 비율은 낮아지고, 편당 제작비와 PD의 파견으로 만들어지는 외주제작 드라마가 일반적인 지금, 제작인력을 양성하고 공급하는 책무까지 소홀히 한다면 방송사에 남은 영향력은 편성뿐. 특히 공영 방송사가 드라마 연출가를 키우지 않는다면 이 판에 기여하는 게 뭐가 남는가.
한탄의 이유는 KBS <드라마 스페셜&g
[유선주의 TVIEW] ‘다시 보기’ 추천합니다
-
-
“민중의 노랫소리가 들리는가? 성난 사람들의 노래가. 그것은 또다시 노예가 되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음악이다. 너의 심장소리가 북소리가 되어 울릴 때, 내일이 오면 시작되려는 삶이 있다. 너는 우리의 십자군에 동참하려는가. 누가 강한 의지로 내 옆에 서겠는가? 저 바리케이드 너머 어딘가에 우리가 보고 싶은 세상이 있을까? 그럼 이 싸움에 동참하라. 이 싸움이 네게 자유로울 권리를 주리라.”
대선 결과에 낙담한 자들에게 유일한 위안이 되어준 것은 영화 <레미제라블>이었다. 두 시간 반이 훌쩍 넘는 부담스러운 러닝타임, 어딘지 어설퍼 보이는 컴퓨터그래픽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흥행 돌풍을 일으킨 것은 영화 속 상황이 묘하게 우리의 것과 중첩되기 때문이리라. 젊은이들의 순수한 혁명의 열정에 파리 시민들은 냉담하게 등을 돌렸다. 그 참상에도 불구하고 왜 파리의 민중은 봉기하지 않았을까?
민주주의의 자살
“제 나라 임금의 목을 쳤다”는 민중의 자부심은 또한 우리 것이기도 하
[진중권의 미학 에세이] 우리가 잃어버린 것
-
시간은 참 빠르다. 또 느리다. 때론 덧없고, 때로는 지겹다. 어떤 시간은 흐려지고, 어떤 시간은 또렷해진다. 그런 시간을 걸어와서 여기에 이르렀다. 어떤 시간은 봉우리가 되었고, 어떤 시간은 깊이 패어 있다. 돌아보면 보이지 않는 시간들이 꽤 많다. 높아서 보이지 않고 패여서 보이지 않는다. 연말이 되어 송년회를 하고, 한해를 되돌아보는 이유는 그런 시간의 굴곡을 편평하게 만드는 일이다. 시간의 평탄화 작업을 해두지 않으면 훗날 그런 굴곡들이 우리를 삐뚤어지게 만든다. 봉우리의 흙을 덜어내 팬 웅덩이에다 채우고, 자만하거나 괴로워하지 말자. 똑같은 1년이었고, 어김없이 또 1년을 살아야 한다.
연말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결산을 한다. 올해의 앨범, 올해의 영화, 올해의 인물, 저마다 올해의 ‘땡땡’을 정하며 시간을 보낸다. 그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거, 참 사람들, 연말이면 꼭 저런 걸 하네. 촌스럽게’라고 혀를 차면서, 나도 하고 있다. 얼른 해야지, 그럼, 연말은 그러라고
[김중혁의 최신가요인가요] 즐겁게, 즐겁게
-
▲조르주 앙리 루소의 <놀랐지!>(Surprise!, 1891). 영화와 그림 사이의 짝짓기 놀이가 있다면 리안 감독의 <라이프 오브 파이>와 천생연분이다. 당당한 고아처럼 보이는 호랑이의 표정부터 빗줄기의 은근한 3D 효과까지.
12/10
적절하게도(?) 뉴질랜드 관광 홍보 필름으로 언론 시사회를 시작한 <호빗: 뜻밖의 여정>은 제목과 딴판으로 이보다 작정한 여정일 수 없는 영화다.
워너브러더스와 피터 잭슨 감독은 총 3부작 <호빗> 중 2부를 2013년 12월, 3부는 2014년 7월에 나눠 개봉하겠다고 발표했다. <호빗: 뜻밖의 여정>에서 피터 잭슨 감독이 한 작업은 말하자면 시간을 거스른 다음 부풀리는 일이다. 우선 역행. 새로운 배우(마틴 프리먼)가 분한 젊은 빌보 배긴스와 모태 영구 동안 엘프족을 제외하면 간달프, 골룸, 프로도, 사루만 등 <반지의 제왕> 3부작에 나왔던 인물들은 배우 교체 없이 일일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내려놓기’의 어려움에 심란해지다
-
-실화에 근거한 영화다. 어떻게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나.
