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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인터뷰] 배우 ‘김고은’
[영상인터뷰] 배우 ‘김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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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소식이 한창이던 지난주. 21세기인 지금과는 이미 세기부터 차이가 나는 1999년, 제가 처음 서울에 올라와 직장생활을 할 때 동료였던 이가 참 안타까운 나이에 세상을 먼저 떠났습니다. 장례식장이란 곳은 참 신비로운 곳입니다. 고인에 대한 애끊는 이별이 있는가 하면 그런 때 아니면 못 만나는 이들과의 반가운 해후가 공존하기 때문입니다. 죽음이 테마인 장례식장에서 산 자와의 만남을 향유한다는 것 자체가 나이를 먹었다는 증거이겠지요. 현역 프로 레슬러이자 격투기 해설위원이며, 종종 라디오와 텔레비전에 얼굴을 들이미는 저에게 서로 안부를 물으며 근황을 이야기하다보면 99% 듣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말을 들을까요?
대화의 흐름은 대략 이렇습니다. 요즘 한국에선 프로 레슬링 경기가 별로 없어서 주로 일본에서 경기를 한다고 하면 여비는 어떻게 충당하냐고 묻습니다. 주최사에서 파이트머니 외에 비행기표값과 호텔비를 따로 지급한다고 하면 하는 말이, “참 재밌게 사네”입니다. 이젠 제법
[김남훈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어금니 꽉 깨물고 스마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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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쫓는 자들의 눈을 피해 으슥한 창고로 숨어든 세자 이순(아역 최상우)과 옥정(아역 강민아). 고개를 돌려 옥정에게 말을 걸려던 이순은 저고리 동정 틈으로 엿보이는 소녀의 가슴 위 쇄골과 얼굴의 보송한 솜털에서 시선을 돌리지 못한다. “너의 신분을 미천하지 않게 만들어주는 옷이면 내가 구해줄 수 있다. 나의 빈이 되거라. 약속하마, 내가 꼭 너의 옷이 돼주마.” 하지만 궁에 돌아온 이순은 권력을 쥐고 있는 신하들에게 치욕을 당하고 앓아누운 뒤, 왕세자로서의 분노에 눈을 뜨고 잠깐의 풋사랑을 묻어두기로 마음먹는다. 왕이 될 소년과 그의 빈이 되기로 약속한 소녀 사이를 정치와 권력이 방해하는 이야기. SBS 드라마 <장옥정, 사랑에 살다>의 초반부는 MBC <해를 품은 달>과 꽤 유사하다. 그러나 훤(여진구)과 연우(김유정)가 서신을 교환하며 서로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키워가던 것과 비교하자면 옥정에게 반한 이순의 첫사랑은 신체의 일부분이 불러일으킨 호기심, 성적인
[유선주의 TVIEW] 프런코 미션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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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배우가 젊을 때는 청춘 하나만으로도 승부를 걸 수 있다. 빛나는 육체가 있지 않은가. 그런데 나이가 들면 어떡할 것인가. 이것은 여전히 어려운 문제이고, 여기에 정답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이탈리아영화의 한 특징이 육체에의 매혹이다. 2차대전 이후, 네오리얼리즘이 유행할 때 국내에선 ‘마조라타’(Maggiorata)라고 불리는 여성육체파가 스타가 됐다. 이런 전통은 60년대의 소피아 로렌을 거쳐, 최근의 모니카 벨루치까지 이어진다. 실바나 망가노(1930~89)는 전후의 마조라타 가운데 한명이다. 젊을 때는 육체 하나만으로 전세계의 이목을 끌었는데, 아쉽게도 곧바로 잊어졌다. 그런데 중년이 돼서 극적인 변신을 한다. 곧 청춘의 화신은 놀랍게도 죽음의 상징이 되어 나타났던 것이다. 그렇게 망가노는 배우로서 두번 살았다.
망가노의 출세작은 주세페 데 산티스 감독의 <씁쓸한 쌀>(Riso Amaro, 1949)이다. 30대 초반의 이 젊은 감독은 로베르토 로셀리니, 루
[한창호의 오! 마돈나] 관능의 화신에서 죽음의 상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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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갔던 친구가 중고서점에서 사다준 애니메이션 역사책 속에서 정성껏 오린 신문 스크랩이 툭 떨어졌다. 책 주인은 애니메이션 학도였나보다. ‘백설공주의 흰 머리’라는 제목의 기사는 디즈니 장편 <백설공주>의 50살을 감회에 젖어 기념했다. 그리고 나는 26년 전 이 기사를 다시 감회에 젖어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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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때 자작나무를 탔다”는 프로스트의 시구와 유사한 어조로 말하자면, 나도 한때 ‘믹스 테이프’(mixed tape)를 만들었다. 누군들 아니었겠는가. 당시 음악은 뮤지션이 심사숙고한 배열에 따라 LP와 CD의 동심원에 모세의 십계처럼 새겨져 우리 손에 들어왔다. 우선은 인트로(intro)부터 아우트로(outro)까지 아티스트가 정한 순서와 사이를 지켜, 귀로 곡명을 판별할 때까지 듣는 일이 먼저였다. 다음에 한장씩 모은 신착 앨범들을 거듭 돌려 들으며 내 귀가 혹하는 트랙을 고르고, 그들의 총합이 47분, 60분 분량이 되면 공테이프에 경건히 옮겼다. 음악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누구의 추억인가요? 누구의 꿈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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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발은 땅 위에 한발은 허공 속에
의기양양한 시인이 이렇게 절룩거린다.
