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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와 호러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일까. 미스터리에서는 사건의 해결이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하는 역할을 하는 일이 많다. 수수께끼는 모두 풀렸다! 소설 속에서 죽은 사람은 돌아올 수 없지만 이야기 속 탐정(역할의 인물)과 책 밖 독자는 그 죽음에 대한 납득할 만한 해명을 얻고, 나아가 자신의 안전을 보장받는다. 호러에서는 어떤 죽음도 결국 숙명일 수밖에 없음을 모두가 납득해야 이야기가 끝난다. 그러니 사건의 해결은 즉, 이야기를 영원히 여는 역할을 한다. 죽음은 진행 중이다. 아무도 도망갈 수 없다. 공포영화의 엔딩장면이 되살아난다, 혹은 다시 활동을 개시하는 악당인 이유는 간신히 살아남은 주인공에 대한 위협보다는 안심하는 관객을 위협하기 위해서다.
소네 게이스케의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은 치매 노모를 돌보며 아르바이트로 생활하는 환갑 즈음의 남자와, 사라진 애인 때문에 폭력조직에 상시적으로 위협받는 형사와, 거액의 빚을 진 뒤 출장 매춘업소에서 일하게
[도서] 현실은 밤그림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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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오디아르의 <러스트 앤 본>은 동시대 프랑스의 특별한 여배우 마리온 코티아르의 존재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영화다. 에디트 피아프의 일생을 연기하여 전세계적인 주목을 모았던 <라비앙 로즈>(2007) 이후 그녀의 진정한 두 번째 명연이 <러스트 앤 본>에서 펼쳐지고 있다. 돌고래 조련사였으나 사고로 두 다리를 잃고 장애인이 된 여주인공 스테파니(마리온 코티아르)는 처음에는 실의에 빠져 지내지만, 이내 야수 같은 한 남자를 만나 불같은 사랑에 빠지게 된다. 마리온 코티아르는 여주인공 스테파니의 씩씩함을, 때론 슬픔을, 때론 사랑에의 열망을 한몸에 새기고 연기해낸다. <라비앙 로즈>의 성공을 지나 할리우드영화의 그저 그런 조연으로 전락할까 염려되었던 한 시기를 지나 그녀는 지금 자기만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역할로 돌아와 있다.
마리온 코티아르가 유별난 미모를 지닌 여배우인 것 같진 않다. 카트린 드뇌브나 소피 마르소를 떠올리게 하는 배우
[마리온 코티아르] 진심으로 노래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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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우 치는 어느 날 밤 비를 피해 산속 오두막에 들어간 염소 메이(갈소원)는 그곳에서 늑대 가브를 만난다. 어둠이 서로의 외모를 가려준 덕분에 서로의 정체를 모른 채 깊은 대화를 나눈 두 친구는 닮은 점이 많은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고 다음날 다시 만나기로 약속한다. 이윽고 다음날 약속 장소에서 만난 두 친구는 서로의 정체를 확인하고 깜짝 놀라지만 이내 마음을 나눈 비밀친구가 되기로 맹세한다. 하지만 종의 경계를 뛰어넘어 우정을 쌓아가던 즐거운 시간도 잠시, 각자의 무리로부터 의심을 받던 메이와 가브는 결국 비밀을 들키고 무리로부터 친구를 배신할 것을 강요당한다.
<폭풍우 치는 밤에: 비밀친구>는 일본 아동문학계의 거장 기무라 유이치의 그림동화 <가브와 메이 이야기>를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이다. 2005년 스기이 기사부로 감독에 의해 <폭풍우 치는 밤에>란 제목으로 이미 한차례 애니메이션화되기도 했던 이 작품은 2012년 <TV도쿄>에
착하고 정직한 그림동화 <폭풍우 치는 밤에: 비밀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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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한편의 동화처럼 시작한다. 망원경으로 새를 관찰하기 좋아하는 할아버지 바르(허브 스타펠)의 눈앞에 어느 날 어여쁜 생물체 하나가 나타난다. 날개 달린 ‘엄지공주’라 할 만한 그 생명체는 새의 새끼 같기도 하고 사람의 아기 같기도 하다. 자식이 없었던 바르는 아내 티네(조크 찰스마)와 함께 그 아이에게 ‘버디’(케네디 주르댕 브롬리)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애지중지 키워보기로 한다. 하지만 어느덧 날갯짓에 익숙해진 버디는 철새 떼를 따라 남쪽으로 비행을 떠나버리고, 버디가 낯선 곳에서 사고라도 당할까 노심초사하는 마음을 안은 채 노부부도 길을 나선다. 그 길에서 노부부는 외로운 소녀와 상심에 빠진 구급대원의 도움을 받아 조금씩 버디와 가까워지지만, 동시에 ‘그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식의 순진한 해피엔딩으로부터는 조금씩 멀어진다.