=프로듀서 벨렌 아티엔자가 발견한 이야기다. 라디오에서 인도양 쓰나미 3주년 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거기서 벨론 가족의 이야기를 들었다. 벨론 가족이 미디어에 자신들의 이야기를 말한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 이야기가 너무나 인상적이어서 영화로 만들고 싶었다.
-벨론 가족이 처음에 영화화를 꺼렸다고 들었다.
=처음에는 꺼렸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고통을 겪고 있는데 단지 운좋게 생존했다는 이유만으로 나서고 싶지 않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하지만 이 영화가 그저 한 가족의 이야기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마음을 모았다.
-최근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천재지변 때문에 재난영화 만들기를 주저하지는 않았나.
=나는 단 한번도 이 영화를 재난영화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외국으로 여행 간 사람들이 끔찍한 사건을 겪은 뒤에 인생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되는 걸 영화로 보여주고 싶었다.
이 영화는 재난영화가 아니다
-
-보호자로서 아버지 역할은 처음이라고 했다. 실제로 네 아이의 아버지인데 역할에 그 점이 도움이 됐나.
=물론이다. 영화와 같은 상황이 얼마나 공포스럽고 고통스러울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역할에 이입하기 위해서 내 아이들을 상상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떻게 몰입했나.
=내게는 영화 속의 세 아들이 있었다. 그걸로 충분히 감정에 몰입할 수 있었다. 배우라면 이런 일에 익숙해져야만 한다. 배우는 항상 두 가지 선택의 가능성을 가진다. 같은 상황을 두고 현실의 내가 어떻게 할 것인가와 나의 캐릭터가 어떻게 할 것인가다. 그 두 가지는 경험과 상상이다. 때때로 나의 캐릭터는 현실의 나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행동을 선택하지만, 그걸 이해하는 것 역시 배우의 몫이다. 그래서 나는 캐릭터를 각본을 통해 이해하려고 하고 그대로 연기한다.
-당신도 실화의 주인공과 만났나.
=나는 알바레즈(마리아의 남편)와 많은 시간을 보내지는 않았다. 그는 가족과 함께 타이를 찾아왔고 한달 정
필요한 것은 각본 안에 다 있다
-
-<더 임파서블>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들어 출연하게 됐나.
=처음에는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간 사건이 흔한 재난영화의 스펙터클에 묻히게 될까 걱정스럽기도 했다. 그러다가 감독이 후안 안토니오 바요나라는 걸 알게 됐다. 그의 첫 영화를 알고 있었기에 각본이 궁금했고 곧 실화라는 걸 알게 됐다. 첫 몇 페이지를 읽고도 영화가 제대로 만들어질 거라는 걸 직감했다. 끔찍한 사건이 소재지만, 매우 아름답고 감동적인 이야기였고, 어머니로서 내 역할과 아들 루카스와의 장면들에 크게 마음이 움직였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아들인 루카스를 연기한 톰 홀랜드의 연기가 훌륭하다.