그를 비틀어버리는 낯선 곳에서
완전하게 패배하여 자신의
상상의 형상이 사라져버리는 세계 속으로 되돌아온다.
-장 콕토 <몽유병자> 중에서
레오스 카락스의 짧은 필모그래피에서도 <폴라 X>(1999)는 이례적인 영화였다. 대부분 낮에 찍혔고, 그의 페르소나인 드니 라방이 등장하지 않는다. 어떤 감독의 영화에선, 오즈 야스지로나 에릭 로메르의 영화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야기나 소재보다 계절이나 밤낮이라는 배경이 더 근원적이다. 레오스 카락스의 영화도 그런 것 같다. 카락스가 스물넷에 만든 데뷔작 <소년, 소녀를 만나다>(1984)는 거의 모든 장면이 밤이며, 뒤를 이은 <나쁜 피>(1986)와 <퐁네프의 연인들>(1991)도 3분의 2 안팎이 밤장면으로 채워져 있다. 미완성의 조상(彫像)과도 같은 특이한 외모의 드니 라방은 몽유병자의 무표정으로 어둠이 깃든 파
[신 전영객잔] 진실은 막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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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의 나이를 계속 염두에 두고 영화를 보는 게 정당한 감상법일까?”
극장에서 우디 앨런의 <로마 위드 러브>를 보며 옆자리의 태일에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물론. 특히 그 감독이 직접 영화에 등장할 때는 더욱.”
용산역과 연결된 쇼핑몰 안의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밖으로 나오자 오후의 햇살 아래 광활한 공사현장들이 보인다. 이곳에 미래도시를 세우려던 공격적인 계획은 허망하게 백지화되었다. 앞으로 얼마 동안 이 상태로 방치될까. 담배에 불을 붙이며 태일이 말을 건넨다.
“로마 가봤냐?”
“아니.”
“로마도 못 가봤어? 하긴 넌 한류가 아니지.”
“….”
“뭐 나도 못 가봤다. 그나저나 저런 영화 찍으면 로마 관광청에서 돈 좀 받나?”
“설마.”
“<미드나잇 인 파리> 찍을 때도 꽤 받았다던데?”
“진짜? 웬만한 광고보다 훨씬 낫긴 하지. 영화 보고나면 바로 가보고 싶어지니.”
“그래서 좀 그래. 파리나 로마를 떠올리면서 사람들이 꾸는 빤한 꿈을 그대
[이적표현물] 욕정 없인 못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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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석은 일주일의 6일을 <최고다 이순신> 촬영에 할애하고 있었다. 가끔 보충 촬영이라도 잡히면 일주일 내내 신준호로 살아야 했다. 하지만 조정석의 표정에서 피곤한 기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 사진 촬영과 인터뷰에 성심성의껏 응했다. <건축학개론>이 개봉한 지 1년. 조정석의 행복했던 지난 1년을 되돌아보았다.
납뜩이, 그 뒤 1년
2012년 3월22일 <건축학개론>이 개봉했으니, 딱 네 계절이 흘렀다. 사람들이 <건축학개론>을 보고 첫사랑에 대한 기억의 습작을 써내려갈 때 조정석은 <건축학개론>으로 자신의 배우 인생 제2막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쏜살같이 지나간 일년. 그사이 “상상하지도 못했던 좋은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났다. CF를 처음으로 찍어봤고, 작품이 연이어 들어왔다. “그전까지는 열심히 오디션 보러 다니던 저였는데. 잊지 못할 한해였어요. 고마운 마음을 담아 지난해 말엔 팬
[조정석] 多才多能(다재다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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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 루크가 나오는 <더 레슬러> 같은 영화일 줄 알았다.” 웹툰 <전설의 주먹>의 스토리작가 이종규의 말이다. 원작이 워낙 무겁고 어두운 작품이라 “굉장히 무거운 누아르풍의 영화”나 “승부에 치중한 스포츠영화”가 나올 줄 알았단다. 그의 예상은 틀렸다. 강우석 감독의 영화 <전설의 주먹>은 이종규 작가의 예상보다는 훨씬 부드럽고 감동적인 드라마를 지닌 가족-스포츠영화로 탄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작의 큰 줄기는 그대로 유지했다는 점에 이종규 작가는 관객으로서 만족하고 있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스토리작가 이종규는 한국 만화계의 강우석 같은 존재다. 국내 최초의 격투기 만화 <P.K>, 하드보일드 무협 <PING>의 스토리작가로 이름을 알린 이종규는 거친 남자들의 세계와 그 속에서 피어나는 인간적인 우정과 성장담에 대해 누구보다 유려한 방식으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영화 <전설의 주먹>의 배다른 형제 같은 웹툰
[이종규] 다른 분위기 같은 정서, 희한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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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서 정말 전쟁이 일어난다면, 이 땅에는 어떤 이야기가 남을까. 두권의 책이 대비되며 떠오른다. 중국 출신 미국 작가 하진의 <전쟁 쓰레기>와 베트남 작가 바오 닌의 <전쟁의 슬픔>.