네덜란드에서 건너온 이 동화 같은 영화가 어른들에게도 소소한 울림을 지닐 수 있다면, 사람과 동물이 애틋할 만큼 겹쳐 보이는 데가 있기 때문
세상에 던져진 그들의 날갯짓 <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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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나라 장수 양업(정소추)은 황실로부터 공을 인정받은 명장으로, 첫째 아들 양연평(정이건)을 비롯해 슬하에 일곱 아들을 두었다. 어느 날, 여섯째 아들 양연소(오존)가 참가한 대련에서 그의 동생이자 막내 양연사(부신박)가 앙숙 ‘반표’ 집안의 아들을 죽이는 일이 벌어진다. 반표는 황제에게 양씨 가문에 대한 처벌을 호소하지만 양업을 아끼는 황제는 주저하게 되고, 마침 요나라가 10만 대군을 이끌고 송나라로 쳐들어온다. 하지만 전쟁에 출정한 양업은 교활한 반표 집안의 농간으로 산성에 피신하게 된다. 이에 일곱 아들은 아버지를 구출하기 위해 전장으로 향한다.
<천하칠검 양가장>은 양무적(楊無敵)이라 불릴 정도로 용맹했던 실제 송나라 장군 양업과 그의 일곱 아들에 관한 이야기다. 그들을 일컬어 ‘양가장’이라 불렀는데, 경극으로도 유명하며 유가량의 <오랑팔괘곤>(1983) 등 영화와 드라마로도 지속적으로 변주됐다.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나설 때 그들 뒤로 보이는 거대
송나라 명장과 그의 일곱 아들 <천하칠검 양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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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마티아스 쇼에나에츠)는 5살 난 아들과 함께 누나 집에 얹혀 지낸다. 힘들게 구한 나이트클럽 경호원 일을 하던 어느 날, 싸움에 휘말린 범고래 조련사 스테파니(마리온 코티아르)를 집에 데려다주며 인연을 맺게 된다. 이후, 범고래 쇼 도중 예기치 못한 사고를 당한 스테파니는 무릎 아래 두 다리를 절단하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자신의 처지를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스테파니는 문득 알리가 떠올라 그에게 전화를 건다. 한편, 알리는 과거 복싱과 킥복싱을 했던 경력을 살려 불법 도박 격투시합에 참여하며 돈을 벌고 있다. 그저 각자의 힘든 삶을 이어가던 두 사람이 그렇게 다시 만나게 된다.
우리는 불쑥 두 남녀를 만나게 된다. 알리가 어떻게 어린 아들을 떠맡게 됐는지, 스테파니와 그의 동거남은 왜 파국으로 치닫게 된 것인지, <러스트 앤 본>은 별다른 설명없이 두 남녀를 선보인다. 말 그대로 ‘1%의 우정’이랄까. 그런 배경설명이 없기에 그 둘의 기묘한 관계를 그저 운명처럼
절망의 끝에서 사랑을 시작하다 <러스트 앤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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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에서 세상을 밝게 비춰야 할 달님이 만약 비행기와 충돌해 땅으로 떨어진다면? 애니메이션 <문빔베어: 달을 사랑한 작은 곰>(이하 <문빔베어>)은 (실제로 벌어진다면 끔찍하겠지만) 충분히 귀여운 상상, ‘달님의 불시착’을 해결하려는 아기 곰 달곰과 그의 동물 친구들의 이야기다. 좋아하는 달님이 숲속에 떨어져 있는 걸 발견한 달곰은 달님을 집으로 데려와 정성껏 돌보지만 웬일인지 달님은 점점 더 깊은 잠에 빠진다. 달곰이 풀어야 할 숙제는 이제 두 가지. ‘과연 달님을 제자리인 하늘로 돌려보낼 수 있을까. 방법이 있어도 달님이 영원히 잠에서 깨어나지 않는다면 어떡하나.’ 마침내 달곰과 친구들, 행복과 기쁨을 모두 삼켜버리는 괴물이 산다는 강 건너 마을까지 가보기로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달곰과 친구들은 봉착했던 두 가지 문제를 모두 해결한다. 그야말로 “성공이다”. 그렇지만 <문빔베어>의 미덕이 갑작스럽게 벌어진 사건의 성공적인 해결에만 있는 것
‘달님의 불시착’ <문빔베어: 달을 사랑한 작은 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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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 히어로들의 거대한 축제였던 <어벤져스>는 아이언맨에게 중요한 과제를 남겼다. 뉴욕시에 생긴 거대한 웜홀을 통해 아이언맨은 범접할 수 없는 신의 영역을 엿봤다. ‘현대과학이 만든 슈퍼히어로’인 그로서는 자신조차 어찌할 수 없는 초월적인 힘에 압도되는 동시에 불안감을 느꼈을 것이다. 이러한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딜레마는 <아이언맨3>의 이야기를 한층 풍성하게 만든다. 영화는 불안 증세에 시달리며 광적으로 새로운 슈트를 만드는 데 집착하는 스타크의 모습을 조명하다가, 그의 힘의 원천이었던 슈트의 기능을 앗아가버린다. 아이언맨이 잠적한 도시는 <터미네이터>의 인조인간을 연상케 하는 강력한 적들의 차지다. 3편은 그야말로 <아이언맨> 시리즈 최대의 위기를 조명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위기는 <아이언맨> 시리즈의 못내 아쉬운 여백이었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풀어놓을 수 있는 장을 마련해줬다. <아이언맨3>