=맞다. 훌륭하다. 아역배우보다는 성인 연기자 같은 태도와 책임감을 가졌다. 영화현장은 처음이었는데도, 2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무대에서 <빌리 엘리어트>를 연기해서인지 잘 단련되어 있었고 배우려는 자세를 가지고 있었다. 톰과는 리허설 한달 동안 함께 지냈다. 감독은 서로에게 익숙해지라며 여러 가지
유약함을 인정하는 것도 용기다
-
공포영화 <오퍼나지: 비밀의 계단>을 만든 후안 안토니오 바요나 감독이 5년 만에 두 번째 영화를 내놓았다. 2004년 타이, 스리랑카, 몰디브, 인도네시아 등을 덮쳐 15만명 이상의 피해자를 낸 인도양 쓰나미를 소재로 해 만든 <더 임파서블>은, 8년 전 타이 카오락의 리조트로 크리스마스 휴일을 보내기 위해 떠났던 스페인인 벨론 가족이 겪은 실제 경험담을 스크린으로 옮긴 영화다. 제작 준비에만 2년 넘게 걸린 탓에 데뷔작으로부터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나서야 두 번째 영화를 발표했지만, 바요나 감독은 <더 임파서블>로 이른바 소포모어 징크스를 깬 것은 물론이고, 전작인 <오퍼나지: 비밀의 계단>이 스페인 안에서 세운 450만 관객동원 기록 역시 가뿐히 넘어섰다. <할리우드 리포터>에 따르면 <더 임파서블>은 스페인에서 개봉(2012년 10월11일) 첫주 4일 동안 1160만달러를 벌어들였고, 12월21일까지 5200만달러
살아남은 자들의 이야기
-
<호빗>이 새롭다는 건 알겠다. 피터 잭슨의 야심도 얼핏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이 기술이 어떤 지점에서 어떤 미래를 그려나갈지를 알기엔 모자라다. 도움이 필요했다. 한국영화아카데미 원장이자 국내 3D 영화 관련 전문가인 최익환 감독의 조언을 받아 <호빗>을 다시 한번 꼼꼼히 뜯어봤다.
-<호빗>의 전체적인 인상은 어땠나.
=취향의 문제 아닐까. 팬들에게 봉사하는 영화이기도 하고 세편의 시리즈 제작 방식이라 한편만 놓고 판단하기는 애매한 지점들이 있다. 전반적으로는 피터 잭슨 감독 역시 <아바타>의 연장선상에서 작품에 접근했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른바 실감으로 대변되는 3D 효과가 다다를 수 있는 끝자락을 본 느낌이다.
-단도직입적으로 <호빗>이 새롭게 선보인 3D는 성공적이라고 보나.
=그 역시 취향의 문제다. 이제까지 먹어보지 못한 맛인 건 확실하다. 다만 굳이 비교하자면 그 맛이 분식처럼 익숙해서 당황스러운 사람도 있
<호빗> 이질감, 피로감 크게 줄였다
-
또 한번 새로운 발걸음을 내디뎠다. <호빗: 뜻밖의 여정>(이하 <호빗>)이 3D영화의 또 다른 분기가 될지는 아직 모를 일이지만, 이후 모든 3D영화와의 비교는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호빗>은 이제까지의 3D영화들이 미완성이었던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새로운 시리즈의 출발이나 작품의 완성도를 논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직 기술적인 진보의 관점에서 <호빗>이 무엇을 성취했는지 살펴보고 싶었다. 다음은 피터 잭슨 감독이 보내온 서면 인터뷰와 <월스트리트 저널>에 실린 인터뷰에서 3D와 HFR에 관한 코멘트만을 발췌, 재구성한 문답이다.
-<호빗>에서 도입한 초당 48프레임 촬영기법을 두고 이런저런 말들이 많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 영화에 대해 분석하고 있어서 사실 안심이 된다. 그리고 영화가 개봉할 때마다 부정적인 언론 보도를 많이 접해왔기 때문에 크게 상관하지 않는다. 나는 벌써 일년 반째 48프레임 영화를 보고
기술을 활용한 진보는 필수다
-
리안 감독이 <라이프 오브 파이>의 연출을 수락한 시점은 <아바타>가 세상에 나오기 9개월 전이었다. <아바타>의 감각적 충격을 맛보기 이전에 이미 리안은 3D라는 시각상의 확대가 영화적 스토리텔링 기법을 변화시킬 수 있을 거라고 짐작했고, 나아가 이 신기술을 예술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산업적으로 성사 가능성이 희박한 기획을 살려낼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졌던 것 같다. <라이프 오브 파이> 개봉을 앞두고 2012년 11월5일 내한한 리안 감독은 풍랑으로 파이(수라즈 샤르마)가 탄 화물선이 침몰하고 날치떼가 갑판을 덮치는 신, 호랑이와 대치하던 파이가 맹수의 입에 생쥐를 던져넣는 신 등 클립을 영화를 대표하는 장면으로 골라 3D로드쇼에서 한국 기자들에게 소개했다. 다음은 이튿날 이루어진 그와의 인터뷰에서 오간 3D영화에 관한 문답이다.
-영화 도입부의 매우 아름다운 타이틀 시퀀스에서 동물원의 동물들을 다분히 정적으로 보여준다. 3D영화의
스토리텔링 기법에도 변화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