서점에서 우연히 <전쟁 쓰레기>를 집어든 독자라면 서문만 읽고도 아연 흥미를 느낄 것이다. 하진은 중국에서 군 생활을 한 경험이 있고, 이 책은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포로로 잡힌 중국 군인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어릴 적 반공서적에서나 봤던 ‘중공군’- 희미한 피리소리와 함께 안개 너머로 나타나 한손에는 술병을, 다른 손에는 방망이 수류탄을 든 채 끝도 없이 밀고 내려오는 유령 같은 존재- 들이 비로소 인간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들도 우리와 똑같이 죽는 걸 무서워하고, 조금이라도 편하게 지내려고 안달을 한다. 그러나 막상 책을 읽고 나면 큰 울림이 남지는 않는다. 당시 한국의 생활상은 물론 모슬포에서 물질하는 해녀들의 평균 연령까지 정확히 파악한 작가의 취재
[금태섭의 서재에서 잠들다] 우리들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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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시티즌 빈스>로 에드거상을 수상했던 미국 작가 제스 월터의 여섯 번째 장편소설. <뉴욕타임스>와 <워싱턴 포스트>의 올해의 주목할 책에 선정되고 ‘반스 앤드 노블’과 ‘아마존’의 올해의 최고도서에 선정됐다. 이탈리아 리구리아 해안에 위치한 아름다운 섬 포르토 베르고냐. 이곳의 작은 호텔에 죽음을 앞둔 여배우가 찾아온다. 50여년의 시간을 오가며 진행되는 이야기는 환상적이고, 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만든다.
[도서] 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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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논객’으로 주목받았던 한윤형이 이제 20대를 벗어났다. 하지만 그의 또래들, 후배들에게 달라진 것은 많지 않아 보인다.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 그는 20대의 문제로 보이는 것이 사실은 그들의 부모 세대의 문제임을 지적한다. “적나라하게 요약한다면 ‘집값’은 높이고 ‘사람값’은 낮추는 체제를 운용해온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그 체제를 지지해왔던 중산층 자신들의 자녀조차 월급으론 독립을 꿈꾸지 못하게 된 ‘멋진 신세계’다.”
[도서] ‘멋진 신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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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치있게, 능청맞게 이야기를 풀어갈 줄 아는 이기호의 새 소설집. <최순덕 성령충만기>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를 기억하는 독자들이 키득거릴 준비를 하고 맞이해야 하는 책인데, 이번에도 그의 감각은 여전하다. 제11회 이효석문학상 수상작 <밀수록 다시 가까워지는>을 비롯한 여덟편의 소설이 수록돼 있다. <내겐 너무 윤리적인 팬티 한 장>과 같은 제목짓기로 읽는 이를 유혹하는 기술 역시 여전한 듯하다.
[도서] 제목으로 유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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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와 호러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일까. 미스터리에서는 사건의 해결이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하는 역할을 하는 일이 많다. 수수께끼는 모두 풀렸다! 소설 속에서 죽은 사람은 돌아올 수 없지만 이야기 속 탐정(역할의 인물)과 책 밖 독자는 그 죽음에 대한 납득할 만한 해명을 얻고, 나아가 자신의 안전을 보장받는다. 호러에서는 어떤 죽음도 결국 숙명일 수밖에 없음을 모두가 납득해야 이야기가 끝난다. 그러니 사건의 해결은 즉, 이야기를 영원히 여는 역할을 한다. 죽음은 진행 중이다. 아무도 도망갈 수 없다. 공포영화의 엔딩장면이 되살아난다, 혹은 다시 활동을 개시하는 악당인 이유는 간신히 살아남은 주인공에 대한 위협보다는 안심하는 관객을 위협하기 위해서다.
소네 게이스케의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은 치매 노모를 돌보며 아르바이트로 생활하는 환갑 즈음의 남자와, 사라진 애인 때문에 폭력조직에 상시적으로 위협받는 형사와, 거액의 빚을 진 뒤 출장 매춘업소에서 일하게
[도서] 현실은 밤그림자처럼