슈퍼히어로의 정체성 <아이언맨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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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교황을 선출하는 의식을 ‘콘클라베’라고 한다. <우리에겐 교황이 있다>는 108명의 추기경들이 비공개 투표를 통해 새로운 교황을 선출하는 과정을 세밀히 담았다. 물망에 올랐던 후보들이 경합한 일차 투표가 무산되고 재투표를 통해 어렵게 신임 교황(미셸 피콜리)이 선출되는데 예상 밖의 인물이다. 교황이 선출되었다는 소식은 전세계 언론을 통해 전달되고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은 경축하기 위해 모여든 신도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베드로 광장과 마주한 발코니에 신임 교황이 모습을 드러내야 할 순간, 그는 발작을 일으키고 도망쳐버린다. 평생을 신의 섭리에 맞춰 온화하게 살아왔던 그는 엄청난 책임감을 짊어진 지도자의 자리가 무섭고 두려웠고, 자신은 이를 감당할 수 없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교황청은 거짓 해명으로 일단 시간을 번 뒤 특단의 조치로 정신분석의사(난니 모레티)를 불러들인다. 교황의 안정을 위해 강구한 방법이지만 억압적인 환경에서 진행된 정신분석은 아무런 효과
신임 교황에게 요구되는 미덕 <우리에겐 교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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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일요일 낮 12시 KBS1에서 방영되는 <전국노래자랑>은 국내 최장수 프로그램이다. 영화 <전국노래자랑>은 방영될 때마다 역사가 새로 쓰여지는 동명의 프로그램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경상남도 김해시. 봉남(김인권)은 낮에는 아내 미애(류현경)의 미용실에서 미용 보조로 일하며 미용사 자격증을 준비하고 있고, 밤에는 대리운전 기사로 뛰고 있다. 그의 꿈은 가수다. 하지만 그의 아내는 “쓸데없는 생각하지 마라”며 미용사 자격증 따기에 집중할 것을 요구한다. 초등학생 보리(김환희)는 할아버지(오현경)와 단둘이 살고 있다. 경상도 특유의 무뚝뚝한 할아버지지만 손녀 보리에 대한 사랑은 누구보다 극진하다. 어느 날, 따로 살던 엄마(신은경)가 나타나 보리와 함께 캐나다로 이민가기로 결정한다. 현자(이초희)와 동수(유연석)는 건강보조식품 ‘여심’을 만드는 회사의 직원이다. 홍 사장(김용건)은 두 사람에게 여심의 판매 실적을 올릴 방도를 강구하라고 지시한다. 어느 날,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 <전국노래자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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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재현, 영화와 연극, 고전과 현대라는 대립되는 요소들이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 이 영화를 통해 타비아니 형제가 보여준다. 감독 경력 60년이라는 세월이 말해주듯 <시저는 죽어야 한다>는 세련되고 노련한 솜씨를 보여준다. 타비아니 형제는 중범죄자 수용소인 레비비아 교도소에서 재소자들이 공연하는 연극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아 이를 영화로 만들기로 결정한다. 영화의 내용은 현실에서와 같이 셰익스피어의 희곡 <줄리어스 시저>를 교도소 내 무대에 올리기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다. 실제 교도소에서 공연된 연극의 연출자와 출연자였던 재소자들이 캐스팅되었다. 영화는 브루투스가 시저를 죽인 뒤 괴로워하다 자결하는 연극의 마지막 장면부터 시작된다. 객석의 환호 속에 출연자들이 무대 인사를 하고 공연은 마무리된다. 방금 전까지 시저였고 브루투스였던 배우들은 연극이 끝나자 재소자로 돌아간다. 그들이 자신의 감방에 갇히고 무거운 철문이 닫히면 영화의 서두가 마감된다.
시
대립되는 요소들의 조화 <시저는 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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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하게 위대하게>
제작 (주)MCMC / 감독 장철수 / 출연 김수현, 박기웅, 이현우, 손현주, 박혜숙 / 배급 쇼박스(주)미디어플렉스 / 개봉예정 6월
동명 웹툰이 원작인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위대한 공화국의 혁명괴물’들이 남한의 달동네에 잠입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남파 특수공작부대의 엘리트 요원 동구(김수현)는 동네 꼬마들에게 놀림받기 일쑤인 바보로, 공화국 고위층 간부의 아들 해랑(박기웅)은 가수 지망생으로, 최연소 남파간첩 해진(이현우)은 고등학생으로 위장해 각자의 임무에 충실한 삶을 살아간다. 개성있는 캐릭터와 예측불허의 드라마. 웹툰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인기 요인이었다. 장철수 감독도 원작의 장점을 최대한 끌어안겠노라 말한 적 있다. ‘바보 간첩’으로 변신한 김수현도 영화에 대한 기대치를 높인다. 거기에 손현주, 박혜숙, 고창석, 장광 등 실력파 배우들도 총출동한다.
[Coming Soon] ‘위대한 공화국의 혁명괴물’ <은밀하게 위대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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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테크에서 영화를 보는 행위에 가장 어울리는 감독 중 하나가 ‘페데리코 펠리니’다. 그저 흑백의 고전을 기대하고 갔다가는 영화적 프레임의 현대적 움직임에 감탄하게 되고, 네오리얼리즘을 기대하고 갔다가는 영화적 환상성의 도입에 깜짝 놀라게 된다. 물론 비난 역시 가끔 들려온다. 일례로 영화평론가 세르주 다네는 영화연구에 도움이 되지 못하는 이른바 ‘자습감독’으로 펠리니를 언급한 적이 있다. 이유는 그가 자신의 삶을 너무나 직설적으로 영화에 투영했으며, 또한 문학적 교양이 있는 관객이 ‘더’ 공감하는 시나리오나 사상에 관심을 보이는 영화를 만들었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이러한 평가는 다시금 현대의 관객 몫이 됐다. 우리는 고전 레퍼토리를 통해 현대영화의 의미를 곱씹어야 한다. 펠리니 사후 20주년 기념으로 기획된 이번 특별전은 따라서, ‘양식있는 고전주의’와 ‘몰상식한 바로크’ 사이에 자리한 감독으로서 페데리코 펠리니를 뒤돌아볼, 의미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초기작부터
[영화제] 탐구의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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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건스> 2 Guns
감독 발타자르 코쿠마쿠르 / 출연 덴젤 워싱턴, 마크 월버그
아이슬란드의 국민배우에서 감독으로 성공적인 변신을 한 발타자르 코쿠마쿠르의 액션영화. 범죄조직에 잠입하여 활동 중이던 마약단속국 요원과 해군정보부 요원. 서로를 감시하던 둘은 어느 날 자신들이 범죄조직이 쳐놓은 함정에 빠졌다는 사실을 깨닫고 힘을 합친다.
[WHAT'S UP] <2 건스> 2 Gu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